무라사키 시키부

덤프버전 :

1. 紫 式部
1.1. 생애
1.3. 여담
1.4. 미디어믹스
2. 紫SHIKIBU
2.1. 멤버구성



1. 紫 式部[편집]





파일:아사히 신문 로고.svg 아사히 선정 지난 1천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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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신문이 2000년 투표로 선정한 "지난 1천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의 리스트이다.
1위
2위
3위
4위
5위
나쓰메 소세키
무라사키 시키부
시바 료타로
미야자와 겐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6위
7위
8위
9위
10위
마츠오 바쇼
다자이 오사무
마쓰모토 세이초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유키오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아리시마 타케오
무라카미 하루키
엔도 슈사쿠
세이 쇼나곤
요사노 아키코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모리 오가이
요시카와 에이지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류
이시카와 다쿠보쿠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다니자키 준이치로
이노우에 야스시
미우라 아야코
아베 코보
다카무라 고타로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후지사와 슈헤이
시마자키 도손
나카하라 츄야
고바야시 잇사
세리자와 고지로
31위부터는 링크 참조.



파일:1200px-Encyclopædia_Britannica.svg.png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선정 세계의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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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은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들을 선정했다.
긍정적 영향을 미친 여성들뿐 아니라 '세계사에 족적을 남긴 여성들'을 뽑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물들 혹은 논란 있는 인물들도 있다.

성인들
성모 마리아
예수의 테레사
마더 테레사
지도자들
앙겔라 메르켈
베나지르 부토
예카테리나 2세
캐시 프리먼
서태후
클레오파트라
코라손 아키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다이애나 스펜서
지우마 호세프
에디트 크레송
엘레오노르 다키텐
엘리너 루스벨트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2세
엘런 존슨 설리프
에바 페론
골다 메이어
그로 할렘 브룬틀란
한나 수호츠카
하트셉수트
인디라 간디
이사벨 1세
제니 시플리
줄리아 길라드
칼레다 지아
킴 캠벨
마거릿 대처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로빈슨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미첼 바첼레트
미셸 오바마
박근혜
잔 다르크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쑹메이링
탄수 칠레르
테오도라
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
빅토리아 여왕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
비올레타 차모로
측천무후
잉락 친나왓
발견자들
에이다 러브레이스
어밀리아 에어하트
바버라 매클린톡
캐롤라인 허셜
도러시 호지킨
엘리자베스 블랙웰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히파티아
제인 구달
캐서린 존슨
리제 마이트너
마거릿 미드
마리아 미첼
마리 퀴리
마리암 미르자하니
레이첼 카슨
로잘린드 프랭클린
사카자위아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예술가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코코 샤넬
도로시아 랭
프리다 칼로
카라 워커
메리 카사트
쿠사마 야요이
자하 하디드
사회운동가들
앨리스 워커
앤절라 데이비스
앤 로이페
아얀 히르시 알리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엘프리데 옐리네크
그레타 툰베리
제인 폰다
주디 시카고
리마 보위
나오미 클라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수잔 팔루디
타우왁쿨 카르만
와리스 디리
말랄라 유사프자이
마거릿 생어
마리아 몬테소리
해리엇 터브먼
캐롤리 슈니먼
로자 파크스
시린 에바디
왕가리 마타이
에멀린 팽크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
작가들
에밀리 디킨슨
제인 오스틴
사포
버지니아 울프
마거릿 애트우드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헬렌 켈러
J. K. 롤링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무라사키 시키부
시몬 드 보부아르
안네 프랑크
토니 모리슨
운동선수들
베이브 디드릭슨
빌리 진 킹
파니 블랑커스쿤
재키 조이너커시
미아 햄
나디아 코마네치
세레나 윌리엄스
퍼포머들
비욘세
엘라 피츠제럴드
캐서린 헵번
마돈나
메릴 스트립
미리엄 마케바
오프라 윈프리
사라 베르나르
움 쿨숨
정치인들
에이미 클로버샤
바바라 조던
캐롤 모즐리 브라운
엘리자베스 워런
프랜시스 퍼킨스
제럴딘 페라로
해티 캐러웨이
힐러리 클린턴
저넷 랭킨
매들린 올브라이트
낸시 펠로시
넬리 테일로 로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셜리 치점
빅토리아 우드훌
참정권주의자들
앨리스 폴
앨리스 스톤 블랙웰
캐리 채프먼 카트
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
도리아 샤픽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프랜시스 하퍼
프랜시스 윌러드
해리엇 스탠턴 블래치
헤르타 아일톤
후다 샤아라위
아이다 벨 웰스
제인 애덤스
줄리아 워드 하우
케이트 셰퍼드
루크레티아 모트
루시 번스
루시 스톤
메리 처치 테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이 라이트 슈
밀리센트 포셋
소저너 트루스
수잔 B. 앤서니
버지니아 루이자 마이너
출처




무라사키 시키부
(むらさき式部(しきぶ|Murasaki Shikibu


파일:Tosa_Mitsuoki_001.jpg

본명
불명[1]
출생
불명 (973년?)[2]
일본 헤이안 시대 헤이안쿄
(現 교토부 교토시)
사망
불명 (1031년?)[3]
일본 헤이안 시대 헤이안쿄
(現 교토부 교토시)
직업
소설가, 시인, 가인, 여관
묘소
교토부 교토시 키타구
무라사키노 니시고쇼덴쵸(紫野西御所田町)
친족
아버지 후지와라노 타메토키(藤原為時)[4]
배우자
후지와라노 노부타카(藤原宣孝)[5]
자녀
다이니노 산미
장르
모노가타리, 일기문학, 와카
대표작
겐지모노가타리,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


일본 헤이안시대궁녀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세계 문학사에서 영향력 있고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며, 주요 작품으로는 현대 문학 개념에서 소설이라고 불릴 수 있는 작품 중 가장 초기의 작품인 겐지모노가타리,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가 있다.

성은 후지와라(藤原)였으며, 이름은 불명이다. 궁중에서는 '후지 시키부'라고 불렸다고 한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필명으로, '시키부'는 그녀의 아버지의 관직이자 그녀가 일반적으로 불렸던 이름에서 따오고, '무라사키'는 겐지모노가타리의 히로인 무라사키 노우에에서 따온 것으로 후대에 붙여진 이름이다. 시키부가 무라사키 노우에를 자신의 오너캐로서 생각하고 자신의 필명을 직접 이 인물에서 따와 "무라사키"라고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전혀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주장이며, 무라사키라는 이름 자체가 시키부 사후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보므로 신빙성이 낮다.

필명의 한국식 한자 발음은 ""다.


1.1. 생애[편집]


후지와라 북가(北家) 계열의 학자인 후지와라노 다메토키(藤原為時)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 남동생보다 뛰어났다[6]고 한다. 하지만 여성의 학재가 뛰어나면 여자답지 못하다고 여겨진 시대적 풍조 상 내성적이고 겸손한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7]

일기에서 동시대의 여문이자 라이벌 격인 이즈미 시키부세이 쇼나곤 등의 뒷담화를 대놓고 썼는데, 특히 세이 쇼나곤이 지식을 뽐낸다고 엄청 헐뜯기도 한다. 같이 쇼시 중궁을 모시는 이즈미 시키부는 황족과 스캔들을 일으키고[8] 귀족 사회에서나 그녀를 딸의 여방으로 고용한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까지 같은 평가를 할 정도로[9] 나댄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점, 세이 쇼나곤은 쇼나곤이 출궁한 이후 시키부가 쇼시의 여방으로 들어온지라 서로 만난 적은 없어도 성격이 맞지 않는 것과 더불어 다른 황후를 모신다는 점 때문에 라이벌 구도였다

섭관시대 최고의 권력을 누린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가 딸 쇼시(彰子)이치조 천황의 중궁으로 들이면서 세이 쇼나곤 등 당대의 재녀들을 시녀(女房)로 모은 형 미치타카의 딸인 기존 황후 후지와라노 테이시(藤原定子)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쇼시의 시녀로 교양있는 여자를 모집했고 여기에 무라사키 시키부가 뽑히며 궁중 생활을 접하게 된다.

중궁 테이시의 아버지 미치타카가 죽은 뒤에 미치타카의 동생 미치나가와 미치타카의 아들 사이에서 권력투쟁이 있었고, 여기서 승리해 최고권력자가 된 미치나가는 앞서 입궁한 조카 테이시를 황후로, 딸 쇼시를 중궁으로 만들었다. 원래 중궁=황후였는데 이 때부터 황후와 중궁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미치나가는 무라사키 시키부를 쇼시의 시녀로 초빙했고, 시키부가 쇼시를 섬기면서 쓴 것이 겐지모노가타리. 겐지모노가타리가 막 쓰여졌을 무렵에는 중궁과 다른 궁녀들 앞에서 구연되었는데, 천황도 함께 들으면서 쇼시의 처소에 뻔질나게 드나들게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의도한 것 같다.

한편 무라사키 시키부의 일기에서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가 집적거렸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여러가지 있는데[10]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지만, 이 둘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덧붙여 후지와라노 긴토도 그녀에게 들이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후지와라노 긴토는 겐지모노가타리 팬이기도 했으며 아츠히라 친왕의 출생 50일 기념 축하연에서 시키부가 보이지 않자 궁녀들이 있는 휘장을 들추며 "어린 무라사키노우에가 여기 있는가"라고 시키부를 애타게 찾아 돌아다녔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정작 시키부는 긴토에게 전혀 마음이 없었는지 휘장 뒤에 숨어서 대답도 않고 "자기가 히카루 겐지도 아닌 것이 왜 들이대고 앉았지?" 하며 일기에서 깠다. 이 축하연이 11월 1일이었는데 긴토가 여방들이 있는 휘장을 들추며 시키부를 찾던 이 날로부터 천년 후인 2008년 11월 1일, 일본은 겐지모노가타리가 지어진 지 천년이 되는 이 날을 겐지의 날로 지정하여 문화행사를 가졌다. 정확히는 겐지모노가타리가 처음 언급된 날짜라는 데 의의를 두는 듯. 물론 마음에 둔 여자한테 까인 후지와라노 긴토에게 있어서는 두고두고 본인의 스토커 행적 즉 흑역사가 박제된 셈이다.

1.2. 백인일수[편집]


百人一首
백인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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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번


제2번


제3번


제4번






제5번


제6번


제7번


제8번






제9번


제10번


제11번


제12번






제13번


제14번


제15번


제16번






제17번


제18번


제19번


제20번






제21번


제22번


제23번


제24번






제25번


제26번


제27번


제28번






제29번


제30번


제31번


제32번






제33번


제34번


제35번


제36번






제37번


제38번


제39번


제40번






제41번


제42번


제43번


제44번






제45번


제46번


제47번


제48번






제49번


제50번


제51번


제52번






제53번


제54번


제55번


제56번






제57번


제58번


제59번


제60번






제61번


제62번


제63번


제64번






제65번


제66번


제67번


제68번






제69번


제70번


제71번


제72번






제73번


제74번


제75번


제76번






제77번


제78번


제79번


제80번






제81번


제82번


제83번


제84번






제85번


제86번


제87번


제88번






제89번


제90번


제91번


제92번






제93번


제94번


제95번


제96번






제97번


제98번


제99번


제100번









제57번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

めぐりあひて (しやそれとも わかぬまに (くもがくれにし 夜半(よは(つきかな

메구리아히테 미시야소레토모 와카누마니 쿠모가 쿠레니시 요하노 츠키카나

우연히 만나[11]

보았는가 아닌가 모르는 새에 떠나버렸네 구름 뒤로 숨어버린 한 밤의 달과 같이


  • 와카의 형식 중 5-7-5-7-7의 구성에 첫 어절에 한 글자가 추가된 변형형(6-7-5-7-7)이다.
  • 풀이하면 "(나는 너를) 우연히 봤는데, (너는 나를) 본 건지 못 본건지... 이건 뭐 구름 낀 날에 달을 보려는 것과 마찬가지구나. (보려고 하면 너는 구름 뒤에 숨어버리는구나.)" 정도. 소꿉친구로 추정되는 사람과의 짧은 만남이 소재지만 무라사키도 그렇고, 그 친구도 중급 귀족[12] 출신의 궁정 쪽 여인이라 허락없이 자유롭게 대면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야만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읊은 시라고 볼 수 있다.

1.3. 여담[편집]


2000년 아사히신문에서 '지난 1천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은 누군가?'라는 설문조사에서 2위를 기록했다. 1위가 나쓰메 소세키였다. 3위는 시바 료타로, 4위 미야자와 겐지, 5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6위 마츠오 바쇼, 7위 다자이 오사무, 8위 마츠모토 세이초, 9위 가와바타 야스나리, 10위 미시마 유키오였다.#

파일:¥2000 back.jpg
한시적으로 발행했던 2000엔권 지폐의 뒷면(우측 하단)에 그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1.4. 미디어믹스[편집]


  • || 파일:紫式部.jpg || 파일:紫式部1.jpg ||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에 특전무장으로 등장한다. 능력치는 세이 쇼나곤과 엇비슷하다.

  • 소설 한니발 라이징에 한니발의 일본인 숙모는 이 항목에서 이름을 따왔다.



  • 금색의 갓슈에선 천년 전에 빅토림의 파트너였다고 나온다. 배를 타고 서양으로 가던 도중, 바이킹에게 납치당해서 빅토림이 구출하러 갔는데, 같은 바이킹에게 파트너의 가족들이 납치당한 레이라와 만났고 바이킹의 대장까지 마물의 파트너라서 마지막에는 마물들끼리 2:1 전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빅토림 왈 '로맨티스트여서 이야기할 때마다 즐거웠다.'




2. 紫SHIKIBU[편집]


2008년 기획성으로 결성된 일본의 유닛으로, 개그맨인 세계의 나베아츠가 친분있는 중견 개그맨들을 모아 만들었다. 이름의 유래는 당연히 1이며, 80년대 아이돌인 히카루GENJI(光GENJI)를 본따 만들었다.

일단은 히카루GENJI의 패러디 유닛이기 때문에 싱글을 내는 등 음악활동을 하긴 하지만, 소속되어있는 멤버가 전부 개그맨인지라 음악이 섞인 개그활동이라고 하는게 맞을 듯하다.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활동한 히카루GENJI와는 달리 죽마를 타고 노래를 부르는 등의 기행을 벌이고 있다.


2.1. 멤버구성[편집]


멤버 구성 역시 히카루와 GENJI로 나뉜 히카루GENJI처럼 무라사키와 SHIKIBU로 나뉜다. 나누는 구분은 자식의 유무.

[1] 성은 후지와라(藤原)였으며, 이름은 불명이다.[2] 텐로쿠 원년(970년)에서 텐겐 원년(978년) 사이에 태어났다.[3] 칸닌 원년(1019년) 이후 사망.[4] 텐랴쿠 3년(949년) 출생, 쵸겐 2년(1029년) 사망으로 추정.[5] 출생불명, 쵸호 3년 4월 25일(1001년 5월 20일) 사망.[6] 한문가나 문장 양쪽을 다 쓸 수 있었다[7] 후지와라노 쇼시 중궁의 여방으로 궁중에 출사했지만 초기에는 궁중(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잠깐 본가로 돌아가기도 해서 동료 여방들은 시키부에게 중역출근(높으신 분처럼 출근하고 싶을 때 출근하는 것)이란 별명을 붙였다.[8] 그것도 남편이 있는 상황에서 레이제이 천황의 3황자 타메타카 친왕(爲尊親王)과 스캔들을 터트렸고, 타메타카의 사후 그의 친동생 아츠미치 친왕(敦道親王)의 구애를 받아 아들까지 낳는 지경에 이르렀다.[9] 일명 "나대는 계집(浮かれ女)"이라고 평가했다고.[10] 시를 읊으라고 하거나, 시끄러운 거 싫다고 방에 가 있더니 불러내거나, 밤에 찾아오는 등[11] 巡り会う. 서로의 운명이 돌다가 만난다는 뜻인데, 한국어에는 이 뜻을 간결하면서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단어나 표현이 없다.[12] 먼저 언급되어 있듯, 무라사키 시키부도 귀족인 후지와라 가문의 자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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