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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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등장인물
2.1. 나
2.2. 모화
2.3. 욱이
2.4. 낭이
2.5. 낭이의 아버지
3. 줄거리
3.1. 비평
4. 개작: 장편소설 『을화』(1978)
5. 기타
6. 미디어 믹스
6.1. 영화
6.1.1. 1972년 영화
6.1.2. 1979년 영화
6.2. 드라마



1. 개요[편집]


김동리단편소설. 1936년에 조선중앙일보[1][2]에 발표했다. 김동리는 1934년 시 부문에 백로가 당선되어 등단 직후 연이어 발표한 당선작 화랑의 후예(1935), 산화(1936)와 무녀도(1936)가 평단과 대중의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단숨에 유명 소설가가 된다.

소설 전문


2. 등장인물[편집]



2.1. 나[편집]


이야기의 화자.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다.


2.2. 모화[편집]


노인이 들려주는 무녀도 이야기의 주인공. '모화'에서 와서 '모화'라고 부른 것이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 예기소가 있는 경주의 작은 산골 마을의 무녀로 가족으로는 귀가 불편한 딸 낭이와 절간에 맡긴 아들 욱이가 있다. 어느 날 10년 만에 돌아온 욱이와 상봉하나 아들이 기독교 신자가 된 사실을 믿지 못하고 아들에게 예수 귀신이 씌었다고 생각한다. 아들에게 쓰인 예수 귀신를 쫓으려 아들이 자는 사이에 그가 집에 올때 가져온 신약 전서(신약 성경이다)를 두고 굿을 벌이다가 아들이 막자 칼부림을 하다가 아들을 죽인 뒤 완전히 미쳐버려 예기소에 굿을 하다 빠져 죽는다.


2.3. 욱이[편집]


모화가 신내림을 받기 전에 낳은 아들이자 낭이의 이부 오빠. 어릴 적부터 총명해 모화가 공부를 더 시키기 위해 절간에 맡겼지만 도망을 나와 우연히 기독교를 접하면서 점차 기독교 신자가 되고 어머니인 모화의 굿을 우상숭배라 하면서 성경을 읽으며 어머니의 숭배를 말린다.

점차 어머니와 사이가 벌어지자 평양 지역[3]의 선교사인 현 목사[4]와 이 장로에게 도움을 청하며 경주지방의 기독교인을 찾다가 어머니가 신약 전서에 불을 놓은 것이 집에 옮겨붙는 것을 보고 황급히 불을 끄지만 (예수 귀신이 씌었다 믿고 굿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칼에 맞고 성직자들을 만난 뒤 새로 받은 성경을 품에 안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2.4. 낭이[편집]


모화가 신내림을 받고 무당 일을 하게 된 뒤로 태어난 딸이자 욱이의 이부 여동생. 어렸을 땐 모화 슬하에서 욱이와 함께 자랐으며 욱이를 몹시 따랐다고 한다. 모화가 공부하라는 이유로 욱이를 절로 보낸 후 한동안 병을 앓다가 겨우 살아났으나 후유증으로 청각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무당의 딸인데다가 장애가 있어서인지 성격이 상당히 내성적이다. 어머니가 굿을 하거나 술을 마시러 나가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인 그림 그리기로 시간을 보내는데, 모화가 없을 때 방문객이 오면 몹시 놀라고 겁에 질린 모습을 보인다는 묘사가 나온다.

오빠와 어머니가 허망하게 사망한 뒤 한동안 앓아 누웠으나 아버지가 찾아와 병수발을 든 덕분에 어느 정도 몸을 추슬렀고 이후 말이 어느 정도 트인 채로 아버지와 함께 어디론가 떠난다.


2.5. 낭이의 아버지[편집]


모화의 두 번째 남편이자 낭이의 아버지.[5]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상점을 운영하며 부인과 떨어져 사는데 대신 봄, 가을마다 선물을 들고 찾아와 딸을 챙긴다고 한다.[6] 결말에서 오빠와 어머니를 잃고 혼자 남아 앓고 있던 딸을 찾아와서 지극정성 간호하고, 낭이가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르자 딸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난다.


3. 줄거리[편집]


도입부에서는 '나'의 시점에서 진행되다가 손님으로 들어온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설의 본격적으로 전개가 되는, 전형적인 액자식 구성의 소설이다.

먼저 '낭이'라는 인물이 그린 무녀도라는 그림을 설명하는 내용에서 시작된 이 액자식 구성은, 그 그림의 배경이 되는 곳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으로 끝으로, 본격적인 스토리로 들어간다.

무녀도라는 그림의 분위기가 그렇듯, 이야기의 중심점이 되는 모화의 집에 대한 설명도 그렇다. 그 집은 경주읍성에서 외부로 5리쯤 가서 있는 조그만 마을, 여민촌 혹은 잡성촌이라고 불리는 마을에 있는데, 모화의 집도 인간 세상과는 거리가 멀다.

이 집에는 무당 모화와 청각장애를 앓는 딸 낭이가 살고 있는데, 모화가 절간에 가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아들 욱이를 제외하면 찾아오는 사람이라고는 모화에게 굿을 하러 오는 사람들 아니면 봄, 가을에만 찾아오는 낭이의 아버지뿐이다. 그마저도 모화는 자신이 굿할 일이 없으면 주막에 가서 술을 즐겨 마시곤 한다. 그래도 매번 술을 마시고 나면 낭이에게 복숭아를 사다 주는 것으로 보아 딸에게 관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그 탓에 집에서의 살림을 꾸준히 하는 것은 기대하기도 힘들고, 그 곳에는 낭이만 집에 있었다.

모화의 아들 욱이가 절간에서 돌아오고 나서는, 그 도깨비굴처럼 묘사된 모화의 집이 사람 냄새가 나는 곳으로 바뀌어간다. 그런데 모화는 욱이가 절간에 있다가 간만에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절간에서 빠져나와 그대로 예수도(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이 때문에 욱이와 모화 간에 갈등이 생겼다. 욱이는 여동생 낭이에게 기독교 성경구절을 얘기하고 알려주는 등 기독교를 알려주지만 모화는 그런 아들이 걱정되기만 한다. 모화의 생각으로는 예수 역시 일종의 귀신이기 때문이다.

사실 무당인 모화에게 있어 예수도는 동학당과 마찬가지로 근본 없는 신흥 세력일 뿐이며, 그 종교를 믿는 아들 욱이에 대해서 미운 자식 취급을 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욱이는 그런 어머니 모화를 이해하기보다, 오히려 모화가 생각했던 것처럼 사귀들린 사람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어머니와의 성격 격차가 점차 벌어지자 욱이는 평양 현 목사와 이 장로[7]라는 인물에게 편지를 띄웠고 경주 지방의 예수교인을 찾아 나섰다. 모화는 그러고 있는 욱이가 그저 집을 나가고 없으니 날이 갈수록 초조해져서 치성을 드리는데, 그 과정에서 낭이까지 영향을 받았는지 갑자기 옷을 전부 벗고 나체로 춤을 추기도 한다.

두 번 집을 나갔던 욱이는 어머니 모화의 포옹을 거르고 방에 누웠는데, 그날 밤 모화는 욱이가 품에 안고 있었던 <신약성서>를 뺏어다가 접시불 옆에 태워 버렸다. 그것을 목격한 욱이는 불을 끄기 위해 부엌으로 뛰어들어가 냉수그릇을 집어들려고 했지만, 모화의 손에는 이미 식칼이 들려 있었다. 그러다가 불이 붙어서 방에까지 붙으려는 불길을 욱이가 꺼줬더니 기어이 칼빵을 먹인다. 며칠 뒤 욱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자신을 찾아온 성직자들을 만난 뒤 성경을 품에 안고 사망한다. 욱이가 죽고 나서 모화가 살고 있는 집은 처음 묘사되어 있던 그대로 복귀되었고, 그와 동시에 모화는 아예 미치광이처럼 되어 버렸다. 그 결과 과거에 모화의 굿이나 푸닥거리를 빌던 사람들조차도 흉한 풍설을 퍼뜨리며[8] 모화를 멀리하고 교회 세력에 좀 더 가까이하기 시작한다. 이로서 모화는 심리적 박탈감을 느끼고 자신의 마지막 굿을 작정하고 준비한다.

이것은 예기소[9]에 빠져 죽은 김씨 부인의 넋을 달래는 것[10]이며, 이 굿으로 낭이도 입을 열 수 있게 될 거라고도 소문이 난다. 이걸 작정하고 굿을 준비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서양잡귀를 멀리 하고 굿을 가까이 하게 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서 기독교 세력이 늘어나자 사람들은 오히려 모화의 초혼 굿을 외줄타기 또는 판소리 공연처럼 여겨, 전물상도 몰려오고 큰 구경을 하는 듯이 묘사가 되었다. 하지만 모화는 결국 굿을 하면서 물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결국 그대로 익사하게 된다.

그 뒤 오빠에 어머니까지 잃은 낭이는 한동안 앓아 누웠고 떨어져 살던 낭이의 아버지가 찾아와 그런 딸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어느 정도 회복되자[11] 나귀에 태워져 어디론가로 가게 되고, 모화가 살던 집은 누구 하나의 관심도 갖지 않아 버려졌다. 이후 낭이와 그 아버지는 예술가를 대접해주는 '나'의 할아버지를 찾아와 한동안 머물렀고 그동안 낭이가 무녀도를 그려 남겼다.


3.1. 비평[편집]


한국의 전통 문화와 외래 문물의 대립, 그 중에서 무속기독교의 대립이 매우 첨예하게 다뤄진 소설이다. 당시 기독교 교세의 확산과 무속 신앙의 쇠퇴를 잘 나타내고 있다.

소설 내용을 보면, 몇 해 두고 소식이 없던 아들 욱이가 돌아왔는데 상봉의 기쁨 이전에 모화가 새파랗게 질려 겁먹은 모습을 했다는 묘사가 있다. 또 아들이 예수교에 귀의했다는 것을 알게 된 모화는 그때부터 아들에게 귀신이 붙었다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고, 반대로 아들 욱이는 어머니에게 마귀가 붙었다며 기도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모자 간의 대립은 더욱 격렬해져 아들의 성경을 태우는 형태로 나타나고, 이를 막으려던 욱이를 모화는 신들린 상태로 칼로 찔러 중상을 입힌다. 이후 아들 욱이는 끝내 소생하지 못한다.

그리고 모화가 살던 마을에는 욱이의 주선으로 외국인 선교사가 들어와 교회가 들어서고 기독교가 퍼지기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굉장히 비판적인 작가의 시선을 볼 수 있는데 아래와 같다.

  • 이러할 즈음 이 고을에도 조그만 교회당이 서고 전도사가 들어왔다. 그리하여 그것은 바람에 불처럼 온 고을에 뻗쳤다.

  • 읍내의 교회에서는 마을마다 전도대를 내보냈다. 그리하여 이 모화의 마을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

  • 두 눈이 파랗고 콧대가 칼날 같은 미국 선교사를 보는 것은 원숭이 구경보다도 더 재미나다고들 하였다. "돈은 한 푼도 안 받는다. 가자." 마을 사람들은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 이 마을 방 영감네 이종 사촌 손주사위요, 선교사와 함께 온 양 조사 부인은 집집마다 심방하여 가로되 "무당과 판수[12]를 믿는 것은, 거룩거룩하시고 절대적 하나밖에 없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죄가 됩니다. 무당이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보십시오, 무당은 썩어빠진 고목 나무나 듣도 보도 못 하는 돌미륵한테도 빌고 절을 하지 않습니까. 판수가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보십시오, 제 앞도 못 보아 지팽이로 더듬거리는 그가 어떻게 눈 밝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생을 만든 것은 절대적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 아버지올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독교'로 대표되는 근대 문물을 접한 이의 시각에서 바라본 전근대적인 모습도 묘사되어 있다.

  • 그러나 욱이가 어머니의 집이라고 찾아온 곳은 지금까지 그가 살고 있는 현 목사나 이 장로의 집보다 너무나 딴 세상이었다. 그 명랑한 찬송가 소리와 풍금소리와 성경 읽는 소리와 모여 앉아 기도를 올리고 맛난 음식을 향해 즐겁게 웃음 웃는 얼굴들 대신 군데군데 헐어져 가는 돌담과 기와 버섯이 퍼렇게 뻗어 오른 묵은 기와집과 엉킨 잡초 속에 꾸물거리는 개구리, 지렁이들과 그 속에서 무당귀신과 귀머거리귀신이 각각 들린 어미 딸 두 여인을 보았을 때, 그는 흡사 자기 자신이 무서운 도깨비굴에 홀려든 것이 아닌가 하고 새삼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 이듬해 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에 그가 그렇게도 그리워하고 기다리던 현 목사가 평양에서 찾아왔다. 현 목사는 박 영감네 이종 사촌 손자 사위인 양 조사의 인도로 뜰안에 들어서자, 그 황폐한 광경과 역한 흙냄새가 미간을 찌푸리며,
"이런 가운데서 욱이가 살고 있소?"
양 조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결국 작가는 전통과 근대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강한 긴장과 대립 관계를 그려낸 것으로 보인다.

  • 그 밖에도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걷고,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하고, 반신 불수와 지랄병까지 저희 믿음 여하에 따라 모두 죄씻음을 여자들의 은가락지 금반지가 나날이 수를 다투어 강단 위에 내걸리게 된다, 기부금이 쏟아진다, 이리 되면, 모화의 굿 구경에 견줄 나위가 아니라고들 하였다.
"양국놈들이 요술단을 꾸며 왔어."
모화는 픽 웃고 이렇게 말했다. 굿과 푸념으로 사람 속에 든 사귀 잡귀신을 쫓는 것은 지금까지 신령님께서 자기에게만 허락하신 자기의 특수한 권능이었다. 그리고 그의 신령님은 오늘날 예수꾼들이 그렇게도 미워하고 시기하는 고목이기도 했고, 미륵돌이기도 했고, 산이기도 했고, 물이기도 했다.
"무당과 판수를 믿는 것은 절대적 한 분밖에 안 계시는 거룩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죄가 됩니다."
예수귀신들이 나발을 불고 북을 치며 비방을 하면, 모화는 혼자서 징을 울리고 꽹과리를 치며,
"꽁무니에 불을 달고, 두 귀에 방울 달고, 왈강달강 왈강달강, 서역 십만리로 물러서라, 잡귀신아."
이렇게 응수하곤 했다.


4. 개작: 장편소설 『을화』(1978)[편집]


김동리는 이 소설을 '을화'라는 장편소설로 개작하여 1978년에 문학사상지에 발표했다. 무녀도의 줄거리를 기초로 하여 등장인물이 좀더 입체적으로 재창조되고, 여러 묘사와 설명이 많이 늘어났다.

등장인물 이름도 모두 바뀌었는데, 모화는 을화가 되고 무당이 되기 전의 이름은 옥선이 되었다. 욱이는 영술로, 낭이는 월희로 바뀌었다. 을화의 과거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밝히고, 등장인물의 관계도 추가가 많이 되어 있다. 줄거리는 약간 변형을 거쳤으나[13] 기본적으로는 그대로 유지되므로 무녀도의 확장판으로 보면 된다.


5. 기타[편집]


  • 해당 소설의 무대가 경상북도 경주시인 만큼 여민촌 혹은 잡성촌의 무대는 김동리의 고향마을인 성건동을 소재로 하였다. 단 성건동은 전형적인 평지 동네이지만 형산강 건너 야트막한 언덕이 있는 동네이다. 또한 작중 모화가 빠져 죽은 소 또한 근방에 존재하는데, 해당 작품에 나오는 예기소는 또한 애기(청수)소, 금장소[14]라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신라 때 금장대에서 궁녀 둘이 떨어진 적도 있고, 경주에선 깊기로 소문나 물귀신이 있다 하여 절대 그 부근에선 물놀이를 하지 않는다. 2012년에 소 위 언덕에 금장대를 복원하였다.

  • 주인공의 이름인 모화는 '모화에서 와서 모화라고 부른다'는 서술처럼 실제 이름이 아닌 마을 이름이다. 실제로 경주시 외동읍에 모화리가 있고 기차가 서지는 않지만 모화역이라는 기차역도 있다. 한자도 毛火로 동일하다.

  • 본 작품의 제목과 같은 이름의 무녀도라는 고군산군도에 속한 섬이 있으나, 작품과 연관성은 전혀없는 섬이다.

  • 작품 속 성경 구절 인용에 약간의 오류가 있다.
한참 동안 고개를 수그리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던 욱이는, 고개를 들어 그 어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오마니, 이것 보시오. 마태복음 제9장 35절이올시다. 저희가 나갈 때에 사귀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다려오매, 사귀가 쫓겨나니 벙어리가 말하거늘……."
위 구절은 실제로는 마태복음 제9장 32~33절에 등장한다. 개역개정 기준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후략)", 개역한글 기준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후략)". 예전 소설이라 그런지 소설의 인용문은 더 오래된 역본인 개역한글판에 가깝다.

  • 김동리의 고향인 경주시에서는 여우를 예수라고 하며 기독교의 예수와 동음이의어인데, 그가 이와 관련된 사건을 겪은 것이 창작 배경이 되었다.


6. 미디어 믹스[편집]


1978년 장편 '을화'가 발표된 뒤에는 제목은 무녀도로 붙이면서도 실제로는 을화를 각색한 작품이 많고, 무녀도를 각색할 때에도 을화의 설정을 차용하기도 한다. 주인공 이름도 모화/욱이/낭이보다는 을화/영술/월희 쪽이 더 많다.

6.1. 영화[편집]



6.1.1. 1972년 영화[편집]


*
윤정희가 모화, 김창숙이 낭이, 신영일이 욱이를 연기했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기독교 전파를 상당히 비판적으로 묘사한 소설을 미신 타파의 프로파간다로 활용했다.

6.1.2. 1979년 영화[편집]


1979년에 '을화'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였다. 감독은 감자, 홍살문 등을 제작한 변장호. 을화는 김지미, 영술은 유장현이 연기했다.


6.2. 드라마[편집]


KBS가 1979년 신설해서 4월 13일에 첫 방송한 문예극장을 1980년 6월 13일에 폐지하고 후속프로그램으로 TV문학관을 만들어서 1980년 12월 18일 첫 방송한 작품이 '을화'이다. 이 경우에는 제목이 을화이지만 줄거리는 '무녀도'를 대체로 따라가고 있다.


엄마인 을화 역의 장미희보다 아들인 영술 역의 백윤식이 열한 살이 많다... 이 시절 드라마에선 흔한 일이긴 하나 다소 파격적인 편.

백윤식 배우는 실제로 개신교도로서 순교자인 아들 역을 맡았다.


6.3. 애니메이션[편집]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2018년에 영화제에서 공개되었다. 그 뒤에 수정 작업을 거쳐서 2020년에 제작되었다. 제작사는 연필로 명상하기이며 안재훈 감독 작품이다.

완성되고도 개봉이 계속 한 동안 미뤄졌다가 2021년 11월 24일 개봉했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무녀도(애니메이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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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의 중앙일보와는 관계 없다. [2] 1924년 창간한 시대일보를 뿌리로, 중외일보와 중앙일보를 거쳐서 1933년 조선중앙일보로 이름을 바꾼 신문이다. [3] 평양은 우리나라 개신교 선교의 중심지였다.[4] 미국 선교사[5] 욱이와는 혈연 관계가 아니다. 굳이 따지면 의붓 아버지 정도.[6] 아마도 모화의 직업이 원인인 듯하다.[7] 지금은 장로교회의 영향을 받아 감리교회/성결교회/침례교회/오순절교회 할 것 없이 '장로'라는 직함을 사용하지만, 당시는 지금과 다르게 '장로'라는 직함을 주는 교파가 장로교회밖에 없었다. 소설 속에서 욱이가 소속된 교파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8] 누구 아이인지는 모르지만 낭이의 배가 불러 있다는 풍설도 있었다. 아이를 밴 건 아니지만 욱이가 살아 있는 시점에 낭이와 욱이의 관계가 묘해졌다는 간접 묘사는 있다. "욱이가 이 지방 예수교인들을 두루 만나 보고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 야릇하게 변해진 것은 낭이의 태도였다. 그 호리호리한 몸매와 종잇장같이 희고 매끄러운 얼굴에 빛나는 굵은 두 눈으로 온종일 말 한 마디, 웃음 한 번 웃는 일 없이 방구석에 틀어박혀 앉은 채 욱이의 하는 양만 바라보고 있다가, 밤이 되어 처마 끝에 희부연 종이 등불이 걸리고 하면, 피에 주린 싸늘한 손과 입술로 욱이의 목덜미나 가슴팍으로 뛰어들곤 했다. 욱이는 문득문득 목덜미로 가슴팍으로 낭이의 차디찬 손과 입술을 느낄 적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하였으나, 그녀가 까무러칠 듯이 사지를 떨며 다시 뛰어들 제면 그도 당황히 낭이의 손을 쥐어 주며, 그 희부연 종이 등불이 걸려 있는 처마 밑으로 이끌곤 했다. / 낭이의 태도가 미묘해진 뒤부터 욱이의 얼굴빛은 날로 창백해 갔다. 그렇게 한 보름 지난 뒤 그는 또 한 번 표연히 집을 나가고 말았다."가 그것인데, 낭이가 접근하고 욱이는 점잖게 거리를 두다가 집을 나간 듯하다.[9] 명주실 한 꾸리를 다 푼 길이만큼 깊은 늪이라고 묘사된다.[10] 모화가 사는 여민촌 마을의 저수지인 예기소는 오래 전 간통누명을 쓰고 자살한 김씨 부인의 한이 서린 곳이라고 언급된다.[11] 이때 낭이는 아버지를 부르며 약간이나마 말을 하게 된다. 모화의 굿이 효험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부분.[12] 점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시각 장애인[13] 일례로 모화는 죽지만 을화는 죽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은 영술(욱이)가 죽은 직후 월희(낭이)의 생부가 즉시 월희를 데려가고 을화가 반 미친 상태로 굿을 하는 장면에서 끝나므로 을화의 배드엔딩은 시간차만 있을 뿐 확실하다.[14] 행정구역상 현곡면 금장리에 위치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