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티유

...30862.
지금까지 만든 호문쿨루스의 수다.
세어 본 적은 없지만, 최신 제조번호가 그랬으니
까 그럴 것이다.

호문쿨루스의 활동 시간은 평균 3일.
하지만 새로 태어난 호문쿨루스는 지금 까지 중
가장 높은 마력을 가졌으며, 3일이 지나도 심장이
멈추지 않는다.

이것을 키워서 마녀로 만들 수 있다면, 내 연구는
크게 진전될 것이다.
사람을 마녀로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면,
마녀를 사람으로 되돌리는 방법도 알 수 있을 터.
그러면 저주받은 이 몸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
을 것이다.

감정이 없는 인형에게 마녀의 힘을 쓸 수 없다.
호문쿨루스의 마녀화 계획은 난항을 겪고 있었다.

어느 날, 연구실에 교황이 찾아왔다.
성창교회의 최고 권력자가 무슨 용무인가 했는데
교황은 놀랄 정도로 이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었
다.

생명과 생명의 나무. 마녀와 천사. 마음과 영혼.
그것은 교회가 설파하는 신화 같으면서도 이 세계
의 모습을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게 말하고 있었
다.
이 세계는 신이 만들었다.
우리 안에 영혼이 존재하고, 천상에는 천사가
산다.
유치한 지어낸 이야기지만, 만약 전부 사실이라
면.
신화를 바탕으로 한 완전히 새로운 이론이 구축되
었고, 마침내 그 아이가 마녀의 힘을 발현하였다.

'A.A.'라고 이름 붙여진 그 아이 덕분에 실험은
크게 진척되었다.

마녀란 무엇인가. 영혼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안다는 것은 곧 생명의 비밀을 안다는
것이다.

어느덧 사명도 잊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비인도적인 실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는 지금 세계의 진리에 다가가고 있다.
그 고양감이 사소한 죄책감을 지워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이끌고
실험실로 향하던 중, 갑자기 그 아이가 내 손을
맞잡아 왔다.
내 손의 절반도 안 되는 작은 손은 비현실적으로
갸름해서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고. 하지만
있는 힘껏 내 손가락을 움켜쥐고 있었고.

그때 이해했다.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인형이 아니라
'생명'이었다고.

'박사님, 하늘이란 무엇입니까?'

에이에게 책을 읽게 하고 있는데, 그렇게 물어 왔
다.
연구소를 나가본 적이 없으니 하늘을 모를 것이
다.
사진을 보여줬지만,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하늘은 파랗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들어도
사진만으로는 전해지지 않는다.
푸른 잉크의 집합체를 잠시 바라본 뒤, 실험실 천
장을 올려다보며 '이곳의 하늘은 하얗군요.'하고
신기한 듯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진짜 하늘을 볼 수 있으면 좋겠네.'

'그렇네요'하고, 무감정하게 대답하는 눈동자가 살
짝 흔들렸다.
이 아이에게 하늘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까.

빛을 다루는 마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하늘을
만들 수 있는지 물어보러 갔다.
하늘 사진이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바로 그 책을
가져오게 했다.
연구는 지지부진하여 진척되지 않고 '실험'시간만 늘어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 아이만 생각하고 있었
다.

내 아이를 위해 세계를 멸망시킨다.
그런 책을 읽을 때마다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단 한 명의 목숨과 그 이외의 전 인류.
비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호문쿨루스의 수명은 평균 3일.
1년을 산 에이는 경이적이었지만, 그 기적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그 아이의 목숨을 하루라도 연장시킨다.
오직 그것만을 위해 나는 교황의 '클리파 계획'에
가담했다.
그 결과 세계가 멸망할 줄 알면서도.

생각해던 대로 계획은 성공하고 천사가 강림한다.
7번째 세피라의 수호천사, 사랑의 천사 하니엘

인형으로 만들어진 그 아이에게 사랑의 천사가 깃
든 것은 어떤 아이러니일까.
아니면 인형이기에 있을 수 없는 사랑을 갈구한
걸까.

마녀의 힘은 감정에 따라 좌우된다.
기쁜 일, 즐거운 일에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괴로운 일, 슬픈 일이 더 강한 힘을 보였다.

우리는 많은 보물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가족과의 식사 시간이거나 친구와의 대화
이거나 소중한 사람의 옆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모두 평범한 것이지만, 그중 어느 하나를 잃은 것
만으로도 우리는 슬퍼하며 탄식할 것이다.

만약 그 평범한 보물을 단 하나밖에 가지지 못한
아이가 있다면, 그것을 잃었을 때 얼마나 슬퍼하
겠는가.

바이룬 왕국은 멸망했다.
닿는 것은 모두를 녹으로 바꾸는 폭주한 사랑의 저
주로 인해.

생명의 나무가 얼마만큼의 힘을 줄지, 마녀화된
호문쿨루스가 얼마나 살 수 있을지는 전례가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그 아이와의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
다.

앞으로 10년 일 수도 있고 내일까지 일 수도 있
다.

나는 언젠가 응보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설령 앞으로 아무리 괴로운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고 해도.
설사 이 영혼이 산산이 부서진다 해도.

그 아이가 준 따뜻한 추억을
나는 평생 잊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