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기세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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מלכי-צדק / Melchizedek[1]
1. 개요
2. 어떠한 인물인가
3. 왕과 제사장
4. 예수의 표상
5. 십일조의 유래
6. 미디어


1. 개요[편집]


파일:멜기세덱.jpg
[2]
성경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 성경에서 부르는 호칭은 살렘 왕 멜기세덱.[3] 아브라함이 조카인 롯을 구하기 위해 4개 부족국가 연합군과 싸워 이기고[4] 본진으로 돌아가던 중 그를 만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준 사람이다.

첫 언급은 창세기에서 나온 아브라함의 축복과 관련된 짧은 에피소드이고, 그 이후로는 시편 110편에 '멜기세덱의 서열'[5]라는 말이 나왔다가 히브리서에서 예수를 두고 '멜기세덱의 반차'로 거론하는 것이 전부. 말 그대로 관련 기록이 정말 적은데 너무나도 확신에 찬 어조로 기록되어 있는지라 신학도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사람이다.

2. 어떠한 인물인가[편집]


살렘 왕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였다.

그는 아브람[6]

에게 복을 빌어주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내리소서.

그대의 원수를 그대의 손에 부치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어라." 아브람은 자기가 가진 것 전부에서 10분의 1을 그에게 주었다.

창세기 14장 18-20절(공동번역)

아브라함 시대의 사람이니만큼 당연히 유대교가 창시되기 이전부터 신의 제사장직을 관할하고 있던 것만은 확실한데,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훗날 예루살렘이라 불리게 되는 지역인 살렘 일대를 다스리는 왕이었다고 한다.

당시 배경이 신정일체식 정치가 흔했던 청동기 시대로 여겨지기에 부족국가의 왕이 제사장을 겸임하는 것은 그리 특별한 점이 아니지만,[7] 갑자기 나타나는 인물이면서 성경 전체를 꿰뚫는 핵심이론의 한가운데에 놓여있는지라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큰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시편이나 히브리서에 멜기세덱이 언급되긴 하지만, 멜기세덱의 직접적인 행적은 성경 전체에서 창세기 14장 17-20절 외에는 어디에도 없어 매우 미스터리하고 신비로운 인물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려 했지만, 교인들이 진도를 못 따라가니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푸념도 한다.[8]

3. 왕과 제사장[편집]


소돔고모라를 비롯해 근동 토착국가들은 왕이라는 존재가 이미 존재했고, 멜기세덱의 이름과 행적에서 추측되는 것처럼 신정일치 체제를 채택한 상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유대인들은 모세 때 아론과 그 자손들로 대제사장을, 레위 부족 사람들로 제사 직분자를 세운 이래 여호수아로부터 사사기에 이르는 가나안 진출 시기까지 통치자를 왕으로 칭한 일이 없다. 단 한 번 칭하려고 했던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3년 동안 대권을 장악하는가 싶었지만 맷돌 투척에 뚝배기가 뽀개지고…때문에 왕이라는 가나안발 선진 문물은 백성들의 요구에 의해 사울 때에나 도입이 되고, 이때마저도 사울의 단독 제사 집전을 사무엘이 꾸짖은 예에서 보듯이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는 분리되어 있었다.[9] 이 사건으로 다윗이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 즉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왕으로서 안수를 받는 계기가 마련된다.

유대인의 세계관에서 왕과 제사장이 다시 합쳐지는 일은 신약성경에서 다시 언급된다.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9(공동번역)

베드로는 서신의 수신자들에게 왕 같은 제사장이 이미 되었다는 언급을 하며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사명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예배의 길이 열려 다른 제사장을 거치지 않고도 제사, 즉 예배를 드린다는 점에서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만유의 주재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할 존재로서 신분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멜기세덱은 왕이자 제사장이었고, 예수 그리스도도 그러하며, 예수를 믿는 성도들도 이미 그렇게 되었다는 함의이다. 율법에 예속되지 않은 자유의 신분인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10] 율법 이전의 멜기세덱처럼, 또한 율법주의 시대를 종결하고 오히려 율법을 완성한 예수처럼, 예수 이후의 유대인들은 율법 시대에는 없었던 고귀한 신분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함의를 갖는다.

4. 예수의 표상[편집]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였습니다. 그는 여러 왕들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맞아 축복해 주었고

아브라함은 그에게 모든 전리품의 10분의 1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첫째로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정의의 왕이라는 뜻이고 그 다음 살렘 왕이라는 칭호는 평강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으며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이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서 영원히 사제직을 맡아보는 분입니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대선조인 아브라함까지도 전리품의 10분의 1을 그에게 바쳤습니다.

레위 자손들도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지만 사제직을 맡았기 때문에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수입의 10분의 1을 거둘 수 있는 권한을 율법으로 보장받았습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레위 가문에 속하지 않았는데도 아브라함에게서 수입의 10분의 1을 받았고 하느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다시 말할 것 없이 축복이란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해주는 것입니다.

사제들도 10분의 1을 받고 멜기세덱도 10분의 1을 받았지만 사제들은 언젠가는 죽을 사람들이고 멜기세덱은 성서가 증언하는 바와 같이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말하자면 10분의 1을 받는 레위까지도 아브라함의 손을 거쳐서 멜기세덱에게 10분의 1을 바친 셈입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맞았을 때에 레위가 조상 아브라함의 몸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레위의 사제 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율법을 받았는데 만일 그 사제 제도로 완전해질 수 있었다면 아론의 계통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계통인 또 다른 사제를 세울 필요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사제 제도가 변하면 율법도 변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그분은 레위 지파 아닌 다른 지파에 속한 분이고 그 지파 사람으로서 일찍이 제단 일을 시중든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유다 지파에서 나오신 것은 명백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 지파를 사제직에 관련시켜 말한 일은 한 번도 없습니다.

멜기세덱과 같이 다른 계통의 사제가 나타나셨으니 일은 더욱 명백해졌습니다.

그분이 사제가 되신 것은 인간의 율법의 규정을 따라 되신 것이 아니고 불멸의 생명의 힘을 따라 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에 "너는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영원한 사제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 1-17절(공동번역)

멜기세덱이 성경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가지게 되는 핵심 이유. 히브리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고 하는데, 이는 멜기세덱이 제사장의 직분을 맡던 레위 부족이 생겨나기도 전에 존재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유대교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하나님의 제사장'이야말로 예수의 권위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설명하기에는 가장 좋은 소재였다. 또한 아브라함계 종교에서 멜기세덱을 두고 공통적으로 내리는 평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한 왕이자 제사장'인데, 그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내린다.[11] 이는 예수가 '하나님께서 직접 위임하신 특별한 존재'임을 설명하는 소재가 된다.

또한 아브라함을 축복할 때 일반적인 희생 제사가 아닌 빵과 포도주를 통한 '축사' 형식을 띠었다는 것 또한 특기할 만한 부분인데, 이러한 축사가 제사를 대체하는 축복의 형식으로 보편화된 것은 그 당시는 물론이고 창세기가 기록되고부터도 한참이나 지난 예수의 등장 이후이다. 가족 간이나 종족 국가 간 우호 증진 목적으로 만찬을 나누는 것이야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해도 이를 축복의 범위에서 종교적 해석을 하는 것은 굉장히 신성한 일이었는데, 이렇게 빵과 포도주를 떼어 나누며 축사하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인 유월절 밤에 예수와 12제자들이 가졌던 최후의 만찬과 비교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빵과 포도주로 축복을 빌어주는 장면은 최후의 만찬 빼고는 이 멜기세덱이 한 것밖에 없다.

이와 같은 멜기세덱의 튀는 행보는 아브라함계 종교의 근원인 야훼 신앙이 다른 유목 민족들의 고대 신화를 이리저리 짜깁기해 만들어졌다는 '신화 근원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근거가 되기도 한다. 사실상 성경의 멜기세덱이 최초의 사례이다.

5. 십일조의 유래[편집]


신학도들이 아닌 일반적인 신자들에게 위의 것보다 더욱 친근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 신의 대행자인 멜기세덱이 자신에게 축복을 내린 것을 감사히 여긴 아브라함이 그 대가로 자신이 얻은 소득물 중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바치는데,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 헌금 중 하나인 십일조의 유래가 되었기 때문이다.

십일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해당 문서 참고.

6. 미디어[편집]




  • 소공녀에서는 다락방 생활을 하던 세라 크루가 방에 먼저 있던 쥐를 이렇게 불렀다.

  •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서도 주인공 산티아고가 여행을 떠날 때 그에게 조언과 축복을 해주는 인물로 등장한다. 겉으론 초라한 양치기 노인으로 보이지만 옷 안에 제사장의 황금 흉패를 입고 있었는데 거기 박혀 있던 우림과 툼밈을 산티아고에게 주기도 했다. 이름 및 아브라함에게 조언을 해줬다는 독백으로 보아 구약의 불사자이자 사제왕과 동일인물이 확실시된다. 산티아고가 여행을 떠나도록 격려해준 후, 이 어르신이 혼자서 "저 젊은이는 곧 내 이름도 잊어버릴 텐데…잘 기억하게 좀더 여러 번 말해줄 걸 그랬군, 그랬으면 나중에 자기 무용담을 말할 때 살렘의 왕 멜키세덱을 만난 얘기도 했을 것 아닌가…"라고 중얼거리다가 문득 찔끔해서 하늘에 대고 "아이고 주님, 이게 뭐 큰 허영심도 아니고 노인네가 가끔씩 혼자 우쭐해보고 싶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라고 말하는 장면이 깨알같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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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멜키체덱' 쪽이 조금 더 원 발음에 근접하기에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에서는 멜키체덱이라고 문서를 만들어 놓았다. 또한 한국 천주교가 사용하는 성경에서도 멜키체덱이라고 음역하였다. 그러나 원어로는 '말키세데크(고대 히브리 어)/말키체데크(현대 히브리 어)'이기 때문에 멜키체덱이라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이름보단 익숙한 이름인 멜기세덱으로 표기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따라서 나무위키에서는 개역성경이나 공동번역성서의 음역을 따라 멜기세덱으로 둔다.[2] 왼쪽 하얀 수염이 멜기세덱이다. 검은 수염에 빨간 모자는 아브라함.[3] 히브리 어로 살렘은 평화, 말키는 왕, 체덱은 정의이다. 즉, 평화의 왕이자 정의의 왕이라는 뜻이다.[4] 수메르의 기록에 이것과 매우 흡사한 전투가 기록되어 있으며 거기서 활약한 사람으로 데라의 아들까지 언급하고 있으므로 전투가 있었던 것은 사실로 인정받고 있다.[5] 순번이 있는 성직을 맡았을 때 그 계보와 차례를 의미한다. 해당 시가 기록되었을 당시의 고대 이스라엘 왕국에서도 이미 레위 지파의 제사장 수가 많아져 계보를 따지고 차례를 따져 제사 드리는 순번을 정해 놓았는데,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계보와 차례를 의미한 것이다.[6] 창세기의 이 부분에서 아브람은 아직 하느님에게서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창세기 17,5)을 받기 전이었기 때문에 원래의 이름인 아브람이라고 기록되었다.[7] 한국사에서도 단군왕검이라는 칭호가 신정일체 구조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제로 거론된다.[8] 5장 11절: "이것에 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여러분의 귀가 무디어져서 알아듣도록 설명하기 어렵습니다."[9] 심지어 바빌론 유수에서 풀려나 페르시아의 자치령이 되었을 때까지도 말이다. 느헤미야는 평신도 정치지도자였고 에스라는 신학자였다.[10] 이 성도는 적어도 베드로에겐 유대인들이다. 베드로는 주로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 교를 전파하였기 때문이다.[11] 당연하지만 축복하는 사람이 축복을 받는 사람보다 지위가 높다고 봐야 한다. 히브리서에서도 (7장) 7절을 통해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