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브라질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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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
2.2. 19세기
2.3. 20세기
2.4. 21세기
3. 문화 교류
4. 교통 교류
5. 대사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멕시코브라질의 관계. 양국은 스페인어/포르투갈어를 쓰는 이베리아 반도 가톨릭 문화권이라 언어, 문화, 종교에서 매우 가깝고 항공노선이 연결되어 있어서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19세기 이전[편집]


과거에 멕시코 지역은 멕시코 고원을 중심으로 아즈텍 문명이 발달하고 유카탄 반도마야 문명이 발달했으며 북부 멕시코와 미국 남서부에는 아즈텍의 조공국 치치멕이 있었다. 아즈텍/치치멕 문명과 마야 문명은 교류가 활발히 진행된 반면 브라질 지역은 인구가 희박한 아마조니아 정글이 대부분이라 포르투갈인들의 정복 이전에는 토착민들을 중심으로 문명이 일부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발달되지 못했다.

대항해시대스페인인포르투갈인아메리카 지역을 발견한 뒤에 양국의 콘키스타도르들이 각각 이 땅들을 정복했다. 먼저 에르난 코르테스후안 폰세 데 레온, 에르난도 데 소토 등이 북아메리카를 정복하였으며 브라질도 포르투갈의 탐험가 카브랄이 발견한 후 콘키스타도르들이 도착해서 내륙 각지를 정복하고 투피족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접촉하고 정복해 갔으며 이때 포르투갈의 개척자들을 반데이란테스라 불렀다. 이들은 포르투갈계 브라질인들의 선조들이 되었고 노예로 데려온 흑인이나 인디언과 혼혈화되었는데 이들은 군인, 상인 등으로 거의 다 남자였기 때문이다. 북아메리카 플리머스나 버지니아 등에 정착한 영국계 미국인들이 가족 단위로 온 것과는 달랐다.

에르난 코르테스는 아즈텍 제국의 지배를 받던 다른 민족들의 도움을 받아 아즈텍 제국을 정복했다. 그리고 에르난도 데 소토나 후안 폰세 데 레온, 바스코 데 발보아 등에 의해 북부 멕시코와 미국 남부도 서서히 스페인의 영향권에 들어왔다. 반면 아즈텍/마야 등이 있던 멕시코 지역과 달리 브라질 지역은 강력한 문명이 생기지 않다보니 포르투갈인들은 브라질 지역을 차지한 뒤에 북동부 지역에 정착지를 세웠다.

이후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간에 아메리카를 두고 갈등이 생길 뻔 했다가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근거해 아메리카의 대부분 지역[1]은 스페인이 차지하고 브라질은 포르투갈이 차지하는 것으로 되었다. 흔히 사람들이 스페인은 미대륙, 포르투갈은 동양으로 합의한 걸로 아는 조약이 이 조약이다.[2]

이베리아 연합때에는 잠시 양 지역은 통합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정확히는 펠리페 2세가 포르투갈 왕을 겸임했으며 이 때 브라질 등 포르투갈령도 간접적이나마 스페인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양측 식민지는 각자 인구교환 비슷한 게 일어나 스페인인들이 브라질 남부로 유입되고 반대로 포르투갈인들이 내륙 깊숙히 뻗어나가고 남하해서 팜파스로 들어가거나 미국 남서부 및 플로리다에 유입되며 오늘날 브라질 영토가 대충 확보된 것이다. 스페인 정복 뒤에 멕시코와 미국 남서부 지역은 누에바에스파냐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이베리아 연합이 다시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으로 나뉘어진 뒤엔 멕시코 지역은 스페인령, 브라질 지역은 포르투갈령으로 나뉘어지면서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물론 이미 들어온 이주민들의 영향이 있어서 이미 아르헨티나의 코리엔테스, 살타 등의 지방이나 현재 우루과이인 사스플라티나, 페루 아마존 등에는 포르투갈 이주민들이 들어와 있었고 남부 브라질에 스페인계 브라질인의 기원 중 하나에 해당하는 가우초라는 그룹이 생겨버렸다.


2.2. 19세기[편집]


미국이 독립혁명으로 독립하자 이후 19세기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지역들에서 독립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1810년대부터 멕시코 지역에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스페인군이 독립 움직임을 진압 및 탄압하면서 독립열기가 거세졌다. 결국에 멕시코는 스페인에서 독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다른 아메리카 국가들을 자극한지라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던 브라질도 19세기에 포르투갈 왕국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원래 브라질에는 포르투갈의 브라간사 왕가가 피난온 상태였으나 왕가가 다시 분열되어 돔 페드루 2세가 귀국을 거부하고 브라질 제국을 선포하며 스페인 식민지로 소규모라 방어가 허약하던 사스플라티나까지 정복해 복속시켰다. 이후 아르헨티나의 도움으로 독립할 때까지 우루과이는 브라질의 지배를 받았다.[3] 그러나 사스플라티나는 이미 스페인어권에 속해 브라질과는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결국 독립해 우루과이가 되었다.

이후 양국은 19세기에 독립 후 공식적으로 수교했다. 브라질이 이웃 서어권 국가들과 투닥거렸을 때도 멕시코는 서어권이지만 북아메리카 국가로서 너무 위치가 터무니없이 먼 곳이라 굳이 브라질과 못 지낼건 없었다.

양국은 각각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처음에 황제가 통치하던 제국으로 독립한 점이 공통점이 되었다. 멕시코 제국은 스페인에서 독립한 뒤에 중앙아메리카 지역의 다른 국가들을 1821년 ~ 1823년까지 지배한 적이 있었다. 브라질 제국도 19세기말까지 존재했지만 이후 군부 쿠데타로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되었다.


2.3. 20세기[편집]


멕시코브라질은 이후 1,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편을 들었으며 친서방화되었다. 멕시코는 이웃 초강대국 미국에게 북부 지역을 대거 미멕전쟁으로 빼앗기고 이후 미국에 굴복했으며 브라질은 2차대전 이전까지는 미국보다는 영국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2차대전 이후에는 브라질 역시 플랜테이션에서 미국 기업들이 싼값에 노동자들을 부려먹거나 친미 정부를 위해 쿠데타를 지원하는 등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양국은 이후로도 서방세계와 가까워서 제1세계에 밀착해 냉전 당시에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미국도 브라질과 멕시코에 영향력을 줬지만 악영향까지 주고 받았다. 특히 정치적으로 미국의 간섭을 받으면서 멕시코와 브라질은 반미 감정이 생기기도 했다. 오늘날엔 많이 희석되었으나 여전히 멕시코인들은 미국을 못마땅해하며 미국이 싫지만 당장 힘이 없다며 반감을 감추지 않는다.


2.4. 21세기[편집]


양국은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다. 사실 거리가 꽤 멀어 별로 적대할 건덕지 같은 게 없었으며 같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기원한 국가들로서 친밀감을 느끼는 편이다. 양국은 언어, 문화, 종교에서 공통점이 있고 양국을 잇는 노선도 활발한 편이다. 그 외에도 양국은 미주기구,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 라틴 연합의 정회원국에 가입되어 있다.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의 경우 애초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라틴아메리카 각 국가와 소통을 활발히하여 미국의 안마당화된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목적에서 조직한 것이었기에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브라질 역시 이 회의에 참여하며 이웃 남아메리카 각 국가들과 현안에 대해 협력을 논의한다.

하지만 우호적인 면 외에 상임이사국 문제로 갈등이 있다. 브라질이 상임이사국에 진출할려고 하자 멕시코는 다른 스페인어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함께 브라질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한다. 이유는 스페인어도 안 쓰는 주제에 뭔 자격으로 라틴아메리카를 지들이 대표하냐라는 신경전이며 브라질과 외교관계가 안 좋은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페루 등의 이웃나라들은 대놓고 브라질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방해하려고 커피클럽에 가담했다. 여기에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방해하려는 대한민국, 중국, 대만, 러시아 그리고 독일에게 딴지를 거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폴란드, 러시아, 터키 등이 커피클럽에 가입하고 인도의 적국 파키스탄까지 가담해 하나의 세력화가 되어버려서 결국 일본, 독일, 브라질, 인도는 사이좋게 상임이사국 진출이 무산되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 때문이었다. 이후 브라질이 자신들의 상임이사국행을 방해한 타 남미 국가들에게 눈을 흘기게 되었다. 물론 상임이사국 문제가 쉰 떡밥이 된 현재는 브라질과 타 남미국가들간 관계가 개선되었다.

그리고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를 둘러싼 신경전을 벌이던 1995년 멕시코는 브라질의 이웃 앙숙인 아르헨티나, 페루, 콜롬비아, 우루과이 등과 함께 한국을 지지했으며 브라질은 칠레, 파라과이를 끌어들여 일본을 지지했다. 일본 편을 들던 펠레와 한국 편을 들며 친선경기까지 가진 디에고 마라도나가 날카로운 대립을 하였다. 결국 1996년 한일 공동개최로 확정되며 병림픽을 피하고 한일 양국간 손님맞이를 위한 선의의 경쟁과 협력을 하게 되었다. 한국인의 단기방문용 일본 무비자가 당장 이 대회를 전후로 실시되었다.

예전에 브라질인들이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미국 정부의 압력을 받은 멕시코 정부가 브라질인들에 대한 관광비자 요건을 재검토한 뒤에 실시하자 밀입국하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다.# 현재는 브라질에서는 들어가기 힘든 미국으로 가기보다는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으로들 가거나 아직 이민에 관대한 호주, 뉴질랜드로 간다.

브라질과 멕시코가 자동차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3. 문화 교류[편집]


스페인어포르투갈어는 같은 이베로로망스어로 거의 엇비슷하여 서로가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는 것도 좀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지만 가능하다.[4][5] 브라질내에서 스페인어는 제1외국어로 지정되어 있어서 양국간 문화교류가 활발하다.

한편 양국은 축구강국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유독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렇다할 월드컵 전적이 없는지라 저평가되지만 멕시코는 강호 킬러라 불리는 다크호스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발목을 여러번 잡았다. 월드컵에서야 브라질이 늘 멕시코를 이겨왔으나 친선경기나 코파아메리카, 올림픽 축구, 청소년 월드컵 등에서는 브라질이 방심하다가 멕시코에 발목을 여러번 잡혔다. 멕시코는 그 외에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도 여러번 괴롭혀왔다.[6]


4. 교통 교류[편집]


양국을 잇는 항공노선이 존재한다. 아에로멕시코멕시코시티 국제공항-상파울루 간 노선은 대한민국에서 브라질을 갈 때 경유편으로 유용히 활용된다. 기존에 경유지였던 중동, 미국, 유럽 노선보다 더 간편하며 특히 중동 노선보다 시간이 더 절약된다.

멕시코 정부가 중남미인들에 대한 비자규정을 강화하면서 브라질인들에 대한 무비자정책을 중단했다.#

5. 대사관[편집]


멕시코 시티에 주 멕시코 브라질 대사관, 브라질리아에 주 브라질 멕시코 대사관이 존재한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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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서부/남부+라틴아메리카 대부분[2] 이 조약으로 중국 대륙 남부에 위치한 귀통이 섬이던 마카오가 포르투갈령이 되었다. 마카오는 현재 주강의 토사 퇴적때문에 반도화되었으나 원래는 섬이었다. 그리고 인도 해안지대의 여러 지역 역시 포르투갈 세력에 들어와 캘리컷과 고아 등이 포르투갈령이 되었으며 나가사키에도 포르투갈 예수회 선교사들이 들어왔다. 이들에 의해 일본에 조총이 전래된다.[3] 우루과이도 독립영웅 호세 아르가티스가 스페인으로부터 봉기했으나 브라질 제국군이 스페인군을 알아서 몰아내서 독립에 실패했고 아르헨티나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르헨티나가 브라질을 두들겨 팬 후 우루과이가 독립할 수 있었다.[4] 단어 등이 겹치는 게 많으며 나머지는 대게 엇비슷해 치환이 가능하다. 오죽하면 멕시코에서는 브라질에서 온 교수의 강의는 통역없이 진행하며 반대로 브라질 대학에서 스페인어권 국가 교수의 강의는 통역없이 진행된다.[5] 비정상회담에서도 브라질 패널인 카를로스 고리토와 멕시코 패널인 크리스티안 부르고스가 각자 자국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장면이 나왔다.[6] 사실 멕시코 축구가 한국에서 저평가되는건 프로리그의 임팩트가 없어서 그런게 크다. 아메리카 대륙 전체로는 분명 멕시코 리그도 훌륭하지만 이렇다할 세계구급 구단이 없다. 이는 브라질도 마찬가지라 생각보다 브라질 프로축구는 한국에서 저평가된다. 물론 브라질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굳이 자국리그가 아니라 유럽 등에서 뛰어서 그런 면도 있다.[7] 멕시코는 브라질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