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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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 왕실은 유대인의 이민을 엄격히 금지했고 지속적으로 이민금지령을 공포했다. 그러나 이런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돈으로 면제부를 살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에 갈 수 있었다. 스페인 왕실이 이렇게 주기적으로 이민 금지와 허용을 반복한 것은 스페인 왕실의 재정 수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스페인 왕실이 이민 규정을 강화할 때마다 유대인 신분을 세탁할 증명서의 값도 상승했고 이에 따라 국고 수입도 늘어갔다. 이런 점에서, 당시 유대인의 이민은 전적으로 국왕의 손에 달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군인, 선원 그리고 종들은 이런 증명서가 없이도 스페인을 떠날 수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런 직업으로 바꿔 신세계에 갈 수 있었다. 한편, 많은 수의 유대인 후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스페인식으로 개명한 , 16세기 중반 누에바에스파냐에 정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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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포르투갈 출신의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누에바에스파냐의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당시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스페인의 포르투갈 합병(1580~1640)으로 야기된 유대인 박해를 피해 도망쳐 온 포르투갈 유대인들로서, 이들 대부분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및 누에바에스파냐에 거주하고 있었다. 포르투갈 유대인들은 여러 분야에서 상업 활동을 했었는데 이들로 인해 누에바에스파냐에 살았던 유대인들의 직업은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라이킨 엘킨이 언급한것을 보면, 이들이 지녔던 직업이나 종사했던 일은 상인, 탄광 소유자, 배 목수, 고기 납품업자, 승려, 장의사, 울타리 장인, 신발 제조업자, 행상인, 목수, 광부, 재단사, 참모, 여관주인, 앙돈업자, 약제사, 성직자, 공공서기관, 과자제조인, 중국과의 무역상인, 도미니크 교단 수도사, 아프리카 노예상인, 비서, 시장, 사탕공장주, 의사, 군인, 주교대리, 목축판매업자, 농민, 은세공인, 가게주인, 마술사, 직공, 보석상, 아시엔다 소유자, 치안 책임자 등이었다(2014: 8). 당시, 포르투갈 유대인들이 대규모적으로 종사했던 분야는 노예무역이나 갤리언 무역과 같은 국제 해양 무역이었다(Quiroz, 1986: 244). 이런 무역은 스페인의 새로운 경제정책에서 나온 것으로서 대서양이나 태평양을 통한 이런 국제무역 시스템에 가장 적응을 잘 했던 사람들이 바로 이 포르투갈 유대인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멕시코 유대인 이민과 종교재판 - 식민시기 초기 누에바에스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