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 메드베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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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및 역임한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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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방 제3대 대통령
드미트리 아나톨리예비치 메드베데프[1]
Дми́трий Анато́льевич Медве́дев
Dmitry Anatolyevich Medvedev

파일:Дми́трий_Анато́льевич_Медве́дев.jpg
출생
1965년 9월 14일 (58세)
소련 러시아 SFSR 레닌그라드 연방시
(現 러시아 북서 연방관구 상트페테르부르크 연방시)
현직
통합 러시아 대표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재임기간
제3대 대통령
2008년 5월 7일 ~ 2012년 5월 7일
제11대 총리
2012년 5월 8일 ~ 2020년 1월 15일
서명
파일: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서명.svg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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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아나톨리 아파나셰비치 메드베데프
어머니 멜라냐 바실리예브나 코발레바
배우자
스베틀라나 블라디미로브나 메드베데바[1]
자녀
장남 일리야 드미트리예비치 메드베데프
학력
레닌그라드 대학교 (법학 / 석사)
종교
러시아 정교회
신체
168cm[2]
소속 정당



1. 개요
2. 생애
3. 위상
4. 여담
4.1. 애호 기질
5. 앞날
5.1. 푸틴에게 반기를 든다면?
5.2. 푸틴의 은퇴 또는 사망 이후
6. 선거 이력
7. 소속 정당



1. 개요[편집]


러시아 연방의 정치인. 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2]

블라디미르 푸틴의 최측근으로, 푸틴의 후광으로 총리대통령 등을 역임하며 정권의 2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후배로, 푸틴의 보좌관, 선대위원장, 대통령비서실장, 부총리 등을 거쳐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제3대 러시아 연방 대통령을 지냈다. 2012년 푸틴이 다시 대통령에 취임한 후부터 2020년까지 총리를 역임했다. 2020년 1월 15일에 푸틴의 국정 동력을 새롭게 확보하자는 명분 하에 내각총사퇴를 결의한 뒤 신설된 국가안보회의의 부의장이 되었다. 영상(JTBC).


2. 생애[편집]


1965년 레닌그라드 연방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아나톨리 메드베데프와 멜라냐 코발레바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1982년 레닌그라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법학언어학을 공부했다. 1987년 법학부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 입학했고, 지도교수로 아나톨리 솝차크[3] 교수 밑에서 공부하게 되면서 같은 교수 밑에서 수학했던 블라디미르 푸틴과 선후배로 친분을 쌓게 되었다.[4] 1990년 민법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공직 및 기업 활동과 병행하면서 1999년까지 동 대학에서 강사로 민법 등을 강의했다.

1991년 러시아 8월 쿠데타 이후 푸틴은 KGB를 나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청 공무원으로 옮겼는데, 메드베데프는 1992년 푸틴과 같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청 공무원으로 입직하여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3년 푸틴과 메드베데프는 대학 시절 지도교수의 중재의형제 관계를 맺고 같은 한 배를 타게 된다. 1993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목재 기업 Ilim Pulp Enterprise (ILP)의 법률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이후 ILP는 러시아에서 급성장했고, 메드베데프는 본격적으로 공직활동에 투신하던 1999년 ILP 보유 주식을 비공개 매각했다. 1996년에는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을 도와 보리스 옐친 대선 캠프에서 일했다.

1999년 보리스 옐친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푸틴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면서 푸틴의 발탁으로 대통령비서실 제1차장이 되었다. 이후 2000년 대선에는 푸틴의 대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푸틴의 대통령 당선의 공신이 되었다.

푸틴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러시아의 국영 천연 가스 개발 기업인 가즈프롬 이사장이 되어 대통령이 되는 2008년까지 재직하였다. 2003년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고, 2005년제1부총리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내각실세로 등극했다.

2008년 3월 2일 치러진 대선에서 70.2%의 득표율로 당선돼 대통령에 취임했다. 취임 후에 여전히 푸틴이 러시아의 흑막으로 맘껏 쥐락펴락 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정치적인 영향력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하게 되지만 독자 노선을 타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것이 보인다. 2012년대선에 나온다고 선언한 푸틴을 견제하는 움직임으로, 한동안 푸틴이 뭐라고 하든 그에 반하는 말[5]만 해서 관련 뉴스가 올라올 때마다 임기를 마친 후의 그의 신변이 걱정된다는 한국 네티즌들도 있다.[6]

하지만, 메드베데프 본인의 입장에서는 푸틴에게 도전할 이유가 크게 없으므로, 계속 푸틴의 보좌역 노릇은 할 것으로 보인다. 최고 권력자의 옆에 있으면서, 최고 권력자에 준하는 권력명예를 마음껏 누릴 수 있고, 정치적으로도 큰 책임을 질 필요도 없으니 제일 속 편한 입장일지도. 일부에선 위 발언들도 푸틴이 독재자가 아니고 엄연히 견제도 받고 비판도 받는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메드베데프와 짜고 친 거 아니냐는 추정도 한다.

파일:external/cdn1.pri.org/RTXVL1T_0.jpg
사진은 폴란드 바르샤바대통령궁에서 열린 공식 만찬 행사에 참석해 건배를 하고있는 모습이다.

러시아 내에서도 푸틴의 카리스마에 눌려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다. 아직도 그의 사진보다는 푸틴의 사진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사실. 그러나 드미트리 역시 진보진영 젊은 층들과 푸틴까들에게 매니악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 푸틴만큼의 쇼맨십은 없어서 대중에 각인되기엔 다소 무리이며, 메드베데프 지지자들 중에는 사실 그저 푸틴이 아니라서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지하는 경향도 다소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의 야당 중 하나인 공정 러시아은 푸틴에는 표면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메드베데프에게는 호감을 표하며 그의 정책을 지지했다.

파일:external/i.telegraph.co.uk/Medvedev-Putin_2041971b.jpg
메드베데프와 푸틴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어차피 메드베데프 본인이 푸틴의 심복이므로 전혀 이상할게 없어보이지만, 문제는 이 사진이 촬영됐을 당시 메드베데프는 대통령이었고 푸틴은 총리였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총리가 김종필급이 아닌 이상 경질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 당시에도 푸틴이 실권자였고 동시에 메드베데프 본인이 푸틴의 심복격 되는 인물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2010년 8월 13일, 트위터파블롭스크 실험국 관련 사안에 검토 지시를 내렸음을 알렸고#, 결국 2012년 4월 푸틴 행정부에서 해당 시설의 보존을 명령했다.

다들 을 모아서 2012년에 연임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이유는 외모적인 요건마저도 러시아가 선호하는 리더상이 아니라는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물론 푸틴이 러시아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는 것 하나만 봐도 열세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2011년 9월 25일 열린 러시아 집권당인 통합 러시아의 연례 전당대회에서, 2012년 3월에 있을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에 자신이 출마하지 않고 푸틴을 추대할 것임을 공식 발표했다.[7] 푸틴도 이에 화답하여 메드베데프를 총리로 재기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사

그리고, 총선에서 푸틴이 60%의 지지율을 확보하면서 어렵지않게 대통령직에 복귀. 메드베데프 본인의 향후거취는 불명이다. 떠나면서 푸틴이 잡아넣은 범죄자 석방 요구를 하는 나름대로의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는데, 분석에 따라서는 푸틴에게 반항하는게 아니라 푸틴 반대파 달래기용 립서비스라는 분석도 많다.

2011년 2월 9일, 쿠릴 열도 분쟁에 대한 대응으로 주둔군의 장비를 전부 최신의 것로 교체하는 행보를 보여 일본과의 마찰을 빚었다. 러시아 극우 세력들의 압도적인 지지와, 이로 인해 우러나올 선거 결과를 의식한 짓이라며 일본에서는 가루가 되도록 까고 있다. 그런데, 사실 과거 비슷한 행동을 보여준 푸틴의 전례를 보면 이것도 역시 푸틴의 지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푸틴도 해당 발언이 발표된 직후 대놓고 메드베데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결국 2012년 5월 7일, 푸틴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고 푸틴에게 총리로 지명되었다가 하루 뒤인 8일에 총리 임명이 승인되어, 안방마님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16년 8월, 러시아 교사들의 월급과 관련한 실언을 해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간담회에 참석해 '선생과 대학 초임 교수들이 경찰관의 5분의 1 수준인 1만 루블(약 17만 ) 정도의 월급밖에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 "을 더 벌기 위해선 부업을 하라"'는 답변과 함께 선생은 천직이라며 만일 돈을 벌길 원하면 사업가로 전업하는 게 나을 것이란 말을 덧붙인 것.

교사의 고충을 무시하는 발언에 비난을 받게 되었고 총리직 사퇴를 요구하는 청원이 빗발치고 있다. 청원서에는 게재 첫날에만 16만 명이 서명했고 그 후 26만 명 이상으로 늘어나 총리 사퇴 압박이 높아졌으나 결국 유야무야 됐다.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폭로에 의해 어마어마한 부정축재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내용인 즉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저택, 부모 고향의 거대 농원, 소치의 초호화 별장 흑해 연안과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와이너리, 호화 요트등을 대학 동창, 친인척 명의의 재단을 통해 소유하고 있는데 이 재단의 부동산 매입 자금이 러시아 거대 재벌들인 올리가르히들로부터 나왔다는 것. 이 폭로 때문에 2017년 3월 러시아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대저택 연못 한가운데에 오리집이 있다는 보도 때문에 시위 현장에 러버덕이 등장하기도 했다.

2019년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에서 니콜라스 마두로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일본과의 영토 분쟁 지역인 쿠릴 열도의 4개 중에 이투루프 섬을 방문하기도 했다.

2020년 1월 15일에 자신의 총리직 사퇴 및 내각총사퇴 의사를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곧바로 사표를 수리했다. 다만 통합 러시아 당수 직은 계속 유지하기로 하였다.#

메르베데프를 비롯한 내각총사퇴는 푸틴이 자르고 싶어서 자른게 아니였다. 메르베데프는 푸틴으로서도 신뢰하는 인물이며 때문에 자신에게 충실한 메르베데프를 굳이 내칠 이유는 없었다. 이유는 알렉세이 나발니가 유튜브에 메드베데프의 부정축재를 고발하는 영상을 올리며 메르데베프의 막대한 재산 축재를 폭로했기 때문.# 이후 30%대의 비교적 낮은 지지율을 보이며 여론 악화가 보이자 푸틴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셈이다.[8]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직을 맡고 있으면서 가장 극단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초강경파로 인식되고 있다. 허구헌날 핵무기 타령을 일삼고 있으며, 서방이 러시아 분열을 획책하면 인류가 종말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2022년 말에는 사람들은 기상천외한 새해전망을 하길 좋아한다며 조롱조로 23년에는 유럽연합이 해체되고 제2 미국 내전이 발발하며 일론 머스크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2023년 2월 7일 뉴스위크의 보도에 따르면 자신의 텔레그램에 # 우크라이나가 한국 전쟁에서의 휴전선처럼 휴전하는 시나리오를 고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의 올렉시 다닐로프 NSC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가짜 뉴스라고 반박했다.

3. 위상[편집]


파일:external/www.freakingnews.com/Dmitry-Medvedev.jpg
파일:external/i.telegraph.co.uk/dolls_2009841c.jpg

푸틴의 바지사장이자 허수아비인 그의 정치적 위치를 잘 보여주는 합성 사진.

블라디미르 푸틴과는 상반되는 부드럽고 엘리트한 이미지로 한국 웹상에서는 바지사장 등으로 불리고 있다. 외국 웹에서는 '로빈'으로 통일.[9]

심지어 재무장관 '알렉세이 레오니도비치 쿠드린'이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비판하자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그럼 사표 쓰든가 라고 했는데 쿠드린은 푸틴 총리하고 상의해보고 결정한다고 해서 메드베데프가 제대로 화난 일도 있었다.기사 동영상 그리고 쿠드린은 경질. 아무리 메드베데프가 바지사장 이미지라 해도, 당시 메드베데프는 엄연히 러시아 연방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통령 입장인 메드베데프로서는 당연히 격분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본인의 핵심 인사들끼리의 싸움에 침묵하던 푸틴은 결국 내각 회의에서 "지금은 온 나라가 아주 긴 선거운동과 논쟁의 시기에 들어섰다"면서 "모두가 새로운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기강과 책임감을 높이길 바란다"고 하면서 수습에 들어가며 이같은 결정은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조율된 것이며 공통의 결정#이라고 하며 메르베데프의 결정에 공개지지를 표명하며 갈등을 수습했다. 그렇다고 푸틴이 쿠드린을 내친것도 절대 아니다. 단지 이번 갈등에서는 메르베데프의 손을 들어주면서 추가 갈등을 더이상하지 말라고 교통정리를 한 것이다. 실제로 쿠드린 본인도 이후 차기 정권 잔류 의사를 밝히면서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고# 경질된 이후에는 푸틴에 의해 2018년 감사원장으로 발탁되고 # 2022년 현재도 계속 일하고 있다.

대통령 퇴임 이후에는 권력을 잃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여전히 푸틴의 신임을 받고 있음을 입증하듯 통합 러시아당 당수로 임명되었고, 푸틴의 뒤를 이은 2인자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푸틴보다도 여러 발언을 많이 쏟아내어 기존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많이 손상되었다.[10] 그러나 그의 이러한 실언들은 그가 한직으로 좌천된 이후, 만약 전쟁이 끝난다면 책임 돌리기 용으로 자신이 정치적으로 숙청 됨은 물론, 생명까지 위태로울 것을 느꼈기에 발악이라도 해보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푸틴에 의해 버려진 이후 상식적으로 전혀 말이 안 되는 발언들을 쏟아낸 것을 본다면.


4. 여담[편집]




  • 파일:external/hljfb.dbw.cn/ArtImg71461.jpg

GQ 재팬에서 베스트 드레서 20에 선정되기도 했다. 실제로 특히 정장을 매우 세련되게 입는 편이다.


  • 국내 웹상에서는, 왠지 메드데프가 아닌 메드데프로도 많이 통하는 것 같다. 단순히 외국어 발음을 한국어 발음으로 옮김으로서 오는 발음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이름 자체를 잘못 부르는 것이니 시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반대로 치면 러시아 사람문재인 대통령을 문대인 대통령이라고 부르는것과 같은 일이니까.



  • 자기 전에 늘 한 시간씩 수영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잠자리에 늦게 들어야 한다고 해도 자기 전에 하는 이 수영을 거르는 일은 없다고 한다.

  • 모스크바 대학에 방문했을 때 홍차초코파이를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2010 G20 정상회담 때 한국을 찾아왔을 때도 수행원들과 함께 초코파이를 워낙 잘 먹어서 청와대 측에서 부랴부랴 인근 마트에서 새로 공수해왔다는 이야기도 있는 걸 보면 초코파이가 입맛에 맞는 모양.
파일:attachment/초코파이/초코베데프.jpg

  •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의 모습(통합 러시아당 당수 시절)을 보면 대통령 재임 시절에 비해 나이가 많이 들었다. 60을 향해가는 나이이니 당연한 것이지만.

  • 외모 때문에 부드러운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라브로프 등과 함께 푸틴 이상의 초강경 내셔널리스트이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로는 이러한 성향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


4.1. 애호 기질[편집]


덕력잉여력은 남달라서 트위터는 이틀에 한번 꼴로 업데이트되며, 엘튼 존의 공연에 다녀왔다고 인증한 적까지 있다[11]. G20 건으로 대한민국에 방문했을 때 삼성전자갤럭시 탭을 선물받아서 후기를 올렸으나 썩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덕분에 한국에선 잠깐 난리가 났다.

파일:external/static-ssl.businessinsider.com/dmitry-medvedev-photographed-with-steve-jobs-in-2010.jpg
거기다가 엘튼 존 공연 인증을 올릴 때 iPhone으로 한 걸 보면...

사진 덕후로 유명하며, 특히 라이카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었다. 라이카는 풀프레임 DRF M9과 라이카 중형카메라를 쓴다. 캐논 플래그십 바디인 1DX나 캐논 5D, 니콘 제품도 쓰는 모습이 찍혔다. 이 중 라이카 중형 카메라는, 렌즈를 조금만 구성해도 억 단위까지 찍히며 1DX와 같은 바디도 수백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카메라다. 이 정도면 돈이 많아서 그냥 찍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찍어서 인스타에 올린 사진들을 보면 실력이 꽤 뛰어나다. 거의 사진 작가라 할 정도다.유튜브 링크 옆의 유튜브 링크는 2010년, 그러니까 대통령 재임 중에 개최한 사진전이지만, 2014년2015년에도 일정을 소화하면서 찍은 사진들로 사진전을 추가로 열었다. 2015년부터는 매년 개최(외국에서도 추진)를 목표로 한단다.

거기다가, 소련 시절에 금지되었던 음악 덕후인지라 몰래몰래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등을 즐겨들었고 그의 딥 퍼플 사랑은 유명하다. 심지어, 2008년 선거날에 모 밴드붉은 광장에서 공연하는데, 푸틴과 함께 무대에서 같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5. 앞날[편집]


총리직은 내려놓았지만 아직 당수를 맡고 있어서 권력은 유지 중이다. 하지만 이후 어찌될지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5.1. 푸틴에게 반기를 든다면?[편집]


애초에 메드베데프 본인이 푸틴의 핵심 참모격 인물인지라 그럴 가능성이 전무하기는 하지만 일단 진심으로 반기를 든다면 결론부터 말하자면 러시아 버전 윤필용 신세가 될 것이다. 대통령을 지냈다 한들 그건 연속 3선을 금지하는 러시아 헌법 때문에 잠시 대통령 자리를 지키는 역할로 앉혀두었던 것이지 당시에도 러시아의 실질적 권력자는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물론 당장 쫓겨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수족들이 대거 숙청당하는 모습을 꼼짝도 못하고 지켜봐야만 할 것이고 망명이라는 선택지 밖에 남지 않는다. 이 문서를 쭉 읽어보았다면 잘 알겠지만 러시아는 민주주의 체제의 탈을 쓴 독재국가이다. 이런 특성상 최고 권력자는 바로 독재자 그 자신인데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이란 직위만 믿고 푸틴의 지위에 도전을 하려 든다면? 러시아판 윤필용 사건 찍을 일 있을까? 그리고 실제로 메드베데프는 대통령 임기 동안 일부 정책에 있어서 푸틴과는 어느 정도 다른 정책을 쓴 적도 있었지만 대체로 푸틴에게 크게 각을 세우지 않았다.

이 인간이 누구 덕분에 총리도 해보고 대통령도 해봤는지를 알고 있다면 그가 없는 이상 이 인간은 그저 펑크난 풍선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푸틴에게 반항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스스로 자신의 근본을 뿌리째 뽑는 꼴이 되는 것이다.

만약 실권을 가지고 싶다면 푸틴이 죽을 때까지 2인자 자리에서 만족하면서 푸틴 사후를 기대해보는 게 그나마 가장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어차피 푸틴에게 개기지 않는 이상 2인자로서의 위치 정도는 충분히 보장될 테고 푸틴 사후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으니까 굳이 푸틴과 척을 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드베데프의 현실상 푸틴의 이름에 의존해야 자신도 푸틴처럼 안전하게 권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푸틴과 메드베데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같은 고향의 의형제이자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법학과 선후배 관계로, 매우 밀접하다고 볼 수 있다. 학연 지연 반혈연 트리플크라운 전쟁으로 인해 형을 잃어서 형제가 없는[12] 푸틴 입장에서는 조용한 성격의 메드베데프가 살벌한 러시아 정계에서 조금이라도 친동생처럼 보였을 가능성도 높고, 푸틴이 후계자를 고를 때 실로비키 측근보다도 오히려 온화한 엘리트 이미지의 메드베데프를 선호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메드베데프 입장에서도 정책 부분에서 가끔씩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푸틴의 정책을 충실히 따른다면 본인도 자신의 발언력과 푸틴의 후광을 동시에 입기 때문에 손해 볼 일은 없다.


5.2. 푸틴의 은퇴 또는 사망 이후[편집]


하지만 푸틴이 나이가 들어 은퇴하거나 또는 죽을 때까지 종신집권[13]하다가 사망한 이후에는 '실로비키'라고 불리는 KGB 출신 푸틴의 이너 서클 멤버들과 피터지게 싸울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은 푸틴이 살아있어서 본격적으로 권력 투쟁을 하지는 않고[14] 일단 공식적으로는 메드베데프가 2인자이지만, KGB 출신 인물들에게 푸틴이 엄청난 권력을 몰아준 것도 사실이다. 푸틴이 퇴진 또는 사망한다고 이들이 메드베데프가 정권을 장악하는 것을 가만히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로비키는 결집이 잘 되는 편인데 반해 메드베데프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제대로 결집이 안 된다. 정보기관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실로비키와 다르게 법조인, 경제관료, 기업인 등 출신이 제각각이라 의견이 안 맞는 듯하다. 대표적으로 알렉세이 쿠드린[15]이 메드베데프에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상황이다. 결국 푸틴 사후 혹은 퇴진 후에 메드베데프에게는 험난한 권력투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만 2016년 현재, 러시아 국방장관세르게이 쇼이구를 임명한 장본인이 메드베데프이고 실제로 쇼이구 자체가 중도파라서 실로비키들에 대항할 나름대로의 견제력은 가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메드베데프가 권력 투쟁을 승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통치력인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푸틴과는 달리 메드베데프는 통치력이 푸틴에 한참 못미친다. 결국 푸틴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푸틴의 이름에 어느 정도 의존해야 될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나, 절대적인 존재감이 있는 인물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이름에 의존하는, 이른바 '이름정치'가 존재하기 마련이다.[16] 만약 푸틴이 사라질 경우 메드베데프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면 푸틴의 이름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6.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8
러시아 연방 대통령 선거
러시아 연방

[[무소속|
무소속
]]

52,530,712 (71.2%)
당선 (1위)
초선


7.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소련 공산당|
]]

? - 1991
입당

[[무소속|
무소속
]]

1991 - 2011
정계 입문


2011 - 현재
입당

[1] 강세를 적용한 러시아어 발음은 '[ˈdmʲitrʲɪj ɐnɐˈtolʲjɪvʲɪtɕ mʲɪdˈvʲedʲɪf\](즈미트리이 아나톨리이비치 미드볘디프)'에 가깝다.[2] 의장은 당연히 대통령인 푸틴[3] 훗날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이 되어 푸틴의 상사가 됐다.[4] 특유의 걸음걸이나 각종 깜짝 쇼맨십을 통해 KGB 출신이라는 티가 나는 푸틴과는 달리 메드베데프는 그런 경향이 전혀 없다.[5] "이 나라의 대통령은 나야."[6] 물론 앞서 보았듯이 메드베데프는 푸틴의 오른팔급 인물, 즉 러시아 권력 2인자인지라, 신변의 이상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7] 대통령을 중임 제한에서 3선 가능으로 개헌한 것도, 푸틴의 장기집권(5선, 20년) 기반을 마련한 것뿐이다.[8] 푸틴이 메르베데프를 진짜 내칠거였다면 나발니가 터트린 메르베데프의 부정부패 의혹이라는 절호의 숙청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푸틴은 단지 여론때문에 메르베데프가 일선에서 물러나게 한 것이여서 사퇴 하는선에서 모든 논란들을 종결해버렸다.[9] 2010년 위키릭스에서 공개된 한 외교 문건에서 푸틴을 러시아의 1인자, 드미트리를 2인자로 표현하는데 쓴 표현이 푸틴은 배트맨, 드미트리는 로빈이었던 데에서 유래한다.[10] 그러나 알렉세이 나발니가 메드베데프가 저지른 부정부패를 폭로함으로써 그의 실체를 까발려지자 적지 않은 러시아인들이 그에게 실망하면서 푸틴의 대체자 이미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11] 여담으로 그의 상관인 블라디미르 푸틴2007년 붉은 광장에서 열린 폴 매카트니의 러시아 공연에 직관을 온 것이 방송국 카메라에 우연히 찍히기도 했다.[12] 한 명은 너무 어린 시절 원인미상으로 죽고, 또 다른 한 명은 굉장히 어린 나이에 레닌그라드 포위전 당시 병에 걸려 죽었다. 푸틴은 이들이 죽고 전쟁이 끝난 후에 태어났다.[13] 공식적으로는 정계를 은퇴했지만 막후실세로서 사실상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 포함.[14] 그랬다간 실로비키고 메드베데프고 할 것 없이 사이좋게 숙청당하기 때문.[15] 현재 러시아 연방 회계감사원장[16] 북한의 경우 김일성의 이름에 의존해서 김정일, 김정은이 정권을 장악한 형국이다. 미국 역시 에이브러햄 링컨이나 존 F. 케네디등의 이름에 의존하는 정치인들이 꽤나 있으며, 대표적인 예로 주일 미국대사를 역임했던 존 F. 케네디의 친딸 캐롤라인 케네디가 있다. 대한민국 역시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이름에 의존하는 정치인들이 꽤나 존재한다. 대통령까지 지낸 박근혜, 문재인 모두 정치인으로서의 출발점이 박정희의 딸과 노무현의 친구이자 대통령비서실장이라는 타이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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