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크 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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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크 바터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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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멍커 바터얼
(孟克巴特尔 | Mengke Bateer)[1]
뭉흐바타르
(ᠮᠥᠩᠬᠡᠪᠠᠭᠠᠲᠤᠷ / Munkhbaatar)[2]
생년월일
1975년 11월 20일 (48세)
내몽골 자치구 커자오맹
국적
[[중국|

중국
display: none; display: 중국"
행정구
]]

민족
몽골족
신장
211cm (6' 11") [3]
체중
132kg (292 Ibs)
포지션
센터
드래프트
1999년 드래프트 미지명
소속
베이징 덕스 (1997-2002)
덴버 너기츠 (2002)
샌안토니오 스퍼스 (2002–2003)
토론토 랩터스 (2003-2004)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04-2005)
베이징 덕스 (2005-2006)
신장 플라잉 타이거즈 (2007-2013)
쓰촨 블루 웨일즈 (2013)
베이징 덕스 (2013-2014)
산시 울브즈(2014)
수상내역
2003 NBA 챔피언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중국의 농구인. 왕즈즈, 야오밍과 함께 중국의 대표 빅맨이었으며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NBA 우승을 경험했다.


2. 생애[편집]


중국 내몽골 자치구 커자오맹(伊克昭盟, ᠶᠡᠬᠡ ᠵᠣᠣ ᠶ᠋ᠢᠨ ᠴᠢᠭᠤᠯᠭᠠᠨ) 출신으로 몽골어로 멍크(뭉흐)는 '영원'를 의미하고 바터(바타르)는 '영웅'이라는 뜻이다. 베이징 덕스가 유스 클럽을 통해 키운 멍크 바터는 18세의 나이로 1994년 중국 농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2001년 10월, 멍크 바터는 팀의 프리시즌 훈련 캠프를 위해 덴버 너기츠에 입단했다. 프리시즌 2경기 만에 방출되었지만 2002년 3월 덴버 너기츠가 빅맨이 절실히 필요하자 다시 팀에 합류했다. 이로써 그는 1년 전 댈러스 매버릭스로 데뷔한 왕즈즈에 이어 NBA에 진출한 두 번째 중국 선수가 됐다. 그는 또한 NBA 역사상 최초로 드래프트되지 않고 데뷔한 아시아 선수였다. 멍크 바터는 28번의 출전 기회를 얻었으며, 평균 15.1분의 출전 시간과 5.1점 3.6리바운드란 기록을 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시즌 동안 각각 3.8분 0.8점 0.8리바운드, 5.7분 1.1점 1.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남겼다. 그래도 2003년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팀이 우승하면서 아시아 선수 첫 번째로 NBA 우승을 하게 되었다.

이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하부 구단인 NBA G리그의 헌츠빌 플라이트에서 뛰다가 중국행을 결정했다. 2015년 선수 생활에서 은퇴하였고 2018년 내몽골 농구 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3. 여담[편집]


  • 2009년 KBL 외국인 트라이아웃에 신청하여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하지만 등록하지 않아 없던 일이 되었다. KBL 관계자에 따르면 멍크의 에이전트가 멍크와 합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신청서를 냈다고 하는데, 진실은 저 너머에...




  • 저 떡 벌어진 어께를 보면 짐작이 가겠지만, NBA 기준으로도 최상위권으로 힘이 센 선수였다. 떡대도 좋아 잘 밀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샤킬 오닐[4]. 물론 전반적인 운동 능력, 결정적으로 스피드가 너무 느려서 별다른 위력은 없었다.

  • 2002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 대한민국의 금메달에 본의 아니게 일조한 선수이기도 하다. 후웨이동[5]야오밍을 앞세운 중국 대표팀에서 그나마 발이 느리고 공략하기 좋은 선수였기 때문(...).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국가대표에서 제명된 왕즈즈를 대신해 발탁되었으나, 발이 빠르고 슛터치가 좋은 서장훈은 물론 벤치에이스 롤을 수행한 현주엽김승현에게마저 철저히 파훼당하며 체면을 구겼다.


4. 관련 문서[편집]



[1] 중국어 표기.[2] 몽골어 몽골 문자 표기. 키릴 문자로는 Мөнхбаатар[3] 맨발 기준 211cm (6' 11") / 착화 신장 213cm (7' 0") [4] 파울하는 과정에서 뒤에서 한손으로 잡아끌어 넘어뜨린 적도 있다[5] 장쑤 출신의 1970년생 농구 선수. 가드와 스몰포워드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유틸성, 그리고 뛰어난 운동 능력 덕에 "중국의 조던"이라 불렸던 선수이다. 1994년 아시안게임 농구 결승전에서 한국 대표팀을 혈혈단신으로 박살내는 등 '한국 킬러'로도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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