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대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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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萬壽臺藝術團
영어: Mansudae Art Troupe
1. 개요
2. 역사
3. 편성과 활동 양상
4. 삼지연악단



1. 개요[편집]


북한의 종합예술단. 북한의 공연예술 단체 중 최고위층의 영향력에 가장 가까이 근접해 있는 예술단으로 손꼽힌다.


2. 역사[편집]


1969년에 갓 정치판에 뛰어든 김정일이 직접 조직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완전히 새로 창단한 것은 아니었고 1946년부터 활동하고 있었던 평양가무단이라는 예술 단체를 기반으로 재조직한 단체였다.

재조직 4년 뒤인 1973년에는 일본을 방문해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 를 비롯한 작품들을 처음으로 해외에서 공연했으며, 이 때의 성과를 인정받아 김일성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에도 중국이나 소련사회주의 우방국들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순회 공연을 하기도 했다. 1976년에는 예술단 상주 공연장인 만수대예술극장이 완공되었다.[1]

같은 해 가극과 연극, 무용 3요소를 좀 더 긴밀히 결합시킨 '음악무용이야기' 라는 이름으로 '락원의 노래' 라는 무대 작품을 발표했다. 1979년에는 예술단 산하 여성기악중주단이 국가로부터 '공훈' 칭호를 부여받았는데, 예술단 산하 공연 단체가 공훈 칭호를 받은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2001년에는 예술단 간판 공연 작품인 '꽃파는 처녀' 가 누적 상연 횟수 1300회를 돌파해 화제가 되었다. 2009년에 새롭게 구조 개편이 단행되었고, 공훈여성기악중주단을 모체로 중편성 관현악단인 '삼지연악단' 이 새로이 창단되었다. 다만 기존 중주단도 예술단 공연 등에 계속 출연하고 있어서, 중주단을 완전히 해체 혹은 통합한 것은 아닌 듯 보인다.

2013년에는 일본의 중견 지휘자인 이노우에 미치요시가 북한을 방문해서 조선국립교향악단과 이 단체 합창단을 지휘해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공연하기도 했다.

3. 편성과 활동 양상[편집]


김정일이 재조직에 깊이 관여한 만큼, 지금도 북한 유일의 집권당인 조선로동당이 운영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 다른 종합예술단과 마찬가지로 교예(서커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형태의 무대공연 작품을 자체적으로 소화할 수 있도록 독창자나 독주자, 지휘자 뿐 아니라 합창단, 무용단, 관현악단, 대본 작가, 작곡가, 무대 연출가, 녹음 기사 등이 모두 단원으로 배속되어 있다.

1990년과 1998년 두 차례 방북해 북한 음악계의 실태를 조사했던 음악학자 노동은에 의하면, 단체가 차지하고 있던 위상에 비해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종합예술단들이 적게는 200명, 많게는 400명 가까이 혹은 그 이상의 단원들이 배속된 데 반해, 만수대예술단의 정단원은 100명 정도라고 집계되었다. 이 때문에 대규모 공연을 한다고 하면 다른 예술단들에서 단원들이 차출되어 객원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다만 그 이후 북한의 보도나 관계 연구 자료에 따르면, 단체 규모가 점점 확대되고 있고 그 체질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물론 이러한 변화도 김정일 등 높으신 분들의 세세한 간섭지도에 의해 엄격히 통제되고 있으며, 최고 지도자와 당을 대표하는 예술 단체인 만큼 창단 이후로 지명도가 떨어지는 일은 좀처럼 없다.

주요 상연 곡목들은 약력 란에 언급한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 와 음악무용이야기 '락원의 노래' 외에도 4대 혁명무용인 '조국의 진달래', '키춤', '사과풍년', '눈이 내린다[2] ' 를 비롯한 무용 작품들, 예술단 소속인 여성 4중창단과 남성 4중창단의 중창곡들, 관현악과 합창, 경음악, 민족기악중주 등 매우 다양한 편이다.

다만 2000년대 들어 공연의 중심이 가극 등 종합 무대예술 작품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경향이 보이는데, '꽃파는 처녀' 의 경우 2008년에 중국 베이징상하이 등지에서 순회공연을 했을 때 만수대예술단이 아닌 피바다가극단이 공연한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예술단 전체가 움직이는 공연 외에도 간판 예술인들이 다른 공연에 객원으로 출연하거나 순회공연의 단원으로 참가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으며, 2000년에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창단 최초로 서울을 방문해 공연했을 때도 예술단 소속 독창자들인 남성고음(테너) 가수 리영욱과 남성저음(베이스) 가수 허광수가[3] 협연한 바 있었다.

단원들의 스펙이 굉장히 높은 만큼 해외 콩쿠르에서 입상한 이들도 많은데, 리영욱과 허광수의 경우 각각 이탈리아의 엔나 국제 성악 콩쿠르과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입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여성고음(소프라노) 가수 조혜경도 차이콥스키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입상했고, 지휘자 김일진은 서독의 카라얀 국제 지휘자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로 입상한 바 있다.

음반도 북한 한정에 가깝지만 80여 장 이상을 내놓고 있는데, 모두 북한 유일의 음반사인 '광명음악사' 에서 예술단 이름을 내건 시리즈물이다. 대부분 여러 공연 작품들을 묶어 내놓는 컴필레이션 앨범 성격이 짙지만, 개중에는 예술단 소속 작곡가의 작품집이나 유명 독창자의 독창곡집, 당에 대한 노래집, 혁명가극이나 음악무용이야기 작품 전곡, 라이브 앨범 등의 컨셉으로 제작된 것들도 있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당근 싸그리 수입 금지 품목들이니 무슨 곡이 어떻게 연주되고 녹음되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4. 삼지연악단[편집]


2009년에 갑툭튀해 북한 음악계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린 예술단 산하 관현악단인데, 비슷한 시기 창단된 은하수관현악단과 함께 당과 지도자, 언론으로부터 새로운 시대를 여는 주체예술의 혁신 어쩌고 하면서 버프를 받았다. 첫 공연은 창단된 해의 4월에 있었고, 이후 해외 방문 국빈들의 축하 공연이나 당 창건 64주년 기념으로 진행된 은하수관현악단과의 합동 공연 등 굵직한 음악회에 주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이 악단의 모체인 공훈여성기악중주단은 원래 큰 편성의 악단이 아닌데, 대략 이탈리아의 유명한 실내악단인 이 무지치 정도 규모의 현악 합주에 플루트클라리넷, 피아노, 하프 그리고 마림바 등의 타악기가 추가 편성된 30여 명 규모의 소규모다. 하지만 공훈 칭호는 허투루 받은 것이 아니었는데, 거의 모든 공연에서 지휘자 없이 연주할 정도로 정제된 합주력을 보여주는 등 예술단의 높은 수준을 대변하는 단체로 유명하다.[4]

아마 이러한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편성을 늘려잡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고 조선국립교향악단 정도의 대편성 스펙은 잡지 않았다. 중주단 인원보다 두세 명 씩 늘려잡은 중편성 현악 합주에 변칙 2관 편성-오보에바순은 각기 한 대만 사용-의 목관악기, 알토와 테너 색소폰 하나씩, 호른트럼펫, 트롬본, 튜바 등의 금관악기, 아코디언, 그 외 타악기들을 더하는 선에서 인원 조정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증편된 후의 단원 수는 대략 50~60명 정도.

그리고 여성만 편성하는 기악중주단과 달리, 남성 단원들도 관악기 주자들을 중심으로 충원되어 있다. 하지만 여초 현상은 여전하고, 은하수관현악단과 마찬가지로 신입 단원들도 얼굴까지 보고 뽑는지 외모도 출중한 편. 단원 숫자와 악기 가짓수가 늘어났기 때문인지, 기악중주단 시절에는 없던 지휘자가 있다. 다만 지휘봉만 휘두르는 일반적인 지휘자는 아니고, 악장(콘서트마스터)이 바이올린 연주를 겸하며 지휘하는 19세기 중후반 유럽 무도악단들의 포어가이거 양식을 따르고 있다.[5]

이 양식에 따라 창단 이래 악장 겸 지휘자는 2010년까지 리순애가 맡고 있었지만, 2011년에 개최되었던 신년음악회에서는 조선국립교향악단 부수석 지휘자와 윤이상관현악단 수석 지휘자를 역임했던 김호윤이 단장 겸 지휘자로 호명되어 출연하면서 직책 이동이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현재는 수석 지휘자는 불명. 동시에 지휘자도 악기 연주를 겸하지 않고 지휘만 하는 양식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2012년 들어 북한에서 나오는 보도 사진이나 기사에는 다시 리순애가 단장으로 언급되고 있고, 지휘도 예전의 포어가이거 양식으로 환원되었다.

대부분 북한 창작곡들만 연주하는 기악중주단과 달리, 연주곡들도 서양 곡과 조선 곡들을 비교적 균형있게 배합하고 있다. 그래서 유튜브 등에 나도는 동영상들을 보면 북한 작품들 외에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이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전주곡, 하차투리안의 발레 '가야네' 중 칼춤, 아치볼드 조이스의 왈츠 '가을의 꿈' 등 대중적인 클래식 소품들도 연주하고 있다. 연주곡도 대부분 3~10분 가량의 가벼운 소품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바깥 세계의 팝스 오케스트라에 해당하는 정체성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라이벌 악단인 은하수관현악단과는 편성이나 창단 동기에서 큰 차이점이 없어서, 이후 두 악단 사이의 경쟁이 심해질 듯 보였다. 만약 상대에게 발리면 아오지관현악단이나 요덕관현악단으로 개명할 것 같다. 일단 2011~12년 동안 북한 언론에서 언급된 횟수는 은하수관현악단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지명도 면에서는 발리고 있는 듯 했다. 게다가 2012년에는 김씨 3대인 새끼돼지의 지시로 조직된 경음악 밴드인 모란봉악단이 급푸쉬를 받고 치고 올라온 상황이라 공기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다만 2013년 7월의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 음악회 이후 갑자기 북한 언론의 보도에 거의 등장하지 않아 숙청 혹은 해체설까지 나도는 은하수관현악단과 달리, 이 악단은 그렇게 유난스럽게 부각은 되지 못 해도 여전히 공연 관련 소식이 조그맣게나마 언급되고 있어서 길고 가늘게 명맥을 잇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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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지만 1990년대 이래로는 만수대예술극장이 아닌 동평양대극장을 상주 공연장으로 사용하도 있다. 만수대예술극장을 포기한 이유는 시설 노후화라는 설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2] 눈이 내린다는 일제에 항거하는 내용을 가진 곡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차 평양을 공식 방문했을때 관람한 레퍼토리 중 하나이며 한국에서도 합법적인 영상물 시청이 가능하다.[3] 한국에도 정식으로 음반이 발매된 동해의 달밤과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돈바질리오의 아리아를 불렀다.[4] 2000년 남북 공동선언 당시 남측 대표들을 맞이한 만찬장에서도 이들이 연주를 맡은 바 있다. 다만 공연이 아닌 연습 때는 예술단 소속 지휘자인 김일진이나 허문영(지휘자) 등이 연습 지도를 맡고 있다고 한다.[5] 독일어로 Vorgeiger. (악단) 앞의(vor) 바이올리니스트(Geiger)라는 뜻이다. 대표적인 인물들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