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몽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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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滿蒙獨立運動(정체자), 满蒙独立运动(간체자)

1. 개요
2. 상세
3. 여담
4.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1910년대에 일본 제국만주몽골을 독립시켜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려고 한 움직임을 가리킨다.

2. 상세[편집]


1911년 신해혁명이 나타나 청나라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세워졌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 혼란을 틈타 일부 지역에서는 군벌화가 진행되어 분열될 위기에 놓였고, 이 때 일본은 이 틈을 타 진출해 자신들의 세력을 뻗으려고 했었다. 이전부터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은 랴오둥 반도 등 요동 일부를 가졌고, 동북아시아 일대에 여러 첩자들을 보냈으며, 한일합병으로 조선(대한제국)을 멸망시켜 조선을 일제 식민지로 만들어 중국 만주와 접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 일본은 특히 만주, 몽골 지역들을 탐냈는데, 일본과 가깝기도 했었고 유리한 지정학 요충지, 자원이 많은 게 그 이유였다. 그래서 일본은 이곳에 패권을 장악하고자 처음에 이 일대들에 진출해 만주족을 포함한 만주의 제족들과 몽골인들에게 접촉해 분리독립을 돕겠다고 주장하여 이들의 환심을 얻으려 했다. 물론 진짜로 돕는 것보다는 이를 이용해 자신들에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려는 성향에 가까웠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부터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과 외교를 맺었고 다양한 왕래가 이어지자 그들로부터 범투란주의가 들어오기 시작했었다. 투란주의의 영향으로 일본 역시 이와 비슷한 팽창적 범국민주의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만몽독립운동 역시 범투란주의와 비슷하게 변하기 시작했으며 1930년대에는 만주국, 몽강국이라는 친일 괴뢰정권을 세움으로써 그 끝을 보여주고 만다.

1912년, 처음으로 만주족 황족 출신을 이용해 내몽골에서 반란이 성공되도록 돕지만 북양정부의 진압으로 실패했다. 2차 시도는 위안스카이가 멋대로 황제가 되려 하자 중국 전국에서 반독재 시위 및 위안스카이 타도 운동이 일어나자 일본은 더 이용해서 두번째 만몽분리독립을 시도하려 했다. 그러나 위안스카이의 중화제국이 붕괴되자 친일 군벌들이 장악하다보니 일본 입장에선 딱히 이렇다할 명분이 없는 상황이 되자 계획을 포기한다. 1916년에도 만몽분리독립세력들의 반란이 실패되었다.

다만 그렇다고 일본이 몽골, 만주를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던지라 어떻게든 중국 북부일대에 간섭을 했었다. 결국 1932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급기야 만주국을 만들어 괴뢰국으로 세웠고, 내몽골에는 몽강국도 만들어 또다른 괴뢰국을 세웠지만 소련, 몽골인민공화국에 의해 패배하고 중국에 되돌아오면서 일본의 만몽(滿蒙) 지역에 대한 야욕과 패권은 끝나고 만다.


3. 여담[편집]


일본의 이러한 식민주의와 만몽 지역에 대한 집착은 옛 한국, 정확히는 일제강점기 조선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내선일체, 만선사관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관들 중 일부는 환빠일빠들이 이어받기도 했다.


4.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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