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명부인(선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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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실제 역사에서


1. 개요[편집]


드라마《선덕여왕》의 등장인물.


2. 상세[편집]


임예진이 맡고 있다.

진평왕과 남매지간[1]인 공주였는데, 가야파인 김서현과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해서인지 신분이 어정쩡하게 붕 떠 있었다. 그러다 십수 년이 지나 남편과 아들인 김유신이 전쟁터에서 사투를 벌일 때 비구니가 된 어머니 만호태후[2]가 있는 절에 가서 눈물의 화해를 하고 이때 기적적으로 남편과 아들이 전쟁터에서 살아돌아오자, 미실이 어거지로 했던 천명공주의 제안이 효력을 발휘해 남편과 더불어 진골의 신분을 회복했다.[3] 김서현과는 달리 미실이 승인 도장을 찍자마자 공주 신분을 회복했다고 으름장을 놓는 대범함도 보였다.

그 후 항상 마야부인 곁에서 마야부인을 보좌했다. 천명공주의 사망을 마야부인에게 알린 사람도 이 분. 그러다 마야부인과 더불어 공주가 되려는 덕만의 술수를 눈치채고 마야부인과 함께 혁거세 예언비 탁본 등의 도움을 함께하기도 한다.

천명공주의 사망과 을제의 해고, 그리고 덕만의 공주 신분 회복과 같은 상황 속에 이제는 진평왕, 마야부인, 덕만, 김서현과 더불어 왕실파 미팅을 함께 하는 귀하신 몸이 되었다. 나름 사랑을 위해 신분을 버린 비련의 여인에서 인생의 획기적인 반전을 이룬 내조의 여왕. 유신의 풍월주 시험 때는 거칠부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두 번째 문제를 푸는 데 중요한 아이템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미실의 군사 정변 때는 너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양자로 받아들인 월야랑 집안에서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가 덕만이 미실의 난을 수습하고 왕위에 오른 뒤로는 나름 평탄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마야부인이 불가로 들어감으로 인해 김유신과 춘추를 제외하고는 덕만의 유일한 가족[4]이며 나름 왕실의 어른으로서 조언을 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다가 또 월야 때문에 김유신이 대핀치에 빠지자 집에서 발만 동동 굴리고 있다. 그러다 자신의 아들이 우산국으로 귀양간다고 하니 오랜만에 입궁해서 아들 좀 선처해 달라고 무릎 꿇고 애걸복걸했다.

백제 정탐하다 잡혀 온 김유신을 죽이라는 상소가 속출하는 가운데 감옥에 찾아가서 자기 목숨 구제 못하고 대야성 타령하는 아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덕만의 계책으로 복야회 문제가 해결되고 김유신이 복직되어 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자 다시 평탄한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다만 선덕여왕이 비담과 국혼하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 비담의 세력이 커지는 것에 대해서는 염려하고 있다.

마지막 회에서 쓰러진 덕만을 간호하는 장면이 마지막 등장.


3. 실제 역사에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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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히는 어머니가 같고 아버지가 다른 이부남매다. 어머니는 둘 다 만호태후지만 진평왕의 아버지는 동륜태자, 만명부인의 아버지는 진흥왕의 동생 숙흘종.[2] 정혜선 씨가 특별 출연하셨다.[3] 본인의 발언으로 한때 성골임이 명시됐었음이 드러나나, 실제 역사에서의 골은 모른다. 동륜태자계를 성골로 정했다는 설에 의하면 작중 등장인물 중 진흥왕, 진평왕, 마야부인, 덕만, 천명을 제외하면 성골은 없다. 김춘추 역시 아비가 족강된 후에 태어났으므로 태어났을 때부터 진골이었다.[4] 이건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작중 귀족들 대부분이 진골이기 때문에 결국은 다 친척들이고 비담도 덕만과는 고작 5촌 차이밖에 안 난다. 단 피도 섞이면서 정말 서로 가족으로 대할 만한 사람이 춘추, 김유신, 만명 그리고 좀 멀리 보면 용춘까지인 것은 맞다. 언제부터 미실 가문을 왕실에서 "가족"으로 생각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