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대고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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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고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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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경대고향집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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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고향집}}} (평양시 만경대구역 만경대동)[2]
1. 개요
2. 역사
3. 현재
4. 대한민국 국민이 방북할 경우
5. 통일 이후 보존 가능성
5.1. 철거의 관점
5.2. 보존의 관점
6. 여담



1. 개요[편집]


북한의 체제선전시설. 평양시 만경대구역 만경대동에 있다.

김일성의 생가이며, '금수산태양궁전', '백두산밀영' 등과 함께 북한 내 핵심 시설물에 해당된다. 만경대구역은 여기서 유래됐다.

북한 내 비슷한 성격의 건축물로는 '회령고향집'과 '백두산밀영'이 있다.


2. 역사[편집]


본래는 조선시대평안도 평양부 부내에서 서쪽으로 약 12km 가량 떨어진 해발 48m 정도의 언덕을 가리키는 말로, 대동강 하류 방향에 형성된 습지 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보다 이전에는 남호(南湖)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이름 때문에 사적이나 명승지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 북한 정권이 도래하기 전에도 경치가 좋고 강물의 수심이 깊어 배를 대기 좋은 곳으로 평양의 명승지인 것은 맞았다. 남한에서 명승지로 통하는 태종대, 해운대, 반구대, 봉황대 등과 비슷한 맥락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북한에서는 만경대의 10가지 경치를 '화촌 10경'이라 소개하며, 각각 '만경대의 봄경치(만경상춘)', '세 섬의 달밤정경(삼도범월)', '봉포에서의 고기잡이(봉포타어)', '우산[3]에서의 소방목(우산목독)', '광촌마을의 밥짓는 연기(광촌취연)', '석호의 돛배(석호풍범)', '양산[4]의 푸르른 기상(양산창취)', '원암의 붉은 절벽(원암적벽)', '추교의 씨붙임광경(추교관가)', '동림나루터에서의 손님 배웅(동림송객)'이라 부르는데 이는 평양 지역의 세시풍속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김일성의 증조부인 김응우(1848~1878)가 1860년대에 평양 지주 이평택의 묘지기로 들어와 만경대에 있는 살림집을 불하받으면서 이후 그의 일가가 대대로 평양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의 아들이자 김일성의 조부인 김보현 역시 이 곳에서 살았고, 김일성도 이 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김일성의 생가는 아닌데, 그가 출생한 곳은 용산면 하동 칠골에 있었던 강반석의 친정집(외가)이고, 만경대에서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김일성이 태어났을 당시 이 곳의 주소는 평안남도 평양부 고순화면 남동이었다.


3. 현재[편집]


북한에서는 당연히 이 곳을 절대 성역으로 여기고 대대적으로 개건(開建)하여 깨끗한 초가집의 모습으로 복원해 놓았다. 선전물인 만큼 관람의 대상이며,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에게 홍보된다. 금수산태양궁전과 함께 김씨 가문 우상화의 상징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무조건 이 곳을 관람해야 했다. 당연히 북한에서는 만경대에 대해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 솟아오른 혁명의 성지"라고 포장하고 있다.

김일성 우상화의 영향으로 북한에는 이 곳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나 조직이 많이 있으며, 특히 평양 내에서는 만경대와 지리적으로 인접하거나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것에 '만경대'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이 잦다. 유명한 것만 봐도 평양시의 행정구역인 만경대구역부터 시작해서 평양 지하철도 만경대선, 만경대혁명학원,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만경대유희장 등이 있다. 그 밖에 만경대 상표의 만년필이 있고, "만경대OO공장" 등의 개별 상호나 단체명은 워낙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 북한 현 5000원권(최고액권) 앞면에도 들어있다.[5]

그의 고향집 인근에는 '천석식당'이라고 해서 1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식당이 있다. "내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한테 국수 한 끼라도 대접할 곳은 있어야 한다."라는 김일성의 명령으로 1972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며, 옥류관과 함께 잘 알려진 평양의 식당으로 주로 냉면과 온반, 비빔밥, 감자맛탕(감자정과) 등 한식을 취급하지만 도 같이 판다.


4. 대한민국 국민이 방북할 경우[편집]


북한을 방문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금수산태양궁전, 대성산혁명렬사릉, 애국렬사릉,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이유라도 방문해서는 안 될 곳 중 하나에 해당된다. 북측이 당신에게 이 곳의 방문을 권유한다는 것은 '당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해먹겠다'라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대한민국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위험성도 있다.

한국 NL 통일운동 인사 중에 방문 사례도 있었는데, 2001년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방북 당시 이 곳을 방문 후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식의 문구를 써서 한국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으며, 그는 귀환 후 방북에 따른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바 있었다. 결국 2010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었는데, 방명록 외에 계간지 등에 쓴 '6.25는 통일전쟁' 등의 기고문 작성 혐의도 함께 받았다.#


5. 통일 이후 보존 가능성[편집]



5.1. 철거의 관점[편집]


일명 '만경대 고향집'은, 오로지 북한 정권의 체제선전 목적에 방점이 찍혀있을 뿐만 아니라 유적지 내지 사적지로서 보존가치도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대척점에 놓여진 시설물이기에, 훗날 보존 여부를 판단할 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깎아먹으며 굳이 보존해야 하는가 하는 정치적 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북한 정권에 충성을 다하여 암약하고 있는 반군 또는 게릴라 세력에 의해 마치 네오 나치들이 하듯이, '성지'처럼 떠받들여져서, 향후 북한 지역의 치안이 안정화되지 않을 경우 이곳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극단적인 사회 혼란 사태를 유발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북한의 소위 '혁명사'와 정치체제·사상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역사학적 관점에 치중한 채 섣불리 이 시설물의 보존을 말하는 것은 위험한 주장이다.

같은 관점에서 판단해볼 수 있는 것으로, 김정일의 (거짓된) 생가인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정일봉이 있다.[6]

만약 북한 주민이 외부 문물을 접하고 나서 김일성의 부하들이 자신을 착취했다는 관념 등이 생겨나면, 히틀러 생가처럼 이곳을 철거시키거나 우상화의 폐해를 알려주는 공간으로 조성하려고 들 수 있다. 북한의 청소년은 김일성을 옛날 할아버지로 여긴다는 증언도 있고, 탈북자의 경우 김일성을 매우 싫어해서 위키백과의 김일성 문서를 보면 악에 받친 서술이 있다.


5.2. 보존의 관점[편집]


왜성, 삼전도비 등 유적 보존이 꼭 역사에 긍정적인 부분만 보존하는 것이 아니므로 통일 후에는 한국사에 좋든 나쁘든 한 획을 그은 김일성이라는 인간의 생가라는 특성상 일단 유적지로 남아있을 가능성은 있다. 실제 사례를 보면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 화진포에도 김일성 별장이 관광용으로 남아있다.[7]

또한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김일성에 대한 환상이 남아있어 그 이미지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가 철거한다는 입장을 표했을 때 민심 이반 현상이 어떤 식으로 발현될 지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겠지만, 내부에 김일성을 위시한 김씨일가의 추악한 실상을 알리는 자료를 구비해 놓고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이를 고발하는 기념관으로 개조하거나 기념관의 부속시설로 삼는 선에서 타협을 볼 수도 있겠다.


6. 여담[편집]


  • 만경대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지명은 꽤 있다. 만경 노씨와도 관련 없으며,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이 본관이다. 이 만경읍 일대를 흐르는 '만경강'이란 지명이 나름 유명한데 새만금의 '만'도 '만경'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7080 시절에는 이걸 굳이 이 문서의 평양 만경대랑 결부시켜 "전라도는 빨갱이"라는 식의 유언비어가 돌기도 했다. 당연히 한자부터가 다르기 때문에(만경대는 萬景, 김제 만경은 萬頃) 아무 관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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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할아버지 김보현, 아버지 김형직, 어머니 강반석의 분묘[2] 이북5도위원회 기준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3] 현 만경대구역 원로리에 있는 산의 이름.[4] 현 만경대구역 룡봉리에 있는 산의 이름.[5] 그 전에는 북한 5000원권 앞에는 김일성이 들어가고 만경대는 뒷면에 들어갔었다.[6] 더구나 김정일은 김일성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북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고, 어쨌든 실제 김일성의 생가이기는 했던 만경대고향집과 정반대로 백두산 밀영은 80년대 중반에 김정일의 정통성 보완 작업 차원에서 날조된 출생지라 만경대고향집보다 철거가 수월한 거란 것임은 확실하다.[7] 당연하겠지만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축물의 특성상, 그리고 건물 자체의 상징성 때문에 전시에 공습이나 포격을 맞아 전소되거나 전후 방화로 소실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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