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 로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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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前 축구선수


파일:SS_삼베네데테세_칼초_막시_로페스_2021.jpg

이름
막시 로페스
Maxi López

본명
막시밀리아노 가스톤 로페스
Maximiliano Gastón López
출생
1984년 4월 3일 (39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적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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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 [[이탈리아|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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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조건
188cm, 81kg
포지션
공격수
주발
오른발
소속팀
CA 리버 플레이트 (1997~2001 / 유스)
CA 리버 플레이트 (2001~2005)
FC 바르셀로나 (2005~2007)
RCD 마요르카 (2006~2007 / 임대)
FC 모스크바 (2007~2009)
그레미우 (2009 / 임대)
칼초 카타니아 (2010~2014)
AC 밀란 (2012 / 임대)
UC 삼프도리아 (2012~2013 / 임대)
UC 삼프도리아 (2014 / 임대)
키에보 베로나 (2014~2015)
토리노 FC (2015~2017)
우디네세 칼치오 (2017~2018)
CR 바스쿠 다 가마 (2018~2019)
FC 크로토네 (2019~2020)
AS 삼베네데테세 (2020~2021)
국가대표
5경기 3골 (아르헨티나 U-17 / 2011)
29경기 8골 (아르헨티나 U-20 / 2001~2004)

1. 개요
2. 클럽 경력
2.1. 유럽 진출 이전
2.3. 마요르카 임대와 FC 모스크바 이적 후 그레미우 임대
3. 국가대표 경력
4. 사생활



1. 개요[편집]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선수. 주 포지션은 공격수이다. 2001년 만 17세의 나이로 자국 리그 명문팀 CA 리버 플레이트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하여 21세이던 2005년에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였다. 바르셀로나에서 그다지 큰 활약을 하지 못한 후 커리어에서 특별히 꼽을 만한 수상 내역이나 기록은 없으나, 첼시와의 챔피언스 리그 데뷔전에서 1대0으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교체로 투입되어 데뷔골과 어시스트 1개를 기록하며 역전에 기여,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다. 그 덕분에 아르헨티나 성인 대표팀에 선발된적도 없지만 국내에도 어느 정도 알려진 편이다.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다. 엘 루비오(금발머리)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2. 클럽 경력[편집]



2.1. 유럽 진출 이전[편집]


1997년 보카 주니어스와 함께 손꼽히는 자국리그 명문 팀이었던 리베르 플라테 유스 팀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2001년 8월 19일 타예레스 데 코르도바를 상대로 만 17세의 나이에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5년간의 유스 생활을 마친 후 성인팀에 등록된 직후였다. 그 후 2004년까지 리베르 플라테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뛰며 2002,2003,2004년 3년 연속프리메라 디비시온을 이끌어냈다. 2002년부터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기 전인 2005년 1월까지 리베르 플라테에서 뛰며 56경기 13골을 기록하였다.


2.2. FC 바르셀로나[편집]


2005년 1월, 바르셀로나는 부상당한 헨리크 라르손의 대체자로 620만 유로(한화 약 81억)에 막시 로페즈를 영입했다. 2005년 2월 23일, 첼시 F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데뷔전에서 팀이 1대 0으로 뒤지고 있던 후반 루도빅 지울리와 교체되어 경기에 투입된 후 4분만에 윌리엄 갈라스를 제치고 동점골을 넣더니, 어시스트마저 기록하여 팀의 2대1 승리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챔피언스리그 데뷔전 데뷔골과 어시스트로 엄청난 임팩트를 남기며 국내에도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다만 임팩트 쩌는 챔스 데뷔전에서의 활약과는 달리 그 이후에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는 못하였고 그 골외에는 2006년 1월 11일 국왕컵 자모라와의 경기에서 넣은 골이 전부였다. 리그에서도 13경기 출전, 0골에 그쳤고, 결국 주전에서 밀리며 마요르카로 임대를 떠나게 되었다.


2.3. 마요르카 임대와 FC 모스크바 이적 후 그레미우 임대[편집]


2006-07 시즌을 앞두고 바르셀로나에서 자리를 잡기 힘들기에 마요르카로 임대를 떠났고, 06-07시즌 리그 25경기에 출전 3골을 넣은 뒤 바르셀로나로 복귀했다. 선수 본인은 바르셀로나에 계속 남고 싶어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고, 결국 2007년 여름 2백만 유로(한화 약 26억원)에 러시아의 FC 모스크바로 이적하였다. 모스크바에서 1시즌 반동안 리그 22경기에서 9골을 기록했고, 2009 시즌을 앞두고 브라질 세리 A 소속의 그레미우로 임대를 떠나 산타 크루즈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상 호세-PA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했다. 2009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는 4골을 기록하며 팀의 준결승 진출을 도왔다. 그레미우에서 한시즌 임대로 뛰며 41경기 17골이라는 준수한 활약을 한 덕분에, 복수의 유럽 구단들의 타겟이 되어 카타니아, 키에보 베로나, 제노아, 볼프스부르크 등의 관심을 받았다.


2.4. 칼초 카타니아[편집]


브라질에서 2009 시즌을 마치고 2009-10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카타니아로 3백만 유로(약 39억원)의 이적료로 3년 반의 계약을 맺고 이적하였다. 2010년 1월 31일 우디네세와의 경기에서 세리에 A 55분을 뛰며 데뷔전을 치렀고, 바로 다음경기인 라치오원정에서 데뷔골이자 그 경기의 결승골을 터뜨렸다. 그 후 팔레르모와의 시칠리아 더비전에서도 골을 넣는 등 반시즌만 뛰었는데도 17경기 11골, 무려 두자리수 골을 기록했다. 2010-11 시즌에는 35경기 8골, 소속팀 카타니아는 리그 12위를 차지했다. 2011-12 시즌이 시작되고 9월 18일에 체세나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 골을 기록하며 시즌 리그 1호골을 넣고 12월 18일, 팔레르모와의 경기에서는 리그 3호골이자 자신의 리그 두번째 페널티킥 골을 기록하고 곤잘로 베르게시오와 교체되며 곧 다가올 겨울이적시장에서의 이적을 암시하며 팬들과 작별을 고했다. 카타니아에서 2009-10, 2010-11, 2011-12, 그리고 삼프도리아에 임대되어있다가 잠깐 다시 돌아와서 뛰었던 2013-14시즌 총 4시즌간 83경기 27골을 기록하였다.


2.4.1. AC 밀란 (임대)[편집]


2011-12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완전이적시 이적료 8백만 유로를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카타니아에서 밀란으로 150만유로에 반시즌간 임대되었다. 반시즌 동안 70만유로(한화 약 9억)을 급료로 받고, 완전 이적 시 한시즌당 150만유로를 급료로 받는 계약이었다. 등번호는 21번을 달았다. 2012년 2월 11일 우디네세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터뜨리며 밀란 유니폼을 입고 첫 골을 기록했고, 골 기록 후 스테판 엘 샤라위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 골이 밀란 선수로서의 유일한 골이었고, 반 시즌 동안 8경기 1골이라는 기록을 남긴채 카타니아로 돌아갔다.


2.4.2. UC 삼프도리아 (임대)[편집]


2012-13시즌을 앞두고 원 소속팀 카타니아에서 삼프도리아로 두 시즌간 임대되었는데, 임대 첫 시즌인 2012-13시즌을 삼프도리아에서 보낸뒤 그 다음 시즌이었던 2013-14 시즌에 원 소속팀 카타니아로 다시 복귀해서 뛰다가, 겨울에 다시 임대로 삼프도리아로 합류해 남은 시즌을 소화했다. 삼프도리아에서 뛴 두시즌중간에 카타니아로 복귀해서 뛰었던 걸 생각해보면 사실상 한시즌 반이다 동안 28경기 출전, 5골을 기록하였다.


2.5. 키에보 베로나[편집]


2014-15시즌을 앞둔 여름 이적시장에서, 키에보 베로나와 1년 계약에 연장 옵션을 두고 이적했다. 2014-15시즌 이탈리아 세리에 A 유벤투스와의 개막전에서 풀타임 출장했지만, 팀은 패배했다. 9월 14일에 두번째 출장 경기였던 나폴리에서 골을 터뜨렸는데, 그 골 역시 키에보에서의 유일한 골이었다.


2.6. 토리노 FC[편집]


2015년 1월 13일, 6개월 단기 계약에 역시 연장 옵션을 넣는 조건으로 토리노와 계약했다. 바로 다음날인 14일에 라치오와의 코파 이탈리아 경기에서 데뷔했고 4일 뒤 체세나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으며 3대2 승리를 이끌었다. 2월 19일에는 UEFA 유로파 리그 32강전 아틀레틱 클루브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5개 리그[1]와 유럽, 남미의 모든 클럽 국제대항전[2]에서 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아틀레틱 클루브와의 경기 1주일 후에 치러진 세리에 28라운드 파르마와의 경기에서 또다시 골을 넣었고, 그 뒤 5월에는 친정팀 키에보를 상대로 선제골을 넣으며 팀의 2대0 승리를 이끌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연장 계약 조항이 발동하여 계약을 연장했고, 2015년 11월에는 2018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커리어와 인지도 모두 나쁘지 않지만 의외로 성인 국가대표에는 발탁된 적이 없다. 다만 청소년 국가대표로는 여러 번 뽑혔는데, U-15, U-17, U-20 등 각급 연령별 대표팀 소속으로 2003 남미 유스 챔피언십 등의 대회에 출전했다. 아르헨티나 국적 외에 이탈리아 국적도 가지고 있는데, 2010년 7월에는 본인이 직접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소집 제의가 온다면 응할 의사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대표팀으로도 소집된 적 역시 없다.


4. 사생활[편집]


2008년에 아르헨티나의 유명 모델 완다 나라와 결혼해서 세 명의 아들[3]들을 낳고 2013년까지 잘 사는 듯 했으나 막시 로페즈가 먼저 가정부와 불륜 스캔들이 났고, 이때문에 로페즈와 나라가 이혼 소송 절차를 밟던 중 로페즈가 어릴 적 우상이었다고 밝힌 적도 있었고, 삼프도리아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마우로 이카르디가 나라와 서로 눈이 맞아 나라의 이혼 후 2014년 5월 27일 바로 결혼했다. 막시 역시도 불륜을 저질렀으나 이카르디는 국가대표 선배의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다. 이로 인해 마라도나 등의 규탄을 받아 지금까지도 국가대표에 뽑히지 않고있다. 그 후 인테르로 이적한 이카르디가 삼프도리아에 남아 있던 로페즈와 경기에서 마주쳤는데, 로페즈가 이카르디의 악수를 거절하며 이슈가 되기도 했다.[4]

처음에는 가정부와 불륜 때문에 막시도 욕을 먹었지만 이혼과정에서 보여준 신사적인 모습과 재혼 후 완다가 각종 어그로와 병크들을 일으켜 막시를 어느정도 이해한다는 의견도 많다. [5]

그런데 완다의 아버지이자 막시에게는 전장인인 안드레스 나라의 말에 따르면, 완다는 평소에도 늘 돈과 관심에 집착을 했고 가족은 두번째였다고 한다. 애초에 목표가 유명한 축구선수와 결혼해 유명세를 얻는것이였다고. 그러면서 사위였던 막시 로페즈가 딸과의 결혼 생활 중에 정말 많이 참았다고 하며 막시 역시 자신이 밀란과의 협상을 하던 중에도 완다가 이카르디 건처럼 자신이 에이전트를 하고 싶다며 설쳤다고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불륜을 저질러 이혼한 사위를 장인어른이 이해한다고 인터뷰를 하며 도리어 자신의 딸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 할 정도였다.

이카르디와 완다 나라는 2020년 3월 코로나-19에 따른 효과적인 자가격리를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이탈리아에 사둔 집으로 이동했는데 이에 대해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하라며 분개했다. 이에 완다는 신경쓰지마라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막시가 꺼낸적도 없는 아르헨티나 이야기를 꺼내며 "아르헨티나보다 여기가 안전함" 이라는 아몰랑을 시전했다.

그러니까, 축구 팬들은 막시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오죽하면 그랬을까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페리시치의 이적건을 허락도 받지 않고 방송에서 이야기하고 이에 분개한 페리시치가 이카르디에게 입단속 시키라고 화를 냈으나 이것을 거절하면서 인터밀란 팀 동료들과의 사이가 엄청나게 악화되었다. 라커룸에서도 혼자고 밥도 혼자 먹는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정도로 팀에서 버림받게된다. 인테르 감독으로 부임한 안토니오 콘테감독에 의해 주장직도 박탈당하고 새로 들어온 로멜루 루카쿠에게는 등번호마저 빼앗기고 벤치에도 앉지 못하면서 팀에서 완벽하게 배제되었다. 이 일로 완다는 방송에서 페리시치가 잘못했고 인테르가 나쁘다는 식으로 하소연을 하나 게스트로 출연한 왕년에 망나니로 이름날렸던 카사노가 적당히좀 하라며 학을 뗄 정도였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며 축구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여성 에이전트라고 하고 항상 인터뷰로 일을 만든다. 완다가 무슨 난리를 쳐도 가만히 있으며 끌려다니던 이카르디도 오죽했으면 완다가 나폴리와 딜을 끝내놨는데 개무시하고 파리 생제르망 행을 선택할 정도였다. 여기서 완다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또 알 수가 있는데 파리는 최악이다 라면서 이카르디의 새 소속팀의 속을 시작부터 있는대로 긁어대고있다. 이카르디와 전혀 관계도 없고 이적설도 없었던 레알 마드리드가 완다를 블랙리스트에 올려버릴 정도로 극성맞다. 정말로, 정말로 오죽했으면 막시가 바람을 피웠겠느냐며 팬들은 먼저 불륜을 저지른 막시 로페즈를 옹호하고있다.

2020년 5월 28일 완다가 걸었던 세 아들의 양육비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로페스가 청구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하루에 100유로씩 총액이 늘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로페스는 현재 채무불이행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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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르헨티나, 스페인, 러시아, 브라질, 이탈리아[2]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코파 수다메리카나, UEFA 챔피언스리그, UEFA 유로파 리그[3] 장남 발렌티노 가스통 로페즈, 차남 콘스탄티노 로페즈, 막내 베네딕토 로페즈[4] 로페즈와 이카르디, 그리고 완다 나라와의 관계는 마우로 이카르디문서에 더 잘 나와있다.[5] 이카르디의 팀 동료가 팀을 떠나려는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팀의 선수들에게만 이야기 한적이 있다. 선수들은 이를 듣고 모두 비밀로 하자고 약속했으나 이카르디는 이를 완다에게 얘기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전혀 되지 않으나 완다가 이 내용을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에서 전부 이야기해버렸다. 이카르디도 피해자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에 분개한 팀 동료들과 싸우면서 동료들이 한 아내 입단속을 시키라는 말을 무시하고 완다가 언론이나 인터뷰에서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켜 팀과 이카르디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어도 정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있다. 인터밀란과의 관계가 완다 때문에 급속도로 악화되어 팀에서 자리를 잃고 파리 생제르망으로 임대를 가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