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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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어[편집]
막무가내로 언동을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표현으로, 말 그대로 막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유래는 아래 2번 항목.
2. 실존했던 범죄조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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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실존했던 범죄 조직으로 1996년에 검거되었다. 지존파, 막가파, 영웅파의 순서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 조직원의 수는 총 9명으로 먼저 두목인 최정수(당시 21세)가 폭력전과 3범인 박지원(당시 20세, 부두목)과 상해 및 절도전과 7범인 정진영(당시 20세, 행동대장)을 만나서 3명으로 처음 시작하였고 나중에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모란시장의 한 유흥주점에서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중퇴하거나 졸업한 뒤에 하나같이 폭행이나 절도 등의 전과를 가지고 있었던 유삼봉(당시 20세), 김진오(당시 20세), 박종남(당시 19세), 최 모군(당시 19세), 윤 모군(당시 18세), 이 모군(당시 17세)이 추가로 모여서 합류한 뒤에 9명이라는 인원으로 확대되었다.
그 해 10월 5일 혼다 어코드[1] 를 몰고 가는 40대 여성을 납치해 금품을 빼앗고 '손에 피를 묻히기 싫다'는 이유로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희생자의 목을 꺾은 후 자신들의 아지트인 소금 창고 안에 세운 채 생매장해 살해했다. 목을 꺾은 것은 피해 여성을 세워둔 상태이기 때문에 흙을 다 덮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희생자의 목이 부러져 있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형사들이 이유를 알게 되자 경악하였으며 최정수 등 막가파 일당을 두들겨팼다고 한다.
조직폭력배인 조양은을 미화한 소설 등을 읽고 폭력단을 결성하였다고 하며 그런 이유로 미디어의 폭력성에 의한 범죄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곤 한다. 또 지존파를 모방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막 가는 인생이라고 하여 이름을 막가파라 지었다고 한다.
영광군 출신인 그들은 폭력단을 결성해 남자다운 행동을 한다며 소매치기 및 부축빼기 등 다양한 범죄를 저질렀다. 특히 취객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폭행한 뒤 돈을 빼앗는 일명 '퍽치기' 를 가장 많이 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취객을 무차별적으로 야구방망이나 벽돌 등으로 폭행한 뒤 돈을 빼앗았다고 한다. 또한 부녀자를 납치하여 돈을 빼앗고 풀어주는 등 살해 이전에도 납치를 빈번히 저질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주유소를 목표로 3번 강도 사건을 저질렀는데 이는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와는 달리 실제 사건은 조직적으로 범행을 모의한 후 야구방망이로 폭행하고 회칼로 위협하여 현금을 갈취한 것이다.
1996년 10월 29일 도난 차량을 검문하던 도중 5명을 검거했다. 도난차 사건의 경우 대개 도난한 차량으로 납치를 하는 사건도 연관되어 따라나오기 때문에 경찰이 혹시나 해서 차를 훔친 것뿐 아니라 사람도 납치한 게 아니냐고 묻자 조직원 중 가장 어렸던 17세 이 모 군이 "맞다. 납치해서 죽였다."고 답변하는 바람에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후 시체를 묻었다는 현장에 도착하는데 소금 창고 바닥을 파 보자 진짜로 나체의 여자 시체가 나왔다. 이상한 점은 목이 꺾여 있었다는 것인데 생매장하던 도중 구덩이가 너무 얕아서 목을 꺾어서 묻었다고 한다. 이러한 잔인한 범죄는 당시 지존파 사건과 함께 굉장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이후 붙잡혀 리더인 최정수에게는 사형[2] , 부두목과 행동대장인 박지원과 정진영은 무기징역의 중형을 선고받았고[3] 나머지 조직원 6명은 가담 정도에 따라서 징역 6년[4] 에서 1년 6개월 및 집행유예 3년[5] 을 선고받았다.
가장 많은 사형수를 수감하고 있는 서울구치소에서 경비교도대로 복무한 배우 박재정의 경험담에 의하면 제일 기억에 남았던 사형수가 바로 이 조직의 두목인 최정수였다고 한다. 최정수는 2000년대에 들어 간증을 하는 등 종교에 귀의한 상태이며 2006년 <그것이 알고싶다> 378회에 출연하여 자신의 과거와 근황을 밝혔다.해당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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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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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이야 어코드는 부자들이 타는 차는 아니지만 그때 당시에는 어코드도 부의 상징이었다. 1989년부터 1994년까지 대림에서 수입했다가 1995년부터 타 업체에서 수입했다.[2]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확정 날짜가 1997년 12월 12일이었고 사형 확정 18일만에 형을 집행하는건 문세광 같은 특수한 범죄자가 아닌 이상 사례가 없다. 이후 사형 집행이 동결되어 21세기에도 광주교도소 최장수 사형수로서 수감 중이다.[3] 특히 정진영의 경우에는 재판정에서 퇴정하면서 판사에게 "야, 이 XX야! 네가 그러고도 판사냐? 우리가 평생 징역 살줄 아느냐? 나가면 너부터 먼저 죽여 버리겠다!"고 외치며 욕설을 퍼부었다.[4] 사건 당시 20세의 성인인 유삼봉, 김진오가 선고받았다. 2002년 만기 출소.[5] 아직 미성년자였던 박종남과 최 모군, 윤 모군, 이 모군이 선고받았다. 특히 이 모군은 범행에 매우 소극적으로 행동했고 나이가 매우 어렸다는 점을 감안하여 징역 1년을 살고 이듬해 출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