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헤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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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작 전쟁영화 벌지 대전투에 등장하는 가상 인물. 계급은 대령. 영국 배우 로버트 쇼(1927~1978- 영화 죠스에서 상어사냥꾼 퀸트 역으로도 알려진 배우)가 맡아 연기했다. 모티브는 요아힘 파이퍼.

독일인이라면 마르틴 헤슬러가 맞지만 영어이다보니 마틴으로 나온다. 다만 발음은 영락없는 독일식. 포로로 잡힌 월렌스키 소령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는데, W 발음을 죄다 V로 발음하고 있다(예컨대 "What is it?"을 "Vhat is it?"으로 발음하는 식) 오래전 MBC 명절특선 더빙판에서 양지운이 명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1. 영화 속 행적[편집]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전선에서 독일군 전차연대장으로 싸우다 차출되어 서부전선의 연합군을 공격하는 전차여단장으로 선발되어 최전선에 나선다. 이미 1941년에 독일이 승리할 수 없음을 알았고[1][2] 포로로 잡힌 미군 병사에게서 나온 신선한 초콜릿 케잌을 보고 전황이 절망적인 것을 알아차리는 등 유능한 장교.[3][4][5] 자신의 상관인 콜러[6] 상급대장과의 대화에서는 나치 독일 지도층에 대한 불만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공세의 선봉에 선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철저하게 부하들을 통제하거나 이기지 못하는 전쟁이라도 계속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등 냉혹 무자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악한 나치라기보다는 단순히 싸움을 좋아하는 맹장인 셈.

하지만 다른 부대가 연합군 포로들을 집단 학살한 것(말메디 학살)에 대한 정보를 다른 포로인 월렌스키 소령(찰스 브론슨)에게 듣고 이를 상급대장인 상관에게 무저항 포로를 죽이는 비열한 짓을 저질렀다며 강력하게 따져묻기도 했다. 그러자 전투 중에는 어쩔 수 없다던 상관에게 이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상식인으로서의 면모도 있다. 게다가 앙블레르 점령 이후 그 곳에서 어떻게 괜찮은 음식을 구해서 콘라드 상사가 준비하자 그걸 보고 "전차는 기름으로 움직이고 군인은 전투식량으로 움직인다고 내 분명히 말했잖나!? 나는 내 부하들처럼 먹어야 하니 당장 치우게!"라고 명령하는 모습까지.[7] 그리고 극중에 영어를 잘하는 독일군 특수부대를 미군 군복을 입히고 작전에 투입하는 것도 그다지 좋게 보지않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비열한 전투에 대해서 거부감을 보이며 정정당당한 정면승부전을 좋아하는 맹장인 듯 싶다. 그리고 자신을 전쟁광이라 부르는 당번병인 콘라드 상사를 옛정을 생각해서 군사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다른 부대로 전속시켜준다.[8] 덕분에 콘라드 상사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엔딩에 모습을 보였다.[9][10]

마지막에는 별동대의 선봉에 서서 미군의 연료 저장소를 탈취하기 위해 전진하지만 미군의 저항에 막혀 실패하고, 본인도 연료 드럼통 굴리기 공격(…)에 당해 최후를 맞이한다. 폭발 직전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보이기는 해도 죽을 때 음악이 장엄한 군가같은 배경음악이 나오며 그나마 멋진 악역의 최후 장면에 알맞는 묘사를 했다.

2. 평가[편집]


할리우드 미디어에서 그나마 가장 멋지게 나온 나치 독일군 배역이기도 하다. 다만 당시 제작진들은 헤슬러가 너무 멋지게 나온다고 유태계들 반발이 우려된다고 몇몇 부분을 고치기도 했다. 이를테면 헤슬러가 자신을 저격하려던 소년병을 살려주고 그 아버지를 대신 사살하게 하는 장면을 추가했다고 한다. 그래도 전쟁광적인 면도 보여주잖아 그리고 실제 모티브가 된 요아힘 파이퍼는 말메디 학살 주범으로 비난을 받았고 이로 인해 복역하고 결국 전쟁이 끝나고 31년이나 지나서도 증오 속에 살해당하고 시체도 불태워졌으며, 여론 또한 당연히 죽을 놈이 죽었다라고 하여 수사도 흐지부지되어 범인이 영원히 드러나지 않았던 것과 대조적으로 헤슬러는 저항을 못 하는 상대를 학살하는 것은 군인으로 할 짓이 아니라고 따졌다.

이 영화를 통해 판처리트가 단순한 독일의 군가를 넘어서 세계 군사 애호가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를 마련한 캐릭터다. 해당 장면에서 나이 어리고 경험없는 전차장들을 보고 걱정하던 차에, 한 장병이 판처리트를 부르며 의지를 보이자 곧바로 다른 장병들도 같이 따라부른다. 그러자 헤슬러 역시 이들의 용기에 마음이 움직여 이들이 노래를 부르는 중간에 당번병인 콘라드 상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지시한 후 자신도 따라 부르는 명장면을 연출한다.그리고 그놈들은 마지막 전투에서 다 전차 버리고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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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1년 6월 22일에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되었다. 물론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독일군 장병들은 자신들이 소련과의 전쟁에서 빠른 시일 내에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이 일어난 지 2년도 안 된 시점에 적국인 영국과 독일의 동맹국인 스페인, 이탈리아, 핀란드, 중립국인 스웨덴, 포르투갈, 스위스를 제외한 유럽 국가들을 군사적으로 점령하는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 더군다나 오래 전부터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슬라브인들보다 우월하다고 믿아었던 풍조가 강했고, 이를 나치가 안 좋은 쪽으로 극대화를 하면서 독일군 장병들의 사기를 더욱 복돋아 주었다. 따라서 거의 모든 독일의 군인들은 소련과의 전쟁에서 진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이 작전이 시작하고 4달이 지난 10월까지는 큰 문제 없이 소련을 패배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허나 소련은 독일군의 예상과는 달리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전열을 정비해 저항했으며, 설상가상으로 독일군 내부의 실책과 러시아의 겨울까지 겹쳐서 독일군의 진격은 더뎌졌다. 결국 12월 5일을 기점으로 한계에 다다른 독일군의 진격은 멈췄고, 그날부터 시작된 소련군의 반격에 후퇴하다가 다음해 2월에야 겨우 전선 수습에 성공했다. 허나 독소전쟁은 독일이 바라지 않았던 장기전이 되고 말았으며, 이 시점부터는 독일이 소련을 이길 가능성이 사라저버렸다.(헤슬러도 이 시점부터 제대로 된 현실 인식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전까지는 상기한 이유들로 인해 도저히 질 수가 없는 전쟁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2] 그래도 1942년 8월까지는 독일군이 건재했기 때문에 이들이 일방적으로 여러 전투를 주도하는 공세 양상으로 흘러갔으나 9월과 10월 두 달 동안 소련군의 격렬한 저항으로 인해 진격이 멈추자 이러한 흐름은 끝났으며, 11월에는 소련군이 실시한 천왕성 작전으로 인해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포함한 남부 전선의 판세가 소련군에게 크개 유리해지더니 결국 다음해 2월에 독일이 대패하여 균형이 크게 깨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서 독일이 승리하면서 소련의 반격을 잠재우는 듯 했으나 그해 7월과 8월에 벌어진 쿠르스크 전투에서 독일군이 또 대패하면서 전력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자, 독일이 소련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1942년 말부터 시작된 영국군의 반격과 미군의 본격적인 참전으로 인해 1943년 5월에 북아프리카에서 독일군이 최종적으로 패배하고 8월에는 시칠리아까지 빼앗기며 서부전선에까지 위기가 찾아오면서 독일의 패망이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결국 많은 독일군 장교들이 반 히틀러 진영으로 돌아선 이후 히틀러를 제거하려던 음모를 꾸민 후에 실행에 옮겼다가 파멸하게 된다. 설렁 반 히틀러 진영에 가입하지 않은 장교들조차 일부 광신적인 나치 성향의 장교를 제외하면 너도 나도 독일의 패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이들은 헤슬러처럼 히틀러와 나치당의 통치를 인정하고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에서 싸우다 죽거나 항복하는 것을 택했지만.[3] 모티브로 추정되는 전쟁 야사가 있었는데 어느 날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군 아프리카 군단의 사령관인 에르빈 롬멜 원수가 노획한 미군 물품들을 보던 도중 한 미군 병사의 어머니가 아들의 생일 기념으로 보낸 신선한 초콜릿 케이크 조각을 보고 경악한 사례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독일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탓에 주 전선인 동부전선에도 보급 부족 사태가 자주 발생하고 있었다. 하물며 부차적인 전선으로 취급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의 보급 순위는 뒤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 이야기가 나온 시점에는 연합군이 지중해의 제해권과 제공권을 완전히 차지한 시점이라 독일군에게 정상적인 보급은 이미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사실 아프리카 군단은 전성기 시절에도 보급이 원활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가지고 있는 보급품들을 최대한 아껴서 써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급품이 다 떨어질 뻔 했다가 토브룩 전투의 승리로 노획한 대량의 영국군 물자로 겨우 숨을 돌렸던 형편이었다. 반면에 적군인 영국군은 보급선만은 끝까지 사수하였기 때문에 계속된 패배에도 불구하고 반격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결국 빵빵한 보급을 받으며 만반의 공세 준비를 한 영국군이 엘 알라메인 전투 후반에 대대적인 반격에 들어가자 보급 한 번 제대로 못 받은데다 지치기까지 한 독일군은 연패하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미군까지 독일군과의 전투에 가세하자 아프리카 군단의 몰락이 가속화 된 끝에 튀니지 전투를 끝으로 독일군은 북아프리카에서 물러나게 된다.[4] 참고로 앞 각주에서 언급한 시기는 나치 독일이 아직은 팔팔하던 시절일 때 이야기이다. 영화의 배경인 아르덴 대공세 당시에는 독일군의 열악한 보급 사정과 연료 부족은 더더욱 심각해져서 작전의 주 전력인 기갑 부대의 연료 사정부터가 열악한데다가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적의 연료를 노획하여 움직인다는, 현대전에 도저히 쓸 수 없는 계획이 당시 독일군 수뇌부의 공식적인 작전지침 중 하나였다. 허나 연합군은 독일군의 의도를 재빨리 눈치챘고, 곧바로 자기들이 가진 석유나 식량 등을 적군의 진격으로부터 확실하게 안전하다고 판단된 후방으로 옮기거나 사용 불능으로 만드는 등의 조치를 하여 독일군의 주요 군수 물자 노획 시도를 조기에 차단했다. 그 결과로 인해 공세 초기에는 파죽지세였던 독일군의 진격은 사흘 만에 더뎌지며 사실상 작전이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독일군의 진격 초기에는 흐렸던 날씨까지 맑아지자 다시 활동이 가능하게 된 연합군 항공 전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연합군 지상군이 맹렬히 반격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버티지 못한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아르덴 대공세는 대실패로 끝나게 된다.[5] 반면 아르덴 대공세 시기의 미국은 북아프리카 전선 당시보다 훨씬 더 나아진 물자 생산 및 보급 능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연합군의 물주가 되어 자국에서 시추한 대량의 석유를 포함한 기타 여러가지 군수물자와 생필품을 뿌렸는데, 작게는 공중수송을 통해 벌지 전투 당시 고립된 자국군의 개별 부대에게, 크게는 추축국과 같이 싸우던 동맹국들인 소련, 대영제국, 자유 프랑스, 중화민국 등에게 무기부터 생활용품까지 별의 별 물건을 전후에도 쓰고 남을 정도로 엄청나게 뿌리고 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때 미국은 독일과 일본을 상대로 양면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 행동을 시전했었으며, 무기대여법으로 인하여 나라 살림이나 전황이 나빠지기는 커넝 전시 군수/비군수 물자의 대량생산 덕에 국가 살림은 더 좋아졌으며, 전황도 단순히 좋은 걸 넘어 자국의 승리를 눈 앞에 두고 있었던 상황이었다.[6] 영문명은 Kohler. 게오르크 폰 퀴힐러 원수에서 유래된 듯한 이름이다. 이쪽은 Küchler. 발음이 매우 유사하다. 다만 퀴힐러 원수는 1944년 초에 히틀러에 의해 파면되어 예비역으로 물러났기 때문에 아르덴 대공세에는 참여하지 않았다.[7] 다만 나중에 헤슬러의 기분이 좋아진 후에는 콘라드가 앙블레르에서 가져왔던 음식이 있는지 물어본다.[8] 참고로 콘라드 상사 역을 맡은 한스 크리스티안 블레흐(1915~1993)는 지상 최대의 작전(베르너 플루스카트 소령), 레마겐의 철교(카를 슈미트 대위) 등 여러 유명한 전쟁영화에 자주 출연하며 주연 못지않은 뛰어난 명연기를 보여 호평을 받았다. 게다가 블레흐는 실제로 2차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 소속으로 동부전선에서 소련군과 싸운 노병이기도 하다![9] 미군의 연료 저장소 탈취 작전 도중에 연료 재보급을 위해서 잠시 복귀하는데 거기서 콘라드 상사는 드럼통을 굴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콘라드 상사는 드럼통을 굴리다가 전차가 오는 것을 보고 다시 드럼통을 굴리면서 갔다.[10] 잠시 멈춰서 소총과 무장을 벗어던지고 봇짐가방 하나만 어깨에 들쳐매고 다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