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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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마크 리처드 헌트
(Mark Richard Hunt)

생년월일
1974년 3월 23일 (50세)
국적
뉴질랜드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출생지
오클랜드, 뉴질랜드
거주지
시드니, 뉴 사우스 웨일스
입식 전적
43전 30승 13패 (13KO)
종합격투기 전적
29전 13승 14패 1무 1무효

10KO, 3판정

5KO, 7SUB, 2판정
체격[1]
178cm / 120kg[2] / 183cm
링네임
The Super Samoan
주요 타이틀
WKBF 오스트레일리아 슈퍼헤비급 챔피언
K-1 2000 오세아니아 그랑프리 우승
K-1 2001 월드 그랑프리 예선 멜버른 우승
K-1 2001 월드 그랑프리 후쿠오카 우승
K-1 2001 월드 그랑프리 우승
기타
K-1 2002 월드 그랑프리 3위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편집]


뉴질랜드의 전 킥복서, UFC 헤비급 종합격투기 선수. 2001 K-1 월드 그랑프리 우승자다.


2. 전적[편집]


※ 킥복싱



※ 종합격투기




  • 무효: 브록 레스너[3]


3. 커리어[편집]



3.1. K-1[편집]


WKBF 오스트레일리아 챔피언이었던 헌트는 2000년 K-1 무대에 입성, 첫 출전한 무대에서 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2001에는 결승에서 디펜딩 챔피언 어네스토 후스트와 맞붙었으나 판정패, 패자부활전으로 레이 세포와의 경기를 치른다.

당시 K-1 최강의 하드펀처였던 세포를 상대로 헌트는 가드를 내리고 쳐볼테면 쳐보라는 식의 도발을 했고 세포 역시 노 가드로 맞서며[4]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난타전을 펼쳤다. 비록 판정으로 패했으나 엄청난 파이팅을 팬들의 뇌리에 각인시킨 헌트는, 승자인 세포가 눈부상으로 WGP 출전권리를 포기함에 따라 패자부활전에서 아담 와트를 꺾고 월드 그랑프리에 출전했다.

8강에서 만난 상대는 제롬 르 밴너. 우월한 리치를 살린 벤너의 타격에 밀려 링구석으로 몰린 헌트는 이번에도 가드를 내리고 턱을 들어올리며 벤너를 도발했다. 하지만 벤너는 쉽게 들어오지 못했고 순간적으로 스위치에 성공한 헌트는 역으로 벤너를 코너에 몰아놓고 펀치를 쏟아부어 역전 KO승을 거둔다.[5]



벤너를 격침시킨 헌트는 스테판 레코프란시스코 필리오를 연달아 꺾으며 2001년도 월드 그랑프리 우승자로 등극한다.

하지만 곧 그를 공략할 파해법이 확립되고 부상과 슬럼프가 겹치면서 부진에 빠지게 된다. 2002년 나고야에서 미르코 크로캅에게 하이킥으로 다운을 내준 끝에 판정패했고, 파리에서는 벤너에게 패했다. 2002년 월드 GP에서 또 다시 벤너에게 패하면서 입식 파이터로서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결국 2003년 개리 굿리지전의 승리를 마지막으로 PRIDE.행을 돌연 선언한다.


3.2. Pride, 그리고 다시 K-1[편집]


MMA 데뷔는 2004년 6월 PRIDE 2004 무차별급 그랑프리였다. 이 경기에서 일본의 유도 영웅 요시다 히데히코를 맞은 헌트는 미숙한 그래플링 대처능력을 보이며 암바에 걸려 패배하고 만다.

하지만 2004년 10월 UFC 14 헤비급 토너먼트 준우승자인 댄 보비쉬를 1라운드 KO로 잡아내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2004년 12월 연말이벤트 남제에서 반달레이 실바와 대전하여 판정승을 거두었다.[6] 화끈한 난타전으로 유명한 실바가 오히려 클린치를 시도하는 희한한 광경이 벌어진 끝에 헌트의 승리가 선언되었다.



2005년 12월의 남제에서는 과거 K-1에서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던 미르코 크로캅을 상대로 리벤지를 성공시켰다. 예전에 자신을 다운시켰던 크로캅의 하이킥을 이번에는 맷집으로 씹어버리며[7] 시종 크로캅을 압박했고 크로캅은 상대에게 등을 보이며 달아나는 추태를 보인 끝에 판정패한다.

2006년 5월에는 판크라스 초대 슈퍼헤비급 챔피언 코사카 츠요시를 2라운드 KO로 쓰러뜨리며 그래플러를 상대로도 승리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걸 맞고도 멀쩡했다.

2006년 7월에는 UFC 7대 헤비급 챔피언 조쉬 바넷과 대결했지만 초반 테이크 다운에서 기무라에 걸려 어이없이 패배했다.

2006년 12월 '마지막 황제' 표도르 예멜리야넨코와의 경기에서는 표도르를 상위에서 압박하며 기무라 그립을 완성시키는 등 선전했으나 그라운드 운영 미숙으로 1라운드 8분만에 기무라에 걸려 패배한다. 이때 표도르가 하프 가드에서 기무라를 잡지만 다리가 걸려있는 것을 본 헌트의 세컨이 헌트에게 '움직이지 말고 누워서 쉬어라'라고 지시를 했다.[8] 헌트는 지시를 그대로 따랐는데 그만 효도르가 몸을 비틀며 기술을 성공시키고 말았다.

이후 PRIDE가 도산하게 되고, 그는 K-1으로 다시 돌아왔다.

2008년 7월 DREAM에서 알리스타 오브레임에게 초살 키락패를 당한다. 오랜만에 돌아온 K-1에서는 세미 슐트에게 돌려차기로 생애 첫 KO패를 당했고, 2008년 12월 K-1 다이나마이트에서는 자신보다 35kg나 가벼운 멜빈 만호프에게 18초 초살 KO패를 당하면서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2009년 5월에는 급기야 DREAM의 전설적인 막장 토너먼트인 '슈퍼 헐크 토너먼트'에 출전, 여기서도 2체급 아래의 선수인 게가드 무사시에게 크루시픽스 포지션을 헌납한 끝에 기무라로 패하고 만다.


3.3. UFC[편집]


2009년 이후로 1년이 넘도록 MMA 무대에 서지 못하고 있다가 2010년 7월 별안간 UFC에서 경기를 하게 되었다. UFC측은 PRIDE로부터 넘겨받은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2007년에 넘겨받은 계약을 한사코 미루고 있다가 3년이 지나서야 꺼낸 것이기 때문에 발표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UFC 진출후 이변을 보여주며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한물 간 스타의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3.3.1. vs 션 맥코클[편집]


2010년 9월 UFC 119에 출격, 역시 UFC 데뷔전을 갖는 션 맥코클과 격돌했다. 맥코클은 2m의 거구에 팔길이만도 20cm 정도 차이가 났다. 최소한 헌트 이기라고 붙여준 대전은 아닌 듯. 초반 테이크다운을 성공시켰으나 상위에서 기무라에 잡혀 1분만에 초살 서브미션패를 당했다.


3.3.2. vs 크리스 턱셔러[편집]


2011년 2월 UFC 127 크리스 턱셔러와의 단두대 매치에서 KO승을 거두었다. 1라운드부터 다운을 빼앗았고, 곧이어 레프트로 턱셔러의 이마에 컷을 내며 승기를 잡았다. 한때 싱글렉에 당해 기무라를 잡히며 위기에 빠지기도 했으나 하프에서 잘 막아냈고 2라운드에 라이트 어퍼컷을 꽂아넣으며 턱셔러를 그대로 눕혀 버렸다. 이 승리로 Knockout of The Night에 선정되어 보너스로 $75,000를 받았으며, MMA파이팅의 기자인 아리엘 헬와니로부터 역대 최고의 피니시라는 찬사까지 들었다.


3.3.3. vs 벤 로스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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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비기로 승리하는 마크 헌트

2011년 9월에는 UFC 135에서 구 IFL의 원투펀치였던 벤 로스웰과 대결했다. 뛰어난 기량의 로스웰을 상대로 힘겨운 경기가 예상되었고, 역시나 경기시작 1분만에 테이크다운을 당하며 곧바로 마운트를 내주는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헌트는 몸을 비틀며 일어났고 이후 스탠딩에서 강력한 펀치를 내지르며 로스웰을 몰아붙였다. 이후 로스웰의 태클을 효과적으로 막아냈고, 오히려 역으로 로스웰을 눕혀버렸다! 2라운드에서도 G&P로 로스웰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고 3라운드에는 빅 벤의 체력이 방전된 틈을 타 필살 개비기를 선보이며 만장일치 판정승을 따냈다.


3.3.4. vs 칙 콩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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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일본에서 열린 UFC 144에서 칙 콩고와 맞붙었다. 1라운드 초반 콩고가 케이지까지 몰아붙이며 레슬링으로 압박하려 했지만 헌트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콩고의 펀치를 피하며 그에게 그림같은 왼손 카운터를 적중시켜 엉덩방아를 찧게 만들었다. 이어진 스탠딩 공방에서 가드 위에 때린 헌트의 오른손 주먹에 휘청거린 콩고는 뒷걸음질쳤고, 헌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른손 연타로 콩고의 안면을 두들겼다. 이에 콩고가 쓰러지자 파운딩 펀치를 연결했고, 심판은 그대로 경기를 중단하며 2분 11초만에 헌트의 TKO승을 선언했다. 이 경기는 칙 콩고가 UFC에서 가진 총 16번의 경기 중 첫 KO패여서 헌트의 승리는 더욱 눈에 띄었다.


3.3.5. vs 스테판 스트루브[편집]


2012년 5월 26일 UFC 146에서 스테판 스트루브와 경기가 잡혔으나 대회가 열흘도 남지 않은 시점에 후방십자인대 파열을 당하며 경기에서 아웃되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후방 십자인대 파열부상까지 겪어서 무리가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일본 쇼프로에서 밥 샙이랑 줄다리기 시합도 하는등 몸 상태는 무리가 없어보인다.마크 헌트>밥 샙>오브레임, 줄다리기 승부 놀라운 결과

그리고 2013년 3월3일 UFC on FUEL TV 8에서 213cm의 거구의 파이터 스테판 스트루브를 상대했다. 초반에는 상대의 신장과 그라운드 기술에 고전하는 듯 했지만 오히려 스윕해내며 라운드 막판에는 사이드 마운트까지 잡았고, 2라운드에서도 한때 마운트를 잡힌 것 외에는 그라운드에서 한층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양 선수 모두 그라운드 공방과 타격전으로 체력이 떨어진 채 맞이한 3라운드에서 묵직한 타격 공방을 벌인 끝에 양 훅으로 스트루브를 매트에 눕혀버리며 3라운드 1분 44초만에 TKO승을 거뒀다.

당시 KO 장면

이로써 UFC 4연승을 거뒀고 나이 마흔에 헤비급 랭킹 10 안에 진입할 것이 유력시되고 있다. 마지막에 레프리가 스톱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대로 뒤돌아서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9]참고로 패배한 스트루브는 턱이 부러졌다고 한다.

↓↓ 당시에 부러진 스트루브의 두개골 엑스레이. 턱이 아예 부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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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 vs 주니어 도스 산토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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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검증을 모두 마치고 드디어 UFC 160에서 특급매치가 잡혔다.

상대는 당시 UFC헤비급 최고의 하드펀쳐로 불렸었던 주니어 도스 산토스. 콩고전 이후로 헌트 vs 주도산을 꿈꾸던 국내 팬[10]들이 꿈꾸던 그 매치업이 잡혔다. 5월에 붙을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경기를 약 10일 앞두고 10년 전 폭력 사건에 휘말려 체포된 경력때문에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경기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지만 다행히 비자가 발급되면서 위기를 잘 넘겼다.

짧은 리치의 마크 헌트는 산토스를 최대한 자신의 리치로 끌고 올려고 밀고 들어갔으나, 산토스는 긴 리치와 빠른 스텝과 잽만으로 마크 헌트를 요리했다.

1라운드에는 케인 벨라스케즈를 침몰시켰던 산토스의 오버핸드를 맞고 다운을 당했으나, 금방 맷집으로 회복하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사실로는 이때 이미 발가락이 골절된 상황이었다고 한다. 산토스는 특유의 스탭과 광속 오버핸드 라이트로 큰 데미지를 주었으나, 헌트 역시 계속 산토스의 백스탭을 끊임없이 따라가며 눈가의 커팅을 만들어낸 성과를 이뤘다.

이후 2라운드에서 계속되는 스탠딩 타격전 속에서 기회를 얻나 싶었지만 기습적인 테이크 다운을 당해 그라운드 공방이 진행되고, 엄청난 야유[11] 속에서 라운드 막판 그라운드에서 탈출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2라운드도 종료되었다. 하지만, 이미 1, 2라운드 동안 헌트의 체력은 바닥난 상태였고, 산토스의 긴 리치와 체력에 리드당하다가 결국 3라운드에 스핀킥을 맞고 KO패를 당했다.

진다는 여론이 강했다곤 해도 이런 KO패를 당할줄은 몰라서 국내 커뮤니티는 여러 의미로 멘붕중. 불혹의 나이에 주도산의 타격에 3라운드까지 분전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 이 경기 직후 주도산과 헌트 둘 모두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 5만달러를 수령했다. 또한 그전까지 6000달러라는 최소 파이트머니만을 받아 계약에 불평했던 것에 대한 답례로 16만 달러라는 25배가 넘는 순수 파이트머니를 수령했다.[12] 시합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1라운드에 발가락이 부러진 상태였지만 최선을 다했었고, 주도산은 나에게 벅찬 상대였으며 나를 응원해준 팬들에게 고맙고 시합 결과에 대해 죄송하다는 글을 올렸다.


3.3.7. vs 안토니오 실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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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열리는 UFC Fight Night 33에서 안토니오 실바를 상대로 복귀전을 펼쳐 헤비급 역사상 가장 치열한 명승부를 보이면서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1라운드에는 난전 중에 실바의 펀치를 허용하며 넉다운을 당했고, 이후 실바가 침착하게 종아리쪽을 공략하는 낮은 로우킥 위주의 아웃 파이팅을 하며 점차 밀리는 양상을 보였는데, 3라운드 후반 헌트가 실바에게 다운을 뺏으면서부터 헌트도 데미지를 입고, 실바도 데미지를 입게 되면서 아웃파이팅을 위해 링 바깥을 돌던 실바의 체력이 크게 떨어져 견제 위주였던 경기 양상이 헌트가 들어오면 실바가 맞받아치는 식으로 치열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 4라운드까지 헌트가 타격에서 우위를 점했으나 TD 실수로 마운트를 내주면서 또 다시 상황이 역전, 풀 마운트를 내준체 파운딩을 얻어맞으며 KO 직전까지 갔으나 공이 울리면서 기적적으로 TKO는 면했다.

이후 5라운드에서는 두 선수 모두 체력이 방전되고 데미지를 많이 입은 탓에 가드도 올리지 않고 난타전을 펼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서는 실바가 이마에 큰 컷이 생긴 탓[13]에 타격을 무지막지하게 허용하며 거의 KO직전까지 갔으나 근성으로 끝까지 버티며 5라운드까지 종료되었고, 무승부가 선언되었다.[14] 다만 판정에는 논란이 있었는데, 1, 2, 4라운드는 실바가 우세했고, 3, 5라운드는 헌트가 우세했다. 이 중 5라운드는 헌트가 압도적으로 우세했기에 10-8을 줬는데, 그런식으로 치면 4라운드도 실바에게 10-8을 충분히 줄 수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논란이 나왔다.

주도산전 이후로 포도상구균 감염과 발가락 골절 수술이후로 단 6개월만에[15] 복귀한 경기에서 그야말로 인생경기라 할수 있는 매치를 보여줬다.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한 남자들의 노가드매치[16]속에서 안토니오 실바와 무승부가 나왔는데, 일순 판정에 대한 야유를 하던 호주 관중들이 판정 이후 서로를 끌어안는 장면에 기립박수를 칠 정도로 명경기였다.

데이나 화이트 UFC 사장은 "헌트와 실바의 경기는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로 선정되었고 두 파이터 모두 승리 보너스를 받을 것이며 둘에게 섬이라도 사주고 싶은 기분"이라고까지 이야기했고, 정찬성도 올 한해 최고의 명경기라 극찬하고, 김대환 해설위원은 '이런 경기는 승패가 의미가 없다'라고 전문가와 팬들 모두가 극찬했던 경기였다.

다만 이 경기 후 안토니오 실바가 TRT 요법을 받고 경기룰 뛰었는데, 그만 TRT 기준 수치를 맞추지 못하면서 징계를 먹는 바람에[17] 역대급 명승부에 오점이 남고 말았다.


3.3.8. vs 로이 넬슨[편집]


2014년 9월 20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UFC Fight Night 52에서 로이 넬슨과 시합을 가졌다. 넬슨의 주특기인 오버핸드 라이트를 비롯하여 여러차례의 TD 시도를 모두 막아낸 후, 어퍼컷을 적중시켜 KO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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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진기한 KO 장면인 것이, 오른손 어퍼컷이 걸린 걸 느끼고는 고개를 숙여서 상대 얼굴을 확인하고는 아직 쓰러지는 중인 넬슨을 앞에 놓고 만세 포즈. 뒤늦게 시합 중단시키려 뛰어든 심판이 밀쳐서 만세 포즈 하다 앞으로 넘어질 뻔 한 것도 나름 개그였다.


3.3.9. vs 파브리시오 베우둠 (잠정 타이틀전)[편집]


그리고 드디어 타이틀 전선에 도전하게 되었다. UFC 180에 출전 예정이었던 케인 벨라스케즈가 무릎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대타로 나서 파브리시오 베우둠과의 잠정 챔피언전에 나서게 된 것. 2014년 만 40세인 헌트에게 있어서 거의 마지막 기회라고도 볼 수 있겠다.

1라운드 중반 빅샷을 적중시키며 베우둠에게 다운을 빼앗은 것처럼 보이긴 했으나 이는 베우둠의 함정이여서 따라 들어가지 않았고, 이후로도 타격위주의 경기 운영을 하며 베우둠을 몰아붙였고, 베우둠에게 TD를 성공시켜 탑 포지션까지 빼앗았다. 그러나 이렇다 한 모습은 보이지 못하고 탈출하였고, 그렇게 1라운드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며 마쳤다. 2라운드에도 킥을 시도하던 베우둠에게 슬립성 다운을 한 차례 더 뺏었으나 이번에도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이후 가드를 내리며 타격전을 유도하였으나 베우둠의 아이페이크 낚시에[18] 머리에 니킥을 허용하며 다운을 당했고, 이후 파운딩 세례를 맞으며 TKO패를 당하고 말았다.

비록 패배하긴 했으나 경기장의 고산 지대에 적응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헤비급 1위를 상대로 가진 경기 치고는 꽤 선전했다는 평.


3.3.10. vs 스티페 미오치치 [편집]


5월 10일 'UFC 파이트 나이트(UFN, UFC FIGHT NIGHT) 65'에서 그는 스티페 미오치치에게 113개의 유효타 그리고 361개[19][20]의 총 타격을 허용하며 심판의 경기중단으로 5 라운드 TKO패했다. 이미 2라운드 부터 기력을 잃고 일방적으로 관광을 당하고 있었으나 지속되는 파운딩 세례에도 꿋꿋이 버텨 일어나는 대단한 근성을 보여주었다. 경기후 트위터에 멍투성이 얼굴사진과 함께 "노장은 패했다. 팬들에게 미안하다. 미오치치는 대단한 선수" 라는 글을 올려 팬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미오치치는 타국에서 뛰는 원정경기임을 감안하더라도 헌트를 보러온 호주 관중들에게 온갖 불쾌한 야유와 고함을 25분 가까이 들었는데 경기후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오히려 흥분하지 않고 냉정하고 현명하게 헌트를 피니쉬 시키는데 관중들의 야유가 도움이 됐다고.


3.3.11. vs 안토니오 실바 2[편집]


11월 15일 UFC 193에서 1년 11개월만에 안토니오 실바와의 리매치가 치뤄졌는데, 1라운드 1분 20초를 남겨두고 헌트의 펀치가 실바의 관자놀이 부근에 스쳤다. 스쳤는데도 거기에 맞은 실바가 고꾸라지면서 헌트의 펀치세례가 이어졌고, 1차전과 달리 2차전에서는 깔끔하게 1라운드 TKO승을 거뒀다! 1년 2개월만에 거둔 값진 승리기도 하기에 더 의미가 있었던 경기였다.


3.3.12. UFC 서울 관련 에피소드[편집]


그리고 크로캅의 은퇴로 인한 UFC서울의 대타로 출전하는것이 확인되었다! ..인줄 알았는데 오보였다. 해당 기사는 삭제된 상태이며, 켄 버거는 마크 헌트의 한국 대회 출전에 대해 "다음 기회에"라며 웃었다. 이어 "현재로서는 다른 경기의 추가는 예정돼 있지 않다"고 확인했다.

....인줄 알았는데 서울 대회 흥행을 위해 벌이는 홍보 이벤트를 위해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외 3명의 파이터들[21]과 함께 내한했다. 특히 11월 26일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사인회 는 당초 공지했던 밤 9시까지였으나 사람들이 많이 몰린 덕분에 30분 더 연장했다.


3.3.13. vs 프랭크 미어[편집]


1월 8일, UFC는 3월 20일의 UFN(UFC Fight Night) 85에서 헌트가 프랭크 미어와 붙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대회는 호주에서 열린다.

경기 이전, 미어는 헌트에게 "하체 관절기를 조심하라"며 "기술에 걸리면 늦기 전에 탭을 쳐야 크게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지지 않고 헌트는 "내 주짓수 실력도 수준급"이라며 "미어의 서브미션 기술을 모두 방어할 것이고 KO로 경기를 끝낼 수 있다"고 맞받아치며 날카로운 독설전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3월 19일, 개체량 측정 현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측정을 진행하였다. 미어는 260파운드(117.93kg)를 기록했고, 헌트는 264파운드(119.75kg)로 겨우 통과하였다. 이날 두 사람의 복장이 미리 짠 것처럼 동일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검정색 티에 카키색 고무줄바지였는데, 티는 프린팅이라도 달랐지 바지는 아예 똑같은 제품이었다...,,

그리고 3월 20일, UFN 85 메인 이벤트이자 마지막 경기에서 맞붙었다. 시작하자마자 미어가 태클을 시도했고, 클린치까지 섞어 그라운드로 끌고 가려는 시도까지 했지만 헌트는 가볍게 피해냈고, 두 차례 클린치까지 피하며 미어의 움직임을 파악한 뒤 얼굴을 겨냥해 라이트 훅을 날렸다. 그 훅이 미어의 왼쪽 귀 뒤에 적중했고, 미어는 그대로 쓰러졌다. 헌트가 더 이상 때릴 필요가 없었고 경기는 3분 1초만에 1라운드 KO로 끝났다.

말 그대로 원샷 원킬이었다. 그 장면만 보고 싶다면 이곳이곳으로.

FULL 영상(Spotv) 하이라이트(Spotv) 경기 직후 인터뷰 영문판 1 영문판 2

헌트는 훅이 명중했음을 느끼자 쓰러진 미어에게 파운딩하러 따라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돌아서 관중석을 응시하며 옥타곤을 한 바퀴 돌았다. 호주 홈 관중들은 열광했으며 SPOTV 해설진은 할말을 잃었고, 중계창과 경기 후 에서 헌트는 다시금 상남자로 추앙받았다. 13년 중반, 주도산에게 KO패를 당하며 연승 기록이 4에서 끊긴 이후, 헌트는 이 승리로 3년만에 다시 2연승을 달렸다. 종합격투기 총전적 23전 12승 10패 1무.

이후 헌트는 기자회견에서 "내 펀치를 맞은 미어를 봤다. 그는 정신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따라 들어가 후속타를 치지 않았다. 그의 혼이 어디론가 나가 있었다"라고 말했고, "주도산 · 미오치치 · 베우둠 이 3명과의 재대결을 원한다"는 발언까지 하였다. 그 뒤 나온 기사

3월 26일, 맞상대였던 미어는 팟캐스트 '폰 부스 파이팅 MMA(Phone Booth Fighting MMA)'와의 인터뷰에서 "마크 헌트 주먹, 맞아 본 펀치 가운데 제일 강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다음날에는 러시안 파이터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와 헌트의 '조금은' 다른 행보를 비교한 기사가 나왔다.


3.3.14. vs 브록 레스너[편집]


UFC 200에서 공식 경기가 확정되었다. 상대는 브록 레스너. 경기는 7월 10일, 라스베이거스 티 모바일 아레나에서 열린다. 도박사들은 헌트의 우세를 점쳤고, 현 헤비급 챔피언인 미오치치주도산 역시 입을 모아 헌트가 레스너보다 우세하다고 보았다.

한편 헌트는 레스너에게 이례적으로 먼저 독설로 신경전을 걸었다. 레스너를 종합격투기 파이터인 척하는 사기꾼이라고 칭하면서 "진정한 파이터들의 세상에 파이터를 사칭하는 사기꾼이 낄 자리는 없다"고 말한 것.

신나게 도발까지하고 해외 도박 전문가들도 대다수가 헌트의 승리를 예상했으나, 약물로 도핑한 브록의 3라운드 판정승으로 끝났다. 1라운드에서는 브록 레스너의 테이크 다운 시도를 케이지를 잡고 버티려고 하는 바람에 심판이 헌트의 손을 쳤다. 2라운드에서는 나름 압박을 했지만 3라운드에서는 하위 포지션에선 맞을 수 밖에 없었다. 1라운드에 끝내주겠다는 건 결국 허세가 되어버렸다.[22] 레스너의 도핑 괴력과 그래플링이 헌트를 자꾸 케이지 바닥으로 끌어내림으로써, 헌트 특유의 스타일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것이 패배의 원인. 그래플링 방어가 약한데다 상대가 레슬링 괴물인 브록이었으니 상성이 전혀 맞지 않았던 듯하였다.

이후, 레스너가 USADA의 불시 약물(도핑)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1년 출전 정지와 함께 벌금 25만 달러[23]를 부과받고, 동시에 이 경기는 무효로 정정되었다.


3.3.15. vs 알리스타 오브레임 2[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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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1일, UFC는 2017년 3월 5일의 UFC 209에서 헌트와 오브레임이 붙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바로 위의 경기가 진행된 라스베이거스 티 모바일 아레나에서 진행한다. 이 대결은 K-1시절인 2008년 7월 21일, 두 사람이 드림(DREAM)에서 맞붙어 당시에는 오브레임이 서브미션으로 승리한 이후, 8년 만에 성사된 재대결이다.

브록 레스너와의 싸움으로 단단히 뿔이 나서 UFC데이나 화이트를 고소한다고 분노한 헌트였고, 싸우기 전부터 오브레임의 악수도 거절했다.[24] 과거 K-1 시절과 달리 약물이 다 빠진 오브레임이지만 이후 신중한 테크니션으로 변모하며 최상위 랭커들을 때려잡고 얼마 전 스티페 미오치치와 타이틀전을 치르는 등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때라 배당률은 오브레임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랭킹조차도 오브레임이 3위고 마크헌트가 8위로 차이가 있던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불괴에 강력한 한 방을 가진 헌트가 최약의 맷집을 보유한 오브레임한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역시나 오브레임은 헌트의 한 방을 경계하며 신중한 아웃파이팅 모드로 나왔고 헌트는 거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여 계속해서 피격되면서 데미지를 입었다. 게다가 1라운드 초반 로우킥이 오브레임의 방어에 막히는 순간 정강이에 생긴 깊은 컷으로 인해 경기 플랜에 엄청난 차질이 생겨버렸다. 클린치 깡패인 오브레임에게 클린치를 잡힌 후 니킥을 연달아 허용하면서 데미지가 축적되었지만 강력한 맷집으로 버텨 냈다. 오히려 간간히 날리는 카운터로 유리턱인 오브레임을 휘청거리면서 극적인 역전을 만드나 싶었지만 오브레임이 잘 버텨냈다. 결국 3라운드에서 그 유명한 오브레임 표 살인 니킥에 맞고 금강불괴도 어쩔 수 없었는지 그대로 실신해서 앞으로 고꾸라지며 KO 패배를 당했다.

헌트는 싸움이 끝나고 승자선언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옥타곤을 떠나버렸고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정강이 뼈가 1라운드의 킥으로 부러졌다고 올렸다. 헌빠들은 다리만 멀쩡했어도 헌트가 이겼을 것이라고 비겁한 정신승리를 했고 헌까들은 진 주제에 핑계를 댄다며 깠다. 진실은 헌트는 정강이 컷팅을 당하긴 했지만 정강이 뼈는 애초에 부러지지 않았다.# 헌트는 1차전처럼 초살당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오브레임보다 약했던 것뿐이다.


3.3.16. vs 데릭 루이스[편집]


2017년 6월 11일 뉴질랜드 오클랜드 스파크아레나에서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 110 메인 이벤트에서 데릭 루이스를 만난 마크 헌트는 4라운드 3분 51초만에 TKO승을 거두었다.

탐색전으로 시작한 두 선수의 경기는 전진 압박으로 들어오는 헌트에 루이스가 플라잉 니킥으로 응수하는 양상으로 흘러갔다. 경기 중 루이스의 킥에 헌트의 눈이 찔리기도 하는 헤프닝이 있었으나 헌트가 지속적으로 루이스를 펜스로 몬 뒤 펀치를 퍼부운 게 주효했고, 4라운드의 로우킥으로 루이스의 왼쪽 다리에 타격을 누적시켰다. 루이스의 움직임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쏟아지는 헌트의 펀치에 루이스가 전의를 잃으면서 주심은 경기를 종료시켰다.

16년만의 고향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헌트는 경기 종료 후 자신의 두 아들을 옥타곤 위로 불러서 축하했으며 향후 상위 랭커인 오브레임과 산토스에게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며, 루이스는 고질적인 허리 부상후유증 을 이유로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발표했다가 철회했다.

이 경기 이후 2018년이 되도록 다음 경기를 잡지 못했는데, 모 인터뷰에서 자주 깜빡깜빡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UFC로 부터 뇌검사를 받으라는 명령을 받아 경기를 하지 못해 매우 분노한 상태. 브록 레스너 전 이후로 UFC와의 관계가 계속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또 갈등이 일어난 것이기에 불만이 폭발한 마크 헌트는 직접적으로 계약 3경기 이후 UFC를 떠나겠다고 밝혔다.[25]

마크 헌트가 재계약을 하면서 자신의 UFC 커리어 마지막 3경기가 될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이 해는 헌트가 UFC에 있을 마지막 해이다. 마크 헌트의 나이를 고려하면 아예 은퇴일 수도 있다. # 나이도 운동선수로는 고령이고 블레이즈, 올리닉에게 패배해서 계약 종료 가능성이 더 커졌다.


3.3.17. vs 커티스 블레이즈[편집]


파일:Hunt-vs-Blaydes.jpg

2018년 2월 11일 호주(오스트레일리아) 퍼스에서 열린 UFC 221의 메인 카드에서 랭킹 9위 커티스 블레이즈를 만났다. 경기 전 도박사 배당은 블레이즈 쪽이 탑독으로, 이 말은 도박사들이 마크 헌트가 이기는 것보다는 질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음을 뜻한다.

결국 UFC 221의 코메인 이벤트에서 커티스 블레이즈를 상대로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했다. 1라운드에서는 여러 번 타격을 적중시키며 블레이즈를 위기에 몰았지만, 블레이즈가 괴물같은 맷집을 보이며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고 라운드를 가져갔다. 2라운드에서는 블레이즈에게 유효타를 고작 2회 밖에 적중시키지 못했고, 1라운드와 마찬가지로 다시 테이크다운 당한 후,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3라운드에서는 그야말로 관광당했다. 헌트의 유효타는 1회였던 반면, 블레이즈는 헌트의 거구를 들어올리는 괴력을 선보이며 테이크다운을 성공시켰고 헌트가 일어나려 할 때마다 곧바로 바닥으로 끌어내리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그리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하위 포지션에서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총 10번의 테이크다운을 허용했고, 그야말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패였다.


3.3.18. vs 알렉세이 올리닉[편집]


파일:헌트 VS 올리닉.jpg

UFN 136에서 알렉세이 올리닉과의 경기, 초반 강한 로우킥을 수차례 적중 시키며 주도권을 잡았고 이후 펀치도 정타로 맞혔으나, 발이 붙은 올리닉의 회심의 스트레이트에 빗겨 맞았으나 중심을 잃었고, 백 포지션에서 그대로 초크를 당하며 탭을 칠 수밖에 없었다. 경기 초반 상당히 유리하게 풀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라운드에 돌입하자 상대가 딱히 좋은 포지션이 아니었음에도 영락없이 서브미션을 내주었다.

스티페 미오치치, 커티스 블레이즈 등 일전의 경기들과 같이 그라운드 돌입시에 방어가 취약하다 못해 아예 안되는 수준이며, 마크 헌트의 나이, 훈련량 등을 미루어볼 때 앞으로 나아질거라는 기대는 하기 힘들다. 현재 마크 헌트의 입지와 흥행성을 고려할 때 데릭 루이즈, 은가누 같은 타격가와 대진을 잡는것이 이상적이나,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명분이 없는 와중에 적절한 상대를 인재풀이 좁다는 UFC판에서도 가장 좁은 헤비급에서 찾는게 쉬운 일이 아닐듯.


3.3.19. vs 저스틴 윌리스[편집]


호주에서 2018년 12월 1일 열릴 UFN 142에서 UFC 전적 3전 3승의 1987년생 신성 저스틴 윌리스와 경기를 하게 되었다. 이 경기는 헌트의 UFC 마지막 경기이며, 이 경기 후 아예 은퇴할지 중소단체로 이적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아예 은퇴일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예정대로 시합이 열렸고 결국 마크 헌트는 3:0으로 판정패 했다. 헌트의 펀치를 경계한 저스틴 윌리스는 경기 내내 아웃복싱을 구사하며 헌트가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헌트는 체력과 스피드에서 한계가 왔는지 윌리스를 효과적으로 압박하지 못하고 시합을 종료했다. 시합 종료 직후 승자인 윌리스도 헌트에게 매너있게 마이크를 넘기며 배려를 해주었다. "경기력이 저조했던 점에 대해 팬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또 감사한다" 라며 옥타곤에서의 마지막 스피치를 했다. 헌트는 예정대로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UFC 와의 계약을 끝냈다. UFC 의 홀대와, 약쟁이들과의 싸움으로 커리어에 금이 가고 자존심이 상한 부분도 있다고 밝혔다.


3.4. UFC 방출 이후[편집]


하지만 격투가로서 은퇴는 하지 않고, 다른 단체를 찾을 계획이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2020년 12월 16일 시드니 뱅크웨스트 스타디움에서 전직 럭비 선수이자 현 프로 복서인 폴 갤런과 6라운드 프로 복싱 시합을 가졌다. 하지만 만장일치 판정패당했다.

이후 22년 11월 5일, 85년생의 호주-뉴질랜드 복서 SBW와 8라운드 복싱 시합을 가지고 KO로 승리하며 몇 년의 연패를 끊고 은퇴하였다.

4. 파이팅 스타일[편집]


무에타이, 킥복싱 수련자로 입식타격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만큼 타격기량은 출중하다. 120kg의 체중에서 나오는 파워도 상당하고 무엇보다 사기적일 정도의 맷집을 가지고 있다. 2005년 남제에서 크로캅의 하이킥을 정통으로 맞고도 그대로 치고 들어왔을 정도. 의외로 반사신경이 빨라서 효도르의 펀치를 가볍게 피할 정도로 타격에 대한 방어도 상당하다. 게다가 UFC 입성 이후에는 마흔줄의 나이임에도 경기를 치룰때마다 그래플링과 레슬링 실력이 급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재능으로 충만한 선수다. 폴리네시안(사모안) 파이터 마이티 모, 레이 세포와 함께 어찌되었던 한방이면 상대를 보내버릴수 있는 강력한 하드펀처타입.

타격이 주무기인 헤비급 선수치고는 매우 작은 신장이기에 자연스럽게 펀치거리에서 싸울수 밖에 없기 때문에 리치싸움에서는 불리한 면모를 보인다. 그러나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풋워크와 잽으로 거리재다가 왼손 훅과 함께 순간적인 전진스탭에서 터지는 왼손과 오른손 훅, 딱 달라붙은 상황에서 폭발하는 라이트 어퍼는 헌트의 무지막지한 핸드스피드로 인해 알고도 막기 힘든 강력한 무기. 이 한 방 한 방이 전부 일격필살의 위력을 지니고 있어 더욱 무섭다. 이 것 덕분에 헌트의 펀칭거리에서 맞불을 놓는 상대는 대부분 패배했다.

하지만 게으르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노력을 하지 않는 선수로 유명한데, 연습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정크푸드KFC광으로 PRIDE 시절에는 체중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 내키는대로 불량식품을 섭취했다. 2010년의 인터뷰에 의하면 개인 코치조차 두고있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신체조건이 좋고 타격센스가 있어도 연습을 하지 않으니 레슬링과 그래플링이 취약했고, 체력도 좋지 않았다. 게다가 슐트전과 멜빈전에서 맷집에도 한계를 보이고 말았으니. 크로캅을 잡고 효도르와도 좋은 승부를 펼치며 가능성을 보였으나 이러한 한계 때문에 결국 탑 컨텐더 진입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2010년 UFC행이 확정된 후 인터뷰에서 '과거를 후회한다. 마지막 기회를 꼭 잡고 싶다. 예전의 내가 아니다.'라는 의사를 밝혔다. 한국팬들의 반응은 "타격센스와 격투본능만큼은 알아주는 데 레슬링이랑 그래플링이 갑갑해서 UFC에서 될라나?!" "MMA에서 먹힐만한 유형의 선수가 아니야...과거 MMA전적을 보면 모르나??" 등등 반신반의하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도 본인이 노력을 하고있다고 말한 것에 대해 한가닥 희망을 걸고 지켜보았다.

UFC 135에서의 모습은 꽤나 고무적인데 일단 레슬링과 그라운드 스킬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120kg으로의 감량에 완전히 적응한 듯한 가벼운 움직임을 보여줬고 타격의 날카로움 또한 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한마디로 이제서야 MMA 파이터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로스웰이 체력에 다소 약점이 있는 파이터이고 또한 그가 1년간의 공백기를 가지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결과다.

특히나 2012년에는 전통의 UFC 헤비급 중간보스칙 콩고를 넘어서며 상위권 도약 최후의 관문인 스테판 스트루브 마저 돌파했다. 앞으로 그 이상의 강자와 1~2번 더 싸워 이긴다면 타이틀전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 팬들은 30대 후반인 전 K-1 챔피언의 진화가 어디까지 갈 지에 주목하고 있다.

UFC 5전째인 지금 보이는 단점은 체력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26][27] 레슬링, 그래플링도 나아지긴 했지만 탑 레벨에 통할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깔리면 탭치던 옛날과는 달리 이스케이프 능력은 많이 좋아졌다... 정도 평가에서 안토니오 실바와의 경기에서는 그래플링에 일가견이 있는 실바를 수 차례 테이크다운하고 상위 포지션을 안정적으로 점유하는 등 장족의 발전을 보여줬다.

상기했듯 레슬링과 테이크다운 디펜스는 헌트에게 기대한 것보다 상당히 준수한 편. 그러나 문제는 나이. 나이가 들면서 순발력이 떨어졌고, 헌트의 주무대인 스탠딩에서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특히 리치와 스탭이 좋아 순간적인 전진스탭을 통한 원거리 기습이 먹히지 않는 상대에게 약하다. 다시말해 본인의 펀칭거리를 벗어나는 킥거리와 클린치, 레슬링을 사용 할 수 있는 거리에서 취약하다. 또한 테이크다운 디펜스나 그래플링 실력은 분명히 UFC 헤비급 평균 이상이라 말할 정도로 발전했지만, 헤비급 최정상과 비교한다면 아주 철벽이라고 말할 수준은 아니다. MMA 타격가의 완성형이라 할 수 있는 주도산과의 경기를 보면 그야말로 관광이 따로 없는 수준이고 알리스타 오브레임에게는 1차전에서 그래플링으로 2차전에서 타격으로 완벽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스티페 미오치치브록 레스너와의 경기에서 레슬링으로 폭풍관광 당하고 말았다. 헤비급 먹이사슬의 정상에 군림하는 미오치치나 벨라스케즈 모두 우수한 레슬링 스킬을 가지고 있어 챔피언 획득 확률은 낮거나 혹은 이들을 피해 획득한다 하더라도 금새 빼앗기리라는 것을 어렵잖게 예상할 수 있다.

나이 마흔이라는게 무색할 정도로 회복력이 끝내주게 좋은 편이다. 보통 선수라면 심각하게 은퇴를 고려할 정도의 부상을 30대 후반에만 연달아 당했는데도 짧으면 3개월, 길어도 8개월내에는 전부 회복했는데, 그 부상이라는게 십자인대파열, 발가락 골절, 주먹골절, 포도상구균 감염이다. 게다가 동시기에 활동한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나, 미르코 크로캅, 개리 굿리지가 펀치 드렁크나 유리턱으로 고생하는 거에 비해 이 양반은 멀쩡하다. 근데 사실 말년에 실신 KO패배가 많았던 저 파이터들과는 비교하기는 곤란한 점이 이 사람 격투 인생에서 첫 실신 KO패가 입식 포함해서 경력 10년차였던 2008년 멜빈 전이었다. 그리고 2014년 기준으로 여태껏 실신 KO패 경험이 2번밖에 없을 정도이니 펀치 드렁크를 겪을 환경 자체가 없었다고 보는게 맞겠다. 특히 포도상구균 감염같은 경우는 선수생활이 아니라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중병인데다가, 주로 약물을 쓴 선수들이 면역력 약화로 생기는 질병인지라 의심의 눈초리가 약간 있었으나, 복귀이후 전혀 체중변화가 없는데다가, 도핑도 클린으로 끝나서 단순 헤프닝으로 끝났다.

그리고 더 대단한 건 저런 부상들을 겪고 회복한 뒤 복귀전에서 모두 이기거나 엄청난 명승부들을 만들어 냈다. 많은 탑 컨텐더들이 장기 부상에서 회복한 뒤 이전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도태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사람 2017년 기준으로 43세다. 만 43세인데 UFC의 타이틀전 문지기 역할을 해주는 기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한 일. 그것도 마흔줄부터 제대로 된 레슬링 수련을 한 양반이...


5. 기타[편집]


  • 한국 한정으로 마헌득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 원래는 럭비를 하고 있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중도에 포기하고 그럭저럭 살고 있었다고 한다. 놀러간 클럽에서 시비가 붙었는데 상대를 한방에 보내버리는 것을 본 동네 무에타이 사범에게 스카웃 되었다. 그의 데뷔전 대전료는 맥주 6병이었다고 전해진다.

  • 시합이 루즈해진다 싶으면 알아서 쇼를 한다. 니시지마 요스케전의 더블 니 드롭이나 반달레이 실바전에서의 히프 프레스가 그것이다. 화끈한 난타전과 더불어 이런 쇼맨쉽 덕분에 한국일본에서는 제법 인지도가 있는 파이터 중 한 명이다. 데이나 화이트의 뜬금없는 영입 역시 이런 요소와 무관하지 않다.

  • 반면 인터뷰 스킬이나 트래쉬 토킹과는 인연이 없는 파이터. 물어보면 물어본 것만 딱 잘라 혼신의 힘을 다해 짧게 대답해주고, 립서비스 이런 건 전혀 없어서 김동현의 경기 결과가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김동현과 그 상대편) 둘 다 경기를 본 적이 없다. 모르겠군"이라고 짧게 대답해주고 끝.

  • 세상만사 근심걱정 하나도 없는 사람. 낙천적이고 느긋한 성격이라 한때 '헌트는 돈 떨어지면 유흥비 벌러 싸우러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걸 농담만으로 볼 수 없었던 것이 2004~2005년쯤에는 연말 대회만 나왔기 때문에 '헌트는 돈이 없으면 없어질수록 강해진다!'는 이론이 돌기도 했다.

  • UFC 127 이후의 인터뷰에서 '세금도 못낼 정도로 돈이 궁했다'라며 정말로 돈 떨어져서 싸우러 나온 것임이 밝혀졌다. 그 한 시합으로 거의 1억 가까이 받았으나 '앞으로 더 벌어야 한다'며 절박한 심정을 밝혔다. 역시 모티베이션은 무시할 수 없다.

  • UFC 진출 이후 기적같은 전적을 보여주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2015년 현재는 어플릭션 등의 스폰서도 생겼고, 미국에서 자신의 자서전을 써서 홍보를 하기도 했다. 파이트머니 또한 20만 달러 가량되며, 경기가 없는 비시즌 중에는 일본에서 쇼 프로에도 나오는 등 여러모로 살림살이가 나아진 모습.

  • 2015년에 출간된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굉장히 불우하다 못해 끔찍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다. 그의 아버지는 헌트와 형제들을 틈만 나면 기절할 때까지 두들겨 팼고, 헌트의 큰 누나는 만 6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 그것도 엄마의 방관 하에. 헌트와 남매를 쫄쫄 굶기는 건 일상생활이었으며 심지어 부모들은 굶은 아이들이 집에 갇혀 있는 동안 밖에 있는 차 안에서 맥도널드를 먹고 들어오는 일도 수없이 많았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헌트는 십 대를 자잘한 범죄와 길거리 싸움으로 보냈다. [28] 덕분에 교도소를 두 번이나 갔다 왔지만 타고난 운동 신경과 맷집, 엄청난 펀치력을 동반한 싸움 실력 때문에 클럽 바운서 일을 전전하던 중, 무에타이 선수였던 그의 동료 바운서를 통해 격투기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다. 이렇게 보자면 그가 격투기를 통해 갱생한 삶을 살게 되었을 것 같지만 워낙 자라온 환경턱에 꿈이나 노력의 대가 등을 배울 기회가 없었기에 호주와 뉴질랜드를 전전하면서 종종 시합에도 나갔지만 도박과 마약 음주 등으로 버는 족족 써버리고 우연한 기회에 그가 땜빵으로 들어간 K-1 토너먼트에서 혜성같이 이름을 날리기 전까지 한량 같은 삶을 산다. 헌트의 게으름은 그의 불우한 가정환경과 그를 잡아줄 버팀목이 되어줄 만한 사람이 없었던 점, 그리고 타고난 그의 격투 재능[29]으로 인한 것이었다.

  • 시합 때 상대 선수를 KO 시키면 쿨하게 돌아서는 것으로 유명하다. 입식 격투기인 K-1에서야 당연한 일이지만 상대가 쓰러지면 상위 자세로 공세를 이어가서 마무리를 해야 할 종합격투기에서도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심지어 심판이 KO 판정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판단해서 멈추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약 상대가 멀쩡하게 일어나면 큰 실수가 되겠지만 지금까지는 전부 KO 판정.[30][31] 이러는 이유는 헌트의 성장과정에서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했던 경험 때문인데, 아버지에게 기절할 정도로 맞은 상태에서 또 풀스윙으로 주먹을 갈겨대는걸 고스란히 받아서 본인은 절대로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라고 한다. 라고 알려졌으나 그냥 존중의 의미라고 한다. # 결코 두번 때리지 않는 마크 헌트의 모습 그 외에도 데릭 루이스 전에서 로우킥바디 블로우를 연속 명중시켜 루이스가 고통스러워하며 벽에 몰려 그로기에 빠지자 잠깐 공격을 쉬고 터치글러브를 해 주며 격려하는 모습을 선보였고, 이후 뻔히 루이스의 하체가 비어있음에도 의도적으로 킥을 자제하고 펀치만으로 TKO를 시키는 매너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모습 때문에 그를 상남자라 칭송하는 팬들이 많다.

  • 2005년 남제에서 크로캅의 하이킥을 맷집으로 씹어버리자 '인간의 피부와 뼈대가 아니다',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두개골 두께가 일반인의 2배더라'라는 영상을 소개하기도 했다.

  • 왠지 스모를 했을 것 같은 몸을 갖고 있지만 스모나 레슬링 경험은 없다. 다만 저런 체형은 본인이 게으르다기 보단 사모아를 포함한 폴리네시아 인종의 공통된 특징인 살이 잘 찌는 특징 때문이다. 같은 폴리네시아인 격투가인 마이티 모아케보노나 다른 폴리네시아인 운동선수들의 몸매와 비교 했을 때 그리 뚱뚱한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저런 체형이 단점이라고 보기는 어려운게, 사모아인을 포함한 폴리네시아인은 전부를 합쳐봐야 200만명도 안되는 소수 민족에 인프라도 부족하지만 럭비, 미식축구, 격투기 등등에 엄청 진출해 있는 세계적으로 가장 몸이 두껍고 힘이 쎈 인종이다. 심지어 마크 헌트는 같은 폴리네시아인들 중에서는 덩치도 작고 귀엽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더불어 피하지방은 체중 제한이 심해 감량이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충격 흡수나 지혈, 에너지 보급 등 격투기에 도움이 된다.

  • 드래곤볼의 열광적인 팬으로, 자신의 링네임인 수퍼 사모안 역시 초사이어인에서 따온 것이다. 금발로 염색하고 다니는 것도 이런 연유. 황우석 박사와 닮아서 마크 우석이라는 별명도 있다. 뿐만 아니라 맥시멈 더 호르몬의 기타리스트 맥시멈 더 료군과도 꽤 닮았다.

  • 40대 중반을 코앞에 둔 지금, 스스로를 지구에서 가장 늙은 파이터라며 자조적인 드립을 치기도 했다.

  • 욱일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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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UFC 공식 프로필[2] 감량을 하는 많지 않은 헤비급 선수로, 경기 당일 체중은 129kg(284lbs)이고, 평소 체중은 138~154kg(304~340lbs)이라고 한다.링크[3] 레스너의 도핑 적발.[4] 원래 노 가드는 세포가 즐겨 사용하던 전법이었다. 다만 세포의 노가드는 뛰어난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정타를 흘러맞는 기술이라면, 이 당시 마크헌트는 그냥 대주는 도발이었다.[5] 이후 벤너는 리벤지에 성공했고 역대 전적에서도 3승 1패로 헌트에게 우세를 보인다. 다만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고 저돌적인 인파이팅을 즐겼던 벤너가 유독 헌트를 상대로는 아웃 파이팅을 해야만 했다.[6] 둘의 체중차는 30kg 가까이 나갔으나 당시 일본은 체급에 대한 개념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고 자국의 인기스타를 위해 체급의 기준을 가볍게 여기던 시기였고, PRIDE와 남제를 주관하던 단체였던 DSE는 대회의 흥행을 위해 이런 상업성이 다분한 매치를 자주 했다.[7] 사실 이때 크로캅이 발목 부상 중이었던 탓도 있다. 짤에도 나와 있듯이 당시 크로캅은 슈즈를 신고 경기를 했는데, 크로캅이 치른 많은 경기 중 드물게 슈즈를 신은 경기였다. 스탭을 밟을 때마다 오는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저 슈즈는 일반적인 신발과는 다른데, 일반 신발을 신을 경우 미끄럼을 방지하거나 킥의 강도를 더 높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특수제작된 신발을 신어야 한다.[8] 익숙치 않은 그라운드 공방을 너무 오래 지속한 탓에 체력이 눈에 띌 정도로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9] 참고로 턱셔러와의 경기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10] 실제로 이종격투기 카페, GOT MMA, 격갤 모두 헌트 vs 주도산 해보면 어떻겠냐는 여론이 많았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11] 김대환 해설위원은 종합격투기에서 테이크다운을 했는데 야유를 하는 MGM아레나의 관중들을 비판했고, 격투 갤러리 등지에선 타격전하다 기습 테이크다운에 대해 주졸렬이라고 조롱했다. 하지만, 엄연한 종합격투기인만큼 산토스가 욕을 먹을 이유는 전혀 없다. 또한 미국 관중의 야유에 대해서도 그다지 큰 의미를 둘 필요도 없는 것이, 미국 관중들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으나, 한국이나 일본처럼 비장한 분위기로 경기를 관람하지 않고, 아드레날린 넘치는 분위기로 경기를 보는 경향이 있어서 그냥 보다가 지루해지거나 김이 빠지면 야유를 한다. 어디까지나 문화의 차이 정도로 보고 넘어가면 될 듯.[12] 재계약 과정에서 상승했을 가능성이 높다. 헌트가 UFC에 입성할 때만 하더라도 당시 헌트는 두 체급 아래 파이터들에게도 패배하던 속된말로 퇴물이었고, UFC 매니아들로부터 왜 저런 ㅄ을 영입하는거냐며 반대의견이 많았던 걸 생각하면 저 계약 금액이 당시 기준으로는 낮은 건 아니었을 것이다.[13] 강펀치를 쉴 새 없이 날리던 헌트의 손이 부러져버려 5라운드엔 그냥 풀 커버를 올리고 붙어있는 실바에게 펀치가 아닌 엘보우를 주로 날렸다.[14] 48-47 헌트 우세 이후, 47-47이 두 번이나 나오면서 무승부 선언.[15] 검색해보면 혐짤수준의 다리에 구멍이 뚫린 사진을 공개하고 수술 인증샷을 했는데, 단련된 선수라도 쉽게 회복될수 없는 질병이었다. 멀리 찾아볼 것 없이 케빈 랜들맨이 포도상구균 감염이후 한 번에 몸상태가 훅간것을 생각해보자.[16] 5라운드에는 체력적으로 서로 지친 나머지 가드를 내린채로 펀치 공방이 계속됐다. 그리고 둘 다 쓰러지지 않은채 버텼다.[17] 모 격투 웹진의 기사 때문에 약물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TRT 수치를 맞추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TRT의 이미지 때문에 그게 그걸로 보일 뿐이지.[18] 베우둠이 태클을 하는 척 몸을 약간 숙였고 헌트가 태클을 방어하기 위해 몸을 낮추자 곧바로 니킥을 날렸다.[19] UFC 총 타격 수(Total Strikes) 최고 기록이다. 심지어 이 경기는 헤비급이었다![20] 사족으로 총 타격 수가 아닌 유효타 수 최고 기록은 스티페 미오치치 vs 로이 넬슨 전이다. 재밌게도 바로 전 경기 상대인 로이 넬슨도 스티페 미오치치에게 무지하게 두들겨 맞았다.[21] 존 턱, 야이르 로드리게스, 줄리아나 페냐[22] 이 와중에 프로레슬링 갤러리에선 이런 브록을 잡은 갓갓 갓갓갓의 재평가와 필백수는 변명거리 생각중이라 조롱하고 있다. 덤으로 섬머슬램에서 붙을 랜디 오턴에 대한 발언도 나오는 중.[23] 한(韓)화로 약 2억 9600만 원[24] 오브레임이 어색해하자 다시 악수를 제안하긴 했다.[25] 전문가들은 마크헌트가 벨라토르로 이적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헌트의 몸값이 많이 뛰어 경기당 80만 달러를 수령받는데 헌트의 높은 파이트 머니를 지불 가능한 단체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26] 그도 그럴것이 이제 헌트도 이제 40줄이다. 40줄에 들어선 파이터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며 20~30대의 창창한 파이터들과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경이적이지만.[27] 사실 체력이 그렇게 나쁘다고 할수도 없는 것이, 벤 로스웰전 판정, 스테판 스트루브전은 3라운드, 주도산전도 3라운드, 안토니오 실바전도 5라운드 판정까지 갔다. UFC에서 7전 중 주도산과 션 맥코클의 2패를 제외하고는 모두 상대가 더 지쳤다.[28] 그의 첫째 형은 비교적 성실하게 공부하여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듯하였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살하였고, 그의 둘째 형은 어린 시절부터 정신 분열증 증세를 보이더니 촉망받는 재능의 럭비 유망주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신병으로 노숙자 신세를 전전하다 지금은 누나와 같이 산다고 한다.[29] 심지어 전날 밤새고 술 마시고 도박하다 시합에 나가서 KO로 이긴 적도 있다.[30] 스테판 스트루브와의 대결에서는 심판이 바로 말리지 않아서 뒤돌아서 다시 공격하려는 움직임을 취하긴 했다. 다만 심판이 가까이 와서 스트루브가 정신차리지 못한 것을 확인한 뒤 뒤늦게 KO 선언.[31] 헌트 본인의 언급에 의하면 상대를 KO시키는 펀치는 손에 걸리는 느낌이 다르다고 한다. 단순히 세게 친다는 것 이상으로 "제대로 맞았다"라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