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보스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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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前 축구선수


파일:PM655683.jpg

이름
마크 보스니치
Mark Bosnich

본명
마크 존 보스니치
Mark John Bosnich
출생
1972년 1월 13일 (52세)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 뉴캐슬
국적
호주 파일:호주 국기.svg
신체
185cm
직업
축구선수(골키퍼 / 은퇴)
소속
선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89~1991)
시드니 유나이티드 FC (1991~1992)
아스톤 빌라 FC (1992~199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9~2001)
첼시 FC (2001~2003)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FC (2008)
시드니 올림픽 FC (2009)
국가대표
파일: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7경기 1골 (호주 / 1993~2000)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여담




1. 개요[편집]


호주의 전 축구선수.

현역 시절 주로 잉글랜드 무대에서 활동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톤 빌라, 첼시 FC라는 녹록치 않은 팀에서 경력을 쌓았다. 맨유와 첼시에선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으나, 아스톤 빌라에서 오래 활약하며 No.1 키퍼로 활약했다.

호주 국가대표에서 마크 슈워처 이전 세대에 활약했던 프리미어 리그 골키퍼이며 프리미어 리그 통산 200경기를 출전하였다.

2. 클럽 경력[편집]



2.1. 경력 초기[편집]


호주에서 태어난 보스니치는 시드니 크로아티아[1] 유스팀에서 잠시 뛰다가 영국으로 이주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그리고 1990년 4월 30일 윔블던과의 1부 리그 경기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그는 학생 비자로 잉글랜드에 있었기 때문에 1991년 7월에 비자가 만료되면서 팀을 떠나야했다.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친정팀 시드니 크로아티아에서 활약했다.


2.2. 아스톤 빌라 FC[편집]


1992년 2월 28일, 그는 자유계약으로 애스턴 빌라와 계약했다. 초창기에는 후보 신세였다가 1994-95 시즌부터는 본격적으로 넘버원으로 낙점받아 주전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다음 시즌인 1995-96 시즌에는 보스니치의 최전성기 시절로, 리그 4위와 풋볼 리그 컵 우승을 이끌며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그는 1999년 계약이 만료되기 전까지 빌라 파크에서 3시즌을 더 보냈으며, 빌라에서 7년 반 동안 207경기를 뛰었다.

이후 자유 계약으로 친정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합류했다.


2.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기[편집]


1999년, 전설적인 골키퍼 페테르 슈마이켈이 트레블을 이룩한 뒤 스포르팅 CP로 이적하면서 그의 대체자로 영입됐다. 당시 빌라에서 정점을 보여주던 시절이었기에 많은 기대를 안고 입단했으나,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맨유 골키퍼 잔혹사의 시작을 알리게 됐다.[2][3]

결국 시즌을 마친 뒤 프랑스 월드컵 야신상 수상자인 파비앙 바르테즈이 영입되면서 그의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이후 셀틱과 임대 링크가 있었지만, 그는 잔류를 천명했다. 그리고 2000-01 시즌 동안 바르테즈에 밀려 단 한 경기도 나오지 못한 채 이듬해 1월 쓸쓸히 팀을 떠났다.


2.4. 첼시 FC[편집]


2001년 1월, 겨울이적시장을 통해 보스니치는 첼시로 이적했다. 기회를 얻기 위해 입단했지만, 정작 그는 잦은 부상으로 출전 기회를 거의 잡지 못했으며, 2002년 9월에는 마약 양성 반응으로 9개월간 출전 금지 중징계를 받게 되면서 그의 커리어는 바닥을 치게 된다.


2.5. 이후[편집]


출전 징계로 인해 실전 감각이 떨어진 상태에서 설상가상으로 코카인 중독에 빠지며 커리어에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얼마나 심각했냐면 코카인에 취했을 당시 집에 들어온 아버지를 침입한 괴한으로 오해해 총으로 쏠 뻔했을 정도 였으니.. 아버지는 그에게 마약을 끊으라고 강하게 설득했다.

이후 긴 공백 기간동안 치료도 받고, 필드 복귀를 위해 15kg 체중을 감량하는 등 땀 흘려 노력한 결과 2008년 여름에 자국 리그팀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에 입단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8월 31일 브리즈번의 선콥 스타디움에서 열린 퀸즐랜드 로어와의 원정 경기에 출전하면서 오래간만에 공식 경기를 치렀다.

센트럴코스트에서 서브 키퍼로 뛰다가 2009년 5월 31일, 시드니 올림픽과 단기 계약을 채결했다. 8경기 출전 후 햄스트링 부상 및 TV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국가대표에서는 주로 백업 키퍼를 맡았으나, 1997년 호주의 사상 첫 컨페드컵 결승 진출 당시 주전 키퍼로서 활약했다.


4. 여담[편집]


  • 그의 아버지는 1959년에 크로아티아에서 호주로 넘어온 이민자 출신이다. 따라서 보스니치는 크로아티아계 호주인이다.
  • 앞서 말한 코카인 중독 문제도 그렇고, 나치식 경례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커리어 기간동안 프로 의식이 크게 결여된 선수였으며, 실제로 맨유에서 그를 지도했던 알렉스 퍼거슨도 자서전을 통해 '프로의식이 없는 프로선수'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 현재는 방송인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 사진만 봐도 알겠지만 상당한 미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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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의 아버지가 크로아티아 이민자 출신이라 관련이 있다.[2] 사실 퍼거슨감독은 에드빈 판데르사르를 원했으나, 보드진의 강압으로 보스니치와 계약을 채결했다고 한다.# 그리고 판데르사르는 유벤투스로 이적한 뒤 커리어의 부침을 겪으면서 2시즌만에 풀럼 FC로 이적했고, 풀럼에서 4년간 좋은 활약을 보여준 뒤 2005년 여름이 되어서야 맨유에 합류할 수 있었다.[3] 해당 시즌에 한솥밥을 먹었던 골키퍼 마시모 타이비와 함께 역대 맨유 최악의 선수로 현재까지 이름에 오르내리고 있다. 같은 시즌, 같은 팀에서 활약했던 골키퍼 2명이 역대 최악의 선수 순위에 나란히 랭크 되어있다는 것은 그만큼 슈마이켈의 떠난 뒤 맨유 골키퍼진의 부실함을 입증한다. 참고로 타이비는 보스니치와 1996년에 팀에 입단하여 슈마이켈의 서브로 지낸 레이몬드 판데르고우의 연이은 부상으로 긴급 영입된 이탈리아 출신 골키퍼였다. 그는 리버풀과의 첫 경기에서 MOM으로 선정되며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9라운드 사우스햄튼전에서 매튜 르 티시에에게 어처구니 없는 알까기 실점을 허용하며 '가리개를 한 베네치아인'이라는 오명을 얻고 삐꺽거리더니, 다음 라운드 첼시 전에서 무려 5실점한 이후 더 이상 기회를 잡지 못하고 반년만에 쫒기듯이 고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후에는 보스니치가 경쟁에서 우위를 보이며 주전으로 자리 잡았지만 불안한 모습으로 시즌 막바지에는 판데르고우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판데르고우는 앞선 두 선수보다 월등히 나은 활약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