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드 나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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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ajid Nawaz (ماجد نواز)

파일:Maajid Nawaz.jpg

출생
1977년 10월 2일 (46세)
영국 에식스
국적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직업
작가, 정치가
종교
이슬람
학력
SOAS (법학, 아랍어 / 학사)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정치학 / 석사)
학파
이슬람 자유주의
1. 개요
2. 활동
2.1. 메이저 이전
2.2. 메이저 이후
3. 사상
4. 여담
5.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파키스탄계 영국인으로 Quilliam의 창시자이자 대표이다.


2. 활동[편집]



2.1. 메이저 이전[편집]


무슬림인 마지드 나와즈는 당시 파키스탄인들이 네오나치에게 인종차별받는 것을 보고 영국 사회에 반감을 갖게 되었다. 당시 이슬람 해방당은 나와즈를 설득시켜 이슬람주의자로 만들었고 스레브레니차 학살 비디오까지 보여주었다. 그는 1997년에 이슬람해방당의 주요 인사가 되었지만 2001년 9월 10일에 이집트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4년동안 이슬람주의, 이슬람 극단주의, 이슬람 신학, 이슬람 자유주의를 접했고 이로 인해 이슬람 해방당이 내세운 구호[1]에 회의감이 들았고 결국 이슬람 해방당을 탈퇴해 이슬람주의를 버리고 이슬람 자유주의자가 되었다.


2.2. 메이저 이후[편집]


2005년에 석방되었고 2008년에 Quilliam이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이슬람 자유주의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이슬람 해방당을 탈퇴하면서 같이 활동하던 이슬람주의자 부인과는 이혼했다. 그러나 서구 내 주류 무슬림은 이에 냉담하고 심지어 그에게 베란다 원숭이라고 조롱하곤 했다. 아직 Quilliam의 인원은 마지드 나와즈와 에드 후세인을 포함해 10명밖에 되지 않는데 이 것은 주류 무슬림이 아직도 이슬람주의에 경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료였다가 똑같이 수감생활을 겪고 역시 같은 마음이 된 에드 후세인과 더불어 이슬람 극단주의 비난에 앞장서고 있다. 물론 극단파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당하고 다에시에겐 이슬람 배신자라고 제거 대상으로 꼽힌다.

2016년에 미국의 남부빈곤법률센터라는 반인종주의 단체에게 "반이슬람 극단주의자"라고 낙인찍혔다. 이에 그는 목록을 수정하기 위해 모금하고 있으며 이 사건으로 퇴행적 좌파가 부각되었다. 이후 2018년에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3. 사상[편집]


마지드 나와즈는 이슬람공포증를 반대하는 동시에 이슬람주의를 반대하고 있다. 둘 다 우파성향이며 타종교, 타민족에 대해 관용이 없고 파시즘을 추구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란 출신 사회주의자인 마르얌 나마지(Maryam Namazie)의 제3의 진영(Third Camp)[2]과 같다.[3]

이런 노선은 아직 서구에서조차 드문데 이슬람과 이슬람주의[4]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무슬림=서구제국주의의 피해집단이라는 피상적인 역사 인식만 가진 세력이 주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각에서 이슬람과 무슬림을 비판이 아닌 비방을 하는 바람에 이에 대한 반사적인 태도로 이슬람을 과도하게 쉴드치게 된 것도 원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상이 변하는지 2020년 미국 선거가 조작이라고 하지않나 악명높은 가짜뉴스 사이트 을 출처로 우크라이나을 나치라고 하지않나 맛이 나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 여담[편집]


  • 2015년에 영국의 어느 스트립 클럽에서 CCTV에 그의 모습이 촬영되어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당시 남부빈곤법률센터는 이를 근거로 마지드 나와즈는 무슬림인 척하는 반이슬람주의자라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마지드 나와즈는 2009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에 관련하여 당시 영국 총리였던 고든 브라운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항의 의사를 표현할 것을 촉구한 적이 있던 인물이기 때문에 그것은 근거가 부족한 음모론에 불과했다. 또한 이후에 일부 상호교차성 페미니스트들과 이슬람 페미니스트들아 그를 비판하기도 했는데, 일부 성 긍정 페미니스트들은 나와즈에 대한 공격이 지나치다고 옹호하고 있다. 사실 스트립 클럽에 간 것이 딱히 잘못도 아닌데 유출된 개인정보를 통해 꼬투리를 잡는 것에 가깝다.

  • 2008년 이슬람 해방당을 탈퇴하면서 같이 이슬람주의 운동을 하던 부인과 이혼한 이후 2014년 자기보다 훨씬 연하의 백인 여성인 레이철 마거트(Rachel Maggart)와 결혼한 탓에 종종 말로만 페미니스트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레이철 마거트가 얌전히 신부수업만 받다 성공한 남성과 결혼한 골드 디거도 아니고, 엄연히 런던 아트 갤러리에서 일하던 자기 커리어가 확실한 여성 인텔리이다. 게다가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 실제로 나와즈는 77년생, 마거트는 85년생으로 둘은 8살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 엄청난 나이 차이를 금전으로 메꾸는 일반적인 트로피 와이프의 케이스에 속한다 보기도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자와 나이 차이가 어떻게 되건간에 타인의 결혼 선택은 혐오나 비하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연령차별에 불과하며, 당연히 그것은 페미니스트 여부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을 페미니즘과 연관시킨다면 그것이야말로 왜곡된 것이다.
자녀는 두 명으로 전 부인과 현 부인 사이에서 자녀를 각각 한 명씩 보았다.


5. 같이 보기[편집]



[1] 당령에서 지하조직 운영을 통한 1984(소설)식 전체주의 신정국가 건설을 대놓고 주장한다.[2] 원래는 신트로츠키주의자였던 막스 샥트먼(Max Shachtman)이 제국주의 진영과 스탈린주의 진영 둘 다 반대하기 위해 내세운 것이지만 냉전 이후로 중동의 사회주의 단체에선 서구우파와 이슬람주의를 반대하기 위한 노선이다.[3] 다만 막스 샤흐트먼과 마지드 나와즈는 사상적 갭이 크다. 마지드 나와즈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와 거리가 있는 진보적 자유주의 성향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회주의에 적대적인것은 아니다.)[4] 비유하자면 기독교와 웨스트보로 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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