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슈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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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슈미트의 주요 수훈 /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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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올센추리 팀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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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마이크 슈미트
Mike Schmidt

포지션
3루수
득표수
855,654


파일:1980필리스우승로고.gif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1980





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Schmidt%20Mike%20plaque.png
마이크 슈미트
헌액 연도
1995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96.5% (1회)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80년 ~ 198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키스 에르난데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윌리 스타젤
(피츠버그 파이리츠)

마이크 슈미트
(필라델피아 필리스)


데일 머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8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윌리 맥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마이크 슈미트
(필라델피아 필리스)


안드레 도슨
(시카고 컵스)


파일:MLB 로고.svg 1980년 월드 시리즈 MVP

윌리 스타젤
(피츠버그 파이리츠)

마이크 슈미트
(필라델피아 필리스)


론 세이 / 페드로 게레로 /스티브 예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80년 ~ 198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3루수 부문 실버 슬러거
1980년 첫 수상

마이크 슈미트
(필라델피아 필리스)


팀 월렉
(몬트리올 엑스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8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3루수 부문 실버 슬러거
팀 월렉
(몬트리올 엑스포스)

마이크 슈미트
(필라델피아 필리스)


팀 월렉
(몬트리올 엑스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76년 ~ 198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3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
켄 리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마이크 슈미트
(필라델피아 필리스)


팀 월렉
(몬트리올 엑스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8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3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
팀 월렉
(몬트리올 엑스포스)

마이크 슈미트
(필라델피아 필리스)


테리 펜들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Schmidt Mike 1942.2002_FL_NBL.jpg

필라델피아 필리스 No. 20
마이클 잭 "마이크" 슈미트
Michael Jack "Mike" Schmidt

생년월일
1949년 9월 27일 (74세)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출신지
오하이오 주 데이튼
신체
188cm / 88kg
포지션
3루수, 1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71년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30번 (PHI)
소속팀
필라델피아 필리스 (1972~1989)
종교
개신교

1. 개요
2. 선수 시절
3. 플레이 스타일
4.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5. 은퇴 후
6. 연도별 기록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前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선수.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만 18년을 보낸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다.

통산 18시즌 동안 2,404경기에 출장해 2,234안타 548홈런 1,506득점 1,595타점 .267/.380/.527 OPS .908/OPS+ 148 1,507BB/1,883K wRC+ 147/wOBA .395 bWAR 106.9/fWAR 106.5를 기록했다.


2. 선수 시절[편집]


1949년 오하이오 주 데이턴에서 태어난 슈미트는, 어린 시절 고압선에 감전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1967년 오하이오 대학교에 진학한 슈미트는 건축학을 전공하면서 한 때 건축가의 길을 고민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70년 팀을 대학 월드 시리즈까지 이끄는 활약을 펼치면서 대학 야구 올-아메리카 팀의 유격수로 선발되었고, 이듬 해인 1971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30순위에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지명을 받게 된다.[1]

마이너 리그에서 3루수2루수를 겸업하던 슈미트는 1973년 메이저 리그에 정착하게 된다. 이미 전 해에 콜업되어 13경기를 출장하며 메이저 리그의 맛을 보았던 슈미트였지만 그 해 132경기에 출장해 .196 .324 .373 18홈런 52타점에 그쳤는데, 특히 367타수에서 136삼진이나 당하면서 제대로 공갈포 노릇을 했다.[2]

그러나 필리스는 끝내 슈미트를 포기하지 않았고, 슈미트 역시 겨울 동안 푸에르토리코에서 피나는 훈련을 했다. 물론 감독과 코치 역시 슈미트를 정성껏 도왔고, 그 효과는 이듬 해 곧바로 나타나게 된다. 1974년 슈미트는 162경기에 출장해 .282 .395 .546 36홈런 116타점을 기록하고 내셔널 리그 홈런왕을 차지했는데, 타율이 무려 1할이나 올랐으며, 홈런은 두 배나 증가했고, 106개에 이르는 볼넷을 기록했다.

그 해 슈미트는 메이저 리그 역사상 가장 긴 단타를 기록하게 되는데, 애스트로돔에서 이루어진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홈플레이트에서 100m 떨어진 33m 높이의 천장을 맞춘 것이다. 그러나 홈런일 줄 알고 스타트를 늦게 끊은 슈미트는 애스트로돔의 규정에 따라 단타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천장이 없었다면 슈미트의 타구는 비거리 152m의 홈런 타구가 되었을 것이다.

1975년, 시즌이 시작된 이후 5월까지 타율이 멘도사 라인에 머물렀던 슈미트는 7월과 8월 동안 맹타를 휘둘러 158경기 .249 .367 .523 38홈런 95타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했으며, 2년 연속으로 내셔널 리그 홈런왕을 차지했다. 1976년과 1977년에도 슈미트는 각각 162경기 .262 .376 .524 38홈런 107타점 14도루와 .274 .393 .574 38홈런 101타점을 기록했는데, 1976년에도 내셔널 리그 홈런왕을 차지해 자신의 기록을 3년 연속으로 이어나갔으며, 4년 연속으로 100볼넷을 기록하는 등 필리스의 타선을 이끌어왔다.

그러나 1978년 주장에 임명된 슈미트는 자신의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과는 맞지 않은 주장이라는 직책을 힘겨워했고, 그 해 슈미트는 145경기 .251 .364 .435 21홈런 78타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3] 그러나 이듬 해,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보내던 피트 로즈가 필리스에 합류하면서 슈미트의 짐을 덜어줬고[4][5], 타격에 있어서도 그 동안의 당겨치기를 버리면서 160경기 .253 .386 .564 45홈런 114타점을 기록해 자신의 홈런 커리어 하이를 갈아치우게 된다.

그리고 1980년 슈미트는 150경기에 출장해 .286 .380 .624 48홈런 121타점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홈런 커리어 하이를 다시 한 번 갈아치우고, 통산 네 번째 내셔널 리그 홈런왕과 첫 번째 타점왕, 그리고 MVP를 차지했다. 필리스 역시 그 해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고, 슈미트는 월드 시리즈에서도 6경기 .381 .461 .724 2홈런 7타점을 기록하면서 월드 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1981년 슈미트는 102경기에 출장해 .316 .435 .644 31홈런 91타점을 기록했는데, 커리어 첫 번째로 타율이 3할을 넘은 데다가 총루타-볼넷-고의4구-홈런-득점-타점-출루율-장타율에서 리그 1위를 차지해 MVP 2연패에 성공했다. 그 해 파업으로 50경기가 단축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1982년 148경기 .280 .403 .547 35홈런 87타점을 기록한 슈미트는 이듬 해인 1983년, 154경기에 .255 .399 .524 40홈런 109타점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역대 세 번째 40홈런-100타점 시즌을 만들어내고 여섯 번째로 내셔널 리그 홈런왕을 차지했으며, 팀 역시 다시 한 번 월드 시리즈에 올라갔으나 부진과 함께 팀의 패배를 지켜보게 된다.

1984년 151경기에 출장해 .277 .383 .536 36홈런 106타점을 기록하면서 통산 일곱 번째 내셔널 리그 홈런왕과 세 번째 내셔널 리그 타점왕을 차지한 슈미트는, 이듬 해인 1985년 3루수 자리를 신인인 릭 슈에게 내주고, 1루수로 전환하지만 슈가 자리를 잡지 못하자 1986년 다시 3루수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1986년 160경기에 출장한 슈미트는 .290 .390 .547 37홈런 119타점을 기록하면서 여덟 번째 내셔널 리그 홈런왕과, 네 번째 타점왕, 그리고 세 번째 MVP를 차지하게 된다. 이듬 해인 1987년에도 만 37세의 나이에 147경기에 출장해 .293 .388 .548 35홈런 113타점을 기록한 슈미트에게는 노쇠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1988년 슈미트는 어깨 회전근[6]과 무릎, 허리를 동시에 다치면서 결국 108경기 .249 .337 .405 12홈런 62타점에 그쳤고, 이듬 해인 1989년에도 부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돌연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그리고 팬들 역시 은퇴한 슈미트를 올스타 투표 3루수 부문 1위로 만들었으며, 기립박수와 함께 떠나는 슈미트의 마지막을 축복해주었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타율과 출루율의 갭이 무려 1할 1푼에 달하고 시즌 볼넷 1위를 네 번이나 기록한 OPS 히터이다. 특히 순장타율이 .260에 달하고,[7] 그가 뛰었던 시기가 라이브볼 시대 최악의 투고타저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타고투저 시기를 보냈을 시 600홈런을 넘겼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슈미트는 18년 동안 무려 여덟 번이나 홈런왕을 차지했으며, 타점왕도 네 번이나 기록한 명실상부 1970-80년대 내셔널 리그의 지배자 중 한 명이었다.

특히 플레이트 바깥으로 쭉 빠져서 뒤통수를 보이면서 몸쪽 공을 기다리는 그의 타격 스탠스는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았는데, 이 타격폼으로 인해 투수들이 몸쪽 공략을 두려워하거나 커맨드에 불안을 겪어서 볼넷을 많이 얻어내는 비결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수비에서도 역대 TOP 3 안에 들어가는데, 무려 골드 글러브를 열 개나 수상했다. 사실상 수비에서도 브룩스 로빈슨에 이어 그 다음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견을 갖춘지라 1974년의 404어시스트는 지금도 내셔널 리그의 3루수 단일 시즌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세이버메트릭스 수비 지표의 하나인 커리어 Total Zone Runs에서 129점을 기록하고 있다.[8]

주루 역시 평균 수준은 넘어, 여덟 시즌이나 두 자리 수를 넘겼고, 두 시즌은 무려 20도루를 넘기기도 했다.

당대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3루수로 군림한 조지 브렛과는 양대 리그의 3루수 지존을 겨루는 라이벌 관계였고, 실제로 두 사람은 1980년 월드 시리즈에서 대결하기까지 했다. 좌타자였던 브렛이 정교함을 앞세우는 왼손 교타자였다면, 슈미트는 그와 정반대인 오른손 슬러거였다. 각 포지션 별로 통산 최고를 논할 때, 3루수 부문은 논란의 여지 없이 슈미트가 1위로 꼽히며, 누구도 이견을 제기하지 못한다. 이 정도 이상으로 확고하게 특정 선수가 통산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포지션은 유격수우익수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9]


4. 명예의 전당[편집]


안타까운 은퇴를 한 뒤에 이어진 명예의 전당 첫 투표에서 사실상 입성은 기정사실이었던 슈미트는 96.52%의 득표율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같이 필리스를 지탱했던 스티브 칼튼에 이어 자신의 등번호인 20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2004년 시티즌스 뱅크 파크가 개장하자 그 곳에 슈미트의 동상이 들어섰다.


4.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마이크 슈미트
74
224
250
56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 JAWS - Third Base (1st)

career WAR
7yr-peak WAR
JAWS
마이크 슈미트
106.5
58.5
82.5
3루수 HOF 입성자 평균
67.5
42.8
55.2


5. 은퇴 후[편집]


  • 오늘 날에는 종종 필리스의 홈 경기에 방문할 때마다 현역 시절 잠깐 못한다고 무지하게 들었던 욕설 대신 기립박수와 환호를 받고 있고, 가끔 필리스 방송의 객원 해설을 하기도 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80px-Mike_Schmidt.jpg
  • 한편으로는 골프를 워낙 좋아해서 은퇴 후 PGA에 입문하려고도 했다. 존 스몰츠와 달리 결국 아마추어로 남았지만, 야구 지도자로서도 활동하여 필리스의 싱글A 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 선수 시절 암페타민을 복용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스포츠 선수에 대한 순수성을 중시하는 팬들에겐 꺼림칙하게 여겨지겠지만 그 시절엔 암페타민이 금지약물이 아니었다, 즉 암페타민은 비타민제와 같은 취급을 받는 한 보조제에 불과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비타민제나 커피를 먹으며 경기한다는 이유로 약쟁이라고 깔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또한 암페타민류의 각성제는 현재도 금지약물로 다뤄지긴 하나 스테로이드, 성장호르몬과 똑같이 여겨지진 않는다. 실제 MLB의 약물 규정에서도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있다.[10] 또한 지금도 비교적 간단한 절차만 밟으면 허가를 받아 사용할 수 있다.[11]

  • 자기를 뽑지 않은 기자들에게 왜 자기를 뽑지 않았냐고 따졌는데, 한 기자가 병석에서 팀 메이트에게 무례하고, 아이들 사인 요청을 무시했다고 편지로 답변했다.


6. 연도별 기록[편집]


파일:MLB 로고.svg 마이크 슈미트의 역대 MLB 기록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72
PHI
13
40
7
0
0
1
2
3
0
5
15
.206
.325
.294
.619
0.1
0.1
1973
132
443
72
11
0
18
43
52
8
62
136
.196
.324
.373
.697
2.1
1.8
1974
162
686
160
28
7
36
108
116
23
106
138
.282
.395
.546
.941
9.4
9.8
1975
158
674
140
34
3
38
93
95
29
101
180
.249
.367
.523
.890
7.9
7.7
1976
160
705
153
31
4
38
112
107
14
100
149
.262
.376
.524
.900
8.3
8.0
1977
154
667
149
27
11
38
114
101
15
104
122
.274
.393
.574
.967
9.2
8.9
1978
145
616
129
27
2
21
93
78
19
91
103
.251
.364
.435
.798
5.5
6.2
1979
160
675
137
25
4
45
109
114
9
120
115
.253
.386
.564
.950
7.5
7.9
1980
150
652
157
25
8
48
104
121
12
89
119
.286
.380
.624
1.004
9.0
8.9
1981
102
434
112
19
2
31
78
91
12
73
71
.316
.435
.644
1.080
7.8
7.7
1982
148
631
144
26
3
35
108
87
14
107
131
.280
.403
.547
.949
7.2
7.4
1983
154
669
136
16
4
40
104
109
7
128
148
.255
.399
.524
.923
6.9
6.9
1984
151
632
146
23
3
36
93
106
5
92
116
.277
.383
.536
.919
7.1
7.0
1985
158
645
152
31
5
33
89
93
1
87
117
.277
.375
.532
.907
5.2
5.0
1986
160
657
160
29
1
37
97
119
1
89
84
.290
.390
.547
.937
5.8
6.1
1987
147
613
153
28
0
35
88
113
2
83
80
.293
.388
.548
.936
6.1
6.1
1988
108
451
97
21
2
12
52
62
3
49
42
.249
.337
.405
.742
2.0
1.8
1989
42
172
30
7
0
6
19
28
0
21
17
.203
.297
.372
.668
-0.5
-0.4
MLB 통산
(18시즌)

2404
10062
2234
408
59
548
1506
1595
92
1507
1883
.267
.380
.527
.908
106.5
106.8

7. 관련 문서[편집]



[1] 바로 전 순위인 2라운드 29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다름아닌 조지 브렛을 지명했다. 역대 최고의 3루수들이 앞뒤로 지명된 것으로, 지명 시에는 둘 모두 유격수였다는 공통점이 있다.[2] 다행히 규정타석을 채우진 않아서 규정타석 1할이라는 굴욕의 기록은 이후 2010년 카를로스 페냐마크 레이놀즈에게 넘어가게 된다.[3] 이 해의 부진만 아니었다면, 슈미트는 14년 연속 30홈런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쌓을 수도 있었다.[4] 지금도 슈미트와 로즈는 절친한 사이이며, 슈미트는 틈날 때마다 로즈의 복권을 주장하고 있다.[5] 로즈는 "쟤 몸을 가질 수 있다면 나랑 내 마누라 몸이랑 바꾸고 돈도 줄거임ㅋ"(To have his body, I'd trade him mine and my wife's, and I'd throw in some cash.)이라고 한 적이 있다.[6] 투수들에게서도 자주 발생하는 부상인데, 다른 부위의 인대를 집어넣어 복구가 가능한 팔꿈치와 달리 이 부분은 아직까지도 재기가 굉장히 힘든 부위로 분류된다. 물론 줄기 세포를 이용한 치료라는 길이 최근 알려지긴 했지만 활성화되려면 아직은 먼 듯 하다.[7] 미키 맨틀이 .259다.[8] 역대 100점을 넘은 인물들 : 브룩스 로빈슨, 버디 벨, 클리트 보이어, 로빈 벤추라, 스캇 롤렌, 그렉 네틀스, 게리 가이에티, 마이크 슈미트, 아드리안 벨트레.[9] 역대 최고를 논할 때 1루수로는 루 게릭이 꼽히지만 동시대에 지미 폭스가 그와 비슷한 성적을 냈으며, 알버트 푸홀스의 아름다운 10년도 게릭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2루수도 로저스 혼스비가 올타임 1위로 꼽히지만 냅 라조이에디 콜린스라는 대선수들도 동시대에 뛰었으며, 라이브볼 시대로 한정했을 때는 조 모건찰리 게링거라는 영구결번 선수들이 버티고 있다. 좌익수 역시 테드 윌리엄스가 1위로 꼽히지만 수비로만 본다면 그의 후계자 칼 야스트렘스키가 더 나으며, 리키 헨더슨스탠 뮤지얼이라는 라이벌들이 있다. 중견수도 윌리 메이스가 꼽히지만 데드볼 시대에 타이 콥트리스 스피커가 있었으며, 라이브볼 시대에도 미키 맨틀켄 그리피 주니어라는 강적이 있었다. 지명타자 또한 프랭크 토마스가 꼽히지만 폴 몰리터에드가 마르티네즈라는 대선수들이 포함되어 있고, 포수 또한 자니 벤치의 커리어를 요기 베라이반 로드리게스라는 두 선수가 비빌만한 성적을 기록했다. 투수 역시 월터 존슨뒤를 이을 선수들이 명이 아니다. 그러나 유격수는 애초에 WAR이 100을 넘은 사람이 호너스 와그너 한 명 뿐이며, 우익수는 행크 애런, 프랭크 로빈슨, 로베르토 클레멘테라는 대선수들이 있기는 하나 상대는 야구의 신 베이브 루스이기 때문에 절대로 넘지 못하며, 3루수인 슈미트의 라이벌은 타격으로는 조지 브렛, 수비로는 브룩스 로빈슨 밖에 없으며, 유격수와 마찬가지로 3루수 중 WAR 100을 기록한 선수는 슈미트 한 명 뿐이다. 다만 현재 1루수는 푸홀스의 급격한 노쇠화로 인해 WAR 100을 넘긴 선수는 루 게릭 외에는 없기에 1루수 쪽도 거의 확정은 지어진 편.[10] 경기력 향상 약물(PED) 카테고리엔 스테로이드 계통만 포함되고, 암페타민 등의 약물은 각성제(Stimulants)로 따로 분류된다.[11] 실생활에서도 의외로 가까이 있는 약물이다. 일부 수험생들이 아는 의사에게 야매로 받아 복용하는 집중력 좋아지는 약도 암페타민 계통의 약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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