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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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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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ness World Records
파일:기네스 세계기록 로고.svg
Best-selling female recording artist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 여성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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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
수치
출처
마돈나
4억
#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로큰롤 명예의 전당 로고.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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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마돈나
MADONNA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개인자격)
입성 연도
2008년
후보자격 연도
2008년
후보선정 연도
2008년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파일:goldenglobe.png
여우주연상 - 뮤지컬 및 코미디
제53회
(1996년)


제54회
(1997년)


제55회
(1998년)

니콜 키드먼
(투 다이 포)


마돈나
(에비타)


헬렌 헌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역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파일:dwerw22.jpg
올해의 아티스트
제30회
(2002년)


제31회
(2003년)


제32회
(2004년)

U2

마돈나

케니 체스니





마돈나
Mado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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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마돈나 루이즈 베로니카 치코니
Madonna Louise Veronica Ciccone
출생
1958년 8월 16일 (65세)
출신
미시간 주 베이시티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신체
164cm
조부모
친할아버지 가에타노 시콘
친할머니 미켈리나 시콘
외할아버지 윌라드 포틴
외할머니 엘시 포틴
부모님
아버지 실비오 시콘(1931년 6월 2일 출생)
어머니[1] 마돈나 루이스 시콘(1933년 출생~1963년 사망)
형제자매
오빠 안소니 시콘(1956년 출생~2023년 사망)
오빠 마틴 시콘(1957년생)
여동생 폴라 시콘(1959년생)
남동생 크리스토퍼 시콘(1960년생 11월 22일 출생)
여동생 멜러니 시콘(1962년생)
이복여동생 제니퍼 시콘(1968년생)
이복남동생 마리오 시콘(1969년생)
자녀
장녀 루데스 마리아 레옹(1996년생)[2]
장남 로코 리치(2000년생)[3]
차남 데이비드 반다(2005년생)[A]
차녀 멀시 제임스(2006년생)[A]
3녀 스텔라(2008년생)[A]
4녀 에스테르(2008년생)[A][4]
학력
미시간 대학교 (무용과 / 중퇴)
종교
가톨릭
레이블
사이언, 워너 브라더스, 메이브릭, 라이브 네이션, 인터스코프 레코드
데뷔
1982년 10월 6일 {{{-4
싱글
Everybody

재산
5억 8,000만 달러 (한화 약 7,772억원)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음원사이트 링크
파일:스포티파이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뮤직 아이콘.svg 파일:Apple Music 아이콘.svg 파일:멜론 아이콘.svg 파일:네이버 VIBE 아이콘.svg

1. 개요
2. 위상
3. 이름
7. 연애사
9. 음악가로서의 마돈나
9.1. 마돈나와 뮤직비디오
9.2. 보컬리스트 마돈나
9.3. 작곡가, 프로듀서로서의 마돈나
9.4. 마돈나와 패션
10. 평가와 영향력
10.1. 영향을 준 아티스트
12. 수상
13. 필모그래피
13.1. 영화
13.2. TV 드라마
14. 각종 기록
14.1. 음반 판매 관련
14.2. 차트 기록 관련
14.3. 콘서트 관련
15. 기타



1. 개요[편집]



미국가수.


2. 위상[편집]


거의 모든 여자 팝가수들의 롤모델이자 우상이며, 여가수뿐 아니라 대중음악계까지 크나큰 영향을 미친, 그야말로 팝의 여왕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계를 강타하며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이 될 정도의 신드롬적인 인기를 구가했고, 2020년대에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대중음악계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여성 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 상업성과 음악성 모두 최정상급 성과를 거두었는데, 음반 판매량은 총 3억 장 이상 [5]을 기록해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여성 아티스트'로 기네스 세계기록[6] 에 등재되었고 데뷔 이후 음악과 스타일을 개척해가면서, 현대의 수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그 때문에 많은 가수들의 롤모델이기도 하다.[7]

1980년대에는 'Boy Toy'를 휘두르는 물질적인 여자(Material Girl) 그리고 종교적 우파가 시도한 검열 게임에서 승리한 승리의 여신(Like A Prayer), 90년대에는 하나의 문화 현상을 만들어 낸 패션 아이콘(Vogue), 누드집 《SEX》를 발간하는 등 성(性)에 대해 도발적으로 외치는 성 해방가, 2000년대에는 일렉트로니카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Ray Of Light) 선구자 등으로 활약했다. 2010년대부터는 음악계에 뿌리 깊은 연령차별(Ageism)에 저항하고 있다.

1980년대에 마돈나의 등장은 가공할 만한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마돈나의 첫 빌보드 싱글 TOP 10곡인 Borderline의 뮤직비디오에서 마돈나는 그 당시 금기시 되던 인종간의 초월적 사랑을 보여주기도 했고, 이어 마돈나는 Like a Virgin 앨범으로 성에 대해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며, 물질적인 여자(Material Girl)로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상에 대해 노래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또한 마돈나의 패션은 미국 10대 소녀들이 따라하는 워너비(Wannabe) 문화를 만들어내며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마돈나의 끊임없는 사회 문화적 행보와 음악적 행보는 오늘날의 그녀를 독보적인 부동의 팝의 여왕(Queen Of Pop) 위치로 올려 놓는다.

역대 여자 가수 음반 판매량 1위이며[8], 남녀 전체로 넓히더라도 5위 안에 든다.[9][10]미국에서만 인증한 앨범 판매량이 6,500만 장으로 여자 가수 3위이다.[11] 특히 유럽에서의 인기는 독보적인 원톱으로 유럽 각국을 통틀어 여가수 판매량 1위에 빛난다. 그 뿐만 아니라 La Isla Bonita와 Like a Prayer등의 라틴 팝 노래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인기가 많았고, 아시아에서도 마돈나는 2008년 일본 음악 협회가 주관하는 골드 디스크 대상에서 그 해 가장 많은 판매량과 매출을 올려 해외 부문 대상을 받았다. 이 시상식에서 총 5번의 대상을 수상했으며, 여자 가수 역대 1위이다.(비틀즈 6번).괜히 팝의 여왕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80년대는 마돈나가 2집 앨범, Like A Virgin으로 여성 아티스트 최초로 2,000만 장 이상 판매을 성공하면서 최전성기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미국, 유럽,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아시아에서는 최고의 인기까지는 아니지만 당시 사람들이라면 이름은 들어 봤을 정도로 유명했었다.[12] 당연히 마돈나를 상대로 우위를 점한 여성 아티스트는 존재하지 않았다. 매번 논란의 중심이었고 사회 문화를 이끄는 대스타였다. 물론 당시 시각으로는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많았다.
90년대 들어서는 마돈나의 암흑기가 중간의 잠깐 있었다. 물론 당시에 상업적으로는 성공했고 덩달아 연기활동을 하면서 이미지 변경에도 성공했다. 암흑기가 그리 길었던 것도 아니고 암흑기 중간중간에 음악차트적 성공도 이뤘기 때문에 미국에서 빌보드 1위 앨범 + 싱글 수로는 5위 안에 들었다.말만 암흑기지 타 유명 아티스트들의 암흑기와 비교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기도.
2000년대에는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면서 미국에서 인기는 타격을 받긴 했는데, 마돈나는 유럽에서도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싱글 판매량에서 에미넴에 밀려 2위였지만 여가수 싱글 판매량은 1위이다. 당시 앨범 판매량도 총 4,000만 장 이상으로 당대 인기 가도를 달리던 가수들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 판매량이었다. 투어 면에서 볼때에는 당시 여성 아티스트들 중에서 따라올자가 없었다.[13]
가수로서는 드물게 약 30년 가량의 오랜 세월 동안 인기를 누렸다.[14][15] 2010년대 들어서는 데뷔한 지 오래되고 나이도 많아서 인기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2000년대까지는 현역 전성기 가수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정도로 탑급에서 놀았다. 아니, 오히려 일렉트로니카가 앞으로 대세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면서 일렉트로니카의 유행을 선두했고 이후 음반 시장이 라이브 투어 위주로 갈 거라는 흐름도 재빠르게 읽어서 오히려 마돈나가 대세를 리드하는 풍경을 보여주었다. [16]

상업적으로 성공한 대중 가수이지만, Like A Prayer, Ray Of Light, Confessions On A Dance Floor 등의 앨범을 비롯해 비평가들로부터도 음악적으로 호평을 받은 작품도 다수 남겼다. 상업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녀의 디스코그래피를 살펴보면 상당히 실험적인 음악과 뮤직비디오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전성기에 비해 대세에 많이 밀린 편이지만 애초에 40년도 넘은 커리어의 주인이다! 아직도 신인 가수들이 뜨고 있을 때 마돈나가 관심이라도 한 번 주거나 피쳐링에 참여한다면 그건 그 가수가 대세라는 증거나 마찬가지다.[17] 그만큼 마돈나는 연령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아무한테나 관심을 함부로 안 주며 앨범 판매량과 상관없이 전 세계에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지닌 인물이다.

최고의 가수인 만큼 세계의 수많은 가수들의 롤모델이다. 2000~2010년대 활동한 대부분의 여성 가수들, 그리고 다수의 남성 가수들까지 그녀에 대한 존경을 표한다. 특히 댄스 가수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절대적. '제2의 마돈나'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가수들도 숱하게 많다. 물론 그 중에 마돈나를 뛰어넘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여성 아티스트 중에 마돈나를 뛰어넘은 사람이 있나? 한국에서도 김완선, 엄정화, 이효리 등의 가수를 가리켜 '한국의 마돈나'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18]


3. 이름[편집]


프로필에 나와있듯 마돈나의 본명은 마돈나 루이즈 베로니카 치코네(Madonna Louise Veronica Ciccone)로, 사실 마돈나라는 이름은 본명이다. 미국식 발음은 "머다나"에 가깝다. 거의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전형적인 이름. 동갑내기인 가수 프린스 역시 (다소 오만한) 예명으로 자주 오해를 받지만 그쪽 역시 본명이다. 업계 관계자가 데뷔 당시 마돈나의 이름이 본명인 것을 알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을 정도다.

원래 마돈나(Madonna)는 성모 마리아를 경의를 담아 부르는 호칭으로, 그 뜻은 영어로 'My Lady'에 대응한다. 섹시한 컨셉의 가수가 이 이름을 쓴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것이 본명인 것을 어쩌겠는가.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남미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 '마돈나!'를 부른다는 사연이 와서 '그럼 한국에서 놀라면 원더걸스!라고 해야 하나'는 드립을 치고 이후 '페르난도! 마자나!'라는 컬투의 유행어가 만들어졌는데, 그러니까 저 마돈나!는 '성모님이시여!'라는 뜻이다.

한때 매지(Madge)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가이 리치와의 결혼기간에 불리던 애칭이라 본인은 별로 그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진짜로 그녀와 친한 사람들은 그녀를 M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곡의 저작권 표기 등 공적인 이름이 들어가는 자리에는 'Madonna Ciccone' 내지는 'M. Ciccone'를 쓴다.


4. 생애 및 활동[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마돈나(가수)/생애 및 활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음반 목록[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마돈나(가수)/음반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투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마돈나(가수)/투어 및 공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연애사[편집]


  • 첫 번째 남편은 《아이 엠 샘》에 출연한 배우 숀 펜. 1985년에 결혼했는데 결혼 당시에는 사이가 좋았으나 뮤직비디오의 내용을 두고 다투거나 두 사람을 찍는 파파라치를 숀 팬이 질색하면서 사이가 안 좋아진 끝에 1989년 이혼했다. 결혼 생활 동안 마돈나가 숀 펜에게 쇠사슬에 결박당한 채 구타당하면서 살았다는 루머가 있으나 숀 펜이 이를 부인하면서 마돈나에게 이를 해명하는 증언서를 써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마돈나가 이를 거부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없는 걸로 봐선 마돈나가 잘 해결해준 듯 하다. 2015년 이후부터 마돈나와 숀 펜은 자선 행사에 같이 갈 만큼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끔씩 서로 안부 전화도 한다고 한다.
파일:external/todayinmadonnahistory.files.wordpress.com/madonna-sean-penn-wedding-1.jpg}}}||
마돈나와 숀 펜의 결혼식 사진

  • 두 번째 남편은 영국의 영화감독 가이 리치[19] 리치와의 결혼생활 동안 야구선수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염문이 있었으나 둘 다 부인했다.

  • 도발적인 이미지의 스타답게 스캔들이 많다. 80년대에는 샌드라 번하드(Sandra Bernhard)와의 염문설이 화제였다. 샌드라는 여성 코미디언으로, 커플티를 입고 토크쇼에 나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든가 하는 등의 모습도 보였고 찾아보면 여성과의 교제 관련된 이야기도 많다. 마돈나는 양성애자이기도 하다.

  • 로베르토 바조에게 프로포즈를 했다가 차인 적이 있다.[20]

  • 투팍 샤커와도 사귄 적이 있다. 하지만 인종 관련한 문제로 헤어졌다고 한다.

  • 가장 유명했던 연인으로는 데니스 로드맨[21]이 있다. 악동과 섹시퀸의 결합이 꽤나 많은 화제를 불러왔다.

  • 그 밖에 워렌 비티[22], 존 에노스 3세, 바닐라 아이스, 장미셸 바스키아 등 인종과 연령에 무관하게 다양한 남자친구를 섭렵했다.

  • 섹스 파트너로는 존 F. 케네디 주니어, 프린스, 데이비드 블레인, 매직 존슨[23] 등이 있다.

  • 마이클 잭슨이 유일하게 마돈나의 유혹에 넘어오지 않은 남자라고 한다. 오히려 둘은 같은 부문에 종사하는 음악인들로서 서로에게 질투 의식을 가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나오는 건 마돈나의 전기책인데 이 책은 마돈나가 직접 쓴 건 아니고 마돈나에 대해 자료를 수집한 기자가 집필한 책이다. NBC와 마이클의 인터뷰에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돈나가 먼저 마이클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는데 이 때 마돈나가 "미안하지만 난 너와 디즈니랜드 같은 곳에는 안 갈 거야."라고 하자 마이클은 "난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다고 한 적 없는데."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마돈나가 "그럼 레스토랑에 갔다가 스트립 바에 가자."라고 제안하자 마이클은 "난 여자든 남자든 사람들이 옷 벗는 자리엔 안 갈거야."라고 거절했다고. 마돈나와 마이클 잭슨 단 둘이 있을 때 마돈나가 침대에서 옷을 벗으며 마이클 잭슨을 유혹했는데 마이클 잭슨은 이를 보고는 "그러다가 감기 걸린다."며 이불을 가져다 줬다는 소문도 있다(...)

  • 2009년 29세 연하의 남자친구인 헤수스 루즈와 결별한 바 있다.

  • 2013년에는 브라힘 자이밧(Brahim Zaibat)이라는 28살 연하인 프랑스 출신 댄서와 교제했었는데 현재는 헤어졌다.

  • 2019년부터는 36살 연하인 1994년생 안무가 알라마릭 윌리엄스와 교제를 시작했다.[24]


8.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마돈나(가수)/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음악가로서의 마돈나[편집]



9.1. 마돈나와 뮤직비디오[편집]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뮤직비디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가수로, MTV 시대를 본격적으로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는 마돈나의 뮤직비디오들이 워낙 인상적이고 논란을 이끌어내어서, 노래 자체가 상대적으로 과소평가가 되어왔다는 평이 있을 정도다. 2012년 기준으로 무려 20개의 MTV 뮤직비디오 상을 받기도 했다.

많은 유명 뮤직비디오 감독들과 작업했으며, 그 중에는 훗날 영화감독으로 성공한 데이비드 핀처도 있다.[25] 마돈나의 뮤직비디오를 모은 dvd로는 The Immaculate Collection,[26] The Video Collection 93:99, Celebration: The Video Collection이 있다.


9.2. 보컬리스트 마돈나[편집]





재능을 타고난 대단한 보컬리스트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58년생인 마돈나가 무대에서 비록 몇곡이지만 노래를 라이브로 할 수 있는 것은 기술 발달[27]과 백업 코러스에 힘입은 바도 크다.[28]특히 마돈나 특유의 진폭이 큰 비브라토(바이브레이션)는 팝 음악의 보컬 코치들이 꼽는 '절대로 따라하지 말아야 할 비브라토'에 늘 꼽히곤 한다.(...)[29]

데뷔 초기에는 록 음악에 영향을 받은 보컬을 사용했다. 이 시기의 특징적인 보컬 퍼포먼스는 'Like A Virgin'에서의 콧소리 정도다. 다만 이때는 20대였기 때문인지 C나 D 정도의 고음을 종종 내기도 했다. 위에서 언급했든 비브라토, 발성 등 기초적인 부분이 좋지 않은, 사실상 쌩목으로 노래를 했다. 이 부분을 정확히 볼 수 있는 게 Live Aid 1985때의 모습이다. 전성기 때라 그런지 댄스를 하면서도 라이브를 소화하긴 했지만 완전한 쌩목 그 자체로 노래 했다. 이후 'The Girlie Show' 등에 대한 다큐멘터리 등에서 목이 잠겨서 노래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오토튠이나 보정이 없었던 시절 라이브 영상들을 보면 대놓고 삑사리를 낸 적도 은근 있는 편이다.몇 시간 동안 춤추면서 쌩목으로 노래를 부르면... 이 쌩목으로 빌보드 차트 1위를 10곡이 넘게 만들어내고, 투어를 돌았던 것을 보면 엄청나게 지독한 듯하다.

하지만 곡 해석력은 매우 뛰어난 수준으로 특히 추임새나 애드립, 섹시 포인트 강조에 능하다. 'Like A Virgin' 같은 곡에서 특히 잘 드러나는데 'Like A Virgin'의 가사에 묘하게 들어맞는 목소리를 무기로 뛰어난 해석을 통해 인기를 얻고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외에도 수많은 히트곡들은 팬들을 끌어들였고 이는 그녀가 단순히 가창력 떨어지는 무능한 보컬이 아님을 증명한다.

보컬리스트로서 마돈나에게 전환점이 되었던 것은 1996년 뮤지컬 영화 《에비타》 출연이었다. 원래 원작 뮤지컬의 작곡가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사실 마돈나를 탐탁치 않아했지만[30] 마돈나는 결국 이 뮤지컬에 출연하게 되면서 보컬 레슨을 받게 된다.

이 레슨을 통해 두성과 가성의 사용법을 익히면서, 당장 다음 앨범인 《Ray of Light》에서 사용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에비타 이전인 《Bedtime Stories》에서 《Ray of Light》로 넘어오면 목소리가 맑아지고 발성이 안정적인 것이 느껴진다.

지금은 이전에는 사용하지 못했던 가성, 두성, 반가성 등을 사용하게 되었으나, 나이 때문인지 음역대 자체는 조금 내려앉았다. 음색에 있어서는 초창기 특유의 깨랑깨랑한 목소리가 더 좋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확실히 테크닉면에서는 지금이 더 낫다는게 중론이다. 그런데 Rebel Heart 앨범에서는 스튜디오 기술로도 커버가 안 될 정도로 목소리가 상한 것이 드러나서 우려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 나이에 쉬지 않고 월드 투어를 해 왔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이후로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중년 여성의 도발적인 섹시어필을 강조하는 곡 해석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


9.3. 작곡가, 프로듀서로서의 마돈나[편집]


  • 롤링 스톤 선정, 가장 위대한 작곡가 100인 (전체 56위, 여성 6위) #
  • 텔레그래프 선정, 가장 위대한 여성 작곡가 60인 (13위) #
  • uDiscoverMusic 선정, 가장 위대한 여성작곡가 25인 (17위) #
  • FocusOn 선정, 가장 유명한 미국 작곡가 100인 #

"She is a wonderful confessional songwriter, as well as being a superb hit chorus pop writer." (Rick Nowells)

마돈나는 훌륭한 히트코러스를 만들어내는 작곡가이며, 경이로우며 자기고백적인 작곡가입니다.


"They don't realize I'm a songwriter as well as slut... It's the images that gets in the way. What am I supposed to do? The information in on the label. If they don't read it, that's not my problem... You know, they pay attention to what they want to pay attention to." (Madonna)

사람들은 내가 개년일 뿐만 아니라 작곡가인 것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내가 작곡가로서 인정받는 데) 방해를 하는 이미지들이다.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그러한 정보는 일종의 꼬리표인 셈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집중하고 싶어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마돈나는 스타이기 전에 작곡가이기도 하다. 스타성에 가려 작곡/작사 능력이 가려지기도 하지만, 마돈나는 여러 평론지로부터 위대한 작곡가 순위에 뽑히기도 하며, 그녀는 Songwriters of Hall Of Fame에 3번이나 후보에 오를 만큼 작곡가로서도 대단한 위상을 발휘한다. 또한 메인스트림 무대에서 활동하는 여가수로는 드물게 단독 크레딧 작곡/작사를 보유하기도 했다.[31] 마돈나를 가장 위대한 작곡가 100인에 올려놓은 롤링스톤에 의하면 마돈나는 Hook을 만들어내는 데 매우 감각적이며, 뇌리에 꽂히는 가사를 쓰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한다. 또한 마돈나의 가사는 대부분 그녀의 자전적인 면과 진솔한 감정을 담아내며 큰 호평을 받고 있다.

마돈나는 전미 작곡가 협회 ASCAP (American Society of Composers, Authors and Publishers)에서 주관하는 시상식에서 작곡/작사가로서 6개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영국 작곡가 예술원에서 주관하는 Ivor Novello Awards에서 2개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마돈나는 ASCAP에 단독 작곡/작사 크레딧으로 18개의 곡을 올려놓고 있으며, 그녀의 데뷔 앨범에 5개의 단독작곡 크레딧을 가지고 있다. 데뷔앨범의 대표곡중 하나인 Lucky Star는 마돈나가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Pitchfolk에 의하면 마돈나의 데뷔 앨범은 뉴욕 댄스 클럽에서 태어난 뚜렷한 원동력을 가지고 있다 하며, 이 앨범을 어디서나 사람들을 춤추게 하는 명령과 같은 음반으로 평가하고 있다.


9.4. 마돈나와 패션[편집]




연도별로 정리한 마돈나의 패션

독보적인 패션아이콘이다. 1980년대 찢어진 청바지, 가죽 자켓, 과한 악세사리 등으로 대표되는 펑크스런 패션을 이끄는 트렌드세터였던 마돈나이다. 이외에도 무대에서 입은 웨딩드레스, 콘브라 의상 등 유명한 의상들도 많다. 현재 브리트니 스피어스, 비욘세, 레이디 가가 등 유명한 댄스 가수들은 무대에서 바디슈트 의상을 입는 것이 트렌드인데, 이미 마돈나는 이미 90년대에 이러한 의상을 입고 공연했다.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여자가수 무대 의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선구자였던 것. 쉰을 앞둔 2005년에는 Hung Up에서 입고 나온 레오타드가 화제가 되었다.

가수로서는 최초로 GAPH&M과의 콜라보레이션을 맡았다.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의 대표적인 뮤즈이기도 하다. 1990년 'Blond Ambition' 투어에서 입은 콘브라는 마돈나와 장 폴 고티에의 대표적 협업. 이 콘브라는 2013-2014년 'MDNA' 투어에서도 등장한다. 또한 Dolce & Gabanna 브랜드를 발굴한 가수로 역시 동 브랜드의 뮤즈이다. 지금 유행하는 Dsquared2 청바지 역시 마돈나가 2000년대 초반에 입었다. 또한 베르사체, 루이비통, 돌체앤가바나 둥의 캠페인을 찍기도 했다.

여자 연예인 최초로 세계 4대 보그(미국, 영국, 파리, 이탈리아)지의 커버를 모두 장식했다. 디자이너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 연예인으로 지방시, 모스키노, 베르사체 등의 뮤즈로 꼽히기도 한다.

마돈나가 입고다니던 스타일을 통틀어 아예 마돈나룩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미국 대중매체에서는 80년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주 등장.


10. 평가와 영향력[편집]




Queen of Pop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가수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지금까지도 저 수식어를 언론과 대중들로부터 받는 가수는 마돈나가 유일하다.

밴드와 남성 가수들이 지배하던 80년대 빌보드 차트에 혜성처럼 등장해 거의 사회현상이다 싶을 만큼 화제거리를 몰고 왔다. 사실상 오늘날 여가수가 시도할 수 있는 모든 컨셉은 다 해봤다고 무방하며, 그녀의 성공에 고무받은 많은 후배 여가수들이 댄스 디바로 데뷔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여가수가 성이나 종교, 정치 같은 민감한 소재를 건드리는 것이 금기시되던 그 시절에 노골적으로 해당 이슈들을 거론하고, 담론을 나누는 것에 거리낌 없었는데 이는 오늘날 소셜테이너의 시초라고 봐도 무방. 이런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하는 아티스트였지만 공식 석상에선 매너 있고 상식인이었다. 1995년 MTVVMA에서 술에 취한 코트니 러브가 리포터와 야외 인터뷰를 하던 마돈나의 머리 위로 메이크업 콤팩트를 집어 던지고선 무대 위로 올라와 깽판을(...) 친 적이 있는데, 이때 마돈나의 침착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마돈나 하면 엄청난 콘서트 규모와 화려한 퍼포먼스를 빼놓을 수 없다. 최초로 성공한 댄스플로어 디바라는 타이틀을 가진 가수답게[32] 뛰어난 안무와 무대 매너로 큰 호응을 얻었고, 이는 오늘날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비롯한 많은 가수들의 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히 그녀의 3번째 월드투어인 Blond Ambition 투어는 콘서트에 최초로 '쇼'의 개념을 도입한 공연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아예 음악 공연 자체의 판도를 바꾼 것으로 평가받는다.

마돈나의 영향력은 단순히 음악뿐 아니라 헐리웃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Blond Ambiton 투어의 제작 과정과 실황을 담은 다큐영화 '진실 혹은 대담' 은 엄청난 성공과 더불어 헐리웃 최초의 리얼리티 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리얼리티 쇼가 얼마나 엄청나게 대형화되었고 미국 문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거의 업계 자체를 만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

마돈나의 전기영화가 제작될 예정이다. 2017년부터 마돈나의 데뷔 초를 다룬 영화 '금발의 야망(Blond Ambition)'의 제작 소식이 알려졌지만, 마돈나의 허락 없이 진행된 프로젝트여서 그런지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2020년에는 본인이 감독으로 참여하여 전기영화를 제작한다고 알렸다. # 제목은 '블론드 앰비션(Blonde Ambition)'이며 각본가와 배급사까지 정해졌다고 한다. 언론에서 뽑는 주요 후보로는 패리스 잭슨, 플로렌스 퓨 등이 있다. 2022년, 많은 배우들이 오디션을 거쳐간 끝에 줄리아 가너가 마돈나 역을 맡게 되었다. #


10.1. 영향을 준 아티스트[편집]




마돈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티스트들 모음 영상

※ 마돈나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밝힌 아티스트들의 목록이다:


11. 어록[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마돈나(가수)/어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 수상[편집]



12.1. Grammy Awards[편집]


파일:Grammy.svg
28회 후보지명 중 7회 수상
1992년
Best Music Video, Long Form (Blond Ambition World Tour Live)
1999년
Best Pop Album (Ray Of Light)
1999년
Best Dance Recording (Ray Of Light)
1999년
Best Short Form Music Video (Ray Of Light)
2000년
Best Song Written For A Motion Picture, Television Or Other Visual Media (Beautiful Stranger)
2006년
Best Dance/Electronic Album (Confessions On A Dance Floor)
2008년
Best Long Form Music Video (The Confessions Tour)


12.2. MTV Video Music Awards[편집]


파일:MTV_logo.png
68회 후보지명 중 20회 수상
1986년
Video Vanguard Award
1987년
Best Female Video (Papa Don't Preach)
1989년
Best Art Direction (Express Yourself)
1989년
Best Cinematography (Express Yourself)
1989년
Best Direction (Express Yourself)
1989년
Viewer's Choice (Like a Prayer)
1990년
Best Cinematography (Vogue)
1990년
Best Direction (Vogue)
1990년
Best Editing (Vogue)
1991년
Best Long Form Video (The Immaculate Collection)
1993년
Best Art Direction (Rain)
1993년
Best Cinematography (Rain)
1995년
Best Female Video (Take A Bow)
1998년
Best Special Effects (Frozen)
1998년
Best Choreography (Ray Of Light)
1998년
Best Direction (Ray Of Light)
1998년
Best Editing (Ray Of Light)
1998년
Best Female Video (Ray Of Light)
1998년
Video Of The Year (Ray Of Light)
1999년
Best Video From A Film (Beautiful Stranger)


12.3. American Music Awards[편집]


파일:dwerw22.jpg
18회 후보지명 중 3회 수상
1987년
Favorite Pop/Rock Female Video Artist
1991년
Favorite Dance Single (Vogue)
2003년
International Artist of the Year Award


12.4. Billboard Music Awards[편집]


파일:BMA.png
6회 후보지명 중 5회 수상
1996년
Artist Achievement Award
2004년
Top Hot Dance Single Sales (Me Against the Music)
2013년
Top Touring Artist
2003년
New R&B Artist
2013년
Top Dance Artist
2013년
Top Dance Album (MDNA)


13. 필모그래피[편집]



13.1. 영화[편집]


  • 상처뿐인 과거(A Certain Sacrifice, 1980) : 정확히는 1979년에 촬영했으며 2만 달러 저예산 영화이다. 그야말로, 마돈나가 듣보잡 시절에 찍었기에 100달러 헐값에 나왔으며 영화 자체도 졸작으로 욕만 먹었다. 감독과 각본을 맡은 스티븐 존 레위키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로 다시는 영화 일을 하지 않았을 정도. 1시간 정도 상영 시간에 창녀로 나오고 연기도 엉성하고 영화 자체는 개봉도 못하고 봉인했다가 1985년 마돈나가 가수로서 대박을 거두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디오로 발매해버렸다. 마돈나는 불쾌해하며 판권을 감독에게 사서 비디오 발매를 막으려 했으나, 결국 비디오로 나와 초반에 5만 장이 넘는 비디오가 팔려 제작비 100배 이상 수익을 거둬들였다. 영화 평은 마돈나 풋풋한 20대 초반 시절과 가슴 노출 같은 장면만이 장점이라고 할 정도로 완성도에선 엉망이다. 한국에선 1986년 세신영상에서 마돈나 데뷔작이라고 홍보하며 비디오로 냈다.
  • 수잔을 찾아서(Desperately Seeking Susan, 1985) :2번째로 나온 영화로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을 거뒀고 마돈나는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까지 올랐을 정도로 연기력도 평이 좋았다. 1990년 대우비디오에서 비디오로 발매했다.
  • 청춘의 승부(Vision Quest, 1985) :매튜 모딘이나 포레스트 휘테커가 나오고 나름 평가는 좋았으나 마돈나는 극중 가수로 나와 노래 몇 곡을 부르는 조연이다. SKC에서 비디오로 발매한 바 있다.
  • 상하이 유혹(Shanghai Surprise, 1986): 숀 펜과 같이 주연을 맡아 1500만 달러 제법 예산을 썼으나 제작비 1/5도 못 거둬들이고 골든 라즈베리를 휩쓸었다.
  • 화려한 유혹(Who's That Girl, 1987) 제임스 폴리 감독. 평은 좋았으나 흥행은 실패했다. SKC에서 1990년 발매.
  • 야망의 브로드웨이(Bloodhounds Of Broadway, 1989): 당시 주목받은 젊은 배우들이 대거 나와 화제를 모았으나 악평 속에 제한개봉하여 400만 달러 제작비로 만들어 4만 5천 달러 수준 참혹한 흥행을 거둬들였다. 1990년 대우비디오로 발매했다.
  • 딕 트레이시(Dick Tracy, 1990)
  • 진실 혹은 대담(Truth Or Dare: In Bed With Madonna, 1991)
  • 그들만의 리그(A League Of Their Own, 1992)
  • 그림자와 안개(Shadows And Fog, 1992)
  • 육체의 증거(Body Of Evidence, 1993)[35]
  • 스네이크 아이(Dangerous Game, 1993): 아벨 페라라가 감독하여 그답게 평은 좋았으나 제작자랑 다퉈 개봉도 제대로 못해 흥행은 실패했다. 마돈나의 위험한 게임이란 제목으로 비디오로 발매한 바 있다.
  • 네 개의 방(Four Rooms, 1995) :포룸이란 제목으로 한국 개봉.
  • 블루 인 더 페이스(Blue In The Face, 1995)
  • 에비타(Evita, 1996)[36]]
  • 걸 식스(Girl 6, 1996)
  • 넥스트 베스트 씽(The Next Best Thing, 1999)
  • 스웹트 어웨이(Swept Away, 2002)
  • 007 어나더데이(Die Another Day,2002)[37]
  • 아더와 미니모이: 제1탄 비밀 원정대의 출정(Arthur and the Invisibles,2006)[38]


13.2. TV 드라마[편집]


  • 윌 앤 그레이스 - 리즈 역[39]


14. 각종 기록[편집]



14.1. 음반 판매 관련[편집]


  • 가장 많은 음반을 판 여성 아티스트 (3억장)
  • 가장 많은 싱글을 판 여성 아티스트 (1억 2000만장)
  •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린 여성 아티스트의 베스트 앨범 [40]
  •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린 여성 아티스트의 리믹스 앨범 [41]
  • 가장 많은 RIAA 골드 인증 곡을 보유한 여성 아티스트
  • 2000년대 미국에서 가장 많은 피지컬 싱글을 판 아티스트
  • 영국에서 가장 많은 싱글을 판 여성 아티스트
  •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해외 아티스트의 앨범 [42]
  • 1980년대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여성 아티스트의 앨범[43]


14.2. 차트 기록 관련[편집]


  • 빌보드 싱글차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솔로 가수[44]
  • 빌보드 싱글차트 1위곡을 10개 이상 최초의 보유한 여성 아티스트
  • 빌보드 싱글 차트 5위권에 가장 오랫동안 이름을 올린 가수[45]
  • 빌보드 모든 차트 합산 최다 1위곡 보유 [46]
  • 가장 많은 빌보드 유럽 싱글 차트 1위 곡 보유 [47]
  • 빌보드 유럽 싱글 차트 최장 기간 1위 [48]
  • 빌보드 유럽 싱글차트 2위곡 최다 보유[49]
  • 빌보드 유럽 싱글 차트에서 1위, 2위, 5위, 10위, 20위, 40위권에 진입한 노래 수 전 분야에서 최고 기록
  • 빌보드 댄스 클럽 차트 최다 1위곡 보유 [50]
  • 빌보드 에어플레이 차트 역대 최고 진입 순위 [51]
  • 영국 싱글 차트 5위권에 가장 많은 곡을 진입시킨 아티스트 [52]
  • 영국 차트 역대 최다 1위곡 보유 [53]
  • 영국 차트 역대 최다 1위 앨범 보유 [54]
  • 캐나다 싱글 차트 역대 최다 1위곡 보유 [55]
  • 독일 싱글 차트에서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 오리콘 앨범 차트 10위권 안에 가장 많은 앨범을 올린 해외 아티스트 [56]
  • 2005년 당시 "Hung Up"이 41개국 1위를 기록하며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에서 1위를 기록한 노래로 등극
  • 빌보드 역사상 가장 많은 탑10히트곡 보유(비틀즈와 엘비스가 뒤따름)


14.3. 콘서트 관련[편집]


  •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여가수 월드 투어 (2009년 기준 4억 8000만달러)[57]
  • 영국 콘서트에서 가장 많은 관객 동원
  • 프랑스 단일 공연에서 역대 최다 관객 동원 (131,000명)


15. 기타[편집]


  • 2023년 2월 24일, 마돈나의 일곱 남매 중 한 명인 앤서니 앤서니 치코네가 세상을 떠났는데,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리고 노숙까지 했었다는 것이 밝혀져 주목 받았다. #
  • 2023년 6월 24일 박테리아 감염으로 뉴욕 자택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뉴욕시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
6월 28일 한 외신은 밤새 삽관 치료를 받았으며 입원 당시 큰딸 루데스 레온이 함께 했고 밤새 엄마를 간호했다고 전했다.
같은 날 마돈나의 매니저가 성명을 통해 “지난 24일 마돈나는 심각한 박테리아 감염이 발병해 며칠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건강은 호전되고 있지만, 여전히 치료받고 있다. 완전한 회복이 예상된다. 현재로서는 투어[58]를 포함한 모든 일정을 중단해야 한다. 투어의 새로운 시작 날짜와 일정 변경 등 자세한 정보가 나오는 대로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투어는 추후 공지가 있을 때까지 연기됐다.

  • 2023년 7월 19일 마돈나는 자신의 SNS에 셀카 사진을 게시하며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근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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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글에서 찾아보니 모녀끼리 이름이 같다.[2] 아버지는 마돈나의 전 남자친구 카를로스 레옹.[3] 아버지는 마돈나의 전 남편 가이 리치.[A] A B C D 입양.[4] 스텔라와 에스테르는 쌍둥이이다.[5] 참고로 마돈나의 판매량은 대부분 실물 중심이다. 실물은 만들고 유포하는데 많은 과정을 거치고 생산하는데 한계가 있다.(몇 천 만 개를 만들다 보니.)(그래서 상대적으로 싼 싱글은 더 적게 생산함.) 이 점은 당연히 현재 가수들의 판매량과 비교하면 치명적인 문제점으로 작용한다. 그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대중들이 앨범 및 싱글을 구매하는 것도 현재보다는 까다로웠다. 가수가 노래를 낸다는 소식도 대중들에게 순식간에 확산되는 것도 아니었다.(바쁜 현실을 살다 보면 모를 수 있는 시대였다.) 실물이다 보니 외국으로 가져가는 것과 그곳에서 사고 파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다.(수요에 맞지 않는 물량 등.) 반면 디지털로 판매하면 따로 만들 필요도 없고, 대중들이 구매하기도 쉽다. 디지털이 발달하다 보니 노래 발매 소식도 금방 확산된다. 이렇게만 봐도 아날로그 시대의 음반 판매는 디지털 시대의 음반 판매보다 불리하다. 당연히 마돈나를 포함한 아날로그 시대 가수들의 판매량을 디지털 시대 가수들의 판매량과 비교한 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고 불리하다. 그런데도 마돈나는 판매량은 디지털 시대 가수들을 압살하는 기적을 볼 수 있다.[6] 최근 기네스북 등재 기록에 의하면 마돈나가 음반을 최대 4억장까지 팔았다고 한다. 기네스북 기록[7] 그나마 마돈나 커리어에 비빌만한 존재들은 그 유명한 세계 3대 디바, 댄스 여가수로서의 영향력으로 친다면 자넷 잭슨 정도밖에 없다. 3대 디바도 웬만한 팬덤 큰 남자가수들과 비교한다 해도 전부 이겨 먹는 수준인데, 마돈나가 이들보다 상업성과 문화적 파급력은 우위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참고로 셀린 디옹과는 8촌 관계다.[8] 빌보드 기준으로도 1980, 1990, 2000, 2010, 2020년대까지 차트에 1위를 가지고 있는 어마무시한 기록을 지녔다[9] 음반 판매량은 조사 매체마다 2억 5천만 장에서 3억 장, 최근에는 최대 4억까지로 다양하게 유추하지만, 여자 가수 음반 판매량 1위는 확실하다. 이 기록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으니 말 다했다. 나나 무스쿠리같은 가수가 1위가 아니냐는 반박도 가끔씩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비공식적 판매량은 지금은 거의 묻힌 의견이다.[10] 참고로 2000년대 초, 국제음반산업협회에서 불법 복제가 가장 심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아티스트라고 발표했다. 당대 기사그런데도 압도적 1위이다.[11] 1위와 2위는 각각 머라이어 캐리바브라 스트라이샌드.[12] 특히 80년대에는 빌보드 유로 차트에서 가장 성공한 가수였다.[13] 애초에 마돈나는 퍼포먼스형 가수인 만큼 투어에 강한 가수다. 90년대 부터 10년대까지 건재하게 투어 활동을 하며 인기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14] 물론 데뷔 때부터 2012년 까지, 활동 중간마다 굴곡이 있긴 있었다.[15] 2023년 축하투어 수요를 보면 데뷔한 지 40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도 현역 가수들 못지않게 인기를 얻고 있음을 알 수 있다.[16] 2005년 연말에 발매된 10번째 정규 앨범 Confessions On A Dance Floor는 전세계적으로 1,000만 장이 판매되었으며 이 앨범의 리드 싱글 Hung Up은 전세계 41개 국 1위를 차지했다. 2008년 작품인 Hard Candy도 37개 국 앨범 차트 1위에 전세계 400만 장을 팔았고 리드 싱글 4 Minutes는 전세계 싱글 차트 21개국 1위, 빌보드 싱글 3위를 기록했다.[17] 예로 2000년대엔 대세 가수인 브리트니 스피어스, 저스틴 팀버레이크, 카녜 웨스트, 퍼렐 윌리엄스, 미시 앨리엇 등과 콜라보 및 음악 작업을 했었고, 2010년대 들어서는 니키 미나즈, LMFAO, Quavo, maluma, 2020년대에는 두아 리파와 콜라보 했다. 상기된 인물들 모두 당시 전성기를 누린 아티스트들이다.[18] 다만 한국에서는 마돈나의 성과에 대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그냥 섹시컨셉 여가수만 보면 무작정 마돈나에 빗대는 경향도 강하다. 일단 김완선은 한국 여성 댄스 가수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엄정화는 50대가 넘은 나이까지 꾸준히 댄스 곡을 시도하면서 일렉트로니카를 선구적으로 도입하는 실험성도 갖췄다는 점에서, 이효리는 솔직하고 당당한 알파걸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사회적 메시지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한국의 마돈나'로 불릴 자격은 충분히 있는 편.[19] 이혼 하면서 마돈나가 가이 리치에게 준 돈은 7,600만~9,200만 달러(인플레이션 조정 시 1억 3,000만~1억 2,500만 달러)로 추산된다고 한다.[20] 마돈나가 프로포즈한 시점에 바조는 이미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때 결혼한 아내와 지금까지도 잘 살고 있다.[21] 김정은과 친한 그 사람 맞다.[22]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클라이드 역으로 유명한 배우. 마돈나의 애인 중 몇 안되는 연상 남자다.[23] 둘이 동침한 것은 확실하지만 섹스 파트너의 관계까지 발전했는지는 알 수 없다.[24] 이외에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로는 무려 46살 어린 25세의 여자친구와 교제하는 지미 페이지, 무려 53세 연하인 22살의 영화 제작자 노어 알파라와 열애 중인 믹 재거, 53세 연하녀(29세)와 교제하는 알파치노가 있다.[25] Express Yourself, Vogue, Bad Girl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26] 동명의 앨범과는 수록곡이 조금 다르다.[27] 음정 보정 장치인 오토튠이 내장된 마이크를 사용한다.[28] 예로 같은 시기 팝의 황제인 마이클 잭슨은 보컬 부분에서 뛰어난 보컬적 아티스트들에게도 영향력을 끼친 바 있다, 어찌보면 마돈나가 보컬리스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지 않았다는 목소리들도 여기서 나온듯하다.[29] 물론, 마돈나가 노래를 못했던 건 절대 아니다. 지금처럼 기술이 발달되지 않은 80년대 탑 가수들 중 한 명이었던 만큼 기술에 의존하는 웬만한 현재 가수들보다 잘 부른다. 그러나 마돈나가 노래를 못하는 것처럼 비춰지는데 그 이유로는 마이클 잭슨, 휘트니 휴스턴 등과 같이 당시 활동하던 주요 가수들이 노래를 너무 잘했기 때문에 마돈나가 노래를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 밖에 없다.[30] 원체 이 뮤지컬의 '에비타' 역할은 강력한 고음역대 벨팅 발성을 요구한다. 마돈나가 원래 스타일로 클린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영화 버전에서는 키를 낮춰야 했다. 자세한 것은 에비타 항목 참조. 그리고 지금에야 왕언니 대접을 받지, 90년대 중반까지는 아직 섹스어필을 무기로 내세우는 연예인 취급이 강했다.[31] 보통 싱어송라이터 이미지로 언플하는 가수들 중 상당수는 공동 크레딧에 이름 하나 끼워 넣고 곡 작업에 참여했다는 식으로 홍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32] 사실 데뷔 시기로 따지면 자넷 잭슨이 먼저고 댄스 실력도 압도적이지만, 자넷은 1986년 3집 Control을 내고 나서야 탑가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설명도 틀리다도 볼 수는 없다.[33] 전성기때 여성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마돈나를 좋아했다고 직접 밝혔다.[34] 영향받은 사람에게 키스당했다(;;)[35] 원초적 본능의 성공에 힘입어 유사한 플롯으로 출시했으나 혹평을 받았다.[36] 주인공 에바 페론을 연기했다.[37] 동명의 작중 테마곡도 불렀다.[38] 뤽 베송의 애니메이션 영화로,목소리 연기.[39] 시즌 5의 에피소드 21.[40] The Immaculate Collection, 3000만장[41] You Can Dance[42] True Blue, 155만장[43] Like A Virgin[44] 전체 2위, 1위는 비틀즈[45] Lucky Star(1983)~Cherish(1989)[46] 61곡[47] 15곡[48] 총 87주[49] 11곡[50] 46곡[51] 2위, Erotica[52] 44곡[53] 13곡[54] 12장[55] 25곡[56] 23장[57] Sticky & Sweet Tour[58] 7월 15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월드투어 ‘셀러브레이션’(Celebration) 공연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가을까지 디트로이트, 시카고, 마이애미, 뉴욕, 런던, 바르셀로나, 파리 등 유럽 주요 도시에서 이어질 계획이었으며 거의 매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