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해밀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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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해밀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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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피스톤즈 No. 32
리처드 클레이 해밀턴
Richard Clay Hamilton

출생
1978년 2월 14일 (46세)
펜실베이니아주 코츠빌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출신학교
코네티컷 대학교
신장
201cm (6' 7")
체중
88kg (193 lbs)
포지션
슈팅 가드 / 스몰 포워드
드래프트
1999 NBA 드래프트 1라운드 7순위
워싱턴 위저즈 지명

소속팀
워싱턴 위저즈 (1999~2002)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2002~2011)
시카고 불스 (2011~2013)
등번호
32번 - 디트로이트 / 워싱턴 / 시카고

1. 개요
2. NBA 입성전
3. NBA 입성후
4. 수상 내역
5. 플레이 스타일
6. 여담



1. 개요[편집]


미국의 전직 농구선수. 별명은 RIP. Rest In Peace.


2. NBA 입성전[편집]


해밀턴은 코네티컷 대학교로 진학해, 1999년에 NCAA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팀의 주력선수로써 처음으로 NCAA 우승을 이끌어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였다.


3. NBA 입성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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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위저즈는 1999년 NBA 드래프트 7순위로 리차드 해밀턴을 지명하였다. 신인 당시에는 71경기에 출전해 12경기를 선발로 나가 평균 9득점을 기록해 베테랑 슈팅 가드인 미치 리치몬드를 백업하였다. 위저즈는 29경기에서 이겼고, 2001년에 현역으로 복귀한 마이클 조던과 함께 콤비를 결성하였으나, 플레이오프 진출의 꿈은 좌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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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는 제리 스택하우스로부터 복수선수와의 트레이드 형식으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이적하게 된 해밀턴은 오프 시즌에 동기 입단한 천시 빌럽스테이션 프린스를 영입 보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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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스의 왕자가 어디로 갔지?[1]
2003-04시즌에는 래리 브라운 감독의 취임과 라시드 월러스가 트레이드 형식으로 이적해 배드 보이즈 2기를 결성. 팀의 주축 멤버로 활동해 2004 NBA 파이널에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상대로 1990년 이후 14년만에 우승을 안겼다.

비록 파이널 MVP는 천시 빌럽스에게 돌아갔지만, 당해 피스톤즈의 에이스는 플레이오프에서 평득 21.5점을 기록한 해밀턴이었다. 정확히는 당시즌 팀내 유일한 올스타이자 DPOY다운 수비력으로 All-NBA 세컨드 팀까지 먹은 벤 월러스가 팀 내 최고의 선수였으나, 근본적으로 수비형 센터인 그를 대신해 공격에서 1옵션으로 활약한 건 해밀턴이었던 것.[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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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뛴 피스톤즈와 결별하게 된 해밀턴은 3년계약으로 시카고 불스에 트레이드되어 24분을 소화하였고 11.6개의 득점에 3개의 리바운드, 2.4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부상도 있었지만 28경기만 선발로 나가 50승 16패로 만들고 동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게 했으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1차전에서 패해 탈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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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3시즌에는 50경기를 나가 45경기를 선발로 나가 21.8분을 소화하였고 9.8득점과 2.4개의 어시스트, 1.7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불스는 45승 37패로 5위를 기록하였고 두번째 센트럴 디비젼 챔피언을 얻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는 마이애미 히트에게 패하여 탈락. 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 신분이 되었다.

2015년 2월 26일, 해밀턴은 공식적으로 현역을 은퇴하게 된다.

4. 수상 내역[편집]


수상 내역
파일:NBA-Champion.png NBA 챔피언 (2004)
파일:NBA-Allstar2021.png NBA 올스타 3회 (2006-2008)
파일:NCAA 로고.svg NCAA 챔피언 (1999)
파일:NCAA 로고.svg NCAA 파이널 포 MOP (1999)


5. 플레이 스타일[편집]


오프더볼 무브가 굉장히 뛰어난 슈터로, 동료들의 스크린을 받으며 길게 돌아나와 던지는 이른바 동네 한 바퀴의 달인이었다. 미드레인지를 주무기로 하면서도 통산 44.9%의 준수한 야투율을 기록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얇은 프레임 때문에 파워풀함은 떨어졌지만, 엄청난 체력으로 공격수를 괴롭히는 뛰어난 수비수이기도 했다.

앞서 말한 동네 한 바퀴 스타일에 덧붙이자면, 해밀턴은 레이 앨런이나 레지 밀러처럼 공을 가지지 않은 채 끊임없이 움직여 다른 팀메이트들이 걸어주는 스크린을 최대한 활용해 자신을 마크하는 수비수가 한 순간도 쉴 수 없도록 하는 스타일이었다.[3][4] 한 순간 방심하면 스크린으로 수비수를 따돌린 후, 주특기인 미드레인지 점퍼를 꽂아넣는 것이 패턴. 게다가 스크린을 세팅하는 선수들은 힘 좋고 덩치 좋은 벤 월러스라시드 월러스니 스크린의 완성도도 엄청났다.게다가 해밀턴은 아버지가 장거리 육상선수였고, 본인도 달리는 걸 즐기는 스타일이라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전력으로 뛰어다녔다.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피곤해 죽을 노릇.

여담으로 자유투를 던지기 전에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췄다가 일어나며 한 번 손가락을 위로 치켜들어 마치 거리를 재듯이 골대를 가리킨 다음,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 바로 앞에 공을 두 번 드리블 한 후 몸의 오른쪽으로 한 번 드리블을 하는 버릇이 있다.


6. 여담[편집]


해밀턴을 떠올리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얼굴 보호대인데, 자세한 것은 여기서 확인할 수가 있다.

[1] 이 때 사진은 우승 기념 사진이라 상관이 없지만 위의 네 멤버가 모두 2006년 올스타로 선정되며 98년 레이커스 이후 처음으로 한 팀에서 올스타 네 명을 배출한 팀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한 팀에서 올스타 네 명을 배출할 정도면 당연히 정규시즌에서 대단히 높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최소한 올스타가 열리는 전반동안만이라도. 후반기에 페이스가 팍 꺾여서 성적이 많이 떨어진 11셀틱스도 있다) 06피스톤즈 역시 시즌중반까지 70승 이상을 노려볼 정도로 잘나갔고, 후반기에 페이스가 꺾였음에도 64승이나 거뒀다. 그러나 정규시즌에 너무 힘을 뺐는지 결승 진출에도 실패했는데, 아이러니하게 올스타 네 명을 배출할 정도로 강했던 8팀 중 우승팀은 17 워리어즈를 비롯해 세 팀에 불과했다.[2] 빌럽스는 파이널에선 MVP를 받을만한 활약을 하긴 했지만, 플옵 전체로 넓히면 빌럽스보다 평균 득점이 5점 가량 쳐진다.[3] 단, 앨런이나 밀러만큼 3점슛이 좋지는 않았다.[4] 요즘 시대였다면 3점슛을 장착했을 것이라고 하는 의견도 종종 있지만, 그런것과는 상관없이 원래 3점이 약한 타입이었다. 코너 3점 외에는 시도조차 잘 하지 않았고, 가끔 3점찬스가 생겨도 3점 라인보다 한 발자국 앞에서 던지는 등 3점슛을 매우 꺼리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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