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보아 모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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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보아 모르테의 역임 직책


풀럼 FC 주장

리 클라크
(2003~2005)

루이스 보아 모르테
(2005~2007)


브라이언 맥브라이드
(2007~2008)


풀럼 FC
Fulham Football Club

파일:luis boa morte.png

이름
루이스 보아 모르테
Luís Boa Morte

출생
1977년 8월 4일 (46세)
포르투갈 리스본
국적
[[포르투갈|

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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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78cm, 81kg
직업
축구선수 (윙어, 미드필더 / 은퇴)
축구코치
소속
선수
스포르팅 CP (1994~1996 / 유스)
스포르팅 CP (1996~1997)
SC 루린하네세 (2006, 임대)
아스날 FC (1997~1999)
사우스햄튼 FC (1999~2001)
풀럼 FC (2000~2001 / 임대)
풀럼 FC (2001~2007)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07~2011)
라리사 FC (2011~2012)
올랜도 파이리츠 FC (2012)
체스터필드 FC (2012~2013)
지도자
스포르팅 CP (2014 / 수석코치)
스포르팅 CP (2014~2015 / 유스)
아스날 FC (2015~2017 / 스카우트)
SU 신트렌세 (2017)
포르티모넨스 SC (2017 / U-23)
마카비 하이파 FC (2019 / 수석코치)
에버튼 FC (2019 / 수석코치)
풀럼 FC (2021~ / 수석코치)
국가대표
28경기 1골 (포르투갈 / 2001~2009)

1. 개요
2. 선수 시절
2.1. 클럽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3. 지도자 시절




1. 개요[편집]


포르투갈의 前 축구선수이자 現 축구 지도자.


2. 선수 시절[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자국의 수도인 리스본에서 태어난 보아 모르테는 유년 시절부터 촉망받는 선수로 스포르팅 CP의 유스팀을 거쳤다.

1996년에 스포르팅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1년 뒤 아스날 FC의 감독인 아르센 벵거의 레이더망에 포착되며 175만 유로의 이적료로 아스날에 입단하게 된다.

그의 데뷔전은 1997년 8월 23일에 치러진 소튼전이었으며 당해 시즌에 보아 모르테는 리그 15경기 포함 총 21경기를 나서 2골을 기록하며 팀의 더블 달성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다음 시즌은 지난 시즌과 달리 많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고 무엇보다 그가 뛰는 자리에는 당시 프레드릭 융베리, 로베르 피레스 등 기라성의 선수들이 즐비했다. 당연히 주전 자리는 요원했고 결국 사우스햄튼으로 이적을 선택한다.

소튼에 합류한 보아 모르테는 데이브 존스 감독의 신임을 받아 초반에는 중용되었으나 그가 경질된 뒤 글렌 호들이 부임하면서 부터는 입지가 크게 좁아지면서 기회를 찾아 떠났음에도 되려 반복되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지고 말았다.

결국 그는 1시즌만에 쫒기듯이 팀을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그에게 손을 내민 클럽이 바로 풀럼 FC.

당시 감독은 80년대 프랑스 축구를 호령했던 "마법의 사각편대"[1]의 일원인 장 티가나였다. 티가나는 그를 영입한 뒤 주전으로 중용했고 보아 모르테도 이에 보답하듯 폭발적인 스피드를 활용해 풀럼에서는 물 만난 물고기 마냥 뛰어난 활약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첫 시즌만에 팀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기여하면서 단숨에 핵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의 활약은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도 여전했고 2004-05 시즌에는 풀럼 올해의 선수 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2005-06 시즌부터는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며 굳건한 입지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풀럼에서의 6시즌간 보아 모르테는 그야말로 팀의 간판 윙어였다. 심지어 2006년에는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이적설이 있었을 정도.

2007년 1월, 그는 시즌 도중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 공식적으로 이적료는 비공개이지만 언론에 의하면 500만 유로로 추정했다.

브라이튼과의 잉글랜드 경기에서 해머스 소속으로 첫 경기를 치렀고 1월 13일에는 친정팀 풀럼을 상대로 멀티골을 박아넣으며 비수를 꽂기도 했다. 해머스에서도 3시즌간 주전급 멤버로 활약했지만 사실 그의 기량은 점점 떨어져가고 있었다. 스피드가 죽으면서 특유의 과감한 돌파를 보여주지 못했으며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설상가상 2009-10 시즌을 앞두고 중국 베이징에서 치러진 토트넘과의 버클라이즈 아시안 트로피컵 경기에서 십자인대 파열로 인해 장장 9개월간 재활에 매달려야만 했다. 당연히 2010년에 치러진 월드컵 참가는 무산됐으며 이 부상을 계기로 그의 기량은 더욱 쇠락하고 만다.

2010-11 시즌에 부상을 털어내고 복귀했으나 전술한대로 장기부상으로 인해 그의 기량은 빠르게 하락 중이었고 팀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하고 시즌 종료 뒤 팀을 떠난다.

이후에는 그리스와 남아공 리그를 거쳐 2012-13 시즌에 체스터필드에서 노익장을 불태운 뒤 이듬해 1월에 팀과 계약해지 후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2001년 4월, 풀럼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던 그는 프랑스를 상대로 A대표팀에 데뷔했다.

그 해 11월에는 앙골라와의 친선전에서 득점을 기록했고 이 골이 처음이자 마지막 A대표팀에서 기록한 득점이었다.

이후 그는 소속팀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에서 열린 UEFA 유로 2004 최종명단에 선발되지 못했다. 그러나 2년 뒤 2006 FIFA 독일 월드컵 최종명단에는 이름을 올렸고 독일과의 3.4위전에서 본선 첫 경기를 치렀다.

웨스트햄 이적 후 부진한 퍼포먼스로 3년간 대표팀 소집이 뜸하다가 2009년 6월 6일에 알바니아와의 월드컵 예선전에 출전하며 오래간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알바니아전을 기점으로 이듬해 열리는 월드컵에 도전했으나 상술했듯이 십자인대 파열로 무산됐고 국가대표의 커리어도 마감했다.


3. 지도자 시절[편집]


현역 은퇴 후 자신이 전성기를 보낸 풀럼의 아카데미 코치직에 부임하며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2014년 여름에는 자신이 축구를 시작했던 스포르팅 B팀의 수석코치로 부임했으며 3달 뒤 U-19팀 수석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시즌을 마친 뒤 이번에는 아스날의 스카우터직으로 부임해 2017년 2월까지 활동한 뒤 SU 신트렌세의 지휘봉을 잡으며 첫 감독직을 맡게 된다. 그러나 썩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하고 1시즌만에 감독직을 내려놨으며 이후 포르티모넨스 SC마카비 하이파 FC 코치직을 역임했다.

그러다 2019-20 시즌을 앞두고 마르코 실바의 부름을 받아 에버튼의 수석코치직에 부임한다. 하지만 성적부진으로 실바가 경질되면서 그도 함께 팀을 떠났다.

이후 2021년 7월, 실바가 풀럼의 감독직에 부임하면서 함께 수석코치로 임명됐고 현재까지 그를 보좌하며 함께 팀을 이끌고 있다.
[1] 미셸 플라티니, 알랭 지레스, 장 티가나, 루이스 페르난데스 등 프랑스 대표팀의 핵심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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