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 워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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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 워델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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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Rube Waddell HOF.png
루브 워델
헌액 연도
1946년
헌액 방식
베테랑 위원회 추천


파일:MLB 로고.svg 메이저 리그 투수 트리플 크라운

사이 영
(보스턴 아메리칸스, 1901년)

루브 워델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05년)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1905년)

크리스티 매튜슨
(뉴욕 자이언츠, 1908년)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0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다승왕
잭 체스브로
(뉴욕 하이랜더스)

루브 워델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알 오스
(뉴욕 하이랜더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0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평균자책점왕
빅 윌리스
(보스턴 비니터스)

루브 워델
(피츠버그 파이리츠)


제시 타네힐
(피츠버그 파이리츠)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0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왕
에디 조스
(클리블랜드 냅스)

루브 워델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닥 화이트
(시카고 화이트삭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02년 ~ 1907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탈삼진왕
사이 영
(보스턴 아메리칸스)

루브 워델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에드 월시
(시카고 화이트삭스)




파일:Rube Waddell.jpg

조지 에드워드 "루브" 워델
George Edward "Rube" Waddell

출생
1876년 10월 13일
펜실베이니아 주 브래드퍼드
사망
1914년 4월 1일 (향년 37세)
텍사스 주 엘멘도르프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우타
소속팀
루이빌 콜로넬스 (1897, 1899)
피츠버그 파이리츠 (1900~1901)
시카고 오펀스 (1901)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02~1907)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1908~1910)

1. 개요
2. 여담



1. 개요[편집]


20세기 초반의 메이저리그 투수. 현역시절 사이 영의 라이벌 투수로 이름을 날렸는데, 아메리칸 리그 6연속 탈삼진왕이라는 대기록의 보유자다. 1946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여담[편집]


상상을 초월하는 괴짜로 지금까지 회자되는데, 아직 제대로 프로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던 당시 MLB의 사정과 맞물린 기행이 여럿 있다:
  • 본인의 등판하는 경기 도중에 펍이나 낚시터로 몰래 도망쳤다.
  • 경기 도중 관중석에서 개짖는 소리가 들리면 놀아줬다.
  • 경기 도중 소방차 사이렌이 들리면 경기장 밖으로 뛰쳐나가서 소방차를 쫓았다.
  • 한 대학이 공짜 숙박과 담배, 전액 장학금을 보장하자 거기에서 알바를 뛰었는데, 평균적으로 7이닝 완투에[1] 15탈삼진을 기록했다. 종종 야수들을 벤치로 돌려보내고 모조리 삼진을 잡았다고 한다.
  • 대학팀에서의 활약으로 메이저리그 팀인 루이빌 커넬에[2] 입단했지만, 계약서 서명 후 겨우 이틀만에 술 때문에 벌금 $50을 물게 되었다. 왜 아무때나 술을 마실 수 없는지 이해를 못한 워델은 바로 퇴단. 그 후 5년간 알바 뛰듯이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팀을 오갔다.
  • 코니 맥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로 입단했지만, 여기서도 경기장밖의 아이들과 스틱볼이나 구슬치기 놀이를 하느라 지각하는 게 일상이었다.
  • 유니폼 안에 항상 빨간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소방차 사이렌이 들리면 언제든 바로 달려가서 도와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 물에 빠진 여자를 구해주었다.
  • 총을 다루다가 실수로 친구의 손에 관통상을 입혔다.
  • 동물원에서 놀다가 사자에게 손을 물렸다.
  • 연기에도 관심이 있어서 휴식기에는 이동극단에서 활약했는데, 대사를 한 개도 외울 수 없어서 모두 즉흥적으로 지어냈다. 워낙 스타였기 때문에 인기는 있었지만, 당연히 동료 배우들은 매우 고역이었다고 한다.
  • 당시 원정 경기에서의 숙박은 2인 1실 1침대였는데, 워델이 항상 침대에서 크래커를 먹느라고 동침하던 팀메이트가 매우 괴로워했다. 밤새도록 바삭거리는 소리와 부스러기 때문에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워델의 다음 계약서에 "침대에서 크래커 금지"라는 조항이 들어갔다.
  • 1912년, 켄터키히크먼시에서 댐붕괴 사고가 있었는데, 자신의 아마추어 소방대원 경력을 발휘해 침수되어가는 주택에 들어가 여러 사람을 구출하고 샌드백을 쌓는 걸 도와주었다. 다만 당시 물이 매우 차가웠던 여파로 폐렴에 걸렸고, 결국 회복되지 못해 1914년에 사망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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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대학 경기는 9이닝이 아닌 7이닝이었다고 한다.[2] 1899년에 해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