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에스페란토를 창제한 폴란드 유대인 안과의사.
본명은 이디시어로 '레이제르 레이비 자멘호프(אליעזר לוי זאַמענהאָף)'이며, '루도비코 라자로'는 에스페란토 음절 구조에 맞게 직접 고쳐 지은 것이다.
2. 생애[편집]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는 1859년 12월 15일, 러시아 제국 그로드노현 벨로스토크군 벨로스토크(Белосток, 현 폴란드 비아위스토크·Białystok)에서 언어 강사였던 마르쿠스 자멘호프와 로잘린 소페르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1] 출생증명서. 그는 본래 유대계 리투아니아인(리트바크) 가계였으며 아버지의 영향으로 가정 내에서 사용하던 이디시어와 러시아어를 비롯하여 여러 언어들을 구사할 수 있었다.
20대가 된 자멘호프는 모스크바와 바르샤바에서 의학을 배웠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내과 일반의로 개업했지만, 환자들의 죽음을 보고 자신과 맞지 않는 일이라고 여겨 나중에는 안과의사로 일했다. 자멘호프는 위대한 러시아 문인이 되는 것을 꿈꿀 정도로 러시아 제국에 호의적이었다가, 이후 점점 시오니즘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배타성에 반감을 가지고 범세계적 인본주의를 꿈꾸었다.
이런 범인류적 사상은 세계 공용어인 에스페란토의 바탕이 되었다. 자멘호프는 안과의사로 일하며 남는 시간에 에스페란토를 만들었고 1887년에는 알렉산데르 실베르니크(Aleksander Silbernik)의 도움을 받아 에스페란토 책자를 출판했다. 그 해 알렉산데르의 딸 클라라(Klara, 1863~1924)와 결혼하고 아들인 아담(Adam, 1888~1942), 딸인 조피아(Zofia, 1889~1942)와 리디아(Lidia, 1904~1942)를 낳는다.[2]
나치 독일은 자멘호프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에스페란토를 박해하고 자멘호프의 자녀 셋 모두를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로 잡아들였다. 세 명 모두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아담의 아들이자 자멘호프의 손자인 루이크리스토프 잘레스키자멘호프(Louis-Christophe Zaleski-Zamenhof, 1925~2019)는 무사히 폴란드를 탈출해 이후 세계 에스페란토 회장을 역임했다.
3. 저작물[편집]
아래 작품은 1896년에 자멘호프가 에스페란토 기관지인 'Lingvo Internacia'에 발표한 La Vojo이다. La Espero, Preĝo sub la verda standardo와 함께 자멘호프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L. L. Zamenhof 지음 / 홍성조 역. "La Vojo (길)." 에스페란토/La Lanterno Azia 176호, 2002년 3월,
http://mobigen.com/~hiongun/LA/ezboard/db/LA200203/upload/200204300000/%C5%EB%C7%D5%C6%C7_(2002.3).hwp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6 01:06:27에 나무위키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