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이라녜타

덤프버전 :



파일:Roberto Irañeta.jpg
이름
로베르토 루이스 이라녜타
(Roberto Luis Irañeta)
생년월일
1915년 3월 21일
사망년월일
1992년 11월 30일
국적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아르헨티나
출신지
부에노스 아이레스
포지션
센터 포워드
신체조건
172cm / 63kg
등번호
-[1]
소속팀
힘나시아 이 에스그리마 데멘도사 (1930-1939)
국가대표
1경기 0골 (1934)



1. 생애[2]
1.1. 선수 생활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3. 여담
4. 수상
4.1. 클럽[3]


1. 생애[4][편집]



1.1. 선수 생활[편집]



1.1.1. 클럽[편집]


이라녜타의 커리어는 멘도사의 아구스틴 알바레스 국립 학교의 클럽에서 시작되었다. 그 당시 클럽의 회장이자 이라녜타를 발견했던 프란시스코 모야노는 클럽을 강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고 그의 형제 리토를 포함, 여러 우수한 선수들을 스카웃하여 30년대에 4차례 멘도사 지역 리그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런 이라녜타의 활약에 아르헨티나한 명문팀이 손을 내밀었는데 아버지[5]가 이라녜타의 이적을 반대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라녜타가 은행에서 일하면서 일요일에만 축구를 하길 바랐다. 결국 리버 플레이트는 이라녜타 대신 브루노 로돌피를 영입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라녜타는 1939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1.1.2. 국가대표팀[편집]


1934년 월드컵 당시 이라녜타는 19살이었다.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펠리페 파스쿠치가 이라녜타를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하여 멘도사 리그 유일의 대표팀 멤버가 되었다.[6] 처음에는 클럽에서 반대했지만 FIFA의 결정으로 이라녜타는 이탈리아에 갔고 스웨덴을 상대로 대표팀에 데뷔이자 고별전을 치렀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좋은 테크닉과 매우 빠른 스피드, 훌륭한 골결정력을 가진 센터 포워드. 센터 포워드이면서 아웃사이드 포워드처럼 플레이했다고 한다.


3. 여담[편집]


  • 이라녜타는 1934년 월드컵 출전 선수 중 최연소 선수였다. 그에 걸맞게 아르헨티나 대표팀 내 월드컵 최연소 출전 기록도 72년간 가지고 있었다. 현재의 기록 보유자는 리오넬 메시이다.


4. 수상[편집]



4.1. 클럽[7][편집]


  • 멘도사 리그 우승 4회: 1931, 1933, 1937, 1939
  • 멘도사 리그 준우승 4회: 1932, 1934, 1936, 1938
  • 코파 콤페텐시아 우승 2회: 1933, 1938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3] 이라녜타는 힘나시아 이 에스그리마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4] 출처: 위키피디아, 11v11[5] 이라녜타의 아버지는 순수 바스크 인으로 매우 완고한 사람이었다고 한다.[6] 이후 스웨덴 월드컵에서 프란시스코 롬바르도가 멘도사 리그 출신 월드컵 대표팀 멤버가 된다.[7] 이라녜타는 힘나시아 이 에스그리마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5 20:45:55에 나무위키 로베르토 이라녜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