렁춘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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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특별행정구 제3대 행정장관
렁춘잉
梁振英 | Hon. Leung Chun-ying

GBM GBS JP
파일:렁춘잉 행정장관.jpg
출생
1954년 8월 12일 (69세)
영국령 홍콩 완차이
(現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완차이)
재임기간
제3대 행정장관
2012년 7월 1일 ~ 2017년 7월 1일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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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레지나 렁 (1981-)
자녀
슬하 1남 2녀
학력
Hong Kong King's College (졸업)
홍콩이공대학 (측정학 / H.D.[1])
웨스트 잉글랜드 브리스톨 대학교
(상업관리학 / Ph.D.[2])
홍콩이공대학 (경영학 / D.B.A)[3]
정당

약력
홍콩 제2대 행정회의 의장
홍콩 특별행정구 제4대 행정장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


1. 개요
2. 행정장관 임기시절
3. 행정장관 재출마
4. 관련문서



1. 개요[편집]


Leung Chun-ying, 1954년 8월 12일 ~ [1]

홍콩의 정치인으로, 홍콩의 제3대 행정장관이다.

이니셜인 'CY', 혹은 '689'라는 별칭이 있다. 행정장관 선출 당시 689표를 얻었기 때문에 689라고 불린다.

1954년 영국령 홍콩 홍콩 섬 서부의 퀸 메리 병원에서 산둥성 출신 중국인 이민자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영국령 웨이하이웨이의 경찰관이었는데 1930년에 이곳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철수하는 영국인들을 따라 영국령 홍콩으로 이주했다.

영국에서 킹스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경영학과 출신으로 회사를 운영하며 살았으나 1980년대 전후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2012년 간선 형태의 행정장관 선거에서 당선되어 홍콩의 행정장관으로 취임했다.

2. 행정장관 임기시절[편집]


행정장관이 되기 훨씬 이전인 1989년 천안문 6.4 항쟁 당시 베이징 시민들을 학살한 중국 정부를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으나,기사 2010년 노벨 평화상류샤오보에 수여하자 한다는 소리가, "왜 덩샤오핑에게 주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간다." 라고 했다.기사

2012년 행정장관 후보자 토론회 당시 경쟁 상대였던 헨리 탕(唐英年)이 렁춘잉에게 "2003년 정부 고위급 회의에서 홍콩은 언젠가 한 번 깡패들을 보내고 최루탄으로 시위대를 막겠다고 한 적이 있는가?"라고 했을 때, "절대 그런 적 없다."고 답변하자. "사기꾼, 거짓말하지 말라!(你呃人,唔好講大話!)"라는 소리를 들었다. 기사

결국 홍콩 우산 시위에서 최루탄과 후춧가루 스프레이로 조슈아 웡을 비롯한 시위대를 진압함으로써 이 말은 현실이 되었다.

사실 그도 홍콩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행정장관 직선제를 추진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와 홍콩 정부는 직선제를 하는 대신에 후보들이 출마하는 대 중국 전인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가 되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2] 이번에는 되려 홍콩 시민들이 '가짜' 직선제를 반대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행정장관 직선제는 끝내 무산되었다.

홍콩의 민주파 정치인들과 시민들에게는 최악의 행정장관으로 여겨지고 있었으나 반대급부로 중난하이의 신임을 가장 높게 받은 행정장관이기도 하다. 어차피 중국 지도부야 홍콩인의 여론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리고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과 판데믹을 거치며 이젠 그 최악이라는 칭호는 캐리 람이라는 홍콩 최악의 무능/무색무취 행정장관이 가져갔다.

그래도 이 시기만 해도 외국인에게 오픈된 곳을 표방하던 홍콩이라 각종 비자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이 때만 해도 비자런에도 비교적 관대했으며 적어도 비자 발급이 안 되어 사람 충원이 안 되는 사태는 없었다. 캐리 람으로 접어들며 홍콩의 비자정책은 시위와 판데믹으로 최악으로 나빠졌고 인재유출을 불렀다.

위의 경우 정확히는 시진핑이 2기 집권을 노골화하면서 대외정책이 배타적으로 변하며 어려워진 측면이 있었다.[3] 내국인 우선원칙이 없는 싱가포르가 결국 모든 반사이익을 챙겨가기 시작했으며 2020년대 직후 외국인들이 편도 티켓을 끊고 싱가포르에 대거 이주해 인재 유출이 현실화되었다.

법령에 따라 행정장관 선거에 재출마하여 연임할 수 있었으나, 재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후임 행정장관은 전 정무부서장[4] 캐리 람이다.

퇴임 두 달전에 민주파에서 탄핵안을 제출했다. 다수당인 친중파의 반대로 실제 탄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지만 비리와 권한 남용 혐의 등에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그 후, 홍콩 국가보안법 지지를 선언하여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체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100만 홍콩달러(약 1억5천만원)의 현상금을 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현상금을 가져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국이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책임을 물어 재선을 불허했지만 아예 활동 자체를 제약당한 캐리 람과 달리 현재도 꾸준히 보수 원로정치인으로서 얼굴을 내밀며 이런저런 발언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 뜻밖에도 홍콩의 해외 출입국 전면개방 요구도 있었다. 사실 홍콩을 제로 코로나를 유지하는 중국의 관문으로 삼고 외국인을 홍콩에 묶어서 중국 일을 처리하게 하는게[5] 중국 국익에 맞는 일이다.

3. 행정장관 재출마[편집]


2018년 9월 25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따르면 2022년 행정장관 선거에 다시 출마한다고 보도됐다. 사실 공식적으로 본인이 한 말은 아니지만 다시 출마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렇게 되면 재선을 노리고 있는 캐리 람 행정장관에게 빨간불이 켜진 상태였다. 이렇게 되면 전직 장관과 현직 장관에 기싸움이 이어져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만약 출마한다고 공식화하면 전직장관 과 현직장관 대권 싸움 때문에 잘하면 2017년에 무산됐던 직선제가 다시 부활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2021년 3월, 차기 행정장관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철저하게 중국 중앙정부의 입맛에 맞춘 발언을 일삼고 있다.#

2021년 6월, 중국 공산당홍콩 민주화 운동을 적극 지지한 빈과일보를 폐간하도록 강력하게 압박했으며 여기 동조해 빈과일보 폐간을 강력하게 외치고 있다.#

그러나 렁춘잉에게도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책임이 있어서 출마는 못했고 시진핑 측근으로 분류되는 존 리가 대신 행정장관이 되었다. 그리고 존 리는 두 행정장관이 싸지른 것들을 수습하느냐 뼈 빠지게 뛰어다니는 처지가 되었다(...). 제로 코로나를 유지하는 중국에서 홍콩이 해외 출입국을 개방하고 인재 유치를 위해 비자 규정들도 재검토해 로컬사람 우선 원칙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등이 그것들이다.

2023년 2월 1일에 대영박물관의 직원들이 파업을 개시하자, "대영박물관은 약탈품을 반환하고 영구 폐쇄하라"고 발언하였다.#

4. 관련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5 09:00:35에 나무위키 렁춘잉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그의 이름 렁춘잉은 표준 중국어로는 '량전잉(Liáng Zhènyīng)', 한국 한자음으로는 '양진영'이다.[2] 간접선거 때 강하게 들어가던 중국의 입김을 선거 이전의 후보자 출마 자격 심사 과정으로 옮겨버린 건데, 당연히 꼼수다. 이러면 사실상 설립파(친중파)에게만 피선거권을 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3] 이 때 홍콩대학/홍콩과기대학/홍콩중문대학 등 대학 기숙사들도 로컬사람 우선원칙에 따라 외국인이 대거 쫓겨났다. 비싼 집세를 내가며 열악한 환경에서 자취에 내몰린 유학생이 많다. 싱가포르의 경우 로컬사람 우선원칙이 없다.[4] 주권국가의 부총리 격이다. 형식상 홍콩의 국가원수는 중국 국가주석이니까 행정장관이 총리급 인사가 된다.[5] 대신 중국본토는 시진핑 집권 이후 외국인을 안 받기 시작했다. 영어 사용도 홍콩에만 허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