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폴란드-리투아니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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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폴란드-리투아니아 관계 관련 틀 파일:러시아 국기.svg 파일:폴란드 국기.svg 파일:리투아니아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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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 시대
2.2.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대
2.3. 20세기
2.4. 21세기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러시아, 폴란드, 리투아니아 삼국의 관계에 관한 문서이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친서방 반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 시대[편집]


중세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전성기를 견인했던 알기르다스 대공은 죽기 전 장남 안드레이정교회 신도였다. 대신에 막내 요가일라리투아니아 토속 신앙을 믿고 있었다.를 차기 대공으로 지명하였다. 리투아니아 귀족들 사이에서 장남 대신에 막내가 대공 자리를 물려받자 많은 동요가 있었으나, 요가일라는 안드레이 및 삼촌 켕스투티스를 차례로 제거하며 리투아니아 대공으로써 통치를 시작했다.

통치 초창기에는 요가일라가 정교회로 개종하고 드미트리 돈스코이의 딸과 결혼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으나 1382년 폴란드 왕국의 루드비크(헝가리 왕국러요시 1세)가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죽자 친폴란드 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루드비크의 사후 2년동안 폴란드 왕국에서는 왕위 계승 관련하여 혼란이 지속되었고 결국 1384년 야드비가가 여왕으로 즉위했다.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 사이에는 이후 크레보 조약을 위한 움직임이 생기며 결국 요가일라는 1386년엔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크라쿠프에서 세례성사를 받았고, 1387년에는 리투아니아가톨릭으로 개종시켰다.

방대한 영토를 지녔던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가톨릭 개종은 동유럽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대사건인데 요가일라의 개종 이전 이전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과거 키예프 루스를 멸망시킨 몽골 제국킵차크 칸국으로부터 방대한 영토를 탈환하고 키예프 루스의 계승자라는 기치를 내세웠었기 때문이다.[1][2] 특히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영토 확장 과정에서 루테니아의 여러 군소 공국 군주들에게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바꾸지도 않고 옛것을 가져오지도 않는다."라는 말로 이들에게 적극적인 심리전과 외교전을 펼쳤고 리투아니아 대공국 동부 영토의 왕족과 귀족 상당수는 루테니아의 유력자들과 결혼하면서 정교회로 개종했던 상황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당시 러시아는 몽골 제국의 수탈로 서유럽과 격리되어 있었고, 폴란드는 당시 이미 다른 가톨릭권이었던 프랑스 및 이탈리아와 독일의 여러 도시 국가들과 교류하며 화려한 귀족문화를 꽃피우기 시작할 무렵이였다. 결국 요가일라의 리투아니아는 정교회 대신에 가톨릭을 택하였다.

1399년 아내 야드비가 여왕이 만 26세의 나이로 승하하자 폴란드 왕국을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하여 리투아니아의 게디미나스 가의 요가일라는 폴란드에서 야기에우워 왕조의 개창자가 되었으며, 1410년 자신의 사촌 비타우타스그룬발트 전투에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루테니아 모두의 숙적이었던 튜튼 기사단을 격파하여 몰락시키자 그 공을 인정하여 1413년 리투아니아 대공 자리를 공식적으로 분할해 넘겨주었다. 최초로 두 국가를 동군연합으로 묶은 공을 인정받아 이따금씩 폴란드의 황금기의 시작을 연 왕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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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4세가 공포정치를 펼칠 당시 안드레이 쿠르브스키를 비롯한 루스 차르국 귀족 상당수가 리투아니아 대공국 측으로 망명하였다.


2.2.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대[편집]


모스크바 대공국이반 4세카잔 칸국아스트라한 칸국 등을 정복한 것을 기념하여 스스로 차르로 등극하였고, 이를 계기로 모스크바 대공국은 루스 차르국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났다. 루스 차르국은 시베리아로 진출한 것을 계기로 국력이 대폭 신장되었고 이를 계기로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리투아니아 대공국 동부의 주요 거점 스몰렌스크에서 여러차례 격전이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투아니아 귀족들은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으며 결정적으로 동쪽에서 크림 칸국크림 타타르족들이 우크라이나 영토를 계속 공격하는데 리투아니아 대공국 혼자 이를 방어하는데 한계에 도달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1569년 루블린 조약을 통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통일되었으며, 우크라이나 흑토지대 상당부분은 폴란드 왕국 측으로 양도되었다.

지그문트 3세 바사 제위 시기 폴란드-리투아니아 대공국은 혼란 시대 가짜 드미트리를 내세워 루스 차르국의 모스크바를 점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 모스크바로 파견한 병력들은 소수의 리소프치치[3]이 주가 되었고 모스크바를 확고하게 장악하지 못하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세임(Sejm)에서 증원 병력을 보내는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내면서 결국 격퇴되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17세기 보흐단 흐멜니츠키의 봉기로 키예프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흑토지대 영토 상당수를 상실한 것을 계기로 쇠퇴하였으며 18세기 말에는 폴란드 분할로 인해 멸망하기에 이른다. 폴란드 영토의 동부 일부 그리고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 영토는 러시아 제국 영토로 합병되었다.


2.3. 20세기[편집]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독립하였고 러시아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공산주의 국가가 수립되었다. 폴란드는 소비에트와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를 점령하여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을 수립하였으며 2차 대전까지 수교하지 않고 대치 상태를 이어갔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에 의해 점령되고, 리투아니아는 발트 3국 점령 과정에서 소련에 의해 점령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리투아니아는 소련에 의해 점령되었고 폴란드에는 공산주의 국가인 폴란드 인민 공화국이 들어섰다. 폴란드인들이 러시아에 민족 감정이 강한 것과는 반대로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시대 리투아니아 민족주의와 갈등하던 폴란드계 리투아니아인들은 친소-반리투아니아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동유럽 혁명소련 해체를 거치면서 리투아니아와 폴란드는 독립했다. 폴란드는 독립 이후 폴란드 인민 공화국 시절 억눌려왔던 반러 감정이 강해져가는 반면, 리투아니아 내 폴란드인 인구는 독립 이후에도 친러 성향을 유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4. 21세기[편집]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친서방 반러 정책을 추진하며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다. 2004년에는 유럽연합나토에도 가입했다. 2010년대부터 러시아와는 갈등이 시작되면서 양국은 군사적으로 협력했다.

폴란드에서는 리투아니아 내에서 폴란드계 인구가 차별을 받는 상황에 종종 항의하는 입장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폴란드 측에서는 폴란드계 리투아니아인들의 권익을 위한 정당 리투아니아 폴란드인 선거활동-기독교 가족 연합이 지나치게 친러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양국을 연결하는 가스라인을 조기에 개통하기로 합의하였다.#

4월 15일에 러시아는 키이우 외곽의 군사시설을 타격해 폴란드 용병 30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4월 19일에 리투아니아 의회가 공공장소에서 Z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실시했다.# 폴란드 정부는 주 폴란드 러시아 대사관의 계좌를 동결 조치했다.#

러시아는 폴란드, 불가리아로 가스수출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연결하는 새 가스관이 개통했다.#

주 폴란드 러시아 대사가 빨간색물감을 맞은 일이 발생했다.# 러시아 외무부가 폴란드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9월 17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가 러시아 국경을 폐쇄시켰다 #

9월 23일, 2022년 러시아 동원령과 관련해 폴란드와 발트3국은 러시아인의 탈출 망명은 수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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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를 근거로 러시아계 미국인 역사가 니콜라이 랴자노프스키(Nicholas V. Riasanovsky)는 자신의 저서 A History of Russia에서 리투아니아 대공국을 다루면서 폴란드와의 동군연합 이전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역사는 곧 러시아의 역사이기도 하다고 주장하였던 바 있다.[2] 블라디미르 푸틴이 발트 3국을 역사적 거스름돈이라고 비하한 것은 어떻게 보면 자국 역사 비하에 해당할 수 있다.[3] 봉급대신 약탈권을 받는 비정규군 경기병[4] 러시아는 유럽연합과 나토에 가입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