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카자흐스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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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18세기
2.2. 19세기
2.3. 20세기
2.4. 21세기
2.4.1. 2010년대
2.4.2. 2020년대
3. 문화 교류
4. 경제 교류
5. 교통 교류
6. 대사관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러시아카자흐스탄에 관련된 문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은 소련시절을 포함해서 친러 성향이 강하고 교류도 많은 편이다.[1] 하지만 카자흐스탄은 역사적으로는 러시아 제국, 소련의 지배를 받았을 당시의 탄압으로 약간의 반러감정을 보이는 경우가 간혹 있다. 러시아의 극우정치인들이 간간히 카자흐 칸국이 세워진 역사를 무시하거나 카자흐스탄을 역사가 짧은 국가라는 망언을 하기도 했고, 푸틴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를 띄워주기 위해 나라가 없던 땅에 나라를 세웠다는 식으로 발언을 했다가 카자흐인들의 반발을 사기도 하는 등 갈등이 없지는 않다. 단지 러시아계 주민들이 많이 살고 경제적, 문화적으로 교류가 잦아서 굳이 러시아에 대립각을 세우지 않을 뿐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와 서방 국가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취하고 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18세기[편집]


18세기 당시 카자흐 유목민들이 중심이 된 카자흐 칸국은 동쪽의 유목 제국인 준가르 홍타이지국과 그리고 서쪽으로는 준가르와 근연 관계인 칼미크 칸국과 대치하던 상황이었다. 카자흐 칸국의 명군이었던 아불 하이르 칸은 준가르 제국을 견제하려는 러시아 제국과 동맹 관계를 맺었고[2] 이를 바탕으로 준가르 칸국 세력을 크게 격파하였다.

2.2. 19세기[편집]


18세기 중반 준가르 홍타이지국이 청나라의 공격으로 멸망한 이후,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동부와 타지키스탄 일대를 중심으로 코칸드 칸국이 흥기하여 카자흐 칸국을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19세기 초 카자흐 칸국은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완전히 받게 되었고 카자흐스탄 내에 러시아인들이 대거 이주했다. 1824년 옴스크에서 파견된 카자크들은 아르몰린스크라는 요새를 건설하는데, 이 요새는 오늘날 카자흐스탄의 주요 도시 아스타나의 기원이 된다. 알마티 역시 1854년 카자크들이 건설한 베르니 요새가 기원이다.

초창기 러시아 제국러시아인(러시아 정교회)들과 카자흐인(이슬람)들간의 충돌을 우려하여 종교문화가 비슷했던 볼가 타타르인들을 카자흐스탄 지역에 대거 이주시켰다. 카자흐스탄의 카자흐인들은 원래 명목상으로는 무슬림이었지만 19세기까지 텡그리 신앙 문화의 영향력이 더 강했었다. 타타르족 상인들과 관료들이 카자흐스탄에 유입되고 나서야 카자흐인들은 관혼상제를 본격적으로 이슬람식으로 진행하고 샤리아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유목민은 한편으로는 범죄자로 여겨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의 오리엔탈리즘 문학과 미술에서 고귀한 전사이자 낭만적인 영웅으로 이상적으로 묘사되었다. 이는 패배한 적을 다루는 전형적인 양면적 태도였다. 정착민과 유목민 사이의 오래된 상보성은 평화로운 보상 과정이든 약탈과 방어의 갈등 관계든 19세기 들어 감소했다. 이는 유목민과 정착민이 더는 동일한 삶의 속도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사실과도 연관이 있다. 19세기의 기술혁신을 홀로 누렸던 농경민들이 먼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빨라졌다. 그들이 초원 지대 안으로, 초원 지대를 통과해 철도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대도 철도를 이용해 똑같이 신속하게 전개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유목민에게 철도는 쓸모없고 위협적이었다.

하버드 C.H. 베크 세계사 1750~1870


1897년 스톨리핀의 아시아 이주 장려 이후 많은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들이 카자흐스탄 각지에 정착하면서 러시아인 인구 비중이 급증하였고, 이 과정에서 독일인, 라트비아인들도 많이 이주했다.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에서 칸국의 지배자들은 러시아의 귀족으로 편입되었다.


2.3. 20세기[편집]


1918년에 러시아 제국이 멸망한 뒤, 소련 치하에서 카자흐스탄은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고 지금의 카자흐스탄의 뿌리가 되었다. 카자흐스탄으로 많은 민족들이 이주했고 카자흐스탄 북부는 곡창지대로 개발되었다.[3] 자디드 운동을 통해 러시아 문화를 흡수하며 카자흐 문화는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소련 치하에서 1932년 홀로도모르 당시 카자흐스탄에서도 같은 이유로 대기근이 일어나 인구의 38~42%가 사망하고 빈 자리를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들이 메꾸면서 한 때 카자흐스탄에는 카자흐인 인구보다 러시아인 인구가 더 많아진 적도 있었다. 1930년대 후반부로 카자흐어키릴 문자를 도입하게 되었고,[4] 러시아어도 널리 쓰이는 등 러시아화가 진행되었다.

소련의 마지막을 장식한 나라답게, 카자흐스탄은 소련 해체에 끝까지 반대했다. 당시 카자흐스탄의 산업기반과 인프라가 약하여 소비에트 연방 체제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카자흐인들의 인구비율이 40% 안팎에 불과했고, 또한 북부지역은 러시아인들이 인구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에 무작정 민족주의를 내세우기에는 몰도바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났던것처럼 러시아인들에 의한 분리주의 운동이 벌어질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90년대 소련 해체 이후 카자흐스탄도 결국 반강제적으로 독립국이 되면서 카자흐스탄 내의 일부 러시아인들이 러시아로 돌아갔지만, 대다수는 카자흐스탄 내에 그대로 남았다. 또한 재외 카자흐인들이 많았던지라 재외 카자흐인들의 이민을 받아들이는 들이는 식으로 카자흐인들의 수를 늘리는것이 수월해서 러시아인들에 대한 차별정책을 펼 동기가 없었기도 했다.[5]

1998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을 처음 방문했다.#


2.4. 21세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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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기준 러시아계 카자흐스탄인 인구 분포도. 주로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양국은 독립국가연합, 유라시아 연합, 관세동맹[6], 상하이 협력기구에 가입되어 있다.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는 매우 가깝다보니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게다가 러시아측은 카자흐스탄을 동맹으로 규정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도 카자흐스탄을 좋게 보고 있다보니 카자흐인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갖고 있다. 다만 카자흐스탄측에서 러시아의 과도한 개입에 대해 불평을 하기도 한다.

러시아내에도 아스트라한 등을 중심으로 소수의 카자흐족들도 거주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튀르키예와도 관계를 맺었지만, 튀르키예보다는 러시아쪽과 교류, 협력이 활발한 편이다. 러시아측도 벨라루스와 함께 카자흐스탄을 매우 좋게 보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러시아와는 교류, 협력이 있어도 약간의 반러성향이 있는 편이라서 친서방 정책, 친중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참고로 카자흐스탄의 국가번호는 러시아와 같은 7이다.

카자흐스탄은 친러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러시아군이 주둔한다.


2.4.1. 2010년대[편집]


2012년, 러시아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은 미국과 EU의 벨라루스 제재를 반대했다.#

2014년, 러시아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은 유라시아 연합을 결성했다.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에서 레이스달린 속옷 판매 금지 조치가 실시돼 여성들이 항의시위를 진행했다.#

2017년 12월 26일,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독립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하면서 다른 독립국가연합의 회원국들과 함께 푸틴의 시리아 작전이 성공적으로 완수된 것을 축하하고 2018년에 있을 대선에서 푸틴의 승리를 기원했다.#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지난 20일에 푸틴 대통령과 우즈베키스탄의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과 비공식회담을 가지면서 무역, 경제, 문화, 인도주의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에 관해 논의했고 독립국가연합과 국제기구간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카자흐스탄카스피 해에 접한 나라이기도 하지만, 소련 해체 이후에는 영유권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2018년 8월 12일러시아, 이란,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악타우에서 카스피 해 연안 5개국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협약문에 조인했고 카스피 해의 법적지위에 관한 협약에 합의했고, 동시에 특수한 지위의 바다라고도 합의했다.## 그리고 특수한 지위의 바다라고 합의하면서 22년 영유권 분쟁을 끝냈고,# 러시아는 이번 협정에서 군사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카심 토카예프 대통령은 2019년 3월 30일에 러시아를 방문했고,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협력문서에도 서명했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은 옴스크 시에서 11월 7일부터 이틀간 양국 간 제16차 국경지역 협력포럼을 개최했다.#


2.4.2. 2020년대[편집]


2020년 1월 11일, 카자흐스탄 서부에서 러시아의 시험용 로켓이 추락했다고 현지언론이 보도했다.#

6월 2일, 카심 토카예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와의 연합국 구성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카자흐스탄내 미군 기지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카자흐스탄은 유라시아 연합의 통합의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러시아는 코로나19가 심각한 카자흐스탄을 돕겠다고 밝혔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러시아측과 협의를 갖고 스푸트니크 V 백신을 공급받기로 합의했다.#

러시아 자유민주당 당수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 국가두마 의원이 카자흐스탄 독립기념일인 12월 16일, 통합 러시아 소속 의원 뱌체슬라프 니코노프의 카자흐스탄에 대한 영토 발언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카자흐스탄 내에서 분노한 상황이다.#

2021년 4월 6일, 카자흐스탄측은 토카예프 대통령이 스푸트니크 V를 접종받았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이 공동 추진하는 차세대 로켓발사기지 건설프로젝트가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2022년 1월, 카자흐스탄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카자흐스탄측이 러시아에게 평화유지군 파병요청을 했다.# 그리고 공수부대도 포함된 것도 알려졌다.#

지리놉스키 의원은 카자흐스탄 북부가 러시아와 합병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러시아어)

군사협정을 28년 만에 갱신하고 새로운 협정에 따라 양국간 군사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3월 24일, 러시아측이 카자흐스탄과의 국경 이동 제한 조치를 3월 30일부터 해제한다고 밝혔다.#

3월 26일, 러시아 정치인이 발트 3국, 몰도바, 폴란드와 더불어 카자흐스탄을 "비(非)나치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7][8]

3월 30일, 러시아는 카자흐스탄 국경을 2년만에 재개방했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와는 거리를 두는 정책을 실시중이다.# 카지흐스탄내에선 대부분이 중립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월 27일,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집단안보조약기구 회의에 참석하여 러시아와 40억 달러의 경제협력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6월 18일, 토카예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시아 세력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LPR)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하였고 이를 들은 푸틴이 즉각 반응, (소련의 일부였던) 카자흐스탄에 대하여 "소련은 러시아"라며 위협적인 발언을 하였다.#

2022년 러시아 동원령과 관련해 러시아인들이 카자흐스탄, 몽골 등 주변국들로 피난을 가는 경우가 늘어났다.#

러시아의 가스동맹 제안에 대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카자흐스탄 주재 러시아 대사가 카자흐스탄의 나치를 막기 위해서 “특수 작전”에 대해서 거론했다. # #

1월 31일, 러시아 외무부는 카자흐스탄이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 가능성에 대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은 오랫동안 신뢰를 쌓은 이웃이라고 밝혔다.#

2023년 8월. 카자흐스탄 정부가 자국 내 인종적 증오 조장 등을 이유로 극우성향인 러시아 차르그라드TV 채널의 웹사이트 접속을 막았다.#

3. 문화 교류[편집]


카자흐스탄은 러시아 제국소련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러시아어카자흐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두나라는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편이고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인들의 영향으로 정교회신자가 많은 편이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어를 민족간 공용어로 지정해서 러시아어도 널리 쓰이는 편이다. 하지만 2025년까지 카자흐어키릴 문자 표기를 로마자로 바꿀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 그외에도 점진적으로 카자흐어를 보급하고 있다.[9]

카자흐스탄은 전형적인 친러국가로, 보통 러시아에서 TV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도 참가자들을 러시아-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벨라루스로 묶어 네나라의 친목을 과시한다. 뿐만 아니라, 다수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러시아를 형제의 나라로 여긴다.

대중문화면에서도 러시아의 영향이 짙어서 75%의 주민들은 러시아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그만큼 카자흐스탄의 러시아 사랑은 각별하다.


4. 경제 교류[편집]


경제적으로도 밀접해서 2014년에 러시아가 경제제재를 받았을 때 카자흐스탄의 경제도 안좋아진 적도 있었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와의 경제교류가 활발한 편이라서 러시아 기업들도 카자흐스탄에 진출해 있다.

카자흐스탄의 식료품, 농산품, 공산품들의 대부분은 러시아제 수입품이기 때문에 러시아 경제가 카자흐스탄에 주는 영향이 크다. 당장 루블화 폭락으로 인해 러시아산 수입품 가격이 인상되자 카자흐스탄 농가와 중소기업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렇게 러시아 수입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러시아와의 관세동맹은 효과적이다.

2022년 대러시아 경제제재로 러시아인들이 선택한 주 피난지가 카자흐스탄이었으며, 비거주자의 카자흐스탄 내 은행 계좌 개설도 국제결제망 이용을 유인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러시아인 입장에서는 신분증만 있어도 입국이 가능한지라 다른 나라에 비해 접근성이 월등하게 좋으며 이민 관련 법률도 엄하지 않아 노동허가도 쉽게 받을 수 있다.

러시아내의 기업들이 대거 철수하자 카자흐스탄이 외국기업들의 유치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2023년 5월 16일,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양국은 중국으로 수출하는 가스 송유관 개설을 합의했다.#

5. 교통 교류[편집]


양국을 잇는 항공노선, 도로, 철도가 존재한다. 양국 항공사들의 왕래가 자주 있고 도로, 철도 등을 통해서도 교류가 활발하다. 양국 국민들은 신분증(내부 여권)만으로 무비자입국이 가능하다.


6. 대사관[편집]


양국 모두 대사관을 설치했다. 아스타나에는 주 카자흐스탄 러시아 대사관, 모스크바에는 주 러시아 카자흐스탄 대사관이 존재한다.


7. 관련 문서[편집]


[1] 카자흐스탄친러 정책 아래에 친서방 정책, 친중 정책도 병행하고 있으며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과 같이 중립적인 입장과는 달리 친러적인 성향이 매우 강한 편이다. 소련에 최종적으로 남으려고도 했다.[2] 러시아 제국은 청나라 측의 요청으로 준가르 홍티이지국을 원조하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아내고 대신 시베리아 동부와 만주 일대에서 생산되는 모피를 베이징으로 수출할 권리를 얻었다.[3] 우크라이나체르노좀과 마찬가지로 카자흐스탄 북부지역도 당시에는 소련의 중요 곡창지대에 속했다.[4] 그러나 카자흐스탄 정부에서 2025년까지 카자흐어의 표기를 완전히 로마자로 바꿀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5] 반대로 러시아인들에 대한 차별정책을 적극적으로 편 라트비아는 재외 라트비아인들 대다수가 러시아인이나 미국인에게 동화되어서 이민을 받아들이기 수월하지 않았고, 에스토니아는 형제국가라 할 수 있는 핀란드가 있지만 핀란드가 에스토니아에 비해 월등히 잘사는 나라인지라 핀란드에서 에스토니아로 대규모 이민이 일어날 동기가 크지 않았다.[6] 러시아-카자흐스탄-벨라루스[7] 물론 실제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우크라이나를 능가하는 장기전이 될 확률이 높고, 게다가 러시아에서 카자흐의 수도 누르술탄까지의 거리는 400km가 넘는다. 거기다가 애초에 우크라이나도 못 밀고 있는 나라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힘을 쭉 뺀 상태로 카자흐스탄을 친다는건 어불성설이다. 그나마 서방의 지원이 좀 힘든 곳에 있다는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카자흐스탄군은 중앙아시아에서 최강으로 평가받는다. 여러모로 만만치 않은 상대. 그리고 카자흐스탄이 침공당하면 앞의 5개국 입장에서는 자기들을 상대로도 경고하는거니 당연히 카자흐스탄 편, 게다가 중앙아시아에 영향력을 넓히려하는 중국도 가만있을리가 없다. 한편으로는 카자흐스탄 방향이 방향이다 보니 이 발언을 한 3~4월 시점에서 진짜 카자흐스탄을 공격했다면 그건 그대로 양면전선으로 이어진다.[8] 한편으로 러시아가 주장하는 비나치, 탈나치 드립이 얼마나 의미없는지 알 수 있다. 인종적, 지리적, 사회적으로 카자흐스탄은 나치와 별 관련도 없는 곳이다.[9] 몽골 서부 지역에 사는 카자흐족몽골 인민공화국 시절에 허를러깅 처이발상키릴 문자 사용을 강제함에 따라 다수민족인 몽골인들처럼 키릴 문자를 쓰고 있다. 반면 중국이나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카자흐족은 여전히 아랍 문자 사용을 고집하고 있다.[10] 카자흐스탄에는 러시아군이 주둔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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