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아제르바이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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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2.2. 20세기
2.3. 21세기
3. 문화 교류
4. 경제 교류
5. 대사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러시아아제르바이잔의 관계.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 제국소련의 지배를 받았고, 외교적 이해관계도 대립되는 상황이라 반러 성향이 있지만, 동시에 독립국가연합으로 묶여있어서 교역량도 많고 인적교류도 많은 편이다.

오늘날의 아제르바이잔이 이웃 이란과 종파가 동일함에도 이란과 다르게 세속주의 국가로 남은 이유에는 소련 시절 국가 무신론 정책의 영향이다. 특히 이란의 남아제르바이잔 지역과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을 비교해보면 이 차이가 두드러지는 편이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기준으로 미적지근한 관계가 되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19세기[편집]


19세기 초반 러시아 제국캅카스 지역으로 남하하는 과정에서 이란의 카자르 왕조의 근거지였던 아제르바이잔 일대를 정복하였다. 1828년 러시아 제국과 카자르 왕조는 투르크멘차이 조약을 통해 국경선을 확정하였는데, 이는 아제르바이잔 독립 이후 오늘날 이란과 아제르바이잔 국경으로 거의 그대로 이어진다. 러시아 제국은 아제르바이잔의 시아파 무슬림들이 이란과 내통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반란을 획책할 것을 우려, 시아파 무슬림 종무청을 설치 운영하였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사용을 제한하고 대신 아제르바이잔어 사용을 장려하는 정책을 취했다.

한 편 조지아의 티플리스(트빌리시)나 보르조미 등이 러시아인들의 휴양지로 개발된 것과 다르게, 아제르바이잔으로 러시아인들이 이민한 계기는 19세기 중반 바쿠에서 개발된 유전 때문이었다. 당시 남아제르바이잔 일대를 다스리던 카자르 왕조가 부패와 기근 문제가 워낙 심각했던 문제로 아제르바이잔인 상당수도 국경을 몰래 넘어 바쿠로 모여들었다.

한 편 아제르바이잔의 농촌 지역에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이단으로 박해받던 몰로칸파[1] 신도들이 여타 러시아 정교회 신도들과의 갈등을 피해 아제르바이잔 일대로 이주, 정착하기도 했다.


2.2. 20세기[편집]


1905년이 되면 크림 타타르족 출신 이슬람 모더니즘 사상가 이스마일 가스프랄르의 영향을 받은 신식 이슬람 학교들이 바쿠를 중심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스마일 가스피랄리는 범튀르크주의를 기반으로 이슬람의 현대화를 주장하던 사람으로, 부하라의 재래식 마드라사들을 무지몽매하고 낙후된 무슬림 사회를 대표하는 적폐로 묘사함과 동시에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립카 타타르 커뮤니티를 이슬람계가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사례로 추켜세웠다. 시아파 이슬람 세계에 속해있었던 바쿠의 지식인들은 같은 시아파인 이란의 전통적인 농촌 마드라사들을 '무지몽매하고 낙후된' 무슬림 사회의 전형으로 보게 되고, 대신 러시아를 통해 수입된 서구식 민족주의나 범튀르크주의의 열광하게 되었다. 이는 독립 이후 아제르바이잔이 이란과 거리를 두고 순니파 이슬람이 우세한 튀르키예와 친교 관계를 강화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2]

1918년에 러시아 제국이 혁명으로 멸망하고 소련이 출범한 뒤에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아제르바이잔 지역은 자캅카스 민주 연방 공화국이 되었다. 자캅카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소련에 병합되어 아제르바이잔 지역은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이미 바쿠에는 1904년부로 볼셰비키 조직이 자생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일찍이 바쿠 유전에서 근로하는 산업노동자 계급이 형성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비에트 정권은 1926년 바쿠에서 개최된 튀르크어학 대회에서 아제르바이잔어에서 페르시아 문자 사용을 금지하고,라틴 문자로 표기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해당 조치로 인해 아제르바이잔인들이 터키와 지나치게 가까워지며 러시아어 습득에 열의를 보이지 않자, 다시 소비에트 정권은 1939년부로 아제르바이잔어를 키릴 문자로 표기하도록 방침을 변경하였다. 모든 강제 가맹국들이 그랬듯이 아제르바이잔도 민족주의자들, 지식인이 엄청나게 학살당했다. 소련의 일부가 된 후 스탈린 시절에는 5만 명이 넘는 아제리인들이 학살당했는데 그중에는 이슬람 성직자도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남아제르바이잔도 소련의 영향을 받았다. 20세기 초~중반에는 소련은 아제르바이잔을 지배하면서 남아제르바이잔에도 잠시 소련의 위성국(길란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 등)을 세웠지만, 이후에 철수했다.

레닌 시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아제르바이잔의 편을 들어주어 나흐츠반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로 귀속시켰다.

반대로 1988년 숨가이트 학살 당시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정권이 아르메니아 편을 들어주었다. 당시 고르바초프 정권이 아르메니아 편을 들어주고 카살리 학살에서 지원하던 점으로 급격한 반러시아 붐이 일어나 미국을 지지하는 여론이 커졌지만 위에 나오듯이 미국이야말로 더 노골적으로 아르메니아를 편들었기에 친서구정책을 취하던 민주정부가 무너지고 헤이다르 알리예프 정권이 집권하면서 친러 정책으로 돌아섰다.

다른 한편으로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공용어는 러시아어 민족자치어는 아제르바이잔어였고, 공교육은 러시아어와 아제르바이잔어로 이루어졌다.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시대를 거치며 아제르바이잔 내 타트인이나 탈리시인 같은 소수민족 집단은 모어인 타트어 등으로는 글을 읽고 쓸 줄은 모르지만 러시아어로는 글을 자유자재로 읽고 쓰게 된다든지 아니면 농촌에서 도시로 이사한 후에 러시아어만 사용하게 된다든지 같은 이유로 세대가 지나면서 점차 모어를 잊어버리고, 아제르바이잔인으로 동화되기 이르렀다.

러시아 제국 시대 바쿠 일대의 유전 지대가 개발되었던 영향으로 아제르바이잔이 소련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한 편이었다.[3] 당시 적지 않은 러시아인 석유 화학 기술자들이 아제르바이잔 일대에 체류하였었으나, 소련 해체 이후에는 대부분 러시아 등으로 돌아가버리고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에 잔류한 러시아인들은 대개 19세기 초 아제르바이잔으로 이주해온 몰로칸파의 후손이라서 러시아에 돌아갈 연고지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소련 해체 이후 독립한 아제르바이잔은 아제르바이잔어의 표기를 키릴 문자에서 로마자로 다시 바꿨고[4] 러시아어를 공용어에서 배제했다.[5] 간자의 경우 러시아 제국 시절 옐리쟈베트폴, 소련 시대 키로바바트로 불렸던 도시였으나 독립 이후 아제르바이잔어 명칭인 간자로 환원되었다.


2.3. 21세기[편집]


현재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다.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아제르바이잔은 구암(GUAM)을 결성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러시아 견제를 위해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 또한, 유럽 연합에는 가입하려는 움직임도 있다.[6] 푸틴 정권이 구소련권 국가들에게 간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적국인 아르메니아가 강력한 친러행보를 보임에 따라 알리예프 정권의 친러도 옛말이 되었다. 오히려 반러시아적으로 외교를 확 바꾸게 되었다. 남오세티야 전쟁 직후엔 조지아에 터키와의 철도연결 등으로 손을 내밀고 크림 반도 병합 직후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나토, 유럽연합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러시아를 견제하는 중이다. 나토도 러시아 견제를 위해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 조지아, 몰도바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중이었다.

아제르바이잔은 아예 자국 가발라 지역에 주둔해있던 러시아군 미사일 조기경보용 레이더 기지 주둔 기한 연장을 거부하고 2012년 말 운용을 정지하며 러시아를 배제하고 이스라엘과 군사적 교류를 강화하면서 미국과도 정치적으로 손내밀고 있다. 러시아에서도 반발했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우릴 배신하고 아르메니아를 더 위해주는게 러시아이며, 나고르노 지역을 우리에게 돌려주기는 커녕 오히려 거기에 러시아군을 주둔시키고 아르메니아를 옹호하고 있다며 맞서고 있다. 거기에 이웃 혈맹이라며 사이좋은 터키군과 합동군사훈련도 하면서 러시아가 섣불리 남오세티야 전쟁이나 돈바스 전쟁같이 쳐들어오기 힘들도록 대비하고 있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이 일어나자 러시아 측은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2018년 아르메니아는 친러 정책을 벌이던 정권이 물러나고 친서방 외교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러시아와 사이가 멀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제르바이잔이 친러 정책을 강화하지도 않고 친이스라엘 정책으로 미국과도 우호 관계로 가면서 러시아와는 맹숭맹숭한 상태.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이 터지자 러시아는 그동안 옹호하던 아르메니아에 대하여 구경만 하고 있었다. 러시아군이 일부 주둔한 아르메니아 본토가 공격받거나 하지도 않았기 때문. 그러다가 러시아군 헬리콥터 1대가 격추된 사건이 발생되면서 개입하였고,# 이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양측을 중재하여 전쟁 종결을 도왔다.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일어나자 아라즈 아지모프 아제르바이잔 외무차관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국제법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라고 밝혔다.#

더불어 유엔 안보리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서 러시아 규탄에 터키와 같이 찬성표를 던졌다. 아르메니아가 기권한 것과는 대조적. 다만 그럼에도 대러제재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며, 아제르바이잔 정부측은 공식적으로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7]

그리고 이는 4월 7일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자격을 정지하는 결의안 투표에서 터키는 이번에도 찬성표를 던진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이전과 달리 기권하였다.#

최근들어 러시아와 아르메니아 관계가 나빠지면서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과의 관계가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니콜 파시난 총리가 러시아랑 멀어지고 친서방 노선을 보이면서 미국과 합동군사훈련도 하고 유럽연합 가입까지 추진하면서 아르차흐를 못 지켰다고 러시아탓으로 돌리자 러시아는 이에 분노하여 2023년 아르차흐 분쟁에 아르메니아를 도와주지 않는 등 관계가 점점 악화되고 아제르바이잔 역시 아르차흐 지배에 대해 서방으로부터 규탄받자 그 여파로 아제르바이잔과 관계가 전보다 더 개선되는 모양세를 보이고 있다.#

3. 문화 교류[편집]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역사적인 이유로 교류가 많은 편이다. 러시아어의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아제르바이잔에서 러시아어는 영어와 함께 중요 외국어에 속해 있다.

제1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이후 아제르바이잔 내 러시아인 상당수가 다른 국가로 이주하였으나 아직 일부 러시아인들이 아제르바이잔에 잔류하고 있다.

러시아내에도 아제르바이잔인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다게스탄 공화국에 거주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본토와 달리 러시아내에서 쓰이는 아제르바이잔어는 키릴 문자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인 관광객들도 아제르바이잔으로 오기도 한다.

아제르바이잔의 문맹 퇴치가 소련 시대에 진행되었던 이유로 아제르바이잔인들 중 80년대 및 그 이전 출생자들은 상당수가 제1외국어로서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편이다.[8] 같은 맥락에서 아제르바이잔에서 사용되는 아제르바이잔어는 남아제르바이잔과 다르게 러시아어 어휘의 영향이 강한 편이다.

알리예프 대통령은 아제르바이잔에서 러시아어 사용과 러시아 문화 보존에 유지한다고 밝혔다.#(러시아어)


4. 경제 교류[편집]


양국은 독립국가연합, 흑해경제협력기구의 회원국들이다.


5. 대사관[편집]


러시아는 바쿠에, 아제르바이잔은 모스크바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1] 사순절에 우유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2] 19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아제르바이잔의 여러 이슬람 칸국들은 종파 문제 때문에 오스만 제국과 잦은 전쟁을 치루던 적대관계였었다.[3] 밀덕득 사이에서는 독소전쟁 당시 히틀러가 바쿠의 유전지대를 탐내서 독일군에게 캅카스 방향으로 남하를 지시했다가, 결국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전하여 후퇴한 사례가 유명하다.[4] 1930년대 잠시 로마자로 표기하던 시절도 있었다.[5] 러시아어를 배제하면서 아제르바이잔내 러시아인들이 대부분 러시아로 이주했다.[6] 하지만 일함 알리예프의 독재 때문에 유럽 연합에 가입할 가능성은 낮다. 어차피 가입하더라도 러시아 반발에 의하여 우크라이나처럼 될 가능성도 각오해야 한다.[7] 상단에 언급했듯이 아제르바이잔은 지금도 러시아와의 교류가 많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대립을 피하고 있다.[8] 당연하지만 이란의 영토인 남아제르바이잔 일대의 아제르바이잔인들 중 러시아어가 가능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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