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국-일본 제국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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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러시아 제국 국기.svg 러시아 제국-일본 제국관계 관련 틀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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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삼국간섭 이전
2.2. 삼국간섭 ~ 러일전쟁
2.3. 러일전쟁
2.4. 종결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러시아 제국일본 제국의 관계에 관련된 문서이다.


2. 역사[편집]



2.1. 삼국간섭 이전[편집]


사할린 영유권 문제로 19세기 초반부터 계속 갈등하던 러시아 제국과 일본 제국은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체결하였다. 해당 조약에서 러시아는 사할린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대신 일본 제국은 쿠릴 열도에 대한 지배권을 갖는다는 합의 하에 양국의 경계를 분명히 하였다.

이후 1891년 니콜라이 황태자가 일본을 방문할 때 일본인 경찰관에게 피습을 당하는 오츠 사건이 발생하였다. 일본은 오츠 사건에 대해 민관을 가리지 않고 러시아 제국에게 사과를 표했으며, 러시아 제국은 일본의 범죄자 처벌에 별다른 부정적 의견을 표하지 않았다.

2.2. 삼국간섭 ~ 러일전쟁[편집]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청나라와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러자 러시아 제국은 일본의 세력 확대에 불안감을 느껴 프랑스 제3공화국, 독일 제국을 끌어들여 일본 제국을 외교적으로 압박하였고, 일본은 삼국간섭으로 인해 요동 반도를 청나라에 다시 반환해야 했다. 요동 반도를 도로 토해냈던 일본은 러시아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을미사변을 일으키고 조선의 친러 내각을 친일 내각으로 개편시켰다.

1896년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일본의 공사 고무라 주타로는 러시아의 공사 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와 회동하여 베베르-고무라 각서를 체결하였고, 일본은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인정해야 했다. 또한 같은 해에는 서로가 조선의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각자가 군사적으로 준비되기까지 조선을 완충지대로 남겨둘 것을 골자로 하는 로바노프 - 야마가타 협정을 체결하였다. 양국의 긴장은 더욱 첨예해졌고 특히 주한 러시아 공사가 베베르에서 알렉세이 스페에르로 교체된 뒤, 조선에 영국인 고문 브라운을 러시아인 고문 키릴 알렉세예프로 교체하도록 압박하자 영국이 이를 항의한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일본의 니시 도쿠지로와 러시아의 로만 로젠이 회동하여 니시-로젠 협정을 체결한다.

이후 청나라에서 의화단 운동이 일어나자 러시아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만주를 점령하였고, 러시아 제국에 대한 일본의 불만은 극에 달하여 결국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하게 된다.


2.3. 러일전쟁[편집]


1902년 일본 제국은 그레이트 게임의 일환으로 러시아 제국을 견제하던 영국과 영일동맹을 체결하였다. 영국의 군사적 지원을 받은 일본 제국은 이후 1904년 러시아 제국과 러일전쟁을 치렀고 1905년에 승리하였다. 러일전쟁 이후 러시아 제국과 일본 제국은 포츠머스에서 조약을 체결하였고, 여기서 러시아 제국은 대한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였으며 러시아의 조차지였던 뤼순다롄을 일본 제국에 할양하였다.


2.4. 종결[편집]


러시아 제국과 일본 제국은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협상국으로 참전하여 승전했으나, 러시아 제국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멸망하고 말았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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