랠프 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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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저 맥케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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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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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973년
1974년
맥스 플라이셔
데이브 플라이셔
월터 란츠
텍스 에이버리
프리즈 프레렝
1974년
1975년
척 존스
아트 배빗
윈저 맥케이
그림 네트윅
월트 디즈니
1975년
1976년
존 허블리
페이스 허블리
노먼 맥라렌
로버트 캐넌
휴 하먼
1976년
1977년
루돌프 이징
마이클 말테스
조지 팔
워드 킴볼
윌리엄 해나
1977년
조셉 바베라
멜 블랭크
오스카 피싱거
빌 스콧
밀트 칼
1978년
제이 워드
어브 아이웍스
딕 휴머
칼 스탈링
한스 콘리드
1979년
1980년
클라이드 제로니미
빌 멜렌데즈
매 퀘스텔
오토 메스머
올리 존스턴
1980년
1981년
프랭크 토머스
칼 하워드
폴 줄리안
라번 하딩
T. 히
1981년
1982년
빌 피트
빌 타이틀라
존 휘트니
켄 헤리스
켄 엔더슨
1982년
1983년
브루노 보제토
준 포레이
도날드 W. 그레이엄
마크 데이비스
에릭 라슨
1983년
프레드 무어
클라렌스 내쉬
볼프강 레이더먼
레오 살킨
스티븐 보수스토
1983년
1984년
윌프레드 잭슨
다우스 버틀러
데이비드 핸드
잭 키니
마이클 라
1984년
1985년
로버트 매킴슨
리처드 윌리엄스
해밀턴 러스크
로버트 아벨
프레스턴 블레어
1985년
조 그랜트
존 핼러스
스털링 홀러웨이
짐 맥도날드
필 먼로
1985년
1986년
벤 워셤
프레더릭 백
샤머스 컬해니
윌리엄 T. 허츠
이르벤 스펜스
1986년
1987년
에머리 호킨스
존 란즈베리
폴 드리센
잭 해나
빌 리틀존
1987년
1988년
모리스 노블
켄 오코너
노먼 퍼거슨
멜 쇼
랠프 박시
1988년
1989-1990년
밥 크렘펫
티사 데이비드
가와모토 기하치로
버질 로스
아트 클로키
1989-1990년
힉스 로키
알렉스 로비
돈 메식
데즈카 오사무
레스터 노브로스
1991년
레이 해리하우젠
허버트 클린
밥 커츠
유리 노르슈테인
조 시라쿠사
1991년
1992년
1993년
루스 키산
레스 클라크
스탠 프레버그
데이비드 힐버만
조지 더닝
1993년
1994년
로이 E. 디즈니
잭 잰더
에드 베네딕트
아서 데이비스
장 밴더 필
1995년
1996년
줄스 엥겔
반스 게리
댄 맥로린
메리 블레어
버니 매티슨
1996년
1997년
1998년
타카모토 이와오
윌리스 H. 오브라이언
마이런 왈드먼
폴 윈첼
에위빈드 얼
1998년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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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핀토프
레이 패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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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 페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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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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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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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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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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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라세터
닉 파크
팀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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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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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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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모 카츠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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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멘델슨
조 랜프트
필 로먼
타카하타 이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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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 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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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로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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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 A. 아퀴노
릴리언 슈워츠
스즈키 토시오
피트 닥터
2022년



에블린 램바트
크레이그 맥크라켄








랠프 박시
Ralph Bakshi


파일:RalphBakshiJan09.jpg

출생
1938년 10월 29일 (85세)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하이파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직업
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성우, 아티스트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활동
3. 여담
4. 작품 목록
4.1. 영화
4.2. TV 애니메이션
5. 관련 인물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미국의 애니메이션 감독.


2. 활동[편집]


미국인 애니메이터로서는 드물게도 성인 지향 애니메이션을 주로 제작한 감독. 유대계 미국인으로, 영국령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하이파 출신이다.[1] 태어난 이듬해(1939년)에 온 일가가 미국 뉴욕 브루클린으로 이주했다. 빈민가에서 흑인들과 함께 자랐으며 이런 경험이 작품에도 깊이 배어 있다.[2]

1956년 박시가 고등학교졸업했을 때 애니메이션 제작사 테리툰즈(Terry Toons)에 입사했던 친구의 도움을 받아 스튜디오에 입사했는데, 처음엔 셀 필름의 먼지를 제거하는 업무를 맡았으며 몇 달 후 셀 아티스트로 승진하였다. 이 때 동료 아티스트의 작업 더미에 10개의 셀을 밀어넣는 의도된 일탈을 저질렀고, 프랭크 셔드의 사무실에 불려갈 때까지 이를 들키지 않았다고 한다. 사무실에 같이 불려온 셋은 치열한 말다툼을 벌였고 셔드가 박시를 편들어주는 것으로 사태는 해결되었다. 이후엔 애니메이터가 되길 희망한 박시의 생각을 알던 테리 툰즈의 몇몇 직원들한테 도움과 조언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1959년부터 TV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보조 애니메이터로써 활동하며 조금씩 경력을 쌓아갔으며, 1967년 스파이더맨 TV판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한 이듬해(1968년)에는 박시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스튜디오에 의뢰를 받는 작품이 아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스튜디오를 운영했는데, 설립하는 과정에서 박시는 다른 스튜디오보다 직원들에게 높은 급여를 지급하였고, 여성 애니메이터와 소수 인종 애니메이터한테도 많은 기회를 부여해 줬었다고 한다. 2년여의 제작 기간이 걸린 끝에 1972년, 로버트 크럼의 성인만화를 원작으로 하여 박시 본인의 첫 장편 작품이자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 역사상 최초의 X등급을 받은 애니메이션 《고양이 프리츠》(Fritz the Cat)를 제작하여 업계 내외에 자신의 인지도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똑같은 X등급이 찍혀버린 애니메이션 영화 《헤비 트래픽》(Heavy Traffic),[3] 빈민가에서 갱단으로 커 가는 흑인들을 그려낸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 《쿤스킨》(Coonskin,1975)[4] 등을 제작했는데,[5] 개봉된 영화를 두고 흥행과 논쟁 속에서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맡을 예정이던 배급을 취소하였고, 원래 1976년 개봉 예정이던 헤이! 굿 룩킨!의 개봉이 몇 년간 연기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1976년부터 2년간 판타지 영화인 《마법사》(Wizards), 《불과 얼음》(Fire and Ice)(놀랍게도 이 애니도 한국에서 비디오로 나왔다... 물론 삭제질), 톨킨 원작의 《반지의 제왕》 애니메이션[6] 영화를 제작 & 감독했고, 미국의 음악사를 그려낸 《아메리칸 팝》(American Pop)을 만들었다. 그러나 작품들이 흥행에서 재미를 못 본데다 어른의 사정까지 겹치면서 1983년부터 일시적으로 몇년간 은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987년부터 TV 애니메이션 쪽(한국에서도 방영된 《마이티 마우스》같은 애니에도 참여했었다.)을 통해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 다시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돌아가 킴 베이싱어브래드 피트 주연으로 삼아 실사와 로토스코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섞은 《쿨 월드》(1992)를 제작하나, 이 작품도 흥행에선 실패하고 만다. 이미 비슷한 기법으로 대성공을 거둔 《누가 로져 래빗을 모함했나》가 나온 지 4년후에 나온 작품인데다, 내용 자체도 지루하기 짝이 없어서 흥행이나 평으로나 흑역사가 돼버린 영화.

그래도 TV용 애니메이션으론 1990년대 후기까지도 현역으로 작업했으며 미국 내에선 디즈니와 실사 영화 사이를 이은 인물이란 식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는 듯. 2015년엔 오랜 침묵을 깨고 단편 'last days of coney island'를 만들었으며, 2016년 본인의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하였다. 이후 애니메이션 감독의 활동에선 은퇴했지만, 아티스트로썬 2022년 현재도 지속적으로 활동 중이며 랠프 본인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와 이베이 등지에서 아트 시리즈 작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3. 여담[편집]


  • 박시가 활동 전성기(197~80년대 시기)에 제작한 애니메이션 속의 성적, 정치적 묘사들을 불편하게 생각한 일부 시민단체, 시청자들의 비난과 작품을 옹호하는 평론가들과 또다른 시청자들이 맞서면서 많은 논쟁에 휩싸인 크리에이터였다. 상당수의 작품에서 성인 지향적 연출과 위주의 콘텐츠를 삽입했으며 풍자적 메시지를 넣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으며, 때문에 훗날의 사우스 파크를 앞서간 미국 성인 애니메이션의 선구자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 불과 얼음의 제작 과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여러 작품들에 로토스코핑 기법을 자주 활용한 감독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본인조차 해당 기법을 쓰는 것을 안좋아하게 되어서 쿨 월드 이후론 사용하지 않고 있다.

  • 1987년에 박시가 제작한 마이티 마우스 TVA에선 현대기의 미국 애니메이션들에서 활동하게 되는 크리에이터들이 제작진으로 참여했었다. 이 시기에 박시의 스튜디오 박시 프로덕션(Bakshi Production)에서 일하고 있던 존 크릭팔루시는 2003년에 방영된 렌과 스팀피 성인판의 Fire Dogs 2 에피소드의 조연 캐릭터 배역의 성우로 박시를 배정해 주기도 했다.

  • 박시는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의 연기가 오래되고 진부하며 과잉 생산된 형태의 연기라고 보았으며 애니메이터가 새로운 유형의 연기를 시도하고 실험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디즈니 작품들에서 나오는 연기를 싫어한다고 한다. https://animationresources.org/advice-bakshi-on-surviving-tough-times/ 관련 출처 자료. 구체적인 이유는 그가 디즈니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디즈니의 외모와 스토리텔링 표준에 따르면 된다고 믿었던 재능 있는 예술가들에 대해 좌절했던 경험도 있었다고 한다.

  • 박시가 제작한 작품들에서 나오는 마피아들은 자기들만의 목표를 위해 활동하며 갱생할 수 없는 인간 말종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한 뉴욕, 워싱턴의 집 주변에서 목격했었던 조직 단체들의 범죄 행위에 대해 동정적인 메시지로 연출한 대부에 대해 분노한 것과 그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작용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7]

  • 초창기엔 헤이즈 코드의 폐지로 표현의 자유가 광범위해지고 68운동이 나타난 지 얼마 안된 뉴 할리우드 당시에 연출한 고양이 프리츠, 헤비 트래픽, 쿤스킨에서 주인공이 뉴욕을 배경으로 갖가지 범죄를 저지르면서 활동하는 피카레스크 형식의 시나리오를 활용했었다.[8] 이 작품들에선 가끔 동성애자가 농담거리로 취급받는 장면도 나온다.[9] 하지만 쿤스킨을 제작하던 도중에 3명의 아티스트가 동성애자란 이유로 다른 직원들을 학대한 정황을 파악한 박시는 스튜디오에서 그들을 해고시킨 일이 있었다.

  • 박시 자신이 연출&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들 중에선 카메오로 단역 캐릭터 배역(이자 성우)을 맡은 작품도 있는데, 등장한 지 머지 않아 목숨을 잃는 장면들이 종종 나온다.


  • 2023년에 AI기술로 만든 영상을 봤는데이에 대해서 딱잘라서 no comment 라고 답하였다. AI기술을 가지고 광적으로 따르는 사람들과 말싸움을 하기 싫어서 인지. [10]아니면 여러가지 복잡한 심경으로 대답한건지는 불명이다..다만 저런류의 애니메이션을 직접 수작업으로 만든 박시이니 심경이 매우 복잡할만도 하다.같은 애니메이션 종사자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인공지능 그림에 대해서 대놓고 역겹다고 말한것과는 대비된다.

4. 작품 목록[편집]



4.1. 영화[편집]


  • 고양이 프리츠 (1972)
  • 헤비 트레픽 (1973)
  • 쿤스킨 (1975)[11][12][13]
  • 마법사 (1977) - 20세기 폭스 배급
  • 반지의 제왕 (1978) -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배급
  • 아메리칸 팝 (1981) - 컬럼비아 픽처스 배급
  • 헤이 굿 룩킨 (1982)[14] - 워너 브라더스 배급
  • 불과 얼음 (1983) - 20세기 폭스 배급
  • 쿨 월드 (1992)[15] - 파라마운트 픽처스 배급


4.2. TV 애니메이션[편집]




5. 관련 인물[편집]


  • 영향을 받은 인물
    • 짐 타이어(Jim Tyer)[16]
    • 코니 라진스키
    • 척 존스
    • 텍스 에이버리
    • 밥 크렘펫
    • 맥스 플라이셔 & 데이브 플라이셔


  • 전 동료
    • 로버트 크럼(Robert Crumb) : 박시의 고양이 프리츠와 후속작(단, 이 작품은 박시가 관여하지 않았다)이 칸 영화제에 초청받을 정도로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이 애니를 무척 싫어했다. 얼마나 싫어했냐면 크레딧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라고 소송을 건 데다 고양이 프리츠 완결을 영화화로 거만해진 프리츠가 나대다가 여친에게 살해당하는 걸로 끝내버렸다. 이후 박시랑 작업한 애니메이터에게 노골적으로 불이익을 주려고 협박했을 정도. 박시도 대놓고 '잘 만들었는데 왜 존경해주지 않는 거냐'며 '크럼은 좋은 작가지만, 존경할 가치도 없는 포주'라 디스하는 등 지금도 둘 사이는 험악하다.

  • 상사
    • 진 데이치
    • 스티븐 크란츠(Steven Krantz)
    • 알버트 S. 루디
    • 사울 잔츠(Saul Zantz)

  • 라이벌
    • 돈 블루스 : 유튜브의 Don Bluth vs Ralph Bakshi 키워드 검색 영상 참조. 성격상 대놓고 경쟁을 벌인 관계는 아니었지만, 미국 애니메이션이 현대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제작자로써는 경쟁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기용한 애니메이터, 연출가
    • 마크 카우슬러(Mark Kausler)
    • 마누엘 페레즈(Manuel Perez)
    • 딕 런디(Dick Lundy)
    • 버질 로스(Virgil Ross)
    • 노먼 맥케이브(Norman Mccabe)
    • 롯 스크라이브너(Rod Scribner)
    • 어브 스펜스(Irv Spence)
    • 톰 민튼(Tom Minton)
    • 리치 무어(Rich Moore)
    • 앤드류 스탠턴(Andrew Stanton)
    • 브루스 팀
    • 존 크릭팔루시[17]



6.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5 06:35:40에 나무위키 랠프 박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참고로 박시 가문은 크림 반도 지역을 중심으로 튀르크어를 사용하던 크름차크라는 독특한 유대인 종교 공동체 출신이다. 문제는 이 공동체가 안그래도 적백내전홀로도모르로 고통받는 판이었는데, 결정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나치 독일홀로코스트로 구성원 75%가 몰살당해 사라진 것. 그의 반골 기질은 태어날 때부터 뼛속 깊이 새겨진 셈이다. 크름차크 유대인에 대한 정보는 카라임 유대인이나 테오도로 공국 문서 참조 바람.[2] 이민을 하고 몇년이 지난 1947년, 워싱턴 DC로 전 가족이 이사했는데, 워싱턴에서 처음 살게 된 포기 버텀(Foggy Bottom) 내에 있던 흑인 학교에서 다닐 수 있도록 모친한테 허락받았고 흑인 친구들도 박시를 문제삼지 않으며 잘 어울렸지만 시기상 드물던 모습에 당황한 교사가 경찰에 전화를 걸었고 교장한테도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경찰백인 학생이 흑인 학교에 다니는 것을 백인들이 알게 되면 인종 폭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박시를 교실에서 배제하게끔 조치했으며, 일가족은 브라운스빌로 다시한번 이사를 갔다고 한다.[3] 1990년대 후반에 한국에서도 비디오로 나왔는데 표지가 무슨 일본 야애니처럼 도배하여 나왔다![4] 애니와 실사를 합성해 만들었는데 1989년 한국에서 비디오가 나왔으나 (삼부비디오) 애니 상에서 바지 벗고 남자 고추가 드러나는 장면 등의 여러 장면들을 삭제한 것과 더불어 비속어들은 모조리 걸러냈다.[5] 파일:external/www.etobang.com/acc93a7a630f390e6671dc12f430be24_IpwbZo5rRq8TizZysNRC6E4p.jpg 쿤스킨을 처음 보면 루니 툰에 대한 자잘한 풍자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장면도 있다. 캐릭터(벅스 버니를 흑인으로 만든 검은 토끼 래빗 브라더도 그렇지만 저 배경을 보시라. 눈에 익숙하다면....) 파일:external/www.etobang.com/acc93a7a630f390e6671dc12f430be24_EqCMxTpbu.png 루니 툰 배경화면을 그대로 썼다고 할 정도로 같다. 하지만 쿤스킨의 기반이 된 작품은 조엘 챈들러 헤리스의 엉클 리머스였으며, 주인공 캐릭터들도 이 소설에서 나온 동물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6] 박시 자신은 반지의 제왕 전체를 애니메이션화하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두 개의 탑까지의 내용을 담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흥행 실패하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극장 개봉과 비디오로 나왔으나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고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에서 DVD로 냈으나 역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나중에 왕의 귀환은 1980년 줄리 바스와 아서 랜킨 주니어 공동 감독으로 티브이 애니로 만들어진다.[7] 이런 연출이 많이 묘사되어 있는 작품으론 쿤스킨을 꼽을 수 있다. 작중에선 래빗 일행과 후반부에 많은 접점을 맺는 마피아 일당의 위선적이고 잔혹한 내면이 여과없이 드러나오며, 구세주인 척 행세를 하며 흑인들을 유혹하는 한편 백인들을 말살하려는 흑인우월주의 조직의 보스와 간부들, 경찰관이자 마피아와 협력 관계에 있던 인종주의자 백인의 묘사도 악랄한 행태를 별다른 미화 없이 그려내고 있다.[8] 해당 작품들은 기존 메이저 영화사들이 배급하지 않았으며, 이후 작품들의 판권을 인수한 MGM(고양이 프리츠, 헤비 트래픽)과 제논 엔터테인먼트(쿤스킨)에서 DVD를 발매하였으며, 2023년 현재는 아마존 산하 OTT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스트리밍으로 시청 가능하다.[9] 비록 소수자들의 시선에 동감한다 해도 관점에 따라서 작품에서 소소한 농담거리로 다루는 연출가들도 종종 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미디어 매체에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면 중 하나만 다루어 묘사하지 않으면 (작품을 연출한) 크리에이터를 일관적으로 차별/옹호로 판단하는 견해 자체가 흑백논리적인 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박시가 연출&제작한 작품들의 캐릭터는 성적 지향이나 이념, 인종이나 종교인에 관계없이 큰 잘못을 저질렀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말투나 몸짓 등으로) 남들을 하대하는 장면이 나오면 얼마 못 가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르거나 적어도 상대방한테 조롱섞인 야유나 시선을 받게 되는 장면들이 나온다.[10] 실제로 최근 인공지능 그림등이 유행하면서 관련 업계 사람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사이버 불링들이 굉장히 많아졌다.[11] 작품의 주요 캐릭터 3인방은 남부의 노래의 원작을 서술한 엉클 리머스의 소설에 나오는 브라더 베어, 브라더 폭스, 브라더 래빗을 바탕으로 디자인했다고 하며, 작품의 제작진 중에 흑인 애니메이터들이 상당수 참여했었다고 한다. 당초엔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배급할 예정이었는데 영화 곳곳에 묘사된 캐릭터 디자인, 스토리텔링 등에 대해 영화를 시청하지 않거나 이들을 먼저 중점에 두고 판단하며 영화에 대해 비난하면서 민권 단체 인종 평등 회의(CORE)가 작품이 상영 중인 영화관을 방문해 점거하는 등의 보이콧을 감행해, 마이너 배급사 브라이언스톤이 배급해야 했고 브라이언스톤도 상영 2주 뒤에 파산하기에 이른다. [12] 그러나 상영 초기에도 로저 이버트, 레너드 말틴을 포함한 몇몇 평론가들이 영화의 작품성에 대해 깊게 고찰한 평론을 기고한 일이 있었으며, 언론 & 잡지 매체의 평론 리뷰에서도 호불호가 크게 엇갈리는 등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있었다. 제목을 바꾸어 VHS로 영화가 발매된 1980년대 이후 박시가 영화에 표현한 메시지와 작품성이 차츰 재평가를 받으면서 2003년 3월 온라인 영화 비평가 협회는 쿤스킨을 고양이 프리츠, 반지의 제왕, 불과 얼음이랑 Top 100 Animated Features of All Time 리스트에 수록하였고, 이듬해 채널 4가 실시한 The 100 Greatest Cartoons의 여론조사에서 56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스파이크 리가 쿤스킨을 고평가하며 좋아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13] 2023년에 한 이탈리아인 유튜버가 잃어버린 이탈리아어 더빙 영화를 발견하기 위해 한 수집가한테 연락해 구매한 VHS 비디오테이프에서 미공개 상태였던 쿤스킨의 파라마운트 컷(이탈리아어 더빙판)을 발견하였으며, 인터넷 아카이브와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14] 본래 1975년에 작품이 완성되었고 이듬해(1976년)에 개봉될 예정이었지만, 이 무렵 개봉한 박시의 작품 쿤스킨에 대한 논란의 여파로 몇년 간 개봉이 연기되었다고 한다. 이후 박시 본인의 언급에 의하면 워너 브라더스에서 영화에 삽입했었던 실사 시퀀스를 상당수 편집해서 상영시켰기 때문에 이 작품(1982년 상영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15] 박시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작품으로 언급한 작품이다. 문서 참조.[16] 페이머스 스튜디오와 테리 툰즈에서 근무한 애니메이터, 짐의 역동적인 캐릭터의 동화 스타일은 랄프의 작품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17] 과거 1980년대엔 제작 현장에서 교류하던 동료였으나, 2020년대 현재는 박시가 SNS에서 그와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여전히 동료 관계인지는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