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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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워커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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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92 MLB 올스타전 로고.png파일:1997 MLB 올스타전 로고.png파일:1998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1999 MLB 올스타전 로고.png파일:2001 MLB 올스타전 로고.svg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1992
1997
1998
1999
2001



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래리워커 HOF.jpg
래리 워커
헌액 연도
2020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76.6% (10회)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켄 캐미니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래리 워커
(몬트리올 엑스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마퀴스 그리솜
(몬트리올 엑스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래리 워커
(몬트리올 엑스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마퀴스 그리솜
(몬트리올 엑스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대런 루이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마퀴스 그리솜
(몬트리올 엑스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스티브 핀리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마퀴스 그리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라울 몬데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앤드루 존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8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라울 몬데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앤드루 존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스티브 핀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앤드루 존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앤드루 존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스티브 핀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앤드루 존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짐 에드몬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스티브 핀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앤드루 존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1년 ~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짐 에드몬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스티브 핀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앤드루 존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짐 에드몬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앤드루 존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짐 에드몬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호세 크루즈 주니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앤드루 존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8년 ~ 199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격왕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격왕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홈런왕
안드레스 갈라라가
(콜로라도 로키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마크 맥과이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몬트리올 엑스포스 등번호 33번
잭 도허티
(1987)

래리 워커
(1989~1994)


카를로스 페레즈
(1995~1998)
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33번
크리스 존스
(1993~1994)

래리 워커
(1995~2004)


저스틴 모노
(2014~2015)
저스틴 모노
(2014~2015)

영구결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번호 33번
마이크 링컨
(2004)

래리 워커
(2004~2005)


래리 비그비
(2006)



파일:1000003658.jpg

콜로라도 로키스 No. 33
래리 케네스 로버트 워커
Larry Kenneth Robert Walker

출생
1966년 12월 1일 (57세)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메이플리지
국적
[[캐나다|

캐나다
display: none; display: 캐나다"
행정구
]]

학력
메이플리지 고등학교
신체
188cm / 83kg
포지션
우익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84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MON)[1]
소속팀
몬트리올 엑스포스 (1989~1994)
콜로라도 로키스 (1995~200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04~2005)
기록
30-30 클럽 (1997)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5. 이모저모
6. 연도별 기록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LarryWalker.jpg

빌 제임스는 한 가지를 잘하는 선수는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많은 일을 잘하는 선수는 항상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자주 말했다. 덧붙이자면, 유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매일매일 좋은 사람들은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래리 워커는 그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 최고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인 조 포스난스키의 평가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에 활약했던 강타자로 '올해의 캐나다 야구선수 상'[2]에 해당하는 팁 오닐 상을 9차례 수상한 캐나다 역대 최고의 야구선수 중 한 명이다.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캐나다인 타자이며 통산 성적은 17시즌 동안 타율 .313, 출루율 .400, 장타율 .565, 2160안타, 383홈런, 1311타점, 230도루, BB/K 0.74, wRC+ 140을 기록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몬트리올 엑스포스[편집]


메이플리지 고교 시절에는 캐나다인답게 아이스하키 선수를 지망해 주니어 팀에 트라이아웃을 봤지만 입단하지 못했고 캐나다에서 비주류 스포츠였던 야구 선수로 진로를 변경했다. 1984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캐나다팀으로 출장한 워커는 금속 배트를 사용하던 다른 선수들과 달리 나무 배트를 사용했고 워커의 홈런을 본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스카우팅 디렉터 짐 패닝은 그를 곧바로 팀에 입단시켰다. 그러나 워커는 경험 부족으로 인해 마이너 리그에서 고전했지만 배우려는 의지와 힘든 노력 끝에 엑스포스의 탑 유망주가 될 수 있었다.

1989년 8월 16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 마이크 리코스를 상대로 볼넷을 얻어내며 메이저 리그에 데뷔한 워커는 이듬 해인 1990년 팀의 주전 우익수로 자리잡으며 133경기 .241 .326 .434 19홈런 51타점 21도루라는 신인치고 괜찮은 활약을 보였다.

1992년에는 143경기에 출장해 .301 .353 .506 23홈런 93타점 18도루를 기록한 워커는 올스타에 선정되고 골드 글러브실버 슬러거를 수상하며 일약 주목받는 선수로 떠올랐고 1993년에도 138경기 .265 .371 .469 22홈런 86타점 29도루로 20-20 클럽에 가입하는 등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다. 이 당시 모이세스 알루-마퀴스 그리솜-래리 워커로 이어지는 엑스포스의 외야진은 메이저 리그에서도 최고 수준이었다.

1994년에는 리그 1위인 44개의 2루타를 기록하고 팀도 모처럼 지구 1위를 질주하는 등 좋은 시즌을 보내고 있었지만 선수단 파업으로 인해 103경기만을 소화해야 했던 워커는 .322 .394 .587 19홈런 85타점 15도루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4년 2250만 달러에 콜로라도 로키스와 계약하게 된다.


2.2. 콜로라도 로키스[편집]



파일:20200520_024406.jpg


1995년 창단 3년째였던 신생팀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워커는 물이 오른 기량에다가 쿠어스 필드 효과까지 받아 131경기에 출장해 .306 .381 .607 36홈런 101타점 16도루의 맹활약을 펼치며 안드레스 갈라라가, 단테 비솃[3], 비니 카스티야와 함께 공포의 타선을 구축했고 팀은 이들의 맹활약에 힘입어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1997년 워커는 153경기에 출장해 .366 .452 .720 49홈런[4] 130타점 33도루라는 괴물 같은 성적을 찍으며 30-30 클럽에 가입했고 골드 글러브와 실버 슬러거를 쓸어갔으며 MVP 투표에서도 1위 표 총 25장 중 22장을 받아 마이크 피아자를 따돌리고 콜로라도 로키스 프랜차이즈 최초로 내셔널 리그 MVP가 되었다.[5]

이듬 해인 1998년에는 130경기 .363 .445 .630 23홈런 67타점 14도루를 기록해 생애 첫 타격왕과 더불어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으며 1999년에는 127경기 .379 .458 .710 37홈런 115타점 11도루로 2년 연속 타격왕과 함께 실버 슬러거와 골드 글러브를 동시에 수상했다.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모두 리그 1위였는데 막상 MVP 투표에서는 10위에 그쳤다. 그리고 6년 7500만 달러에 팀과 재계약하게 된다.

2000년에는 예전부터 고질적으로 그를 괴롭히던 무릎 부상이 크게 번지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2001년 142경기에 출장해 .350 .449 .662 38홈런 123타점 14도루를 기록하며 다시 한 번 타격왕에 오르고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2002년에도 142경기 .338 .421 .602 26홈런 104타점 6도루를 기록하며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토드 헬튼과 함께 팀을 이끌었지만 2003년에는 143경기 .284 .422 .476 16홈런 79타점 7도루에 그치며 이름값을 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10년이 다 되도록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던 로키스는 37세의 노장이었던 워커를 트레이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듬 해인 2004년 8월 콜로라도 로키스는 제이슨 버치, 크리스 나베슨, 루이스 마르티네즈를 받는 조건으로 부상에서 뒤늦게 복귀해 33경기에서 .324 .464 .630 6홈런 20타점 2도루를 기록한 워커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한다.


2.3.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편집]



파일:20200520_024715.jpg


워커가 트레이드 될 당시 카디널스는 알버트 푸홀스, 짐 에드몬즈, 스캇 롤렌을 중심으로 한 살인타선(Murderer's Row)[6]을 구성하고 있었는데 워커 역시 이적 후 44경기에서 .280 .393 .560 11홈런 27타점 4도루를 기록하며 팀이 월드 시리즈에 올라가는 데 힘을 보탰다.

이듬 해인 2005년 워커는 부상 때문에 고전하는 와중에도 100경기에 출장해 .289 .384 .502 15홈런 52타점 2도루를 기록한다. 2005년 10월 19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에서 댄 휠러에게 삼진을 당한 워커는 "메이저 리그 첫 타석에서 마이크 라코스를 상대로 볼넷을 얻어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마지막 타석에서 댄 휠러에게 삼진을 당했다.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기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래리 워커는 파워, 스피드, 컨택트, 수비, 어깨 모두를 갖춰 5툴 플레이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였다. 워커는 통산 3회의 타격왕을 차지할 정도로 컨택트가 좋았고 전성기에는 30홈런을 칠 수 있는 파워를 갖추고 있었다. 수비 능력도 출중해서 송구 능력은 당대 최고로 인정받는 수준이었다. 또한 몬트리올 시절인 1993년에는 22홈런-29도루, MVP시즌인 1997년에는 49홈런-33도루를 기록하는 등 준수한 주루 센스도 갖추고 있었다. 더불어, 메이저리그 역사상 커리어 3할 타율, 4할 출루율, 350홈런과 200도루를 달성한 선수는 래리 워커 단 한 명 뿐이다. 여기에 선구안마저 갖춰 7스킬 플레이어라고도 불렸던 워커를 저평가받게 한 요인은 다름 아닌 산사나이라는 것이었다.

콜로라도의 홈 구장인 쿠어스 필드는 메이저 리그에서 가장 타자 친화적인 구장으로 악명이 높다. 이 때문에 콜로라도 출신 슬러거들은 그들의 성적에 대해 평가절하받기 일쑤였는데 워커 역시 마찬가지였다. 콜로라도로 처음 이적한 1995년 워커의 홈/원정 타율은 .343/.268으로 적지 않은 격차를 보였다. 1997년 MVP를 수상했을 당시에는 .384/.346으로 격차를 줄이긴 했지만 1998년에는 .418/.302, 1999년에는 .461/.286으로 점점 격차가 벌어졌다.

이런 점에서 워커 역시 쿠어스 필드의 덕을 본 대표적인 타자라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워커는 콜로라도 시절 홈에서 .384 .464 .715라는 괴물 같은 슬래시라인을 기록하면서도 원정에서 .280 .385 .514라는 나름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었고 커리어 초기 몬트리올에서 20홈런-3할을 보장하는 선수였는가 하면, 커리어 말기에는 세인트루이스에서도 두 시즌 동안 .560과 .502의 장타율을 기록하는 등 그가 마냥 구장의 힘만으로 커리어를 쌓은 선수가 아니라는 점도 보여주었다.[7]

모든 스킬이 완벽했던 워커에게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바로 부상. 140경기 이상 출전한 시즌이 고작 4시즌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뛰어난 비율기록에 비해 누적 기록이 조금 아쉽다. 워커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렸는데, 범인은 툴플레이어들의 주적으로 악명 높았던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홈구장 스타드 올랭피크의 인조잔디로 추정된다.[8]

4. 명예의 전당 입성[편집]


연도
득표율(%)
2011
20.3
2012
22.9
2013
21.6
2014
10.2
2015
11.8
2016
15.5
2017
21.9
2018
34.1
2019
54.6
2020
76.6
2011년부터 명예의 전당 입성 후보로 자격을 얻었던 워커는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 투표에서 첫 해 20.3%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일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후 2년 동안 22.9%, 21.6%를 기록하며 사실상 득표율이 제자리였고 2014년에는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프랭크 토마스라는 쟁쟁한 후보들에게 밀려 득표율이 10.2%로 반토막 났고 2015년에도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 존 스몰츠, 크레이그 비지오에게 밀려 11.8%의 득표율을 보였다. 게다가 이 해부터 자격 유지 한도가 10년으로 줄어들면서 입성 가능성이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었다.

2016년과 2017년에도 각각 11.8%와 21.9%의 득표율로 별 차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듬 해인 2018년 34.1%의 득표율로 지난 해보다 12.2% 오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입성은 쉽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2019년 투표에서 전년 대비 20.5%가 오른 54.6%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마지막 해에 극적으로 입성할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 명예의 전당이 세이버매트릭스적으로 재평가된 타자들에게 호의적인 면이 있었고, 마지막 기회인 10년차를 맞이하는 후보들의 투표율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래리 워커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받았다. 다만 9년차 득표율이 70% 안팎이었던 팀 레인스에드가 마르티네즈와 달리 워커의 득표율은 50% 안팎이라 입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좋은 소식이 있다면 2020년 새로 투표 피대상자 자격을 얻는 선수들 중 데릭 지터 정도만 첫 턴에 입성할 것이라고 평가받았고, 바비 아브레우 정도가 장기 투숙할 후보로 평가받을 정도로 경쟁자들이 적다는 점이었다.[9]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여부가 밝혀지는 2020년 1월 21일에 앞서 그로부터 6일 전에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래리 워커의 등번호 33번을 영구결번했다.

결국 2020년 마지막 10번째 투표에서 온라인 야구팬들이 세이버 스탯을 중심으로 거의 캠페인을 하듯이 워커의 입상을 지지했고 발표 전날까지 결과를 알 수 없던 긴장감 넘치는 상황 속에서 결국 76.6%의 득표율을 기록해 커트라인인 75%를 넘겨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하게 되었다. 캐나다 출신으로서는 퍼거슨 젠킨스에 이어 두 번째 입성이다.

1월 23일에 열린 명예의 전당 입성 공식 기자회견에서, 모두의 예상대로 모자는 로키스를 골랐다. 캐나다인으로서 엑스포스 모자를 고르지 않은 게 힘들긴 했으나[10], 주요 성적과 전성기를 로키스에서 이룩하였기에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실제로도 누적 면이든 임팩트 면이든 워커를 대표하는 팀은 로키스이다.

이로써 래리 워커는 콜로라도 로키스 선수의 첫 명예의 전당 입성을 이루어냈다.

4.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래리 워커
24
116
148
58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 JAWS - Right Field (11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래리 워커
72.7
44.6
58.7
우익수 HOF 입성자 평균
71.5
42.1
56.8


5. 이모저모[편집]


파일:external/2.bp.blogspot.com/scan-Walker.jpg
  • 앞서 언급했지만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캐나다 사람답게 아이스하키 선수를 꿈꿨을 정도로 아이스하키를 매우 좋아했다. 야구선수가 된 이후에도 야구보다 아이스하키를 더 사랑했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01년 6월 2일 모처럼 5할 승률에 근접하며 선전하고 있던 로키스는 같은 지구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맞붙게 되었는데 이 날은 콜로라도 애벌랜치뉴저지 데블스가 맞붙는 NHL 결승전인 스탠리 컵 경기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로키스와 자이언츠는 9회까지 5-5로 팽팽히 맞서고 있었고 스탠리 컵은 곧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경기가 연장전에 접어들면 스탠리 컵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애가 탄 워커는 9회말 타석에서 끝내기 투런 홈런을 날려버린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라커룸 TV 앞으로 달려가 중계를 보았다고 한다.[11] 콜로라도 애벌랜치가 2020년 3월 15일 베가스 골든 나이츠와의 경기에서 긴급 골텐더[12]로 래리 워커를 하루동안 영입하면서 하키 선수 데뷔 소원을 성취했다.

  • 캐나다 아이스하키 역사상 최고의 골리인 파트릭 루아와는 절친한 사이다. 1989년 래리 워커가 메이저리그로 콜업된 이후 1995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워커와 루아는 같은 연고지(몬트리올, 덴버)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파일:external/mlb.mlb.com/GettyImages_450175212_rgabc87l_iyu0350v.jpg
  • 1997년 올스타전에서 랜디 존슨이 던진 강속구가 워커의 머리 위로 날아오는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지는데 존슨이 다음 공을 던지려 할 때 워커는 헬멧을 거꾸로 쓰고 왼쪽 타석이 아닌 오른쪽 타석에서 타격 자세를 취하는 쇼맨십을 보여줬다.[13]영상

  • 외모 때문인지 워커의 별명은 불곰이다.


6. 연도별 기록[편집]


파일:MLB 로고.svg 래리 워커의 역대 MLB 기록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89
MON
20
56
8
0
0
0
4
4
1
5
13
.170
.264
.170
.434
-0.1
-0.2
1990
133
478
101
18
3
19
59
51
21
49
112
.241
.326
.434
.761
3.0
3.4
1991
137
539
141
30
2
16
59
64
14
42
102
.290
.349
.458
.807
3.8
3.4
1992
143
583
159
31
4
23
85
93
18
41
97
.301
.353
.506
.859
5.3
5.4
1993
138
582
130
24
5
22
85
86
29
80
76
.265
.371
.469
.841
4.7
4.4
1994
103
452
127
44
2
19
76
86
15
47
74
.322
.394
.587
.981
4.4
4.7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95
COL
131
562
151
31
5
36
96
101
16
49
72
.306
.381
.607
.988
4.6
4.7
1996
83
304
75
18
4
18
58
58
18
20
58
.276
.342
0.570
.912
1.3
1.2
1997
153
664
208
46
4
49
143
130
33
78
90
.366
.452
.720
1.172
9.1
9.8
1998
130
524
165
46
4
23
113
67
14
64
61
.363
.445
.630
1.075
5.0
5.7
1999
127
513
166
26
3
37
108
115
11
57
52
.379
.458
.710
1.168
4.7
5.1
2000
87
372
97
21
7
9
64
51
5
46
40
.309
.409
.506
.915
1.9
1.6
2001
142
601
174
35
3
38
107
123
14
82
103
.350
.449
.662
1.111
7.6
7.8
2002
136
553
161
40
4
26
95
104
6
65
73
.338
.421
.602
1.023
5.4
6.1
2003
143
564
129
25
7
16
86
79
7
98
87
.284
.422
.476
.898
3.2
4.4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4
COL
STL
82
316
77
16
4
17
51
47
6
49
57
.298
.424
.589
1.013
2.8
2.7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5
STL
100
367
91
20
1
15
66
52
2
41
64
.289
.384
.502
.886
2.2
2.4
MLB 통산
(17시즌)

1988
8030
2160
471
62
383
1355
1311
230
913
1231
.313
.400
.565
.965
68.7
72.7

7. 관련 문서[편집]


[1] 1984년까지 캐나다 출신 유망주들은 자유계약 신분이었다. 1985년부터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다.[2] 국내에선 메이저리그가 코로나로 인해 단축시즌으로 열린 2020년에 KBO 용병인 제이미 로맥이 이 상을 받으면서 화제가 되었다.[3]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보 비솃의 아버지다.[4] 워커가 1997년 기록한 49홈런은 2001년 토드 헬튼과 함께 콜로라도 로키스 최다 홈런 기록이다.[5] 워커의 1997년 홈/원정 성적은
홈 : .384 .460 .709 20홈런 68타점 17도루
원정 : .346 .433 .733 29홈런 62타점 16도루였다.
이 시즌 워커의 성적은 쿠어스 필드 덕이라는 비아냥도 할수 없게끔 원정에서도 잘했다.
[6] 2004년 세 타자의 기록을 살펴보면
푸홀스 : .331 .415 .657 46홈런 123타점
에드몬즈 : .301 .418 .643 42홈런 111타점
롤렌 : .314 .409 .598 34홈런 124타점으로
그야말로 살인타선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의 성적이다.
[7] 참고로 커리어 초기 뛰었던 몬트리올의 홈구장 스타드 올랭피크는 전형적인 투수 친화적인 구장이었고, 커리어 말기에 뛴 세인트루이스의 홈구장 부시 스타디움 II는 투타 밸런스가 비교적 균등한 중립구장에서 투수친화형 구장 사이에 가까웠다.[8] 안드레 도슨, 팀 레인스,블라디미르 게레로 등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레전드급 툴플레이어들은 20대 후반 즈음부터 주루능력을 잃거나 잦은 부상에 시달리는 등의 고초를 겪었다.[9] 참고로 2020년 1월 21일에 발표된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1년차 후보는 지터를 제외하고는 끔찍한 결과가 나왔는데 지터만 99.7% 득표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나머지 후보들 중에서는 바비 아브레우가 5.5%를 받아 겨우 살아남았고, 화이트삭스의 레전드 폴 코너코, OPS형 공갈포 애덤 던, 40-40 클럽에 빛나는 알폰소 소리아노, 단기 임팩트가 강했던 클리프 리 등이 관심받지 못하고 후보 자격을 상실했다. 이렇게 후보들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탓에 확실한 비율스탯을 기록한 래리 워커의 지지율이 크게 올랐다.[10] 캐나다 출신인데다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1990년대 명전급 선수였다는 점에서 엑스포스의 모자를 쓰고 헌액될 최후의 선수로 블라디미르 게레로와 함께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엑스포스에서 뛴 것은 6시즌에 불과하다.[11] 이런 워커의 정성탓이었는지는 몰라도 애벌랜치는 이 시즌 창단 이후 두번째로 우승했다.[12] 로스터에 등록된 골텐더가 모두 부상일 때에 대비하여 지정하는 임시 골텐더[13] 이는 1993년 올스타전에서 랜디 존슨이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존 크럭에게 위협구를 던졌던 상황과 유사했다. 다만 크럭은 워커처럼 타석을 바꾸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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