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베니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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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4 시즌 구단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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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베니테스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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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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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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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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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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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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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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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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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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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
1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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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274488; font-size: 0.9em"
에버튼
34대




-
RC 셀타 데 비고
Real Club Celta de Vigo

파일:라파 베니테스 셀타 비고.png

이름
라파엘 베니테스
Rafael Benitez
본명
라파엘 베니테스 마우데스
Rafael Benítez Maudes
출생
1960년 4월 16일 (64세)
스페인국 마드리드 지방 마드리드
국적
[[스페인|

스페인
display: none; display: 스페인"
행정구
]]

신체
175cm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레알 마드리드 CF C (1978~1979)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1979~1981)
AD 파를라 (1981 / 임대)
AD 파를라 (1981~1985)
리네라스 CF (1985~1986)
코치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1986~1989)
레알 마드리드 CF 유스 (1989~1991)
레알 마드리드 CF U-19 (1991~1993)
감독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1993~1995)
레알 바야돌리드 CF (1995~1996)
CA 오사수나 (1996~1997)
CF 에스트레마두라 (1997~2000)
CD 테네리페 (2000~2001)
발렌시아 CF (2001~2004)
리버풀 FC (2004~2010)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0)[1]
첼시 FC (2012~2013 / 임시 감독)
SSC 나폴리 (2013~2015)
레알 마드리드 CF (2015~2016)[2]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16~2019)
다롄 프로 (2019~2021)
에버튼 FC (2021~2022)[3]
RC 셀타 데 비고 (2023~ )
국가대표
없음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종교
가톨릭


1. 개요
2. 선수 경력
3. 감독 경력
4. 평가
4.1. 전술 능력
4.2. 선수단 관리
4.3. 유망주 육성
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5.2. 감독
5.2.1. 대회 기록
5.2.2. 개인 수상
6. 여담
6.1. 리버풀과의 사랑
6.2. 첼시 시절 무리뉴의 천적



1. 개요[편집]


스페인축구선수 출신 감독. 2023년부터 RC 셀타 데 비고 감독을 맡고 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경력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다. 발렌시아 CF, 리버풀 FC,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첼시 FC, SSC 나폴리, 레알 마드리드 CF 등 강팀들의 감독을 맡았으나, 대표팀 감독 경력은 아직까지 없다.


베법사라는 별명을 안겨준 유명한 짤방. 그의 감독 커리어 전성기인 리버풀 감독 시절 모습이다.[4]


2. 선수 경력[편집]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으로 13세 때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레알 마드리드 C와 카스티야에서 유망주 시절을 보냈고, 이 시기에 유니버시아드 스페인 대표로 뽑혔으나 캐나다전에서 상대 선수의 악의적인 태클로 중상을 입으면서 1년 넘게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고, 이 후 레알 마드리드 A팀 데뷔를 이루지 못하고 저니맨이 되었다가 불과 26세에 은퇴했다. 선수 생활 도중이었던 1982년 마드리드 공과대학에서 체육교육학 학위를 취득했다.


3. 감독 경력[편집]


  • 사단
    • 수석 코치: 파코 데미겔 (Paco de Miguel, 2004~) #
    • 수석 전력 분석관: 안토니오 고메스 (Antonio Gómez, 2010~) #

3.1. 감독 초기[편집]


파일:ed079zsianr01.jpg
레알 마드리드 코치 시절 명장 델 보스케와 함께 있는 베니테스
은퇴 후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에서 코치 경력을 쌓은 뒤, 감독으로 정식 부임하여 우승을 이끈다. 이 경력을 인정받아 비야돌리드에서 감독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23경기에서 2승만을 거두며 해고됐고, 2부 리그 오사수나에서도 조기 경질된다. 이후 에스트레마두라의 감독을 맡아 라리가 승격을 이끌었다가 이듬 해 다시 강등당했다. 이후 지도자 수업을 떠났고, CD 테네리페에 복귀해서는 라리가 승격을 이끄는데 성공한다.


3.2. 발렌시아[편집]


파일:external/as.com/1451845794_740086_1451845977_noticia_grande.jpg
라리가 트로피와 UEFA컵 트로피를 팬들 앞에서 들어올리는 베니테스
이후 발렌시아 CF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는데, 경력적으로는 커리어가 화려하지 않은 점에서 전임 감독과 비교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임 엑토르 쿠페르 감독이 1999-00, 2000-01 연속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발렌시아의 황금기를 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니테스를 선임하기 전에 발렌시아 수뇌부는 처음에 하비에르 이루레타, 마네, 루이스 아라고네스와 모두 협상을 시도했지만 협상에 실패하며 선임에 실패하고, 대안으로 데려온 감독이 베니테스였다. 2000-01 시즌 최종전에서 그 유명한 히바우두의 원맨쇼로 5위 바르셀로나와의 맞대결에서 패배하며 5위로 떨어지며 2001-02 시즌 챔스 티켓을 따내지 못했고, 베니테스는 이러한 상황에서 부임하게 된다.

그러나 베니테스는 항간의 평가를 비웃듯 부임 첫 해 팀을 정상으로 이끈다. 이는 31년만의 발렌시아의 라리가 우승이었다. 2002-03 시즌에 또다시 부진으로 다시 챔스 진출권에서 미끄러졌지만, 이후 2003-04 시즌 또 한 번의 라리가 우승과 팀 역사상 최초의 UEFA컵 우승으로 더블을 이루어내며 젊은 감독들 중 가장 큰 두각을 나타내었다. 특히 베니테스의 발렌시아가 일군 2003-04 시즌 라리가 우승은 2023년 현재까지 발렌시아의 마지막 리그 우승 기록으로 남아 있고, 또한 2003-04 시즌 UEFA컵 우승은 2023년 현재까지 발렌시아의 마지막 유럽대항전 우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2003-04 시즌 종료 후, 베니테스 감독은 헤수스 가르시아 피타르치 단장과 마찰로 사퇴했다. 둘 간에 선수 영입을 두고 충돌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때 베니테스는 "소파를 원했지만 램프를 사왔다"고 불평을 토로하기도 했다. 여기서 소파는 그가 원하던 수비수를, 램프는 피타르치 단장의 입김으로 영입한 파비안 카노비오를 의미한다.

3.3. 리버풀 FC[편집]


파일:external/www.101greatgoals.com/stevieben.jpg
이스탄불의 기적을 일으킨 당시 주장 스티븐 제라드와 함께 빅 이어를 들고있는 베니테스

2004년 리버풀 FC 감독으로 부임한 후 첫 해에 리버풀 팬들에게는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이스탄불의 기적을 일궈내며 팀을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바로 다음 시즌엔 FA 컵 우승컵을 들었다. 그러나 이후 리그 우승을 달성하지 못하고 매년 우승 권 언저리에만 안착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질힉 듀오의 병크[5]와 함께 2009-10 시즌을 7위로 마감. 리그에서의 성적 부진을 이유로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하였다.

2004년 6월 16일 제라르 울리에에 이은 리버풀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후 첼시 이적설이 강하게 돌고 있던 캡틴 스티븐 제라드를 설득하여 잔류해내는데 성공했으나 주포인 오언이 계약 연장을 거절하고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다. 첫 이적시장에서 루이스 가르시아사비 알론소라리가 선수들을 영입했다. 유틸리티 수비수였던 제이미 캐러거를 센터백으로 정착시켜 사미 히피아와 센터백 파트너를 이루도록 했다.

첫 시즌인 2004-05 시즌 부상 선수가 속출하면서 리그 우승 레이스에 합류해보지도 못했고 이웃팀 에버튼 FC에도 밀려 5위에 그쳤다. 리그컵(칼링컵)에서 결승에 올라 첫 우승에 도전했으나 첼시와의 결승전에서 연장전 끝에 3:2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FA컵에서는 2부리그 팀 번리에 3라운드에서 광탈하는 수모를 겪는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달랐다. 예선을 거쳐 조별리그에서 탈락 위기에 몰려있다가 올림피아코스 FC를 상대로 후반 42분 주장 제라드의 천금같은 중거리 골에 힘입어[6] 극적으로 토너먼트에 진출했으며 16강부터 바이어 레버쿠젠, 유벤투스 FC를 꺾고 준결승에 오른다. 준결승 상대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EPL과 칼링컵을 우승해놓은 첼시였는데 전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1차전 원정에서 0:0으로 비긴 뒤 2차전 홈에서 가르시아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해 리버풀은 1984-85 시즌 헤이젤 참사 이후 20년 만에 결승에 진출하여 1983-84 시즌 이후 21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게 됐다.

그러나 이스탄불에서 열릴 결승전 상대는 당대 유럽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우승후보 0순위 AC 밀란이었다. 예상대로 결승전에서 리버풀은 밀란에 전반에만 3골을 허용하면서 3:0으로 끌려갔다. 그런데 후반 들어 6분 사이에 연달아 세 골을 넣어 3:3 동점을 만드는 기적이 일어났고, 연장전에 이어 승부차기에서 예지 두덱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에 힘입어 승부차기 스코어 3-2로 21년 만에 리버풀에 챔피언스리그 5번째 빅 이어를 안겼다. 유러피언 컵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로 개칭된 이후 첫 우승이었고, 베니테스는 밥 페이슬리, 주제 무리뉴에 이어 UEFA컵(현 UEFA 유로파 리그)과 UEFA 챔피언스리그를 연달아 우승한 세 번째 감독이 되었다.

2005-06 시즌 페페 레이나를 영입해 주전 골키퍼로 기용했고, 블라디미르 스미체르와 이고르 비스찬, 호세미, 안토니오 누녜스와 결별했다. 피터 크라우치, 모하메드 시소코를 영입한 뒤 겨울 이적시장에서는 수비수 유망주 다니엘 아게르와 함께 리버풀 레전드 로비 파울러를 복귀시켰다. 리버풀은 2005-06 시즌 초반에는 주춤했으나 12월 이후 연승행진을 달리며 리그를 3위로 마감했다. 그리고 FA컵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를 16강과 준결승에서 차례로 꺾었고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한 결승전에서 한때 2:0으로 뒤졌고 2:2 동점을 만들었음에도 종료 직전까지 3:2로 끌려가다가 제라드의 극적인 동점골로 3:3으로 연장전 및 승부차기에 돌입하여 레이나 골키퍼의 선방 덕분에 우승했다. 1차 예선부터 출발한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1위로 16강 토너먼트에 갔으나 SL 벤피카에 밀려 탈락했다.

2006-07 시즌 커뮤니티 실드에서 첼시를 꺾고 기분좋게 시작했으나 원정경기에서의 처참한 모습으로 인해 일찌감치 리그우승 경쟁에서 밀려났다. 그래도 2005-06 시즌처럼 중반기 이후엔 정신을 차리면서 3위로 마감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미드필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겨울이적시장에서 영입되어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중원을 구축하기 시작했던 시즌이다. 그러나 무게감 있는 공격수가 없어 상위권 팀 치곤 부족한 득점력이 우승경쟁을 가로막는 원인이었다. 리그컵과 FA컵에서 아스날을 상대로 잇따라 패배하며 탈락했으나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승승장구했다. 조별리그를 가볍게 1위로 통과한 뒤 16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FC 바르셀로나캄프 누에서 열린 1차전에서 2:1로 제압한데 힘입어 원정다득점으로 8강에 진출했고, 8강에서는 PSV 에인트호벤을 가볍게 꺾고 준결승에 올랐는데 이번에도 2년 전에 이어 준결승에서 첼시를 상대하게 됐다. 1차전 원정경기에서 1:0 패배를 당했으나 2차전 홈경기에서 1:0으로 앞서 합계스코어 1:1로 연장전 끝에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승부차기에서 또 레이나의 선방에 힘입어 2년 만에 결승전에 진출했다. 아테네에서 열리는 결승전 상대는 2년 전에 이어 또 AC 밀란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AC 밀란이 필리포 인자기의 2골에 힘입어 2년 전의 아픔을 설욕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해당 시즌 질힉 듀오가 새로운 구단주가 되며 리버풀과 베니테스의 미래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2007년 여름이적시장에서 페르난도 토레스를 영입하며 마침내 마이클 오언 이후 계속되었던 스트라이커 잔혹사 문제를 해결했다. 토레스와 함께 라이언 바벨, 요시 베나윤, 루카스 레이바, 안드리 보로닌을 영입했다. 2007-08 시즌 초반 리버풀은 더비 카운티를 6:0으로 꺾고 베니테스 체제에서 처음으로 리그 1위에 올랐다. 그러나 리그에서 무승부가 많아지고 챔피언스리그에서 1무2패로 탈락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챔피언스리그에서 베식타스를 8:0[7], 포르투를 4:1, 마르세유를 4:0으로 차례로 때려눕히고 조별리그를 조2위로 통과하는데 성공했으나 리그에서는 우승경쟁에서 밀려난 채 4~5위를 맴보는 처지가 되자 구단주와의 불화설 및 경질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 야인이던 위르겐 클린스만과의 접촉 루머가 돌기도 했다.[8] 베니테스와 보드진과의 불화로 화제거리가 될 정도로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리버풀은 2007-08 시즌 토레스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리그에서는 4위,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준결승 탈락, FA컵에서는 16강에서 2부리그 반즐리 FC를 상대로 패배를 당하면서 무관에 그쳤다.

2008년 여름이적시장에서 아스톤 빌라의 미드필더 가레스 배리의 영입을 시도했으나 무산되었다. 보드진은 토레스와 짝을 이룰 로비 킨을 토트넘으로부터 영입해둔 상황에서 배리의 영입을 위해서 선수를 팔아야하는 입장을 취했고 베니테스는 사비 알론소를 이적명단에 올리면서까지 배리의 영입을 시도했으나 배리의 영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알론소는 그대로 리버풀에 잔류하여 맹활약했다. 대신 로비 킨은 베니테스와 질힉의 파워게임 때문에 애꿎게 희생양이 되어 반 년 만에 토트넘으로 돌아갔다. 2008-09 시즌 리버풀은 맨유와 첼시를 상대로 리그에서 더블을 거뒀고 첼시의 86경기 연속 리그 홈 무패를 깨뜨리기도 했다. 리버풀은 1996년 이후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선두에 올랐으나 2009년 새해 들어 연이어 무승부를 남발하면서 승점을 드랍했고 맨유는 11연승을 거두면서 무섭게 승점을 쌓으며 선두 자리를 빼앗았다. 2009년 3월 레알 마드리드를 챔피언스리그에서 4:0으로 꺾은 뒤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맨유와의 리그 맞대결에서도 4:1 대승을 거두었고 베니테스는 5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리버풀은 리그에서의 마지막 11경기에서 10승1무를 기록하였고 리그에서 단 2패만 허용하며 승점 86점을 쌓았고 77득점과 +50의 골득실로 각각 이 부문 1위였지만 우승팀 맨유에 승점 4점이 모자라 2위로 시즌을 마쳤다. 베니테스 체제의 리버풀이 리그에서 거둔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그러나 2009년 여름이적시장에서 지난해 이적명단 등재로 인해 감정이 상해있던 알론소가 3천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남기고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며 리버풀에 크나큰 암운이 드리웠다. 대체자라도 잘 구했으면 다행이었지만 유리몸으로 유명한 알베르토 아퀼라니AS 로마에서 17m에 영입했는데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며 팀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주전 라이트백 알바로 아르벨로아가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대신 잉글랜드 국가대표 라이트백 글렌 존슨이 영입되었다.

2009-10 시즌 리버풀은 개막 후 3경기에서 2패를 당하면서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챔스 DNA'가 있다던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무기력한 경기력 끝에 ACF 피오렌티나올림피크 리옹에 밀려 조3위로 탈락했고, 제라드와 토레스 등 주축 선수들이 잔부상에 시달리면서 리그 성적도 추락했다. 유로파리그에서도 끝내 준결승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탈락하며 무관에 그쳤고 리그는 공수에서 심각한 엇박자에 시달리면서[9] 충격적인 7위로 마감했다.

어쩌면 현대축구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성을, EPL에선 비교적 빠르게 깨달은 선구자였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시기 맨유는 로이 킨이 부진하기 시작한 후[10] 마케렐레의 첼시에게 우승을 조공해야 했고, 빅4 자리를 넘보며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뉴캐슬이나, 팀의 중요 중원 자원인 마이클 캐릭을 함부로 팔아버린 토트넘은 리그 중위권으로 몰락했다.

당시 리버풀은 사비 알론소, 루카스 레이바, 모하메드 시소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에 유스선수인 앤더슨[11]까지 팀 명단에 올려놓으면서 중원에 집중했고, 상당히 떨어지는 전력[12][13]으로도 EPL과 챔피언스리그에서 대단한 활약을 하는데 성공했다.

여기서 페르난도 토레스라는 창까지 얻은 베니테스는 리그 준우승까지 하며 잘나갔으나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가레스 배리의 영입이 무산된 채로 시소코는 방출, 알론소는 이적, 대체영입 아퀼라니는 부상, 남아 있던 루카스는 부진함으로써[14] 중원이 박살나게 되었고 성적하락으로 인해 베니테스의 해임까지 이르렀다.


3.4.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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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0일, 2009-10 시즌 주제 무리뉴가 이끌고 트레블을 달성했던 인터 밀란 감독으로 부임했다. 계약 기간은 2년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직전 시즌에 트레블을 달성한 팀을 지휘하며 7위권을 맴도는 등 성적이 부진하여 2010년 12월 24일에 사임했다. 이를 보고 세리에 A 팬들은 흑마법사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인테르 시절 25경기에서 12승 6무 7패로 승률 48%라는 충격적인 성적을 기록. 베니테즈의 지지자들은 "베니테즈가 무능한 것이 아니라 인테르 선수단이 늙었기 때문"이라고 베니테즈를 변호하였으나, 베니테즈의 경질 이후 레오나르두 아라우주가 이끈 인테르는 리그 13경기에서 승점 33점을 쓸어담는 역사적 상승세를 보여주며 준우승(레오나르도 취임 이후 승률 70%), 주장을 불식시켰다.


3.5. 2011~2012년[편집]


2011년 7월 근황에 따르면, 자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축구팀에 트레이너로 참가했다가 대회에서 폭풍 우승을 차지하는 바람에 상대팀에게 프로 트레이너가 왜 참가했냐는 식의 불평을 들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한 말이 "난 학부모인데?"

뭐 이런 에피소드도 있듯 2011년 들어서는 눈에 띄게 얼굴이 펴졌다. 감독이란 스트레스를 주는 자리에서 떠나 인생을 편히 즐기고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 2011 연말에 다시 힐스보로 유가족들을 위해 거액을 기부하여 리버풀 팬들에게 칭송받았다. 지역 자폐증 재단에도 후원을 하는 등 축구 감독이라기보다는 그냥 지역 유지로서 활동 중인듯 하다.

라파엘 베니테스가 운영하는 블로그

2012년 5월에는 케니 달글리시 감독이 경질[15]된 리버풀 감독으로의 복귀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국내외의 각종 리버풀 팬포럼에는 컴백을 외치는 팬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리버풀 구단주인 펜웨이 스포츠 그룹 측에서는 팬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는 그를 감독으로 선임하는 것에 대해 영 좋지 않은 시선을 견지하는듯 하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안드레 빌라스보아스위건 애슬레틱의 감독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스완지 시티의 감독 브렌던 로저스가 꼽혔으며, 결국 로저스가 감독으로 임명되어 라파의 리버풀 복귀는 좌절되었다.

아직도 라파엘 베니테스는 리버풀의 감독이란 인상이 깊기 때문인지 구글링을 해보면 제일 먼저 리버풀 시절의 사진이 뜬다.

사비 알론소,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페르난도 토레스 등 많은 라틴계 선수들이 그를 따라 리버풀에 입단하는 등 2000년대 중반 무리뉴와 함께 EPL에서 섬나라 뻥축구에 대비되는 '대륙식 축구'의 확산에 기여하기도 했다.그러나 막상 그가 떠난 리버풀은 라파의 양아들이라 불리던 마스체라노가 마스꾸레노로 변신하고 어떤 호구가 레전설을 쓰고 케니 달글리시가 부임하자마자 토통수를 맞은 후 앤디 캐롤이라는 잉글리쉬 몬스터 타겟맨의 영입으로 약간 뻥축구스러운 모습으로의 회귀 현상이 보이고 있다.


3.6. 첼시 FC 임시 감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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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3 시즌 첼시의 구단 사상 첫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획득한 베니테스

2012년 11월 21일 로베르토 디 마테오의 경질 후 12-13 시즌 말까지 첼시의 새로운 임시 감독으로 부임했다. 일부 리버풀 팬들은 배신감[16]을 느낀다는 의견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서 잘하라는 의견이 더 많다.

반면 첼시 팬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멘붕 그 자체다. 과거 무리뉴 시절부터 지겹도록 싸워왔던 리버풀의 감독인데다가, 지금도 첼시에서는 그를 욕하는 안티팬들이 있을 정도인데 그러한 감독이 떡하니 첼시 감독으로 선임이 된 것이다. 이미 무리뉴 시절부터 지켜본 팬들은 복잡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중. 부임 초기에는 신나게 털리면서 역시 흑마술사 어디 가냐는 등의 비난이 장난 아니었지만, 점차 수비가 안정화되고[17] 공격진이 살아나면서 일단 어느 정도는 첼시를 본궤도에 올려놓았다. 토레스도 베니테스가 온 뒤로 마음이 편해졌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폼이 어느 정도 살아나는 듯 했으나 경기 기복 자체는 여전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경기마다 미끄러지거나 패하지 않을 수 있는 경기에서 패하는 베니테즈의 단점이 극명히 나타나고 있다. 이전 리버풀 시절에도 어이없게 약팀한테 동점을 얻어맞거나, 역전패를 당하는 등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드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첼시에서도 똑같다. 클럽 월드컵 결승전에서 코린티안스에게 1:0으로 패하고, 웨스트햄전 역전패, 꼴찌인 QPR과의 홈경기 패배, 스완지와의 리그컵 4강전에서 2:0완패, 승격팀 사우스햄튼한테 2골 먼저 넣고 2골 나중에 받는 코메디를 펼치는 등 그야말로 흑마법사의 재림이었다.

게다가 현지팬들은 이전부터 베니테즈의 언플에 자주 놀아나 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분위기는 매우 나쁜 편. 여기에 홈 경기 성적이 2013년 들어 매우 좋지 않자 더더욱 분위기는 나빠져 주중이었던 1월 17일 사우스햄튼과의 경기에서는 첼시 홈 관중 최소 기록[18]을 찍을 정도였다. 베니테즈와 토레스는 화면에 잡힐 때마다 야유를 얻어맞는다.

그리고 맨시티와의 원정 경기에서 2:0으로 패배하였는데 원정이라서 불리한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베니테즈 감독 특유의 문제점이 너무나도 절실하게 드러났다는 것이 비판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전에도 어이없는 교체와 그냥 막 하는 로테이션 등으로 비판을 거세게 받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별 다를 바 없었다.[19] 단점은 간단하면서도 위에 다 나와있다. 자기 전술 고집하고, 마구잡이식으로 로테이션을 돌리고 또 비효율적이고, 어이없는 선수 교체를 벌이고, 선수단 장악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 이럴 거면 왜 디 마테오 감독을 짤랐냐고 팬들은 덕분에 미친 듯이 아우성중이다.

그러나 살인적인 일정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FA컵에서는 4강까지 갔고, 8강에서는 맨유를 만나 1차전 원정에서는 2:2로 비겼고 재경기에서는 1:0으로 이겼다. 유로파 리그에서도 승승장구하면서 팀을 결승까지 진출시켰다. 리그에서도 어찌어찌 팀을 꾸려나가면서 37라운드 종료시 기준으로 리그 3위를 수성하고 있다. 아스날과는 승점 2점차. 더불어 라파는 4월의 EPL 감독상까지 수상했다. 만약 유로파 우승과 리그 3~4위 수성에 성공하면 라파 입장에서도 나쁘지는 않은 시즌이 될 것이다. 다만 이건 외부 시각이고, 어차피 첼시 팬들이나 로만 입장에서는 그 많은 대회에서 겨우 한 개 우승 한 것 가지고[20] 만족할리는 없을 듯. 어차피 라파와 팬들 간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고 라파도 시즌 끝나고 새 직장 알아보면 그만인 상황이 되어버렸지만...결국 프리미어 37라운드에서 램파드의 극적인 역전골로 리그 3위로 첼시에게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 확보를 안기고 살인적인 일정에도 불구하고 유로파리그 우승에 공헌했기 때문에 다시 재평가의 움직임이 시작됐으나 이미 로만은 무리뉴 온리 안습이다. 일단 소방수로서 맡은 제일 중요한 리그와 유로파 두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으니 할 몫은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재밌는건 첼시 감독이었는데도 제일 큰 환영을 받은 건 리버풀 어웨이 경기였다.#[21]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리버풀 팬들 대부분이 배신감보다는 베니테즈한테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존 테리에 의하면 첼시에 처음 합류했을때부터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첫 미팅에서부터 그의 대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22] 테리가 주장으로서 감독한테 얘기를 했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라파의 전술적인 능력은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어찌됐든 첼시 입장에서는 베니테즈로 인해 유로파 리그 트로피와 다음 시즌 챔스 티켓을 얻었고, 베니테즈는 인테르에서의 실패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양자간의 짧은 동행은 윈윈으로 끝났다.


3.7. SSC 나폴리[편집]



3.7.1. 2013-14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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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4 시즌 SSC 나폴리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링크 부임과 동시에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대대적인 전력 보강을 단행했다.

주요 영입: 곤살로 이과인, 라울 알비올, 호세 카예혼, 조르지뉴, 드리스 메르텐스, 두반 사파타, 하파에우 카브라우, 페페 레이나 (임대), 파우지 굴람
주요 방출: 에딘손 카바니, 루카 치가리니, 마리오 산타나, 에두아르도 바르가스 (임대), 파올로 칸나바로 (임대)

에딘손 카바니PSG로 보냈지만 이과인, 알비올, 카예혼 등 수준급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2013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나폴리는 무려 2,200만 유로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인테르와 함께 당시 세리에 최대의 적자폭이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나고 나니 리그 순위는 전 시즌 2위에서 3위로 한 계단 내려앉았으며, 승점으로 따지면 1위 유벤투스와는 전 시즌 9점차에서 24점차로 벌어지고 2위 로마에게도 7점차로 크게 밀렸다. 그나마 4위 이하 팀들과의 격차는 널널해서 챔스 티켓은 무난히 사수했지만, 우승 경쟁에 발도 들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에서는 아스날 FC,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 함께 F조를 구성, 4승 2패를 기록했으나 6전 전패를 기록한 마르세유의 맹활약에 힘입어 4승 2패만 세 팀이 나온 가운데 골득실차로 3위로 밀려났다. 참고로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승점 12점을 얻고도 16강에 가지 못한 사례다. 그렇게 밀려난 유로파에서는 16강에서 포르투에게 패배하며 쓴맛을 다셨다. 그러나 국내 컵인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3.7.2. 2014-15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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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종료 후 한국 나폴리 당사의 대문 배너. 베니테즈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되었다.

주요 영입: 마놀로 가비아디니, 칼리두 쿨리발리, 요나탄 더구즈만, 다비드 로페스, 미겔 미추
주요 방출: 페데리코 페르난데스, 발론 베라미, 블레림 제마일리, 에두아르도 바르가스 (임대)

이번 시즌에도 여름-겨울을 합쳐 950만 유로의 적자를 기록하며 여전히 세리에 A에서 단연 선두권의 투자를 계속했다. 그러나 성과는 시궁창.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아틀레틱 빌바오에게 패퇴하며 조별리그도 가보지 못하고 유로파로 강등, 그리고 10월 23일 영 보이즈에게 0-2로 패배하면서 결국 구단으로부터 최후 통첩을 받았다.# 그러나 홈 경기에서 영 보이즈를 3-0으로 이기며 설욕하고 조 1위로 유로파 리그 32강에 진출했다. 이후 8강에서 볼프스부르크를 격파하는 등 선전했으나, 4강에서 드니프로에게 패배하며 탈락.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4강에서 라치오에게 패하며 탈락했다.

하지만 최대의 악몽은 바로 리그에서의 부진. 초반에는 11경기 무패행진을 벌이는 등 선전했으나, 23라운드부터 29라운드까지의 7경기에서 1승 2무 4패로 붕괴했다. 이후 선수들이 합숙훈련을 자청하는 등 투지를 보이며 막판 추격전을 전개했으나, 37라운드 유벤투스전과 38라운드 라치오전에서 연패하며 결국 유벤투스나 로마만이 아니라 라치오와 피오렌티나에게도 밀리며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역시 상실했다.

그런데 나폴리 구단은 베니테즈에게 재계약을 제의, 팬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으나 베니테즈는 다행히도 재계약을 거절하고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직을 수락, 짧은 나폴리 생활을 마감했다. 퇴임 이후 나폴리의 선수들은 베니테즈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베니테즈의 전술로 뛰는 것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작년(2014-2015 시즌)에는 뻥축구밖에 몰랐다."

"우리는 지금 (2015-2016 시즌) 베니테즈 시절보다 훨씬 좋은 축구를 보여주고 있다."

주장 마렉 함식


"마짜리 감독 시절의 팀은 훌륭한 정신자세와 자립심을 갖고 있었다. 마짜리 감독이 그렇게 만들었지. 하지만 베니테즈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모든 것이 돌아가길 원했다."

발론 베라미


베니테즈의 후임으로 나폴리의 감독직을 맡은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 지휘 하에 나폴리는 13경기 무패행진을 벌이는 등 대선전, 베니테즈의 위신은 더욱 추락하였다. 특히 베니테즈의 전술 밑에서 무력화되다시피 한 함식과 조르징요가 세리에 A 베스트 미드필더로 꼽힐 정도로 경기력이 대폭 상승했다.

ESPN은 베니테즈의 나폴리를 간략하게 정리했다. "돈만 많이 들어간 엉망진창 (an expensive mess)" #

참혹했던 베니테즈 시절로부터의 재건을 노리는 나폴리 - Kirsten Schlewitz (ESPN)

(전략) 구단은 디에고 마라도나가 2번의 우승을 일궈내던, 1980년대 후반의 성공을 재현하길 기대했다. 베니테즈는 스태프, 포메이션, 훈련방법까지 모든 것을 바꿨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는 필드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유망주들의 잠재력은 발휘되지 않았고, 선수들의 재능은 낭비되었다. (중략) 베니테즈는 나폴리를 지휘하면서도 다른 팀들의 감독직 제의를 기다리는 것에 정신을 팔았다. (중략) 이제 나폴리의 과제는 베니테즈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팀을 고쳐나가는 것이다.

(중략) 구단주는 베니테즈가 원하던 모든 것을 주었다. 그만한 투자라면 최소 2위로 챔피언스리그 자동진출권을 따내고 유벤투스를 위협했어야 했다. 그러나 결과는 유벤투스에게 24점이나 뒤진 3위였다. 베니테즈는 마짜리의 3-4-3을 폐기하고 새로운 영입 선수들로 자신의 4-2-3-1을 적용하려 했다. 하지만 4-2-3-1에 대한 베니테즈의 집착에는 이적생들조차도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카예혼, 이과인, 그리고 늙어가는 마지오가 모든 부담을 짊어져야 했다. 베니테즈는 포메이션을 바꾸는 대신 선수들을 원래의 포지션에서 이탈시켜가며 4-2-3-1을 밀고 나갔다. 그 결과 로테이션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선수들은 완전히 지쳐버린 채로 후반기를 뛰어야 했다.

(중략) 나폴리는 베니테즈 시절의 실패에서 회복할 수 있을까? (하략)



3.8. 레알 마드리드 CF[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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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테즈가 경질된 다섯 가지 이유

시즌이 끝난 후 나폴리는 베니테즈를 잡기 위해 구단주까지 나서서 설득했으나 결국 기자회견에서 나폴리와의 계약을 종료한다는 선언을 직접하기에 이른다. 그 전부터 마르카, 아스 등 유수 언론 매체에서 베니테즈의 레알 마드리드 행을 보도하며 이적설이 가시화되다가 5월 27일 BBC의 보도가 나오면서 사실상 레알 마드리드 행은 기정사실화 되었다. 6월 3일 레알 마드리드는 기자 회견을 갖고 베니테즈 선임을 공식 발표한다.

기자회견 당시 베니테즈는 처음부터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이 되는 것을 꿈으로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감격이 벅차 올랐는지 잠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로테이션 부재로 시즌 후반기에 많은 패배를 적립했던 지난 시즌의 모습을 본 팬들을 의식해서 인지, '호날두도 쉬게 해줄 것이다.' 발언으로 로테이션을 철저하게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 베니테즈호의 운항을 그렇게 순탄해보이지 않는다. 당사자 들이 훈련에서 일어난 가벼운 언쟁이라고 일축했으나 호날두와의 다툼이 있었던 것이 확인 되었고, 페레즈 회장과 감독 본인이 앞으로 팀의 중심을 가레스 베일로 설정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친 것에 호날두가 불만을 표시했다는 소문도 들려오는 중이다.

프리 시즌 경기들을 통해 호날두의 자리는 그대로 두되 베일을 중앙에서 프리롤로 설정하여 처진 스트라이커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전술을 자주 선보였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특유의 그가 선호하는 전술적 특성이 드러났다. 전임 감독인 카를로 안첼로티가 전방에서 볼의 소유권을 유지하고 발빠른 측면을 위한 패스 공급 루트로 포스트 플레이가 가능한 타겟맨을 선호했다면, 베니테즈는 그보다는 상대 뒷공간을 허물고 득점을 노리는 발빠른 공격수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5-16 시즌 시작하기 전 프리 시즌, 아우디 컵 밀란 전을 앞두고 그의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가레스 베일을 상대 뒷공간을 잘 노리고 결정력이 뛰어난 공격수라고 말했는데, 이런 발언으로 보아서는 4-4-2 포메이션에서 처진 공격수로 활용할 것처럼 보인다.

아우디 컵 토트넘과의 경기에서는 사실상 4-4-2의 포메이션을 활용했고 베일은 처진 공격수로 기용되었다. 이 날 경기에서 최대의 백미는 이스코하메스 로드리게스의 활약이었지만, 가레스 베일도 멋진 중거리 골로 팀의 2:0 완승을 이끌었다.

현재 보여지는 전술적 특성은 이전 그가 맡았던 팀들에서의 전술적 특성과 다르지 않게, 공격진에게는 보다 자유로운 움직임을 지시하고, 공격과 중원, 수비 간의 간격은 촘촘하게 구성하고 수비라인은 끌어올려서, 저번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문제점이었던 공격과 수비 간의 동떨어진 라인 간격을 조정했다.

다만 수비라인을 전진시킴으로서 상대적으로 뒷공간의 위험성을 안고 갖게 되었는데, 세르히오 라모스, 페페, 라파엘 바란 등이 뛰어난 운동능력을 가진 발빠른 수비수들이라고는 하더라도 안첼로티 때보다 더 넓은 공간을 수비영역으로 가져감으로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세리에 출신 수비수들도 아니고 세르히오 라모스페페는 넓은 활동범위와 강인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수비수라는 평가를 가지고 있지, 오프사이드 트랩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해나갈 수 있는 수비수들은 아니라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또한 베니테스는 안첼로티 감독에 비해서 빅 사이닝은 없었지만 카세미루데니스 체리셰프의 복귀, 다닐루루카스 바스케스 등의 영입으로 더 두터운 선수단을 보유하게 되었는데, 프리시즌 동안의 평가로는 두터워진 선수단에 비해서 선수들의 활용폭은 매우 좁다.

즉, 활용방식이 꽤나 일관적인데, 카세미루데니스 체리셰프, 루카스 바스케스 등은 팀의 전술적 변화를 이끌어줄 선수들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로테이션 자원으로만 여겨진다면 베니테즈의 로테이션 정책은 오히려 악 영향이 될 지도 모르는 것이 중론이다. 다양한 선수단에 맞는 다양한 전술적 활용과 수비 뒷공간에 대한 위험성 감소, 그리고 여기에 다소 느린 템포에 공격 전술에 대해서는 밋밋한 점들을 고치는 것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순항할 수 있는 첫걸음으로 보인다.

그리고 시즌이 시작되고 불안불안한 경기력을 이어갔지만 어찌저찌 리그 11라운드까지 승점 24점을 획득하여 바르셀로나와 승점 3점차의 2위를 마크했고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도 조 1위 진출이 유력해졌다. 그러나 운명의 리그 12라운드 엘 클라시코 홈 경기에서 레알 팬들이 정말 기억하기 싫을 정도의 0:4 참극을 당하며 선두 바르셀로나와 승점 6점차로 벌어지게 되어 그의 입지도 매우 위태로워졌다.[23] 단순히 스코어뿐만 아니라 이번 시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던 다닐루를 선발라인업에 포함시킨 것부터 시작해서 경기력에서 완패했고, 그리고 특유의 이해할수 없는 교체로 3:0으로 벌어진 후반 초반에 경기를 포기한듯한 모습을 보여 레알 마드리드 팬들의 분노를 돋궜다.[24] 카르바할의 실전감각 문제때문에 다닐루를 선발라인업에 넣은거라고 이해해줄수는 있어도, 경기중 이스코를 넣는 것은 좋은데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빼고, 다닐루가 아니라 마르셀루를 빼고 카르바할을 넣는건 정말로 아니었다는 평.[25] 참고로 베니테즈가 현재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단은 불과 몇개월전 바르셀로나에게 원정에서 2:1로 지긴 했지만 좋은 경기내용이었고, 1년전 깔끔한 경기력으로 홈에서 3:1로 이겼던 그 선수단과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불과 몇개월만에 홈에서 이렇게 박살이 났으니 당연히 레알 팬들이 납득이 안될수밖에. 가뜩이나 그 전에 꾸역꾸역 승점을 쌓아나갔지만 그 과정에서의 불만족스러웠던 경기력에 대한 팬들의 불만도 많았고 선수들과의 불화설도 있었던 판에 제대로 폭발해버린 셈이다.

더군다나 레알 마드리드의 중원은 세계 최강급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데, 이런 중원 자원들을 가지고 미드필더 싸움에서 대패, 아니 아예 싸움조차 걸지 않고 중원을 텅텅 비워놔버렸다.(이른바 5-0-5 전술) 2014-15 시즌 엘클라시코 1차전에서 이스코, 크로스, 모드리치, 하메스 라인이 바르셀로나의 중원을 초토화 시킨 것을 생각하면 이건 뭐...중원 싸움 뿐 아니라 공격진에 대한 용병술도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압박이 강력한 바르셀로나 같은 팀을 만났을 경우, 베일이나 호날두 같은 드리블, 볼 간수 같은 탈압박 능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은 지워질 수가 있는데, 득점력이 뛰어난 호날두는 그렇다쳐도, 베일까지 선발로 내세울 필요가 있었나 싶다. 더군다나 BBC라인의 고질적인 약점 중 하나가 수비가담을 거의 안 한다는 것인데, 이 날 경기의 미드필더 황무지 전술에 힘입어 자발적으로 고립되어버렸다. 하메스나 이스코같은 활동량이 많은 선수들이 뛰었다면 한결 더 매끄러운 공격이 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코파 델 레이 32강에서 부정 출전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며 팬덤이 들끓고 있다. 지난 시즌 받은 경고 누적으로 이번 시즌 한 경기를 뛸 수 없는 데니스 체리셰프를 32강 1차전에 출전 시켰다가 발각된 것. 고의성 여부가 아직 입증되지 않은 상태고, 사건 주체도 불명확하나, 빼도 박도 못할 병크인 것만은 확실한 상태. 레알측에서는 출전 정지 명단을 받지 못했다고 항변했으나, 협회에서 명단을 보냈음을 인증하면서 궁지에 몰린 상태이다. 여담으로 베니테스는 십여 년 전 발렌시아 감독 시절에도 선수 부정 출전으로 몰수패를 당한 전력이 있다.[26] 결국 코파 델 레이 실격이 확정되었다.

이 사건 뒤로도 계속해서 부진한 경기력으로 비판이 많았고, 설상가상으로 하메스, 이스코 등과 불화설까지 생겼다. 이스코는 베니테즈를 비판하는 듯한 글을 쓴 적도 있다. 이후 눈치가 보였는지 해당글을 수정했다. 그 얌전하던 크로스 역시 그의 밑에서는 떠나고 싶을 만큼 절망스러웠다고 말하고 모드리치 역시 그가 감독일때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페페도 "베니테즈는 내가 나이가 많아 필요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결국 현지시각 2016년 1월 4일에 마르카, 아스 등 현지 언론사에서 속보로 베니테스가 경질될 것이라고 뉴스까지 뜨고 있다. 후임은 지단이 될 것이라고 하며, 동시다발적으로 이런 기사가 뜨는걸로 보아 경질이 거의 확실시 되는 분위기였고 결국 2016년 1월 5일(한국 시각) 경질되었다.

후임으로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인 지네딘 지단이 부임하였다. 지단은 베니테스의 팀을 그대로 이끌어 리그 준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한다.

경질 당하기 전까지 레알에서 그가 남긴 업적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과 바르샤 팬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최악이라고 평가받는다. 토니 크로스, 루카 모드리치를 보유한 중원을 비워두고 5-0-5 롱볼 축구에 집착하고, 그 특유의 모난 성격 때문에 선수들에게 불신을 살만한 행동을 하는 것도 모자라[27][28] 팬들이 응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팀을 처참하게 망가뜨려놓았다. 당장 지네딘 지단 부임 이후로 팀 케미가 살아나고, 레알 특유의 빠르고 유연한 경기 운영으로 무패행진을 달리며 리그 1점차 준우승, 운데시마 달성에 성공한 것을 보면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라파엘 베니테즈가 얼마나 무능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레알의 챔스 우승 후, 경질여부에 상관없이 우승보너스를 지급한다는 계약에 따라 60만 유로(한화로 약 8억원)를 받았다.

3.9. 뉴캐슬 유나이티드 FC[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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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 2015-16 시즌[편집]


2016년 3월 11일 성적부진으로 경질된 스티브 맥클라렌을 대체해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3년 계약을 맺으며 프리미어 리그의 감독으로 돌아왔다. 과연 뉴캐슬을 강등권에서 구해낼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전임 맥클라렌 감독이 선수단 구성 권한이 제한된 '헤드 코치' 직책을 받았던 것과 달리 베니테스는 '매니저'로 임명되어, 팀 운영의 전권을 부여받은 것으로 보인다. 부임 첫날은 휴일이었지만 베니테스는 취임하자마자 선수단을 소집했고, 선수단은 자발적으로 훈련에 임했다고 한다. 강등 위기에 빠진 팀에 부임하는 높은 클래스의 감독이니만큼 계약시 뉴캐슬이 강등될 경우 계약 해지가 가능한 조항이 들어가 있다.

그의 뉴캐슬에서의 첫 경기는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1위를 지키고 있는 레스터 시티 FC와의 원정 경기였다. 오카자키 신지의 환상적인 오버헤드 킥을 얻어맞고 1-0으로 패배했지만, 다소 나아진 경기력으로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다음 경기로는 최근 7연패를 달리고 있는 선더랜드와의 타인-웨어 더비 홈경기로, 17위와 19위의 단두대 매치이기도 한 이 경기에서 베니테스의 지도력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타인-웨어 더비에서는 전반전 저메인 데포에게 선제골을 실점했으나 후반 82분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의 동점골로 1-1 무승부에 만족해야만 했다.

승점 6점짜리인 노리치 시티 원정경기도 후반 로스타임에 결승골을 내주며 3-2로 패했고, 이어진 사우스햄튼 원정도 시종일관 두드려맞다가 3-1로 패배하며, 베니테스 부임 이후 4경기 승점 1점만을 챙긴 뉴캐슬은 백약이 무효로 돌아가나 싶었다.

그러나 스완지 시티와의 경기를 3-0으로 잡아내면서 팀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오랜 천적으로 직전 경기 첼시를 3-0으로 꺾었던 맨시티에게 1-1 무, 안필드의 기적을 연출하며 분위기 절정이었던 리버풀 원정을 떠나 2-0 경기를 따라잡으며 2-2 무승부를 캐내며 베법사의 마법이 통하기 시작했다는 평을 얻었다.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홈경기도 1-0으로 승리하며 4경기 무패, 강등권 경쟁팀보다 한 경기를 더 하긴 했지만 17위로 일단 강등권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리그 37라운드 강등이 확정된 압도적 최하위 아스톤 빌라 원정에서 0-0으로 비겨버렸고 라이벌 선더랜드가 첼시를 홈에서 3:2로 잡아버렸다. 선더랜드가 2경기 남았고 뉴캐슬이 1경기 남았는데 오히려 17위 선더랜드가 승점 1점차로 앞서있는데다, 득실차도 뉴캐슬이 많이 밀리고 선더랜드의 남은경기 일정은 에버튼(홈)-왓포드(원정)고 뉴캐슬은 토트넘(홈)이라 거의 뉴캐슬의 강등이 확실시 되는 상황이다.

선덜랜드가 에버턴에 3:0으로 대승을 거두며 뉴캐슬은 강등이 확정되었다. 뉴캐슬과의 계약 전에 뉴캐슬을 살리지 못하면 계약 기간과 관계없이 물러나겠다는 언급이 있기도 했고 나폴리, 레알 마드리드에서 뼈아픈 실패를 맛보았지만 베니테스가 2부리그 팀을 맡을 급은 아니라는 의견이 많은 만큼 차후 행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혹시라도 베법사가 잔류한다면, 뉴캐슬은 다음 시즌 이견이 없는 챔피언쉽 우승후보로 자리매김할 듯하다. 일단 뉴캐슬도 협상 중이라 하니 지켜보자.

강등이 확정된 후 열린 리그 최종전에서 미트로비치의 퇴장에도 불구하고 퇴장 이후에만 세 골을 더 넣으며 포체티노의 토트넘을 5-1로 대파하는 동시에 아스날이 토트넘을 제치고 2위로 마무리를 지었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는 90분 내내 베니테스의 잔류를 요청하는 응원가가 울려퍼지고 있다. 뉴캐슬은 반드시 베니테스를 잡으려 할 듯 하다.

뉴캐슬의 구단주는 베니테스의 뉴캐슬 잔류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결국 5월 17일 뉴캐슬 잔류를 결정하고 주말쯤 공식 발표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베니테스의 계약 해지 가능 조항은 파기될 것이다. 뉴캐슬 구단도 그동안 감독과 선수 영입을 이원적으로 해 왔던 운영 구조를 파기하고 베니테스에게 팀의 모든 구성을 전권 위임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간 뉴캐슬의 선수 영입을 주관해 왔던 그레이엄 카 스카우트 팀장은 팀을 떠나 은퇴할 전망이다. 이미 여름 이적시장 구상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3.9.2. 2016-17 시즌[편집]


2016년 5월 25일 베니테스의 뉴캐슬 잔류가 공식 발표되었다. 알려진 대로 베니테스에게는 향후 구단 운영의 전권이 부여되었다. 전 시즌 최종전인 토트넘전을 마치고 "내 마음이 이 팀에 남으라고 말한다"라 말했던 베니테스는 결국 마음의 소리를 따르게 되었고, 많은 툰 아미들을 희망에 벅차게 했다.

그리고 베니테즈가 2부리그 강등을 당한 뉴캐슬에 잔류를 선언한 일주일뒤인 2016년 6월 2일 당시 뉴캐슬과 마찬가지로 2부리그 강등을 당한 아스톤빌라첼시의 첫 챔스우승을 이끈 디마테오 감독을 선임하여 잉글랜드 2부리그인 챔피언쉽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험이 있는 감독이 2명이나 되는 상황이 나왔다.

대망의 16-17 시즌 풀럼 FC를 상대로 한 리그 개막전에서 풀럼의 페널티 박스 안 핸들링 반칙을 무시하는 등 이해하기 힘든 심판의 오심들 속에 1-0으로 아쉽게 패배했다.

다음 라운드 허더즈필드에게 1-2로 패하였지만 이후 리그 5연승을 달리며 2위에 안착했다. 울브스에게 홈에서 0-2로 패배하였고 빌라 원정에서 1-1로 비기며 주춤했지만, 다시 리그 5연승을 달리며 시즌 초반 뉴캐슬을 리그 선두로 이끌고 있다. 결국 10월 일정의 6경기를 모두 승리하면서 챔피언십 이달의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10월 전승' 베니테스, 챔피언십 이달의 감독상 수상.

이 후 리그 선두를 달리게 되지만 시즌 후반부터 엎치락뒤치락하며 경쟁하는 중. 그러다가 2,3위 팀들과의 경기에서는 이겨놓고 의외의 팀들에게 발목을 잡히며 결국 브라이튼에게 1위 자리를 내준다.

한국시각으로 2017년 4월 25일 프레스턴을 4-1로 완파하며 잔여일정 상관없이 한 시즌만에 1부 복귀를 확정지었다.

5월 7일, 마지막 라운드를 이기고, 기존 1등이었던 브라이튼이 무를 찍는 바람에 뉴캐슬이 승점 1점 차이로 역전 우승을 하게 됐다. 이것으로 전 세계의 감독 중 챔피언스 리그와 챔피언십 리그를 모두 우승한 유일한 감독(!)이 되었다.


3.9.3. 2017-18 시즌[편집]


라파 베니테스가 없다면 뉴캐슬은 꼴찌일 것이다. 챔피언십 팀에 프리미어리그 감독만 앉혀놓은 격

스티븐 제라드[29]


지난시즌 승격에도 불구하고 구단의 안정적이지 못한 재정으로 인해 충분한 선수 공급을 받지 못해 불안하게 시즌을 출발했다.그리고 선수를 제대로 영입하지 못한 결과가 뉴캐슬을 위기에 빠뜨렸다. 지난 1월까지 뉴캐슬은 강등권과 고작 승점 1점 차까지 몰렸다.이 위기 극복을 위해 베니테스는 1월 이적 시장서 선수 영입을 강력히 원했으나 하지만 뉴캐슬의 현재 자금 사정과 겹쳐 여전히 필수적인 영입이나 그에 준하는 영입을 해내지 못해 강등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뉴캐슬은 베니테스의 위기 관리 능력에 힘입어 시즌 종료를 앞둔 상황에서 순위를 10위까지 끌어올렸고 이러한 모습에 힘입어 베니테스는 EPL 올해의 감독상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다!

현재 계약만료까지 1년을 남긴 상황에서 재계약을 제안받았는데 구단주에게 재계약에 앞서 미래의 이적 시장 자금과 힘에 관한 문서화 된 보증을 요구했다.


3.9.4. 2018-19 시즌[편집]


오프시즌부터 스완지 시티에서 기성용을 데려와 중미를 보강했고[30] 1.FSV 마인츠05에서 무토 요시노리를, 첼시에서 케네디를 재임대해 왔다. 그러나 베니테스 감독은 영입에 불만을 드러냈는데 지난 시즌 가장 문제였던 윙어와 크랙형 공격수는 끝내 보강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8월 중순 뜬금없이 중국 슈퍼 리그톈진 취안젠에서 그를 눈여겨 보고 있다는 보도가 났다.#

리그 초반 6경기에서 2무 4패로 강등권에 있다. 물론 4패는 토트넘, 첼시, 맨시티, 아스날에게 당한 것이고 1:2패라는 것이 고무적이긴 하지만 카디프와 크리스탈 팰리스에게도 별다른 공격 없이 무승부를 거두었다. 첼시전에서부터 강팀들 상대로는 5백을 사용했고 수비적으로 나쁜 성과는 아니지만 공격시 찬스메이킹이 매우 부족하다. 어찌하여 골을 넣기는 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나 수비상황 이후 역습으로 전개할때 볼을 운반하는 선수가 고립되고 베니테즈의 공격상황에서 포지션들이 너무 떨어져있어서 점유도 잘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베니테즈는 포백보호를 하고 볼을 전개하는 스타일도 아니기에, 역습으로 전개하려다가 볼을 빼앗기고 이 전환과정에서 수비진의 실수도 벌어지는데 이게 강팀 상대로는 거의 실점이다. 뭐 디아메가 수비적으로는 굉장히 잘해주고 있고 수비적으로는 나쁘진 않다. 베니테즈는 용병술도 본래 소극적이고 수비적으로 하는 감독이고 최대한 강팀 상대나 원정에서는 최대한 실점없이 승점을 벌 수 있는 방향으로 운영하는 듯하니 홈에서 얼마만큼의 승리를 가져갈 수 있는지가 관건일듯 하다.

리그 8라운드 맨유 원정에서 전반 10분만에 두 골을 넣으며 마법이 통하나 했지만 후반전에 세 골을 먹히면서 뼈아픈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뉴캐슬의 경기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데 헤아의 선방쇼가 없었다면 맨유는 더 많은 골을 먹히며 이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초반 일정이 워낙 지옥같았던데다 지는 와중에도 경기력은 긍정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전망이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9라운드 브라이튼에게 또 패배하여 최하위로 쳐져있으며 허더즈필드와 함께 승리가 단 1승도 없다.경기력이 좋았다는 말은 맨유전에 국한 된 것인지 사실상 경기력이 좋았던적은 별로 없다. 승리가 하나도 없고 홈에서도 중하위권 팀을 상대로도 아무것도 못하고 패배하는데 그냥 이대로면 무승 강등이 가까워보일 정도로 절망적으로 보인다. 4-2-3-1만 고집하는 베니테스 감독 답게 벌써 한계를 보이는 건지 자원의 한계를 보이는 건지,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전술인 지, 매번 똑같은 모습으로 이미 파훼당한채 똑같이 지고 있다. 그 후 사우스햄튼과 무승부, 그 후 리그 6, 7위 상위권에 안착해 있던 왓포드, 본머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강등권에서 탈출했다. 애초에 아직 시즌이 3분의 1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벌써부터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른 감이 있을 듯.

하지만 이 후 반등에 성공해 11월에만 3경기 3승을 거둬 이달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 무렵의 베니테스에게서 특기할 만한 사항이 있다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4231 계열의 전술을 버리고 3-4-3, 5-4-1 등의 스리백 기반 전술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강팀과의 경기에서 사용하던 5백도 나름 공격적으로 변모했다. 찬스메이킹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5-4-1에서 특유의 콤팩트하게 서로의 수비를 지원하면서 2선과 3선간의 유기적인 마킹으로 4백에 가깝게 전방압박을 하기도 한다. 첼시전에서 나름 전방압박이 초반 통했고 점차 하프라인 부근에서 진형을 유지하는 형식으로 진행했지만 역습도 꽤나 하고 (론돈이 유지하고 윙인 아추가 안으로 들어서는 형태로) 첼시의 4백 운영(4백에서 한쪽 측면에 풀백이 움직여 중앙에 3백을 위치시키고 공을 위치에 따라 4백라인을 유지하는 것. 사리는 이걸 훈련으로 세세하게 하고 세리에 감독들도 디 프란체스코나 지암파올로, 클롭도 한다.)에 3미들의 지원이라는 나름 콤팩트하고 기동력있는 수비에(뉴캐슬은 선수 자체는 공을 뺏는 걸 잘 못한다. 태클은 기량이 안되니 걍 압박으로 패스미스시 공 탈취 등을 했을뿐) 라셀스를 중심으로 한 3백에 2미들, 그리고 측면으로 볼을 보내며 앞서 말한 아추 등이 중앙으로 들어선 공격형태로 어떻게 하진 못했고 측면으로 볼을 투입하는 것도 첼시의 압박에 막혔고 계속된 찬스메이킹의 부족이 베니테즈 뉴캐슬 내내 지속되지만 그래도 센백인 키어런 클라크의 헤딩골로 세트피스에서 득점했고 그 뉴캐슬 나름의 중원이 부족해졌음에도 중원을 별로 안 거치고도, 나름 운영 자체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쉘비, 기성용은 부상이고 디아메는 영 그런건지 몰라도 맨시티전 헤이든, 롱스태프가 중원으로 나섰는데 헤이든은 끊는데서는 강점을 보이기는 하고 롱스태프는 수비와 함께 침투, 패스에서 모두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제 몫을 잘해주고 있다. 리그에서 근 몇년간 승리가 없었던, 최근에는 더 강해진 맨시티를 상대로 초반 압박을 시도하다가 수비진의 실수인지 아구에로의 선제골을 먹었지만 단단한 수비전술과 안정적인 역습으로 결국 역전했다. 예전에 비해서 전반전 역습찬스를 꽤 가지고 론돈의 떨구기, 포스트플레이를 기반으로 아요세, 아추가 전진 혹은 침투하고 롱스태프, 헤이든도 올라가는 보다 공격적인 역습으로 공격 기회를 꽤 만들었다. 동점골 먹히고 의욕을 잃은 맨시티인지 역습 이후 한가하게 최후방에서 짧은 패스 날린 맨시티 상대로 볼탈취로 롱스태프가 페널티를 얻어내며 결국 맷 리치의 페널티골로 2-1 역전승. 애슐리가 홈 입장료를 올리면서 불만도 가득했지만 뉴캐슬의 최악의 천적을 상대로 무려 23경기만에 거둔 승리였다. 여기에 오랜만에 라파가 원하는 자원도 영입이 이루어졌는데 공미와 윙으로 활용가능한 미겔 알미론 영입이 그것이다.

이후로 많은 승리를 쌓으며 30라운드 9승 7무 14패, 강등권과 6점 차이가 나는 13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리며 잔류 가능성을 상당히 높였다. 특히 30라운드는 에버튼에게 0-2로 끌려가던 경기를 3-2로 뒤집었는데, 뉴캐슬의 PL 2골 차 역전승은 바비 롭슨경 시절인 2003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이후 35라운드 소튼에게 홈에서 3-1로 승리하여 승점 41점을 획득했고, 다음 날 18위 카디프가 패배하면서 잔류를 일찌감치 확정지었다. 뉴캐슬은 공식적으로 베니테스에게 재계약을 제시했고, 베니테스는 구단의 지원에 대한 확답을 받으려 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재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6월 24일 뉴캐슬 공식 홈피를 통해 6월을 끝으로 뉴캐슬 감독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베니테스 본인에게 사전 통보도 하지 않고 결별을 발표했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재계약 협상이 틀어진 이유도 공개됐는데 베니테스가 재계약 전제 조건으로 구단주의 투자를 요구해 협상이 교착 상태였다고 한다.

2019년 7월 2일 중국 다롄 이펑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3.10. 다롄 프로[편집]


전임 최강희 감독이 7월 1일, 성적 부진 및 (외국인선수) 팀장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임 형식으로 팀과 결별하자 바로 다음날 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감독에 대한 인내력이 극히 낮은 중국 리그의 특성상 리그 10위까지 떨어진 팀 성적을 빠르게 끌어올리는게 관건이 될 것이다.

7월 7일, 중국리그 데뷔전에서 허난 젠예와의 홈경기를 3-1로 완승을 거뒀다. 7월 12일의 광저우 푸리전에서도 3-2로 승리하여 베니테스 부임후 다롄은 단숨에 중위권인 7위까지 뛰어올랐다.

다롄 취임 소감을 묻는 질문에 "뉴캐슬에서 3년간 구단 수뇌부와의 만남의 횟수가 다롄에서 1주일간의 횟수보다 적다"고 이전 팀의 구단주와 보드진을 디스했다. 본인은 뉴캐슬에서 공적에 비해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8월 19일 중국 FA컵 4강에서 상하이 선화와 만나며 잠깐 국내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상대 감독이 자신의 전임 감독인 최강희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경기에서 2-3으로 패배하며 FA컵에서 탈락, 복수전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이 경기 영향인지 중국 언론에서 기본기 없는 우리 선수한테는 베니테스 같은 유럽 출신 명장 대신 최강희가 더 잘 맞는다라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결국 정규 리그 9위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렇게 다롄 이팡을 맡은지 반 시즌도 되지 않아 EPL 복귀를 모색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후보 팀은 부진에 빠진 마누엘 페예그리니웨스트햄이다. 그러나 데이비드 모예스가 웨스트 햄 감독으로 들어갔다.


3.11. 에버튼 FC[편집]


파일:배재앙.jpg

2021년 6월 30일, 에버튼 FC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계약 기간은 3년. 그런데 베니테스의 감독 선임에 있어서 에버튼과 리버풀 팬덤이 공통적으로 전 리버풀 소속 감독이었다는 것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31] 베니테스의 구시대적인 지휘에 에버튼 선수단의 내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등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혹은 요즘 축구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이른바 저물어 가는[32] 감독을 데려왔다며 현지 팬들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링크 베니테스 본인은 프리미어 리그 복귀라는 명분과 함께 머지사이드 지역에 대한 애정이 있는 데다가 가족들의 집이 그곳이라는 메리트까지 더해져 이러한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1R 사우스햄튼 FC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먼저 내주며 어렵게 출발을 했으나, 히샤를리송압둘라예 두쿠레, 도미닉 칼버트르윈이 1골씩을 합작하며 3:1로 완승을 거두고 기분좋게 출발을 했다. 덤으로 2015년 이후 처음으로 전반전에 리드를 내준 경기를 역전승으로 만들었다.

이후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2승 1무를 기록했다. 덕분에 8월 이달의 감독 후보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하였다.

7R 맨유전, 팀 주축선수인 히샤를리송도미닉 칼버트르윈이 부상으로 결장한 가운데 앙토니 마르시알에게 선제 실점을 내주긴 했지만 압둘라예 두쿠레, 데머레이 그레이안드로스 타운센드의 활약에 힘입어 맨유의 막강한 스쿼드를 상대로 OT 원정경기에서 1:1무승부를 기록했다. 안첼로티가 나가고 무너질 수도 있었던 팀을 본인의 전술과 색깔을 팀에 잘 주입하여 지난 리그컵에서 아쉽게 패하며 탈락하고 고배를 마신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는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10월 들어서 난데없이 뉴캐슬 감독으로 떠오른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스티브 브루스 감독 체제에서 3무 4패로 19위인 상황에 빈 살만 왕세자가 새로운 뉴캐슬 구단주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 텔레그래프는 현지시간 14일에“베니테즈 감독은 에버턴과의 계약을 파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헌데 리그 7R 웨스트햄에게 홈에서 패배하더니, 급기야 8R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았던 승격팀 왓포드에게 홈에서 무려 5:2로 대패하며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부임 후 첫 승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결국 10R에서도 울버햄튼 원더러스 FC에게 1:2로 황희찬라울 히메네스 등에게 속절없이 털리는 등 무기력하게 패하면서 리그 10위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11R 토트넘 홋스퍼전에서는 어찌어찌 0:0 무승부로 마무리했으나, 12R 맨시티전 원정에서는 유효슈팅 1개에 그치는 최악의 경기력으로 3:0으로 무기력하게 패배하고, 설상가상 13R 브렌트포드전까지 패배하면서 7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하고 있다.[33]

14R 리버풀 FC과의 머지사이드 더비에서도, 홈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1:4로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이로써, 에버튼은 10월, 11월 2달 동안 승리가 없다.

15R 아스날 FC전 홈 경기에서 데머레이 그레이의 극장골로 2:1 승리를 거두었다. 무려 리그 9경기 만에 승리다.

그러나 16R 크리스탈 팰리스 FC전 원정경기에서 다시 최악의 경기력으로 1:3로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이로서 리그 10경기 1승 2무 7패라는 최악에 상황에 놓였고 경질이 유력시되고 있다.

17R 첼시 FC와의 경기에서는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해 유스를 대거 기용하는 승부수를 두었고 결과적으로 팀은 1:1로 무승부를 거두었다.

20R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와의 경기에서는 유일한 레프트백인 뤼카 디뉴를 기용하지 않고, 베테랑 라이트백 콜먼을 끝까지 왼쪽에 두는가 하면, 디뉴에게 투입 준비를 시키고 결국 노장 스트라이커 론돈을 투입하는 등의 정신나간 지도력으로 전반에만 2실점, 최종 2대3으로 충격패를 당했다. 암흑기에도 충성심을 보여주며 팀 수비의 핵심으로 공헌한 디뉴를 박대하는 것에 더해 경기력까지 최악이라 베니테즈에 대해 안그래도 의구심과 반감이 존재했는데 더 심해진 상황이다.

베니테즈에 대한 에버튼 팬들의 여론은 브라이튼전 이후 왜 경질 안 시키냐는 여론으로 가득 찬 상태. 팬심을 역행하고 데려온 감독이 성적은 말아먹고, 경기 내외적으로 막장 행각을 저지르며 리버풀 첩자가 에버튼을 강등시키려 왔다는 농담을 더 이상은 웃을 수 없는 사실로 만들었다.

제일 큰 문제는 이전 팀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핵심 선수와 싸우고, 경기 외적으로 팀을 뒤흔들며 본인의 입지를 과시하려는 정치질을 벌이고 있다. 팀 핵심이자 부주장인 디뉴는 베니테스의 소극적인 전술에 대해 수비로 제한된 역할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이유 하나만으로 곧장 방출 명단에 올라고 진짜로 팀을 떠나기 직전 상황까지 몰려있다. 이는 토트넘 팬들의 엄청난 비난과 함께 3개월만에 경질된 누누 산투 마저도 벌이지 않은 제 정신이 아닌 행각이다.[34]

심지어 브라이튼전에서는 팀 레프트백이 디뉴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선수와 불화라는 이유로 라이트백인 콜먼을 레프트백으로 돌리고, 경기를 날려먹는 정신 나간 선수 기용을 보여줬다. 또한, 시즌 전 레알 마드리드 시절부터 갈등이 있던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밀어내기 식으로 내보낸 와중에 필리페 쿠티뉴에버튼 팬들이 대놓고 싫어하는 배신자를 영입하겠다는 영입설까지 뜨면서 그야말로 선수단을 본인의 꼭두각시처럼 운영하고 있다.

물론 경기 내 기록으로만 봐도 끔찍한데 프리미어 리그 평균 볼 점유율 19위 (38%), 최근 리그 13경기 (승점 36점이 걸린 경기)에서 승점 6점 획득, 최근 15경기에서 2승 #을 기록하며 샘 앨러다이스마르코 실바를 재평가받게 만드는 수준에 도달했다. 요약하면 그야말로 퇴물이 된 전술과 본인의 단점만을 보여주고 있는 행각을 벌이고 있고, 구단은 대체 왜 경질을 안 하고 있을까?만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35]

프리미어리그 내 정상급 레프트백이자 부주장인 디뉴가 25m 파운드라는 터무니없는 금액에 아스톤 빌라로 이적하는 것이 확정되면서 에버튼 팬들의 여론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 특히 디뉴가 '베인스의 후계자'라는 평을 듣던 선수였기에 해외 팬들의 경우, "에버튼 팬 그만 두겠다" "감독 짤릴 때까지 축구 그만 보겠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국내 에버튼 팬들은 구단에 재앙을 몰고 왔다는 평가 속에 실명 부르기를 거부하고 베재앙이라고 부르는 등 여러 방향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결국 22R 리그 최하위인 노리치 상대로도 1:2 패배를 기록하며, 보드진들도 더이상 한계가 온것인지 긴급 회의를 열어 사실상 경질이 임박했고 1월 16일, 마침내 에버튼은 베니테스의 경질을 공식 발표했다. 후임은 프랭크 램파드가 선임되었고, 램파드가 수습해서 강등은 피했다.

정리하자면 베니테스 감독 하에서 에버튼 FC는 리그 16위로 강등 위기에 몰렸을 뿐만 아니라 메디컬 디렉터, 영입 담당자, 총괄 스카우트, 풋볼 디렉터를 베니테스에 의해 모두 잃었고, 팀의 핵심 뤼카 디뉴마저 스티븐 제라드[36] 감독의 아스톤 빌라로 넘겨주게 되었다. 단순히 성적 부진이 아니라, 팀을 말그대로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떠나게 된 것이다. 현지에서는 ‘리버풀 FC에서 보낸 스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에버튼 입장에서는 역대 최악의 감독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또한 베니테스에 대해서 뒤늦게 회의를 열어 경질했던 에버튼 구단 보드진의 책임이 크기 때문에 많은 비난을 감수할 것으로 보인다.


3.12. 경질 이후[편집]


2022년 10월, 리그 꼴찌 노팅엄 포레스트 FC의 신규 감독으로 추천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23년 2월 19일 스카이스포츠 중계로 출연해서, 대한민국 대표팀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인터뷰에서 베니테즈 감독은 “나에게 중국, 한국, 멕시코와 같은 곳에서 오퍼를 보내고 있다. 내가 가진 모든 경험을 사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면서 “우리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나는 이야기하는 중이다”고 했다.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이 있어보이긴 했지만, 거주지 문제로 계약이 불발되었고 대한민국 감독직은 위르겐 클린스만에게 돌아갔다.

대한민국 감독직을 거절한 이유는 감독 유럽에 머물고 싶어해서였는데 2023년 6월, 사우디 리그의 다수 팀들이 고액 연봉을 약속했지만 역시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은퇴를 앞둔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의 후임자로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와 링크되었다.

6월 24일 파브리지오 로마노의 보도에 따르면 RC 셀타 데 비고의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3.13. RC 셀타 데 비고[편집]


파일:베니테스셀타.jpg

2023년 6월 23일, RC 셀타 데 비고와 3년 계약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7월에 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7월 3일, 공식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23-24 시즌 11라운드까지 1승 3무 7패로 강등권인 18위로 몰아넣으며 흑역사를 또다시 써나가는 중이다.

4. 평가[편집]


베니테스에 대한 평가를 놓고 엇갈리는 양측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탄탄한 수비와 미들 구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전술가 VS 커리어 초창기 이후 전술적 발전 없이 답보 중인 감독


적절한 로테이션이 어우러진 효율적인 선수단 관리 VS 로테이션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선수들의 폼을 해치는 감독


능력에 비해 과소평가 받고 있다 VS 능력에 비해 과대평가 받고 있다.


리버풀과 발렌시아, 뉴캐슬의 부흥을 이끈 마법사 VS 인테르, 나폴리와 레알 마드리드, 에버튼을 망쳐버린 사기꾼


커리어 훌륭한 감독 VS 커리어 훌륭한 감독


컵대회에 강한 감독 VS 리그에서는 별다른 성과가 없는 감독


프로페셔널한 선수단 관리 VS 답이 없는 소통 사망꾼[37]



4.1. 전술 능력[편집]


베니테즈 전술 능력중 최고로 평가받는 부분은 수비조직력이다. 특히 리버풀 시절에 구상한 수비라인은 상당히 유명했고 토너먼트에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올린 핵심 요인이었다. 그의 수비철학은 상대에게 공간을 허용하지 않고 컴팩트하게 라인과 라인사이를 운영하는것이다. 즉 수비-미들-공격 이 셋 사이가 상당히 좁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올라간 수비라인은 발빠르고 볼 잘 다루는 키퍼였던 레이나를 활용하여 약점을 최소화했다. 또한 플레이메이커와 발빠른 원톱을 상당히 잘 활용하는 감독이다. 아이마르와 제라드를 대표로 한 그의 플레이메이커 활용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그저그런 스트라이커였던 미스타를 원톱으로 내세워 19골이나 넣게 했던 것이나 스페인에서 유망주였던 토레스를 일약 세계최고의 공격수로 폭발시킨점 또한 마찬가지다.

발렌시아 시절부터 팀의 플레이메이커 아이마르를 활용하는 4-2-3-1은 완성도 높은 전술가로서 베니테스를 평가하게 만들어 주었고, 라 리가 우승과 유럽대회 준우승 등 좋은 성과를 올렸다. 발렌시아에 이어 부임한 리버풀에선 대륙 축구를 도입했으며, 그의 축구가 거의 완성판에 가까웠던 2008/09 시즌은 스티븐 제라드사비 알론소를 중심으로 놓은 4-2-3-1로 강팀의 면모를 보였으며 이 시절에는 레알 마드리드를 안필드에서 4:0으로 발라놓고도 레알이 운이 좋아서 골을 덜 먹었다는 인터뷰를 하는 패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반면 자신의 팀의 상황에 맞는 맞춤 전술을 짜는 것과 경기에서 전술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먼저 리버풀에서는 알론소의 이적 후 제라드의 부담을 덜어줄만한 자원을 구하거나 다양한 공격루트를 찾으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알베르토 아퀼라니, 루카스 레이바 등은 모두 알론소의 공격 전개 능력의 반도 못따라오는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아퀼라니와 루카스는 태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흔히 베니테스는 4-2-3-1 만 쓰는 감독이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베니테스는 리버풀에선 4-2-3-1보단 4-4-2를 훨씬 더 많이 쓰는 감독이었다. 그 4-2-3-1도 사실상 제라드를 아이마르와 같은 4-2-3-1의 플레이메이커가 아닌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톱 아래에 놓는 4-4-2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고, 그마저도 제라드가 전방 지역에서 풀 시즌을 소화했던 시즌은 08-09 시즌 정도 뿐이다. 베니테스가 4-2-3-1을 쓰던 시절은 발렌시아 시절이었고, 파블로 아이마르와 같은 고전적인 플레이메이커를 기용함과 동시에 창조성이 부족한 당시의 발렌시아 중원 사정상 최상의 선택이었을 뿐이었다. 또한 헥토르 쿠페르 감독 밑에서 성공한 팀이었던 만큼 포메이션을 크게 수정하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리버풀에선 공격형 미드필더의 창의성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는데, 당장 사비 알론소가 깊은 곳에서부터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었고, 제라드 역시 그 위치에서 알론소와 함께 나란히 뛸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베니테스는 언제나 중원에서 로테이션을 가져가길 좋아했다. 가령 08-09 시즌 초, 맨유와의 리그 홈 경기에서 제라드와 토레스를 벤치에 앉히고 4-4-2를 가동한 리버풀은 특유의 중원 장악 늪축구를 선보이며 맨유에게 2:1로 승리했다.

베니테스는 알론소와 마스체라노에게 거의 역할을 나누지 않고 박스 투 박스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 리버풀 시절 가레스 배리를 노렸던 것도 당시 그가 리그 최고의 박스 투 박스 선수였기 때문이었으나 결과론적으론 패착이 되었다. 흔히 베니테스 감독이 리버풀에 부임한 이후로 전형적인 스패니쉬 축구를 구사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리그에서 누구보다도 극도로 컴팩트하고 공수 균형을 맞추는 4-4-2 축구를 선호했다. 오히려 맨유와 아스날 등이 좀 더 대륙적인 기술 축구를 하는 팀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컴팩트한 축구가 강팀을 상대로 아주 효과적으로 들어 먹혔기 때문에 리버풀은 언제나 국내외 빅클럽들을 상대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선수단의 네임 밸류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음에도 늘 리그의 빅4와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온 것은 분명히 베니테스 특유의 늪축구의 공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빅클럽들은 위상에 걸맞게 좋은 축구를 구사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위험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격적인 운영을 하지만 리버풀의 밸런스 있는 축구에 오히려 말려드는 상황이 많았다.

허나 반대로 말해서 이러한 축구 스타일로 인해 상대적으로 수비적이고 거칠고 단순한 축구를 하는 리그 중하위권 팀들을 상대로는 무기력하거나 허망한 패배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리버풀이 '의적풀'이라는 별명을 얻는 데도 한 몫 했다. 컴팩트하고 전방을 향해 뻥뻥 내지르기만 하는 리버풀 특유의 축구가 강팀에겐 먹혀도 내려 앉는 약팀들을 상대로는 창의성이 결여된 축구 그 이상 그 이하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리버풀이 자랑하던 그 중원은 알론소의 이적으로 인해 그나마 남아 있던 창의성을 상실했고 알론소를 대체하려던 아퀼라니는 로마에서 보던 그 선수가 아니었다. 그토록 염원하던 가레스 배리도 얻지 못했다. 제라드가 홀로 분전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거기다가 선수단 운영에 늘 잡음이 있었던 베니테스의 장악력에 한계가 오자 리버풀은 당연하다는 듯이 몰락했다.

인테르에서는 이런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며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자신에 전술에 전혀 맞지 않는 선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술을 수정하기 보다는 억지로 선수들을 맞지 않는 포지션과 역할을 부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거 무리뉴가 베테랑 수비라인의 효율적인 수비 후 마이콩, 베슬리 스네이더르, 디에고 밀리토 중심으로 한 빠르고 직선적인 역습을 추구하는 전술로 트레블을 이뤘다면, 베니테즈 부임 후에는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라인을 끌어올리며 템포를 느리게 형성하다[38] 비어 있는 수비 뒷 공간으로 상대방에게 역습을 쉽게 허용하며 허무하게 실점하는 모습을 자주 연출하였다.[39]

또한 선수 교체 타이밍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팀이 밀리고 있을 때나 아니면 경기가 답답할 때 적절한 교체 카드 투입으로 경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가 맡았던 리버풀은 스쿼드가 다른 강팀들보다 약했다는 반론이 있지만, 하위권 팀들에게 무를 캐거나 뜬금없이 패배할 때 교체카드를 좀처럼 쓰지 않아 경기도 지고 주전선수들의 체력도 소모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2009-10 시즌 리버풀이 최악의 부진을 겪을 때 극명하게 드러났고, 첼시와 인테르 시절에도 지속적으로 지적받는 단점이다.

이외에 그의 전술적 역량을 보여주는 예로 꼽히던 컴팩트한 공수 간격 유지도 현재 상태로는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라는 평도 있다. 레알에서의 모습을 보면 공격수와 수비수의 물리적 간격이 꽤 좁은 것은 맞지만 그 사이에 있는 미드필더들 역시 분리되는 경향을 보여 중간 지대가 없는 축구를 함으로써 축구적으로는 공수 간격이 벌어진 상태로 경기를 치르고 있으며, 그로 인해 베니테스 레알의 빌드업이란 상대 수비 배후로 공을 뻥뻥 질러서 공격수들이 배후만 노리게 만드는, 토레스 쓰던 시절의 스타일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후방에서 빌드업을 할 때도 미드필더의 후방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상대 전방 압박에 저격 당하는 일이 잦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지적들에 따르면 베니테스는 현재 단지 선수빨로 축구를 하고 있을 따름이라는 얘기가 된다.

사실 첼시 시절에도 그렇고 베니테즈가 딱히 중앙에서 경기를 풀어가기보다는 측면으로 공을 전개하는데 중앙에 중원이 없으니 측면 공격으로 빠르게 풀어가는 편은 아니고 측면으로 미드필더를 분리시켜 공간이 나면 좌우전환을 하는 식으로 크로스를 올린다. 뉴캐슬에서도 역습아니면 이런 식이다. 후방빌드업에서도 따라서 포백 보호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수미 혼자서 압박을 견딜 수는 없으니 사실상 골키퍼에게 공주고 나머진 전진시켜 측면에 공 뿌리는 식이다. 애초에 리버풀에서도 빌드업시 미드필더들은 빠르게 전진하는 것에 집중했다. 다만 이러한 공격상황에서의 전술은 사실상 미드필더를 활용하지 못하는 구닥다리인 것과는 다르게 수비전술 자체는 구닥다리라고 보기엔 어렵다.

뉴캐슬에서의 모습을 보면 4-2-3-1에서 수비시 4-4-2와 가까운 형태로 전방과 수비진이 콤팩트하게 간격을 유지하며 하프라인에서 라인을 물려 상대를 측면으로 압박하고 2선과 4백은 적절히 움직이면서 풀백이 상대 윙을 마크하러 가면 미들진이 벌어진 사이 공간을 커버하며 상대를 고립시키거나 수비라인과 별다름 없는 컴팩트한 위치로 상대 공격을 잘 차단한다. 압박에 있어서도 측면으로 빠지면서 4백 라인이 이상해져도 미들필더 둘이서 압박가서 공탈취하거나 틀어막는 등 콤팩트한 수비 사이에서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는 뉴캐슬 공격이 딱히 라인을 올리기보단 역습 등을 노린채로 대부분 수비적인 운영을 함에도 있겠고 공 탈취 이후에도 좋은 공격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뉴캐슬 선수단을 보자면 베니테즈가 선수빨로 축구를 하고 있진 않다. 공격은 몰라도 수비전술 자체는 탁월한 모습을 보여준다.

뉴캐슬에서의 수비적인 운영이 인테르, 레알 등에서의 보여준 성적과는 다르게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을 봐도 베니테즈의 콤팩트한 공수간격은 수비에 있어서는 괜찮은 편이다. 물론 전환과정에서 거리가 너무 떨어져있어 볼운반에 있어서 개인능력에 의존하는 식이고 공격전환을 하다가 오히려 볼을 빼앗겨 실점하고 있다. 4-2-3-1만 고집하고 공격이 가능하다고 느끼는 건지 전술적 선택이 매우매우 한정적인 감독인 건 맞다. 나폴리에서도 그렇고 맡은 모든 팀에서 똑같은 전술만 쓰기에 발전이 없다. 다만 뉴캐슬 시절 후반부에는 드디어 4-2-3-1을 버리고 5백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 르죈이나 셰어같은 볼플레잉 센터백이 많고 론돈이란 스트라이커가 있던 뉴캐슬이었기에 5-4-1 전술은 빛을 발했다. 허나, 아쉽게도 팀을 떠났다.

에버튼에서는 감독 부임 이전부터 팬들의 많은 우려를 받았으나 부임 이후 여름 이적 시장에서의 적은 영입과 전력 누수에도 불구하고 시즌 초반에는 롱볼 전술, 세트피스, 이적생들의 좋은 활약 등 좋은 경기력과 성적을 보여주었으나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조금씩 나락으로 떨어지다가 디뉴를 팔아먹고 콜먼을 레프트백으로 기용하는 기이한 전술을 선보이기까지 하다가 결국 시즌 초반 이후 시즌 초중반부터는 12월달에 거둔 아스날전 1승을 제외하곤 전혀 승리를 챙기지 못하며 팀을 강등권 근처까지 추락시키고 경질되었다.


4.2. 선수단 관리[편집]


이러한 베니테즈의 전술 단점 외에 가장 크게 비판 받는 부분은 선수단 관리 능력이다. 선수 기용 등의 결정에 있어서 상당히 독단적이라는 비판이 있으며 팬들은 물론 선수들과 마찰을 빚는 경우가 자주 있다.[40] 대체로 선수들은 전술 적인 능력은 훌륭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을 지나치게 피곤하게 하고 간섭을 자주 하는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라파와 트러블이 생겨 이적한 사비 알론소 역시 라파의 능력에 대해서는 "리버풀은 라파를 지켜야 한다"는 인터뷰로서 인정했지만 다른 인터뷰에서도 주변 사람 피곤하게 하는 성격의 소유자라 했던 바 있다. # 또, 베니테즈는 매우 냉정한 성격이라 선수들과의 심리적으로 교감하는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 주제 무리뉴가 한창 스티븐 제라드에게 러브콜을 보낼때 제라드의 마음이 흔들렸던 것도 리버풀에서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던 제라드에게 베니테즈는 심리적인 서포트를 해주기는 커녕 그를 냉정하게 대했던 것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41] 심지어는 그 대인배 하비에르 사네티조차 베니테즈를 비판하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또한 에버튼 FC에서는 시즌 시작 전부터 하메스 로드리게스가 이적하더니 이후에는 몸 상태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뤼카 디뉴를 명단에서 제외시키고 불화설이 언론에 보도되더니, 디뉴가 아스톤 빌라로 이적하면서 팀 핵심 선수를 겨울 이적시장 때 팔아 버리는 대참사가 벌어지는 등 그야말로 소통 사망꾼이다. 심지어 한 경기에서는 디뉴를 쓰기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레프트백이 아닌 셰이머스 콜먼을 억지로 레프트백에 활용해 경기를 패하는 등 말년에는 고집이 악행 수준으로 변한 상태다.

상술했듯 대인같은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이나 대부분의 감독들 밑에서 묵묵히 잘 뛰어주는 선수들조차 비판할 정도로 선수단 장악에 문제점을 보이는 편. 팬들도 입모아 말하길 베니테즈의 전술이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마냥 무능하다고는 못하는데 소통문제는 어떻게봐도 베니테즈 탓이라 팀캐미를 망칠까봐 자기팀에 안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여론이 많다.

그 외에 한 번 찍은 선수는 반드시 사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지나치게 표출해서 너무 비싼 값이 선수를 영입하는 경우가 있다. 가레스 배리를 영입하겠다는 뜻을 너무 티나게 밝혀서 아스톤 빌라의 밀당에 제대로 걸려들었고, 이 과정에서 배리와 포지션이 겹쳤던 사비 알론소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불만을 표출하는 사건이 있었다. 정작 2008-09 시즌이 끝난 뒤 알론소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고 가레스 배리는 맨체스터 시티 FC가 먼저 낚아채 버려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 공백을 메꾸기 위해 알베르토 아퀼라니를 2천만 파운드라는 터무니없는 가격[42]에 영입했다. 그리고 이후 아퀼라니는 폭망했다.

리버풀 시절 선수단 장사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라파를 긍정하는 측에서는 돈이 없는 상황에서 오퍼를 하다보니 돈은 돈대로 없고 협상은 질질 끌리면서, 기존 선수를 팔아서 돈을 만드는 바람에 이모저모 계속 꼬였으므로 질힉체제가 아닌 현 리버풀 체제에서의 베니테스라면 장사를 잘 못한다는 얘기가 없을 것이며, 라파가 돈을 좀 많이 쓴 것도 당시 라파가 물려받은 리버풀의 스쿼드가 그리 좋지 않았던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거기다가 라파가 노리던 선수들 중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시망 사브로사, 조르조 키엘리니 등의 좋은 선수들을 약간의 가격차로 놓친 것도 고려할 만하다고 한다.

비판하는 측은 라파가 설사 지금 체계라고 해도 장사를 잘 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라파가 선수를 포기하는 경우는 1, 나이든 부상이든 폼이 지나치게 떨어지거나 2, 다른 빅클럽에 들어가서 못 빼오거나 두 가지 뿐으로 이 경우가 아니라면 라파는 그 선수에 대한 집착을 멈추지 않으며 작년에 했던 오퍼 올해 또 해서 그 선수의 가격에 비해 비싼 값이 든다 해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반복됨으로 라파는 호구로 인식이 잡혔고, 라이언 바벨이나 도세나로 털리다가 결국 라파 체제의 막바지에 이르러 아퀼라니와 글렌 존슨[43]이라는 호구 대폭발이 터졌다고 말한다. 또한 이렇게 비효율적인 영입이 많았음에도 불구 6년 동안 거진 40명에 이르는 성인선수와 거진 30명에 이르는 유망주가 영입되었다는 걸로 볼 때 성공확률이 그렇게 높다고는 못한다는 것, 또 선수 판매 역시 별로 큰 재미를 본 적이 없다는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그리고 선수단 소통 부재에 묻혀 잘 언급되지는 않지만, 선수단 부상 관리에 취약한 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인테르 시절 선수단의 줄부상이 이어지면서 트레이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던 것, 그리고 현재 그가 맡은 뒤 줄부상에 시달리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 특히 레알 마드리드의 경우 주전 선수 혹사로 인한 뒷심 부족문제로 안첼로티를 경질하고 로테이션 신봉자로 알려진 베니테스를 선임했는데, 선수단 부상 관리에 베니테스의 책임이 있다면 이건 로테이션이고 뭐고 선임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게 된다.

다만 형편없는 선수단 관리와는 별개로 선수보는 눈만큼은 정말 대단한 수준으로 평가 받는다. 땜방으로 들어간 첼시, 다닐루 하나 사고 땡쳤던 레알, 26m 흑자를 기록한 인테르 시절은 사실상 구단도 팬들도 선수들도 베니테즈를 믿지 않았기에 영입 권한이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리버풀과 나폴리 시절 영입한 선수들 하나하나의 면모는 정말 화려하다. 리버풀 시절엔 어찌됐든 제라드-알론소-마스체라노로 이어지는 황금 중원과 카윗과 토레스라는 걸출한 공격수를 뽑아 냈고 그 망했다고 평가 받는 나폴리 시절 영입 명단만 봐도 2년 총합 넷스펜딩 - 30m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제대로 데려왔다

주요 영입: 이과인, 알비올, 카예혼, 조르지뉴, 메르텐스, 사파타, 하파엘, 레이나(임대), 굴람, 가비아디니, 쿨리발리, 데 구즈만, 다비드 로페스
주요 방출: 카바니, 치가리니, 산타나, 바르가스 (임대), 칸나바로 (임대) 페르난데스, 베라미, 제말리, 바르가스(임대)

즉 카바니 판돈 + 30m로 이과인, 조르지뉴, 메르텐스, 굴람, 쿨리발리, 데 구즈만, 가비아디니라는 나폴리의 전성기를 이끌 리빌딩을 끝내버린 것. 물론 잘 사놓고 제대로 쓰질 못해서 욕은 먹었지만[44] 지금 와 평가해 보면 확실히 고평가를 받을만한 안목이다.[45] 뉴캐슬에 와서도 이 안목은 어딜 가지 않는지 없는 살림을 최대한 쥐어짜 호셀루, 크리스찬 아추, 맷 리치, 케네디등을 영입하며 승격 첫 시즌 10위라는 걸출한 성적을 내는 데 성공했다.


4.3. 유망주 육성[편집]


유망주 문제도 비판과 옹호가 공존한다.

옹호측은 라파가 한 구단에서 선수를 키워낼만큼 충분히 오래 머물지 못했으며, 릭 패리 단장의 사임 이후에는 2009년 3월에 재계약 조건에 유스 문제를 삽입해서 전권을 따냈으니 그 기간이 길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라파가 호세 세구라와 로돌포 보렐이라는 좋은 코치를 영입하고 달글리쉬 역시 데려오는 공훈을 세웠고도 한다. 이후 리버풀에서는 그가 떠난 후 위기 마다 마틴 켈리, 존조 셸비, 대니 윌슨, 존 플라나간, 잭 로빈슨, 제이 스피어링 등 어린 선수들의 활약이 빛났으며 유스들은 다른 유스팀들을 5골 이상의 점수로 털고 다니는 것도 심심치않게 보인다. 또한 잭 로빈슨, 페터 굴라치, 다니 아얄라, 다니 파체코를 키워낸 것 역시 라파이고, 2009년과 2011년 U-20 청소년 월드컵에 출전한 리버풀 선수들의 활약상 또한 뛰어으며 루카스 레이바도 라파의 꾸준한 기용 아래 빛을 봤다.

그리고 라파엘 베니테스 최대의 공훈은 유스 출신을 몇명 키워냈느냐보다도 좋은 코치의 영입으로 좋은 선수를 키워낼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다는 것에서 칭찬을 듣는 것이므로 비록 라파 재임 기간 동안 좋은 유스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도 라파가 유스에 공이 없다고 보긴 어렵다. 게다가 좋은 유망주를 키워서 일정 금액의 이적료를 받고 판매하는 것도 득책인데, 대표적으로 크리스티안 네메스가 3m이라는 이적료를 받으며 판매되었고 스티븐 워녹[46] 닐 멜러, 스콧 카슨, 잭 홉스, 데이빗 마틴, 대미언 플레시스, 대니 거스리, 잭 윗브레드 등은 리버풀에서의 미래가 없었기 때문에 팀에게 짭잘한 이적료 수익을 남겨주고 나갔다. 그리고 6년간 내내 아카데미에 대한 전권을 얻었던 것도 아니었다. 당시 진행되던 전쟁이 그 유명한 릭 패리 & 로비 킨 사가.[47]

반면 비판측은 리버풀에 6년을 머물렀는데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는 건 무리라고 주장한다. 또한 라파가 전권을 쥔 기간이 짧으므로 수가 없었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한다. 왜냐면 유망주를 터트린다는 것은 유망주 아카데미의 전권을 쥔다는 것과 크게 다른 얘기이기 때문이다. 반 할이 토마스 뮐러 및 바트슈트버를 터트린 건 고작 부임 첫 해였다. 피지컬만 좋은 레기 소리 듣던 아바테를 터트린 알레그리도 부임 첫 해란 걸 생각해 보면 자원과 능력만 있으면 터진 유망주는 터지기 때문이니까.

유망주를 1군에 올려서 훈련에서 시험해 보고, 실전에서 기용해 나가며 키우는 게 1군 감독이 할 일인데 반대측은 라파는 이 점에서 심각할 정도로 문제가 있다고 한다. 라파 체제에선 11.5m이나 주고 영입한 바벨씩은 돼야 교체로나 깔짝깔짝 나오다 어쩌다 주전 한 번 나오는 식으로 출전시키다 결국 재능과 폼이 다 떨어지면 다른 팀으로 방출되는 수순이었다. 바벨이 재능이 뛰어나서 오래 버텼지 저메인 페넌트, 엘 자르, 시나마 퐁골, 르 탈렉 등 비싼 돈 주고 영입한 많은 유망주들은[48] 쓸쓸히 리버풀을 나가야 했으며 루카스 레이바 같은 경우는 운수 좋은 예외라고.[49] 제라드의 부상 및 알론소와 마스체라노의 체력 문제와 카드 문제 때문에 루카스 레이바의 경우는 땜빵 출전의 기회가 많았고, 알론소가 나가고 제라드의 부상이 격화되며 뛰지도 못할 아퀼라니가 들어온 덕에 강제적인 출장기회가 꾸준히 부여될 수밖에 없었기에 터졌고 이런 사례를 볼 때 유스 터트리는 솜씨가 썩 좋다고 하긴 어렵다.[50]

그리고 라파가 좋은 코치를 영입해서 기틀을 깔았다는 것, 그건 틀림없는 일이지만 그 효율은 의문스럽고, 비판에 대한 변명이 되기 어렵다. 라파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첫째, 라파가 코치를 갈아치우기 전에도 리버풀의 유스는 잉글랜드의 유스 대회에서 항상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으므로 그 질이 썩 나쁘지 않았는데 왜 눈에 띄는 선수가 없거나 리버풀을 나가서야 터지는가? 둘째, 리버풀에 6년간 머무는 동안 그 스스로도 많은 돈을 들여 힘써 유망주를 영입했는데 영입한 유망주는 어떻게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것인가? 셋째, 상술되었지만 라파 전임 시절에는 세 명의 월드클래스 유스가 -제라드, 오웬, 캐러거- 탄생했는데 왜 라파 때는 그 자취를 감추다가 달글리시 체제에 이르러서야 집단적으로 유망주들이 눈에 띄는가?[51][52]

이 물음에 대해 라파가 유스 시스템을 확충했기에 달글리시 체제에 와서야 터졌다는는 대답은 유스 시스템이 1, 2년 장사가 아니고 2009년 3월에 전권을 쥐었기에 무리가 있다. 더군다나 라파가 영입한 유망주들이다! 라고 말한다면 라파 체제에도 그 동안 라파가 영입했던 유망주들이 많이 있었다가 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고 비판측은 얘기한다.

유망주 문제에 대해 6년간 라파의 공헌이 본인 색깔의 코치친 물갈이와 더불어 비싸야 3m 가량, 그것도 1.2m이라는 영입비용을 제외하고 거기서 육성비용도 제외해야 되는 이적료 수입 및, 8m씩이나 들이고 영입한 유망주 루카스 레이바가 팀 사정상 어쩔 수 없이 꾸준히 출전하다 겨우 2년만에 터진 거라면 참 슬픈 결과이며, 이와 관련, 선수들의 국대 활동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미끼를 이적 시장에 적극 활용하는 반대급부로 인해 라파 시절에도 리버풀이 부상은 달고 살았는데 그게 또 굳이 달글리시 체제에서만 부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기용되었다? 라고 주장한다면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사실 이적료 수입이라고 해도 영입할 때 다 1m~2m은 기본으로 들었고 레이바나 페넌트처럼 어느 정도 즉전감으로 영입한 애들은 8m 정도는 들었다는 걸 생각하면 낭비에 가깝다는 게 비판측의 주장이다.

어쨌건 젊고 유능한 감독 이미지였지만 2010/11 시즌 이후에는 그딴건 없고 그냥 7의 법사였다. 2010/11 시즌 종료시까지 백수지만 여전히 PL 복귀를 야심차게 노리고 있다.이후로 리버풀 복귀 떡밥이 몇 차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고 대신 2012/13 시즌 첼시의 감독으로 PL에 복귀했다.

에버튼에서 어린 선수인 앤서니 고든, 재러드 브랜스웨이트를 적절히 기용하며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로 만든 부분은 에버튼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평가 받을 요소다.


5. 기록[편집]



5.1. 선수[편집]



5.1.1. 대회 기록[편집]




5.2. 감독[편집]



5.2.1. 대회 기록[편집]









5.2.2. 개인 수상[편집]


  • UEFA 올해의 감독: 2003-04, 2004-05
  • 유럽 올해의 축구 감독[53]: 2005
  • 라리가 최우수 감독[54]: 2001-02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감독: 2005년 11월ㆍ12월, 2007년 1월, 2008년 10월, 2009년 3월, 2013년 4월, 2018년 11월
  • EFL 챔피언십 이달의 감독: 2016년 10월
  • LMA 스페셜 메리트 어워드: 2006


6. 여담[편집]



6.1. 리버풀과의 사랑[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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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팬들 사이에서 베니테스에 대한 지지는 엄청나다. 존 헨리의 리버풀 구단주 부임 후 크리스마스 즈음 라파엘 베니테스가 백수가 되었던 시기에는 이런 사진이 돌기도 했을 정도.[55]

사실 리버풀 팬들 입장에서 그걸 본다면 당연히 그런 유난스러운 무한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라파엘 베니테스는 리버풀 시민[56]이라는 점으로도 무한한 지지를 얻고 있다. 임시 감독이던 케니 달글리시가 2011년에 3년 계약을 체결하자 달글리쉬를 응원하는 스카프를 들고 안필드에 나타나 팬들에게 사인 공세를 받았다. 그리고 최악의 참사로 기억되고 있는 힐스보로 참사 추모식에도 참석하여 눈물을 흘리고 기부금을 내는 등, 리버풀 팬들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갖는 힐스보로 참사 96명 유가족[57]들에게도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또한 성적으로만 봐도 부임 첫 해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그동안 리그에서나 유럽에서나 어중간하게 한다는 인상이 강하던 팀을 유럽 챔피언으로 만들었고 그 이후에도 2007년에 다시 한 번 팀을 챔스 결승으로 이끌어내는 등[58] 유럽의 강자로 만들었으며 리그에서도 마지막해를 제외하면 우승은 못했지만 꾸준히 4위 안에 팀을 안착시키면서 빅4의 일원을 유지해나갔다. 마지막 시즌에 7위를 하면서 리버풀을 떠났지만 정작 베니테스의 후임 감독들은 더 죽을 쒀 위르겐 클롭의 부임 전까지 팀의 암흑기가 펼쳐졌으니 더더욱 고평가를 받았다.

베니테스가 나중에 첼시와 뉴캐슬 감독으로서 안필드를 방문했을 때는 관중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기도 하였다. 현재 리버풀의 감독인 클롭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 중이다.

이쯤 되면 점점 축구 감독이 아니라 리버풀 팬, 리버풀 덕후가 되는 듯한 분위기. 어쩌면 그가 가졌다고 알려진 성격은 그저 축구와 리버풀 FC를 너무 좋아하는 오덕후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직까지 리버풀 팬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으나 인테르 팬들에게는 흑마법사에 불과. 틈만 나면 나는 잘 했다, 클럽월드컵과 슈퍼컵 우승이 나의 업적, 모라티가 나를 자른 것은 실수, 나에게 흠결은 없었다, 구단주의 지원이 모자랐다는 언플을 일삼고 있다. 물론 확실히 반드시 아니라고는 못할 말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베니테스가 2021년 에버튼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리버풀 팬들에게 묘한 상황이 나왔다. 다만 리버풀 팬들은 팀이 레전드 감독 중 한 명이 다른 팀도 아니고 더비 구단의 지휘봉을 잡는 걸 반대하는 건 맞지만[59], 십수년간 타지에서 고생하다 이제는 가족들 문제도 있고 집과 가까운 곳에서 출퇴근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해한다는 동정론도 있어서[60] 리버풀보다는 오히려 에버튼 팬들의 반대 여론이 더 큰 상황이다. 더욱이 베니테스는 리버풀 감독 시절 에버튼은 빅 클럽이 될 수 없는 스몰 클럽이라고 디스한 적도 있어서 그 인터뷰가 다시 발굴되어 에버튼 팬들의 속을 박박 긁었고, 빠가 까를 만든다는 원리에 의해 리버풀 팬들이 스몰 클럽이 분에 넘치는 감독을 만났으니 알아서 잘 모시라며 실드를 치는 기묘한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종합하자면 에버튼 부임을 계기로 사랑이 완전히 끝났다기보다는 서먹서먹한 애증의 관계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 듯.

베니테스가 에버튼 감독직에서 물러난 현 시점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리버풀 팬들의 애정도가 더욱 상승했다. 베니테스가 에버튼을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들고 떠났기 때문이다.

베니테스 감독 하에서 에버튼은 리그 16위로 강등 위기에 처해있을 뿐 아니라 메디컬 디렉터, 영입 담당자, 총괄 스카우트, 풋볼 디렉터를 베니테스에 의해 모두 잃었다. 특히 팀의 핵심 선수인 뤼카 디뉴를 하필 리버풀 FC의 레전드 스티븐 제라드 감독이 이끄는 아스톤 빌라로 팔아넘기며 에버튼 팬들의 분노를 자아낸 바 있다. 현지 콥들 사이에서는 ‘Agent Rafa’라는 밈이 유행하고 있으며, 베니테스가 물러난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안필드에서는 그의 응원가가 울려퍼지기도 했다.


6.2. 첼시 시절 무리뉴의 천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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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무리뉴가 첼시 감독시절 막강한 포스를 뿜어냈을때, 첼시 구단주 로만과 무리뉴의 최종목표였던 챔스무대에서 두 번이나 4강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하며 무리뉴를 잘 잡아내던 감독이 바로 베니테스다. 무리뉴 시절 첼시의 커리어를 많이도 물먹였다. 2004-05 챔피언스 리그 4강부터 시작해서 2005-06 잉글랜드 FA컵 4강, 2006-07 커뮤니티 쉴드, 06-07 챔피언스 리그 4강 등 중요한 고비에서 무리뉴는 베니테스를 넘지 못했다. 이때 첼시와 리버풀 팬들은 챔스고 컵이고 허구한 날 서로 만나다 보니 서로 만나게 되는걸 아주 질색했다. 챔스에서 첼시가 하도 베니테스의 리버풀에게 자주 잡히다 보니 그때의 안좋은 기억 때문에 라파가 첼시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싫어했을 팬이 상당히 많았을 정도다.

이 때 무리뉴와 베니테스의 말다툼은 영국 축구 언론의 단골 소재 중 하나였으며, 중요한 고비에서 베니테스에게 물먹은 무리뉴는 세리에A로 간 뒤에도, 라 리가로 간 뒤에도 뜬금없이 타국에 있던 베니테스를 종종 디스했다. 특히 베니테스가 무리뉴가 맡았던 인테르와 레알 마드리드의 후임감독으로 들어가 커리어를 말아먹으면서 심해졌는데 베니테스의 인테르 시절에서는 디스가 절정에 달했다.[61] 특히 2015년 베니테즈가 레알 감독에 부임할 당시의 디스가 아주 걸작이였는데, 베니테즈의 부인이 뜬금없이 "내 남편이 무리뉴가 맡았던 팀을 맡는게 이번이 세 번째(인테르, 첼시, 레알)네요. 그동안 남편이 무리뉴가 어질러놓은거 치워왔죠."라고 무리뉴를 디스하자하자 무리뉴는 "나한테 신경쓸 시간에 남편 식단이나 신경쓰셔야죠."라며 베니테즈의 외모를 디스했고 트레블팀을 물려받아 놓고도 그 스쿼드를 반년만에 망쳐놓았다고 비판했다. 그점에 있어서 빠와 까를 막론하고 베니테즈를 보던 팬들이 모두 가장 답답해했던 것중에 하나가 언플 실력이 꼽힐 정도인데, 베니테즈가 무리뉴를 잘 잡았다는 것과 상관없이, 업계 최강의 아가리 파이터로서 아르센 벵거와 알렉스 퍼거슨도 찍어누르던 무리뉴와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무리뉴가 언론 플레이라는 분야에서 워낙 넘사벽이라 그렇지 베니테즈의 언플이 완전 꽝이었던건 아니다. 예를 들어 리버풀 vs 첼시 경기에서 레이나가 화나서 로번을 툭 치자 로번이 드라마틱하게 쓰러지면서 레이나의 퇴장을 유도했을 때 인터뷰에서 "나 좀 바쁘니까 오늘 인터뷰 짧게 끝낼 수 있냐? 로번 병문안 가야 되거든. 걔 병원에 얼마나 오랫동안 있냐?"라고 대답했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이 EPL에 빠져들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당시 빅4 감독이었던 베니테즈, 벵거, 퍼거슨, 무리뉴의 신경전도 있었다.

이젠 둘 다 커리어의 하락세를 겪고 있어서 그런건지 한때는 서로 으르렁거리던 앙숙이었지만, 베니테즈의 뉴캐슬 감독 부임 이후로는 같은 리그에서 부딪히는데도 신기하게 예전처럼 서로 다투지를 않는다. 무리뉴의 맨유에게 4-1로 패배했을 때 무리뉴의 전술을 베니테즈가 칭찬했고 무리뉴 역시 초반에 뉴캐슬 상대로 고전한 것에 대해 "초반에 고전했던건 내 선수들 잘못이 아닙니다. 베니테즈 잘못이죠. 그의 전술이 우리 팀의 허를 제대로 찔렀습니다. 그는 매우 똑똑한 코치입니다"라고 칭찬을 했다. 몇달 뒤 베니테즈의 뉴캐슬이 무리뉴의 맨유를 상대로 홈에서 1-0 승리를 가져왔을때도 이렇다할 설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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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즌 도중 경질[2] 시즌 도중 경질[3] 시즌 도중 경질[4] 해당 움짤은 2005년 3월 20일 안필드에서 열린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전반 막판에 나왔다. 해당 경기는 이후 82분에 팀 케이힐의 골로 에버턴이 추격했지만 최종적으로 2:1로 리버풀이 이겼다.[5] 이적자금을 주지 않아 스쿼드를 정리한 자금으로 선수들을 영입해야 했으며, 그로인해 주전과, 서브의 갭이 매우 심해졌고 이는 빅4 상대전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으면서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원인이 되었다, 게다가 2007-08시즌 알론소가 부진하자 가레스배리를 영입하려 했지만 이적자금이 없었던 탓에, 미들뎁스가 두텁지 않았음에도 어쩔수없이 알론소를 매물로 내놓게 된다, 결국 배리 영입은 실패하고 알론소도 잃으며 리버풀은 암흑기로 들어선다. 심지어 질힉은 구단 운영비용을 구단과 안필드를 담보로 대출하여 충당했다는것이 나중에 밝혀졌다.[6] 5차전까지 2위 올림피아코스에 승점 3점이 부족했던 리버풀은 올림피아코스 원정에서 1:0으로 패했기 때문에 16강을 위해서는 1:0으로 이겨 골득실 차로 2위가 되거나 2골 차 이상으로 이겨 상대 골득실에서 앞서 2위가 되어야 했다.[7] 챔피언스리그 최다점수차 승리다.[8] 결과적으로는 클린스만은 바이에른 뮌헨 감독이 되었다.[9] 리버풀의 공격력이 어느 정도 있던 전반기에는 수비가 말썽이었고, 리버풀의 수비가 안정화된 후반기에는 공격력이 말썽이었다.[10] 사실 로이 킨은 전형적인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였다. 다만 그의 수비력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맨유는 한 동안 전문적인 수미가 필요없었다.[11] 리그 출장도 없고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2부리그로 이적했다.[12] 욘 아르네 리세부터 제이미 캐러거, 사미 히피아, 게리 네빌과 동급으로 취급받는 스티브 피넌까지의 수비진은 리그 원, 투탑급이었으나 윙 자원이 노쇠화가 진행되던 루이스 가르시아, 우주먹튀 해리 키웰 정도라 제라드를 오른쪽에 기용할 정도로 부실했다. 요시 베나윤을 영입하면서 나아지긴 했으나 당시는 라이언 긱스가 현역이었고 호날두, 조콜, 로번 등의 세계적인 윙어들이 EPL에 집결해있던 때라 윙자원은 중위권 수준밖에 안되었다.[13] 공격진도 만만치않게 부실했는데, 페르난도 토레스 영입 이전까지 리버풀의 공격진은 부상을 달고 살아 별 거 못한 지브릴 시세, 애매한 골 결정력을 보여주던 디르크 카윗크레이그 벨라미, 그나마 활약했지만 A급은 못되었던 피터 크라우치정도였다. 이런데도 리버풀이 공격력이 약한 팀이라는 평가는 받지 않았으니 중원 장악 작전은 성공한 셈이다.[14] 루카스가 본격적으로 제몫을 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베니테즈의 마지막 시즌부터다.[15] 베니테스나 호지슨과 달리 상호 계약 해지 합의가 아닌 말 그대로의 해고 처분을 받았다. 이는 리버풀 역사상 최초라고.[16] 그보다는 씁쓸함이란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사실 라파 정도 클래스의 감독이 오랫동안 백수 생활을 하며 힐스버러 참사 추모식에 계속 참석해온 것만 해도 이미 리버풀에 성의를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은 조지 질레트와 톰 힉스 두 악덕 구단주들의 병크를 탓하는 의견이 압도적이다.[17] 디 마테오의 경우에는 테리의 부재로 인해 수비진이 개박살났던걸 전혀 고치지 못했지만, 베니테스는 고쳤다. 단지 이바노비치를 센터백으로 돌렸을 뿐이다.[18] 평균 99%의 점유율을 차지했는데 이날만큼은 겨우 91%를 찍었다. 즉 좌석 10개 중 1개가 비었다는 소리다. 이게 소규모 클럽이라면 몰라도 첼시만큼의 빅클럽, 게다가 좌석도 그다지 많지 않는 스탬포드 브리지에서는 상당한 타격이다.[19] 이 날 첼시 경기 해설을 맡은 첼지현장지현 해설위원은 이점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라파의 단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경기 내내 첼시가 질것 같다는 뉘앙스를 풍겼고 결국 이 경기 첼시는 졌다.[20] 물론 커뮤니티 쉴드와 프리미어리그, 챔스는 디 마테오가 말아먹은 것이긴 하지만 클럽 월드컵, 풋볼 리그 컵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FA컵은 이미 체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맨시티를 만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21] 영상에는 잘 안 나왔지만 베니테즈도 감격에 겨웠는지 상당히 울먹거렸다.[22] 첼시 선수들한테 설명을 할때 자기가 리버풀에 있을때는 선수들이 이렇게 저렇게 했다는 식으로 했다.[23] 참고로 이 날 바르셀로나는 리오넬 메시가 부상으로 선발 출전 여부가 불투명했으므로 최근의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도 레알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말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다.[24] 경기를 중계하던 한준희 해설조차 베니테즈의 교체에 잠깐 말문이 막혔을 정도. 여기에다 교체카드를 다 쓰지 않은 건 덤이다.[25] 경기후 밝혀진 바로는 마르셀루가 교체된 이유는 부상이었다.[26] 라리가 규정에는 비 EU출신 선수는 3명까지만 출전이 가능한데 4명을 보내서 몰수패를 당했다.[27] 베니테스와 직접적인 불화가 있었던 선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하메스 로드리게스 말고도 페페, 토니 크로스, 루카 모드리치 등이었다. 팀의 핵심 주전급 선수들과 다퉜으니, 이건 할말이 없다.[28]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 호날두에게 스탭을 시켜서 마킹맨을 따돌리는 법에 대해 공부하라고 영상을 보냈다고 한다. 모두가 인정하는 오프 더 볼 움직임이 극에 달한 선수에게 오프 더 볼 연습이나 하라는 그의 태도는 팀의 핵심선수의 특징조차 파악을 못한 것인지, 팀의 핵심선수와 기싸움을 한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최악이었던 셈. 여담으로 당시 호날두는 그에게 자신의 모든 골 영상을 보낼테니 그걸 가지고 공부하라고 응수했다고 한다.[29] 리그 29라운드 리버풀 2-0 뉴캐슬 리뷰 방송에서의 발언이다.#[30] 다만 원래 베니테스 감독의 내심 바랬던 영입대상은 리버풀로 간 샤키리였다.[31] 리버풀 인근 칼디 지역에 "우린 너(=베니테스 감독)의 집 주소를 알고 있어. 감독 계약 하지 마"라는 걸개가 걸리는 테러 비슷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32] 과격한 표현으로는 퇴물이 된[33] 이는 2016년 4월,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감독 체제 이후 에버튼 FC프리미어리그 최장기간 무승 기록이다.[34] 사실 누누도 레길론과 교체 지시 관련해서 불화가 생겨 10R 맨유전에서 벤 데이비스를 대신 출전 시켰다가 3:0 패배를 당한 바 있다. 다만 누누는 그 한 경기뿐이었던데다가 토트넘이 그 경기 이후 누누를 빠르게 경질해서 시즌 개막 이후에는 이렇다할 불화 이슈가 나올 턱도 없었을 정도였고, 심지어 에버튼의 경우 보드진이 디뉴 대신 베니테즈의 편을 들어주면서 더 속이 터지는 상황이다.[35] 이에 대한 팬들은 에버튼 구단주인 파하드 모시리가 팬의 역반응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선임을 강행했는데 반년만에 본인 결정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할 수 없어서 버티고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36] 축구팬이라면 제라드가 리버풀 FC출신이라는 것은 모두 안다. 즉, 이 또한 '리버풀에서 보낸 스파이'라는 조롱에 힘을 실어주는 사건이다.[37] 그가 거쳐간 팀 마다 굵직굵직한 선수들과 대부분(...) 불화설이 터졌다. 리버풀 시절에는 제라드와 알론소(결국 레알로 떠났다.) 인테르 시절에는 그 대인배 하비에르 사네티가 베니테즈를 디스했고, 나폴리에서는 에이스 마렉 함식이 그에게 불만을 드러냈다. 그리고 레알에서는 호날두,하메스 로드리게스와 불화설이 떴다. 그나마 조용했던 시기가 발렌시아나 첼시 시절을 꼽을 수 있지만 첼시 때는 램파드도 베니테즈에게 '좋은 관계를 맺는 감독은 많지만 베니테즈는 아니다'라고 대놓고 저격하기도 했다. 마테라치는 베니테즈를 보고 '그 놈은 인간성이 가장 큰 문제'라며 비난했다. 마테라치는 앙금이 어지간히 쌓였는지 베니테즈가 레알에서 경질당하자 "거봐 그럴줄 알았지ㅋ"라고 디스했다.[38] 특히 이런 전술에서 스네이더르는 쥐약이다. 스네이더르는 커리어를 통틀어 클럽이든 대표팀이든 빠르고 직선적인 팀 컬러에서 빛을 발했다.[39] 특히 트레블의 1등 공신급인 저 세 선수는 베니테스 부임 이후 상당한 부진에 시달리게 되는데, 그나마 평범 수준으로 클래스가 떨어진 마이콩은 양반이고, 스네이더르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우왕좌왕하다가 계륵 취급 받는 선수로까지 떨어져 쫓겨나다시피 이적했으며, 2009/10 시즌 챔피언스리그 최우수 선수였던 밀리토는 1년 반동안 리그 최악의 선수가 되어 황금쓰레기통상까지 수상하기에 이른다.[40] 엄밀히 말해서 전술쪽은 호불호도 갈리고 장단점이 존재하는데 진정한 단점은 이쪽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41] 반면 무리뉴는 제라드가 상대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애정을 드러냈던 것으로 유명하다.[42] 그런데 당시 로마 팬베이스에서 넥스트 토티가 될 인재를 너무 쉽게 넘겨줬다는 비난이 있었을 정도로 거래 자체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던 괜찮은 거래였다.[43] 다만 글렌 존슨은 가격이 비싸서 비판받지 리버풀에선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다.[44] 후임 감독인 마우리치오 사리는 이 선수들을 매우 잘 써먹으며 나폴리를 다시 부활시켰다.[45] 물론 데 구즈만과 가비아디니는 앞의 다섯 선수에 비하면 나폴리에서의 활약이 그리 오래간 것은 아니지만 이 다섯 명의 선수들이 베니테즈가 부임하던 시절에 모두 온 것은 안목만큼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46] 라파가 팔아먹었으면 팔아먹었지 발굴한 건 아니다.[47] 위에서 언급했던 가레스 배리 영입 시도 당시 가지고 있던 한정된 돈을 가지고 릭 패리 단장이 일방적으로 로비 킨을 사온 일화. 결국 킨은 기존 팀 선수들과 융화되지 못하고 6개월만에 토트넘으로 돌아간다.[48] 그런데 이 부분 예시가 이상한게, 페넌트는 이미 24살의, 아스날에서 성공하지 못해서 하위팀으로 갔다가 버밍엄에서 터져서 다시 빅클럽으로 이적한 경우이고, 엘 자르는 자유계약, 시나마와 르 탈렉은 울리에 감독의 영입이며 시나마같은 경우는 라파 부임 후 일년 반 동안 교체가 많긴 해도 리그만 22경기를 뛰었으니 그리 기회가 적지는 않았다.[49] 이들 유망주들은 정말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에, 특히 챔스 4강 8강에서 조커로 들어와서 무서운 활약을 보여주는 바벨 같은 경우는 대단히 안타깝게 재능이 소진되고 포텐을 못 터뜨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와서 보면 이들 유망주들은 리버풀과 라파에 재능을 빨렸으며 적기에 다른 클럽으로 이적해 자신의 날개를 펼 만한 기회를 제공받지도 못했다. 르 탈렉은 리버풀을 탈출하고 나는 리버풀의 노예가 아니라고 했을 정도로 무척 안타깝고, 이건 라파가 크게 잘못한 일이다.[50] 다만 토레스, 스크르텔, 알론소, 아게르, 넓게 보면 제라드나 캐러거 등 아주 어린 선수가 아니라 어느 정도 기량이 있어서 꾸준한 출장이 보장되는 선수의 경우라면 반 정도 터진 포텐을 다 터트리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이긴 한다.[51] 하지만 달글리시 체제에서 눈에 띈 유망주는 라파가 영입하거나, 라파가 키워 낸 아이들이다. 또한, 달글리시 체제에서 유망주가 적극적으로 기용 된 것은 선수의 이탈(오른쪽 수비수인 글렌 존슨과 마틴 켈리의 부상으로 인한 존 플라나간의 기용 / 중미 괴멸로 인한 쉘비의 기용 등) 때문에 불가피한 면이 컸다.[52] 6년을 부임했는데 라파의 손이 닿지 않은 유망주가 있다면 정말 괴상망측한 얘기다.[53] 알프 램지 어워드[54] 돈 발롱 어워드[55] 결과는 팀의 최고 레전드인 케니 달글리시가 부임하였다.[56] 리버풀로 가족 전체가 이민을 왔고 인테르와의 계약 후에도 계속 리버풀에 거주하고 있다. 아내 몬체 베니테스는 지역지와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심지어 에버튼 팬들에게까지 거의 지역 유지에 준하는 대접을 받고 있는 정도. 아이들 역시 영국에서도 괴악하기로 소문난 리버풀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스카우저가 되었다. 하지만 이 점이 훗날 베니테스가 리버풀의 지역 라이벌인 에버튼 감독으로 부임하는 데 영향을 미친 걸 보면 역시 '사람 인생은 모른다'는 말이 딱 맞아들어가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57] 그 중엔 스티븐 제라드의 사촌도 있다. 당시 최연소 희생자였다고.[58] 아테네에서 AC밀란의 반격으로 우승은 실패.[59] 베니테스의 에버튼 감독 부임 소식 이후 리버풀의 전설적 감독 6명(빌 샹클리, 밥 페이즐리, 조 페이건, 케니 달글리시, 베니테즈 그리고 위르겐 클롭.)의 그림을 새겼던 리버풀 걸개에서 베니테스의 얼굴만 지운 사진이 떠돌아다니고 있다.[60] 사생활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보니 일반적으로는 팬데믹 속에서 영국에 있는 가족들이 그리웠을거라고들 추측하지만, 부인이나 자식들의 건강 문제가 아닌가 하는 염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 정도로 동정적인 여론은 해외 팬들보다는 영국 현지 팬들과 전현직 리버풀 구단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더 강하다. 그리고 리버풀 팬들 입장에서는 냉정히 보면 에버튼 못지 않은 껄끄러운 사이인 첼시에서도 잠시 일하며 트로피도 들어본 감독이다보니 에버튼 따위는 봐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61] 무리뉴가 첼시를 떠난 후 희한하게 베니테즈와 무리뉴는 가는 팀이 겹친다. 무리뉴가 인테르에서 트레블을 이룬 후 레알에 가자 인테르는 베니테즈를 선임한 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 후 베니테즈의 임시감독 임기가 끝난 첼시에 무리뉴가 컴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