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하르트 코젤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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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nhart Koselleck
(1923년 4월 23일 ~ 2006년 2월 3일)

1. 개요
2. 생애
3. 사상
4. 대표 저서
5. 기타


1. 개요[편집]


라인하르트 코젤렉[1](Reinhart Koselleck)은 독일역사학자이다. 개념사(Begriffsgeschichte) 프로젝트로 매우 유명하며,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역사학자이자 역사이론가이다.


2. 생애[편집]


코젤렉의 생애 초반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파국과 긴밀하게 얽혀 있었다. 1941년 18세의 나이로 독일군에 입대하게 된 그는 동부 전선에서 보병으로 복무하였고, 종전 이후에는 소련군의 포로로 사로잡혀 카자흐스탄의 포로수용소에서 1946년 가을까지 있어야 했다. 그는 전쟁에서 그의 형과 동생을 비롯한 친지들과 상당수의 친구들을 잃었고, 포로수용소에서는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기도 하였다. 또한 포로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의 비극과 독일군에게 가족을 잃은 폴란드인들 감독자들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경험은 그의 역사관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구사일생으로 독일로 귀환한 그는 1947년부터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로 진학하여 카를 야스퍼스, 한스-게오르크 가다머, 카를 뢰비트, 헬무트 플레스너, 그리고 카를 슈미트와 같은 기라성 같은 학자들 밑에서 역사, 철학, 사회학, 공법을 공부하였다. 이윽고 1954년 기념비적인 박사논문 비판과 위기(Kritik und Krise)를 제출하면서 코젤렉은 독일 안팎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후 코젤렉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재직하던 베르너 콘체의 영향을 받아 사회사 연구에 몰두하였고, 1965년 교수자격논문으로 개혁과 혁명 사이의 프로이센(Preußen zwischen Reform und Revolution)을 제출한다. 이 저작의 핵심 테제는 나폴레옹 전쟁 시기 프로이센의 개혁이 독일 내에서 프랑스 혁명에 상응하는 부르주아 사회로의 변화를 유도했다는 내용으로, 오늘날까지도 프로이센의 개혁을 다루는데 있어 중요한 모노그래피로 다뤄진다.

교수자격논문 제출 이후 코젤렉은 1966년 보훔 대학교 정치학과 정교수와 1968년 하이델베르크를 거쳐 1974년 신생 대학인 빌레펠트 대학교의 근대사 및 이론 강좌의 정교수로 취임한다. 한스-울리히 벨러와 위르겐 코카를 비롯한 '역사적 사회과학'을 주창하는 사회사가들의 성지였던 빌레펠트 대학교에서 코젤렉은 1988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재직하면서 벨러, 코카와 함께 '빌레펠트 학파'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1972년부터 코젤렉은 콘체와 중세사가 오토 브루너와 더불어 역사적 기본개념들(Geschichtliche Grundbegriffe)로 알려진 '개념사'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된다. 1979년 출간된 지나간 미래(Vergangene Zukunft)와 더불어 코젤렉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역사적 기본개념들'은 역사학자 뿐만 아니라 철학자, 신학자, 법학자, 경제학자와 같은 독일 학계의 전문가들이 총출동하여 작업한 결과물로, 코젤렉은 콘체와 브루너 사후에도 1997년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총 7권(부록 포함 8권)으로 완간하였다. '역사(Geschichte)', '근대(Moderne)', '문화(Kultur)', '자유(Freiheit)', 진보(Fortschritt)와 같은 119개의 기본개념들이 근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의미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추적한 개념사는 2차 대전 이후 독일 역사학의 작업 중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3. 사상[편집]


코젤렉의 역사관에서 가장 중점인 문제는 '근대성'에 대한 심층적인 고찰이다. 코젤렉은 박사논문 '비판과 위기'에서 그 부제인 시민사회의 발병기원(Eine Studie zur Pathogenese der bürgerlichen Welt)에서 드러나듯이 계몽사상에 기원하는 근대 역사 철학의 '비판'에서 비롯되는 근대 세계의 '위기'를 해명하고자 하였다. 근대를 기본적으로 '위기'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코젤렉의 사상은 카를 슈미트를 비롯한 20세기 초반 독일 신보수주의의 비판적 근대관의 영향력이 강하게 보여지며, 또한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의 테제와도 상당부분 유사성을 보인다.

근대성을 둘러싼 그의 고찰은 대표작 '지나간 미래'와 '역사적 기본개념들'에서 진행된 개념사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1750년과 1850년 사이의 시대를 말안장시대(Sattelzeit)[2]로 규정하면서, 이 시기에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자유', '진보', '역사'와 같은 개념들이 근본적인 의미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고 파악하였다. 또한 코젤렉은 경험공간(Erfahrungsraum)과 기대지평(Erwartungshorizont)이라는 개념을 통해 근대성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근대에 이르면서 인간은 기존에 예측 가능했던 경험공간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기대지평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즉 근대 이전의 정태적 사회가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인간의 예측 범주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으로, 코젤렉은 근대화 과정을 경험공간과 기대지평의 분리로 설명하고자 한다.


4. 대표 저서[편집]


  • Kritik und Krise: Eine Studie zur Pathogenese der bürgerlichen Welt. Heidelberg, 1954 - 박사학위논문
  • Preußen zwischen Reform und Revolution: Allgemeines Landrecht, Verwaltung und soziale Bewegung von 1791 bis 1848. Heidelberg, 1965 - 교수자격논문
  • mit Louis Bergeron, François Furet: Das Zeitalter der europäischen Revolution 1780-1848 (= Fischer Weltgeschichte. Bd. 26). Fischer-Taschenbuch-Verlag, Frankfurt am Main 1969
  • mit Werner Conze und Otto Brunner(Hrsg.), Geschichtliche Grundbegriffe: Historisches Lexikon zur politisch-sozialen Sprache in Deutschland. 8 in 9 Bänden. Klett-Cotta, Stuttgart 1972–1997
  • Vergangene Zukunft: Zur Semantik geschichtlicher Zeiten. Suhrkamp, Frankfurt am Main 1979
  • mit Hans-Georg Gadamer: Hermeneutik und Historik. Winter, Heidelberg 1987
  • Der politische Totenkult: Kriegerdenkmäler in der Moderne. Fink, München 1994
  • Zur politischen Ikonologie des gewaltsamen Todes: Ein deutsch-französischer Vergleich. Basel 1998
  • Europäische Umrisse deutscher Geschichte: Zwei Essays. Manutius, Heidelberg 1999
  • Zeitschichten: Studien zur Historik. Mit einem Beitrag von Hans-Georg Gadamer. Suhrkamp, Frankfurt am Main 2000
  • The Practice of Conceptual History: Timing, History, Spacing Concepts (Cultural Memory in the Present). Stanford 2002
  • Vom Sinn und Unsinn der Geschichte: Aufsätze und Vorträge aus vier Jahrzehnten. Hrsg. von Carsten Dutt. Berlin 2010
  • Erfahrene Geschichte: Zwei Gespräche mit Carsten Dutt. Winter, Heidelberg 2013


5. 기타[편집]


코젤렉은 벨러 및 코카와 함께 종종 '빌레펠트 학파'로 분류되긴 하고 그의 개념사가 사회사와 접점이 맞닿아 있긴 하지만, 벨러는 그의 개념사 프로젝트를 상당히 미심쩍은 눈길로 바라보면서 개념사를 사회사에 종속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진보적인 성향의 여타 사회사가들과 다르게 코젤렉은 기독교 민주 연합을 지지하는 보수적 성향이라는 것 역시 상당한 차이점. 서독 사회사를 선도한 빌레펠트 대학에 속해 있었지만 코젤렉은 학문적 아웃사이더에 가까웠고, 오늘날에는 '위대한 아웃사이더'로 불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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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일어 발음대로라면 코젤레크라는 표기가 맞지만, 널리 통용되는 코젤렉이라는 표기로 문서명을 정하기로 한다.[2] 이 개념은 오토 브루너가 제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