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칭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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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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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진보당 제16대 총통 후보
라이칭더
賴清德(뇌청덕) | Lai Ching-te


파일:라이칭더 공식 사진.jpg

출생
1959년 10월 6일 (64세)
중화민국 타이완성 타이베이현 완리향
(現 신베이시 완리구)
재임기간
제1-2대 타이난 시장
2010년 12월 25일 - 2017년 9월 7일
제29대 행정원장
2017년 9월 8일 - 2019년 1월 14일
제15대 부총통
2020년 5월 20일 - 현직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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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라이차오진
어머니 라이퉁호
배우자
우메이루 (2018년 결혼)
자녀
2남
학력
타이베이현 완리향 완리 초등학교 (졸업)
타이베이현 만리중학교 (졸업)
타이페이시립 젠궈 고등학교 (졸업)
국립대만대학 의학원 (복건학계 / B.S.)
국립성공대학 의학원 (학사후의학계 / M.D.)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 (공공위생학 / M.S.)
소속 정당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4, 5, 6, 7
종교
가톨릭
경력
중화민국 국민대회 대표 (1996-1998)
중화민국 입법위원 (1998-2010 / 타이난시 )
제18대 민주진보당 주석 (2023-현직)


1. 개요
2. 생애
2.1. 정치인이 되기 전
2.2. 초기 정치 경력
2.3. 타이난 시장 경력
2.4. 행정원장 시절
2.5. 행정원장 이후
2.6. 부총통으로
3. 선거 이력
4. 기타



1. 개요[편집]


대만의 의사 출신 정치인. 민주진보당을 창립한 메이리다오 사건 이후의 세대로,[1] 민진당 내에서도 대만 민족주의 기조에 적극 찬동하는 신조류계(新潮流系, 참조)의 대표 주자에 해당한다.[2]

대만을 주권국가라고 주장하는 강력한 타이완 독립운동 지지자이며 하나의 중국' 원칙과 '92공식'을 부정한다.

2. 생애[편집]



2.1. 정치인이 되기 전[편집]


타이베이현 완리향(현 신베이시 완리구)의 가난한 광부 집안에서 태어나 지룽시 북부 해안가에서 자랐다. 그의 부친 라이차오진(賴朝金)은 완리에서 태어나 루이팡에서 광부로 일했으나 라이칭더가 2살 때 탄광 폭발 사고로 사망하여, 라이칭더의 모친이 홀로 여섯 자녀를 키웠다고 한다.

라이칭더는 완리 초등학교(萬里國民小學), 만리 중학교(萬里國民中學)을 나와 대만의 최고 명문고인 타이베이시립 젠궈고등학교(建國高級中學)에 입학했다. 중국국민당의 총통 후보였던 주리룬과 고등학교 동기라고 한다.

건국고등중학을 졸업하고 1978년 국립대만대학 의학원 재활학과(復健學系)[3] 입학, 1982년 졸업 후 인제의원(仁濟醫院)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했다.

1986년 국립성공대학 의대(醫學院) 학사후의학과(學士後醫學系)[4]에 진학해 1991년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이후 1994년까지 3년간 국립성공대학병원에서 전공의로 수련을 받고 신장내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신러우 병원(新樓醫院)과 성대병원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Havard School of Public Health)에서 수학하여 2003년 공공보건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역대 행정원장 소개성공대학 동문소식 참조.

2.2. 초기 정치 경력[편집]


1994년 타이완성 성장 선거에 민주진보당 후보로 출마한 천딩난의 선대위에서 '전국의사후원회' 회장을 맡아 선거운동을 도운 것을 계기로 정치에 뜻을 갖게 되었다.

1994년 타이난시장 선거 후보로 출마하려고 민주진보당에 입당하였으나, 타이난 시장 후보로 지명받지 못했다. 1996년 국민대회(제3대) 선거에서 타이난 지역구 국민대표로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1998년 대만 입법위원 선거타이난지역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고, 2001년, 2004년, 2008년까지 모두 당선되어 4선을 하였다.

2.3. 타이난 시장 경력[편집]


2010년 대만 지방선거인 대만 지방공직인원 선거타이난 시장 후보로 출마하여 60%의 득표율로 중국 국민당 후보를 큰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되었다. 2014년에는 홍콩 우산 시위의 여파로 반중국 성향을 지닌 시민들의 표가 몰리면서 72%까지 득표율이 더 높아졌다.

타이난 시장 재직 초기인 2011년 마잉주 당시 중화민국 총통한어병음 사용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이에 따라 타이난시에서는 모든 지명 표기법이 통용병음이나 우정식 병음,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을 사용하도록 조례로 정했다. 이 때문에 타이난타이완 철로관리국 소속 역을 제외한 모든 역이나 버스정류소, 도로 이름이 전부 통용병음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자매결연도시인 광주광역시에서 이름을 딴 광주로(光州路)의 영문 명칭이 통용병음을 따라 "Guangjhou Road"로 바뀌었다. 지금은 한국어 로마자 표기법을 따라 "Gwangju Road"로 영문명칭이 또 바뀐 상태.

재선된 이후인 2016년 타이난 시 공용어에 영어를 추가하였다.


2.4. 행정원장 시절[편집]


2017년린취안 행정원장(국무총리 격)이 경제지표 부진과 대만 정전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2017년 9월 8일에 라이칭더를 행정원의 행정원장으로 임명되어 시장직을 사퇴하고 타이베이로 갔다. 2018년 7월에 라이칭더 주도로 2019년 1월 2일부터 대만의 공용어영어를 추가하는 영어공용화법을 통과시켰다.

2018년 10월에는 낮은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차이잉원 총통 대신 2020년 대만 정부총통 선거민주진보당 총통 후보로 지명될 수 있는 잠재 대권주자로 평가받은 바 있다.

2018년 11월 24일의 대만 지방공직인원(지방정부) 선거에서 민진당이 6개 주요 단체장 가운데 2곳만 당선되며 패배하자 사의를 표했다. 차이잉원 총통은 이를 즉각 반려했지만, 약 2주가 지난 12월 초에 "적당한 시기에 사퇴할 것"임을 밝혀 행정원장을 그만둘 것임을 재확인했다. 새해 예산안의 처리를 전후로, 타 부처 부장(장관)들과 함께 내각을 떠날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예상대로 2019년 새해 예산안의 통과 직후인 1월 11일 행정원장 사퇴를 발표했다. 이후 차이잉원의 간곡한 만류로 사퇴가 반려되는 듯 했으나 3월 결국 사임하면서 총통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2.5. 행정원장 이후[편집]


행정원장직을 떠난 후에는 개헌과 타이완 독립운동을 주장하며 민진당과 독립 진영의 지지를 호소하는 행보를 보였다.# 다만 차이잉원 계파가 장악한 민주진보당에서는 라이칭더 前행정원장의 개헌 발언이 즉각적인 개헌안 발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3월 18일 민진당 총통선거 후보 경선에 출마할 것임을 공식 선언했다. 이로써 재선에 도전하는 차이잉원 현 총통과 치열한 당내 경쟁을 치르게 되었다. 대만에서는 민주화 정착 이래 총통이 연임 의사가 있다면 대체로 당에서도 그 의사를 존중해 경선을 치르지 않고 바로 후보로 올리므로, 라이칭더의 경선 출마는 2018년 지방선거 참패로 인해 당 내부에서도 차이잉원은 끝났다고 평가받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또한 차이잉원의 소위 화독, 두 개의 중국에 가까운 성향과 온건한 양안관계 현상유지 정책에 타이완 독립운동 성향을 가진 당 원로들이 불만을 가지고 차이잉원보다 강경한 독립 성향으로 평가되는 라이칭더를 밀어주었다고 한다. 참조

5월에 들어 여론조사에서 차이잉원 현 총통을 앞서는 것은 물론, 한궈위 가오슝 시장을 비롯한 국민당 측 후보들과도 격차를 좁히며 민진당 내 후보 경선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총통이 되더라도 대만 독립을 선언하지 않을 것"이라며 급진 이미지를 누그러 뜨리려는 것으로 평가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라이칭더의 해당 발언은 대만이 이미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며, 그동안 본인이 견지해 온 타이완 독립운동(대독)의 지지를 철회하고 화독으로 돌아선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중국과 별개의 독립 주권 국가로서 대만의 정체성을 강조한 것.

라이칭더(賴清德) 전 대만 행정원장(사진 오른쪽·59)이 내년 있을 대만 총통선거에서 국민당 후보에 맞설 민진당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당 후보들과의 격차를 좁히면서다. (...)

지난 14일 대만 빈과일보가 여론조사기관 뎬퉁(典通)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라이 전 원장은 한 시장과의 가상 양자대결에서 39.7%의 지지율을 얻어 40.1%의 지지를 받은 한 시장과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였다. 연초부터 여러 매체에서 여러 차례 여론조사를 해왔지만 소숫점대 접전을 벌인 것은 처음이다. 같은 조건의 가상대결에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사진 왼쪽)이 민진당 후보로 나설 경우 37.4%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치면서 한 시장보다 5%포인트가량 뒤쳐진 것과 대조적이다. 대만 현지 언론들은 “국민당 후보들의 지나친 친중(親中) 행보에 불안감을 느낀 유권자들이 차이 총통의 대안으로 라이 전 원장을 지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민진당의 공천을 받을 후보 적합도 지지도 조사에서도 라이 전 원장은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는 30.7%의 지지율을 얻어 25.3%의 차이 총통을 앞질렀다. 6월 이후로 예정된 당내 경선에서도 차이 총통을 누르고 민진당 총통후보로 지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만 트럼프'에 맞설 적임자…라이칭더(賴清德)는 누구?


그러나 라이칭더가 차이잉원을 계속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져 나오자, 차이잉원의 파벌이 장악하고 있던 민진당 지도부는 4월 15~17일로 예정되어있던 총통후보 경선을 뚜렷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5월 22일 이후로 미루었다. 참조. 6월 초에도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던 경선을 위해 차이잉원이 원하는 대로 경선룰을 거의 다 양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차이잉원측에서 부정선거 시도를 벌인다는 소문이 돌자 라이칭더도 분노하고 말았다. 참조.

이렇게 민진당은 계속 시간을 끌며 차이잉원의 치적 홍보에 열을 올렸고, 특히 6월 9일부터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지면서 정세가 불안해지자 국정 안정론에 힘입어 현직 총통인 차이잉원의 지지율이 상승했다. 경선에서 차이잉원은 "개혁은 절반만 완성했다"며 정책 지속성을 위해 자신의 재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對中정책에서는 "트러블 메이커가 되지 않은 채 국제사회의 지지를 넓혀나가도록 하겠다"고 온건한 입장을 취했다. 반면에 라이칭더는 대만독립파를 지지 기반으로 해서 대만이 제2의 홍콩이 되지 않게 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으로 맞섰다. 차이잉원 무색케하는 '초강경파' 라이칭더, 차기 대만 대권주자 급부상

6월 13일 한궈위 중국국민당 후보, 커원저 대만민중당 후보와의 3자 대결 여론조사 방식으로 실시된 경선 결과에서 27% 대 35%로 차이잉원 총통에 8%p차로 패배하고 말았다. 양자 대결이 아닌, 차이잉원측의 주장대로 3자 대결을 가정하자 라이칭더의 강경한 대만독립 입장에 대해 중국의 위협을 염려하는 유권자들이 커원저로 넘어가면서 차이잉원 대비 라이칭더의 상대적으로 지지세가 낮아졌다고 한다. 참조. 그러나 결국 총통 선거에 커원저는 출마하지 않았다.

경선 과정에서 온갖 부당한 조치를 당하였으나, 경선 패배 후에는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대인배스러운 면모를 보이면서 민진당 내부의 단결을 주창했다. 총통 선거에서는 차이잉원 총통의 지지를 호소하며 선거 운동에 나섰고, 11월 17일에 차이잉원은 그를 부총통 후보로 지명했다. * 그리고 2020년 총통 선거 결과 민진당이 승리하면서, 부총통에 당선되었다.


2.6. 부총통으로[편집]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국 대만의 2인자이자 차이잉원의 뒤를 잇는 민진당의 차기 대권주자로서 확고히 떠올랐다.2024년 총통선거에서 민진당 후보로 확정, 출마한다면, 리덩후이롄잔 이후 부총통 출신으로 대만 총통 선거에 도전하는 3번째 사례가 될 전망이다.

미국의 부통령과 마찬가지로 대만의 부총통에겐 별다른 권력이 없고, 존재감도 없어서 부총통이 아니라 행정부의 수반인 행정원장이 자타공인 넘버2로 여겨진다. 즉, 라이칭더는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총통 차이잉원의 대권을 방해한 인물로 찍혀서 총통 선거 승리에 크게 공헌했음에도 불구하고 견제당한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역대 부총통을 보더라도 장징궈가 후계자로 점찍어놓았던 리덩후이를 제외하면 롄잔은 부총통을 지낸 후 대권 도전에 실패하고 말았고 이외에는 부총통이 총통 후보가 된 적도 없다. 라이칭더의 전임 부총통(차이잉원 1기)인 천젠런코로나 19 사태 이후 대만 방역의 우수성을 알리는 인물로 세계 언론을 탔으나, 실제 재임 기간에는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다.

다만 당내에서는 차이잉원이 천수이볜 시절보다 독립에 소극적인 것에 불만을 품은 원로들이 강경 대만독립파인 라이칭더를 총통으로 밀었고, 심지어 당내 경선에 불복해 독자후보를 내겠다고 했을 만큼 민진당 내부에서도 反차이잉원 기류가 강하게 존재하고, 차이잉원 입장에서는 이들 대만독립파의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라이칭더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만큼, 라이칭더 부총통이 이를 세력 기반으로 재기하여 2024년 총통 선거에 도전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인지가 주목된다.

총통 선거가 치러진 지 약 3주 후인 2월 초에 미국을 방문했다. 차이잉원의 재선 취임 선서가 거행된 5월 20일부터 정식으로 부총통 직무를 시작했다.

부총통직의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19 판데믹 사태가 터지면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차이잉원파(英派)에서는 라이칭더 부총통을 견제하며 차이잉원의 후계자로 밀었던 정원찬 타오위안시장이 타오위안의 방역 실패로 지지율이 급전직하한 데 반해서, 하버드대 석사를 나온 의사 출신 라이칭더 부총통은 전문성을 과시하며 여론조사 결과 과반에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

신조류파의 대표로서 대만 독립에 대한 찬동 의사를 적극적으로 강조하며 지지자들의 지지를 결집시키고 있고, 취임 초부터 미국 방문에 이어 2022년 1월 27일에는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회동하면서 1979년 미국-중화민국 단교 후 최초로 양국 최고위급(부통령) 대면 대화를 성사시켰다.# 그리고 특히 대일관계에서는 정치인 데뷔 이후부터 계속해서 대만-일본의 연대를 강조해왔고,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할 정도로(대만 부총통, 아베 조문 위해 일본행…단교 이후 최고위급 방일)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점차 독자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2022년 11월 26일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이 대패하면서 차이잉원 총통이 당 주석을 사퇴하자, 한 달만에 주석 선거 출마를 선언하였다. 1월 15일에 실시된 당 주석 선거 결과, 99.65%의 득표율로 당선되어 1월 18일에 새 민주진보당 주석에 취임했다.

2022년 현재 2년 앞으로 다가온 차기 총통 선거에서, 중국 국민당허우여우이 신베이 시장과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당선된다면(허우여우이가 당선되어도 마찬가지지만) 대만대 법학과의 24년 동안의 정권 독식은 끝나며, 마잉주에 이어 두 번째 젠궈고등학교 출신 총통이 된다. 라이칭더가 총통이 되면 국립대만대학의 정권 독식은 유지(라이칭더는 대만대 의대 출신)되며, 허우여우이가 총통에 당선되면 국민대만대학의 정권 독식 자체가 깨진다(허우여우이는 중앙경찰학교 출신).

2023년 3월 4일에 국민당 쉬슈화(許淑華)의 난터우현장 취임으로 인한 사퇴로 치러진 난터우현 제2선거구 입법위원 보궐선거에서, 민진당 차이페이후이(蔡培慧) 후보가 접전 끝에 국민당 린밍전(林明溱) 전 현장을 꺾고 승리하였다.[5] 이 선거구는 2008년 분구한 이래로 국민당이 한 번도 뺏기지 않은 선거구라서 그 의미가 크다. 일단 당 주석 취임 후 첫 발걸음은 아주 완벽하게 디딘 셈.

민주진보당 대선 경선 후보 등록 기간 동안 등록한 후보가 라이칭더 한 명 밖에 없어 자연스럽게 차기 대선 후보로 확정[6]되었다.

3.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3대 국민대회 선거
타이난시 제1선거구


41,083 (21.63%)
당선 (1위)
초선
1998
제4대 입법위원 선거
타이난시
31,296 (10.60%)
당선 (4위)
초선
2001
제5대 입법위원 선거
45,899 (13.98%)
당선 (2위)
재선
2004
제6대 입법위원 선거
45,997 (14.51%)
당선 (3위)
3선
2008
제7대 입법위원 선거
타이난시 제2선거구[7]
88,172 (51.64%)
당선 (1위)
4선
2010
5대 직할시 시장 선거
타이난시
619,897 (60.41%)
초선
2014
6대 지방공직인원 선거
711,557 (72.90%)
재선
2020
제15대 정부총통 선거
중화민국 자유지구
8,170,231 (57.13%)
초선
2024
제16대 정부총통 선거





4. 기타[편집]


  • 타이난 시장 재직 당시 공무 수행으로 인해 탑승했던 고속철도 열차 안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자 전직 의사로서 응급 조치를 했던 적이 있다.중국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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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으로 치면 포스트 386의 입구에 들어간 세대. 다만 본인은 1959년생으로 한국으로 치면 386보다도 나이가 많다.[2] 신조류계는 대만 민족주의를 내세우기는 하지만, 구성원 모두가 대독파는 아니다. 라이칭더와 같은 신조류계인 정원찬 타오위안시장과 천쥐 감찰원장은 화독파다.[3] 1967년 국립대만대학 의학원 의사기술학과(醫事技術學系)에 증설된 물리치료 전공을 기원으로, 1970년 직업치료 전공이 증설되어 학과(복건학계)로 독립하였다.[4] 국립성공대학 의학원은 1983년 8월 한국의 의학전문대학원에 해당하는 학사후의학과, 약칭 後醫系로 대학을 졸업한 학사를 입학시켜 4년의 학과 과정과 인턴에 해당하는 1년의 실습 과정으로 이루어진 5년제 과정으로 출발했다. 이 학사후의학과는 1984년 2월 제1회 신입생이 입학했으므로 라이칭더는 성대 후의계 3기생이다. 참고로 성대 의대에 예과 과정을 포함한 7년제 의학사 과정은 1992년 설치되었다.[5] 개표 내내 차이페이후이가 1000표 가량 앞서갔다.[6] 차이잉원계에서는 정원찬이나 천젠런을 부총통 후보로 밀어 계파의 안정 도모와 차차기를 노리는 전략을 쓴 듯 하다.[7] 현재의 타이난시 제2선거구와는 이름만 같고 관할구역이 다르다. 당시의 타이난 2구는 현재 타이난시 제5선거구가 대부분 관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