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도나 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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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도나 해리스
LaDonna Harris


파일:라도나 해리스 이미지.jpg

본명
라도나 비타 타비타이트 해리스
LaDonna Vita Tabbytite Harris
출생
1931년 2월 26일 (93세)
미국 오클라호마주 템플
학력
코만치 자치 공동체 교육 (이수) (1931년~1937년)
오클라호마 주 공립 초등학교 (졸업) (1930년대~1940년대)
오클라호마 주 공립 중학교 (졸업) (1940년대)
오클라호마 주 공립 고등학교 (졸업) (1940년대)
직업
정치인, 사회 운동가, 교육자
활동
1964년 ~ 현재
신체
불명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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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해리스 가문
국적

종교
코만치족 전통 종교[1]
지지
정당


부모
친부: 도널드 크로포드
(Donald Crawford, ? - ?)
친모: 릴리 타비타이트
(Lilly Tabbytite, ? - ?)
배우자
남편: 프레드 R. 해리스 (Fred Roy Harris, 1930 - )
(1949 - )
자녀
장녀: 캐스린 해리스
(Kathryn Harris, ? - )
장남: 바이런 해리스
(Byron Harris, ? - )
차녀: 로라 해리스
(Laura Harris, ? - )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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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시민당 부통령 후보
코만치족 사회 운동가
인디언 기회를 위한 미국인들 회장}}}}}} ||}}}}}}}}} ||

1. 개요
2. 활동
2.1. 생애 초기
2.2. 정치인으로서 행적
2.3. 사회 운동가으로서 행적
3. 평가
4. 여담



1. 개요[편집]


미국정치인, 사회 운동가, 교육자. 최초로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 미국 부통령 후보가 된 아메리카 원주민아일랜드계 미국인의 혼혈이다.[2]


2. 활동[편집]



2.1. 생애 초기[편집]


외할아버지가 코만치족 주술사(medicine man)이며 외할머니와 친모 릴리 타비타이트는 코만치 자치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친부 도널드 크로포드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이었다.# 그래서 라도나가 태어난 1931년 당시 인종적으로 섞인 커플(racially mixed couple)이라는 이유로 미국에서 멸시를 받았고, 얼마 안지나 친부는 라도나의 가족을 떠났다. 라도나는 이후 친모가 속한 코만치 자치 공동체에서 코만치어를 배우고 코만치족의 문화와 전통 등을 배웠고, 6살 때까지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 공립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영어를 배워야 했지만 집에서 계속 코만치어를 썼으며,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별로 없었다. 외할머니가 기독교를 믿었지만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코만치 부족의 전통 신앙을 받아들였다.

오클라호마 주의 공립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이후 남편이 될 프레드 로이 해리스를 만났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레드와 결혼했다. 이후 프레드가 1956년 오클라호마 주 상원 의원 후보가 되었을 때 옆에서 지원했다. 1964년 남편 프레드가 미국 상원 의원이 되었을 때쯤에는 1남 2녀를 낳았으며, 남편과 자녀와 함께 워싱턴 D.C.로 이사갔다.


2.2. 정치인으로서 행적[편집]



2.2.1. 미국 국회 내 활동[편집]


1964년 이후 남편 프레드의 지원을 받아서 오클라호마 주 내 원주민 권리 신장 단체인 "Oklahomans for Indian Opportunity (OIO)"를 설립했고, 미국 국회가 아메리카 원주민 단체들에게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요청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린든 B. 존슨이 라도나의 원주민 권리 신장 활동을 지지했으며, 1968년 미국의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를 관리하는 미국 연방 소속 단체 "National Council on Indian Opportunity (NICO)"의 일원으로 임명했다.

라도나는 존슨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서 미국 국회에서 최초의 아메리카 원주민 교육 강의 "Indian 101"를 시작했으며, 당시 모든 미국 국회 의원들이 필수적으로 배우도록 했다. 라도나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미국 국회의원들을 가르친 강사가 되었다.


2.2.2.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편집]



파일: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시민당 후보.png

1980년 본선 시민당 캠페인 당시 배리 코머너와 라도나 해리스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군소정당인 시민당의 부통령 후보가 되었으며, 미국 환경학자이자 시민당 대통령 후보인 배리 코머너(Barry Commoner)와 함께 선거 본선에 참여했다.

미국 민주당지미 카터를 대체할 수 있는 리버럴 성향의 제3의 정당이라고 본선에서 강조했다. 대선 구호는 "Move Over(자리를 비켜라)".#

군소정당이라서 부통령이 될 가능성은 없었으며 본선에서 패배하고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 조지 H. W. 부시가 부통령이 되었다. 그래도 29개의 주들과 워싱턴 D.C.에서 지지 표를 득표하면서 군소정당치고는 어느 정도 선전했다.

최초로 미국 부통령 후보가 된 여성 아메리카 원주민이라는 선례를 남겼다.


2.3. 사회 운동가으로서 행적[편집]


1970년 라도나는 "National Council on Indian Opportunity (NICO)" 단체를 나와서 아메리카 원주민 권리 신장 단체 "인디언 기회를 위한 미국인들(Americans for Indian Opportunity (AIO))" 단체를 설립했으며, 단체 회장이 되었다. 라도나는 미국과 세계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화, 정치, 경제 등의 권리들이 신장되는 것을 도왔다. 2020년대 시점에도 여전히 인디언 기회를 위한 미국인들의 회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타오스 푸에블로족뉴멕시코의 블루 레이크 지역을 되찾게 도와주었으며, 메노미니(Menominee) 부족이 미국 연방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도록 지원했다.

2012년 체로키 족 혼혈인 조니 뎁미국 뉴멕시코의 원주민 부족 코만치의 일원이 되도록 도왔다. 조니 뎁의 코만치족 이름은 "마우메(Mah-Woo-Meh)." 변신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영화 《론 레인저》를 촬영할 때 라도나는 조니 뎁이 코만치족의 일원인 톤토 역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 조니에게 코만치족의 일원이 되도록 초대했으며, 조니 뎁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해리스의 집에서 코만치족 환영 의식을 치렀다. # #

I reached out, and Johnny was very receptive to the idea... He seemed proud to receive the invitation, and we were honored that he so enthusiastically agreed. Welcoming Johnny into the family in the traditional way was so fitting... He’s a very thoughtful human being, and throughout his life and career, he has exhibited traits that are aligned with the values and worldview that Indigenous peoples share.

제가 조니에게 연락을 했을 때 조니는 제 생각에 매우 수용적이었어요... 그는 초대를 받았다는 것에 매우 자랑스러워했고, 우리 (코만치족)은 조니가 매우 열정적으로 동의한 것에 영광으로 생각했어요. 조니를 코만치족의 일원으로 전통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알맞아요... 조니는 매우 사려깊은 인간이며, 그의 삶과 경력에서, 그는 부족민들이 공유하는 가치관들과 세계관과 일치하는 특징을 보였어요.

- "인디언 기회를 위한 미국인들(Americans for Indian Opportunity)" 단체 회장 라도나 해리스의 말. #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의 당선된 1일 후인 2017년 1월 21일, 2017년 여성 행진에서 명예 공동 의장으로서 참여했다.

2019년 조니 뎁이 디올의 광고 "Sauvage"를 찍을 때 아메리카 원주민 비슷하게 옷을 입고 아메리카 원주민 분위기를 내자 트위터에서 문화적 전유와 인종차별이라고 비판을 하고 디올이 "우리 디올은 다양성을 지지하며 어느 형태의 차별이든지 반대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광고를 내렸는데 라도나는 조니를 지지했다. # #


3. 평가[편집]


코만치족 최초로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 후보가 되었고 미국 내 아메리카 원주민의 권리 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등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 내에서 마틴 루터 킹과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다.


4. 여담[편집]


  • 라도나처럼 미국 부통령 선거 후보인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찰스 커티스가 있다. 라도나와는 달리 찰스 커티스는 허버트 후버의 러닝메이트로 미국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가 되어서 부통령이 될 수 있었다.
  • 미국 정치인 출신 인물 중 90대가 넘었는데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인물이다. 다만 미국 국회에서 직접 활동은 하지 않고 본인이 설립한 아메리카 원주민 권리 신장 단체 "인디언 기회를 위한 미국인들"에서 활동하면서 미국 정치인들과 교류하고 있다.

[1] 외할아버지가 코만치족 주술사(medicine man)이었으며, 6살때까지 영어를 안 배우고 코만치어만 배울 정도로 코만치족의 전통을 받아들였다.# [2] 라도나 이전에 미국 부통령이 된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인물이 있는데 찰스 커티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