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시 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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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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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시 딘
Dixie Dean
본명
윌리엄 랄프 딘
William Ralph Dean
출생
1907년 1월 22일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버컨헤드
사망
1980년 3월 1일 (향년 73세)
잉글랜드 머지사이드리버풀
구디슨 파크
국적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
신체
178cm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 / 은퇴)
소속
트란메어 로버스 FC (1923~1925)
에버튼 FC (1925~1937)
노츠 카운티 FC (1938~1939)
슬라이고 로버스 FC (1939)
애쉬튼 유나이티드 FC (1940)
국가대표
파일: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6경기 18골 (잉글랜드 / 1927~1932)

1. 개요
2. 선수 경력
3. 사망과 그 이후



1. 개요[편집]


잉글랜드의 축구선수이며 에버튼 FC의 레전드이다.

리그(에버튼)
399경기 349골
클럽통산(에버튼)
447경기 395골


2. 선수 경력[편집]


딕시 딘은 유년기 시절부터 축구를 매우 좋아했고 자신의 유일한 교훈은 축구라고 생각했다. 14살 때 학교를 나와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23년부터 3부 리그 팀인 트랜미어 로버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총 27골을 기록해 1부 리그 클럽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 당시 수비수의 거친 태클에 의해 한쪽 고환이 파열되기도 하였다. 그는 에버튼으로 이적하였고 딘의 본격적인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27-28시즌엔 무려 60골을 기록해 한 시즌 최고 득점자로 당당히 올라왔고 팀의 세번째 우승의 주역으로 남았다. 30-31시즌엔 팀은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수치에도 불구하고 소속팀에 계속 남아서 엄청난 활약으로 바로 승격시키고 31-32시즌엔 팀의 네번째 우승의 주역으로 남았다. 1937년 이후로 에버튼에서 나온 후로는 조금 더 선수 생활을 했고 1940년 부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였다.


3. 사망과 그 이후[편집]


1980년 3월 1일 머지사이드 더비를 관람하다 심장마비로 별세하였다.

2001년 구디슨 파크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그의 전기 영화로 제작할 예정이며, 토비 켑벨이 맡는다.

딕시 딘을 향한 찬사들이 있다.
첫번째로 "9번이 골잡이의 대명사가 된 이유는 딕시 딘이다."
두번째로 빌 샹클리는 "그는 베토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라고 말한바 있다.

단일 시즌 60골이 깨지는 날이 올까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나에게 단일 시즌 60골의 기록이 깨질 것 같냐고 물어보고는 한다. 나는 깨질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 가능할 것이다. 물 위를 걷는 친구 말이다. 나는 그가 이 기록을 깰 유일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라고 답한 바 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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