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폰트 플라자 방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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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듀폰트 플라자.jpg



Dupont Plaza Hotel Arson

1. 개요
2. 듀폰트 플라자 호텔
3. 방화
4. 피해
5. 화재 이후


1. 개요[편집]


1986년 12월 31일 미국푸에르토리코 산후안 지역의 듀폰트 플라자에서 발생한 방화사건. 노사분쟁으로 호텔과 갈등하던 직원 3명이 호텔에 불을 질렀고, 이 방화로 97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와인코프 호텔 화재사고에 이어 미국서 두번째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호텔 화재, 그리고 푸에르토 리코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호텔 화재다.


2. 듀폰트 플라자 호텔[편집]


듀폰트 플라자 호텔은 건축가 Osvaldo L.Toro와 Miguel Ferrer이 설계하고, 1963년 10월 4일 오픈했다. 당시 이름은 Puerto Rico-Sheraton호텔이었다. 호텔 높이는 22층, 내부에는 카지노와 남쪽, 북쪽에 각각 1곳씩 볼룸이 있었고, 인근에는 올림픽 경기가 열려도 될 규모의 수영장과, 수영장을 낀 바가 있었다. 호텔은 1979년 San Juan Dupont Plaza 회사에 매입됐고, 이름을 듀폰트 플라자 호텔로 바꾸었다.


3. 방화[편집]


당시 호텔의 직원들은 호텔 경영진들과 노사분쟁으로 갈등이 있었다. 호텔과 직원 연합간의 협상은 1986년 10월에 시작됐다. 당시 호텔 노조는 직원 450명 중 250명이 있었는데, 호텔측은 노조에 있던 60명을 자르고,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로 대체할 생각이었다. 노조들은 반발했다. 화재가 있기 전에 3번의 작은 화재가 발생했고, 호텔은 경비원을 30명 더 늘렸다. 노조와 호텔 경영진간의 갈등이 점점 커지자, 호텔은 사무원과 택시 기사, 그리고 인근 음식점 직원들과 관광객들에게 호텔과 카지노로부터 떨어지라 경고했다.

사고 당일, 호텔 노조측은 점심을 마친 뒤 호텔 볼룸에서 미팅을 가졌다. 미팅이 끝난 오후 3시, 125명의 직원들은 한밤중에 파업을 시작하는 쪽에 표를 줬는데, 그때는 새해 전날이라 호텔이 거의 가득 차 약 1000여명의 손님이 있을 시기였다. 방화가 있기 2시간 전, 경찰이 호텔에 폭탄이 설치됐을 수 있다는 경고를 했지만 폭탄은 찾지 못했다.

몇몇 직원들이 볼룸 근처서 일부러 싸움을 일으켜 시선을 돌린 사이,호텔 노조의 3명, Héctor Escudero Aponte[1]와 José Rivera López(바텐더. 당시 40세), 그리고 Arnaldo Jiménez Rivera(바텐더. 당시 29세)는 호텔 관광객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불을 지를 계획을 세우고, 오후 3시 30분 경, 호텔 1층의 볼룸 근처의, 매트리스와 의자, 커튼등의 새 가구들이 가득찼던 창고에 음식 조리용 연료 캔[2]들을 열어 연료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3] 가구들은 비닐 랩으로 감싸져 있었는데, 가구가 타면서 비닐랩이 순식간에 불타오르고, 불길이 급작스럽게 볼룸으로 불이 번지는 플래시오버현상이 일어났다. 플래시오버 현상은 로비와 카지노를 가로 막던 창문을 다깨버렸고, 불은 금새 카지노와 로비로 번졌고, 비닐이 타면서 생긴 유독가스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화재 경고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당시 카지노에는 150여명의 손님들이 있었고, 대다수의 사망자는 카지노에서 나왔다.

몇달 전, 호텔 직원들이 도둑을 막겠다고 비상구들을 전부 잠궈버렸고, 이 때문에 유일한 출입구는 정문을 통해 나가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가스로 가득 찬 상황에서 정문으로 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거기다 1985년 6월에 이미 한번 스프링클러를 비롯한 소방장비 오작동, 대피계획이 부족하단 이유로 지역 소방서의 검사서 안좋은 평가를 받은적이 있었는데# 이것 또한 고객들이 대피하는데 크게 지장을 줬다. 3시 40분 경 소방서에 신고가 들어왔고, 소방대가 출동했다. 연기는 계단과 엘레베이터를 통해 호텔 전체로 퍼져나갔고, 객실의 사람들은 가구를 창가로 던져 창문을 깨고 구조를 요청했다. 다리가 부러질 각오를 하고 창 밖으로 뛰어내린 사람들도 있었다. 소방차 40대, 100여명의 소방관, 그리고 55대의 구급차가 듀폰트 플라자 호텔로 출동했고, 구조를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이불을 묶어 줄을 만들고 내려가기도 했다. 옥상으로 대피한 사람들을 밑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돕고, 본 경찰헬기가 이들을 구조하려 시도했으나, 호텔 옥상에 엘레베이터 장비와 안테나를 비롯한 각종 시설물들이 있어서# 헬기가 착륙하기 쉽지 않았다. 헬기는 모서리에 간신히 착륙했고, 고객들을 구조했다. 이후 주 방위군 헬기와 해안 구조대 헬기, 루즈벨트 로즈 해군기지의 헬기까지 투입되어 사람들을 구조했다. 헬기로 구조된 사람은 약 150여명이었다. 구조된 사람중에는 방화를 저질렀던 Arnaldo Jiménez Rivera도 있었다. 소방차와 구급차로 구조된 사람들은 부상자들은 병원으로 옮겨지기엔 너무 급해서 호텔 수영장 근처서 긴급히 치료를 받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불은 다행히 3시간만에 꺼졌으나, 연기는 밤새도록 치솟았다.


4. 피해[편집]


사망자는 97명, 부상자는 140명이었다. 사망자의 시신은 불에 너무 훼손된데다가, 그들이 방에 뒀던 물건들 마저 불에 훼손되는 바람에 신원을 확인하기 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사망자 중 84명은 카지노에서 나왔고, 5명은 로비, 3명은 엘레베이터, 2명은 호텔 밖의 수영장을 낀 바에서 발견됐다. 사망자 상당수는 미국인이었다.

피해액은 약 18억달러였다.


5. 화재 이후[편집]


불을 지른 3명은 방화 및 살인 혐의로, Héctor Escudero Aponte는 75년형, José Rivera López는 49년 형,그리고 Arnaldo Jiménez Rivera는 29년형 징역형을 받고 감옥에 수감됐다. José Rivera López와 Arnaldo Jiménez Rivera는 각각 2001년과 2002년에 특사로 풀려났으나, Héctor Escudero Aponte는 여전히 감옥에 있다.

화재 이후, 생존자 대부분은 산 후안 지역의 다른 호텔에서 머물렀다. 푸에르토 리코에서 관광객 생존자들에게 300달러, 듀폰트 호텔 측에서 가족당 100달러 씩을 주어 호텔비를 낼 수 있었다. 다만 생존자들 증언에 따르면 비행기 값은 따로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또 듀폰트 호텔에 옷을 비롯한 물품들을 놔두고 온데다 화재가 진압됐지만 들어가지는 못하는 상황이라 같은 옷을 며칠간 입고 있어야 했다.

호텔은 1989년 다시 오픈할 계획을 세웠지만 취소됐는데, 호텔 측에서 1층부터 3층까지만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다른 층에는 설치하지 않았단게 그 이유였다. 결국 1억 3천만 달러를 들인 끝에 1995년 2월 16일, 호텔 이름을 San Juan Marriott Resort & Casino로 바꾸어 재오픈했다. 이후 San Juan Marriott Resort & Stellaris Casino로 이름을 바꾸었다. 2011년 호텔은 Rockwood Capital에게 1억 3천3백만 달러에 팔렸고, 다시 2017년 5월, 중국인에게 1억 8천 4백만 달러에 팔렸다.

현재 호텔엔 525개의 객실과 카지노, 8개의 미팅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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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49세. 호텔에서 받은 돈이 위조지폐인지 검사하는 일을 했었다.[2] 이렇게 생겼다.#[3] 불을 지른 직원 3명은 경찰에 "그냥 고객들에게 겁을 주고 싶었다." 면서 일부러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