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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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권 상호관계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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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
하나의 중국, 두 개의 중국(화독), 중화권(중화권/상호 왕래), 화교, 한자문화권
[[파일:대만 국기.svg
정치관계
대만/외교, 대만 해협 위기, 92공식, 양안관계(2020년대), 중화 타이베이
정치성향·정체성
범람연맹(친중화민국, 중화민국빠), 범록연맹(친대파, 대만빠), 대만인(본성인, 외성인, 대만 원주민), 반대만
관련 운동
타이완 독립운동(해바라기 운동), 화독, 양안통일
관련 사례
TWICE 쯔위 청천백일만지홍기 논란, hololive 키류 코코-아카이 하아토 대만 언급 논란, Gen.G 중국 주권 및 영토의 무결성 지지 포스팅 논란
기타
타이완성(중화인민공화국), 타이완 넘버원, ECFA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정치관계
홍콩-본토 관계, 일국양제
정치성향·정체성
홍콩인(민주파, 본토파, 중간파, 친중파)
관련 운동
홍콩 시위, 홍콩 독립운동, 홍콩 민주화 운동(2014년, 2019년)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대만-홍콩 관계
[[파일:마카오 특별행정구기.svg
마카오인, 마카오-본토 관계
[[파일:티베트 국기.svg
티베트 독립운동, 티베트 망명정부, 중국-티베트 관계, 대만-티베트 관계
[[파일:동튀르키스탄 깃발.svg
동튀르키스탄 독립운동, 중화권-위구르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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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싱가포르 관계, 대만-싱가포르 관계, 중국계 싱가포르인, 싱가포르(주)

중국-내몽골 관계
기타
중국/정치(중국공산당, 홍콩/정치, 마카오/정치), 대만/정치(중국국민당, 민주진보당),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국수주의/행태/중국, 대만민국, 중뽕, 중국/외교(홍콩/대외관계), 대만/외교, 중국 대륙, 타이완 섬, 중화민족(중화사상), 중국/경제(홍콩/경제, 마카오/경제), 대만/경제, 중국몽, 민주당파(중국 민주당), 신중국연방, 중화권-러시아-만주 관계, 위구르-티베트 관계



1. 개요
2. 역사
2.1. 신해혁명 시기 (1912년)
2.2. 국민혁명군 북벌 시기 (1925년-1928년)
2.3. 제1차 국공내전 (1931년-1936년)
2.4. 푸젠 인민정부 (1933년-1934년)
2.5. 중일전쟁 시기 (1940년-1945년)
2.6. 제2차 국공내전, 이후 현재 (1949년-현재)
2.6.1. 차이잉원 정부 이후
3. 만일 두 개의 중국이 인정될 경우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하나의 중국을 반대하고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 두 국가를 동시에 인정하자는 운동. 양안의 통일반대론이자 타이완 독립운동과도 구별된다.[1] 공식적으로는 리덩후이 시대에 양국론[2]으로 한번 주장된 바 있다. 이쪽도 중화민국 및 중화인민공화국의 명목상 영토가 법적으로 분리되는 것이니 일종의 분리주의라 볼 수 있다. 이전에도 중화대만민주국(中華台灣民主國)이나 중화대만공화국(中華台灣共和國) 등의 새 국호가 제안된 바 있다.

당연히 대만의 중화민국을 부정하는 중화인민공화국 입장에서는 대만 독립과 똑같이 반가운 소리가 아니다. 아예 중화민국 자체를 싸그리 부정하고 "대만"으로 새 살림 차리자는 범록연맹 내에서도 온건파들은 이를 반가워하지 않는다.[3]

본 항목은 두 개의 중국과 관련된 역사적 흐름 위주로 서술되어 있으며 관련 내용은 화독 항목에 좀 더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2. 역사[편집]


사실 중화민국은 청나라, 북양정부[4],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왕징웨이 정권, 소비에트 지구, 중화인민공화국, 이렇게 대치 상대만 바뀐채 두 개의 중국은 100여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해도 무방하다.

즉 청나라 이후로 진정한 하나의 중국은 중화민국이나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이루어 본 적이 없고 단지 정치적, 외교적 용도로만 사용되는 상황이기에 이에 지쳐 두 개의 중국이라는 중국 양국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2.1. 신해혁명 시기 (1912년)[편집]


신해혁명으로 건립된 중화민국 임시정부청나라와 대치하였으며 치열한 혁명 끝에 2200여년 이상 이어져오던 중국의 군주제를 종식시키고 중국 최초의 공화국이 건국되었다.

2.2. 국민혁명군 북벌 시기 (1925년-1928년)[편집]


중화민국 대륙 초기에는 북양정부와 국민정부라는 두 중화민국이 나뉘어 대치하였다. 또한 북양정부의 위안스카이중화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를 자처하는 등 다시 공화제와 군주제의 대결로 변화하기도 하였다.

2.3. 제1차 국공내전 (1931년-1936년)[편집]


중화민국 국민정부와 중국 공산당이 처음으로 건국한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이 서로 대치하였다.

2.4. 푸젠 인민정부 (1933년-1934년)[편집]


이 시기 푸젠에서 중화공화국 인민 혁명정부가 세워져 중화민국 국민정부와 대치하였다.

2.5. 중일전쟁 시기 (1940년-1945년)[편집]


중일전쟁 당시 일본 제국으로 부터 건국된 괴뢰국인 왕징웨이 정권이 중화민국을 자칭하며 국민정부와 대립하였다. 유일하게 외세로 인한 두 개의 중국이다.

2.6. 제2차 국공내전, 이후 현재 (1949년-현재)[편집]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면서 다시 국민당과 공산당이 내전을 치루었으며 결국 국민당의 패배로 대만으로 천도하고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해 대륙을 차지하면서 현재까지 각자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며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결국 중화민국은 시기가 갈수록 UN에서 탈퇴하고 수교국들을 잃어가는 등 국제적으로 점점 위축되어버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위의 사례들에 비하면 가장 평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시진핑 집권 후 극단주의적인 태도로 인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2.6.1. 차이잉원 정부 이후[편집]


범록연맹 계열의 차이잉원 후보가 총통직에 오르면서, 마잉주 시절과는 다르게 하나의 중국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부천대 후 수십년간 존치시켜오던 푸젠성 정부와 타이완성 정부를 해산시켜 완전히 투명화 시키거나, 일국양제 수용을 대놓고 거부하고 영어를 시험적으로나마 공용어로 지정하는 등, 탈중국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의외로 대독파는 그 색을 점점 잃고 있는데, 차이잉원 총통은 범록연맹이면서도 '대만은 이미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의 독립국'이라고 발언하거나, 자국의 공식 명칭을 중화민국(대만)이라고 쓰는 등, 대독파에서 주장하는 '대만 공화국'이 아닌 기존의 '중화민국'을 선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화(中華)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대만의 자주성까지 주장하는 성향 덕분에 중도층은 물론 범람연맹 지지자들까지 끌어모을 수 있었으며, 현재 대만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이상적이며 대만인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는 '두 개의 중국' 노선이 힘을 얻는 중이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중국을 빠르게 손절한 것이 대만의 방역과 외교에 신의 한 수로 작용해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대독은 물론이고 화독 역시 거부하며[5] 전쟁까지 각오 중이므로 대만도 이를 대놓고 국제사회에 주장하지는 못하고 있다.

신냉전 이후에는 서방권 국가들이 태도를 바꿔[6] 대만과의 재수교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대만을 불침항모로 만들기를 원하는 터라 이전에는 없던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있다. 특히 대만을 더러 공식적인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미국은 1970년대에 핑퐁 외교가 시작되며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으로 승인하고 원래의 중국이었던 중화민국과는 단교를 유지 중인 바 있다.

3. 만일 두 개의 중국이 인정될 경우[편집]


  •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영토는 그대로 유지된 채 양국이 승인된다.
  • 중화민국은 미승인국 신세를 벗어나며 당연히 UN 등에 상임이사국이 아닌 일반 회원국으로 재가입이 가능해진다.[7]
  • 스포츠계에서는 중화 타이베이가 폐지되고 별도의 스포츠용 상징 없이 청천백일만지홍기, 중화민국 국가를 사용하며 중화민국[8]이라는 이름 그대로 출전이 가능해진다.
  • 중화민국은 단교했던 국가들과 재수교를 하려할 것이며 각국의 타이베이 대표부는 점차 정식 대사관 또는 영사관으로 전환되는 수순을 밟을 것이다.[9]
  • 두 중국은 두 개의 콩고처럼 국제 사회에서 구분하기 위해 대륙은 중국 베이징(China-Beijing), 대만은 중국 타이페이(China-Taipei) 또는 중화 베이징(Chinese Beijing),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로 불릴 가능성이 높다.[10] 또는 북중(北中, North China), 남중(南中, South China)으로 불릴 가능성도 존재한다.
  • 장제스는 통일 이후 본토에 묘를 옮겨달라고 했지만, 이 경우 그의 묘는 대만에 그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 대륙에서 청천백일만지홍기를 휘날려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된다. 반대로 대만에서도 "주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가칭) 등 오성홍기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 양안관계라는 명칭이 "쌍중관계(雙中關係/双中关系)", "양중관계(兩中關係/两中关系)" 등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성(省)은 헌법상 타이완 성을 포함한 23개에서 22개로 줄어들며 중화민국도 미수복지구를 모두 포기하고 타이완 성, 푸젠 성 2개로만 한정된다. 이에 따라 중화민국의 수도는 타이베이시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11]
  • 양국을 왕래할 시 여타 국가처럼 별도의 통행증이 아닌 여권이 원칙적인 신분증명서 역할을 하게 된다. 통행증을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양국 기준으로 홍콩, 마카오로 축소될 확률이 높다. 양호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유럽 솅겐존 따라 그냥 서로의 신분증을 인정할 수도 있다.
  • 중화민국은 대만이 완전한 본토가 되었으므로 대만성을 폐지하게 되며 최고 행정구역은 성(省)에서 현(縣)으로 한 단계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 중화민국령 푸젠 성은 명목상 푸젠 성 전체의 관할을 포기했으므로 해당 관할구역의 이름을 딴 진마(金馬) 성으로 개칭되거나 위에 전술한대로 성(省)을 폐지 후 진마현(金馬縣)으로 개칭할 가능성이 높다. 정규군이 아닌 국경수비대가 방위하게 된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위성정당인 타이완 민주자치동맹은 목적을 잃게 되었으므로 해체 또는 개편될 수도 있다.
  • 쌍십절 행사를 양국이 합동 개최할 수도 있다.
  • 중화민국은 개헌으로 영토를 대만과 부속도서로만 한정하고 통일과 관련된 조항들을 삭제해 "중화민국 제2공화국"을 선포하게 된다.
  • 계획상 대만이 종점인 징타이고속공로, 징타이고속철도 등은 푸젠성으로 종점이 변경될 것이고, 이에 맞춰 명칭이 변경될 것이다.[12]
  • 미승인국이라는 특징 때문에 그동안 대만인들의 입국을 꺼려 왔던 조지아세르비아가 대만 입국을 허용 및 입국 요건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4. 관련 문서[편집]


해당 항목 참조
[1] 두 개의 중국 지지자들은 중화인민공화국으로의 복속을 거부할 뿐 일단 중국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타이완 독립운동 지지자들은 아예 자신들이 중국이라는 것을 부정한다.[2] 다만 이 개념을 만든 리덩후이 본인은 퇴임 후 타이완 독립운동 지지자임을 밝혔다.[3] 범록연맹 전체가 두 개의 중국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고 "중화민국"에서 "대만"으로 전환하기 위한 과도기 목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온건한 범록연맹은 국민당이나 장제스 위주의 요소들만 없애고 중화민국 자체는 유지하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중화민국 국가에서 우리 당(국민당)이라는 가사를 수정하거나 장제스의 장수를 기원하는 도로명(介壽路)을 수정하려는 시도가 있다. 후술할 문단을 보면 알겠지만 당장 차이잉원 총통 마저도 비록 범록연맹 소속이지만 중국 양국론자다. 요즘에는 대독파보다 화독 온건파가 훨씬 많다.[4] 북양정부와 국민정부.[5] 중국은 무조건 공산당 주도의 통일만 인정하는 중이다.[6] 당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을 위시한 서방권 국가들이 줄줄이 대만과 단교했는데, 현재의 파이브 아이즈 소속 국가들은 물론이고 모든 서방권 강대국들이 여기 다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유럽에서 대만과 수교 중인 곳은 중국의 국가무신론 때문에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어 이전부터의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바티칸 밖에 없다.[7]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만 상임이사국으로 남고 나머지 국가들은 일반 회원국으로 재가입한 것을 생각하면 된다.[8] Republic of China[9] 이에 따라 당연히 대한민국 형법 외국국기국장모독죄에 관한 법안의 보호도 받을 수 있다.[10] 다만 이 경우에는 그냥 중화인민공화국(PRC)과 중화민국(ROC) 그대로 불릴 수도 있다.[11] 여러 국가가 타이베이를 대만의 수도로 보고있고 대만인조차 타이베이를 수도로 취급중인데도 왜 이제서야 지정이냐면, 대만은 타이베이로의 천도를 아직 공식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현재 타이베이는 임시수도이고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난징시가 수도이다.[12] 징후(京沪)고속철도와는 한자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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