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사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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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근 등의 저서 (1403)
1.1. 개요
1.2. 내용
1.3. 특징
1.4. 외부 링크
1.5. 평가
2. 박상의 저서 (16세기)
3. 유희령의 저서 (1540)


1. 권근 등의 저서 (1403)[편집]



1.1. 개요[편집]


조선개국공신인 양촌(陽村) 권근(權近, 1352 ~ 1409)이 하륜(河崙)ㆍ이첨(李詹) 등과 함께 편찬을 시작하여 태종 3년(1403) 8월에 완성한 역사책. 총 6권 2책인데 현재 대전역사박물관에 원간본이 있다.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8호로 지정되었다.


1.2. 내용[편집]


삼국사략(三國史略)이라고도 부른다.

1402년 6월에 당시 왕이었던 태종의 명에 따라 권근을 중심으로 하륜ㆍ이첨 등이 참여하여 1403년 8월에 완성한 편년체 역사서로, 고대사와 삼국사를 다루었다. 서문과 전문(箋文), 사론(史論) 50여 편도 대부분 권근이 썼다.


1.3. 특징[편집]


  • 1. 상고사의 단순화 : 단군조선은 기록되어 있으나 마한기자의 후예로, 진한(秦)의 유망인으로, 변한은 조상 없음으로 기록하였다.[1] 또한 중국의 당서(唐書)를 좇아 마한을 백제, 변한을 고구려, 진한을 신라에 비정하였고, 낙랑부여대방흑수옥저가야발해 등은 독립적인 국가가 아니라고 간주했다.
  • 2. 삼국사의 일원화 : 신라를 삼국의 주인으로 설정하고 서술 또한 신라의 연기(年紀)를 기준으로 서술하였다. 이에 대해 권근은 신라가 삼국 중 가장 선기후멸(先起後滅)함[2]을 근거로 들었다.
  • 3. 중화대의론 : 과거 고대국가 및 삼국들이 썼던 명분에 맞지 않는 명호(名號)들을 모두 삭제하였고 비판적인 시선에서 준엄한 역사비평을 가했다. 또한 삼국의 연기를 실제로 그들이 사용한 사실에 맞춰 쓰지 않고 중국의 예를 따라 유년칭원법(踰年稱元法)[3] 으로 기술하였다. 권근은 이에 대해 '하늘에 두 태양이 없듯이, 땅에는 두 황제가 동시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예를 들어 거서간ㆍ차차웅ㆍ이사금 같은 신라의 고유 왕호는 모두 왕으로 고쳐 썼고, 여왕ㆍ태후ㆍ태자 등 칭호도 제후국의 명분에 맞지 않는다 하여 여주ㆍ대비ㆍ세자로 고쳐 썼다.
  • 4. 신라정통론 : 2번의 경우 그대로 갔는데, 800년대에 신무왕을 반역자로 본 것과 달리 여기에선 명군으로 부각했다. 덤으로 삼국사기에선 장보고를 열전에 올렸으나 반역했다고 기록한 것과 달리 여기선 반역설을 일축하고 신라의 충신으로 드높였고, 민애왕의 호를 삭탈해버리고 800년대 신라에 대해서 혹독한 기록을 줄창 적은 기존의 삼국사기를 엎고 800년대를 재평가하는데 이는 고려정통론을 뒤엎기 위한 것이었다.실제로 여기에선 900년대를 멸망기로 본다. 본시 장보고와 신무왕의 이야기는 이러한 신라정통론에 입각해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이는 이후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특징들은 당시 이를 편찬하라고 명한 태종의 정치 성향을 반영한 것이다. 즉 요동정벌운동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적실 왕자를 세자로 책봉해 향처 왕자들을 소외시킨 정도전(鄭道傳) 일파를 제거하고 집권한 태종과 그를 보좌한 권근·하륜 등이 명나라에 대한 소국의 충성과 대국이 내려주는 아량에 대해 널리 강연하고 황제의 제후국으로서 지켜야 할 성리학적 명분론을 강하게 추진하면서 나온 책이라고 할 수 있다.


1.4. 외부 링크[편집]



1.5. 평가[편집]


다음과 같이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 18호로 제정되어 있다.


이 책은 조선 태종의 명을 받아 권근, 이첨, 하륜 등이 편찬한 역사서로, 단군조선을 시작으로 하여 개국이래 고려 후기까지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서술하고 있다.

『삼국사략(三國史略)』이라고도 불리며, 원본은 6권 2책으로 이루어 졌다. 이후에『음주동국사략』이 인쇄되어 유희령이 풀이하고, 권근의 아들 권준이 순서대로 나열하여 11권 5권으로 간행된 바 있다. 내용을 보면 상권에는 개국에서 고려 전기의 기록이 실려있고, 하권에는 고려 중기에서 고려 후기까지의 기록이 실려있다.

엄격한 성리학적 명분을 바탕에 깔고 고대사를 정리하였기 때문에 『삼국사기』보다 비판적인 입장에서 정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처음으로 고대사의 체계를 세운 책으로, 책의 간행시기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편집인과 종이의 질, 책의 체제로 미루어 태종연간(1400∼1418)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2. 박상의 저서 (16세기)[편집]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눌재(訥齋) 박상(朴祥, 1474~1530)이 단군조선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 총 6권 2책.

조선 초 권근이 편찬한 위의 동국사략과 이름이 같아 한 때 권근의 저서로 잘못 알려져 왔던 책이다. 삼국사까지 기록한 책은 권근의 동국사략, 고려사까지 기록한 책은 박상의 동국사략으로 생각하면 된다. 성종 때 만들어진 관찬 역사서 동국통감을 주요 대본으로 삼았다.

조선 건국에 반대하고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인물들을 칭송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운 정도전은 오히려 폄하하는 등 이이의 기자실기와 함께 조선 중기 사림파들의 주요 역사인식에 대해 보여주는 책이다.



3. 유희령의 저서 (1540)[편집]


원제는 표제음주동국사략(標題音註東國史略). 조선 중종시기에 유희령(柳希齡)이, 성종 때 만들어진 관찬 역사서 동국통감을 주요 대본으로 삼아 단군조선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역사를 간략하게 줄여 저술한 통사. 총 12권 1책이며,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 성암고서박물관,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기존 동국통감이 양적으로 방대하고, 일반인이 읽기에는 너무 상세하다 하여 이를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삼국 가운데 고구려사를 강조한 점, 기술 순위를 고구려·백제·신라순으로 다룬 점, 가락·발해 등을 독립적인 국가로 보고 역사를 기술한 점 등이 같은 이름을 가진 권근(權近)의 동국사략과 반대되는 점이다.

중종년대(1400~1500년대)에 만들어진 원간본과 재판본들이 모두 남아있으며, 대만과 일본에도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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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시대삼한 70여국을 모두 단군의 후예로 본 제왕운기의 서술을 부정하였다.[2] 가장 먼저 일어나, 가장 늦게 사라짐.[3] 선왕이 죽고 다른 왕이 즉위하여도, 즉위한 해는 선왕의 통치기간으로 보고 그 다음해부터 새 왕의 통치기간으로 보아 연도를 셈하는 것. 예를 들어 A왕이 서기 100년에 죽고, 그 해에 아들 B왕이 즉위했다고 해보자. 그럼 B왕의 통치 원년은 언제일까? 신라 등은 즉위한 바로 그해 100년이라고 보았지만, 중국의 유교적 전통에서는 그 다음해인 101년부터가 통치 원년이라고 본다. 'ㅇㅇ왕 X년'이라는 표현이 언제를 가리키는지 달라지게 하기 때문에 중요한 차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