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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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현실
4. 빼앗긴 세대들, 그 이후
5. 보수파들의 반발
6. 유사 사례
7. 관련 미디어


1. 개요[편집]


시적 표현인 빼앗긴 세대 혹은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s), 빼앗긴 아이들(Stolen Children)은 백호주의 시절 호주 정부와 기독교 교회 등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제도 원주민들의 아이들을 부모들에게서 강제로 빼앗아 기숙학교에 강제로 수용하여 소위 "문명화 교육"을 시행한 정책 및 그 희생자들을 지칭한다.

대체로 190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시행되었다고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미 1880년대부터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호주의 흑역사 중 하나로 "원주민을 개화한다"는 명목 외에도 호주 원주민들의 혈통을 백인 사회에 완전히 흡수시키는 목적과 백인들의 노동력을 대체하려는 불순한 목적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약 10만여 명이 입양되거나 수용소로 끌려갔으며 원주민 언어는 금지당했고 부모들이 찾지 못하도록 아이들은 어디로 보내졌는지 알 수 없게 되었을 뿐더러 방문과 편지조차 금지되었다. 이 중에서 신체적, 정신적, 성적으로 학대당한 아이들도 수두룩했고 상당수가 성인이 되어서도 PTSD에 시달리거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 하게 되었으며 백인 사회에서도, 원주민 사회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아 외롭게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2. 상세[편집]


백인과 호주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이들이 이 강제적인 문명화 교육의 대상이 되었는데 19세기 후반부터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백인들과 접촉한 원주민들이 조만간 멸족할 것이라는 주장이 심심찮게 퍼졌다고 한다. 실제로 백인과의 접촉 후 이전에 없던 병원균으로 인해 원주민의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이긴 했는데 호주 백인들은 이를 두고 미개한 원주민들이 문명인 백인과 만나면 미개하므로 멸족할 수밖에 없다는 숙명론적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편 원주민들과 백인들 사이에서 혼혈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호주 사회에서는 이런 혼혈 아이들의 증가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것이 숙명론적 주장과 결합하여 이 백인의 피가 절반 섞인 이 아이들을 멸족해 가는 원주민 가정에서 구출해 그들을 문명인으로 교육시킨 후 백인 사회에 동화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등장했다. 1869년 호주에서 통과된 "빅토리아 원주민 보호법"은 이런 생각에 근거해 원주민 가정에서 국가차원에서 혼혈 아이들의 친권을 강제로 박탈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이후 여러 원주민 보호법안이나 규약들이 제정됐는데 호주의 각 주 정부들은 이를 근거로 혼혈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빼앗아 갔다.

아이들을 빼앗는 방식은 매우 잔인하였는데 원주민이 임신해 병원에서 출산할 경우 병원 의사는 아이의 혼혈 여부를 파악한 뒤 경찰에 신고해 혼혈 아이를 넘겨주었으며 산모는 아이 얼굴도 보지 못하고 빼앗겼다.

1935년에 부모에게서 강제로 떨어진 한 혼혈 아이는 성장한 후 이렇게 증언하기도 했다.

"나는 엄마와 숙모, 사촌과 함께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경찰차에 넣었고, 우리를 브룸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침을 뱉기도 했습니다. 10마일(약 16km) 정도를 간후 그들은 엄마를 차에서 내쫓았습니다. 우리는 잡혀가지 않으려 울었고, 나는 우리 엄마의 등을 붙잡고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우리를 끌어 당기고 차안으로 우리를 다시 던졌습니다. 우리 엄마가 울면서 차를 쫓아왔지만 그들은 어머니를 멀리 내몰았습니다. 우리는 차 뒤에서 비명을 질렀습니다. 우리가 브룸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나와 내 사촌을 묶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열 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퍼스까지 가는 보트를 기다리는 동안 내내 묶여 있었습니다."



3. 현실[편집]


이렇게 강제적으로 빼앗은 아이들을 잘 교육해서 백인 사회에 동화하겠다는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빼앗긴 세대에 대한 처우나 환경은 참혹했다.

혼혈 아이들은 기독교에서 운영하는 기관이나 자선단체가 운영하는 기숙학교 혹은 백인 가정에 위탁아동으로 수용되었는데 시설은 매우 열악했으며 아이들은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거의 학대를 당하는 수준의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했는데 이후 진상조사 보고서에서도 이를 인정했다.

비교적 커서 잡혀온 혼혈 아이들은 원주민 언어가 입에 익은 경우가 많았는데 시설이나 기숙학교는 원주민 언어를 입 밖에만 내도 벌을 주었다고 한다. 호주 원주민의 문화를 경시하고 말살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적 학대도 있었는데 후일 진상조사위에서 502명의 증인을 조사한 결과 여성 증인 중 17%, 남성 증인의 7.7%가 기관이나 기숙학교, 위탁가정의 구성원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이런 고통을 겪은 혼혈 아이들은 성장하고 나도 고통을 겪었는데 부모에게서 정상적 양육을 받지 못하고 학대를 당했으며 기초적인 교육도 부실해 중등교육을 이수할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를 겪은 것이다. 이는 끌려가지 않은 원주민 아이들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었다.


4. 빼앗긴 세대들, 그 이후[편집]


이런 역사는 무시되어 오다가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문제 제기와 진상규명 촉구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호주 국립대학의 역사학자 피터 리드 교수는 빼앗긴 세대라는 용어를 최초로 만든 인물로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하면서 대중적인 관심을 환기시켰다.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원주민들과 원주민들을 지지하는 백인들, 문화 예술인들이 빼앗긴 세대들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일으켰다.

1995년에 원주민 법률지원운동의 활동가인 롭 릴리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수천 명의 원주민 혼혈인들을 취재하여 확보한 증언들을 대대적으로 공개해 빼앗긴 세대들이 겪은 가족과의 강제분리, 아동 학대, 성학대 등을 알렸다. 결국 1995년 호주 정부는 "호주 인권평등 위원회"를 통해 대대적인 진상조사를 실시했다. 이들은 500명 이상의 피해 원주민 혼혈인들의 증언을 청취하고 600개 이상의 관련 증거를 수집해 1997년 공식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를 근거로 노던 준주, 빅토리아, 뉴사우스웨일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등의 각 주 정부와 의회에서는 원주민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호주 연방정부 차원의 사과는 이뤄지지 않아 논란이 있는데 존 하워드 총리는 "지금 호주인들은 과거의 일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발언을 해서 지탄을 받기도 했다. 결국 1998년에 100만 명 이상이 모인 "제1회 국가사죄의 날"이 열려 호주 정부 차원의 사과를 촉구했다. 대중의 압박에 존 하워드 정부도 항복해 "혼혈 아이들을 강제로 부모에게 빼앗은 것은 국가적 흠이었다. 진솔하게 사죄한다."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이는 연방정부 차원의 사죄가 아님을 강조해 물의를 일으켰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원주민 출신으로 성화봉송자이자 400m 육상 스플리터 금메달리스트인 캐시 프리먼이 "내 할머니는 부모에게서 강제로 떨어졌던 빼앗긴 세대의 피해자였다"고 밝혀 이 문제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2007년 케빈 러드 정부는 그동안의 호주 원주민 및 토레스 해협 원주민들에 대한 차별과 학대를 사과하면서 빼앗긴 세대에 대해서도 사과하였다. 이는 연방정부 차원의 사죄였지만 이것을 시행하기까지는 진통이 만만찮았는데 보수 성향의 호주 정치인들과 국민들은 굳이 과거사를 꺼내서 죄의식을 강조할 필요가 있냐고 반했다. 그러나 케빈 러드는 결국 연방정부 차원의 사죄를 관철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적 차원의 배상 등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5. 보수파들의 반발[편집]


호주의 보수파들은 아예 빼앗긴 세대라는 말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과거 원주민 혼혈 아이들에 대한 정책이 옳은 것이었다고 강변한다. 일각에선 원주민 부모들이 혼혈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내버려 죽이려고까지 했다고 주장하며 이런 혼혈 아이들을 구출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일부 피해자들도 학대를 받은 적이 없으며 글과 숫자를 교육받았으니 이 정책은 옳았다는 주장에 동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보수파들의 반발은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심지어 호주 자유당의 브랜든 넬슨은 케빈 러드 총리의 사과 이후 호주 원주민들은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지 않는다면서 원주민 여성이 술에 취해 있던 사이에 아이가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는 연설을 해 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어떤 나라에서나 자식을 잘 가르치고 잘 기르는 부모가 있다면 막장 부모도 있기 마련인데 이런 일부의 탈선 사례들을 일반화하려 든다면 백인들 역시 일부 하층민 백인들의 아동 학대 사례들을 똑같이 가져와서 백인 부모들은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지 않는다고 얼마든지 억지로 까내릴 수 있다.


6. 유사 사례[편집]


캐나다에서도 Residential School이라는 호주의 '원주민 개화'와 비슷한 취지의 제도를 시행한 적이 있다. 물론 그 폐해도 호주의 '도둑맞은 세대'와 비슷하다. 캐나다/역사 항목 참조.


7. 관련 미디어[편집]


  • 니웅가의 노래
  • 토끼 울타리(Rabbit-Proof Fence)
2003년 개봉한 필립 노이스 감독의 영화. 빼앗긴 세대 사태를 배경으로 14살 원주민 소녀 몰리가 정부의 추격을 피해 동생들과 함께 무려 1500마일을 여행한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바즈 루어만 감독, 니콜 키드먼, 휴 잭맨 주연의 2008년작 영화. 빼앗긴 세대와 거래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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