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비 레이놀즈

덤프버전 :

데비 레널즈의 주요 수훈 및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데비 레널즈
Debbie Reynolds


파일:debbie reynolds picture.jpg

본명
Mary Frances Reynolds
메리 프랜시스 레널즈
출생
1932년 4월 1일
미국 텍사스엘파소
사망
2016년 12월 28일 (향년 84세)
미국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직업
배우, 가수
데뷔
1948년
신체
157cm
배우자
에디 피셔(1955년~1959년)
해리 칼(1960년~1973년)
리처드 햄릿(1984년~1996년)
자녀
캐리 피셔(1956년생)
아들 타드 이매뉴얼 피셔(1958년생)
종교
기독교[1]

1. 개요
2. 위상
3. 생애 및 활동
3.1. 죽음
4. 주요 작품
4.1. 영화
4.2. 공연
4.3. TV
4.4. 기타
5. 사생활
5.1. 가족관계
5.2. 결혼과 이혼
6. 여담



1. 개요[편집]


파일:gty-debbie-reynolds-glamour-ps1-161228_16x9_992.jpg
미국의 배우, 가수, 무용수, 사업가.


2. 위상[편집]


한국에서는 진 켈리 주연의 <사랑은 비를 타고>(1952)의 여주인공으로만 알려져있지만, 미국에선 만인의 연인 위상이었다. 인형처럼 작고 마른 체형을 평생 유지해 사랑스럽다는 표현이 자주 붙었다. 도리스 데이, 준 앨리슨과 함께 이웃집 소녀 계열로 분류되는데, 레널즈는 이 계통에 흔히 따라붙던 말괄량이 같은 측면을 많이 줄인 게 특징이었다. 성적 매력을 과시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딸 캐리 피셔와 사이가 안 좋다는 게 알려졌을 때 부정 여론이 형성되긴 했지만, 그 외엔 영상 경력이 부진하던 시기에도 미국 대중들에게 별 기복 없이 호감을 얻었다. 특히 1950-60년대에 출연한 뮤지컬 영화들로 유명하다. 아카데미상, 에미상, 골든 글로브에 후보 지명됐었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3. 생애 및 활동[편집]


어려서부터 마을의 교향악단과 협업하거나 학교 연극에 출연하곤 했다.

16살 때 캘리포니아버뱅크시에서 매년 주최하는 버뱅크 온 퍼레이드[2]라는 축제의 일환인 버뱅크 미인 대회[3]에서 1등을 하면서 스크린 테스트를 받는 기회를 얻었다. MGM워너 브라더스가 계약을 따내려고 경쟁했는데 레널즈는 후자를 택했다. 레널즈가 출전했던 이유는 사실 부상 중의 하나인 스웨터가 갖고 싶어서였다.
파일:44d8545107bdcb0e254a6b42b8d58403.jpg

1950년에 변변찮은 배역만 안겨주던 워너를 떠나 MGM과 계약했다. 1957년까지는 거의 독점으로 일했지만 그 뒤엔 다른 제작사 작품에도 많이 나왔다.
파일:20220923_090055.jpg

1961년부터 나이트클럽 행사를 뛰기 시작하며 춤 노래를 겸비한 캬바레 공연자로서의 성격을 더 부각시켰다. 이후 평생 나이트클럽, 카지노, 리조트를 돌아다니며 성실하게 공연했다.

젊어서는 발랄하고 순진한 배역을 많이 맡았는데, 90년대에 영상에 복귀한 뒤엔 소시적 모습을 패러디하며 예전과 정반대 성격의 배역들을 주로 연기했다. '과거의 스타'라는 이미지를 자조적인 유머가 섞인 인물들로 승화해서, 자칫 부정적일 수 있는 요소를 역으로 잘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이는 딸 캐리 피셔와의 긴 불화 과정에서 기존의 호감상이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어 더는 쓸 수 없게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1994년에 라스베이거스에 '데비 레널즈 호텔'과 '카지노'를 열었다가 1998년 경매로 팔았다. 경영하는 동안엔 여기에 딸린 공연장에서 직접 나이트클럽식 공연을 했었다. 또한 레널즈는 몇 년 동안 영화 속 의상들 수만 점을 수집해놨었는데, 이중 일부를 이 복합공간에 연 할리우드 영화 박물관[4]에 전시했었다.

레널즈의 소장품 중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클레오파트라>(1963)에서 썼던 황금가발 머리장식과 리처드 버튼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의상이 있었다. 이런 소장품들을 전부 전시하는 박물관을 짓는 게 꿈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진척이 없어 2011년 거의 다 경매로 내놓았다.
파일:image-resizer.jpg

매럴린 먼로의 <7년만의 외출> 드레스 소유자이기도 했다. 역시 같은 경매에 내놓았다.
파일:20110204-debbie-reynolds-1-600x411.jpg

메릴 스트립은 2015년 아카데미 거버너즈 어워즈[5]에서 레널즈에게 진 허숄트 박애상을 수여하며 레널즈가 이처럼 할리우드의 역사를 보존하려고 노력한 공로를 상찬했다.


3.1. 죽음[편집]


캐리 피셔가 사망한 지 하루 만에 사망하여 대중에게 안타까움을 주었다.


사후 워너 브라더스에서 추모의 의미로 자사 출연작들 컴필레이션 영상을 올려주었다.


4. 주요 작품[편집]



4.1. 영화[편집]


  • June Bride, 1948
데뷔작이지만 크레딧에는 오르지 않았다. 베티 데이비스, 로버트 먼거머리 출연.

  • 로지 오그래디의 딸(The Daughter Of Rosie O'Grady), 1950 - 모린 오그래디(Maureen O'Grady) 역
크레딧에 오른 첫 작품이다. 3월 30일 개봉.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유랑극단 출신 아내를 여읜 아일랜드 이민자와 세 딸의 관계를 그린 뮤지컬. 장녀는 아빠 몰래 결혼해 임신까지 해버리고, 둘째는 아빠가 싫어하는 유랑극단 소유주와 사귀다가 유랑극단 스타가 된다. 이에 아빠는 딸들을 등지고 사라져버린다. 레널즈는 순수한 막내딸로 나온다.

  • 짧은 세마디(Three Little words), 1950 - 헬런 케인[6]
MGM에서 최초로 찍은 작품이다. MGM의 브로드웨이 작곡가 전기 영화 3탄. 프레드 어스테어레드 스켈튼이 주연이었다. 리처드 소프 연출. 헬런 케인의 유명곡인 "I Wanna Be Loved By You"를 부르는 모습이 나오는데 실은 케인이 목소리를 빌려준 것이다. 골든 글로브 신인상 후보[7] 에 올랐다. 7월 12일 개봉.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ollection_everett.jpg}}}||


  • 2주간의 사랑(Two Weeks With Love), 1950 - 멜버 라빈슨(Melba Robinson) 역
로맨틱 뮤지컬. 제인 파월, 리카르도 몬탈반, 루이 캘헌, 앤 하딩 출연. 로이 로울런드 연출. 도러시 킹즐리 등 대본. 조연이었지만 이웃집 소년[8] 이미지로 인기를 얻고 있던 칼튼 카펜터[9]와 부른 "Aba Daba Honeymoon"이 빌보드 싱글 차트 3위에 오르면서 주목 받았다. 11월 10일 개봉.


첫 주연작이다.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춤을 춰봤지만, 진 켈리도널드 오코너에 지지 않는 실력을 보여준다. 이때 진 켈리에게 배운 게 많다고. 켈리는 "엄격한 원칙주의자"로, "일해봤던 감독들 중 가장 까다로웠다"고 한다. 켈리에게 맞추기 위해 사력을 다하다가 쓰러져 일주일 동안 와병한 적이 있었는데 MGM 최고위직 아서 프리드[10]가 영화사 소속 의사에게 비타민 주사를 처방 받고 그대로 일하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레널즈는 "이게 주디 갈런드를 망친 바로 그 약이라는 걸 간파하고" 원래 의사의 말대로 휴식하겠다고 버텼다고 한다.

  • 내가 사랑한 멜빈(I Love Melvin), 1953 - 주디 스나이더/주디 러로이(Judy Schneider/Judy LeRoy) 역
단 와이스 연출. 유나 머클 출연. 로버트 테일러가 주디의 꿈 장면에 카메오 출연했다.
잡지사 말단에 불과한 멜빈(도널드 오코너 분)은 3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인간축구공으로 나오는 주디에게 반해 자신의 잡지사 내 지위를 속이고 잡지 표지 모델을 시켜준다는 구실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 어페어 오브 도비 길리스(The Affairs of Dobie Gillis), 1953 - 팬지 해머(Pansy Hammer) 역
단 와이스 연출.
주인공 도비 길리스가 여학생 팬지를 쫓아다니는 얘기다. 길리스의 절친 역으로 밥 포시가 나온다.

  • Give a Girl a Break, 1953 - 수지 두리틀(Suzy Doolittle) 역
숨겨진 명작으로 불린다. 스탠리 도넌 연출. 앨버트 해킷, 프랜시스 굿리치 대본. 비어러 캐스퍼리 대본. 안드레 프레빈 음악감독.

조우 패스터낵 제작.

  • 수잔은 여기 자고 있다(Susan Slept Here), 1954 - 수전 보러가드 랜더스(Susan Beauregard Landis) 역
MGMRKO에 레널즈를 임대해주었다. 연기가 과장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비행청소년을 소재로 대본을 쓰려는 35살 작가 마크(Mark, 딕 파월 분)가 부랑죄 및 폭행죄로 소년원에 들어가기 직전인 17살 짜리 수전을 잠시 맡게 된다. 그리고 수전이 소년원에 가는 걸 막기 위해 자신이 신원을 보증한다는 의미에서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판사에게서 좋은 판결이 나오면 바로 이혼할 셈으로. 그 뒤 마크는 수전을 친구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글을 쓰러 멀리 떠나는데 수전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마크에게 반해있고 놓아줄 생각이 없다...

  • Hit the Deck, 1955 - 캐럴 페이스(Carol Pace) 역
소니어 러빈 등 대본. 뻔한 작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틀간 상륙 허가를 받은 미국 해군 소속의 세 친구 대니, 리코, 빌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소동 끝에 각자 짝을 찾는다. 해군 소장(월터 피전 분)의 아들 대니(러스 탬블린 분)은 누나 수전(Susan, 제인 파월 분)이 사귀는 배우의 신작 뮤지컬 "Hit the Deck"에 나오는 무용수 캐럴에게 반한다. 배우는 강제로 수전을 취하려다가 세 친구에게 걸려 난투극이 벌어진다. 리코는 수전을 집에 데려다주다가 수전에게 반한다. 배우가 셋을 폭행으로 기소하려고 해서 연안 경비대가 이들의 뒤를 뒤쫓는다. 일이 다 마무리 된 뒤 선임 위병 하사관 빌은 6년간 미뤄왔던 약혼녀 진저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 텐더 트랩(The Tender Trap), 1955 - 줄리 길리스(Julie Gillis) 역
여러 여자들을 곁에 두고 독신 생활을 즐기는 35살 극장 에이전트(프랭크 시나트러 분), 11년차 결혼생활에 싫증난 그의 친구, 극장 에이전트의 여자친구들 중의 하나인 33살 클래식 음악가, 22살엔 은퇴하고 전업주부가 될 계획이 있었는데 마침 22살이 된 가수 겸 배우 줄리의 사각관계를 그린다.

  • 케이터드 어페어(The Catered Affair), 1956 - 제인 헐리(Jane Hurley) 역
"Wedding Party"로도 유통되었다. 리처드 브룩스 연출. 고어 비달 대본. 안드레 프레빈 음악. 로드 테일러가 약혼 상대로 나온다. 절제된 연기가 감동을 자아낸다며 호평을 받았다. MGM 배급. 6월 14일 개봉.
애그니스(Agnes, 베티 데이비스 분)는 딸 제인만큼은 자신은 못 해본 화려한 결혼식을 케이터링 서비스("Catered")를 곁들여 하길 바라지만, 제인은 그 돈이 실은 아빠가 택시 면허를 따기 위해 모아둔 저축금임을 알고 있어서 애그니스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갈등이 빚어진다. 희극답게 화목하게 끝맺는다.


  • Bundle of Joy, 1956 - 팔리 패리쉬(Polly Parish) 역
뮤지컬. 테크니컬러. 노먼 타우로그 연출. 대본에 노먼 크래즈나가 참여했다. 진저 라저스데이비드 니븐이 주연한 (1939)의 개작이다. 당시 실제 남편 에디 피셔와 동반 출연했다. 12월 12일 개봉.
맨해튼 부촌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위치한 J.B. 멀린 앤 선즈 백화점(J.B. Merlin & Son's)의 여성용 모자 매대에서 일하는 팔리는 판매에 지나치게 열중한 나머지 제품을 과장해서 팔다가 초과 반품을 초래해 회계부의 과중 업무를 유도했다는 이유로 해고 당한다. 집에 돌아가던 팔리는 고아원 계단에 놓여있던 아기를 무심코 안아들었다가 모두에게 아기 엄마로 오인 당하고, 고아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백화점 측의 동정을 사 재고용 된다. 오해가 너무 단단해 아기를 물리려는 시도는 전부 허사로 돌아가고 이 과정에서 팔리와 옥신각신하던 사장 J.B. 멀린의 아들 댄 멀린(Dan Merlin, 에디 피셔 분)이 아기 잔(John)의 상태를 보러 종종 찾아오게 되면서 사랑이 싹튼다. 한편 J.B. 멀린(애돌프 만주 분)은 잔이 자신의 친손자라고 착각하고 잔에 대한 양육권을 얻으려 한다. 이미 잔을 친자식처럼 사랑하게 된 팔리는 존을 뺏기지 않으려고 집주인(유나 머클 분)의 조카가 아기 친아빠라고 거짓말을 하는데...

  • 태미와 독신자(Tammy and the Bachelor), 1957 - 탬브리 "태미" 타이리(Tambrey "Tammy" Tyree) 역
이 작품의 넘버 "Tammy"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라 5주 동안 자리를 지켰다. 영화 자체도 크게 흥행했다. 조저프 페브니 연출.

약혼자가 있긴 하지만 '독신자'인 피터(레슬리 닐슨 분)의 비행기가 할아버지와 살던 17살 '태미'의 집 앞에 불시착해 태미와 할아버지가 구조해 돌봐준다. 피터가 자기 집으로 돌아간 뒤 할아버지가 밀주를 만들다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갈 곳이 없어진 태미는 피터의 집에 찾아가 머물게 되는데...

  • The Mating Game, 1959 - 매리엣 라킨(Mariette Larkin) 역
코미디. 4월 29일 개봉.
국세청 직원(토니 랜덜 분)이 단 한 번도 소득 신고서를 작성해본 적 없는 시골 농장에서 밀린 세금을 한꺼번에 받아내려고 일하다가 농가의 장녀와 사랑에 빠진다. 유나 머클이 어머니 역, 폴 더글러스가 아버지 역으로 나온다.

  • This Happy Feeling, 1959 - 재넛 블레이크(Janet Blake) 역
블레이크 에드워즈 연출. 쿠르트 위르겐스, 메리 애스터 출연. 6월 18일 개봉.

  • 그것은 키스로 시작했다(It Started with A Kiss), 1959 - 매기 퍼트넘(Maggie Putnam) 역
조지 마셜 연출. 1982년 KBS 제1TV 명화극장 방영 제목은 '그것은 사랑'이었다.
6.25 전쟁에 참전했던 공군 하사 조우 피츠패트릭(Joe Fitzpatrick, 글렌 포드 분)과 무용수 출신 아내 매기. 스페인에서 복무하게 된 조우가 1955년산 링컨 콘셉트 카 푸투라(Futura)를 경품으로 추첨 받아 국제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생기는 소동을 그리고 있다.


  • The Gazebo 1959 - 넬 내쉬(Nell Nash) 역
글렌 포드, 세이주 피츠 출연. 조지 마셜 연출. 헬런 로즈 의상. 에이드리언 파잰 편집. 12월 16일 개봉.

  • 인생의 조건(The Rat Race), 1960 - 페기 브라운(Peggy Brown) 역
가슨 케이넌 대본.
뉴욕 댄스홀에서 남자손님들 춤 상대를 하며 냉소적으로 변한 페기는 이제 막 상경한 색소폰 연주자 피트(토니 커티스 분)의 호의에 기대 친구로 동거를 하게 된다. 피트가 사기를 당해 색소폰을 잃어버리자 페기는 댄스홀 사장에게 돈을 빌리는 대가로 매춘을 해서 색소폰을 구해준다. 이를 나중에 알게 된 피트는 색소폰을 판 돈으로 페기를 빼낸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RatRace60_Still_001.jpg}}}||

  • The Pleasure of His Company, 1961 - 제시커 앤 풀(Jessica Anne Poole) 분
코미디. 엄마의 이혼과 재혼 후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던 친아빠(프레드 어스테어 분)가 나타나 딸 제시커의 약혼을 방해하고 아직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엄마를 흔들어놓는데...

  • The Second Time Around, 1961 - 루크리셔 "루" 라저스(Lucretia "Lu" Rogers) 역
서부극. 빈선트 셔먼 연출. 셀머 리터 출연.
1911년 주 체계로 편입되기 직전의 애리조나 준주로 이주한 뉴욕 여성이 목장에서 일하다가 보안관 자리까지 제안 받는다.

  • 서부 개척사(How the West Was Won), 1962 - 릴리스 프레스컷 밴 밸런(Lilith Prescott van Valen) 역
그레고리 펙, 헨리 폰다, 제임스 스튜어트, 존 웨인 등 기라성들과 함께 출연할 수 있었던 걸 영광으로 생각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220916_233026_ever.jpg}}}||

  • 마이 식스 러브스(My Six Loves), 1963 - 재니스 코트니(Janice Courtney) 분
4월 3일 개봉.
브로드웨이 스타 재니스는 의사가 요양을 권해 고향에 쉬러 갔다가 버려진 여섯 명의 아이들을 발견하고 엄마 노릇을 해주면서 동네 목사와 사랑에 빠진다. 결국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주기 위해 공연 일을 그만 둔다.

  • Goodbye Charlie, 1964 - 찰리 소렐(Charlie Sorel)/찰즈 소렐(Charles Sorel)/버지니어 메이슨(Virginia Mason) 역
희극. 빈신트 머넬리 연출. 조지 액설로드가 1959년에 발표한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1991년에 엘런 바킨 주연의 <스위치(Switch)>로도 만들어졌다.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는 할리우드 작가 찰리 소렐은 선상 파티에서 그에 못지 않은 호색한 헝가리계 영화 제작자 리오폴드 사토리(Sir Leopold Sartori, 월터 매사우 분)의 아내 러스티(Rusty)와 놀아나다 현장을 급습한 리오폴드의 총에 맞아 바다에 떨어져 죽는다. 친구인 소설가 조지 트레이시(토니 커티스 분)는 유언에 따라 강제로 찰리의 빚 정리를 떠맡은 뒤 말리부 해변가에 위치한 찰리의 집에 머문다. 그러나 밤중 여성으로 환생한 찰리, 그리고 알몸으로 배회하던 찰리를 발견한 브루스 민튼 3세(Bruce Minton III, 팻 분[11] 분)이 찾아온다. 여성 찰리는 죽은 남성 찰리의 과부 찰즈 행세를 시작하고 몸에 맞춰 점점 여성화 되어가지만 예전의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연인 사이일 적에 습득했던 정보를 이용해 전 여자친구들인 프래니(Franny, 엘런 버스틴 분)와 재닌(Janine Highland, 조애너 반즈[12] 분)을 협박하는가 돈을 노리고 자신에게 반한 브루스와 결혼하기로 한다. 한편 호색한 리오폴드는 찰리/찰즈의 집에 무단침입해 찰리를 강간하려 들고, 이 현장을 덮친 러스티는 남편 리오폴드가 아니라 찰리/찰즈를 탓하며 찰리에게 총을 쏴 찰리/찰즈는 바다로 떨어진다. 곧 찰리가 몸을 차지해왔던 여성은 버지니어 메이슨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찰리의 영혼은 이제 이 여성이 데리고 온 그레이트 데인 "찰리"의 몸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 언싱커블 몰리 브라운(The Unsinkable Molly Brown), 1964 - 말리 브라운(Molly Brown) 역
헬런 도잇쉬 대본. 타이타닉 사고에서 살아남은 실존인물인 사교계 명사이자 사회운동가인 마거릿 토빈 브라운의 얘기에 허구를 섞었다. 제목은 브라운에게 사후에 붙은 별명이다. 레널즈가 자신이 연기한 배역 중 가장 좋아하는 역할이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다만 대본이 얄팍해 작품평은 그리 좋지 않다. 1989년엔 뮤지컬 순회 공연을 다녔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220916_233606_eve.jpg}}}||

  • 노래하는 수녀(The Singing Nun), 1966 - 앤 수녀(Sister Ann) 역
기타를 잘 치고 노래를 잘하는 앤 수녀가 가정형편이 안 좋아 마음이 쓰이던 동네 소년을 생각하며 지은 노래로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에드 설리번 쇼에도 나오지만 아프리카 봉사를 위해 노래를 접는다는 내용이다. 수녀원장 역으로 그리어 가슨이 나온다.

  • 디보스 아메리칸 스타일(Divorce, American Style), 1967 - 바버러 하먼(Barbara Harmon) 역
동안의 얌전하고 소녀스러운 외모가 성해방의 시대인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방해가 되자 이미지 변신을 꾀하며 도리스 데이식 섹시코미디를 시도했지만 잘 먹히지 않았고, 철 지난 유행을 쫓았다며 비판 받았다.
바버러는 결혼생활 17년 만에 남편 리처드(딕 밴 다이크 분)와 이혼하는데, 리처드는 이혼수당이 너무 세서 고통 받게 된다. 역시 이혼수당 때문에 고통 받던 이혼남 친구 넬슨은 전아내 낸시 다운즈(Nancy Downes, 진 시먼스 분)를 리처드에게 소개 시킨다. 이혼수당 책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아내 낸시를 재혼시키려는 목적이다. 리처드도 이 넬슨에게 배운 이 수법을 전아내가 될 예정인 바버러에게 적용해 바버러를 갑부 자동차 세일즈맨과 엮어준다. 이렇게 '리처드-낸시', '바버러-갑부', '넬슨-임신한 약혼녀'로 짝이 형성된 걸 다같이 축하하기 위해 나이트클럽에 가는데 공연을 하던 최면술사가 손님들 사이에서 바버러를 골라 최면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입 맞추라고 하자 바버러는 리처드를 택한다. 결국 리처드와 바버러는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하고 화해한다. 넬슨은 그래도 지지 않고 낸시를 바버러에게 차인 갑부와 엮어보려고 애쓰며 끝이 난다.

  • How Sweet It Is, 1968 - 제니(Jenny) 역
평이 좋지 않았다.
어쩌다 외국에 나오게 된 제니와 남편은 부부간의 신의를 저버리고 각자 새 이성과 가벼운 썸을 즐기고, 아들은 여자친구 몰래 사창가에 갔다 제니 내외에게 걸린다. 희극답게 전부 없던 일로 하고 다같이 집으로 돌아간다는 결말.

  • 왓츠 더 매터 위드 헬렌?(What's Matter with Helen?), 1971 - 어델 브럭크너(Adelle Bruckner) 역
공포물. 헬런(셸리 윈터스 분)과 어델은 사건 내내 함께 하는 절친으로 나온다. 두 사람의 아들들이 선량한 여성을 함께 살해하고 감옥에 들어간 뒤, 두 사람에게 정체 모를 누군가가 전화로 복수를 예고하자 둘은 이름을 바꾸고 이사를 간다. 어델은 새로운 현실에 잘 적응하지만 헬런은 서서히 미쳐간다.

  • 샬롯의 거미줄(Charlotte's Web), 1973 - 샬럿 A. 커바티카(Charlotte A. Cavatica) 역
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 대표작을 꼽을 때 목록에 자주 들어간다.

이후 약 20년 간 무대 연기에 집중하고 영화는 거의 출연하지 않았다.

레널즈는 베트남 전쟁 생존자인 여주인공이 베트남에서 만난 미국인 남편과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만나게 되는 시어머니로 나온다. 분량은 짧지만 당시 레널즈가 딸 캐리 피셔와의 불화로 한참 이중인격자 취급을 당하던 중에 얻어낸 역이라 자연스레 장면 속에 절묘한 긴장 효과가 연출됐다. 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이 캐스팅을 두고 "짓궂다"고 표현했을 정도.

  • 스위트 마마(Mother), 1996 - 비어트리스 헨더슨(Beatrice Henderson) 역
두 번째 이혼을 앞둔 소설가 아들이 지금까지 여성들과의 관계가 다 실패한 원인이 엄마에게 있다고 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마 집에 들어가 같이 살아보기로 한다. 주인공, 남편을 여읜 엄마, 스포츠 에이전트인 또 다른 아들, 이 셋의 힘겨루기와 언쟁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25년만의 주연작이었다.

  • 인 앤 아웃(In & Out), 1997 - 버니스 브래킷(Bernice Brackett) 역
주인공(케빈 클라인 분)의 어머니 역으로 나왔다.

  • 디즈 올드 브로즈(These Old Broads), 2001 - 파이퍼 그레이슨(Piper Grayson) 역
TV 영화. 딸 캐리 피셔가 대본을 썼다. 친구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함께 출연했다. 테일러와 레널즈의 옛 삼각관계 스캔들이 반영돼있는 대사들이 나온다. 캐리 피셔는 "엄마와 테일러가 서로에게 한 번쯤은 분명하게 했어야 하는 얘기를 영화 대사를 통해 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hese-old-broads.jpg}}}||

  • 쇼를 사랑한 남자(Behind the Candelabra), 2013 - 프랜시스 리버라치(Frances Liberace) 역
마이클 더글러스가 연기하는 리버라치의 엄마 역으로 나왔다. 레널즈는 리버라치의 어머니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다. 맷 데이먼 출연.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220917_000100_ba.jpg}}}||


4.2. 공연[편집]


  • 1973년 최초의 브로드웨이 나들이인 "아이린(Irene)"으로 토니상 후보에 올랐다. 맨해튼 웨스트사이드에서 작은 악기 가게를 운영하던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의 아이린(Irene O'Dare)이 우연히 모델이 되면서 롱아일랜드의 상류사회 사교계로 진출하고 재벌과 행복한 로맨스를 이루는 얘기다. 레널즈의 역은 1974년 제인 파월이 이어받았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KfgCTIU8AAaEeh.jpg}}}||
사진 속에 코러스로 출연했던 딸 캐리 피셔의 모습이 보인다. 당시 16살이었다.


4.3. TV[편집]


  • 1953-57년 첫 번째 남편인 가수 에디 피셔의 단독쇼인 NBC "The Eddie Fisher Show(디 에디 피셔 쇼)"에 고정출연에 준하는 빈도로 출연했다.

  • 1960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버라이어티 쇼 "A Date With Debbie"를 진행했다. 1967년에도 비슷한 양식의 "And Debbie Makes Six"를 만들었다.

  • 1969-70년 제2의 "왈가닥 루시"를 꿈꿨던 시트콤 "Debbie Reynolds Show(데비 레널즈 쇼)"는 1시즌 만에 끝이 났다. 이유 중의 하나는 레널즈가 담배 중간 광고를 넣는 걸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때 주인공 이름은 데비 탐슨(Debbie Thompson)이었다.



  • 2000-3년 니켈로디언 "러그래츠"에서 룰루 피클즈(Lulu Pickles) 목소리를 연기했다. 주인공의 할아버지의 두 번째 아내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220923_164027.jpg}}}||

  • 2003-7년 인기 애니메이션 "킴 파서블"에서 나나 파서블(Nana Possible) 목소리를 연기했다. 이름에 나와있듯이 주인공 킴 파서블의 할머니 역이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99SmVDDSrDPl.jpg}}}||


4.4. 기타[편집]


  • 1980년대 제인 폰다가 만들어낸 운동비디오 열풍에 합류한 적이 있다. 1984년엔 "Do It Debbie's Way"를, 1988년엔 "Couples(Do It Debbie's Way)"을 냈다. 친분 때문에 할 수 없이 우정출연해 억지웃음을 짓는 관록 있는 배우 셸리 윈터스의 표정이 압권이다. 입고 있는 셔츠에 "이게 다 데비 레널즈 때문이다"라고 써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helley_Winters_in_Do_It_Debbie_s_Way_1024x1024-1024x693.png}}}||


5. 사생활[편집]



5.1. 가족관계[편집]


아버지는 남태평양 철로 공사에서 일하던 목수였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주인공 레아 오르가나 역을 맡은 캐리 피셔가 딸이다. 피셔와는 심각한 냉전 기간이 있었다. 워낙 떠들썩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두 모녀의 관계만을 다룬 종이책까지 나와있다.

1987년 피셔가 출판한 소설 "할리우드 스토리(Postcards from the Edge)"에 자전적 요소가 있다는 관측이 돌면서 호사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 이 반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캐리 피셔가 직접 대본을 쓰고 마이크 니컬스가 연출한 영화가 만들어졌을 땐 언론의 부정적 보도가 절정에 달했다. 원작 소설 속의 엄마는 주인공과 갈등이 컸던 것으로 암시되긴 하지만, 마약재활원에 들어간 딸을 병문안 하는 장면에서만 잠시 나오고 딸의 속옷 빨래를 해주고 떠나곤 한다. 그러나 영화에선 엄마 역할의 비중이 주인공 급으로 커졌고, 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주정뱅이로 묘사됐다.

소설이 화제가 된 이후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한참 유통되던 몇 년 동안, 레널즈가 피셔를 오랫동안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까지- 학대를 한 것 같다는 폭로성 보도가 이어졌다. 피셔는 당시 이런 추측을 부인하지 않고 대중의 심증을 더해주는 행보를 보였다. 젊은 시절엔 국민여동생으로 여겨졌던 레널즈였지만 1977년 <스타워즈>가 나온 후론 청년 및 중년층에겐 그저 '레아 공주 엄마'가 돼있었기 때문에 레널즈를 향한 여론이 험악해졌었다. 장년층에겐 레널즈가 워낙 "흠 잡을 데 없이 깨끗한" 이미지였기 때문에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레널즈가 영상 작업에 복귀해서 맡은 배역들은 사실상 이 영화에서 묘사된 엄마의 모습을 조금씩 다르게 변주한 것에 불과하다. 레널즈와 캐리 피셔 두 사람이 사망할 즈음엔 학대 의혹은 완전히 사그라들어 처음부터 없던 얘기처럼 되어버렸지만, 노년의 레널즈 이미지는 이 영화 속 엄마의 모습으로 영원히 고정되고 말았다.

하필 대중 호감도가 매우 높은 메릴 스트립이 캐리 피셔에 해당 되는 역을 맡고, 80년대 중반부터 좀 이상한 사람이란 취급을[13] 받던 셜리 맥클레인이 레널즈에 해당되는 역을 맡은 것도 문제였다.[14] 이조차도 피셔의 의도라는 얘기까지 나왔었다. 이 영화로 스트립과 맥클레인은 함께 BAFTA골든 글로브 후보에 올랐고, 스트립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 자리까지 거머줬다.

그래도 영화는 결말을 훈훈하게 끝냈고, 몇 년이 지난 뒤 캐리 피셔는 실제로 두 사람 사이에 있던 일들을 그대로 적은 게 아니라고 언급하긴 했다.
파일:MV5BMjE0ODAzOTU4MV5BMl5BanBnXkFtZTgwMDY5Mzk4NjE@._V1_.jpg

어쨌든 2000년대부터는 과거를 뒤로 한 채 사이를 조금씩 회복시키고 있었다. 사망 직전엔 서로의 집을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거리에서 살기도 했다. 레널즈의 유언도 '딸과 함께 하고 싶다'였다. 두 모녀의 애증 관계는 2016년 HBO에서 <Bright Lights: Starring Debbie Reynolds & Carrie Fisher>라는 다큐멘터리로 만든 적이 있다.
파일:20220923_172956.jpg
파일:20220923_172942.jpg
파일:20220923_172913.jpg
파일:20220922_135115.jpg

시시비비를 제대로 다 따지지 않은 상태에서 두 사람이 모두 사망했기 때문에 모녀의 냉각기에 언론에서 떠들어대던 것 중에서 무엇이 진실이었는지는 이제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다만 레널즈가 딸 캐리 피셔미성년자일 땐 거의 방치했고 성인이 된 후엔 갑자기 지나친 간섭을 해댔으며, 이 과정에서 캐리 피셔가 크게 상처를 입었던 것만큼은 사실로 보인다.

아들 타드 이매뉴얼 피셔[15]는 광고감독이자 영화제작자다.


5.2. 결혼과 이혼[편집]


첫 남편 에디 피셔와 커플로서 인기가 많았다. 피셔의 소녀팬들 인기의 주된 기반도 바로 사랑꾼 이미지였다.
파일:gMCLD-1483031888-embed-pcddere_ec003_h.jpg

그러나 레널즈는 말년에 프랭크 시나트러가 피셔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바람둥이이니 결혼하면 안 된다며 대놓고 말렸다고 밝혔다.

피셔는 사귈 때는 물론 결혼 기간 동안에도 당시 한참 이미지가 좋았던 레널즈 덕을 보기 위해 일부러 보여주기식으로 레널즈를 언론 앞에 데리고 다녔다는 증언들이 있다. 레널즈는 에디 피셔의 단독 TV 쇼에 자주 출연했었는데 이 역시 레널즈보단 피셔에게 득이 됐다고 한다.

레널즈 몰래 여러 여성들과 바람피던 피셔는 1958년 10대 시절부터 레널즈의 절친이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살겠다며 가정을 저버렸다. 결국 레널즈는 1959년 피셔와 이혼했고, 졸지에 홀로 어린 두 아이를 떠맡은 한부모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한편으론 이 사건으로 대중들 사이에 레널즈에 대한 동정 여론이 모여 1958-60년 작품 흥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1961년 테일러가 폐렴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다시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되면서 이런 기조가 줄어들게 된다.

레널즈에 따르면 피셔가 언제나 친구 테일러의 남편이 되고 싶어했다는 걸 사실 내심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차피 모든 남자들이 테일러의 남편이 되고 싶어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고. 그런 심리가 있을 뿐이지 진짜로 실천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셔는 테일러의 남편이자 절친이었던 마이크 타드가 죽자마자 타드의 성격은 물론 사소한 취미들까지 모방해가는 정성을 들이며 "인격을 아예 타드로 갈아끼워" 넋이 나가있던 테일러를 포섭했고, 결국 레널즈의 귀에까지 불륜 소문이 들려와[16] 피셔에게 따져물으려고 하는 순간 피셔가 먼저 이혼을 요구해왔다고 한다.
파일:https___prod.static9.net.jpg

프랭크 시나트러를 기죽일 정도의 위세를 떨치던 에디 피셔는 "대중 앞에 선보이기엔 너무 부도덕한" 인물이란 이유로[17] 바로 TV에서 쫓겨났고 팬층이 완전히 떨어져나가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다. 피셔 본인이 레널즈를 앞세워 잉꼬부부 이미지를 지나치게 홍보했던 것이 독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자신이 레널즈의 억울한 피해자라고 거듭 큰소리로 주장하는 바람에 대중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했다.[18][19]

피셔는 양육비를 단 한 번도 보내지 않았고, 캐리 피셔 등 자녀들에게도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고 한다. 레널즈는 원래부터 불륜의 1차 책임이 피셔에게 있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후에 보여준 이런 적반하장의 태도 때문에도 더 그를 용서하지 못했다.

테일러도 피셔와 마찬가지로 레널즈를 매우 괴롭게 한 장본인이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해선 결코 변명한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레널즈는 테일러에게 큰 배신감을 느꼈음에도 1961년 테일러의 생사가 위독해졌을 땐 테일러의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안부를 물으며 응원하는 전보를 보내기도 했다. 1964년 우연히 테일러와 배 안에서 마주친 뒤엔 테일러를 용서하고 다시 친구로 지냈다. 테일러는 리처드 버튼과, 레널즈는 제화업계 재벌과 각각 재혼한 상태였을 때였다. 캐리 피셔에 따르면, 둘은 화해한 뒤엔 당시 사건을 농담 소재로 쓰며 웃으며 얘기하곤 했다고.

결국 에디 피셔는 1970년 파산에 이르렀다. 대중의 정서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피셔는 자서전에서도 자신이 테일러와 바람피기 이전에 이미 레널즈 때문에 결혼생활이 망가져 있었다며, 레널즈가 언론에 거짓말하는 솜씨는 그야말로 최우수 연기자상감이라고 맹비난했다. 결국 피셔는 사망한 현재까지도 거의 기록말살형에 처해져있다. 테일러-버튼의 얘기가 끝없이 재생산되는 것과 달리 그에 준하는 대형 스캔들이었던 테일러-피셔-레널즈의 삼각관계는 따로 영상화 되는 법이 없다. 생전에도 피셔의 입장은 들어볼 것도 없다는 게 방송계 인식이라 당시 일을 다룰 때 간단한 전화 인터뷰조차 생략 당하곤 했다. 피셔가 본인의 경력을 걸 정도로 테일러를 좋아했고, 테일러-버튼 스캔들에선 다시 가해자에서 피해자의 위치가 됐기 때문에 피셔에 대한 이런 처우를 아쉬워하는 일부 음악업계인들의 반응도 존재한다.

두 번째 남편인 제화업계 재벌은 레널즈와 결혼할 당시엔 건실한 사람이었지만, 차차 레널즈의 돈을 함부로 도박에 탕진하게 됐고 사업을 방치한 끝에 바람도 피웠다.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마지막 남편도 비슷했다. 세 번의 결혼생활이 다 비슷하게 끝나서 해탈한 레널즈는 본인이 "남자 보는 눈이 정말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


6. 여담[편집]


  • 2015년 미국영화배우조합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 회사의 지시로 게이인 태브 헌터[20]이성애자로 위장하기 위해 데이트 상대를 해준 적이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ELEMMGLPICT000168847073_trans_NvBQzQNjv4BqkuhzjfU-wBYA0blVU_-1rw-qjhAzL0J9vHmL2c7g5-o.jpg}}}||

  • <사랑은 비를 타고>(1952) 촬영 도중 진 켈리가 사전합의 없이 키스신에서 갑자기 프렌치 키스를 해서 울며 촬영을 중단한 일이 있었다. 자신이 "더럽혀졌다고" 느낀 레널즈는 침을 뱉고 코카콜라로 입을 헹군 뒤 간단한 입술 맞대기가 아니면 촬영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중에 둘은 친구가 됐지만 레널즈는 자서전에서 이때의 일만큼은 "추행(assault)"으로 느껴졌다고 적었다.

  • 제임스 딘의 연인으로 유명한 피어 앤젤리와 절친이었다. 앤젤리가 레널즈의 집에서 산 적도 있다.

  •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관계를 회복한 뒤엔 토크쇼에서 둘의 관계를 묻는 게 일종의 네타가 되었다. 진행자가 정말 용서한 거 맞냐고 끈질기게 물어보면 레널즈가 나중에 방송 끝나고 따로 얘기하자고 윙크를 하는 식.

  • 원래 머리카락 색은 갈색이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3 01:46:28에 나무위키 데비 레이놀즈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Stephanie Nolasco, “Debbie Reynolds’ faith in God ‘got her through all the difficult times,’ son Todd Fisher says,” 폭스 뉴스, 2021년 11월 6일.[2] Burbank on Parade.[3] Miss Burbank Beauty Contest.[4] Hollywood Movie Museum.[5] Governors Awards.[6] Helen Kane. 1904 - 1966. 플래퍼 가수로 1920년대에 인기 절정이었다.[7] Most Promising Newcomer.[8] boy-next-door.[9] Carleton Carpenter.[10] Arthur Freed. 미성년자였던 셜리 템플에게 자기 성기를 꺼내서 보여준 적도 있는 등 다채로운 악행을 저질렀다.[11] Pat Boone.[12] Joanna Barnes. 1934 - 2022.[13] 자세한 내용은 셜리 맥클레인뉴에이지 활동 항목 참조.[14] 맥클레인과는 나중에 뒤에서 둘이 잘 풀었는지 피셔가 역시 대본 작가였던 <디즈 올드 브로즈>(2001)에 공동주연으로 같이 나왔다.[15] Todd Emmanuel Fisher.[16] 파티에 갔는데 자신이 등장한 순간 다들 갑자기 수군거렸고 몇몇 단어가 귀에 꽂혔다고 한다.[17] 당시 할리우드에도 지금처럼 바람핀 게 대외적으로 알려지고도 그대로 활동한 인물들은 많았다. 그러나 피셔는 방식과 상황이 너무 악질적이어서 덮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18] 같은 시기에 활동한 프랭크 시나트러도 여자 문제로 비슷한 위기를 몇 번 겪었다. 특히 에바 가드너와 결혼했을 땐 피셔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심각하게 비난 받았다. 그러나 시나트러는 레널즈에게 시인했듯, 피셔와 달리 자신의 성향과 객관적 상황을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피셔와 달리 대중의 비판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늘 용서 받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피셔 역시 고집을 꺾고 대중의 기분을 헤아렸다면 얼마든지 반등할 수 있었을 것이다.[19] 원인이 된 사안은 전혀 다르지만 미국민들에게 있어 피셔는 유승준과 유사한 경로를 거쳤다고 볼 수 있다.[20] Tab Hunter. 1931 -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