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릭 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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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 지터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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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98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1999 MLB 올스타전 로고.png파일:2000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01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02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04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06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07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08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09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10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11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12 MLB 올스타전 로고.svg파일:2014 MLB 올스타전 로고.svg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1998
1999
2000
2001
2002
2004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4

파일:뉴욕 양키스 로고.svg파일:NYY_2009_WSChampion.png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1996
1998
1999
2000
2009





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A149F1AA-75EC-492A-A447-171785AEB6CA.jpg
데릭 지터
헌액 연도
2020년
헌액 방식
기자단 (BBWAA) 투표
투표 결과
99.7% (1회)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6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마티 코르도바
(미네소타 트윈스)

데릭 지터
(뉴욕 양키스)


노마 가르시아파라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4년 ~ 2006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유격수 부문 골드 글러브
알렉스 로드리게스
(텍사스 레인저스)

데릭 지터
(뉴욕 양키스)


올랜도 카브레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9년 ~ 2010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유격수 부문 골드 글러브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데릭 지터
(뉴욕 양키스)


에릭 아이바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6년 ~ 2009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유격수 부문 실버 슬러거
미겔 테하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데릭 지터
(뉴욕 양키스)


알렉세이 라미레즈
(시카고 화이트삭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12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유격수 부문 실버 슬러거
아스드루발 카브레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데릭 지터
(뉴욕 양키스)


J.J. 하디
(볼티모어 오리올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6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행크 애런 상
데이비드 오티즈
(보스턴 레드삭스)

데릭 지터
(뉴욕 양키스)


알렉스 로드리게스
(뉴욕 양키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9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행크 애런 상
케빈 유킬리스
(보스턴 레드삭스)

데릭 지터
(뉴욕 양키스)


호세 바티스타
(토론토 블루제이스)


파일:MLB 로고.svg 2000년 메이저 리그 올스타전 MVP

페드로 마르티네스
(보스턴 레드삭스)

데릭 지터
(뉴욕 양키스)


칼 립켄 주니어
(볼티모어 오리올스)


파일:MLB 로고.svg 2009년 메이저 리그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데릭 지터
(뉴욕 양키스)


팀 웨이크필드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MLB 로고.svg 201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커미셔너 역사적 공로상

마리아노 리베라
(2013)

데릭 지터
(뉴욕 양키스)
빈 스컬리

오타니 쇼헤이
(2021)




뉴욕 양키스 등번호 2번
마이크 가예고
(1992~1994)

데릭 지터
(1995~2014)


영구결번




파일:폭스 스포츠 로고.png
뉴욕 양키스 No. 2
데릭 샌더슨 지터
Derek Sanderson Jeter

출생
1974년 6월 26일 (49세)
뉴저지 주 페콴녹 타운십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학력
센트럴 고등학교
신체
191cm / 88kg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2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6번 (NYY)
소속팀
뉴욕 양키스 (1995~2014)
프런트
마이애미 말린스 CEO (2017~2022)
등장곡
Eminem - Lose Yourself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
2. 선수 경력
2.1. 2008 시즌
2.2. 2009 시즌
2.3. 2010 시즌
2.4. 2011 시즌
2.5. 2012 시즌
2.6. 2013 시즌
2.7. 2014 시즌
3. 은퇴 후
3.2. 해설위원 데뷔
5. 기타
5.1. 여성 편력
6. 수상 목록
7.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8. 연도별 기록
9. 연도별 포스트시즌 기록
10.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Derek Jeter; where fantasy becomes reality. Did you have any doubt?(데릭 지터, 그로부터 환상은 현실이 됩니다. 의심의 여지가 있을까요?)"

마이클 케이[1]

, 2014년 9월 25일에 열린 본인의 마지막 양키 스타디움 경기에서 9회 말 볼티모어 오리올스에반 믹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쳐낸 직후 한 멘트.


미국의 前 야구선수.

1990년대~2000년 초반 알렉스 로드리게스, 노마 가르시아파라와 함께 1990년대~2000년대 아메리칸 리그 3대 유격수 중 하나였으며, 그들 중 최후의 생존자이자 최후의 승리자로 평가받는다.[2]

현역 시절 '뉴욕의 황제이자 연인'이라는 별명으로 대표되는 선수로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3]

마리아노 리베라, 호르헤 포사다, 앤디 페티트와 함께 팀의 4대 간판 스타인 ‘Yankees the Core Four’의 일원이었으며, 지터가 2014 시즌 종료 후 4명 중 가장 마지막으로 은퇴하면서 코어 4의 시대도 막을 내렸다.


2. 선수 경력[편집]


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순위 4위였다. 비슷한 수준의 (역대) 톱급 유망주들의 성적은 메이저 리그 유망주 순위를 참조.

1995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 이듬해 신인왕을 차지하면서 일찍부터 활약했다. 그리고 신인왕을 차지한 바로 그 해 1996년월드 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는데, 이는 1980년대 뉴욕 양키스의 암흑기를 끝내는 우승이었다. 그리고 이 우승이 끝이 아니라 1998년1999년, 2000년2009년에도 우승을 차지했다. 도합 우승 반지가 다섯 개.



2000년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 MVP 및 월드 시리즈 MVP까지 따냈다. 올스타 게임 14회, 실버 슬러거를 5회, 골드 글러브를 5회 수상했다. 또한 포스트시즌에서도 통산 타율 .308, 20홈런, 59타점을 기록하며 Mr. November 같은 별명[4]을 얻을 정도로 상당히 강한 면모를 보였다. 단, 골드 글러브 수상은 순전히 인기발이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수비가 영 좋지 못한 편이다. 필딩률 자체는 준수하지만 UZR나 런 세이브세이버메트릭스 수치로 보면 상당히 떨어지는 수준.

아무튼 데뷔 시즌인 1996년 부터 매 시즌 두 자리수 홈런, 도루를 기록하고 있으며 1번, 2번을 치며 테이블 세터 자리를 책임졌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밀어치기의 달인으로 특유의 '인사이드 아웃' 스윙으로 필드 전방위에 안타를 양산하는 스프레이 히터였다. 두 자릿수 홈런과 도루를 매 시즌 기록하는 등 공격 면에서 두루두루 뛰어난 모습을 보인 타자였으며, 강견에 우월한 피지컬을 살린 화려한 유격수 수비도 사랑을 받았다. 특히 1999 시즌에는 24홈런 102타점 19도루에 3할 중반의 타율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썼다.

이후 2001년과 2004년에는 20-20클럽에 성공할 정도로 A급 선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려주었다. 특히 2001년에 포스트시즌에서의 수비는 말 그대로 압권. 2002년에도 좋은 활약을 펼쳤고 부상이 있어 110여 경기에 그쳤던 2003년에도 10홈런에 3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팀의 레전드가 되어갔다.

2005년 최종 성적은 159경기 202안타 19홈런 70타점 14도루 .309의 타율 .839의 OPS를 기록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팀은 디비전시리즈에서 1승 3패로 탈락했다.



2006 시즌 시작 전에 처음 펼쳐지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미국 대표로 선발되었고 주전 유격수로 나섰다. 데릭 지터는 이 대회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대회 베스트 팀에도 선정되었으나 미국이 야구 중주국답지 않게 예산전 부터 부진하더니 2라운드에서 힘없이 탈락하며 그의 활약도 빛을 바랬다. 한국에게 7:3으로 떡실신 굴욕을 당할 때도 선발 출전해 4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이때 1회 대회 당시 우리나라와 경기 중 김민재 선수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당했다. 당시 김민재 선수는 지터에게 "I like you."라고 말을 걸었으며 지터는 "Me, too."라고 대답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이종범의 소설이고 실제로는 "I like your play."라고 했다고 한다.

시즌 시작 후에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특히 타점 생산 능력이 엄청났다. 테이블 세터 선수의 성적이라고 보기 어려울 수준. 몇몇 WBC에 참가했던 선수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골골댔으나 지터는 부상과 부진없이 자신의 커리어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2006년 최종 성적은 154경기 214안타 14홈런 97타점 34도루 .343의 타율과 OPS는 정확히 .900을 기록하며 30대 초반 나이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팀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여 디비전시리즈에서 광탈했다.

2007년도 팀의 캡틴으로서 그에 걸맞는 활약을 펼쳤으며,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역시 변함없이 공수주 좋은 활약을 펼쳤다.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팀의 테이블 세터진을 담당하여 로드리게스 앞에 밥상을 차렸다. 바비 어브레유, 제이슨 지암비 등이 먹튀 또는 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펼쳐도 지터만큼은 밥값을 했다. 최종 성적은 156경기 12홈런 73타점 15도루 .322의 타율 OPS는 .840을 기록했다. 33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실력은 여전했다. 하지만 팀은 보스턴에 밀려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하지만 디비전시리즈에서 일찌감치 탈락했고 3연속 디비전시리즈 탈락이라는 아픈 기록을 썼다. 그리고 월드시리즈는 라이벌 보스턴이 우승했다.


2.1. 2008 시즌[편집]


2008년 6월 27일, 지터는 자신의 MLB 통산 400번째 병살타를 기록했으며, 7월 12일에는 자신의 200번째 홈런을 쳤다. 또한 통산 9번째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9월 14일 양키 스타디움에서 탬파베이 레이스의 투수 데이비드 프라이스의 공을 받아쳐 홈런을 치면서 양키 스타디움에서의 1,269번째 안타와 함께 루 게릭의 기록과 타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틀 뒤,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 기록을 갱신했다.

매년 하락세 없이 좋은 활약 펼치던 지터가 2008년에는 아쉬운 활약을 펼친다. 발도 아직 빠르고 수비도 최상급이었지만 이 시즌에 홈런이 11개에 타율은 .300에 그친다. Ops는 .800이 안 된다. 약간 부진했던 탓인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원인이 본인에게로 돌아갔다. 본인의 첫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이다. 그리고 이해가 구 양키 스타디움에서의 마지막 시즌이라 팬들은 더욱 아쉬워했고 조 지라디의 부임 첫 시즌이었다. 양키스는 시즌 후 마크 테세이라닉 스위셔를 영입하며 더 강한 타순을 구축한다.

어쨌든 지터의 이 성적도 메이저에서 좋은 기록이다. 그의 명성에 비해 약간 아쉬운 편이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


2.2. 2009 시즌[편집]



파일:Derek2009.jpg


정규 시즌 개막전 2009 WBC미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서 참가했다. 2006 WBC때와 달리 4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마쓰자카 다이스케일본에 막혀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뉴 양키 스타디움에서의 첫 시즌이며, 양키스의 감독 조 지라디는 지터와 조니 데이먼의 타선을 바꾸었으며 데이먼이 2번으로 옮겨졌고, 지터가 1번 타자를 보게 됐다.

6월 2일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는 4타수3안타 1볼넷을 기록, 6경기 연속 멀티 히트로 타율을 .284에서 .319로 끌어올렸다(.319/.393/.474). 지터는 전날 통산 2600안타에 이어 통산 1500득점을 달성했다. 1500득점은 켄 그리피 주니어-게리 셰필드-알렉스 로드리게스에 이은 현역 선수 4번째, 역대 유격수 역대 4번째, 베이브 루스-루 게릭-미키 맨틀에 이은 양키스 선수 역대 4번째다.

8월 16일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지터는 1번 타자 겸 유격수로 선발 출전하여 우익선으로 2루타를 터뜨려 통산 MLB 2675안타를 기록하면서 루이스 아파리시오의 안타 기록을 넘겼다. 지터는 이후 9월 11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 3회에 크리스 틸먼의 공을 받아쳐 통산 2722안타를 기록하면서 루 게릭의 기록을 경신하여 양키스 프랜차이즈 최다 안타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렇듯 지터는 지난 시즌의 아쉬웠던 모습을 털어내고 다시 탑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키스톤 콤비인 로빈슨 카노도 각성하였고 둘은 mlb 최강의 키스톤 콤비를 구축했다. 지터의 2009년 최종 성적은 153경기 634타수 107득점 212안타(2루타 27, 3루타 1) 18홈런 66타점 30도루(5실) 72볼넷 90삼진 .334 .406 .465를 기록했다. 또한 수비에서도 .986의 필딩률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자기 별명인 Mr.November답게 홈런 3개를 포함하여 15경기 64타수 22안타 6타점 .344 .432 .563를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고,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의 대활약으로 필라델피아를 꺾고 통산 그의 5번째 월드시리즈 반지를 얻었다. 앤디 페티트, 마리아노 리베라와 함께 5번째 우승으로 1960년대 이후 가장 많은 우승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지터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로부터 올해의 스포츠 선수로 임명되고 로베르토 클레멘테상, 행크 애런 상과 자신의 통산 4번째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였다. 지터는 또한 아메리칸 리그 MVP 투표에서 트윈스의 조 마우어와 양키스 동료 마크 테세이라에 이어 3위를 마크하였다.

2.3. 2010 시즌[편집]


8월 8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2안타를 추가하면서, 통산 2875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면서 베이브 루스의 통산 2873안타를 뛰어넘었다!

2010년 골드 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어 논란을 빚었다. 이는 전통적인 수비 스탯인 필딩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으나 각종 세이버메트릭스를 통해 계산된 수치들, 그중에서도 가장 신뢰받고 있는 UZR와 DRS에서 징그럽게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 이래서 이름값으로 받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지터의 수비력에 대해선 말이 많은 편이지만 통산 필딩률은 0.972 정도로 준수한 편이고 안정적인 포구를 한다.[5] 하지만 1루수를 최악의 수비수였던 지암비에서 수비력이 뛰어난 티렉스로 바꾸고 나서 송구 능력이 급상승하는 것을 보니, 1루수를 좀 많이 타는 듯하다.[6] 그래도 MLB 역사에 남을 몇몇 명수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01 ALDS에서 선보인 'The Flip'이라든지...

그러나 지터도 인간인지라 2010 시즌 들어서는 점차 하락세를 보이기도 했다.[7] 1번 타자인데 타율이 2할 7푼에 출루율이 3할 4푼대… 또한 본격적으로 풀 타임을 뛴 이후로 장타율이 처음으로 4할 미만이다. 풀타임 시즌 후 최악의 성적이었다. 홈런도 10개 턱걸이. 양키스 구단 역시 하락세를 염려하여 지명타자 전환을 권유하고 있으나 우리의 지느님께서는 유격수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시니… 수비력에는 그다지 큰 문제가 없었고 타격이 급격히 막장화된 것은 아니라 빌 제임스 같은 경우에는 현역 중 4000안타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마저도 6% 정도이고... 물론 해마다 가능성을 짜게 먹이긴 했지만.

2011년 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었으나 뉴욕 양키스 내의 상징성 등을 감안하여 지터가 양키스를 떠나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계약을 놓고 구단 측과 마찰을 빚었다. 양키스 구단에서 3년간 4,500만 달러 계약안을 제시하였으나 지터는 4년 이상의 계약에 더 많은 연봉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양키스 구단에서는 예상되는 시장가보다 2배 가량 높게 쳐준 거라서 더 줄 수는 없다고 강경하게 버티고 있었고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터의 요구액은 5년 계약에 연 평균 무려 2200만 달러. 지터의 요구액에 팬도 언론도 폭소를 터뜨렸다.

결국 3년간 연 평균 1700만 달러, 총액 5100만 달러로 재계약을 맺고 양키스로 컴백했다. 그 정도만 해도 지터의 대승리라는 평가가 지배적. 자세한 계약 사항은...

3 years/$51M (2011-13), plus 2014 player option

re-signed by NY Yankees as a free agent 12/6/10

11:$15M, 12:$16M, 13:$17M, 14:$8M player option ($3M buyout)

$2M annually deferred without interest, payable each 3/15, 2015-17 (present-day AAV about $16M)

2014 option may increase to $17M based on awards earned in 2011-13: $4M for AL MVP; $2M for 2nd-6th in MVP vote; $1.5M for Silver Slugger; $0.5M each for Gold Glove, ALCS MVP, WS MVP

if 2014 option is exercised at less than $17M, Jeter may earn same bonuses in 2014, up to $17M[8]



2.4. 2011 시즌[편집]


2011년 초반부터 시즌 내로 대망의 역대 28번째 3천 안타, 양키 프랜차이즈 사상 유일한 3천 안타를 달성할 거라 예상되었다.

다만 시즌 초반에는 활약상이 좋지 못하다. 개막 후 4월 23일까지 타율 .221에 장타라고는 달랑 한 개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특히 전문가들의 눈길을 모으는 부분은 타구의 땅볼 비율. 파울볼을 제외하고 인플레이가 된 타구 중 23일까지 지터의 땅볼 비율은 무려 73%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높은 비율. 메이저리그에서 땅볼 비율이 65%를 넘는 선수가 단 두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초라하기 그지없는 기록이다. 이를 통해 타율을 떠나 투수의 투구를 방망이 중심에 맞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지터는 분명히 플라이볼보다는 땅볼 타구가 많은 선수이기는 하다. 그러나 땅볼 타구가 한 번도 60%를 넘은 적은 없었다. 단지 지난해 시즌 후반 거의 한 달 동안 타구가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더니 땅볼 타구 비율이 66%까지 치솟았다. 올 시즌 부진이 지난해 부진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지터의 부진이 불안한 이유는 또 있다. 지난 오프시즌 동안 스트라이드를 하지 않는 타격폼 훈련을 한 지터는 시즌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처럼 왼다리를 들어 스트라이드를 하는 폼으로 되돌아갔다. 오프시즌 동안 훈련한 폼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바꿨다는 점은 그만큼 타격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후 5월 6일 기준으로도 지터의 타율은 .250에 불과하다. 출루율 .308에 장타라고는 2루타 2개가 전부이며, 홈런은 한 개도 없다. 마지막으로 홈런을 친 것은 지난해 8월 24일이었다. 여기에 유격수 수비범위는 자꾸만 좁아지고 있고, 이제 정말 중견수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팀 승리를 우선시 하는 지터의 성격상 먼저 감독에게 타순 변경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라디 감독은 그럴 가능성은 없다며 부인했다. 게다가 양키스는 지난 겨울 지터와 계약기간 3년에 5,100만달러의 계약을 했다. 본전 생각을 해서라도 지터가 1번 타자로 제 몫을 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충분한 시간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5월 9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는 6타수 4안타 2홈런을 기록하는 등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경기에서 기록한 홈런은 무려 259타수만에 처음 나온 홈런이었다. 캐시먼 단장은 "지터의 공격이 팀을 이끌거나 팀을 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지터의 부진은 그의 연봉 때문에 과장됐다."라며 지터를 믿고 있다고 밝혔다.

5월 28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는 통산 327번째 도루를 기록하면서, 기존 리키 헨더슨의 프랜차이즈 도루 기록을 갱신했다.

6월 14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전에는 장딴지 쪽에 부상을 입으면서 15일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그다지 큰 부상은 아니라고. 실제로 MRI 촬영 결과 지터의 부상은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양키스는 지터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부상자 명단에 올렸다. 그러면서 3000안타까지 6개를 남기고 당분간 나올 수 없게 되었다.

7월 4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전에서 복귀전을 치렀다. 다만 간만에 경기에 나서서 그런 것인지,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다음날 5일 경기에서는 2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2996번째 안타를 기록하였다. 7월 6일에는 1안타를 추가했다.

그리고 2011년 7월 9일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홈 경기에서 에이스 데이빗 프라이스를 상대로 2999안타를 때려내더니, 전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들어선 다음 타석에서 풀 카운트 접전 끝에 3000안타 마일스톤을 솔로 홈런으로 때려버렸다![9] 이 홈런으로, 지터는 커리어 첫 안타를 1987년 드래프트 전체 1번픽 출신인 팀 벨처에게 뽑아내고, 3000안타를 2007년 전체 1번픽인 데이빗 프라이스에게 뽑아낸 진귀한 기록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지터는 만 37세 13일에 3000안타를 달성함으로써 타이 콥(34세244일), 행크 애런(36세101일), 로빈 욘트(36세359일)에 이어 역대 4번째로 어린 나이에 이를 달성했다.





파일:Derek3000.jpg

That one's drilled! Deep to Left field! Going back Joyce! Looking up! SEE YA!!! 3000! History!!

(저 타구가 구장을 꿰뚫습니다! 좌측으로 깊게! 조이스가 뒤로 갑니다! 하지만 그도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홈런! 3000개! 역사가 만들어집니다!)


당초 양키 스타디움에서 대기록을 달성하게 하기 위해 클리블랜드전 라인업에서 제외하는 등 양키스 측에서도 상황을 만들어줬지만, 우천으로 인해 탬파베이 시리즈가 한 경기 취소되는 등 난관이 있었다. 그러나 뉴욕의 황제 폐하께서는 가볍게 멀티 히트로서 전 관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홈런을 치고 1루를 돌 때 1루수 케이시 코치맨은 모자를 벗으며 경의를 표했고, 들어오는 순간 앤디 페티트가 은퇴한 후 남은 Key-3의 멤버이자 절친 호르헤 포사다와 마리아노 리베라를 필두로 양키스 선수들이 뛰쳐나와 얼싸안으며 캡틴의 대기록을 축하했다. 경기장은 가히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도 해낸 듯 용광로로 변했으며 지터를 위해 경기가 잠시 중단되었고 조니 데이먼을 비롯한 탬파베이 선수들도 크레이그 비지오 이후 오랜만에 달성된 새로운 역사의 순간에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저 홈런 볼의 가격도 만만치 않았을 거라고...[10] 또한 이날 무려 5안타를 기록하며, 3000안타를 달성한 날 5안타를 기록한 역대 2번째 선수가 되었다! [인사이드MLB] 데릭 지터, 3000안타의 의미는

7월 14일에는 호르헤 포사다와 함께 1,660번째 경기를 소화하면서, 루 게릭과 토니 라제리 듀오의 1659경기 기록을 넘어섰다.

8월 29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는 양키스 소속으로 2,402번째 경기를 소화하면서, 미키 맨틀의 양키스 소속 최다 출전 기록을 넘어섰다. 한편, 이날까지 올스타전 이후 타율 .344를 기록하며 후반기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결국, 2011년 올해는 망하겠지 하던 사람들의 예상을 뒤로한 채, 16년 연속 150+안타 기록을 이어갔다. 이는 피트 로즈의 기록과 동률이다. 시즌 최종 성적은 131경기 162안타 16도루 .297/.355/.388 6홈런 61타점 OPS .743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현역 최다인 통산 3088안타로 이미 리키 헨더슨크레이그 비지오를 넘어섰다.

다만 나이를 먹으면서 이제는 과거(~2009년)처럼 두 자릿수 홈런을 치기에는 다소 파워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이었다. 2012년이 지나면 더 이상 상위 타선에서 뛰기에는 양키스의 여건이 녹록지 못하기 때문에 하위 타선 전환 및 지명타자 출장도 감안해야 한다. 브렛 가드너가 잘나갔을 때 지터를 9번으로 내리자는 팬들의 의견도 많았으나 자신의 고집, 팀의 상징성 등으로 인해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하락세의 타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


2.5. 2012 시즌[편집]


3월 25일 디트로이트 전에서 시범 경기 첫 홈런을 터뜨렸다.

2012년에도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3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터는 뜨거운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으며, 4월 23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는 5타수 4안타(2루타 1) 1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러면서 23일 기준 타율을 .411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지터가 마치 1999년처럼 활약한다고[11] 소감을 밝혔으며, 조 지라디도 지터가 1999년 같아 보인다고 말하였다. 지난해 7월 5일 부상자명단 복귀 후 85경기에서 타율 .346 8홈런(2루타 16) 54타점의 불방망이를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4월 한 달간 36안타를 뽑아내며 2006년에 세웠던 35안타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5월 3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는 4안타를 몰아치며 시즌 타율은 다시 4할대로 올라섰다.

5월 9일 탬파베이 레이스전에서는 올해 ML 타자 중 처음으로 50안타에 도달했다. 양키스 역사상 단일 시즌 첫 30경기 만에 50안타를 쳐낸 타자는 지터가 최초라고 한다.

5월 13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는 홀로 득점권에서 병살타 2개를 기록하며 팀의 패배를 이끌었다.

5월 23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는 3안타를 추가해 통산 최다 안타 15위 폴 워너(3152안타)와 동률을 이뤘다.

6월 28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경기에서 7회 중전 안타를 터뜨리며 개인 통산 3184번째 안타를 기록했다. 지터는 통산 안타 순위에서 칼 립켄 주니어와 함께 공동 13위가 됐다. 이날까지 올 시즌 73경기에서 96안타를 뽑아내고 있으며, 최다 안타 부문 역대 12위인 냅 라조이(3252안타)의 기록도 곧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올스타에 당연히 선정되었고 올스타전에서 1안타를 기록하면서, 양키스 역사상 가장 많은 올스타 경기의 안타를 기록, 미키 맨틀을 추월하였다. 그렇게 지터는 후반기 초반에도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 안타 1위를 달리고 있다. 도루 수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줄었어도 센스는 여전하다. 양키스 팬들의 연봉에 대한 의문을 완전히 거두어 두었고 오히려 더 금액을 받았어야 하지 않았냐는 의견도 많았다.

8월 14일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는 통산 3243번째 안타를 기록하며 냅 라조이를 넘어 최다 안타 부문 단독 12위로 올라섰다. 이제 13개의 안타를 추가하면 에디 머레이를 넘어설 수 있다. 이달 안에 머레이의 기록도 갈아치울 가능성도 충분하다.

8월 21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는 1회 초 선두 타자로 나서서 프란시스코 리리아노의 초구 직구를 통타하여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솔로 홈런을 때렸다. 이는 시즌 12호 홈런. 또한 메이저리그 통산 3256안타를 기록하면서, 에디 머레이를 제치고 최다 안타 부문 단독 11위로 올라섰다.

지터의 이번 시즌 흐름은 매우 좋다. 38살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다. 1999년에 219안타로 자신의 한 시즌 최다이자 그 해 최다 안타 타이틀을 따낸 이후 가장 뛰어난 성적을 작성하고 있다. 안타 수는 8월 24일 현재 169개로, 메이저리그 전체 수위를 지키고 있다. 타율도 .324로 3년 만에 3할 이상의 타율을 넘보고 있다. 한물갔다는 평이 많았던 지난 2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며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9월 13일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 통산 3283번째 안타를 기록하며 윌리 메이스와 동률을 이루었고, 다음날 템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도 안타를 기록하면서 MLB 역사에서 최다 안타 부문에서 10위에 들게 되었다. 개인 커리어 MLB 통산 3284번째 안타를 기록하면서 윌리 메이스를 넘어섰다.

9월 24일 기준으로 불혹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다 안타 1위(202개)와 타율 0.323을 기록힌면서 변함없는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렇듯 지터는 나이를 거꾸로 먹었는지 시즌 최종 성적이 타율 .316에 216안타로 2012 시즌 메이저리그 전체 안타 1위를 먹고 15홈런 58타점 9도루를 기록했다. 소속 팀도 지구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38살이라는 나이에 유격수로 159경기에 출전하면서 저런 기록을 세웠다는 것은, 자기가 괴물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또한 A-ROD가 부진과 부상이 겹치자 지터의 진가는 더욱 드러났고 WAR 또한 2.6을 기록하며 A-ROD를 압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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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ALCS 1차전에서 포스트시즌 159경기 만에 통산 200안타를 달성했다.[12] 이는 ML 최초 기록. 그러나 연장전에 수비를 하다 왼발목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어 시즌을 마감했다.[13] 3개월 정도 아웃이기에 다음 시즌 개막전 출전 자체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고질적인 부상을 안고 뛰었던 부위가 골절되었으니만큼 타격이나 수비에 적지 않은 지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팬들은 양키스의 심장인 지터가 부상으로 실려나갈 위기에서 팀의 멘붕을 막기 위해 억지로 부축을 받으며 걸어나가는 모습에 기립박수를 보냈지만, 앞으로 지터 없으면 어쩌나 하는 멘붕은 피할 수가 없다. 당장 팜이나 메이저 백업급 내야수들 중 지터만큼 공수에서 활약할 수 있는 선수가 없으니... 결국 완벽한 회복을 위해 수술을 결정하였다.

결국 팀은 ALCS에서 탈락했다.


2.6. 2013 시즌[편집]


2013년 시즌 초반에 복귀 예정이었으나 시범 경기 소화 도중 왼발목에 추가 미세 골절 진단을 받아 올스타전이 끝나는 7월 중순에야 복귀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2013년 5월에는 스타벅스에서 필립이란 이름으로 커피를 주문한 것이 파파라치에게 걸렸다. 이에 당사자Sanderson이란 이름으로 커피를 주문하여 인증했다고. #

그리고 기나긴 재활과 마이너 리햅을 거쳐 올스타 브레이크 전인 7월 11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홈 경기에서 2번 지명타자로 라인업에 올랐다. 아직 유격수 수비를 지속적으로 보기에는 무리인 듯. 시즌 초 유례가 없는 줍키스틱 4 효과로 지구 선두를 달리던 것도 약발이 다하며 관중 동원력이 떨어진 2013년의 양키스였고 게다가 낮 경기였는데도 평소보다 많은 4만 관중이 운집하여 첫 타석에서 기립박수를 보내줬고 지터는 초구를 건드려 내야 안타를 기록하였다. 이후 타석에서는 내야 땅볼로 타점도 추가했다. 이날 타격 성적은 4타수 1안타 1타점 1득점. 하지만 세 번째 타석에서 내야 땅볼을 치고 1루로 전력질주 중 허벅지 통증을 호소하였으며, 결국 7월 20일 다시 15일 부상자 명단에 등록되었다.

7월 28일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홈 경기에서 2번 타자 유격수로 복귀. 첫 타석에서 초구에 홈런을 날리며 복귀를 알렸으나, 8월 2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햄스트링 이상 증세를 보여 8월 5일자로 복귀 후 4경기 만에 또다시 15일 부상자 명단에 등록되었다. 이후 8월 26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서 복귀하였으나, 9월 7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 도중 또다시 허벅지 통증을 호소, 결국 17경기 출장 63타수 12안타 1홈런 7타점 타율 0.190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하였다. 이로서 1996년 이후 17년 연속 기록 중인 100경기 출장 및 세 자릿수 안타 기록도 중단되었다.

2011년 시즌 후 호르헤 포사다가 은퇴를 선언했고, 마리아노 리베라와 앤디 페티트 역시 2013 시즌 후 은퇴를 선언함에 따라, 양키스 프랜차이즈 Core 4는 이제 지터만 현역으로 남게 되었다. 작년에 입은 부상으로 인해 시즌을 통째로 날려먹었으나, 본인은 '부상당했다고 해서 은퇴를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2014년에도 현역으로 뛸 것을 시사했다.

이후 11월 1일 당초 옵션으로 예정된 $9.5M보다 더 많은 금액인 $12M을 받는 조건으로 1년 재계약을 하였다. 하지만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하여 재활에 몰두하고 있고, 나이도 내년이면 40이라 쉽지는 않다는 전망이 많았다.


2.7. 2014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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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마사히로가 뉴욕 양키스로 오도록 구애를 한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다나카를 양키스로 데려오는 공헌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ESPN은 이번 시즌 양키스로 이적한 카를로스 벨트란과 그를 2014년 양키스에서 가장 실망스러울 선수로 뽑으며 냉담한 반응을 보냈다.

그런데 뜬금없이 2월 12일에 2014 시즌 종료 후 은퇴할 것임을 시사했다. 몸 상태도 그렇고 나이도 40대에 접어들었으니 당장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데릭 지터의 갑작스러운 은퇴 발표인지라 양키스 팬들은 올 것이 왔구나 하면서도 탄식했다. 작년 마리아노 리베라에 이어 마지막 남은 Yankees The Core Four 일원인 그가 떠나면 이제 이 멤버들 중 현역은 아무도 남지 않게 되기 때문.

현지 시각 2월 19일 짧게 기자 회견을 가졌다. 동료들 훈련에 방해가 되지 않게 일부러 한적한 날을 골랐다고 발언한 뒤 은퇴를 번복할 생각은 없으며 인스트럭터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부상은 다 나았고, 풀 타임을 치르는 것이 목표이며 자신에게 오늘 자리를 마련해 준 스타인브레너 가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쿨 가이 지터답게 인터뷰도 쿨했다는 평가, 기자가 너무 평안한 거 같아서 질문을 던지니 "그럼 여기서 울어야 하나요?"라고 답해서 팬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뭐 아직 2014년 시즌이 남았고 본인도 마지막 시즌을 의욕적으로 치르려는 마당에 벌써부터 은퇴한다고 그런 기분을 낼 필요도 없었을 듯.

4월 3일 휴스턴 애스트로스 원정에서 은퇴 기념 선물을 받았다.

4월 6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전에서는 5타수 2안타를 쳐 통산 3320번째 안타를 기록하며 폴 몰리터를 제치고 통산 최다 안타 부문 8위로 올라섰다.

5월 7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전에서는 2회 초 시즌 마수걸이 홈런 포함 5타수 2안타 1타점으로 맹활약을 펼치면서 자신의 시즌 타율을 .262(107타수 28안타)로 끌어올렸다. 또한 이 경기는 에인절 스타디움에서의 마지막 경기였기에 지터의 키의 2배만 한 초대형 서핑보드를 선물로 받았으며, 시리즈 내내 지터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관중들의 박수를 받는 훈훈한 장면도 연출되었다.

5월 15일 뉴욕 메츠전은 시티 필드 마지막 방문이었다. 이에 뉴욕 메츠는 지터의 은퇴를 기념해 등번호 2번이 새겨진 기념품을 전달했다. 이는 뉴욕의 상징이기도 한 지하철 타일 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터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로부터 골프 가방과, 중절모, 핀스트라이프 바탕에 뉴욕 양키스 로고와 등번호 2번이 새겨진 부츠를 받았다.

5월 24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출전하면서 유격수로서 통산 2584경기 출전 기록을 세웠다. 그러면서 루이스 아파리시오를 넘어 유격수 통산 출전 부문 2위로 올라섰다. 1위는 오마 비스켈로 2709경기를 소화했는데, 현재 양키스의 이번 시즌 잔여 경기는 114경기이므로, 지터가 비스켈의 기록을 갱신할 가능성은 0이다.

5월 25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는 4안타를 몰아치며 7-1 승리를 이끌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보다는 구단 운영 쪽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한다.

7월 1일 탬파베이 레이스전에서는 2번 타자로 선발 출전하여 5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2안타 중 하나는 2루타였는데, 이를 통해 루 게릭이 갖고 있던 뉴욕 양키스 구단 통산 최다 2루타 기록 534개와 동률을 이뤘다. 지터는 올 시즌 안으로 2루타 1개만 더 추가한다면 역대 양키스 구단 역사상 최다 2루타 부문 단독 1위에 오르게 된다.

7월 6일에는 마지막 올스타전 출전이 확정되었다. 14번째 올스타전으로, 마지막인 만큼 기대가 된다고 밝혔다.

7월 10일 경기에서는 개인 통산 1000번째 멀티 히트 경기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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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많은 팬들의 박수갈채를 받은 커리어 마지막 올스타전에서 2타수 2안타라는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비록 올스타전 MVP는 마이크 트라웃이 가져갔지만, 지터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팬들에게 좋은 추억이 될 올스타전이었으리라. 팬들은 지터를 향해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은퇴를 기념해 그의 스폰서를 맡고 있는 에어 조던이 7월 중순에 제작한 광고. 출연진은 다음과 같다. 존 레스터(0:12), 스파이크 리(0:25), 루디 줄리아니(0:26), 지터의 가족들(0:29), 카멜로 앤서니(0:40), 빌리 크리스탈(0:41), 타이거 우즈(0:48), 에릭 코스턴[14](0:51), 액션 브론슨[15]과 알케미스트[16](0:57), 마야 무어[17](1:00), 필 잭슨과 지니 버스,[18] 메츠 3인방 + 마스코트(1:04), JAY-Z(1:07), 마리아노 리베라, 앤디 페티트, 조 토레, 티노 마르티네스, 호르헤 포사다(1:11), 마이클 조던(1:19).

7월 17일 MLB 역대 10번째로 통산 1900득점을 기록하였다.

7월 20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인터리그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자니 쿠에토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터트렸다. 이날 안타로 데릭 지터는 인터리그 276경기 364안타 200득점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이는 인터리그가 시작된 1997년 이래 개인 성적 역대 1위 기록이다.

7월 22일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는 9회 말 타석에서 초구를 잡아당겨 좌측 담장 깊숙이 굴러가는 2루타를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지터는 뉴욕 양키스 역대 2루타 최다 기록 선수가 되었다. 또한 알 시몬스의 539개에 이어 메이저리그 통산 2루타 순위에 35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또한 이날 2루타를 통해 지터는 통산 3,413번째 안타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통산 안타 7위 칼 야스트렘스키(3,419안타)의 기록에 근접하게 됐다.

7월 28일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는 다르빗슈 유 상대로 연속 3안타를 기록하며 통산 3420번째 안타를 달성, 칼 야스트렘스키를 8위로 밀어내고 통산 최다 안타 부문 순위에서 7위로 뛰어올랐다. 지터는 이날까지 2695경기에 출장해 역대 한 팀 최다 출전 경기수 순위 10위에 올랐다. 그리고 행크 애런과 더불어 17년 연속 안타 150개 이상을 때린 역대 2명뿐인 선수로 남게 되었다. #

7월 30일 텍사스 레인저스 원정 마지막 경기에서는 텍사스 레인저스가 특별히 마련한 지터 고별 환송 행사에 임했다. 텍사스의 전설인 이반 로드리게스마이클 영이 나와 지터에게 텍사스 지역 기념품인 카우보이 부츠와 지터의 자선 재단에 기부금 1만 달러를 선수단을 대신해 전달했다. 검은색 바탕의 부츠에는 양키스의 로고와 지터의 이름이 박혔다. 그리고 기념촬영에 이어 전광판에서 지터와의 추억을 회고하는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영상이 흘러나오자 객석의 관중은 박수로 환호했다.

8월 8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전에서는 4타수 1안타를 기록하며 3430안타 고지에 올라 호너스 와그너와 통산 안타 부문 공동 6위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리고 다음날 경기에서 안타를 기록하며 단독 6위로 올라섰다.

9월 3일, 영구결번이 확정되었다. 양키스 역사상 18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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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시각 9월 7일(한국 9월 8일) 캔자스시티와의 경기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초대 손님으로는 조 토리, 마리아노 리베라, 호르헤 포사다, 데이브 윈필드, 마츠이 히데키, 칼 립켄 주니어, 마이클 조던 등.. 게다가 ISS에서 전해온 우주비행사들의 축하 인사와 하늘에 이름을 새겨주는 등 성대하게 열렸지만...작년 리베라의 은퇴 경기와 마찬가지로 경기는 2:0으로 졌다. 게다가 2점 모두 비자책점...

그의 은퇴를 기리며 게토레이에서 광고를 제작했다. BGM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

9월 19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전에서는 6회에 시즌 4호 홈런을 터뜨렸다. 지난달 2일 보스턴 레드삭스전 이후 48일·41경기 만에 터진 시즌 4호 홈런. 특히 이날 전까지 지터가 기록한 홈런 3개 모두 원정 경기에서 터진 것이었다. 양키 스타디움에서 마지막 8연전을 남겨두고 있는 지터는 이날에야 시즌 첫 홈 경기 홈런을 터뜨리며 팬들에게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다. 팀도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9월 20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전에서는 2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그러면서 지터는 통산 1920득점으로 팀 동료인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제치고 역대 9위에 올라섰다.


9월 25일 양키스에서의 마지막 홈 경기이자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는 2번 타자로 나와 첫 타석에 홈런성 2루타, 네 번째 타석에서는 1아웃 만루에서 빗맞은 땅볼 타구를 볼티모어의 내야 실책으로 인한 2점을 만들어냈다. 9회 초 마무리 로버트슨이 홈런 2방으로 블론 세이브를 한 상황에서 9회 말 1아웃 2루에 다섯 번째 타석에 들어섰을 때 에반 믹의 초구 바깥쪽 공을 밀어치며 2루 주자를 불러들이는 끝내기 안타를 치며 자신의 양키스 마지막 홈 경기를 드라마틱하게 장식했다. 이날 경기를 해설한 송재우 해설 위원은 지터의 끝내기가 나오자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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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커리어 마지막 경기가 된 보스턴 레드삭스 원정에서는 3회 초 2번째 타석에서 내야 안타를 기록했고, 대주자와 교체되면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교체되면서 보스턴 팬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고, 이에 지터도 화답하는 훈훈한 장면도 연출되었다.

마지막 시즌의 기록은 145경기 .250대의 타율 4홈런 50타점 10도루를 기록했다.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는 2할 후반대의 타율을 기록했으나 이후 체력문제 때문인지 후반기 특히 9월에 매우 부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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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은퇴 후[편집]



3.1. 마이애미 말린스 CEO[편집]


은퇴 후에는 마침내 한나 데이비스와 결혼했고, 구단 경영에 관심을 가졌다. 양키스 팬들이야 지터가 양키스 구단주가 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당장 그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며, 마이애미 말린스 팬들의 앙숙같은 구단주 제프리 로리아가 사실상 구단 경영에서 손을 떼고 구단을 팔아먹으려고 하자 지터는 지터&부시 그룹의 자금력을 모아서 말린스를 인수하려는 분위기다. 하지만 가능성은 낮다. 다른 투자자들에 의하면 지터가 가진 자산 대비 적은 금액을 투자하려고 하며 자신이 구단 운영의 주도권을 갖기 바란다고 한다.

이후 지터는 끈질기게 투자자들을 모집해 자금을 모았고 친분이 있던 뉴욕의 사업가 브루스 셔먼 컨소시엄과 함께 드디어 팀 인수에 성공했다. 금액은 12억 달러이며 지터는 2500만 달러를 투자해 CEO가 됐다고 한다. 브루스 셔먼과 친분이 있어서 CEO직이긴 하지만 매직 존슨처럼 얼굴마담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말린스 인수 후에는 로리아의 인사들을 모두 해고하거나 보직을 강등시키는 등 개편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으며, 대표적인 해고 대상들은 안드레 도슨, 토니 페레즈, 잭 매키언, 제프 코나인 등 말린스 팬이라면 한번은 들어봤을 이름의 인물들이다. 새 구단주로서 첫 행보가 팀의 간판급 인사들을 무자비하게 쳐 낸 것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자 그는 뒤늦게 이들 4명을 만나 다시 구단에 복귀하라고 제안했으나 그전까지 연봉 10만달러 이상을 받던 이들에게 새 연봉으로 2만5천달러라는 형식적이고 모욕적인 오퍼를 했고 이들은 이를 거부하고 구단을 떠나가며 강한 실망감을 공개적으로 표출했다.

지안카를로 스탠튼을 트레이드하려는 과정에서 지터가 보여준 일련의 행동들은 한마디로 ‘고압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는 시즌 종료 후 한동안 스탠튼과 만남은 커녕 전화 통화조자 한 번 하지 않고 있다가 메이저리그 단장 회의 때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스탠튼의 트레이드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논의했다. 그때까지 당사자인 스탠튼에겐 말 한 마디 없다가 언론 플레이부터 시작한 것이다. 이어 그는 스탠튼에게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고 한다. 마이애미 헤럴드에 따르면 지터는 스탠튼에게 “구단의 트레이드를 받아들여라. 만약 거부한다면 팀의 다른 주요 선수들을 모조리 다 내보내 너는 뼈만 남은 팀에서 유일한 스타로 뛰게 될 것”이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통보가 아니라 협박으로 들린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메이저리그 홈런왕이자 NL MVP에 오른 선수라도 협박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스탠튼의 트레이드가 구단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이런 식의 비상식적인 방법까지 쓰는 것은 충격적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팬에 대한 배려는 전혀 느낄 수 없다. [장윤호의 MLB산책] '오만한 점령군' 지터가 스탠튼의 거취에 미칠 영향

재정상의 문제로 포스팅비 2000만 달러를 내는 것도 부담스러워 오타니 쇼헤이 영입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12월 9일 스탠튼은 지터의 친정팀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다. 그에 이어, 팀 내 2번째 중심 타자 역할을 하던 마르셀 오즈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해버린다. 이 트레이드에서도 이렇다할 좋은 유망주도 얻어내지 못한 마당에, 남아 있는 중견수 크리스티안 옐리치와도 갈등을 일으켜 옐리치가 트레이드 요청을 하고, 채 2개월도 지나지 않아 밀워키 브루어스로 트레이드했다. 결국 지터는 합작 17.3 BWAR를[19] 기록한 2017 시즌 최고의 외야진이었던 오즈나-옐리치-스탠튼을 구단주 된 지 3개월 만에 모두 내보냈다. 팀 로스터를 오함마로 깨부수는 수준. 그렇다고 그에 상응하는 확실한 유망주를 데려왔냐면 '글쎄'라는 반응. 다만 이때 데려온 선수가 바로 2022 시즌 사이 영 상 수상자인 샌디 알칸타라와 알칸타라 못지않게 각성한 잭 갤런[20]이다. 따라서 현재는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 트레이드지만 당시에는 이들의 포텐이 터지기 전이라 욕을 먹었다.

이번 오프시즌 행보로 인해 전임 구단주랑 다를게 뭐냐면서 많은 비난을 듣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비록 4%의 구단 지분만 차지하고 있는 지터지만 투자 그룹에 합류할 당시부터 운영권을 요구했기 때문에 사실상 지터가 구단 운영권을 쥐고 흔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들과의 관계를 파탄내면서까지 트레이드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욕을 바가지로 먹을 수밖에 없다. 지터 또한 로스터 이동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후에 말린스 팬들과 소통을 명분으로 일부의 팬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말린스 팬들에게는 화딱지만 날 내용들이라는 평가였다. 특히 한 노인 팬은 자기는 언제까지도 말린스의 리빌딩 성공을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해 말린스 팬들의 동정을 받았다. 그러나 지터는 자신감인지 오만함인지 모를 긍정적인 발언만 하여 뉴욕의 연인이 마이애미의 금지어가 되어간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몇몇 언론에서는 지터는 과거에 잘나가던 운동선수지만 경영은 눈곱만큼도 모르는 무식한 자라는 혹평까지 가했다. 문제는 그것이 구단주 교체 후 채 3개월 정도밖에 안된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라는 것. 적어도 말린스 팬 입장에서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것도 아니고 이렇게 막나가는 지터의 결정에 벌써부터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거기다 말린스는 이미 마이애미에 새 구장을 짓고 이제 좀 안정된 상태로 팬들을 끌어모아야 할 상황이라 어디 도망갈 곳도 없다. 지금 상황은 정말 수년간 100패 하는 게 아닌가 근심부터 앞서는 지경. 시즌 100패는 아슬아슬하게 찍지 않았으나 당연히 압도적 지구 꼴찌를 하면서 말린스 팬들에게는 역시나대로 잠정적인 예비 금지어가 되어가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지터가 2003년 말린스 때문에 양키스가 월드 시리즈 우승 실패한 복수를 이제서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그리고 지터가 마이애미를 맡은 이후 뉴욕에 온 지안카를로 스탠튼2018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처참한 활약을 하면서 보스턴을 챔피언십으로 보내는 데 대활약하고, 내친 김에 아예 보스턴이 월드 시리즈 우승까지 하면서 뉴욕에서 데뷔한 1996년 이후 아마도 처음으로 양키스 팬들에게 진짜로 까이기 시작했다.[21] 이외에도 마이애미 말린스 구단주로 지내면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

2019 시즌에 함께 코어 4로 활약한 호르헤 포사다가 특별 고문으로 지터와 재회한다.

2019년 3월 6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승리보다 구장 먹거리에 더 집중하겠다는 발언을 하여 말린스 팬들의 혈압을 다시 올렸다. 애당초 먹거리가 좋아도 야구장은 경기장이지 음식점이 아니다. 성적이 좋아야 관중들이 보러오면서 먹거리가 잘 팔리는 것이지 성적이 처참하면 관중도 적어지고 매출이 급락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7월 29일, 올해 막 정착한 선발 유망주 잭 갈렌을 AA 유망주 재즈 치좀과 트레이드하였다. 물론 치좀이 타격 툴이 훌륭한 유망주라지만 빅리그에서 잘 정착해 괜찮게 던져주고 있는 신인 투수를 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고 실제로 갈렌은 애리조나에서도 잘 던지고 있다. 그런데 이 트레이드는 2020년에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식스토 산체스, 파블로 로페즈, 샌디 알칸타라 등 투망주가 제법 있던 상황이라 정리 차원에서 한 거긴 하다. 결국 이 셋이 터진 이후엔 그나마 얘기가 덜 나오는 편.

그리고 시즌 시작 후 평균 유료 관중 수가 9,500명대를 찍고 개막전을 제외하면 평균 유료 관중 수가 7,000명을 찍는 등 개막장 경영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심지어 경기장 주변 흑인 커뮤니티에 모욕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발언과 행보로 까이는 중. #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멀티 플레이어 위주로 유망주를 키우고 있고 그 결과가 Baseball America 유망주랭킹이 11계단 상승한 13위로 돌아왔다는 점. # 팬들은 지터 통산 안타나 루타 수보다 적은 관중이 입장한 홈 게임을 볼 거라 개드립을 치고 있다. 2020년 MLB가 코로나 사태로 중단되고 관중석에 인형을 놓아 둔 KBO 중계를 보는데 말린스 홈 경기보다 관중이 많다는 드립이 올라오기도 했다.

2020년에는 드디어 첫 번째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을 얻었다. 성적상으로든 화제성으로는 명전에 안 가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기에 투표 자격을 얻자마자 모든 기자들이 지터에게 투표를 하면서 투표 결과 발표 하루 전까지 득표율 100%을 기록했다. 그리고 2020년 1월 21일 만장일치에 딱 한 표 모자른 99.7%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고 이는 역대 득표율 2번째 기록이 되었다.[22]

2020 시즌 의외의 선방을 하며 리그 2위와 리얼무토를 팔고 데려온 유망주 식스토의 대각성 덕분에 이미지는 살짝 개선되었다.

2020년 9월 25일에는 말린스가 와일드 카드를 확보하며 17년 만에 가을야구에 갔는데, 이때 이긴 팀이 17년 전 말린스에게 월드 시리즈에서 패했던 뉴욕 양키스다. 꽤나 기이한 일. 그리고 말린스는 와일드 카드에서 컵스를 시리즈 2-0으로 스윕하며 디비전 시리즈까지 가 지터에 대해 나름 재평가 분위기가 슬슬 나오는 중이다.

하지만 디비전 시리즈에서 애틀랜타에게 털리며 광탈해 재평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많은 편. 그래도 4억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빚을 갚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기도 했고, 탱킹이라는 것이 못 미덥게 보이긴 했어도 그 유망주를 모으는 방향성 자체가 지역 상생을 위한 계획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래도 부임 초에 비하면 긍정적으로 이미지가 많이 개선되긴 했다. 여기에 꾸준히 모은 유망주들이 하나 둘 가능성을 보이고, 돈 매팅리 감독을 재신임한 결과가 그래도 나쁘지 않아서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2021 시즌 투수진 3선발까지는 좋은 투구를 보이고 있으나 식스토 산체스가 시즌아웃 당하면서 4, 5선발이 현재 구멍이고, 타자진도 잭 갤런을 주고 데려온 재즈 치좀이 5월 말까지 각성하며 좋은 활약을 했으나 6월에 부진하였고 이외의 타자진도 주춤하여서 현재 NL 동부지구 5위를 하고있다. 그래도 승률을 4할 이상을 유지하여서 아직까지는 리빌딩은 문제없다는 평이 많다.

21 시즌 중반까지 결과론적으로만 본다면 카디널스 이적 후 거하게 삽질을 하고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로 옮겨갔지만 가정 폭력범 + 먹튀가 된 오주나, 밀워키와 거액 장기 계약 후 역시 먹튀화된 옐리치, 양키스 타선의 혈을 막는 노답 수준의 풍기질하는 스탠튼을 헐값에, 억지로라도 정리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되어가고 있다.[23] 그래도 그렇게 욕먹어가면서 구단의 재정을 안정화시킨 걸로도 평가는 가면 갈수록 좋아진 편.

2021년 9월 9일,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입회식을 가졌다. 본래 2020년 여름에 치뤄질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연기되었다.

2022년 2월 28일, CEO 지위를 비롯한 모든 업무에서 손을 떼겠다며 말린스 CEO에서 사임했다. 소유하고 있던 말린스 주식 역시 모두 처분했다.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팀의 미래에 대한 비전은 내가 구상하는 것과 다르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는 지금이 물러날 적기"라며 더 일찍 사직했다. 함께 팀을 인수한 컨소시엄의 대표이자 구단주인 브루스 셔먼과의 오랜 의견 충돌이 지터의 사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엘 셔먼, 존 헤이먼, 버스터 올니를 비롯한 현지 기자들이 말하길 브루스 셔먼이 지터가 요구한 영입에 제대로 지원과 투자를 해주지 않고 지터에게 구단 지분을 더 내주지 않는 등 여러 불화가 있었다고.

3.2. 해설위원 데뷔[편집]


말린스 CEO 자리에서 물러난 지 1년 만에 FOX Sports의 Baseball Night In America의 해설자로 데뷔한다고 밝혔다. 이에 한 때 라이벌 팀의 간판타자였던 데이비드 오티즈는 데뷔를 축하한다고 환영의 뜻을 전했다.

4. Mr. November[편집]


통산 정규 시즌 기록도 화려하지만, 매 경기가 중요한 포스트시즌에서 더 날아다녔으며, 그중에서도 중요한 장면에는 더더욱 날아다녔다. 그로 인해 얻은 별명이 Mr. November인데, MLB 포스트시즌 사상 처음으로 11월까지 넘어가게 된 2001년 월드 시리즈 중 10월 31일에 시작해 자정을 넘긴 4차전에서 김병현을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날린 지터는 레지 잭슨의 Mr. October라는 별명에 빗대어 Mr. November라는 별명을 얻었다. 통산 158경기, 33개 시리즈의 포스트시즌에 나서면서 반지를 5개 획득했으며 .308/ .374/ .465를 찍었다. 통산 포스트시즌 기록은 정규 시즌 기록과 큰 차이가 없지만 홈런 20개, 61타점, 200안타를 쳐냈으며, 정규 시즌에 비교해봤을 때 확실히 홈런을 많이 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포스트시즌 스탯이 정규 시즌 스탯과 비슷하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포스트시즌에 출전하는 팀의 수준은 당연히 포스트시즌에 탈락한 팀에 비해 높을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포스트시즌에 약팀은 없다. 그리고 포스트시즌은 탈락하면 아예 뒤가 없는 총력전이기 때문에 투수 로테이션을 정규 시즌보다 더 타이트하게 짜고, 툭하면 필승조 불펜이 노예처럼 구르며 여차하면 휴식일 다 안 지난 에이스를 불펜 대기 시킨다. 게다가 각 시리즈 간, 토너먼트 간 휴식일도 있어서 상대 팀의 1, 2선발, 필승조 불펜을 정규 시즌 때보다 훨씬 더 자주 만나게 된다. 예를 들면 2001년 월드 시리즈에는 무려 7경기 중 5경기에서 랜디 존슨, 커트 실링이 선발 등판했다. 즉 비슷한 스탯이라도 포스트시즌에서 쌓은 스탯이 더 수준 높은 투수를 상대한 스탯인 것이다. 또한 중요할 때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많이 만들어냈는데, 2000년 월드시리즈에서의 홈런 2방, 위에서 언급한 2001년 월드시리즈에서의 김병현 상대 끝내기 홈런, 2001년 오클랜드 상대로의 디비젼시리즈에서의 'The Flip' 등 명장면을 많이 남겼다.


5. 기타[편집]


  • 파일:2011이후가장좋아하는야구선수.png
미국 전역을 대표하는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슈퍼스타로 평가받는다. 지터 이후 2010년대에 나온 뉴저지 출신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인 마이크 트라웃은 기록하고 있는 커리어는 지터를 가볍게 뛰어 넘을 정도 수준의 전설이지만[24] 실력 대비 스타성과 인지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브라이스 하퍼는 반대로 S급 성적을 기록하는 동시에 스타성도 꽤나 있는 편이지만 유망주 시절의 SSS급 임팩트[25]에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하며 많이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인지 지터의 은퇴 이후 메이저리그 관중 수는 계속 감소 중이며, 사무국도 이를 알고 있다 보니 요즘에는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오타니 쇼헤이, 애런 저지를 스타로 미는 중이다. 이들 중 타티스 주니어는 도핑 논란이 있고, 오타니는 일단 메이저 최고의 슈퍼스타이나 일단은 일본 출신이기에 지터를 이을 미국 대표 슈퍼스타는 양키스 후배인 저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26]

  • 슈퍼스타답게 멘탈이 비범할 정도로 강하다. 그 오랜 세월동안 뉴욕의 극성스러운 언론, 팬, 파파라치에게 스토킹에 가까운 집중포화를 맞으면서도 평정심을 잃은 사례가 없다.[27] 팬서비스도 출중하고, 사생활 시간에 들이대는 파파라치와도 무시하거나 화를 내기는 커녕 여유롭게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28]현역시절은퇴 후

  •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ce7158b9d5fe969c7017896644c58880.jpg
(지터 가족 / 데릭 지터, 아버지 샌더슨 지터 박사, 어머니 도로시 지터, 여동생 샬리 지터)
지터는 1974년에 흑인 의사 아버지인 샌더슨 지터 박사와 독일계 어머니인 도로시 지터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른쪽이 아버지, 왼쪽이 어머니이다. 아버지가 주독미군으로 독일에 있을 때 만났다고 한다. 참고로 어머니가 독일 현지인이란 얘기가 아니라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다가 만났다고. 앞에 같이 있는 여성은 5살 어린 여동생 샬리이다.

  •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인 호너스 와그너보다 정확하게 100살 어리다.

  • 메이저리그 해설가이종률은 데릭 지터의 열렬한 팬이라 데릭 종률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지터가 나오는 경기에서 그가 지터에게 하악거리는 모습은 단순한 팬심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

  • 영화 스탠바이 캅[29]에서 카메오로 출연했다. 극중에서는 마크 월버그 역의 극중 인물에게 괴한으로 오인돼 총에 맞는 바람에 월드 시리즈에 출장하지 못했다고 한다.

  • 3년 연속 야구 게임 MLB 2K 시리즈 커버보이에 선정되었다.

  • 그가 타석에 들어설 때는 항상 양키스 장내 아나운서인 밥 셰퍼드의 목소리를 썼다. 2007년 그가 와병을 겪게 되자 그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쓸 정도로 그를 좋아했으나, 2010년 99세를 일기로 사망하고 말았다. 셰퍼드의 사망 이후에도 녹음 테이프를 계속 사용했으며, 데릭 지터의 마지막 올스타전 때에도 밥 셰퍼드의 목소리를 통해 등장했다.

  • 등번호 2번은 무슨 특별한 의미를 담아서 배정되거나 지터 본인이 희망한 건 아니고 그냥 뺑뺑이로 배정된 듯하다. # 2016년 12월 6일, 그의 2번이 영구 결번이 확정되었으며, 2017년 5월 14일 영구결번식이 치러지며 공식적으로 영구 결번이 되었다.

  • 마이클 조던에 의해 직접 선정된 대표적인 팀 조던 소속 선수이다. 지터 본인도 마이클 조던을 존경하는 팬이기도 하다. 현역시절 에어 조던에서 제작된 야구화를 신었으며, 은퇴시즌 나이키에서 헌정한 광고 역시 조던 브랜드에서 만든 광고로서 마이클 조던이 직접 출연하는 동시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며 찬사를 보냈다. 은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조던 브랜드에서 RE2PECT 마크가 새겨진 의류, 데릭 지터의 PE 에어 조던을 제작중에 있다.

  • 영화 클릭에서 리모컨으로 이웃집 소년을 골탕 먹인 주인공이 데릭 지터가 울고 가겠다고 놀리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으로 데릭 지터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사람도 있다.

  • 놀랍게도 공화당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다만 선수 생활을 한 곳이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뉴욕이다 보니[30] 선수 생활이나 CEO 생활 동안 공개적으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낼 일은 없어 보인다. 조 토레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와 친분이 있었고, 2016년 공화당 경선 당시 트럼프의 부통령 후보에 지터가 어떻겠냐는 말도 나오기도 했다. 지터 본인은 일이 많다고 코멘트했다. 기사

  •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때 한 말이 본인은 야구를 하면서 하나의 꿈이 있었는데, 바로 누구보다 많이 이기는 것이었으며, 그걸 해냈다고 했다. 실제로 지터는 주장으로서 양키스의 우승을 다섯 차례나 이끌었다.


  • 드물게 바둑판 웹 내야 글러브를 사용한 선수 중 하나이다. 내야수들, 특히 유격수들은 흔히 글러브질을 할 때 공이 글러브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 확인 하기 위해 뚫려 있는 십자 웹을 사용하는데, 지터의 시그니처 모델은 웹이 꽉 막혀 있는 바둑판 형식의 웹이었다.

5.1. 여성 편력[편집]


파일:external/pbs.twimg.com/BgYMqZACMAA5iVt.jpg
본격 여자친구로 올스타 라인업 만들 수 있는 선수. 지터가 은퇴 선언을 한 다음날에 나온 짤방이다.
포인트는 저 여친들이 머라이어 캐리 제외 다 저 여성들 리즈시절에 사귄 것이란 것과 그 흔한 양다리 한 번 없이 한 번에 한 명씩만 만났다는 것이다.

저 사람들이 누군지 나열하자면
투수: 한나 데이비스
포수: 민카 켈리
1루수: 조다나 브루스터
2루수: 아드리아나 리마
3루수: 바네사 미닐로
유격수: 스칼렛 요한슨
좌익수: 머라이어 캐리
중견수: 제시카 알바
우익수: 제시카 비엘
지명타자: 타이라 뱅크스

그야말로 올스타 라인업이라 하겠다.

스캔들에 스캔들을 끼고 스캔들로 포장된 여성 편력으로 유명하긴 한데, 그것도 상대가 다들 한가닥 하는 미녀 연예인들이다. 스칼렛 요한슨이나 제시카 알바가 대표적이다. 오히려 데릭 지터의 명성을 이용해서 여자 연예인들이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경우도 많고, 일반인들과의 원나잇도 활발히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운동 선수의 여성 편력을 다룬 기사에서 다른 선수들은 종목별로 분류가 되어 있는데 데릭 지터는 '데릭 지터' 단독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외모로[31] 다들 '그럴 만하지'라는 생각인지 그냥 넘어간다. 뭐 타이거 우즈처럼 결혼하고 불륜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 불리는 별명은 '뉴욕의 왕'이다. 이유는 거의 매일 밤, 뉴욕의 밤거리에서 만난 여성과 원나잇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 심지어 원나잇하는 여성들에게 선물로 싸인볼을 주는 탓에 지터의 싸인볼 가치가 떨어졌다. 그야말로 미국 남성들의 워너비. 지금 세대 미국 야구의 아이콘으로 실력, 얼굴, 유명세, 밤일…까지 꿀리는 것이 없다. 누가 뭐래도 뉴욕 양키스의 캡틴. 거기다 2009년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자선 운동도 열심이고 언론과도 매우 친한 희귀한 선수다.

파일:attachment/데릭 지터/comehere.jpg
어서 와 양키스는 처음이지?

위 사진은 1997년에 찍은 사진이다. 좌측부터 시계 방향으로 알렉스 곤잘레스,[32] 에드가 렌테리아,[33] 레이 오도네즈[34], 데릭 지터, 알렉스 로드리게스.

오만 선수가 다 스테로이드를 한다는 의혹을 낸 호세 칸세코"데릭 지터는 하지 않는다."라고 할 정도이고 팬이고 전문가고 모두들 인정한다. 이유는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인 발기부전' 때문이라는 게 중론. 섹느님은 그깟 공놀이보다 훨씬 더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버리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덕분에 한때 커뮤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구속 감소로 인해 먹튀를 하고있던 배리 지토, 시애틀 매리너스시절 타격 성적이 급격히 내려가 먹튀 소리를 듣던 아드리안 벨트레[35]와 함께 약 절대 안 할 것 같은 메이저리그 3대 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물론 이 두 사람은 경우가 다르지만.

단, 지터가 약물 부작용으로 밤일을 하지 못할 것이 무서워 약을 안 한다는 건 농담성이 강하다는 걸 어느 정도는 알아두자. 무개념 먹튀 약쟁이는 약 잘만 하고 다니면서도 여러 여자 만나고 다녔다. 일단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이 아니라면 발기부전은 부작용이 아니다. 대표적인 게 요즘 핫한 약물인 EPO. 또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약물을 '끊을 경우' 발기 부전이 부작용으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당장 약물을 할 때에는 오히려 성관계 능력과 성욕이 엄청나게 급증한다. 보디빌더 리치 피아나가 "약물을 하면 나는 침대에서 슈퍼맨이 된다. 하지만 약물을 끊으면, 일반인이 되는 게 아니라 그 이하가 된다"라고 했을 정도. 또 약물 부작용으로 생긴 발기부전은 우선 당장의 발기부전 치료약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다만 남용하면 결국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지만.

2010년 11월 여배우 민카 켈리와 연애 중이며 뉴욕 포스터에서 2010년 11월 5일 결혼할 것이라 보도했으나 결국 헤어진 후 좋은 친구로 남겠다고 했다. 그런데 또다시 사귀었으나# 헤어진 이후 2013년 현재 무려 16살 차이가 나는 한 모델과 또다시 열애설이 터졌다#.

계속된 교제 끝에 드디어 한나 데이비스와 약혼했다.

사실 국내 언론이 설레발을 쳐서 그렇지 결혼설(옛날) 얼마 후 다른 팀의 코치(아시는 분은 명시 바람)가 떠보려는 듯이 "아 그나저나 약혼 축하해."라고 말하자 웃으면서 "언론 보도를 다 믿지 말라고요."라고 지터가 답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 코치에게 지터는 거짓말한 적이 없다고.

그리고 4년간의 교제 끝에 한나 데이비스와 결혼식을 올렸다.

6. 수상 목록[편집]


  • 올스타(14회): 1998~2002, 2004, 2006~2012, 2014
  • 뉴욕 양키스 올해의 선수(4회): 1998, 1999, 2000 2006
  • 아메리칸리그 골드 글러브(5회 - 유격수 부문): 2004, 2005, 2006, 2009, 2010
  • 아메리칸리그 실버 슬러거(5회 - 유격수 부문): 2006, 2007, 2008, 2009, 2012
  • 행크 애런 상(2회 - 그해 최고의 타자 상): 2006, 2009
  • 베이브 루스[36]: 2000
  • 올스타 게임 MVP: 2000
  • 월드 시리즈 MVP: 2000
  • 아메리칸 리그 신인상: 1996
  •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2009[37]
  • 스포팅 뉴스 "스포츠계의 좋은 남자…상": 2002
  •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올해의 스포츠 선수": 2009년
  • 2020 명예의 전당 입성 (1회차, 득표율 99.7%)


7.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데릭 지터
10
145
337
67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 JAWS - ShortStop (13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데릭 지터
71.3
42.4
56.8
유격수 HOF 입성자 평균
67.7
43.2
55.4

8. 연도별 기록[편집]


파일:MLB 로고.svg 데릭 지터의 역대 MLB 기록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95
NYY
15
51
12
4
1
0
5
7
0
3
11
.250
.294
.375
.669
-0.4
-0.3
1996
157
654
183
25
6
10
104
78
14
48
102
.314
.370
.430
.800
2.2
3.3
1997
159
748
190
20
7
10
116
70
23
74
101
.291
.370
.405
.775
4.0
5.0
1998
149
694
203
25
8
19
127
84
30
57
101
.324
.384
.481
.864
6.2
7.5
1999
158
739
219
37
9
24
134
102
19
91
116
.349
.438
.552
.989
7.4
8.0
2000
148
679
201
31
4
15
119
73
22
68
99
.339
.416
.481
.896
3.7
4.6
2001
150
686
191
35
3
21
110
74
27
56
99
.311
.377
.480
.858
4.2
5.2
2002
157
730
191
26
0
18
124
75
32
73
114
.297
.373
.421
.794
5.2
3.7
2003
119
542
156
25
3
10
87
52
11
43
88
.324
.393
.450
.844
4.1
3.6
2004
154
721
188
44
1
23
111
78
23
46
99
.292
.352
.471
.823
4.7
4.2
2005
159
752
202
25
5
19
122
70
14
77
117
.309
.389
.450
.839
4.4
3.8
2006
154
715
214
39
3
14
118
97
34
69
102
.343
.417
.483
.900
6.1
5.6
2007
156
714
202
39
4
12
102
73
15
56
100
.322
.388
.452
.840
3.6
3.9
2008
150
668
179
25
4
11
88
69
11
52
85
.300
.363
.408
.771
3.4
3.0
2009
153
716
212
27
1
18
107
66
30
72
90
.334
.406
.465
.871
6.7
6.6
2010
157
739
179
20
7
10
111
67
18
79
101
.270
.340
.370
.710
2.3
1.7
2011
131
607
162
24
4
6
84
61
16
46
81
.297
.355
.388
.743
2.2
1.4
2012
159
740
216
32
0
15
99
58
9
45
90
.316
.362
.429
.791
3.3
2.2
2013
17
73
12
1
0
1
8
7
0
8
10
.190
.288
.254
.759
-0.5
-0.8
2014
145
634
149
19
1
4
47
50
10
35
87
.256
.304
.313
.617
0.2
-0.7
MLB 통산
(20시즌)
2747
12602
3465
544
66
260
1923
1311
358
1082
1840
.310
.377
.440
.817
73.0
71.3

파란색은 통산 팀 내 1위.


9. 연도별 포스트시즌 기록[편집]


파일:MLB 로고.svg 데릭 지터의 역대 포스트시즌 기록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결과
1996
NYY
15
67
22
3
0
1
12
3
3
4
13
.361
.409
.459
.868
WS
우승

1997
5
24
7
1
0
2
6
2
1
3
5
.333
.417
.667
1.083
DS
탈락

1998
13
61
12
1
1
0
7
3
3
7
10
.235
.328
.294
.622
WS
우승

1999
12
53
18
3
1
1
10
4
3
5
9
.375
.434
.542
.976
WS
우승

2000
16
75
20
2
1
4
13
9
1
11
18
.317
.427
.571
.998
WS
우승

2001
17
78
14
1
0
1
5
4
0
3
8
.226
.275
.290
.566
WS
패배

2002
4
19
8
0
0
2
3
2
0
2
3
.500
.526
.875
1.401
DS
탈락

2003
17
78
22
5
0
2
10
5
2
7
13
.314
.385
.471
.856
WS
패배

2004
11
59
12
2
0
1
8
9
2
7
6
.245
.339
.347
.686
CS
탈락

2005
5
23
7
0
0
2
4
5
1
1
5
.333
.348
.619
.967
DS
탈락

2006
4
17
8
4
0
1
4
1
0
1
2
.500
.529
.938
1.467
DS
탈락

2007
4
17
3
0
0
0
0
1
0
0
4
.176
.176
.176
.353
DS
탈락

2009
15
74
22
5
0
3
14
6
0
10
11
.344
.432
.563
.995
WS
우승

2010
9
42
10
3
1
0
2
2
1
2
10
.250
.286
.375
.661
CS
탈락

2011
5
25
6
1
0
0
6
2
1
1
8
.250
.280
.292
.572
DS
탈락

2012
6
30
9
1
1
0
4
2
0
2
10
.333
.379
.444
.824
CS
탈락

MLB 통산
(16시즌)
158
734
200
32
5
22
111
61
18
66
111
.308
.374
.465
.838
5WS
2준
3CS
6DS


빨강색은 MLB 통산 1위.


10. 관련 문서[편집]


[1] 양키스 경기를 전담해서 중계하는 방송사 YES Network의 캐스터.[2] 한때는 그들 중 가장 평가가 낮았으며, 양키 프리미엄에 기대었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가르시아파라는 30대에 들어서자 에이징 커브가 찾아와 1루수와 3루수 자리를 전전하면서 유격수 자리에 거의 서지 못했고, 객관적 성적 지표가 야구 역사에 남을 정도였던 A-Rod마저도 20대 후반부터 3루수로 전향했을 뿐만 아니라 텍사스 시절까지 쭉 유격수만 뛰었다. 하지만 애런 분의 부상 이탈로 3루수 공백이 생겨 급히 에이로드 영입전에 참전한 양키스가 로드리게스를 업어갔으니 지터와 에이로드 둘 중 하나는 본 포지션인 유격수를 떠나 3루를 봐야 했는데, 지터가 워낙 팀 안팎의 위상이 확고해 에이로드가 3루수가 되었다. 에이로드는 세이버적으로 지터보다 더 나은 유격수 수비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양키스가 아닌 다른 팀이었다면 에이로드는 몇 년은 더 유격수를 지속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3루 수비에서 다소 버벅거리는 모습을 보여 당시부터 유격수로 남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도핑이 적발되어 논외가 되어버렸으며, 현재로서는 뉴욕 양키스 원 클럽 맨으로 3000안타를 달성한 지터가 현재는 평가가 압도적으로 높다.[3] 아무래도 뉴욕이라는 최대 빅 마켓에서 활약하는 스타급 선수들은 미디어와 팬들의 주목도가 높다보니 늘 과대평가 논란에 휩싸인다. NBA 뉴욕 닉스에서 선수생활 거의 대부분을 보낸 패트릭 유잉이 대표 사례. 특히나 주 논쟁 대상이 되는점은 수비. 5번의 골드 글러브 수상에도 불구하고 수비 면에서는 온갖 세이버메트릭스 관련 스텟이 나오면 엄청나게 안좋은 결과값이 도출되면서부터. 수비수의 수비범위를 평가한 스텟 UZR,TZ 그 수비수가 수비로 몇점 정도를 막았냐를 표현하는 디펜시브 런 세이브 DRS 물론 저 세가지의 스텟의 정확성에 대해선 의견이 갈리지만 지터만큼 골드 글러브를 여러번 탔음에도 모든 스텟이 안좋게 나오는 선수는 몇 없다. 실제로 지터가 은퇴한 2021년에 카를로스 코레아가 이러한 점으로 저격한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비력으로 크게 낮아진 WAR가 라이브볼 시대 유격수 중엔 칼 립켄 주니어 다음이다. 참고로 지터는 공격으로만 WAR을 무려 100(!!!) 가까이 쌓았다. 만일 지터가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가 아니라 다른 포지션으로 뛰었다면 지터는 더 뛰어난 선수가 되었을 것.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약물 문제로 깎아내리지 않더라도 유격수로 반, 3루수로 반을 뛰었다. 칼 립켄도 말년엔 3루수로 뛰었음을 감안하면 좋지 않은 수비이지만 끝내 유격수를 지키며 버텼던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게다가 최근까지도 환상적인 호수비가 키스톤 콤비에서 나오면 해설자들은 여지없이 데릭 지터를 언급할 정도로 현장에서의 평가는 세이버상의 그것과 다르게 훌륭했다.[4] Mr. November라는 별명은 2001년 월드 시리즈김병현에게서 극적인 끝내기 홈런을 치고 생긴 것이다. 9.11 테러 때문에 포스트시즌 일정이 밀려 월드 시리즈가 11월까지 진행됐기 때문.[5] 필딩률에 비해서 송구 능력이 조금 불안한 편. 지터의 송구를 1루수가 제대로 잡지 못해 공을 빠트리거나 1루수를 지나쳐가는 참사가 종종 일어났다. 지터의 송구 하면 생각나는, 3-유 간 깊은 타구를 건져내 반 바퀴 돌며 던지는 모습도 부족한 어깨를 커버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6] 하지만 지암비는 난 항상 포구는 자신 있다 주장하기도 했다.[7] 뉴욕에 사는 한국인 양키스 팬이 옆에 앉아 있던 미국인에게 "지터도 나이가 들어가는 걸까요?"라고 말했다가 순간 반경 1미터의 사람들이 뿜어내는 눈빛 광선에 몸을 떨었다고 한다. 양키들이 "지느님이 나이가 들었다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하면서 대놓고 광분했다고 한다.[8] 출처는 여기.[9] 웨이드 보그스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3천 번째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한 기록.[10] 하지만 저 공을 주운 로페즈라는 남성은 양키스 구단을 통해서 공을 지터에게 돌려줬다고 한다. 당시 경매에 냈다면 최소한 30만 달러는 받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대신 데릭 지터의 사인이 새겨진 배트와 공, 점퍼를 받았고 그 시즌 양키스의 남은 경기를 모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았다.[11] 지터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다.[12] 그 뒤를 버니 윌리엄스의 128개, 매니 라미레스의 117개가 자리하고 있다.[13] 사실 포스트시즌 이전에 후반기에 발목이 접질리는 부상을 입어 절뚝거리며 시즌을 치렀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마크 테세이라도 잉여가 되는 상황에서 정신력으로 버티며 스즈키 이치로와 함께 팀을 이끌었던 게 되려 독이 된 셈.[14] 미국의 프로 스케이트보더.[15] 미국의 래퍼. 다리 꼬고 있는 뚱뚱한 사람.[16] 브론슨의 프로듀서. 영상 오른쪽 구석에 게슴츠레 웃고 있는 사람.[17] 미국의 여자 농구선수[18]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사장이자 필 잭슨의 연인.[19] WAR 문서를 읽어보고 왔다면 저 숫자가 감이 올 것이다. 사실상 팀 전력의 50%를 저 셋이 책임지는 것.[20] 잭 갤런은 반 시즌만 마이애미에서 뛰고 다시 트레이드 되었다. 대신 대려온 선수가 바로 재즈 치좀 주니어.[21] 이후 스탠튼은 양키스에서 최악의 가성비를 보이며 지터가 양키스에게 한 사실상 유일한 오점이 되었다.[22] 1위는 만장일치의 마리아노 리베라.[23] 스탠튼은 2021 시즌 후반기에 부활하나 했지만, 2022 시즌부터 다시 거하게 삽을 푸며 먹튀로 굳어지고 있으며, 옐리치와 오주나도 장기계약 이후 삽질만 하다 2023 시즌 겨우겨우 반등하였다.[24] 선수 생활 10년차에 막 접어들었는데 현재까지 기록한 WAR이 지터의 통산 WAR을 넘는다.[25] 당시의 하퍼는 야구 버전 르브론 제임스, 타자 버전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등의 평가를 받았으며, 이외에도 미 엘리트 스포츠 역사상 드래프트된 온갖 전설적인 유망주들을 소환했을 정도의 미친 유망주였다. 심지어 유망주 시절엔 앞서 말한 트라웃보다도 평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26] 특히나 저지가 62홈런을 때리고 양키스에 사실상 종신 계약으로 남자 저지가 부상만 없다면 지터를 잇는 주장으로 남을 것이라는 평이 많다.[27] 특히 1년에 정규시즌만 162경기를 치르는 야구에서는 잠시만이라도 부진하면 매일 온갖 부정적인 기사가 쏟아진다. 실제로 2003년 시즌 초반인 4월에 첫 17경기동안 2할 아래의 타율로 부진한 지터에게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는데, 24일 경기후 인터뷰에서 이것이 언급되자 지터는 불쾌해하기는 커녕 "어떻게 팬들을 탓하겠나요. 제가 팬이라도 야유하겠어요."라며 오히려 팬들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는데, 2021년 시즌에 메츠 선수들이 팬들과 대척하는 막장사태가 벌어지자 언론에서 지터를 좀 보고 배우라는 기사가 나왔다.기사[28] 랜디 존슨은 뉴욕 시절 이를 못 견뎌서 카메라맨을 밀쳐버린 사례가 있다. 친화력있고 팬서비스도 좋은 스타들도 집만 나가면 단 1분도 놔주질 않는 파파라치들과 팬들에게 질려 이성을 잃는 모습은 수도 없이 목격되는데, 이건 인간으로서 당연할 수 밖에 없다. 잘할땐 온갖 찬사를 하다가 조금만의 기복과 구설수가 있어도 물고 뜯는 팬들과 언론에 상처받기도 쉬운데, 지터는 커리어 내내 이 모든것을 여유롭게 넘기면서 슈퍼스타의 지위를 유지한 특별한 케이스다.[29] The Other Guys의 국내 DVD 출시 제목. 윌 페럴마크 월버그가 주연으로 나온다.[30] 그래도 뉴욕에서도 공화당이 40%는 표는 얻고, 지역 단위 선거인 주지사 등엔 루돌프 줄리아니 같이 공화당 출신이 최근에도 많다. 2020년 대선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는 뉴욕에서 37% 얻었다. 연안 지대와 동남부의 뉴욕시 뺀 뉴욕 업스테이트의 경우엔 공화당 텃밭이다. 단지 도심에 인구가 밀릴 뿐이다.[31] 특유의 그윽한 눈빛이 장난 아니다. 특히 현역 시절 아직 체형이 날씬했고 탈모가 진행되기 전에는 메이저에서 손꼽히는 미남스타였다. 괜히 중계때 지터가 나올때마다 얼굴을 클로즈업해야 시청률이 팍팍 오른다는 얘기가 미국 방송업계에 도는 게 아니다. 2K 스포츠의 야구 게임인 MLB 2K에서 3시리즈 연속으로 커버 보이를 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2K8은 뉴욕 메츠의 유격수 호세 레예스, 2K9는 팀 린스컴, 2K10은 탬파베이 레이스의 3루수 에반 롱고리아, 2K11은 로이 할러데이 2K12는 저스틴 벌랜더.[32] 토론토 블루제이스 소속이었던 유격수. 플로리다 말린스 출신의 유격수 알렉스 곤잘레스와는 동명이인이며, 이쪽이 나이가 더 많다. 2003년에는 컵스 소속으로 말린스를 상대로 NLCS 6차전에 나섰는데, 스티브 바트만의 파울볼 사건 이후 팀이 급격하게 뒤숭숭해진 상황에서 평범한 땅볼 타구를 어이없이 처리하지 못하는 실책까지 범해 팀의 패배에 크게 일조를 하였다. 어찌 보면 바트만보다도, 모이세스 알루보다도, 그리고 마크 프라이어보다도 당시 컵스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선수.[33] 1997년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친 선수이자, 이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주전 유격수였던 그 렌테리아 맞다.[34] 뉴욕메츠 출신의 쿠바출신의 유격수로 골드글러브 3회 수상을 기록했다. 다만 통산 OPS가 .600 인 수비형 유격수였다.[35] 물론 이 시애틀 시절에 대해선 나중에 여러가지 스텟이 나오면서 재평가 된점과, 벨트레가 타 팀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영향인지 먹튀라고 부를만한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있다.[36] 미국 야구 기자 협회에서 월드 시리즈에서 가장 크게 활약한 선수에게 주는 상. 월드 시리즈 MVP는 사무국에서 수여한다.[37] 자신의 등번호를 딴 Turn 2라는 자선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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