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닐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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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ennis_Nilsen.jpg
이름
데니스 앤드류 닐슨(Dennis Andrew Nilsen)
출생
1945년 11월 23일, 스코틀랜드 애버딘셔주
프레이저버러
사망
2018년 5월 12일 (향년 72세), 잉글랜드 이스트라이딩오브요크셔주 풀 서튼 교도소
가족
2남 1녀 중 2남
신장
188cm
별명
머즈웰 힐 살인범(The Muswell Hill Murderer)
친절한 살인자(The Kindly Killer)
범죄유형
연쇄살인
살인미수
상세범행
6명 살해(기소된 건) - 15명+(추정)
2건 살인미수
처벌
종신형[1]

1. 개요
2. 일생
2.1. 출생과 어린 시절
2.2. 청년기
2.3. 공무원이 되다
2.4. 살인행각
2.5. 덜미를 잡히다
3. 여담


파일:mirror cover.jpg

"데니스 앤드류 닐슨, 살인죄로 기소되다"
체포 다음날 데일리 미러의 1면

''나는 내가 한 짓 때문에 잠을 못 이루거나 악몽을 꾸진 않아."





1. 개요[편집]


Dennis Nilsen. 영국 역사상 손에 꼽히는 연쇄살인마.

1945년 11월 23일생. 영국 스코틀랜드의 한 시골에서 출생. 회사에서 동료들이 불렀던 애칭은 Des(데스).

유명한 네크로필리아이며 성적 지향은 동성애자다.[2] 15명 가량의 남성을 살해하고 그 시신을 시간하는 등 천인공노할 행위로 악명을 떨쳤다. 비교적 덜 알려져 있을 뿐이지 가히 제프리 다머[3]존 웨인 게이시에 비견할 만한 인간백정이다.

군악대에서 10년간 복무한 경력이 있다. 경관으로 근무하다 그만둔 후, 공공 직업 안정소의 중간 관리직이 되었다. 대인관계가 서투르고 고독하게 지내면서 위험한 망상을 키웠다. 이후 5년간에 걸쳐 15명의 남성을 살해(재판에서의 확정수는 6명)했는데 동기는 외로움이었다. 그는 친절하고 일을 잘해 주변에서의 평가는 좋았으나 선천적으로 조현성 성격장애를 가진 탓에 다른 사람과 완전히 친해지지는 못해 외로움을 심하게 탔다.[4] 이로 인해 집에서 술을 과도하게 마셔 알코올 중독이 되기도 했다. 또한 체포 후 이루어진 정신감정에서 경계선 인격장애로도 진단 받았다.

그러나 많은 연쇄살인범, 학살자와 달리 유청소년기를 특별한 문제없이 보냈으며 성인이 된 후에도 다른 범죄자에 비하면 그다지 특이점을 발견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오히려 동물을 사랑하고 온화한 사람이었으며 반전주의자이자 사회 참여적인 사람인 것으로 드러난 상당히 특이한 인물이다.[5]

해럴드 시프먼이 나타나기 전까지 영국 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범으로 기록되었다. 25년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판결 받았으며 당시 나이는 38세였다.


2. 일생[편집]



2.1. 출생과 어린 시절[편집]


닐슨의 부친은 노르웨이 군인이었고, 모친은 스코틀랜드인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먼 친척이었다. 부모는 1942년에 결혼하여 3명의 아이를 낳았다. 아버지와 같이 살았던 적은 없고, 데니스 닐슨 본인과 남매들은 모친의 친가에서 자랐다. 부친은 가족에 매우 냉담한 사람이었으며 가정을 돌보지 않았고 가족을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노르웨이의 병사로 닐슨이 3살때 집을 나왔는데 알코올 중독자였다고 한다. 수년 후에는 정식으로 이혼했다.

가정은 궁핍했지만 특별한 문제가 없는 평온한 가정이었다. 외조부모와 모친은 닐슨을 귀여워하는 한편, 종교적으로는 엄격하게 교육했다. 다만, 원리주의와 같이 과격한 사상을 가르친 흔적은 없다. 외조부는 영화을 싫어했지만, 당시의 사회적 환경에서는 그것이 이상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었다.

소년기의 닐슨이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은 외조부였다. 그렇기에 1951년에 외조부가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을 때, 일곱 살의 닐슨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외가 쪽으로 정신장애 병력이 여러 명 있음이 확인되었다. 한편 외조부가 사망했을 때 장례식을 치르며 데니스 닐슨이 네크로필리아 증세를 처음으로 보였다는 말이 있으나 이는 그저 추측일 뿐이다.

한편 데니스 닐슨은 이후 악명높은 살인자가 되었던 것과는 달리 어린 시절에는 살인자가 될 증후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많은 연쇄살인자들이 어릴 적부터 동물을 학대하는 등 이상 행위를 보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례이다. 오히려 동물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등 온화한 모습만을 보였을 뿐이었다. 비둘기 을 부화시켜서 애지중지 키우기도 했는데 동물에 대한 깊은 애정은 어른이 되고 나서도 바뀌지 않았다.


2.2. 청년기[편집]


중학교에 다닐 무렵, 데니스 닐슨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닫고 자신이 동성에게만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하고 고민한 듯하다. 가족도 그가 동성애 성향을 가졌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서로 갈등을 빚게 되어 어머니와 관계가 다소 멀어졌다. 15세에 중학교를 졸업한 후, 1961년에 16세의 나이로 육군에 입대하였다.

닐슨은 병참부대에 배속되었으며 한때 중동이나 독일 등에 주둔했던 적이 있다. 닐슨은 병참부대에서 근무하면서 취사병이 되어 뼈에서 고기를 발라내는 작업을 하였는데 이는 훗날 살인 행각을 벌일 때 상당히 유용한 기술이 되었다고 한다.

군대에서의 근무 태도는 성실했지만,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으며 그 무렵부터 시체에 흥미가 생기는 등 슬슬 네크로필리아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 즈음에 그는 몸에 흰 파우더를 바르고, 푸른 립스틱을 칠해서 스스로 시체로 분장하는 등 기행을 벌였다.

군에 입대한 지 2년이 지난 후에 닐슨은 자신과 동갑인 한 사병과 사귀게 되었다고 한다. 닐슨과 사귀었던 애인은 닐슨이 시체에 집착하는 등 해괴한 취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가 대인배였는지, 혹은 취향이 이색적이었는지는 몰라도 잠자리에서 일부러 숨을 참고 시체 흉내를 내주었다고 한다(...).[6]

군에 복무할 당시 중동에 파견되어 택시를 탈 일이 있었는데 아랍 택시기사가 군인인 닐슨을 납치해서 이때 거의 죽을 뻔했다고 한다. 구출되었지만 이 사건 이후 죽음을 더 가까이 하며 죽음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닐슨이 직접 증언했다.

이후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일어난 피의 일요일 사건에 불만을 품고 27살이 되던 해에 육군을 퇴역(계급은 하사)하였다.


2.3. 공무원이 되다[편집]


군생활을 정리한 데니스 닐슨은 경찰전직했다. 그러나 겨우 8개월 만에 경찰을 그만두게 되었다. 당시 그와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경찰 생활을 하는 중에 시체 보관실에 자주 드나들었으며, 경찰 업무에 관심이 없어 사건 해결과 같은 공로도 세우지 않았는데다 사교적이지 않아 인사를 해도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고 동료들은 기억하였다. 결국 퇴직당하기 직전에 본인이 나갔다.

경찰직을 그만둔 닐슨은 공공 직업 안정소의 행정 직원이 되었다. 일하는 태도는 성실해서, 얼마 가지 않아서 관리직으로 승진했으며 노동조합의 활동에도 열심히 임했다. 그의 개인적인 사상은 반전(antiwar), 좌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즈음부터 닐슨은 더 이상 애인을 사귀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그가 더 이상 산 사람에게는 성적 흥미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네크로필리아 증세가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가 외로움마저 생겨나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진 닐슨은 본격적인 인간 사냥에 나섰다.

그의 첫 범죄는 길에서 만난 소년을 집으로 데려와 서로 술을 마신 것에서 시작되었다. 술에 취한 소년은 침대에서 잠들었는데, 문득 깨어나보니 눈 앞에 나체의 닐슨이 서있었고, 그가 본인에게 다가오자 창문을 깨고 뛰어내려 도망쳤다고 증언했다. 정황상 소년에게 강간을 시도하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닐슨의 옛 동료 중 한 명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하였고 그 사건을 담당하게 되었다. 담당 형사는 이번 사건이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며 피해자의 가족을 설득했으나 당시엔 남성의 성범죄 피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고 그 소년도 잦은 가출 등으로 인해 꽤나 말썽을 일으켰던 전적이 있는지라 가족 측에서는 조용히 넘어가길 원해 법정까진 가지 않았다.

닐슨의 전 동료는 당시 그에게 '운 좋은 줄 알으라'며 일갈했다. 그 경찰관의 예상대로 만약 당시 처벌을 받았더라면 연쇄살인으로 이어지진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제로 연쇄살인범들 대부분이 이러한 작은 범죄에서 시작되고, 그 범죄가 잡히지 않거나 조용히 넘어가면 점점 그 강도가 커지기 때문이다.


2.4. 살인행각[편집]


1978년 12월 29일에 데니스 닐슨은 술집에 갔다가 스티븐 홈스라는 14세의 소년과 만나게 되었다. 닐슨은 홈스를 유혹해서 집으로 데려와 성관계를 가졌다. 다음 날인 30일 새벽에 홈스는 일을 마치고 잠들어 있었는데, 닐슨은 홈스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넥타이목을 조르고 욕조에 담긴 물에 머리를 박아 살해하였다.

닐슨은 살해한 홈스의 시신을 깨끗이 씻긴 후 그것과 다시 성관계를 가지는 등 실로 말로 못할 기이한 행위를 저질렀다. 이후로도 식사를 하거나 TV를 볼 때에도 홈스의 시신과 함께 하였으며, 외출할 때에는 마룻바닥에 숨겼다.

파일:do-composite-boiliing-kitchen.jpg

스코틀랜드 야드 박물관에 있는 닐슨이 사체 처리를 했던 부엌을 재연한 전시물

이런 식으로 7개월이 지나 홈스의 시신이 부패하여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닐슨은 이웃 사람들이 이를 맡고는 자신을 의심할까 두려워하였다. 시신을 정원으로 끌어내 불태웠는데, 일부러 타이어를 함께 태워서 살이 타는 악취를 감추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부패한 시체를 처리 할 때는 거의 항상 직장에 병가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데니스 닐슨은 아무에게도 의심을 받지 않았다. 데니스 닐슨은 평소에 친절한 행동을 하여 이웃들에게도 평판이 좋았으며, 생김새도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살인마와는 거리가 먼 타입이었다. 그의 연인이 되었다가 살해당한 남성들도 그의 평범해보이는 외모와 겉으로 드러난 친절하고 따뜻한 모습만을 보고 의심 없이 접근했다가 무방비로 살해당한 것이다. 데니스 닐슨에게 살해당한 이들은 대개가 20대를 전후한 청년들로 연령대나 체격을 봐서는 데니스 닐슨에게 무력하게 살해당할 정도로 약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심지어 피해자가 저항해서 닐슨의 목에 새파란 멍자국이 남아있는 채로 다음날 직장에 출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장 동료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닐슨이 관리직으로서 직장에서 꽤 인정받는 평판이 괜찮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닐슨의 살인 행각은 1983년 1월 26일, 마지막으로 20세 청년을 살해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1978년에서 1983년 사이에 닐슨은 15명의 젊은 남성을 살해하고 그 시신을 시간하고 은폐하는 등 기이한 범행을 저질렀다.[7] 그 가운데 7명은 여전히 신원이 미상이다. 이후 10월 24일에 살인 행위로 체포되어 그 만행과 죄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2.5. 덜미를 잡히다[편집]


데니스 닐슨은 살인 행각을 저지르는 와중에 단독주택에서 아파트이사를 갔는데, 이로 인하여 그의 살인 행각이 드러나게 되었다. 닐슨은 이사 후에도 평소 하던 대로 살인을 저지른 후 시신 조각을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는데 아파트의 하수도가 전에 살던 단독주택과는 구조가 달라서 곧 버티지 못하고 막혀버렸기 때문이었다.

파일:muswellhill.jpg

하수구에서 뼈가 발견된 머즈웰 힐(Muswell Hill) 아파트

특히 1983년에, 막힌 아파트 하수도를 조사하러 온 배관 회사의 직원이 깊이 3.5m의 맨홀 바닥에서 썩어가는 대량의 뼈와 살점을 발견하였다. 시체임을 직감한 직원은 놀라며 상사와 의논 끝에 다음 날 경찰에 이를 신고하였다.

법의학자가 감식한 결과 이것들이 인체의 일부인 것이 확인되었고 경찰은 주변의 탐문수사에 들어가 곧바로 닐슨을 지목했다. 경찰에 연락이 갈 때까지 닐슨은 시체를 정리했지만 그래도 유해 일부가 남았다. 이때 경찰이 자택을 급습하였고 닐슨은 경찰한테 제압당하고 체포되었으며 곧바로 죄를 인정했다.

닐슨이 체포된 뒤에 그의 집을 수색한 경찰은 집에서 나온 증거물들을 보고는 경악하게 된다. 특히 방안에는 토막토막 낸 남자 시체를 담은 비닐봉지, 삶은 남자 머리 부분이 담긴 냄비, 칼질한 사체의 조각들을 어지럽게 넣은 궤짝 등이 발견되었다. 당연히 시체들은 부패했기 때문에 악취가 심했다. 시체를 늘 보아서 익숙한 백전노장의 형사들조차 몸서리쳐지는 광경에 뒷걸음질 쳤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닐슨은 대량의 시체들과 함께 살면서 공공 직업 안정소의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묵묵히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사건 수사에서 닐슨은 취조에 협력적이었다. 범행의 세부사항을 상세하게 털어놓았으며 책임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자신도 모른다며 오히려 자신의 살해 동기를 밝혀달라고 말했다.

파일:policecar.jpg

호송되는 닐슨

취조 결과 닐슨은 이전에 살고 있던 크랜리 가든(Cranley Gardens)의 거주지에서 12명의 남자를 살해하고 절단해서 구웠다고 자백했다. 닐슨이 묻었다고 한 장소를 경찰이 파헤치자 정말로 8명의 남자 뼈 등이 발견되었다. 그 외에도 마루 밑에는 가출 소년들의 사체가 묻혀 있었다. 살해된 남자들은 친척이 없는 동성애자나 노숙자들뿐이었고 행방불명 신고도 없었기 때문에 체포가 늦었다. 닐슨은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술집에 나가 유혹해서 집으로 데리고 온 후 자고 있을 때 밧줄이나 끈 등으로 교살했던 것이다. "그들이 돌아가면 외로워지기 때문"에 살해했다고 말했다.

파일:HighgatePS.jpg

경찰서에서 법정으로 호송되는 닐슨

재판 중에도 닐슨은 협력적인 태도는 변함없었고 책임을 피하지는 않았다. 변호 측, 검찰 측, 양쪽 모두 정신과 의사에게 감정을 의뢰했으나 채택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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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심리학자와의 인터뷰 텔레비전 장면

그래서 배심원은 닐슨의 완전 책임 능력을 인정했고, 닐슨에겐 25년 복역 후 가석방 신청이 가능한 종신형이 확정되었고, 수감된 지 35년 만인 2018년 5월 12일에, 데니스 닐슨은 72세의 나이로 교도소에서 사망했다.(기사) 사후 시체는 화장되었다.


3. 여담[편집]


이 사건을 토대로 만든 'Cold Light of Day(1989년)'라는 영국 영화가 있다. 닐슨 역은 밥 플래그(Bob Flag)가 맡았는데, 외모 싱크로가 상당히 높은편. 다만 영화는 실제 사건과 차이가 있다. 실제 닐슨은 노숙자나 가출 소년등 상대적 약자를 노렸고 그들을 냉혹하게 살해했지만, 영화속 닐슨은 소심하고 서툴며 연민에 찬 캐릭터로 그려진다.

<범죄의 해부학>의 저자이자 범죄 심리 전문의 마이클 스톤은 연구를 위해 감옥의 데니스 닐슨과 종종 편지로 교류했는데, 워낙 그가 차분한데다 본인의 죄를 받아들이는 모습과 일반적인 연쇄살인마와는 아예 다른 성격 탓에 연민을 느꼈을 정도. 그는 이 책에서 데니스 닐슨은 솔직한 고백, 자기반성, 뉘우침을 할 수 있는 인물이긴 하나 석방은 당연히 적절치 않다는 평가를 내렸다.

닐슨이 마이클 스톤에게 쓴 편지 중 하나에는 끝자락에 강렬한 외로움이 나타난 시를 지어 보냈다고 한다.

나는 여기 앉아 있네—오래, 아주 오래

나 홀로—해변에 앉아 있네

속삭이는 바다를 곁에 두고

귀를 기울이며, 기다리며, 희망하며

모래가 눈물로 얼룩지고

파도가 죽은 것을 토해 내는구나······. (중략)


닐슨이 체포 전에 촬영한 홈 무비 영상. 잔혹한 장면이나 범행 장면은 아니고 그냥 단순히 평범한 홈 무비.

해외에서는 서로 과거와 피해자들을 유인한 방식이 비슷하고, 네크로필리아, 동성애자라는 공통점 등에서 제프리 다머와 자주 비교된다. 닐슨보다 10년도 늦게 세상에 알려졌지만 다머가 더 유명해서인지 영국판 제프리 다머라고 불릴 정도. 다만 생전에 닐슨은 인터뷰를 통해 제프리 다머가 그냥 식인광(Cannibal)은 아니라 주장했다.

다소 흥미로운 차이점이 있다면 다머는 근육질인 남성이 이상형이었다면 닐슨은 피부가 하얗고 작은 키의 소년이 이상형이었다. 또한 다머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는지 대외적으론 본인의 죄를 전부 인정하고 합리화를 거의 하지 않았으나[8] 닐슨은 자신의 가정사나 과거가 문제였다며 합리화를 하거나 가석방 심의위원이 본인의 가석방을 거절하자 비꼬고 불평을 하는 등 본성은 매우 좋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닐슨은 중년의 나이에 붙잡힌 탓인지 감옥에서 맞아 죽은 제프리 다머나 젊은 나이에 감옥에 가 늙어 병들 때까지 죗값을 치르며 살아간 이안 브래디에 비하면 편한 말년을 보냈다. 다만 중간에 한 번 교도소에서 다른 죄수에게 폭행당한 적은 있었지만, 다머와 달리 영국 교도소 측의 재빠른 조치로 죽지는 않았다.

그의 일생과 범죄를 다룬 드라마 Des가 ITV에서 데이비드 테넌트 주연으로 2020년 9월에 방영되었다. 배우와 실존인물간의 싱크로율이 대단하다.

Grand Theft Auto V의 주인공인 트레버 필립스가 데니스처럼 사람의 시신을 변기에 버리는 장면이 화면 전환시 일정 확률로 나온다.

여담으로 그의 외가쪽에는 정신이상자나 자살하는 사람이 꽤 많았으며 이 폐쇄적인 어촌에서는 근친은 흔한 것이었기에 외가의 근친으로 인한 장애가 닐슨의 정신이상의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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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3년 최소 25년을 복역해야 하는 상대적 무기형이 선고되나 1993년 12월 다른 흉악 연쇄살인범인 이언 브래디, 마이라 힌들리, 로버트 블랙, 피터 서트클리프, 콜린 아일랜드 등과 함께 영국 내무장관이 새로 제정한 양형 체제로 가석방을 할 수 없는 절대적 무기형으로 상향 조정.[2] 다만 그가 시체를 사랑한 동성애자라기 보다는, 호모로맨틱일 뿐이지 네크로필리아가 본질인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3] 실제로 이 사람 별명 중의 하나가 "British Jeffrey Dahmer(영국판 제프리 다머)"이기도 하다.[4] 흔히 조현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타인에게 완전히 무관심한데다 교류도 없고 냉정하다는 편견이 많지만, 그들도 외롭다는 느낌은 받는다.[5] 상당수의 대량살인범들은 혐오범죄적 양상을 띄거나 우익적인 성향을 띈다. 게다가 과거부터 동물을 학대한 행적이 있는 인물들이 많다. 허나 데니스 닐슨은 동물애호가에 반전주의자였고 사이코패스도 아니었다.[6] 이는 실제 네크로필리아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성욕을 해소하는 방법이기도 하다.[7] 살해 뒤에는 시신을 목욕시킨 뒤 자신의 취향에 맞춰 체모를 면도하고 화장을 시키고 양말과 속옷을 입혔다고 한다.[8] 다만 죄책감을 떨치고 싶었던 것인지 신부에게 "나 같은 사람도 세례를 받을 수 있냐"며 묻기도 했고 카톨릭에 귀의해 세례를 받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