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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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Th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PCK:Kosin)

파일:koshin.png
영문명칭
Th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PCK:Kosin)
한문명칭
大韓예수敎長老會(高神)
약칭
예장고신
설립연도
1952년
소속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총회장
강학근 목사[1]
사무총장
이영한 목사
표어
교회, 다시 세상의 빛으로 (이사야 60:1)
교인 수
401,538명(뉴스앤조이, 2020년#)
위치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파일:홈페이지 아이콘.pn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교육원

1. 개요
2. 교단 특징
2.1. 전반적인 내용
2.2. 독립 이후의 역사
2.3. 신사참배 및 다른 개신교 교단과의 교류에 대해
3. 출옥성도파 교단
4. 파생 교단
5. 산하 학교




1. 개요[편집]


해방 후 신사참배 문제 청산에 대한 갈등으로 갈라져 나온 개신교 소속 장로회 교단. 약칭은 예장고신이며 소속기관으로 고신대학교가 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놓고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를 탈퇴하거나, 탈퇴하지 않았지만 옥살이를 하고 간신히 살아나온 뒤 재건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철저한 외면 속에 버림받아 제명당한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교단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신사참배 거부로 인하여 폐교된 평양신학교 세력과 주기철 목사[2]의 신사참배 거부 순교정신을 계승하여 새로 세운 교단[3]인데, 출신 성분이 성분인지라 신학적으로는 매우 보수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이들이 모여 고려신학교(高麗神學校)를 세웠고, 이것이 고신대학교의 모체가 되었다.[4]

고려신학교 시절부터 부산을 근거지로 하였기에 부울경을 중심으로 한 영남 지역에서 교세가 큰 편[5]이며, 충청/호남 교세가 약한 편이다.[6] 강원도는 고신 교회가 극히 드물어 영동권에서는 강릉권에 극히 존재하나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7] 다만, 고신 총회는 부산이 아닌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하고 있다.[8]


2. 교단 특징[편집]



2.1. 전반적인 내용[편집]


신학적으로나 전례상으로나 예장합동보다도 더 보수적인 편이고 예장총공회보다는 덜 보수적인 편. 예장합동 측과 나란히 반 에큐메니컬 진영을 대표하며, 반 가톨릭, 반 종교다원주의, 반 동성애[9], 반 자유주의 신학 등을 내걸고 있다. 신사참배에 저항했던 경험이 교훈이 되어 타협을 거부하는 강경한 복음주의적 보수 성향을 강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신학 노선은 보통 개혁주의라고 소개되는데, 쉽게 말하면 칼뱅주의, 장로회이고, 이는 총신대(합동), 안양대(대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합신)과 같다. 칼뱅의 성향을 생각한다면 당연하게도 기적이나 방언, 예언, 천국지옥 간증이나 각종 신비주의적인 것에 대해 극도로 회의적인 교파에 속한다. 매우 보수적인 교파지만 교단의 역사 때문인지 교회 내부 분쟁에 대한 세속 법정의 판단을 금기시하는 다른 주류 보수교단들과 다르게 이 부분에 한해선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세속 법정의 판단을 인용하는 특성은 교회 내부의 소송과 분쟁을 불사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법조계에서 법인격 없는 사단의 대표적인 두 예제를 종중교회로 보는데, 거기에서 매우 큰 비중을 두고 이 교단과 관련된 몇몇 사례를 배울 수 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 해방파와 자매 관계이며, 실제로도 박윤선 목사는 한국 최초로 영미권이 아닌 네덜란드 쪽 개혁교회 문헌을 소개한 사람이기도 하다.

고신의 이러한 특성은, 1990년대 후반 들어서야 부분적으로 현대적 악기를 도입하기 시작한 점[10]이나 성경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여성 목사 금지 규정이 여전히 남아 있는 점 등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나마 우상숭배가 된다는 이유로 총회헌법에 강단 십자가 설치 금지를 명시한 예장합동과 달리, 예배당 내 종교적 상징물을 최소화하되 비치할 경우에는 그 신앙적 의미를 명확히 하도록 권하고 있으며, 십자가 설치를 총회헌법 차원에서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11] 그래서인지 고신 소속 교회들 중 상당수는 강단에 십자가가 없지만, 십자가를 설치한 교회들도 적지는 않다.[12] 다만 여기보다 더욱 보수적인 교단이 있는데 바로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예장총공회)다.

그런 의미에서 고신교단과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교단은 한국기독교장로회대한성공회. 다만 정치 사회적 관점은 마냥 대척점이라 보기는 힘들다. 고신교단은 기장 교단처럼 공식적인 정치적 성향이 있는 교단은 아니지만, 목회자들 중에는 케인스주의 정책과 사회보장 확대를 지지하는 기독교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경우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 보수라 해서 정치적으로도 보수인 것은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2.2. 독립 이후의 역사[편집]


독립 이후 경남에 교단이 세워지는 과정에서도 이승만 세력을 등에 업은 친일파 목회자 세력에게 예배당을 빼앗기고 축출당하는 등 크게 대립하였는데, 이 때문에 고신측 세력이 법정에 고소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에선 교회 내 분쟁을 세속법정에서 해결하려는 시도가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어긋나고 교회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금기시한다. 이때 소송한 주체가 예장고신이 되었고 소송을 반대하고 순응한 교회들은 따로 떨어져 나가 예장계신을 만들었다. 이 영향인지 예장계신에 속한 교회가 김구를 비난하고 이승만을 적극 지지하는 등 최근까지 뉴라이트 성향에 가까운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편 예장합동과는 교리적인 유사성과 합동 교단을 세운 박형룡 목사가 신사참배에 순응하기보다 그나마 일본으로 도피하여 대항한 전력이 있다는 점으로 한 때 통합을 시도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접점이 있으나 통합 후 합동측이 중심이 된 총회가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을 경성대학교 신학대학으로 대체하려고 했다. 고신측 입장에선 적대적 인수합병과 다름없는 행위였다. 결국 통합 3년만에 위기를 맞고 고소 사태가 발생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13] 이때도 재판기간이 늘어지면서 고소에 대한 입장을 놓고 또 교단 세력이 나뉘었는데 본류인 예장고신은 교파를 지키는 수단으로 고소까지 불사한 반면 고소까진 지지하지 않고 그냥 떠나자는 쪽은 예장고려라는 새로운 총회를 세워 떨어져나갔다. 이 두 교단은 주요입장에 큰 차이가 없이 나눠진 상태로 유지되다 결국 2015년에 다시 통합되었다. 이후에 존재하는 예장고려는 이름만 같은 것을 썼을 뿐 세습을 옹호하여 독립한 파생 교단이다. 이런 사건들로 인해 예장고신은 친일파를 옹호하는 뉴라이트 계열 목사, 분열을 겪은 합동, 출옥성도파를 내쫒았고 세속법정 인용에 비판적인 통합, 여러 사정으로 고신에서 탈퇴한 파생교단 등 다른 교단과 더욱 척을 지게 되었다.


2.3. 신사참배 및 다른 개신교 교단과의 교류에 대해[편집]


한국 개신교계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약점 중 하나인 신사참배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장로회 교단 중 하나[14]이며, 이러한 신앙의 순수성 측면에서 자부심이 매우 높다. 특히 교단의 기원에 걸맞게 한국 교회사에서 친일파 행적에 관한 연구를 가장 활발히 진행한다. 그러나 고신대학교를 제외한 모든 신학교의 교회역사학에서 신사참배를 언급하지만 고신 교단에 대한 교육은 전혀 하지 않으며, 일선 교회에서도 고신 교단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15][16] 이 때문에 비기독교인은 물론이고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신사참배하지 않은 개신교 교단은 없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절반만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남아 있던 교단 중 신사참배에 결의하지 않은 교단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나, 침례회[17]성결교회는 교단이 해산되어서 없어졌고, 신사참배하지 않은 장로회 교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교단들 중 하나가 고신이기 때문.

기존 교단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교단인데다, 타 교단의 정보 은폐에 덧붙여 21세기까지 역사성 때문에 고신과의 교류를 기피하는 특성 때문에[18] 내부적으로 계속해서 보수적인 색채를 고집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덧붙여 이런 내부적인 핍박 때문에 한이 서려서 일부에서는 선민사상으로 변질되어 타 교단 교회 출석을 배격하는 움직임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자체적인 보수적 색채 때문에 타 교단 교회의 출석이 어색한 모양인지 인터넷 검색을 통해 동일 교단 교회를 추천받는 경우도 희귀하지 않게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교 수준에서 타 교단과의 교류를 어떻게든 하려고 노력하는 편인지, 특히 심리상담 쪽에서 타 교단 신학교와의 교류가 있는 학술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다만 고신 측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개신교 대형 교단에서는 업무상 필요한 수준 이외의 교류에는 매우 미지근한 태도[19]를 보이고 있으며,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 또한 형식적인 수준에만 그칠 뿐이라 기존 태도를 고칠 기색 또한 전혀 없다. 출옥성도파를 내쫒은 원죄가 있는 예장통합, 소송을 겪어가며 고신과 갈라진 예장합동, 고신과 정반대 성향을 가진 기장이 다른 개신교 교단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반기독교 측의 기독교 고급 비평의 수단으로 쓰일 지경이다. 이는 오늘날의 개신교 교회가 고쳐야 할 문제점이다.

물론 고신에서도 잘못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신사참배의 잘못이 있는 교권파가 꽉 잡고 있는 교단들의 핍박으로 생겨난 고신의 타 주류교단에 대한 적대적인 성향은 고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다른 보수 교단들과도 악연을 만들어 냈다. 합동은 상술했듯 고신대를 경성대로 대체하려는 적대적 인수합병 때문에[20], 합신은 합신 교단을 세운 박윤선 목사가 고신에 몸을 담았다가 탈퇴했기 때문에, 대신은 대신 교단을 세운 김치선 목사에 대한 비판 때문에[21], 마찬가지로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교단이 없어진 성결교회, 침례회는 신학적으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교류가 매우 뜸해졌다.

하지만 신도들, 신학생, 심지어 목회자조차 이런 세세한 역사까진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교단은 교류가 뜸할지라도 개인적 차원으로 친분을 맻으며 교류하기도 한다. 상술했듯 은폐가 심각하다는 증거겠지만 역설적이게도 신도 개인들의 교류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3. 출옥성도파 교단[편집]


해당 교단들은 고신처럼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쫒겨난 출옥성도파가 세운 교단이며 고신과 비슷한 역사를 겪었다. 고신의 국내 자매교단이라고 봐도 된다. 고신보다 규모가 작고 더 보수적이며 더욱 힘든 역사를 겪어서 폐쇄적이다.


4. 파생 교단[편집]




5. 산하 학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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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구 서문로교회 담임목사.[2] 다만 주기철 목사 본인은 2016년 복권되면서 현재 예장합동의 평양노회에 교적을 두고 있으며(출처), 막내아들 주광조 장로는 예장통합교단 소속 영락교회 은퇴장로,출처 손자인 주승중 목사(셋째아들 주영해 장로의 차남)는 예장통합 소속 주안장로교회 담임목사이다.이 출처에서 주승중 목사가 말하는 숙부가 바로 앞서 언급한 주광조 장로이다.[3] 평양신학교는 일제강점기 당시부터 개혁주의 신학으로 유명했던 곳이며, 이 때문에 신사참배 반대 운동의 중심 세력들은 대부분 평양신학교 위주였다. 그리고 관련자들이 제명당할 당시에는 당연히 교단으로서 존재하지 않았다.[4] 참고로 신사참배 거부를 위해 자진폐교한 적 있는 서울의 장로회 미션스쿨은 예장고신이 아닌 예장통합 소속이다.[5] 2007년도 기준 교단 소속 교회 중 48%가 부울경 지역에 위치했고 17%가 대경권에 위치했음. 경상도 전체로는 65%의 비율을 차지. 다만 경북권은 경남권에 비해 교세가 약해서 경북 남부 지역은 예장합동이 우위인데 비해 고신측 교회는 상대적으로 드물고, 예장통합이 압도적 우위인 경북 북부 지역에서는 고신 교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경남권에서도 유독 산청군만은 통합 교단의 교세가 압도적이다.[6] 다만 예외적으로 충청북도 영동군은 충청권에서 유일하게 고신 교회가 상대적으로 교세가 강한 편이고, 대전광역시도 전반적으로 장로회 극보수 교단이 약세임에도 한밭교회, 대전신일교회, 새하늘시민교회 등의 중견규모 교회들이 존재하고 대전에 선교센터를 설립하는 등 고신 교단만은 교세가 꽤 선전하는 편이다.[7] 강원도는 알겠지만 그나마 있는 예장통합 교단을 제외하고 이 지역에서 상당한 약세이다. 2016년 기준으로 29개의 고신 교회가 존재한다. 그것도 강원도 외의 타 지역의 노회에 속해 있는 교회들이 말이다. 강원노회는 아예 없다. 하여간 강원도 지역은 감리교가 초강세이고 이로 인해 보수적인 장로교 교단에 속해 있는 교회는 보통 드문 게 아닌지라 그중에서도 고신 교회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8]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뒤편 삼호가든 사거리 인근에 있으며 교단 소속인 서울남교회와 건물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9] 참고로 동성애가톨릭에서도 반대한다. 다만 동성 간 육체관계(성행위)나 동성 결혼의 법제화 등은 단호히 반대할지언정, 동성애자를 저주, 핍박하고 모욕하는 행위를 용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사랑과 친절로 대하라고 가르친다. 한 마디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이렇게 적었다고 해서 오해하지 말자. 고신도 앞에 서술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동성애 성적 지향을 갖고 있더라도 스스로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고 그 성적 지향을 강요하지 않으면 사랑과 친절로 대하며 극복할 수 있도록 돕자는 진영보다 동성애 성적 지향만 가지고 있어도 무작정 배척하는 진영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한 것이 한국 개신교 전체의 문제다.)[10] 기본적으로 예배 시간에는 피아노나 오르간, 기타 클래식 악기 정도만 사용한다. 신디사이저나 클래식 기타, 일렉트릭 기타 등을 사용하는 것은 예배 초반부 찬양 시간이나 정식 예배 순서가 끝난 후 마무리 광고 시간 등으로 한정된다.[11] 이는 통합-합동 분열 이전의 예장 총회가 1957년 강단 십자가 부착 금지를 가결하였고,(분열 이후 예장통합은 1980년대 들어와 이 조항을 삭제하였다.) 예장고신이 분리되어 나온 것은 해당 조항 제정 이전인 1952년이기 때문이다. 다만 태극기, 성조기 등의 국가주의, 민족주의적 상징물을 강단에 비치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행위로 간주하여 엄격히 금하고 있다. 강단 십자가에 대한 예장고신의 입장은 예장고신 기관지 기독교보의 기사를 참조.[12] 예를 들면, 고신 교단 소속인 대전의 한밭교회는 본당 강단에 십자가를 설치하고 있다.[13] 하지만 아예 의미없던 일은 아니다. 합동에서 이때 잔류한 출옥성도파를 좀 흡수하면서 총신대학교에 주기철관을 만드는 등 교단 내에서 아주 약간이나마 출옥성도파의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다.[14] 혹자는 신사참배에 반대한 모든 개신교 교단을 출옥성도파라고 묶어서 부른다고 보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출옥성도파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신사참배 거부로 옥살이를 하다가 나온 장로회 목회자와 신자를 통칭한다. 성결교회, 침례회는 교단 자체가 해산당해서 신사참배 문제로 파벌이 갈리지 않아서 굳이 옥살이를 한 목회자들을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15] 타 교단에서 철저하게 출옥성도 관련 교육을 기피하고 관련 자료를 은폐하기 때문에 고신측에서 자체적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홍보하는 역사편찬위원회를 따로 꾸려야 했을 정도다. 그나마도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고신이라서 가능한 일이고, 다른 출옥성도 위주 신사참배 반대 교단이었던 순장이나 재건의 경우는 아예 엄두조차 못 낸다.[16] 한편 비출옥성도파 위주의 신사참배 반대 교단의 신학교의 경우에는 순장, 재건은 언급하면서 고신과 고신 계열 교단은 잘 언급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후술하겠지만 고신이 비출옥성도파 신사참배 반대 교단에게도 적대적으로 대한 탓에 악연이 깊기 때문이다.[17] 엄밀히 말하면 그 전신인 동아기독교.[18] 신사참배의 전과가 있는 교단의 대형목사에게 신사참배와 고신교단 관련해서 질문했던 결과 크게 역정을 내며 더 이상의 일체의 대답을 거부한 일도 있었고, 반기독교 관련해서 자료를 수집하다 보면 출옥성도들이 기반이 된 교단들에게 온갖 구박을 했던 과거 기록들을 비기독교인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씩 모을 수 있다. 신사참배 당사자들의 소천이나 은퇴를 이유로 타 교단에서 신사참배 언급이 자유롭다는 관점도 있지만 기독교 관련 자료를 탐색하다 보면 쉽게 부정된다. 신사참배 전과가 있는 목사가 원로목사로 있는 대형교회는 여전히 원로목사의 치부를 감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당장 이와 관련된 기획기사도 나왔을 정도.[19] 고신 출신 목회자에게 편목고시 자격을 주거나 고신대 출신 전도사를 기용하는 통합/합동 교단의 경우가 극히 제한적으로 보고되나, 이것 또한 매우 이례적인 케이스로 분류되며 대부분 교단 소속 신학교의 전도사를 중점적으로 기용한다. 이는 각 교단의 교권파의 교회정치적 파벌 싸움과 역사 은폐 과정이 계속해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며, 위 각주에서 나온 바와 같이 비기독교인 입장에서도 인터넷 검색으로 많은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20] 물론 이는 합동 잘못이 크다.[21] 출옥성도에 비해 신사참배 대항이 소극적이고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남하 때문에 사역한 교회를 버렸다는 것.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일본에서 조선 민족주의 운동을 펼쳐서 사상범으로 구속된 김치선 목사의 행적을 자랑스러워하는 대신 교단에게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식으로 출옥성도의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면서 다른 교단을 평가절하하는 면모도 있었다. 한편 김치선 목사는 자신의 신사참배의 죄를 3번 회개한다고 공개 설교한 전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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