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대통령 각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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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大韓民國 | Republic of Korea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1905년 ~
성립 이전
대한제국
국가
애국가
위치
한반도[1], 만주, 규슈[2], 하와이, 파나마 운하 지대, 시베리아
수도
서울특별시
인구
약 4000만[3]
민족
예맥민족[4]
언어
한국어
문자
한글, 한자
종교
유교(성리학)[5], 대승불교, 가톨릭, 개신교
기년법
대한민국 연호
명목상 정치 체제
공화제, 대통령중심제, 단원제, 다당제
실질적 정치 체제
전체주의, 파시즘, 국수주의, 신대통령제
경제 체제
자본주의, 국가협동조합주의
국가원수
대통령
대통령
조지원[6]이시영
부통령
김승환[7]이시영[8] → 불명
여당
한국 독립당
야당
청년당, 노동당
소속 기구
인류연방, 발해연방
통화


1. 개요
2. 역사
3. 영토
3.1. 발해연방
4. 정치
4.1. 한국 독립당
4.2. 청년당
4.3. 노동당
5. 외교
6. 경제
7. 인프라
8. 사회
9. 군사
10. 첩보
11. 기타



1. 개요[편집]


대통령 각하 만세에 등장하는 대한민국. 형식상으로는 대통령 중심제의 민주 공화국이나 실상은 전체주의 파시즘 국가에 더욱 가까운 국가다. 수권법 통과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이나 다름없다.


2. 역사[편집]


한일의정서 조인식에서 발생한 외무대신 이지용의 자살 폭탄 테러로 일본과의 보국전쟁이 발발하였고 영국의 지원과 묵인을 받아 한성정부가 수립되었다. 초기에는 조지원을 위시한 대한제국군 시위대 출신 군관들이 주축이 되었기에 군사정부의 성격이 강했다. 러일전쟁이 끝나고 산업화를 시작했고 한성을 제외한 남은 대한제국 영토를 수복하였고 근왕세력을 일소,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만주에 한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청나라 북양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이어서 만주를 집어 삼키기 위해서 장쭤린의 만주군을 상대로 전쟁을 수행했고, 사실상 만주를 보호령으로 삼았다. 중화민국이 몽골 지역에 세력을 투사하려는 것을 저지하고자 몽강전쟁을 일으켰으며 앞선 두 전쟁처럼 확실한 국력 차이를 각인시키며 승리했다. 쑨원 사후 중국이 갈라지고 북경정부를 지원하며 남경정부와 일본과 전쟁을 시작했다. 중국 대륙과 대마도 일대에서의 국지전 수준을 넘어 서양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추분을 틈타 일본을 기습 공격해 승리했다. 또한 호주와 뉴질랜드를 공격해 항복을 받아내고 식민지의 독립을 지원하면서 유럽 열강들을 몰락시킨 뒤 최후의 경쟁자인 소련을 선제 핵공격으로 멸망시키고 마침내 세계 패권을 쥐게 되었다.

초대 대통령 조지원의 영도력으로 국력을 빠르게 확대했고, 삼균주의 사상에 기반하여 혁명의 상징국가가 되었다. 가장 가난하고 식민지 병합 직전의 국가에서 30여년만에 열강의 말석으로 평가받는 이탈리아 수준의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고[9], 핵투하로 인한 소련 멸망 직전에는 소련보다 한 수 아래의 경제 규모까지 가졌다. 소련 멸망 이후엔 사실상의 세계정복을 달성한 초강대국이자 세계 유일의 패권국으로 발돋움했으며, 나아가서는 다른 삼균주의 진영 국가들의 자발적인 합병 요청으로 인해 범대륙적인 초거대국가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조지원의 계획에 따라 우주 개발에도 막대한 재원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으며 요람에서의 해방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것을 보아 우주정복까지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3. 영토[편집]


한반도와 부속도서(서울특별시 + 15도), 북간도와 서간도(연길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다. 발해연방 수립과 만주를 합방한 후에는 만주도 사실상의 대한민국 영토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는 소련을 핵폭격이라는 통수로 멸망시켜 시베리아를 빼앗고 미국으로부터 하와이파나마 운하도 사들여 영토로 편입했다. 그리고 삼균주의 진영의 80여 개국이 대한민국에 합병을 요청했으니 그만큼 영토가 더 늘어났을 것이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시베리아, 구주, 북해, 유구 지역은 판무관부를 유지하여 영구적인 지배/보호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3.1. 발해연방[편집]


선통제 푸이가 황제로 즉위하고 청나라 황실이 중국 국부군에 의해 만주(동북 3성)로 밀려난 후 쑨원 사후 중국 대륙이 혼란에 빠지고 군벌이 득세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청나라를 사실상 보호국으로 삼았고 한족과의 불화와 문화적 차이가 심해지면서 중국과의 재통일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부결되었다. 애초에 푸이는 정치적 이유로 재통일을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선거과정 및 질문지가 편향되었다. 게다가 한족들이 밀려오면서 만주족, 만주 거주 한족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만주로 온 한족들이 자립의지가 없어 보이는 모습에 만주인들은 재통일을 거부했다.

이후 한국과 한만합방을 통해서 발해연방을 이루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이 만주를 합병했다. 그야말로 한국판 레벤스라움이다.


4. 정치[편집]


제왕적 대통령 중심제로 한국 독립당이 여당으로 50년 동안 집권하고 있다. 헌법은 현실의 대한민국 헌법을 어느 정도 따와서 만들어졌지만 제1조에 삼균주의가 명시되어있고 연임에 관한 제한은 없으며 임기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조지원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날이 대한민국 3년 11월 22일(1908년 11월 22일)인데 원 역사의 대한민국처럼 선거에서 취임이 약 2개월이라고 가정하면 대통령 선거는 9월 말에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통령 관저로는 석조전이 사용되고 있다.

초기 독립당은 삼균주의 사상을 근간으로 한성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농촌의 지지는 받지 못했다. 토지개혁을 밀어 붙이고 근왕파가 뿌리 뽑힌 뒤 신민회가 지방 계몽운동을 시작하면서 영향력이 강화되었다. 조지원 대통령의 집권 기간 동안 영토 확장과 경제 문제, 근대화를 실현했기 때문에 대통령 지지 여론은 매우 압도적이며 야당의 영향력은 작다. 야당으로 청년당이 있으며 대통령의 유일한 영애 조가은이 소속되어있다.

해방 직후의 대한민국처럼 정, 부통령이 있으며 부통령 김승환은 의전 서열상 2인자이자 군사정부 시절부터 조지원의 동지였다. 국방장관을 겸임하고 있으며 군부의 입김이 약하지 않다. 또한 군부와 행정 관료간 알력 다툼이 있지만 조지원이 지속적으로 문민 관료들의 힘을 실어주었고 군부의 힘을 줄였기 때문에 문민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건국 초기에는 민주주의선거에 익숙하지 않아서 부정선거가 판을 치고 국민들도 대가를 받고 찍어주는 것을 당연시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부정할 수 없는 독재 국가임에도 권력자들의 부정부패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각계각층에서 완전 무결한 정도로 깨끗한 것은 아니지만 보위부의 감찰이 잘 진행되고 있고 대통령의 권위가 막강한데다 무엇보다 대통령 본인이 부정축재를 하지 않아서 나름 청렴한 사회이다.

문제는 조지원이 이미 80살이 다 되었고 의전 서열상 2인자 김승환도 70을 넘겼기에 차기 대통령, 부통령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원이 물러난 후에 군부, 정보부, 내각, 의회, 호국형제단 등을 통제할 만한 인물이 여야 양쪽 모두 딱히 없다는 것이다. 작중에서 조지원은 2인자를 키운 적이 없으며 대한민국은 정권교체의 경험이 없는 국가이다. 만약 조지원이 사망 또는 퇴임을 하게 되면 리더십이 흔들리게 되는데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이 이미 세계정부에 준하는 인류연방의 수장국이나 다름없어서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10][11] 그나마 조지원이 딸 조가은을 정계에 입문시키고 표지훈에게 호국형제단의 처분을 결정할 밀명을 내리는 등 어느 정도 대비를 해놓았으며, 조지원이 사임한 후 이시영이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4.1. 한국 독립당[편집]


한성 정부가 수립될 때부터 존재해 온 정당이다. 삼균주의를 기반으로 한 보수, 반공, 민족주의 성향이다. 삼균주의를 초대 대통령 조지원이 역설하였고 사상의 체계는 이상재가 다듬었다. 초대 대통령 조지원과 2대 대통령 이시영을 배출했다. 선거에서는 일부 보궐선거에서 개헌선을 놓치며 사실상 패배한 적이 있지만 이를 제외하면 작중에서 패배한 선거가 없다. 비공식적으로 신간회를 하부조직으로 가지고 있는 듯하며 삼균주의 연구소를 싱크탱크로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
  • 초대 대통령: 조지원(1905년 11월 3일(권한대행 기간 포함)[12] - 1955년 11월 3일)
  • 2대 대통령: 이시영(1955년 11월 3일(권한대행 기간 포함)[13] - 1961년 기준 현직으로 추정)


4.2. 청년당[편집]


독립당 소속 안창호가 창당한 대한민국의 야당이다. 독립당과 대비되는 진보, 자유주의 성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기존 독립당에 대항한 여러 야당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생존에 성공한 것은 청년당 외에 없다. 조가은을 입당시킨 덕분에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사실상 관제야당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다. 이후 국회에서 목소리를 내서 연방평의회의 기능을 강화하는 수완을 보이기도 했지만, 작품이 완결된 시점인 1961년에도[14] 정권을 잡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 안창호: 초대 청년당 대표. 본래 독립당에 당적을 두었지만 탈당 후 미국 유학파 인사들과 창당.
  • 조가은: 청년당 국회의원. 조지원의 딸. 정치적 배경을 고려하면 청년당의 유력 대통령 후보.


4.3. 노동당[편집]


박헌영이 창당한 소련의 지령을 받는 공산주의 정당이다. 소련이라는 뒷배를 두고 있는 덕분에 한동안 존속하고 있었으나, 소련에 핵무기 기밀을 넘기는 이적행위를 하였기에 조지원이 소련을 멸망시킨 후 해체당했을 것이다.


5. 외교[편집]


러일전쟁을 앞둔 시점에서 러시아의 극동 영향력에 주시하던 영국의 협조로 한성정부를 수립했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국체를 변경하고도 열강과의 관계는 크게 바뀐 것이 없었고 공화혁명을 실현했기에 프랑스미국의 호감을 받기는 했지만 관계 개선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근대화를 진행하면서 오히려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치 세력들의(국가가 아님) 호감을 받았다. 국력이 크게 강해진 1930년대 이후로 열강들의 아시아 식민지에 독립을 지원하면서 신생 독립국들의 맹주 역할을 했고 이는 기존 국제법을 한국 위주의 인류연방 체제로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하면서 식민지를 경영하던 서양 국가들과는 완전한 적대관계가 되었고, 공산진영과는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 협력관계, 식민지에서 독립한 신생 삼균주의 국가들에게는 혁명의 큰 형님 대접을 받고 있다.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실전에 투입한 이후에는 서양 국가들을 완전히 몰락시켜 역으로 식민지로 만들었고, 공산진영은 통수를 쳐서 깨끗하게 멸망시켰으며, 신생 삼균주의 국가들에게는 사실상의 종주국이 되어 세계의 유일한 패권국으로 등극하여 영향력을 지구권 전체에 투사하고 있다.

인류연방의 본부도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위치하고 있다.


6. 경제[편집]


토지개혁을 진행하고 협동조합을 시작으로 경제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 추가로 혁명 산업과 조지원 굿즈를 수출하는 문화산업이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현대의 문화사업처럼 돈도 벌고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하여 경제와 국가 이미지(소프트 파워)를 세계 시장에 각인하는데 성공했다. 대한민국 경제의 특징은 시장경제계획경제의 경계를 오고 가면서 체질을 개선해 간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에 닥칠 대공황과 여러 사건들을 미리 대비하면서 충격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대한민국의 경제가 크게 성장한 만큼 국제 경제상황이 악화되는 와중에서도 피해가 적었기 때문에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다. 거기다 만주를 합병하여 식량생산단지로 개조한 덕분에 식량 자급도 성공하고, 다칭유전을 발견해 석유까지 확보하며 대규모의 해외 투자도 받아냈다.

실제로 대공황 시기에 유럽미국이 엉망이 되어가는 와중에도 조지원은 협동조합을 부활시켜 고용을 안정시켰으며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유럽과는 다르게 (만주의 밀과 유제품을 활용한) 소시지 피자오이피클, 옥수수 수프와 콜라 등을 보급하여 식량 사정도 잘 넘겼다. 이 대공황 시기에 한국의 협동조합 사람들은 대신 이런 거나 먹고 어떻게 힘을 쓰냐며 불평했다.[15] 그러나 당시 유럽에는 사람들이 순무도 먹을 게 없어서 굶어죽고 경제가 파탄나서 자살하는 사람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전자산업 육성에 처음부터 적극적이었으며 초기에는 조잡한 데드 카피형 라디오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전자 기술 선두국 지위를 얻게 되었으며 일본에서는 사장된 야기-우다 안테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레이더를 발전시키게 되었다. 에어컨의 개발 및 보급도 확인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과 컴퓨터 사업까지도 초장기 프로젝트로 설정한 채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추진 중이다.


7. 인프라[편집]


최신 인프라 건설에도 적극적이다. 1930년대 초반 시점에 서울 지하철, 평양 지하철, 인천 지하철까지 전부 건설되었으며 고속도로아스팔트까지 지속적으로 건설 중이다.

평라선을 비롯한 한반도 종단, 횡단 철도들도 적극적으로 건설했으며 이는 만주 침략의 좋은 발판이 되었다.

주택의 경우 대부분이 획일화된 콘크리트 아파트들이다. 이는 지하철 방공호와 더불어 전부 전쟁과 공습에 대비한 것이기도 한데, 목조주택으로 일관하다가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를 안다면 탁월한 선택이다.


8. 사회[편집]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을 표방하지만 실상은 조지원의 교묘한 독재 사회이다. 반대파에 대한 탄압도 분명히 실존하고 있으며 비밀경찰과 감시가 만연한 사회이다. 작가의 이전 작품에 등장하는 대한제국과 비교하면 사회 분위기가 굉장히 경직되고 권위적인 사회이다. 이원철의 대한제국은 다민족국가에 황제가 직접 소통에 나서고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공청회를 개최하기도 하지만 조지원의 대한민국은 말만 민주주의지 교육을 통하여 사실상 언어, 사상, 역사, 문화 등을 강제로 동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신간회와 독립당의 프로파간다로 사회를 획일적으로 몰아가고 야당과 일부 지식인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 우려하고 있지만, 조지원이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않고 엄청난 업적을 쌓고 있어 국민들은 그를 매번 뽑고 있으며, 투표 조작도 일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16]

조지원의 사상에 따라 기존 조선 왕조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사회 분위기이며 이에 따라 사대부양반 세력들은 철저히 숙청당했다. 최익현과 같이 저항하는 양반들은 끝내 처형당했으며 굴복하는 양반들은 국민 재판 과정에서 '유가폭도' 등의 모욕적인 플랜카드를 목에 건 채로 철저히 조리돌림당했다.[17]

조지원은 산아제한정책을 펼치다가 어떤 꼴이 났는지를 알고 있었기에 국가적으로 다산을 장려하고 아이를 많이 낳은 집에 상을 내리는 등 출산율을 높여 인구를 급격히 증가시켰으며, 그 인구를 만주 지역으로 대량 이주시켜 생활권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한편으로는 과학 기술 분야에 엄청난 지원을 했고, 국가 이념적으로 교육에 매우 가치를 두는 사회이기에 기술 발전이 매우 빠르다. 기존에 개발된 기술들은 빠르게 따라 잡았고, 미래 지식을 가진 조지원의 지원과 적절할 때 주어진 그의 힌트 덕에 원자력, 항공, 우주 분야에서는 오히려 대한민국이 유럽을 추월했다. 사실 대한민국의 발전이 빨랐던 것도 있었지만 유럽과 미국이 전쟁과 대공황의 여파가 너무 컸던데다 공산주의 세력의 사보타주와 이로 인한 사회 혼란으로 인해서 정체된 사이에 한국에게 추월을 허용한 것이 컸다.

남녀평등은 작중 시점 기준으로 가장 선진적이며 우수하다. 여성 참정권이 완전 보장되어 있으며 대입 시험과 공직 진출에도 어떠한 제한 없이 여성이 진출할 수 있다. 또한 문화에 대한 검열과 탄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어서 문화에 대한 규제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국민 1천 가구마다 극장, 도서관, 체육시설을 하나씩 의무적으로 건설해야 하고 노동자에게는 매월 1회 각 시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이용권이 지급되는 등 문화생활이 장려되며, 예술가들의 조합은 물론이고 보드 게임 동호회까지 있다.


9. 군사[편집]


민국 30년 이후로는 아시아 최강의 군대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미래를 아는 조지원 덕에 해당 시기와 사건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와 전술, 그리고 교리를 사용하여 가장 선진적인 군대를 운용하고 있다.

육군의 경우 전차를 들여와 꾸준한 연구와 개량 끝에 1925년에 세계 최초의 전격전을 선보이는 활약을 보이고 있으며 이 덕에 봉천군벌을 단 60시간 만에 붕괴시켜 중국은 물론이고 전세계를 경악하게 만드는 위엄을 달성했다. 그리고 1932년의 몽강전쟁에서는 더 진일보한 작전술을 펼쳤는데 국부군의 전형적인 지연전, 공간전 전략을 간파한 조지원에 의해 대규모 기갑부대로 이루어진 기동집단이 종심돌파 작전을 통해 국부군 사단들을 일거에 포위섬멸하고 급강하폭격기가 국부군의 지휘시설들을 참수시키는 바람에 지휘계통도 마비시키는 위엄을 달성한다. 소화기의 경우에는 리베롤 1918을 데드 카피해 자동소총을 조기에 전격채용한다. 그리고 RPG-7을 사전카피한 대전차화기들을 대량으로 공급해 보병의 화력을 크게 향상시켰으며 이를 식민지 독립세력들에게도 공급해서 열강들을 골탕먹였다. 공군의 경우 조지원의 명령에 따라 꾸준하게 금속제 단엽기와 거기에 탑재할 대출력 엔진을 연구하고 실전에 투입한 결과 고속 중장갑 중화력의 에너지 파이팅과 급강하폭격기, 전략폭격으로 타국의 공군을 압도하는 실적을 보이고 있다. 해군의 경우 다수의 전함[18] 보유하고 있지만 주력은 항공모함잠수함이며, 특히 잠수함은 기뢰의 부설과 확산탄두 로켓의 운용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통상파괴전의 주전력으로[19] 활약하고 있다. 그 외에도 적국의 주요 거점을 공략하기 위한 공수부대해병대의 존재가 확인된다.

각종 화생방 무기를 비롯한 비대칭 전력도 대규모로 보유하여 실전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비대칭 전력의 제왕인 원자폭탄을 보유한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전후에는 MRBM을 개발하는데 성공했으며 ICBM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국가 건국부터 전쟁으로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고 지속적으로 전쟁을 수행하여 군대의 경험도 많이 쌓였다.

건국부터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되기까지 국운을 건 전쟁을 연달아 치렀다. 객관적으로 우세한 상황에서 전쟁을 치른 경우는 거의 없었고[20]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일본과 전쟁을 시작했을 때는 일본과의 국력차가 여전히 메우기 힘들 정도였지만 기습작전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면서 2배에 가까운 인구차[21], 압도적인 수상함 전력차를 뒤집고 승리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독립을 후원했고 점령지에는 국가판무관부를 설치하여[22] 군정을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선진적인 군대이지만 원 역사의 일본군보다 훨씬 많은 전쟁범죄를 저지른 군대이기도 하다. 한청전쟁 당시엔 마적떼와 북양군벌 포로들을 처음부터 잡을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조지원은 즉각 처형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래서 10만이 넘는 북양군 포로들이 국군에 의해 학살당한다. 심지어 아인자츠그루펜처럼 전투가 아닌 학살만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부대가 따로 있음이 암시된다. 중국인들을 생체실험하는 국군의 생물학 연구소도 존재하며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 일대에선 국군이 민간인이라도 구애받지 않고 대량 학살을 저지르는 것으로 묘사된다.[23] 해군 역시도 적성 세력이라면 거리낌없이 병원선과 민간 선박까지도 가차없이 격침시킨다.


10. 첩보[편집]


국내용 첩보기관인 국가보위부, 해외용 첩보기관인 국가보안국, 군사 첩보기관인 보위사령부가 있다. 이름이나 역할 분담만 보면 원 역사 속 북한의 그것을 모티브로 삼은 듯하다.

보위부는 북한의 국가보위성이나 군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처럼 온갖 고문을 일삼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증거가 없음에도 누명을 씌워 가차없이 성고문까지 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장한다.

보안국은 음지의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해외에서 첩보 임무를 수행한다. 주된 업무는 삼균주의 혁명 수출이며 이를 통해 제국주의 열강들에 사회 혼란과 혁명을 조장하거나 제3세계의 반란을 이끌어낸다. 그 외에도 유언비어 유포를 통해 국가를 분열시키거나 마약을 살포 하기도 하는데 특히 마약 때문에 미국은 완전히 무법천지의 국가로 전락해버렸다. 요인들도 적극적으로 암살하는데 폐위된 이명복폴로늄으로 암살한다.


11. 기타[편집]


많은 대체역사물에서 등장하는 한반도계 국가 중에서도 가장 맛이 간 국가로 손꼽힌다. 당장 전개 과정부터가 세계 열강을 상대하기 위해서 양지와 음지, 수단과 방법을 전혀 가리지 않는 모습이 주를 이룬다. 그로 인해 세계 열강이 초토화되고, 수많은 생명이 말 그대로 갈려나간 끝에 60년대 들어서는 15억까지 감소한다.[24] 여기까지만 봐도 나치와 소련을 아득히 뛰어넘은 수준으로 가장 큰 규모의 인명 청소를 감행한 작품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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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도 포함[2] 대마도 포함[3] 한만합방 이후 8000만[4] 사실상 한민족과 만주인 [5] 겉으로는 허용이지만 국가 주도로 성리학을 대대적으로 탄압해서 사실상 구심점 자체를 잃은 상황이다.[6] 정부수립 ~ 1955년 11월 3일[7] 국방장관 겸임[8] 조지원의 마지막 임기 때 임명.[9] 일단 현실 역사에서 1935년(폭통 세계관 기준 민국 30년) 당시 이탈리아의 GDP는 약 150억 USD, 일본의 GDP는 약 170억 USD로 일본이 조금이나마 앞서는 양상이었다. # 다만 실제 역사랑 폭통 세계관의 대체역사에서는 겪은 일들이 너무 달랐으니(실제 역사랑은 달리 여기서는 2차 대공황까지 겪었다.) 폭통 세계관에서의 일본과 이탈리아의 경제력은 알기 힘들다.[10] 외국 정상들도 조지원 사후를 대비하기 시작했다.[11]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후계자 양성에 실패하여 몰락한 나라는 상당히 많다. 그리고 대각만과 비슷하게 파시즘 국가인 나치 독일이 세계를 재패한 TNO 역시 후계자 문제로 독일이 쪼개지기 직전이다.[12] 11월 3일은 공화혁명을 선포한 날이고 조지원은 의정대신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 이후 11월 3일은 대한민국의 건국기념일이 되었고, 조지원이 실제로 대통령으로 취임한 날은 1908년 11월 22일이다.[13] 이 날은 조지원이 종신 집권을 그만둔 날이며 이시영은 부통령이자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이 되었다.[14] 조지원이 민국 50년(서력 1955년)에 대통령에서 물러나고 민국 55년(서력 1960년)에 사망했다.[15]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무료배식일 뿐, 굳이 빵이 싫다면 돈을 내고 식당에서 밥을 사먹을 수 있었다.[16] 물론 조지원에 대한 지지가 엄청나서 일부러 투표를 조작할 이유가 없기도 하지만, 보궐선거에서 독립당이 사실상 패배하여 개헌선을 놓치게 되자 야당에 표를 던진 젊은 층도 깜짝 놀라는 일이 있었던 걸 보면 좀 불리하다 싶어도 절대 투표 조작은 하지 않는다.[17] 이들은 비록 목숨은 건졌지만 토지는 압류당한데다가 자신의 사상적 기반이 모조리 짓밟혀지고 논어밟는 의식까지 해야 했기에 평생 폐인 신세가 될 것임이 암시된다.[18] 전함 공고, 콜로라도급 전함 개수형 이순신급 전함 등.[19] 300척을 넘게 보유하고 있다.[20] 한만전쟁에서는 한국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상비군 수 외의 모든 부분에서 우위였으며 만주는 수도와 대도시권이 국경 근처인 살인적인 전략적 열세가 있었다.[21] 만주를 포함하면 비슷하거나 더 앞서긴한다.[22] 판무관부의 목적은 세워진 곳마다 차이가 있다. 영구적인 식민지배를 위한 것과 영구적 보호를 위한 것, 독립 후 안정화를 시키는 것, 위임통치로 나누어진다.[23] 원 역사의 일본군과의 차이점이라면 일본군 병사들의 비행과 방종을 수뇌부에서 사실상 내버려둔 수준이었다면 폭통의 국군의 경우 지도자의 체계적인 명령에 의해 수행된 조직적 제노사이드의 유형이라 나치 독일과 더 유사하다.[24] 조가은과의 대담에서 조지원이 딸의 원활한 집권을 위해 더 줄인다고 공언한 만큼, 결말 이후로는 훨씬 더 적어졌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