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아공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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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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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4. 실체
5. 대동아공영권에 관한 일본의 구체적 계획
5.1. 식민지
5.2. 괴뢰국 + 동맹국
6. 21세기의 대동아공영권
7. 평가
8. 대중 매체에서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대동아공영권.png

1940년대 일본 제국의 최대 판도[1][2][3]
본토 | 괴뢰국 및 점령지 | 동맹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nchukuo011.jpg

일화만협조 천하태평(日華滿協助 天下太平) 프로파간다 포스터
일본(日), 중화(華), 만주(滿)가 화합하여 서로 도우면 온 땅이 크게 평안해진다.[4][5]
대동아공영권((ダイ(トウ((キョウ(エイ(ケン[6] /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은 대동아의 사람들이 동으로 번하는 역이라는 뜻으로, 일본 제국의 영토 확장 정책이자 프로파간다 구호이다. '아시아 민족이 서양 세력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려면 일본을 중심으로 대동아공영권을 결성하여 서양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며 1940년 8월 1일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 외상의 담화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메이지 유신부터 시작한 일본 제국의 근대 사상의 헤게모니아시아주의로 시작하여 대동아공영권으로 종결되었다. 자원 부족과 경제 제재에 시달리던 일본 제국이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고 더 거대한 블록 경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시작한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대동아공영권이 사용되었다.


2. 상세[편집]


일본 제국은 많은 식민지를 만들어 자원을 확보하고 블록 경제 체제를 구축하고 싶었지만, 기존 열강은 후발주자인 일본 제국을 경제 제재, 주요 자원 수출 금지, 군축 조약 등으로 견제하였고,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제국은 많은 불만이 쌓였다. 결국 비슷한 처지였던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고 본격적인 대규모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나 사회주의 소련의 위협과 대독일주의에 의거해 팽창명분을 만들었던 독일이나 불만족스러운 전후처리에 대한 앙심과 로마 제국의 영광회복을 기치로 내세운 이탈리아에 비해 일본이 가지고 있던 제국주의 이권수호 등의 명분으로는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만주국의 오족협화이념이며 중일전쟁 중의 동아신질서론이고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된 것이 대동아공영권이다. 표면적인 내용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일본을 중심으로 서구 열강을 몰아내고 번영평화를 누리자"라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일본 제국의 팽창주의와 생존권 관념을 보여준다.

몇몇 일본 극우들은 종종 기존 열강에 맞서 아시아·태평양을 해방하기 위해 일본이 직접 영향력 행사를 했다고 미화한다. 일본이 정의로운 전쟁을 했으니 반성할 이유도 없고 사과할 이유가 없다는 식의 논리로도 이어진다. 이들이 위안부 문제난징 대학살을 부정하는 것도, 전쟁범죄를 인정하면 '정의로운 전쟁론'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자원이 적은 일본은 본인들의 경제 블록을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기존 열강의 수탈에 지친 아시아·태평양의 국가들을 해방시킨다는 명목 하에 다른 국가의 식민지를 강탈하는 명분으로 삼았다. 문제는 실제로 기존 열강에 수탈당하던 오세아니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에는 이런 명분이 겉보기에 모순이 없어 보일 수 있었으나, 일본이 강제 합병한 대한제국은 둘째치고, 중국에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소리였다. 물론 중국도 열강에 몇몇 땅과 이권을 떼어주기는 했으나, 중국 전체로 보면 정말 일부분이었고 당시 내전(태평천국운동~국공내전)으로 분열된 상태였기에 서구나 일본을 크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이 만주에 괴뢰국을 세우고 해안가 도시들을 대거 점령하여 대규모로 중국을 침략했고, 이는 중국이 일시적으로 내전을 멈추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일본은 중국 동부 지역의 상당부를 쉽게 점령했으나, 태평양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많은 병력을 중국에 묶어둔 채로 패전을 맞이했고, 중화민국은 그 공로로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근대 시기 한중일에서 아시아주의라는 사상이 유행했다. 사실 대동아공영권은 아시아주의가 변화된 것에 가깝다. 물론 아시아주의라는 건 명확한 체계가 있던 사상은 아니었지만, 아시아가 힘을 합쳐 번영해야 한다는 기조는 일맥상통했다. 안중근, 신해혁명쑨원, 후쿠자와 유키치[7], 김옥균[8] 등이 아시아주의자였다.


3. 제국주의[편집]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말은 1940년 7월, 일본이 국책요강으로 '대동아 신질서 건설'을 내세우면서 처음 나왔다.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직후인 1941년 12월 10일에는 이 전쟁을 "대동아 전쟁"으로 부르기로 결정했고, 같은 달 12일에는 전쟁 목적이 '대동아 신질서 건설'에 있다고 주장했다.

제국주의 시대의 일반적인 식민 통치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대표적으로 영국인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시기에 현지의 지배 계층 및 지식인들을 적극적으로 영국에 유학 시켜주면서 정신적으로 회유하던 것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이 대동아공영권은 실제 여타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 통치 정책과 그 정의가 조금 다르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 통치 정책이 더욱 원활한 식민 통치에 목적을 둔다면, 대동아공영권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식민지들의 독립이 점차 늘어나자 일본이 식민지의 통치권을 지키려고 주장한 개념이다.

실제로 이런 식민 정책은 유화적인 식민 통치 정책의 일환으로서, 식민지의 탄압을 줄여나가면서 하는 통치권의 유지가 매우 핵심적인 전략이었다. 하지만 정작 일본은 이 당시 겉으로는 유화 정책을 펴면서 뒤로는 물자 수탈 및 독립운동가 탄압이라는 통치 기조를 유지했다.

이 개념이 등장하기 바로 직전에 일본은 비슷하게 식민지인과 일본인의 단합을 호소하기 위한 비슷한 개념 또는 표어를 주창했는데, 1930년대 설립된 협화회를 비롯한 관제 단체들에서 주창한 오족협화(五族協和)라는 통치 이념도 비슷하다. 이 표어는 중화민국에서 주창한 오족공화(五族共和)의 일제 버전으로 일본인만주인, 몽골인, 중국인, 조선인 다섯 민족이 힘을 모아 왕도낙토라는 지상락원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이 말을 실제로 철석같이 믿은 사람이 바로 이시와라 간지다. 이 양반은 오족협화를 이룩하기 위해 만주에 "오족협화의 지상낙원"을 만들고자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온 나라가 바로 만주국이다.

하지만 대동아공영권이든 오족협화든 이러한 식민 지배 이념들은 큰 파급효과가 없었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겪던 조선과 난징 대학살 등 일제의 전쟁범죄를 겪던 중국으로 대표되는 주변국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구호들이 사기와 기만일 뿐이었다.


4. 실체[편집]



파일:wwii greater east asia confedence.jpg
1943년 11월 5, 6일 일본에서 열린 대동아회의에 참여한 각국 정상들

대동아공영권 참가국[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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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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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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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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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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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강연합자치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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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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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징웨이 정권|
파일:왕징웨이 정권 국기.svg
왕징웨이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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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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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국|

버마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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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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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제2공화국|

필리핀 제2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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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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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인도 임시정부|

자유 인도 임시정부
일본은 마치 G7 회담처럼 "대동아회의"라는 이름으로 '대동아공영권'의 국가들의 정상을 모아서 회의를 했다. 여기에서는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아시아를 귀축영미로부터 해방시키자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이 자리에 참석한 정상들은 개최국인 일본과 그 동맹국인 태국을 제외하면 전부 일본 점령 하에서 설치된 괴뢰정부의 수괴들이었으며, 태국은 "대동아회의에 참석하는 국가들과는 다른 상황이다" 즉 이런 괴뢰정부들과 같은 격에 놓일 수 없다는 국격을 고려하여 총리가 아닌 외무장관을 보내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해방자"를 자처한 일본군이 대동아공영권 점령지에서 한 짓은 상상을 초월한다. 식민지 조선과 중국 뿐 아니라, 동남아와 태평양 군도에서도 잦은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일단 대동아공영권의 명목상 개념부터 진심과는 거리가 멀었고, 말과 행동이 정반대였으니 대동아공영권의 지배 아래 있는 나라의 국민 가운데 일본군을 진심으로 해방군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일본 정부일본군의 실제 의도와 달리 이를 철석같이 믿고 구호에 맞게 행동했던 일본인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은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도 동남아 국가들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일본이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서구 열강의 군대를 상대로 승승장구하던 전쟁 초기에는 동남아시아 식민지의 민중들도 일본군을 환영했지만 곧 일제의 본색을 깨달았다.[10]

얼마 못 가서 본색이 드러난 일본군이 마구잡이로 약탈을 일으키자, 식민지인들은 도리어 연합국 측에 협력해 일본군과 싸웠는데 대표적으로 필리핀이 그러했다.

한편 이 개념에 편승해 자국을 독립시키려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찬드라 보스와 같은 인도의 독립운동가는 일본군에 협력해 인도 국민군을 결성했고, 일본군과 함께 영국으로부터 조국 인도를 해방하고자 했다. 당연히 일본은 정말로 대동아공영권을 이루려고 하지 않았으며, 찬드라도 정말로 일본군이 해방군임을 믿지 않았다.

서로 이용하는 관계라고 하지만, 당시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였던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 솔깃할 이야기라서 독립운동가이자 인도네시아 공화국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도 인도네시아를 네덜란드로부터 해방해주겠다는 일본의 약속을 믿고 자국의 지하 자원을 일본에 공여하거나, 인도네시아 청년들을 징병하여 일본군을 도왔다.

역시 얼마 못 가 해방군은커녕 네덜란드와 자리만 바꿔 인도네시아를 지배하려고 했던 일본의 야욕이 드러났기에 인도네시아에서도 반감이 심했지만 인도네시아인들이 거국적으로 들고 일어나기도 전에 일본이 패망했다.

종전 뒤, 몇몇 조선인을 포함한 일본군 육군 장병들이 일본으로 귀국하기를 거부하고 현지 독립운동가들과 합류해서 다시 돌아온 네덜란드에 항거하였는데, 이들은 인도네시아 국립 묘지에 안장하고 국가유공자로 추대하는 등 인도네시아 국민들에게 평판이 좋다.

만일 일본이 정말 일본 극우들의 주장처럼 조선인들을 형제처럼 대우했거나, 진정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해방시키고 친구가 될 생각으로 움직였다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수탈하지도 않았고 중일전쟁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침략의 의도가 뻔한 상황에서 표면적인 명분으로 내세운 기만 구호에 불과했다.


5. 대동아공영권에 관한 일본의 구체적 계획[편집]


1941년 12월, 도조 히데키의 명령으로 일본 육군성해군성<대동아공영권에서의 토지 처분안(大東亞共榮圈における土地処分案)>이라는 문서를 작성했다. 이 문서에는 대동아공영권의 범위가 중국, 동남아뿐 아니라 북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까지 확장되었다. 지배 영역은 각지의 총독부괴뢰국으로 분류하여 계획은 아주 구체적으로 세워 놓았다. 물론 실제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은 연합군에게 개박살이 나지만 말이다.

파일:external/fc02.deviantart.net/greater_east_asian_sphere_by_morganhauser_2010-d344vq1.jpg

해당 문서에 나오는 대동아공영권의 범위.

회색 부분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실제로 점령한 영토이며 다만 태국의 경우 일본의 영토나 점령지가 아니었다. 도저히 아시아라고 보기 어려운 지역까지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것만 보아도 대동아공영권은 유명무실한 구호일 뿐 실제로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도에 미국 일부는 물론이고 쿠바까지 있으니...

아래쪽에 잘린 부분은 남극이다. 저 지도에 나오는 일제의 아시아 대륙 서쪽 끝 경계를 보면 알 수 있듯, 2차 대전 당시 일제는 나치 독일과 함께 세계정복을 완료한 다음, 동경 70도선을 경계로 "국경"을 정하려고 했다.[11] 분할한 뒤에는 패배시킨 유럽 국가들과 1960년대에 결전을 벌인다는 구상도 있었다.

훗날 추축국의 말로를 보면 과유불급이 따로 없다. 동아시아는 둘째 치고, 당시에 대영제국, 스페인 제국, 포르투갈 제국, 프랑스 식민제국 등 무수한 제국들이 건재했는데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싶다. 사실 영토 문제는 차치하고 볼 때 당시 일본의 국력 자체는 인구 수와 점령지의 징집 인원까지 포함하면 영국이나 프랑스에도 꿀리지 않아 해볼만 하긴 했다. 게다가 저 문서가 작성되던 시기에는 프랑스 본토는 나치에게 작살났고 영국은 나치를 방어하느라 정신없었으니... 일본 입장에서는 다른 제국들이 정신없는 틈에 이 기세대로만 한다면 된다고 판단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영국과 프랑스가 그렇다고 해서 미국까지 똑같이 취급하고 싸움을 걸고... 결과는 완전히 개박살이 났다.

5.1. 식민지[편집]


  • 조선 총독부: 한반도 및 부속도서
  • 대만 총독부: 원래의 대만 총독부 + 홍콩, 마카오, 하이난, 필리핀
  • 남양청: 위임통치령인 남양 군도 +
  • 남태평양 총독부: 뉴기니, 솔로몬 제도, 누벨칼레도니, 피지 등의 남태평양 제도
  • 동태평양 총독부: 하와이, 사모아, 통가 등의 태평양 제도.[12]
  • 오스트레일리아 총독부: 호주
  • 뉴질랜드 총독부: 뉴질랜드[13]
  • 실론 총독부: 스리랑카 + 인도 남부[14]
  • 알래스카 총독부: 알래스카부터 캐나다 서부를 거쳐 미국 워싱턴 주까지
  • 중앙아메리카 총독부: 과테말라에서 베네수엘라까지 + 카리브해[15]


5.2. 괴뢰국 + 동맹국[편집]


괴뢰국들은 대동아회의에 편입할 구상이었다.

위의 아메리카 지역 총독부 구상에서는 일본이 나치 독일과 함께 북아메리카 침공을 하여 성공할 경우, 태평양 해안의 주들을 괴뢰국으로 편입하는 방안도 검토되었다. 미드 높은 성의 사나이가 이 구상이 실제가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내용을 다룬다.


6. 21세기의 대동아공영권[편집]


2013년 아베 신조 제2차 내각이 등장하면서 일본 우익들을 중심으로 "대동아공영권은 정당했다!"라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다만 2015년에 들어서 이러한 주장은 다시 잘 들리지 않게 되어갔다. 2015년의 아베 신조 내각은 중국의 견제에 온 힘을 쏟기 때문에 대중국 외교의 동맹국인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이 일본의 견제에도 점점 성장하니 앞으로도 주창할 일이 별로 많아질 것 같지는 않다. 중국은 일본의 극우적 시각에 치를 떠는 나라이니 중국의 성장은 일본 극우들에게 결코 좋을 일이 아니고, 앞으로도 일본은 국력이 점점 커지기만 하는 중국의 난징 대학살을 비롯한 태평양 전쟁 관련 태클을 수시로 감당하느라 정신 없어질 확률이 높다.

다만 일본 정부에서 카미카제 특공대원들의 유서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재점화했다. 일본 정부 차원에서는 "내일은 목숨이 없다"는 대원들의 절박함이 담긴 유서가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등재를 신청했다고 하지만 옥쇄라는 키워드가 늘 따라다니는 대동아공영권을 생각하면 핑계일 뿐이다. 그리고 아직 과거 청산이 되지 않아 일제와 관련한 극우적 발언이 아시아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인 판에, 일본의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카미카제를 골라서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함은 과거 청산을 요구하는 주변국에 대해 맞불 놓을 심산으로 한 자충수일 뿐이다. #

결국 자살 특공대원들의 유서는 심사에서 탈락했다. # 그러나 논란이 사그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베 신조 총리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나는 2년 안에 모든 기득권을 박살내겠다."는 발언까지 해가며 공격적인 태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2010년대 일본의 외교적인 돌발 행동들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물론 버블경제 전성기 시대도 아닌 황혼기의 일본이 단독으로 세계의 기득권을 박살 낼 가능성은 없을 뿐더러 중국이 일본의 이런 의지와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요원한 일일 뿐이다. 특히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태평양 전쟁기에 일본의 적이었다는 점이다. 다른 점은 몰라도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만큼은 미국이 가만 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다 몇 해 지나고 나서는 역시 일본이 피해국이라고 주장하는 시베리아 포로들의 수기 등을 세계기록유산 후보에 올렸으나 이마저도 결국 탈락했다.

7. 평가[편집]


대동아공영권의 경제적 본질은 전시국가독점자본의 폭력적인 블록 경제체제였다.

— 권오신, 「태평양전쟁기 일본의 필리핀 점령과 지배: "대동아공영권"의 그림자」, 『아시아연구』, 제9권, 제2호, 2006, pp.67-102, p.86.


8. 대중 매체에서[편집]


  • 1940년에는 새로 획득한 영토를 각인시키기 위해 일본 제국에서 대동아라는 이름의 보드 게임을 만들었다.


  •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는 네아 소 코프로스(신대동아공영권)이라 하여 동북아시아가 속해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원래 역사와 달리 한국에서 시작되어 수도는 네오 서울(새서울)이라고 하며 군대의 규모가 200만 명 정도. 지도자 명칭은 '주체'라고 하고 전세계가 천재지변 방사능 오염과 해수면 상승 등 문제를 겪고 있지만 연방의 경우 괜찮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디스토피아 세계인 초거대 기업국가로 나온다.

  • 미드 높은 성의 사나이에선 미 서부에 수립된 '태평양 합중국(Pacific States)'이란 국가가 등장하는데, 겉으로는 독립국이지만 실제로는 일본이 통치권을 행사하는 사실상의 식민지이다. 이 외에도 아마존 지역까지 진출해서 밀림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 유로파4의 일본 계열의 국가의 미션이 대동아공영권과 비슷하다.

  • Hearts of Iron IV에선 파시스트 일본이 동일한 이름으로 중점을 타면, 자체 세력을 만들어 추축국과는 별개의 세력이 형성된다. 이는 유럽 전선과 아시아 전선의 종전을 별개로 끝내기 위한 조치인데 게임 시스템상 세력 소속 국가는 자신이 항복해도 동 세력에 강대국이 하나라도 항복하지 않았다면 종전 판정도 나지 않고 항복국도 전쟁에 직/간접적 관여를 할 수 있는데 일본은 다른 추축국 멤버들과 달리 동아시아 국가이기에 이런 식으로 구현된 것이여, 같은 이유로 연합국도 서부전선/중일전쟁 및 태평양 전쟁/독소전쟁을 분리하기 위해 연합국/국공합작/코민테른으로 나뉘어졌다. 그래서 추축국과 전쟁을 벌이면 독일과 이탈리아만, 대동아공영권은 일본만 잡으면 전쟁이 끝난다. 어쩌다가 독일등의 추축국 국가들이 네덜란드를 정복하면서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손에 넣으면 일본은 남방을 위해 그곳을 공격하기 때문에 추축vs대동아공영권이라는 기상천외한 매치가 성사되기도 한다. 멀티 게임시 세력을 고정하는 규칙이 없다면 땅 욕심 부리는 중공이나 군벌이 대동아공영권에 가입해 중화민국을 통수치기도 한다.




9.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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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대만은 외지(外地: 식민지)로서 괴뢰국이나 점령지와 달리 일본 제국의 영토에 속했기 때문에(한일합병) 붉은색으로 되어 있다. 또한 태국은 일본에 부역한 것이기 때문에 점령지라 볼 수 없었다.[2] 위 지도에 나타난 것보다 양쯔강산시성 쪽의 중국 내륙으로 더 진출했었다.[3] 지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전쟁 전부터 남양군도를 영유하고 있었고 알래스카알류샨 열도의 일부 섬들도 점령했었다.[4] 왼쪽부터 만주, 일본, 중화를 나타낸 선전 포스터이다. 조선, 대만이 없는 이유는 이미 한일합병으로 일본제국이 되었기 때문. 자세한 내용은 내선일체 참조[5] 오른쪽 중국인이 청천백일만지홍기 대신 북양정부 시절의 오색기를 들고 있는데, 이는 왕징웨이 정권 이전까지 일본 점령하의 중국 지역에서 청천백일만지홍기의 사용이 사실상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왕징웨이가 괴뢰 정부를 맡은 이후에 그들의 국기로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마저도 깃발 위쪽의 노란색 삼각형을 붙여서 게양해야 했다.[6] 구자체역사적 가나 표기법에 따른 표기 방식이다. 신자체와 현대 가나 표기법으로는 (だい(とう((きょう(えい(けん.[7] 다만 후쿠자와 유키치는 한국과 중국의 처참한 근대화 실태를 보고서는, '아시아의 악우(惡友)들과는 연을 끊어야 그들의 나쁜 평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며 탈아론(脫亞論: 탈아입구(入歐)는 후대에 왜곡된 것이다.)으로 전향했다.[8] 후쿠자와 유키치가 김옥균을 위시한 개화파를 지원했다.[9] 일본과 태국이 주축이었기에 볼드체로 표시.[10] 이미 프랑스 유학 시절 조선인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한 바 있는 호치민은 일제의 실체를 알았다. 그래서 베트남인들이 일본군을 환영하자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조선인들이 행복해 보이던가?" 라고 일갈했다. 결국 베트남은 일본의 통치를 받는 동안 100만 명 이상이 아사하거나 학살당했다.[11] https://ko.m.wikipedia.org/wiki/추축국의_아시아_분단_협상[12]하와이 왕국만주국을 모델로 해 재건하는 것도 검토되었다. (가라후토청을 모델로 한) 하와이의 순조로운 편입은 1920년 기준 하와이 인구의 약 43%(약 16만 명)를 차지하는 지역 일본인 공동체의 영향력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하와이는 식량 공급을 자급자족할 것이었고, 설탕과 파인애플을 재배하는 하와이의 5대 사탕수수 기업은 해체될 예정이었다. 하와이가 일본에 합병될지, 꼭두각시 왕정이 설립될지,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패가 될지 논의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13] 호주와 뉴질랜드는 일본 이주민을 2백만 명까지 수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호주를 일본에 합병하는 것이 아닌 미얀마, 필리핀과 같은 위성국으로 두어 상호 평화를 추구했다는 증거도 있다.[14] 고아 주벵골 만을 잇는 선 이남[15] 멕시코의 1942년 5월 22일, 페루의 1944년 2월 12일, 칠레의 (나치 독일이 거의 전쟁에서 져 갈 무렵의)1945년 5월 11일의 대일 선전포고는 서반구의 태평양 연안에 있는 세 환태평양 국가들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모두 일본과 적대 관계에 놓이도록 했다. 일본의 손에 들어갈 영국과 프랑스 소유지들의 미래는 승리한 추축국 나치 독일과의 협상에 놓일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