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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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蓋人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중국 남북조시대 양(梁) 무제(武帝) 시기의 반역자로 북서주(北徐州) 제음군(濟陰郡) 수릉현(睢陵縣) 사람이다.

2. 생애[편집]


진백지(陳伯之)와 동향(同鄕) 출신으로 진백지가 조정에 반기를 들었을 때 그에게 호응하여 반역한 것으로 보이며 후에 소연(蕭衍)이 강주자사(江州刺史) 왕무(王茂)[1]에게 진백지를 토벌하게 하자 진백지는 먼저 예장태수(豫章太守) 정백륜(鄭伯倫)[2]을 평정하여 군사를 재정비한 뒤 왕무를 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진백지는 정백륜을 토벌하러 가는 과정에서 수양성(壽陽城)을 당개인에게 지키도록 하였고 본인은 군사를 인솔해 정백륜을 공격했다. 그러나 진백지의 예상과는 다르게 예장의 군사들은 생각보다 오랜 기간을 버텨냈고 그 사이 왕무의 군사가 도착하게 되면서 일은 수포로 돌아갔다. 예장의 군사들은 조정의 군사와 합세해 진백지를 막아냈고 앞뒤로 공격받은 진백지는 마침내 패주했다. 진백지는 진호아(陳虎牙)와 함께 위로 달아났고 당개인도 이 과정에서 위로 달아난 것으로 보이지만 기록이 남지 않아 사실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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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래 강주자사의 지위는 진백지가 가지고 있었으며 소연에게 불만을 품은 진백지가 자신의 심복들을 각지의 태수(太守)와 자사(刺史)로 명하여 군사를 인솔해 난을 일으키니 조정에서 진백지를 강주자사에서 해임하고 건국에 공이 많았던 왕무를 강주자사로 임명한 것이다.[2] 그와 동시에 정원충(程元沖)은 본래 장사(長史)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과 뜻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장사에서 파면되었다. 이에 진백지에게 앙심을 품은 정원충은 무리 수백을 거느리고 진백지가 방심한 틈을 타서 진백지를 공격했는데 오히려 패퇴하여 여산(廬山)으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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