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미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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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1992년 시한부 종말론 휴거 소동
3. 휴거 소동 이후
4. 부활?
5. 기타


1. 개요[편집]


1990년대 세기말을 틈타 이장림 목사(1948년생)[1] 중심으로 생긴 유사 개신교 계열의 사이비 종교. 후술할 1992년 10월 28일 휴거가 일어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당시 한국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이장림 목사는 원래 기독교 서적을 전문적으로 번역/출간하는 생명의말씀사의 번역가였다.[2] 사건 이후에는 이름을 "~답게 살자"고 해서 "이답게"로 바꿨다고 한다. 80년대 후반에 출판한 이장림의 저서 "가올 래를 준비하라"에서 따 와서 다미선교회라는 이름을 지었다.

새하늘교회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2. 1992년 시한부 종말론 휴거 소동[편집]


이 종교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휴거 떡밥이다. 1990년대에는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으로 흉흉했던 세기말 분위기와 맞물려 종말론을 내세우는 신흥종교들이 많이 탄생했다. 다미선교회는 종말론자 이장림 목사가 주도하여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요한묵시록을 근거로 해서 24시에 휴거가 일어난다는 주장으로 신자들을 모았다. 그런데 성경만 봐도 복음서에서 그 날은 천사도 모르고 오직 하느님만이 아시며 예상치 못한 때에 갑자기 온다고 했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갔다. 애시당초 성경의 이야기를 종교적 관점이 아닌 실제 예언서로 믿어버린데서 오는 비극이기도 하다.

이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80년대 후반부터로, 이때부터 명동이나 서울역 등 주요거리에서 길거리 전도를 했다고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회 이슈가 된 것은 1990~1991년 즈음부터였다. 시한부 종말론을 다룬 종교서적들이 서점에 다수 등장한 데다[4] 1991년에 KBS 사랑방 중계, 뉴스비전 동서남북, MBC PD수첩[5] 등이 다미선교회와 시한부 종말론에 대해 다루면서 이들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방송에서 다미선교회를 딱히 긍정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었지만, 다미선교회에서는 이를 오히려 포교의 기회로 삼아 상당수 신도들을 낚았다.

월 최저임금이 20만 원 수준에 대졸 신입사원 초봉이 50만 원, 도시민 4인 가족 평균 생활비가 월 100만 원 안팎이었던 시대에 뜯은 액수가 몇백 몇천도 아니고 무려 34억이니[6] 얼마나 많이 낚였는지 알 만하다. 신도 중 4명이 총합 6억 5천만 원을 냈고, 1천만 원 이상 헌납한 신도는 30여 명이었으며, 그 중 일부는 10월 28일까지 먹고 살 만한 돈만 남겨 놓고 전재산을 헌납했다고 한다.

이하는 이장림의 휴거드립으로 인해 일어난 피해를 조사하다가 밝혀진 사건들이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에서는 30대 주부가 아들을 데리고 경상남도에서 선교하겠다며 가출했다.
  • 부산직할시에서는 누군가가 부동산 1억 원어치를 매각해 다미선교회에 바쳤다.
  • 대구직할시의 어떤 사람은 전세금 700만 원을 교회에 내고 교회에서 살기도 했다.
  • 전라남도 강진군의 한 여고생은 부모가 다미선교회에 못 나가게 막자 음독 자살하고 말았다.
  •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에 살던 윤 모 씨는 대학생 아들 3명과 함께 모두 종말론에 빠져 가정이 파탄났다. 두 아들은 북한(!)과 외국에서 순교하겠다며 가출했다.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서는 신도 10여 명이 1991년 10월부터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기도원에서만 생활했는데 그 중에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 경상남도 마산시 합포구(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는 30대 여성이 '10월 28일 휴거를 앞두고 세상살이가 싫어졌다.'는 유서를 작성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어떤 주부는 자녀 3남매를 모두 데리고 가출해 휴거론을 주장하던 부천시의 모 교회에서 숙식하다가 교회 목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임신했다.
  • 휴거론을 주장하던 한 목사는 여중생, 여고생 신도를 대상으로 안수기도를 구실 삼아 성범죄를 저질렀다.
  • 임산부가 휴거되기 쉽게 몸이 가벼워지겠다며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낙태했다. 참고로 기독교에서는 낙태를 살인으로 본다![7]
  • 휴거를 앞두고 친척들과 다른 지인들에게 자신의 세간 살림을 나눠준 사람들도 있었다.[8]
  • 사표를 내고 교회로 가서 휴거를 기다린 회사원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은 휴거가 불발되자 사표를 낸 것을 후회하고 다시 직장을 구해야 했다.
  • 세상에 종말이 오고 구원을 받으리라는 생각으로 휴가에서 복귀하지 않고 그대로 숙소에서 뻗대다가 그대로 휴거가 불발되어 영창에 끌려간 군인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군인은 휴거를 믿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개쪽당하고 남은 군생활도 순탄치 못했을 것이다.
  • PD수첩에 나온 사례로, 어떤 고등학생이 책을 보고 휴거론에 빠져 학교를 빼먹고 교회로 가는 지경이 되자 부모가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켰다.[9] 그러다가 교회의 도움으로 용케 탈출한 뒤[10], 북한에서 순교하려고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수사 당국에서 휴거 사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게 된 이유가 이 고교생의 아버지가 휴거에 빠진 아들을 찾아 달라며[11] 지역 신문에 게재했던 탄원서였다. 비슷한 이유로 어떤 여고생도 정신병원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가출한 다음 제주도에서 숙식했는데, 발각되었을 때 찬송가를 부르면서 피아노를 치는 채로 방송에 나왔다.[12] 참고로 둘 다 방송에 나올 때 모자이크가 없었다. 한 명은 다시 출연했을 때 모자이크되었지만.[13]

하도 종말론이 유행했다 보니, 딱히 다미선교회와는 상관없는 다른 평범한 개신교 교회들도 휴거 책자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분위기가 상당히 어수선해졌다. 심지어 당시 이단상담 전문가의 딸까지 종말론에 낚였을 정도로 크게 성행했다. 당시 한국기독교 이단상담소장이었던 진용식 목사가 KBS 모던코리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진 목사가 사역하던 교회에서는 신도들에게 꾸준히 관련 강의를 하면서 주의를 환기시켜 왔기 때문에 교회 신도들 중에는 다미선교회와 종말론에 빠진 사람이 없었는데, 정작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진 목사의 딸이 다미선교회 추종자였던 담임교사의 영향을 받아 종말론에 빠진 아이러니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14] 그리고 다미선교회 안에서도 정확한 휴거의 때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10월 28일은 맞는데 정확히 몇 시냐는 것. 28일이라면 한낮인가 자정 직전인가, 한국시간인가 GMT인가를 놓고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다 결국 자정까지 기다리기로 합의를 본 모양이다.

또 휴거 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로도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간이야 한국 시간대에 맞춘다 쳐도 휴거 때 과연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만약 휴거가 되면 의복이나 소지품 등은 다 어떻게 되는가 등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는데, 이장림 목사는 이 문제에 대해 "휴거 때는 지붕과 벽 등에 부딪히지 않으며[15] 물질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인공적인 것들은 모두 지상에 두고 간다[16]"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대망의 1992년 10월 28일. TV 방송국과 외신 기자들까지 취재에 나서 그날 밤 마감뉴스를 통해(KBS 보도본부 24시, MBC 마감뉴스, SBS 마감뉴스) 생방송으로 휴거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촬영하고 있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찰이 출동했고 많은 사람들이 방송을 지켜보았으며, 다미선교회와 종말론을 추종하던 교회들의 신도들은 일명 '승천복'이라는 흰색 옷을 입고[17], 열광적으로 찬송가를 부르며 예배했다. 물론 다미선교회 밖은 가족과 친구, 애인 등을 찾으러 온 사람들과 기자들, 호기심에 몰려든 구경꾼들이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루는 등 어수선했다. 도중에 교회 밖에 설치된 TV 수상기가 한 군중에 의해 부서지면서 그 소리가 휴거의 징조라고 떠드는가 하면[18] 애인을 찾으러 온 사람이 옷을 벗어던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자정이 가까워지자, 신도들은 마치 제야의 종 행사라도 하는 것처럼 일제히 카운트다운을 시작했고 마침내 28일 자정이 되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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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뉴스 아나운서의 멘션 中

휴거 같은 건 당연히 오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고 세상은 그대로였으며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19]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신도들은 그냥 멍하니 있는 등 정적에 빠졌고, 몇몇 신도들은 '에러가 났다'며 흥분하거나, 나방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누가 "나방이 휴거가 되었다!"고 소리쳐서 나방이 있던 곳으로 몰려들어 좀비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등 해프닝이 있었지만, 다행히 큰 일은 없었다. 이때 몇몇 신도들은 "형제 여러분! 우리나라 시간이 아니라 예루살렘 시간으로 자정입니다!"[20]라면서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아래의 크랩 영상 후반부에도 나오듯,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던 다미선교회 기도원은 말할 것도 없고, 종말론을 추종하던 다른 교회들에서도 속았다는 사실에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신도들이 난장판을 벌였는데, 휴거의 순간을 기다리며 읽고 있던 성경책을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가 하면, 기물을 때려부수고 "책임자 나오라"고 소리지르는 등 난리가 났다. 예배당 밖에서도 분노한 신도들과 가족들이 앞다투어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면서 서로 뒤엉켜 난리가 났다. 일부 목사들은 난리통 속에 슬그머니 도망치거나, 심지어 분노한 신도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기꾼이라 욕을 먹고 두들겨 맞으면서 목사관으로 피신하는 등의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예배당 안에 모여있던 신도들 역시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이면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그렇게 별 일 없이 평온하게 다음 날이 되었고,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휴거론은 만인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당시 이를 취재했던 한 기자는 "이들은 하늘나라가 아닌 집으로 돌아갔으며…"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그리고 휴거 소동 다음날 MBC 뉴스데스크의 첫 앵커 멘트는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였고 KBS 9시 뉴스의 앵커 멘트도 비슷하게 "휴거의 기적을 기다렸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였다. 또 당시 조선일보의 사회면 기사 첫 구절은 이보다 더 심플한 '휴거는 없었다.'였으며 SBS의 카메라에는 한 신도의 어머니가 "목사 말 들어서 너 휴거 잘 됐어?"라면서 아들에게 분노의 등짝스매싱을 날리는 모습이 포착되는가 하면, 일설에 따르면 당시 한 외국 뉴스 앵커가 "서울의 유명한 교통체증으로 예수님이 늦어지신다"는 드립을 쳤다고도 한다(…).

휴거가 올 것이라고 믿었던 신도들은 허탈감과 후유증만 남긴 채 대다수가 일상생활로 복귀했고, 망신을 당해 야반도주하다시피 이사를 간 가정도 많았다. 다미선교회를 따라 휴거론을 추종하던 많은 교회들도 비웃음거리로 전락하며 문을 닫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했다. 그나마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이나 인민사원 집단자살 사건처럼 신도들이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거나 하는 최악의 사태까지는 벌어지지 않았고, 이 정도에서 그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다만, 외신을 포함한 언론에 박제되어서 망신살이 찍히며 살아가야 하기에, 어떻게 보면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일지도 모른다

한편, 당시 구속 중이었던 이장림 목사는 수감된 상태로 휴거 날짜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교도관의 증언에 따르면, 휴거가 불발되었을 경우, 자해 등의 돌발행동을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4시간 체제로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교도관의 우려가 무색하게 저녁식사 후 평소처럼 감방 안에서 성경을 읽다가 휴거를 1시간 앞둔 밤 11시에 잠이 들었다고 한다(…). 구속되지 않았으면 분노한 신도들에게 물리적으로 휴거 당했을지도 모른다


KBS 공식계정 크랩(KLAB)의 휴거 소동 요약 영상. 해당 영상의 댓글창에서 다음과 같은 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사실 휴거는 있었다

다만 휴거 대상이 사람이 아닐 뿐

신도들의 옷, 돈, 가정 등이 휴거되었다


3. 휴거 소동 이후[편집]


휴거 소동이 끝난 뒤, 다미선교회는 동년 11월 2일 휴거 소동 사과문을 발표하고, 신도들의 헌금반환 신청을 11월 10일까지 받기로 하면서 해체되었다. 해산 당시 신도 수는 약 8천 명 정도였고, 보관한 헌금 액수가 25억 원이나 되었다고 한다.

한 가지 웃긴 것이라면, 막상 이장림은 1993년에 만기되는 환매조건부채권을 구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21] 1992년에 휴거 나서 하늘나라로 올라간다면서 왜 그랬는지(…).[22] 이 때문에 검찰은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휴거 날짜 1달 전인 9월 24일에 이장림을 사기 혐의로 구속했고, 수표 1억 9,300만 원, 환매채 3억 원, 2만 6,700달러를 압수하였다. 법원은 1992년 12월 이장림에게 사기죄로 징역 2년을 선고하였으며, 이장림이 항소하자 2심에선 징역 1년과 2만 6천 달러 몰수형으로 바꾸었다.

끝으로 이장림은 1992년 휴거가 일어나지 않자, "여러분, 휴거는 불발했습니다."(…)라는 희대의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그리고 다미선교회 신자들은 일반 교회로 흩어졌으나,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다미선교회 건물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등 상당 기간 방황하였다. MBC 뉴스에서는 1992년 11월 26일자로 "구 다미선교회 신자들이 다시 모여 예배를 드린다"는 사실을 짧게 보도하였다. 당시 보도 내용

이장림은 1년 형기를 채우고 1993년 12월 출소하였다. 사건 이후에는 "시한부종말론은 잘못된 것이며 종말의 때를 알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뒤로는 또 '레머 선교회'라는 걸 세우고 여전히 종말론을 주장하기 때문에 이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2012년 종말 떡밥도 돌았지만, 당연히 이것도 불발되었다. 그러나 1992년에 있었던 소동은 2012년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휴거 소동이 일어난 지 31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지구는 잘 돌아가고 있다.

당시 뉴스에 등장했던 다미선교회 서울본부 건물은 이후 네비게이션 회사 "하이온콥"이 별관으로 사용하였다. 하이온콥이 2008년 부도 처리되자, 사건 이후에는 환경단체들이 '숲 센터'로 공유하여 사용 중이다.
파일:다미선교회_위치_2020년_2.png
파일:다미선교회_위치_1992년.png
2020년 성산동 숲 센터(前 다미선교회) 위치[23]
1992년 당시 성산동 다미선교회
다미선교회 시절에는 딱 1990년대스러운 짙은 갈색 벽돌 건물이었지만, 사건 이후에는 건물 외장을 밝은 색으로 개장하여 인상이 많이 다르다. 휴거소동 당시 임시 예배소를 설치했던 앞 주차장 역시 아직도 있다.

2012년에 휴거 소동 주역들(?)의 근황이 공개되었다. 장만호를 제외하면, 종말신앙론은 접은 걸로 보인다고. 그리고 장만호의 예언이 하나도 맞지 않은 것은 덤.


4. 부활?[편집]


베리칩 음모론과 임박한 휴거를 주장하는 다음 카페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이 다미선교회의 실질적인 후신이라는 의혹이 있다. 고문으로 있는 조호남 목사는 1992년 당시 다미선교회의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다 노회에서 면직당한 사람이고(해당 기사) 장죠셉 목사는 다미선교회 미주 지부장이며, 휴거 디데이 당시 본부 집회를 인도했던 장만호 본인이다(…). 바코드가 베리칩으로 바뀌고, 휴거 일자를 특정하지 않았을 뿐이지 동일한 패턴을 답습하고 있다.[24][25]

그러나 나는 신이다 등의 이단, 사이비 종교를 비판하는 프로그램 등으로 등을 돌린 사람들이 많아, 얘네가 또 휴거 드립을 쳐도 안 믿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5. 기타[편집]


사실 처음 휴거가 1992년 10월 28일에 일어난다고 말한 것은 다미선교회 소속의 고등학생 신자였던 하방익[26]이었다. 이고깽이냐 당시 다미선교회는 청소년들의 순수함을 이용하여 하방익과 권미나[27] 등 여러 고등학생들을 거짓 예언자로 활용했다. 그러나 이장림 본인이 10월 28일설을 얘기한 적이 없다는 것은 거짓으로, 본인이 "10월 28일만을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은 1초도 어기지 않으신다" 등의 말을 하는 설교 영상이 남아 있다.

하방익은 휴거 사태 이후 다미선교회를 떠나서 정식으로 신학교육을 받아 개신교 목사가 되었다. 훗날 종말론에 대하여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철없던 시절 넘어가서 사이비 종교 홍보를 했다"고 후회한다는 인터뷰를 하였다. 하방익은 종말론과 이단 문제를 계속 비판하면서 기성 개신교계에 자정을 촉구하고 있다.“일 지진은 재해, 내년 종말은 없다” 권미나도 종말론을 버리고 일반 장로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2011년에 이장림은 이그노벨상 수학상 부문 공동수상의 영예(…)를 얻었는데, 타이틀은 '세계 종말 시기를 주장한 사람들'이었다.수상 이유는 '수학적 추정을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세계에 알린 공로'라고(…).

당시 한국 기독교단들은 휴거 소동을 벌이기 전부터 다미선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하지만 이쪽은 신천지와 달리, 기성교단과 명확하게 갈리지 않고 야릇한 교집합을 이룬다. 공식적으로 이단으로 지정되지 않은 기성 교회 중에도 진지하게 휴거에 대한 환상을 품은 곳이 많다. 대표덕인 사례가 연세중앙교회. 이쪽은 아예 2013년 하계성회 당시 휴거 관련 연극인 '그날'을 청소년들 앞에서 상연하고 선동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날짜를 특정하는 선을 넘지 않고 휴거가 임박했다고 주장하는 정도는 대체로 용인된다. 심지어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도 90년대까지는 종말론 설교를 하고 다녔을 정도였다.[28]

실제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발행하는 신문인 국민일보에 칼럼을 연재하던 김성일 장로는 그의 칼럼을 모은 책인 <비느하스여, 일어서라>에서 이렇게 예측했다.

"소련중동에서의 소외를 만회하기 위해 리비아, 이란 등과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리비아와 이란은 그들과 손을 잡는 조건으로 이스라엘 침공을 제안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바로 에스겔 38장에 나오는 종말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미 이란, 리비아, 에티오피아를 제외한 중동의 모든 산유국들은 걸프전쟁 이후 미국편이 되어 있다. 결국 이 산유국들의 지지를 받으려면 소련은 이들 세 나라와 함께 아랍 국가들의 공적으로 되어있는 이스라엘을 치는 수밖에 없다. 이미 이 전쟁의 참패가 성경에 예언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소련은 이 자살적 공격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비느하스여 일어서라 / 김성일 지음/ 신앙계/ 260~281쪽

다행스럽게도 브레즈네프는 이들의 생각처럼 바보가 아니었다.물론 참패가 예언되어 있는 다른 전쟁으로 나라를 말아먹기는 했다

그런가 하면 1992년 5월 10일에 출간되어 대중문화를 싸잡아서 사탄의 작품이라고 매도했던 희대의 불쏘시개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에서도 "종말은 곧 온다"며 시한부 종말론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31년이 지나도록 종말은 오지 않고 있다(…)
1991년 2월 10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광고 내용.
"종말은 오지 않습니다. 사과나무를 심읍시다."
이게 웬일인가? 결코 종말이 오지 않는다고?
"종말은 오지 않습니다."가 아니라 "종말은 곧 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여러분, 깨어서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하고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사십시오."라는 광고를 정성껏 만들어야 한다.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 신상언 지음/ 낮은울타리 / 178~180쪽
이런 현상을 한국 개신교계에 짙게 드리워진 세대주의 신학 때문으로 보기도 한다. 당연히 그런 설들은 제대로 된 신학도 교리도 아니니까 빠져들거나 하면 안 된다.

MBC 재연프로그램인 타임머신에서 이 사건을 다소 코믹하게 재현했으며 2016년 삼일절에 방송된 XTM 잡식남들의 히든카드 M16에서도 언급되었다.

독립 영화 선지자의 밤이 이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주인공인 여주는 어렸을 때 다미선교회를 모티브로 한 교회에서 선지자[29]를 했다. 이후 어른이 돼서 이 일을 잊고 살지만 과거 선지자로 살 때와 달리, 정보를 빼돌리면서 사채업자에 넘기는 답 없는 인간이 되어 있었고, 생존자이자 아직도 휴거를 믿는 중헌이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휴거 이후의 생존자들의 삶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며 주인공 여주가 결국 과거와 현재를 뒤늦게 후회하는 모습이 잘그려져 있다.

2020년 2월 20일 KBS 다큐 인사이트 모던코리아에서 다미선교회 시한부 종말론 사태를 당사자들의 후일담 격인 인터뷰와 함께 아침마당, 생방송 전국은 지금, 사랑방 중계, 뉴스비전 동서남북, KBS 뉴스 9, 문화토론 자유공간 같은 자사 프로그램 자료뿐만 아니라 해외 방송국과 MBC PD수첩 자료까지 인용하면서 상세히 다루었다. 물론 당대의 방송자료 상당수는 모자이크나 가리개 처리는 했지만. 영상

당시 다미선교회를 비롯한 종말론 교회들에서 단골로 불렀던 찬송가 중 하나가 <하나님의 나팔소리>라는 노래였는데 정작 이 찬송가의 가사가 실제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이 오시기 전까지 바른 신앙심을 갖고 살아가며 재림을 기다리자"는 것이다. 1절과 2절 가사가 휴거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만 보면 마치 시한부 종말론을 긍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3절의 가사는 "주님 다시 오실 날을 우리 알수 없으니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어서 기쁨으로 보좌 앞에 우리 나가서도록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네''라는 내용이다.

2020년 10월 29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1에서 휴거 전날과 당일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다루었다. 그리고 누가 SBS 프로그램 아니랄까봐, 상술한 SBS 카메라에 포착된 그 어머님의 등짝 스매싱도 영상 중간에 등장했다(…). 당시 다미선교회에 있던 신도들과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 중 한 명은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다미선교회 신도인 부모에게 감금당하기도 했단다. 사건 이후에는 정식 신학 교육을 받고 개신교 목사가 되었다고.

1992년 9월 초에 방송될 예정이었던 맥랑시대 제55화는 〈환상속의 그대〉라는 부제로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이 사건의 여파 때문인지 문보영의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 〈「아빠, 사랑해요」〉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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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2년 당시 44세.[2] 이단 사역자가 정통 기독교 출판사나 방송국에서 일하다가 마각을 드러내는 경우는 의외로 흔하다. 만민중앙교회이재록 목사는 극동방송에서 설교를 송출한 적이 있으며 유병언은 무려 극동방송의 부국장으로 재직하기도 하였다. 유병언과 다른 구원파의 분파 수장인 박옥수는 대한기독교서회를 통해 책을 낸 적이 있었다.[3] 애당초 일자가 딱히 정해져 있지 않고 하루 하루 연기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4] 사실 1990년대 초반에 미국과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공격한 걸프 전쟁이 일어난 것의 여파로 "이제 곧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세상의 종말이 온다!"라는 공포 분위기가 한국 사회 전반에 가득했던 데다, 마침 1990년대가 2000년대로 넘어가는 이른바 세기말의 연대였기 때문에 종말론이 한층 기승을 부렸다.[5] 당시는 PD수첩이 이제 막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6] 2020년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75억 원이다. 참고로 당시 주택복권 1등 당첨금이 1억 5천만 원이었고, 기본 이자율이 10%에 달했으므로, 현금 1억 원을 은행에 넣기만 하면, 이자 수입만으로도 충분히 잘 먹고 살 수 있었다.[7] 다만 당시에는 장기간 진행된 산아제한 정책의 영향으로 낙태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낙태 건수가 연 100만건 이상으로 추정될 만큼 낙태가 흔하게 이루어지기는 했다.[8] 어떤 사람은 지인에게 집문서와 700만원이 든 통장을 맡겼는데 그 지인은 휴거가 안 일어날 경우 되돌려주기 위해 휴거 전날 교회 앞에서 기다렸다. #[9] 이 고등학생은 원래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모범생이었는데, 교회에 나갔다가 휴거론에 빠졌다고 한다. 부모도 처음에는 한 며칠 "저러다 말겠거니"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아이의 맹신이 점점 심해져서 학교도 가지 않게 되자, 특단의 조치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것.[10]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는 사람에게 쪽지를 건네면서 교회에 전해 달라고 부탁했고, 이 쪽지를 받은 교회 측이 쇠톱과 절단기를 몰래 고교생이 입원한 병원에 넣어줘서 이것으로 화장실 쇠창살을 자르고 탈출했다고 한다.[11] 아들이 병원을 탈출해서 교회로 들어간 뒤부터는 생업도 포기한 채, 각지로 아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12] 참고로 이 피아노 치는 장면은 모던코리아에도 나왔다.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MBC에서 쓴 장면도 인용한 것. 휴거불발 이후 둘 다 정신 차린 채 PD수첩에 다시 출연했다는 후문이 있다. 참고로 피아노 장면이 나온 회는 86회(1992년 7월 21일 방영), 후일담을 다룬 회는 90회다.(1992년 11월 13일 방영)[13] 이때는 초상권 개념이 희박하여 웬만큼 심각한 사건사고라고 해도 모자이크나 목소리 변조 처리를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그래도 미성년자는 꼭 가려 주었다. 청소년의 모습을 전혀 가리지 않는 건 당시 기준으로도 몹시 특이한 일이었다. 참고로 모던코리아에 해당 장면을 인용했을 때는 초상권 문제가 있는 만큼 눈가리개는 했다.[14] 이 담임교사는 결국 사표를 내고 집을 비롯한 전 재산을 처분하고 교회로 들어갔다고 한다.[15] 즉, 창작물에서 흔히 나오는 영혼만 육체에서 빠져나가는 묘사처럼 그대로 통과한다는 의미.[16]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1 휴거 편에서 장항준은 이를 두고 자신은 휴거가 되면 아마 금니와 임플란트만 남을 것이라는 드립을 쳤다.[17] 일부 교회에서는 휴거되었다는 증거를 남긴다며 신도들의 옷에 일일이 이름표를 달았고, 마지막(?)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출입증을 나눠주면서 이것을 '천국행 티켓'이라고 불렀다.[18] 모던코리아에 출연한 당시 경찰 경비과장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로는 교회 밖에 있었던 군중이 아니라 다미선교회 건물 인근에 살던 한 수험생이 공부하던 중에 신도들이 일으키는 바깥 소음이 짜증나서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TV 수상기를 발로 차서 부순 것이라고 한다. 이 학생 입장에서는 충분히 부수고도 남을 만한 상황이었던 셈. 참고로 1993학년도 전기 학력고사가 1992년 12월 22일이었으니, 이 학생의 입장에서는 시험이 두 달도 채 안 남은 상황이었다.[19] KBS 모던코리아 후반부에서 휴거 예정 시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을 묘사하는 장치로 징을 쳤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영상을 넣어 연출했다.[20] 대한민국 표준시(UTC+9)보다 7시간 늦은 UTC+2이다. (서머타임 적용시 UTC+3) 즉 예루살렘 시간으로 자정이면, 대한민국 표준시로 오전 7시이다. 물론 10월 28일 오전 7시가 되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21] 구입을 한 년월일은 1992년 5월 22일이었다.[22] 이때 이장림은 "휴거되어 바로 천국으로 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7년간의 환난을 겪은 뒤 천국으로 가는 환난성도다"라고 주장했고, "그 기간에 사용할 자금(…)이 필요했다"고 한다.[23] 주소는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 11길 5(지번 주소는 성산동 209-4)[24] 아래에도 언급되지만, 다미선교회 이장림 본인도 휴거 일자를 특정하진 않았다. 휘하의 소년 선지자인 하방익이 휴거 일자를 밝히자, 거기에 편승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다. 결국 선을 넘기 전의 다미선교회와 똑같은 짓을 답습한다고 볼 수 있다.[25] 카페에 독자 카테고리를 갖고 있는 목사들 중에 정상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나마 나은 게 해외 목사인 폴 워셔와 데이빗 윌커슨인데, 폴 워셔는 근본주의 성향이 강하지만 그러려니 하더라도 데이빗 윌커슨은 신학적으로 논란이 있는 사람이다. 나머지 한국 목사는 다미선교회와 얽혀 있거나, 과거 노골적인 이단에 투신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다.[26] 1976년생으로 당시 16세였다.[27] 태어났을 때는 말을 못 하는 청각장애인이었다가 학교 들어갈 즈음에 갑자기 말을 할 수 있게 되어 장애인 신세에서 벗어나 이후 아버지가 운영하는 교회에서 설교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라면 본인에게나 가족들에게나 기쁜 일이겠지만, 문제는 본인과 본인 가족들이나 기적의 능력을 얻었다고 과신하다가, 시한부 종말론에 빠져들어 종말이 온다고 예언하고 설파하는 활동을 벌였다는 것. 당연히 휴거는 오지 않았고, 본인과 본인 가족들, 신도들에게 이불킥할 일로 남았다.[28] 조용기 목사가 90년대에 출간한 <평신도를 위한 요한계시록 강해> 내용을 읽어 보면, 전형적인 세대주의적 해석으로, 날짜 지정 여부만 다르지 다미선교회가 당시 내놓았던 종말 상황에 대한 해석과 매우 유사하다. 예를 들면, 이만만(2 X 10,000 X 10,000 = 2억)의 괴수를 중공군으로 해석하고 황충의 소리를 탱크 엔진음으로 해석하는 식이다.[29] 사실 주인공은 가짜인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를 위해서 거짓말을 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