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오 시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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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오 시미치의 기타 정보





크로아티아의 前 축구선수


파일:D.Simic_Profile_1.jpg

이름
다리오 시미치
Dario Šimić

출생
1975년 11월 12일 (48세)
유고슬라비아SFR 크로아티아SR 자그레브
국적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display: none; display: 크로아티아"
행정구
]]

신체
180cm
직업
축구선수(수비수[1] / 은퇴)
소속
선수
GNK 디나모 자그레브 (1987~1992 / 유스)
GNK 디나모 자그레브 (1992~1998)
인테르나치오날레 (1998~2002)
AC 밀란 (2002~2008)
AS 모나코 (2008~2010)
GNK 디나모 자그레브 (2010)
기타
팔레르모 FC (2016~2017 / 행정 담당자)
국가대표
100경기 3골 (크로아티아 / 1996~2008)
가족
아들 로코 시미치
동생 요시프 시미치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수상 경력
4.1. 클럽
4.2. 국가대표
4.3. 개인




1. 개요[편집]



파일:D.Simic_Milan_1.jpg


크로아티아의 전 축구선수.

어린 시절부터 자국의 최고 유망주로 주목받으며 이른 나이에 프로데뷔를 했고 이후 밀란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며 오랜기간 세리에 A에서 자리잡은 선수다.


2. 클럽 경력[편집]


시미치는 자국의 명문팀 디나모 자그레브 아카데미 출신으로 유소년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며 빠르게 월반을 거듭했다. 1992년, 겨우 17세의 나이에 1군 스쿼드에 콜업된 후 프로 무대까지 밟으며 무서운 성장세를 보인다. 다음 시즌부터 시미치는 레귤러 멤버로 거듭나며 국내리그는 몰론이고 유럽 대항전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여섯 시즌 동안 리그 우승 5회, 리그컵 우승 4회, 1997-99 UEFA 컵 16강 등을 달성했고 로베르트 프로시네치키, 이고르 츠비타노비치, 실비오 마리치, 드라젠 라디치, 마크 비두카 등과 함께 자그레브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세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1999년 1월, 자그레브와 대표팀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인 그는 이탈리아의 명문이자 빅클럽인 인터밀란에 입단한다. 참고로 그의 이적료 1,100만 유로는 당시 디나모의 역대 이적료 기록이었으며 이후 에두아르도 다실바루카 모드리치만이 그의 이적료를 능가했을 뿐이었다. 1월 10일, 산시로에서 열린 베네치아 FC전에 홈팬들에게 첫 선을 보인 시미치는 당시 인테르 감독이었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지지를 받으며 후반기 동안 컵대회 포함 27경기에 출전하며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 잡는다. 이후 두 시즌 동안 시미치는 변함없는 입지를 보이며 팀의 레귤러 멤버으로 활약한다. 그러나 견고할줄 알았던 시미치의 입지에도 금이 가기 시작하는데 2001-02시즌을 앞두고 엑토르 쿠페르가 취임하고나서 부터였다. 쿠페르에게 신임을 잃으며 이전보다 출전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벤치에 머무르는 시간은 많아졌다. 결국 시미치는 라이벌 AC 밀란으로 떠나게 됐고 이적료는 1650만 유로였다. 어떻게 보면 인테르로서는 꽤나 이익을 본 셈.

웃픈 사실은 당시 시미치는 인테르에서 네 시즌 동안 크리스티안 비에리, 호나우두, 이반 사모라노, 로베르토 바조, 디에고 시메오네와 같은 일류급 선수들과 함께 뛰었음에도 팀에서 트로피 한번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가히 2010년대에 버금가는 암흑기라고 할 수 있겠다.

AC 밀란에 합류한 그는 첫 시즌부터 센터백과 라이트백을 오가며 활약한다. 이 시기에 시미치는 토마스 헬베그를 제치고 확고한 주전 라이트백이었으며 리그 29경기, 리그컵 3경기, 챔스 13경기에 출전하여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으로 더블 달성에 기여하는 등 만족스러운 첫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다음 시즌부터는 브라질의 월드클레스 라이트백인 카푸의 합류로 인해 세 시즌 동안은 27번의 경기만을 출전해야만 했고 이에 안첼로티 감독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불과 몇 주만에 2009년까지 연장 계약을 채결한다.

2006-07 시즌부터는 컵대회 포함 34경기를 출전하며 팀에서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다만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는 16강 2차전 셀틱 FC전 이후 결승전까지 명단에서 제외되며 구단 역사상 7번째 우승을 달성하는 순간을 관중석에서 바라봐야만 했다는 것은 옥의 티였다. 다음 시즌부터는 다시 벤치를 뜨숩게 달궈야만 했고 7경기 출전에 그친다.

결국 주전 보장을 위해 시미치는 6년간 함께했던 팀과 작별했고 다음 행선지는 리게 앙AS 모나코였다. 첫 시즌은 무난히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다음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단 한경기도 나오지 못했다. 결국 2009-10 시즌을 마치고 시미치는 자신의 친정팀인 디나모 자그레브로 돌아온 뒤 3개월간의 짧은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유소년 시절때부터 각광받은 인재였던 만큼 다양한 연령대 대표팀을 두루두루 거치며 엘리트코스를 밟아왔다. 1996년 3월 26일, 이스라엘과의 홈경기에서 후반 32분 교체투입으로 A대표팀 데뷔전을 가졌다. 그리고 6월에 열린 UEFA 유로 1996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생애 첫 메이저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지만 이고르 슈티마츠에게 밀려 본선 1경기 출전에 그쳤다. 2년 뒤 1998 FIFA 월드컵에 참전, 이번에는 주전 라이트백으로 낙점받아 로베르트 야르니와 함께 위협적인 양 사이드라인을 구성하며 팀의 역사적인 3위 달성에 크게 공헌한다.

이후에도 대표팀의 1군 멤버로 자리잡으며 두 번의 월드컵과 두 번의 유럽 축구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며 크로아티아의 주축 수비수로 활동하였다. 특히 유로 2004 대회에서는 부주장으로 3경기 모두 출전했다.

2008년 8월 20일, 슬로베니아와의 친선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며 A매치 100경기를 달성, 센추리 클럽 가입에 성공한다. 그리고 9월 18일,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다.


4. 수상 경력[편집]



4.1. 클럽[편집]


  • GNK 디나모 자그레브 (1992~1998, 2010)
    • 프르바 HNL : 1992–93, 1995–96, 1996–97, 1997–98, 1998–99
    • 크로아티아 컵 : 1993–94, 1995–96, 1996–97, 1997–98
    • 크로아티아 슈퍼컵 : 2010



4.2. 국가대표[편집]




4.3. 개인[편집]


  • 크로아티아 올해의 희망 :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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